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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8일 15시 06분 등록

 알레프

- 생명의 샘, 알레프. 창작의 샘, 알레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송병선 옮김/ 민음사 출판


Ⅰ. 저자에 대하여

보르헤스

1899년 8월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0년 6월 20일 산 니콜라스 데 바리 교구에서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로 루이스 보르헤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단편소설을 쓰고, 세계의 여러 작품들을 번역하고, 시집과 에세이집을 출간했으며 나중에 소설을 썼다. 보르헤스는 ‘시’, ‘에세이’, ‘소설’ 그 모든 것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1927년(28세) 집안의 유전병인 시력을 잃는 것으로 인해 처음으로 눈수술을 받았다. 이후에 보르헤스는 7차례나 더 눈수술을 받았다.

1929년 세 번째 시집 『산 마르틴 수첩』을 출간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백일장에서 2등상을 받았다. 이때 받은 상금 3천페소 중에서 3백 페소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샀다.

1931년 빅토리아 오깜뽀가 《수르》를 창간하자,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잡지는 차후 보르헤스 문학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193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큰 사고를 당하여 패혈증으로 보름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다. 1956년(67세) 안과 수술 실패로 책을 읽지 못하게 되었고, 구술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 단편소설에서 시 창작으로 돌아갔다.

 

1986년 4월 22일 비서였던 마리아 코다마와 결혼식을 올렸고, 6ㅜ러 14일 간암과 폐기종으로 사망하였다.

 

보르헤스가 소설과 에세이 속에서 다룬 개념들은 환상문학뿐만 아니라 기술 진보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문학잡지 《프리스마(Prisma)》창간

문학잡지 《프로아(Proa)》창간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번역 (1910)

시집『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출간 (1923)

시집『맞은편의 달(정면의 달)』출간 (1925)

에세이집 『심문』출간 (1925)

에세이집 『내 희망의 크기』출간 (1926)

에세이집 『아르헨티나인들의 언어』출간(1928)

시집 『산 마르틴 수첩』출간 (1929)

무명작가들의 전기를 다룬 『에바리스토 카리에고』출간 (1930)

단편집 『불한당들의 세계사』출간 (1935)

에세이집 『영원의 역사』출간 (1936)

버지니어 울프의『올랜도』번역 (1937)

카프가의 『변신』번역 (1938)

단편집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출간 (1941)

시집 그동안 발표한 시를 모은 시집 『시집』 출간 (1943)

에세이집 『새로운 시간론』출간 (1947)

단편집 『알렙』출간(1949)

단편 선집『죽음과 나침반』출간 (1951)

에세이집 『또 다른 심문』출간 (1952)

『픽션들』이 이탈리아에서 『바벨의 도서관』이란 제목으로 출간 됨(1955)

마르가르타 게레로와 공저로 『환상동물수첩』출간 (1957)

시와 짧은 에세이 모음집 『작가』출간 (1960)

『환상동물이야기』출간(1968)

시와 산문을 담은 『어둠의 찬양』 출간 (1969)

산문과 시를 엮은 『호랑이와 황금』출간 (1972)

단편집 『모래의 책』출간 (1975)

시집 『깊은 장미』출간 (1975)

시집『철동전』과 꿈에 관한 글 모음집 『꿈의 책』출간(1976)

알라시아 후라도와 공저로 『불교란 무엇인가』출간 (1976)

강연집 『보르헤스 오랄』출간

강연집 『칠일밤』출간 (1980)

시집 『숫자』출간 (1981)

단편집 『셰익스피어의 기억』출간 (1981)

에세이집 『단테에 관한 아홉 개의 에세이』출간 (1982)

소설 『음모자들』출간 (1985)

 

Ⅱ. 가슴을 치는 글귀

 

‘죽지 않는 사람’

7. '솔로몬은 "땅 위에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플라톤이 상상했던 것처럼 "모든 지식은 단지 회상에 불과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솔로몬은 "모든 새로운 것은 망각일 뿐이다."라는 금언을 남긴다.

-프란시스 베이컨 [에세이] 58

 

20. 기운 빠진 눈을 하고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는 내가 그의 머리속에 주입시키려는 소리들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와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그는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

 

21. 나는 아르고스와 내가 서로 다른 우주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가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아르고스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고 거기에서 다른 대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아예 대상이라는 게 없고, 다만 아주 짧은 인상으로 이루어진 어찔어찔하고 지속적인 놀이만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억이 없는 세상, 시간이 없는 세상을 생각했다. 나는 명사가 없는 언어, 무인칭 동사들이나 어형 변화가 없는 성질형용사로 이루어진 언어의 가능성을 고려해 보았다.

 

24. 그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에서 백 년을 살았다. 그 도시가 페허로 변하자, 그는 또 다른 도시를 세우라고 권했다. 이런 사실에 우리는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그가 일리온 전쟁을 노래한 후, 개구리와 쥐의 전쟁을 노래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처음에 코스모스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카오스를 만든 하나의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죽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다.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피조물은 죽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죽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성한 것, 무서운 것, 불가해한 것은 자기 자신이 죽지 않는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나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런 확신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

43. 반쯤 벌거벗은 차림의 그녀는 맨발로 나온다. 두목은 사내답지 못한 달콤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명령한다.

