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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3년 10월 18일 11시 13분 등록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74

 

난지도 노을공원에 가서 하루 저녁 캠핑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삶을 놀이로 실험하고 있는 한 친구의 초대로 우연히 그곳에 가게 된 것입니다. 말 그대로 텐트를 직접 치고, 코펠과 버너로 밥을 짓고, 텐트 안에서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는 오리지널 캠핑입니다. 고등학교 걸 스카웃 때 야영을 해본 경험이 있으나 기억에 아련하니 실로 오랜만의 캠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 끝내고 5시가 넘어 수지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어둠이 이미 내린 후에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노을이 얼마나 예쁘면 공원 이름을 노을공원이라고 지었을까요. 노을을 보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고맙게도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그곳의 저녁 노을은 매혹적이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저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른 언덕 위에 위치한 캠프장은 실로 이징’(액센트를 넣어서 잘 발음해야 합니다)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도시의 건물이 전혀 시야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비 온 후의 청명한 밤 하늘과 시리도록 명징한 달빛 뿐이었습니다. 여행을 해보니 남미의 자연이 그리 광대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방으로 뚫린 그곳의 하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미 만큼이야 아니지만 노을공원에도 그런 막힘 없는 하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이 곳이 호주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호주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서울이면서 서울을 완전히 잊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요. 돈을 들여 멀리 갈 것도 없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마술처럼 복잡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곳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요.

 

전기를 꽂아 쓸 수 있도록 파워 단자를 내장한 가호(家戶) 기둥을 보니 스승과 함께 했던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이 생각났습니다. 노을공원 캠프장은 우리가 헤집고 다녔던 뉴질랜드의 홀리데이 파크와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 뉴질랜드 여행은 제가 기획한 최초의 변경연 여행이어서 특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23명은 한껏 마음을 풀어 헤치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 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우연의 연속으로 가슴을 많이 졸였지만 그 만큼 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해마다 같이 여행할 기회를 가졌던 저로서는 비교적 스승과의 추억이 많은 편입니다. 스승과의 여행은 갈수록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2008년 뉴질랜드 여행과 비교하면 작년 시칠리아 여행에서의 스승은 아주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들과 달리 스승은 자신의 삶을 즐겁게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여러분도 아다시피 그는 언제나 진행형이었습니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 진정한 모험가였지요. 내세운 모토처럼 그 스스로가 먼저 어제보다 더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행이야말로 스승의 그런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인간 구본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여행하는 자들의 특권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스승은 가장 스승다웠습니다. 스스로 무뇌라고 선포하며 다가오는 것들에게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는 와이너리에서 사둔 와인을 다 풀어서 우리로 하여금 낮술의 즐거움도 알게 하였습니다. 자주 길을 잃고 헤맸고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오래 넋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일정에 없는 일을 추동해 갑자기 일정을 바꾸게 만들었고, 낮은 저음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도시의 댄스 클럽에서는 맥주 잔을 그대로 들고 춤을 추어서 일명 '미스터 구 댄스'를 외국인들에게 퍼트리기도 했습니다. 유럽 도시 광장에서 어쭙잖은 거리공연을 펼칠 때에는 기꺼이 자신을 노리개로 내어 주었고 그 일을 몹시 즐겼습니다. 그는 솔선해서 셔츠 단추를 풀었고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덕분에 여행은 늘 훈훈하고 야릇하고 또 미친 듯 즐거운 무엇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여행지도 아니고 특별한 프로그램도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우리 모두가 빚어내는 아우라와 스피릿 때문이요 그 일의 가장 적극적인 선동자는 스승이었다는 것을.

 

삶을 열렬히 사랑하려면 우연을 사랑해야한다. 그 사람, 거기서 만난 그 우연을 사랑하고, 나에게 찾아와 내 일이 된 그 일을 사랑하고, 느닷없는 삶의 초대에 흥분해야 한다. 어떤 기회에 대해서는, 나의 모든 계획을 적어 둔 수첩을 송두리째 버리고 그 떨림을 따라 나서야 한다. 그럴 때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고, 흥미진진해 진다.  2010.07.19 구본형 칼럼

노을공원에서의 우리는 일상의 문법을 버렸습니다. 누가 그러자고 주동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했습니다. 우연히도 그곳에 모인 네 사람은 모두 모닝페이지 식구들이었습니다. 우리 네 사람은 모두 멋진 시간의 창조자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개인의 욕구는 희생하지 않는 아주 묘하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시 도심을 벗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갑자기 토네이도를 타고 매직랜드에 이른 것처럼 완전히 다른 시간을 우리는 경험하였습니다.

 

내친 김에 다음날 하루도 우연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새벽의 노을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건너편의 하늘공원의 500계단을 걸어 올라가 바람에 출렁이는 억새밭 사이를 걸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들러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 전시회를 보았고 그곳 도서관에서 문을 닫을 때까지 한국의 근대건축에 관한 책을 몇 권 뽑아놓고 읽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Swinging Bach, 바비 맥퍼린과 그의 친구들 1 &2>를 보았습니다. 우연과 충동에 이끌려 보낸 하루를 마감하기에 이 보다 더 완벽한 작품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냥 앉아서 보았냐구요. 아닙니다. 자끄 루시에 재즈 트리오처럼 무대에 초대된 뮤지션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보았습니다. 비디오를 다 보았는데도 맥퍼린이 선물한 즉흥 리듬은 내 안에서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든 동작에 춤을 넣고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매 순간이 고요한 희열 속에 들끓었습니다.    

 

이틀의 휴식으로 제 감성은 지금 어느 때보다 촉촉합니다. 아이들의 짜증을 여유있게 받아낼 수 있을 만큼 하트도 말랑해졌습니다. 이틀의 휴식으로 제 감성은 지금 어느 때보다 촉촉합니다. 아이들의 짜증을 여유있게 받아낼 수 있을 만큼 하트도 말랑해졌습니다. 가끔 이런 숨통트기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일상에서의 숨통트기를 익힐 수 있으면 더욱 좋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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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 06:35:39 *.217.6.142

우연과 충동 스피릿의 향연이 일요일 새벽 저에게도 전해 지네요.

창밖으로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과 가느다란  나무 줄기의 출렁거림이 마음을 재촉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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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22:00:43 *.108.69.102

붉은 여인다운  열정이  행간을 가득 채워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마구 들쑤셔 놓네요.

로이스가 소개한 저  비디오라도 찾아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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