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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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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2일 08시 02분 등록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오르세(Orsay)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한참 보았습니다. 그 전날 머물렀던 아를(Arles)에서는 깊은 밤에 별을 한동안 보았습니다. 그림과 체험이 연결되었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밤이 있기에 별이 빛나고 별이 있기에 밤이 아름답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빛을 보기 위해서, 또 빛과 그 배경에 흐르는 어둠을 함께 보기 위해서는 그만 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를은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의 배경이 되는 장소입니다. 고흐는 1888년 2월 갈등과 상처로 얼룩진 파리를 떠나 아를로 왔습니다. 아를은 그에게 짧게나마 치유와 발견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고흐는 아를이 속한 “남불(南佛)의 영광스러운 태양과 열기는 북쪽 지방과 달리 가난을 덜 고달프게 하고 덜 슬프게 만든다”고 쓴 바 있습니다. 아를에 머무는 동안 고흐는 심신을 회복하고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는 15개월 남짓의 ‘아를 시기’에 2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에는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대표작 다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정수복 선생이 쓴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읽으며 아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절반 정도가 아를에 관한 내용이고, 저자가 책을 쓴 장소도 대부분 아를입니다. 내가 아를에 간 이유는 반 고흐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아를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에서 이 세상을 떠난 사람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반 고흐입니다. 나는 반 고흐에 관심이 없었지만 아를에서 고흐의 흔적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특히 아를의 밤하늘에서 본 별이 생생하고, 오르세의 많은 그림 중에서 그의 그림에 푹 빠졌습니다. 우연일까요? 정수복 선생의 말로 내 생각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떤 사람이나 장소와 만나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설명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힘에 의해 누군가를 만나고 어느 곳에 이르러 이야기가 시작될 때 우리는 ‘우연’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들 각자는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 자신의 취향과 취미에 따라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내적 요구에 부응하는 어느 장소에서 무언가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특정 사람이나 장소와 만나 받게 되는 특별한 인상은 그와 나 사이에 ‘선택적 친화성’이 작동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선택적 친화성은 우연도, 필연도 아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끌어 잡아당기는 힘이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서야 나 역시 론 강 위에 뜬 별을 보았음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고흐와 나는 같은 별을 보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림을 보며 고흐가 별을 좋아함을 느꼈습니다. 그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근거는 있습니다. 언젠가 고흐는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면서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즈음에 쓴 한 편지에서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오르세 미술관에서 구입한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을 공부방의 문에 붙이고, 아를에서 산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그림 액자는 공부방의 서가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고흐가 아를에서 비슷한 시기에 그린 그림이고, 두 그림 모두 별이 빛나는 밤의 정경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움이 짙으면 그림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면 그린이의 내면과 그가 지향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흐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도 이 점을 알고 있어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림은 자기 안의 세계”라고 썼습니다. 내게 고흐의 영혼은 ‘Starry Spirit’입니다. ‘별이 총총한 밤의 영혼’. 아를의 별과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며 나는 그리 생각했습니다. 별이 고흐에게 어떤 그리움을 상징하는지 생각하다가 나 또한 어떤 그리움을 품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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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 저,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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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34.18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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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10:55:29 *.60.84.86

사람들 저마다의 그리움, 멀리 있지만 늘 빛나고, 가슴에 계속해 품고 있으면 그 존재까지 빛나게 하나봅니다.

부드럽고 섬세한 붓 터치 같은 따스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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