“너와 저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은 서로 아주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 지금 당장 다들 보는 앞에서 저 사람에게 키스를 해.”

그는 모질고 음탕한 말을 덧붙인다. 여자는 저항하려고 하지만, 두 사람이 그녀의 팔을 잡고는 오탈로라의 위로 던져 버린다. 눈물을 흐리면서 그녀는 그의 얼굴과 가슴에 입을 맞춘다. 울피아노 수아레스는 이미 권총을 들고 있다. 죽기 전에 오탈로라는 처음부터 그들이 자신을 배신했고, 자기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그들이 자기에게 사랑을 하고 지휘를 하며 승리하도록 허락한 것이, 그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고, 반데이라에게는 그기 이미 죽어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거의 비웃는 표정으로 수아레스는 방아쇠를 당긴다.

* 죽기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잘 모르겠다.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죽음이 쉽게 닥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신학자들’

59. 이 이야기의 끝은 오로지 은유로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하늘의 왕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우렐리아누스는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느님은 종교적 차이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서 그를 판노니아의 요한으로 여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신성한 정신이 혼란스럽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일 수도 있다. 어쩌면 천국에서 아우렐리아누스가 자기와 판노니아의 요한(정통 교도와 이단자, 증오하는 자와 증오받는 자, 고발인과 희생자)이 불가해한 신에게는 단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 누군가를 이단자라고 심판한 신학자가.... 자신의 체험이나 개념을 이해받지 못하고 이단자가 되었다. 이단자인가 아닌가는 기준이 뭐야? 이 이야기에 따르면 누군가를 이단자로 판단하는 사람은 신을 제대로 체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사(戰士)와 여자 포로에 관한 이야기’

66. 그 여자 포로의 운명과 드록툴푸트의 운명 사이에는 천삼백 년이라는 시간과 바다가 가로놓여 있다. 이제 그 두 사람은 똑같이 회복도리 수 없는 존재이다. 라베나의 대의명분을 받아들이는 야만인의 모습과 황무지를 택하는 유럽 여자의 모습은 상반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어떤 비밀스러운 충동, 즉 이성보다 더 심오한 어떤 충동에 의해 휩쓸렸으며, 그들조차 설명할 수 없었을 그 충동을 존중했다. 아마도 내가 들려준 두 이야기들은 단 하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신에게는 이 동전의 양면이 똑같기 때문이다.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1829년 ~1874년)의 전기’

68. ‘나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내가 가졌던 얼굴을 찾고 있다.’ - 예이츠, 「나선 계단」

 

71. 그의 알려지지 않는 용맹스러운 이야기에는 많은 공백이있다. 1868년 우리는 다시 페르가미노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 결혼을 했거나 가정적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몰라도 그는 한 아버지였고, 조그만 땅뙈기의 주인이었다. 1869년에 그는 지방 경찰의 경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미 과거의 삶을 고친 상태였다. 그즈음에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자기 자신을 행복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었다.(어느 찬란하고 중요한 밤이 미래에서 비밀스럽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밤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얼굴을 보았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날 밤, 다시 말하면 그날 밤의 한순간, 혹은 그날 밤의 한 행위는 그의 모든 이야기를 내포한다. 그것은 행위들이 바로 우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길고 복잡한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삶은 실질적으로 ‘단 하나의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지 영원히 알게 되는 순간이다.

 

73. 나는 익히 알려진 이유 때문에 그 싸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단지 그 탈영병이 크루스의 여러 부들을 죽였거나 중상을 입혔다는 것만 떠올리려고 한다. 크루스는 어둠 속에서 싸우는 동안 (그의 육체가 어둠 속에서 싸우는 동안)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의 운명이 다른 운명보다 더 나을 게 없지만,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경사의 견장과 제복이 이미 거치적거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본질적인 운명이 무리 지어 다니는 개가 아니라 늑대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남자가 자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법의 평원에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크루스는 경찰모를 땅에 던지고서 용감한 자를 죽이려는 범죄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소리치고는, 탈영병 마르틴 피에로와 함께 병사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 운명에 대하여

 

‘엠마순스’

75. 엠마는 종이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나서 가장 먼저 몸에서 맥이 풀리고 무릎이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다음 막연한 죄책감과 비현실감, 한기와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얼른 그날이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즉시 그녀는 그런 소망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만이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고, 그런 일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종이를 집어들고는 자기 방으로 갔다. 그러고는 마치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살그머니 그 편지를 서랍에 보관했다. 아마도 이미 일어날 사건들을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이미 되어 있었다.

* 자기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이미 되어 있었다?

 

80. 중대한 사건들은 시간의 흐름에서는 벗어나 있다. 그런 사건 속에는 방금 전의 과거가 미래와 단절될 것 같거나, 아니면 그 사건들을 구성하는 부분들은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어느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중대한 사건과 시간. 사실과 거짓말 사이.

