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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1일 09시 07분 등록

나와 선생님은 93년인가 94년인가 내가 전 직장에 다닐 때 처음 만났다.

IBM에 다니시던 선생님이 5일짜리 교육 과정의 수강생으로 오셨다.

 

그리고는 나는 20명 중의 1명이었던 선생님을 잊어버렸다.

일년에 수백명이 넘는 교육 수강생을 어떻게 일일히 기억하겠는가? 

그 때도 선생님은 별로 말씀이 없으셨고 조용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몇 년 후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이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꿈을 가졌지만 현실에 매몰되어 갑갑한 일상을 사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바로 내가 이름만 기억하던 수강생 '구본형' 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뛸 듯이 반가웠다. 당장, 책을 사서 단숨에 읽어나갔다.

아! 어쩌면 이렇게 문장 하나 하나로 내 마음을 후벼판단말인가!

 

나는 그 때 방황하고 있었다.

국가가 법으로 보장하는 철밥통 직장에서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운좋게 받은 것만으로도 그 집단에서 손꼽히는 유능한 인재로 대접받고 있었지만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이게 아니었다.

가뭄의 단비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아침' 이 이어졌다.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태생적으로 햄릿이었다.

선생님처럼 잔다르크가 아니었다.

나는 선생님의 책으로 내 꿈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만, 그동안 조그만 변화를 모색하긴 했다.

직장을 두 번 바꿨다.  

내 꿈에 대해서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다.

여의도역 스파게티아에서 점심을 사주셨다.

나는 카푸치노를 샀다.

 

벌건 대낮에 중년의 소년들이 여의도 샛강 공원을 한 시간 넘게 거닐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 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나의 꿈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선생님은 늘 그러셨듯이 나지막하고 울림이 있는 굵은 목소리로

차분히 대답하셨을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주최한 선생님의 강연에 참석해서 강연 끝나고 책에 사인하시는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은행 인사팀에 근무하던 친구가 지점장 교육 강사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선생님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2007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에 참석했다. 꿈벗 12기였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아버지도 개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우리 집에는 항상 개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나는 천부적으로 서비스 오리엔티드 되어있다.

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 돕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나를 오랫동안 만난 사람들은 나를 모두 좋아하게 된다.   

 

나는 내 꿈을 '자폐아 가족이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애견이 있는 숲 속 쉼 터' 를 꿈꾸었다.

무대 뒤로 강이 보이고 천정위로 별이 흐르는 작은 콘서트 홀에서 자폐아 가족에게 작은 음악회, 연극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저녁이면 자폐아 가족들과 바베큐 파티를 하고 와인을 마시고 싶었다.  

애견박사가 되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애견의 모든 것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엄마들과 애견의 고향을 직접 방문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목양견의 고향 스위스, 사냥견의 고향 영국, 경비견의 고향 독일...

선생님은 내 꿈에 댓글을 다셨다. '나는 그 대의 애견을 쓰다듬으며 와인을 마시겠노라.'  

그렇게 살면 꿈같이 행복할 것 같았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를 다녀오고 나서 선생님과 꿈벗 12기들과 몇 몇 변경연 연구원들과 청와대 근처 '블루모쓰'에서 와인을 마셨다.

(그 게 선생님과의 마지막 만찬이 될 줄 그 때는 몰랐다.) 

 

그러나 나는 내 안의 햄릿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모진 사람이 아니다.

25년전 쯤 나의 천부적 개그 본능에 즐겁게 깔깔거리고 난 전 직장의 여자동기가 그랬다.

'저런 사람은 큰 일을 못해.'

그 말은 정확했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힘들어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꿈을 가슴속에서만 고이 고이 간직하는 것을 선택했다.

 

선생님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슴에서 선생님을 잊은 적은 없었다.

내 꿈은 비록 아직 멀리 있지만 아직 지워진 것은 아닌 것처럼.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떠나셨다.

너무나 충격이었다.

그동안 선생님을 더 많이 뵙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강남성모병원에 조문을 갔다.

추모기간에 세 번 살롱9에 갔다.

이렇게라도 해야 선생님과 못다 나눈 아쉬운 마음을 달랠 것 같았다.

선생님의 유품 몇 점을 얻었다. 분홍색 넥타이, 빨간 스웨터... 

선생님생전에는 한 번도 간 적 없는 꿈벗 소풍에도 처음으로 참석했다.

 

선생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행복하신 분이시다.

 

나는 앞으로도 살롱9에도 자주 갈 것이다.

꿈벗 소풍에도 빠짐없이 참석할 것이다.

가서 선생님을 사랑하는 벗들과 선생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서로의 꿈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 꿈이 반드시 이루고야 말 꿈이든, 내가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훗날 누군가 이루었으면 하는 꿈이든.

꿈은 꿈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니까.

 

선생님!

사랑합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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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1:04:07 *.97.72.106

이런 선한 이웃이 우리 곁에 있으니 든든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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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23:28:45 *.225.66.212

마리아님,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을 통해 이어진 아름다운 인연 평생 쭈욱 이어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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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3:02:44 *.10.141.23

반가워요.. 푸근한 인상 ..

"선한이웃" 이라는 이름값을 하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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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23:28:00 *.225.66.212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번에 좋은 모임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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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4:20:19 *.217.46.207

안인균님 이런 이야기가 있으셨군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걸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저도 좀 도와주세요......^^

꿈 풍광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우시네요.

홈페이지에서 자주 뵙겠습니다......... 차 태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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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23:25:19 *.225.66.212

ㅎㅎ... 토요일 저녁에 이기찬님과 인터뷰할 때 다 이야기한 건데?

차 타고 오면서 보니 내 도움이 전혀 필요한 것 같지 않던데...? ^^

그래도 뭐~ 도움이 필요하다면... 시간 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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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22:17:00 *.99.195.242

저에겐 정말 선한이웃 이네요  공주옆 부여가 고향 인지라 ^^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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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23:21:41 *.225.66.212

반가웠습니다!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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