 

* 이 부분까지 읽었을 때 갑자기 참새가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2013.10.17 오후 3시 30분) 그 소리 때문에 맥이 끊어졌다. 참새들이 떼로 몰려서 소리를 냈다. 대체 무슨 일이?

 

‘아스테리온의 집’

88. 구 년마다 아홉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오고, 그래서 나는 모든 악에서 그들을 구해 낸다. 나는 돌로 만든 복도 안쪽에서 그들의 발자국 소리나 목소리를 듣고서,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찾으러 달려간다. 의식은 단지 몇 분만 지속된다. 내 손이 피로 물들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차례로 하나씩 쓰러진다. 그들이 쓰러진 곳에 그들은 남고, 시체들은 한 복도를 다른 복도들과 구분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 중의 하나가 죽으면서 언젠가 나의 구원자가 도착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고독이 고통스럽지 않다. 그건 나를 구해 줄 사람이 살고 있고, 마침내 그가 일어나 먼지 위로 강림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 귀가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복도들이 더 적고 문들이 더 적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면 좋으련만. 내 구원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는 황소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혹시 사람의 얼굴을 지닌 황소일까? 아니면 나처럼 생겼을까?

 

아침 햇살이 청동 검에 비쳤다. 이제 칼에는 피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믿을 수 있어, 아리아드네?” 테세우스가 말했다. “미노타우로스는 거의 방어하려고도 하지 않았어.”

* 이런 이야기를 테세우스의 입장에서만 읽었었는데, 이 글을 읽을 때는 미노타우로스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이런 시점의 변화를 보여준 작가 보르헤스 멋지다. 미노타우로스가 자신의 미로에 던져진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구원이라고 여기듯이, 미노타우로스에겐 테세우스가 구원일 수도 있구나. 신화를 읽을 때, 미로 속 괴물이 자기 자신이라고 읽을 적이 있다. 그건 나의 내면에 숨겨둔 나의 그림자라고. 그 그림자를 만났을 때, 그것과 마주하고 물리쳤을 때 우리는 누구나가 테세우스와 같은 영웅과 같은 삶을 살게된다고 읽었다. 신화를 읽었던 방식으로 본다면, 테세우스는 정말 구원자다. 내 그림자는 미로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우린 그 미로로 들어가길 두려워하고 있다.

 

‘또 다른 죽음’

100. 다미안은 마소예르 전투에서 겁쟁이처럼 행동했고, 그 나약했던 수치의 순간을 바로잡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앤트레리오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손을 들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며, 용감한 사람의 명성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냥카이의 들판에서 그는 아무도 살지 않는 숲과 다루기 힘든 가축과 싸우면서 강인해졌다. 그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기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마음 깊이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운명이 나를 또 다른 전쟁터로 데려간다면, 난 어떻게 그 전투에 걸맞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겠지.’ 사십 년 동안 그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그 전투를 기다렸고, 마침내 죽음의 순간에 운명은 그를 전쟁터에 데려갔다. 비록 정신 착란의 형태로 그를 전쟁터에 보냈지만, 어차피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가 꿈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며 자기가 참가했던 전투를 되살렸다. 그는 남자답게 싸웠고 마지막 돌격을 이끌었다. 총알 하나가 그의 가슴 한가운데에 명중했다. 그렇게 기나긴 수난과 열정의 은총 덕분에 1946년에 페드로 다미안은 1904년의 겨울과 봄 사이에 벌어진 마소예르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사망했다.

* 중요한 사건이 꼭 시간의 순서로 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모두 본질은 아닐거다.

 

101. 처음에 그는 다미안이 겁쟁이처럼 행동했다고 기억했다. 그러고 나서 그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이구 그는 다미안이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기억했다.

* 또 다른 죽음. 2번째 죽음. 멋지게 전사하고 싶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한 남자, 그 이후의 삶에서 멋지게 죽고 싶은 것을 열망했고 그렇게 죽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어느 것이 기억될지는 나도 모른다.

 

102. 불쌍한 다미안! 그는 자기가 알지도 못했던 슬픈 전쟁과 스스로 마든 전쟁터에서 스무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으로 열망하던 것을 이루었고, 그것을 얻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 다미안의 행복

* 다미안의 죽음과 2개의 역사

 

‘독일 레퀴엠’

104. 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결백을 주장했다면 판결은 방해 받았을 것이고, 비겁한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그래서 처형당하기 전날인 오늘 밤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서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면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받고 싶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독일 역사와 세계 미래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나와 같은 경우들, 그러니까 지금은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머지않아 진부해질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내일이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다가올 세대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전범인가?

 

107. 『부산물과 찌꺼기』의 1권에서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 사라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그 사람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대목을 또다시 읽었다. 그래서 모든 실수는 고의적인 것이고, 모든 우연한 만남은 사전에 약속된 것이며, 모든 굴욕은 속죄의 행위이고, 모든 실패는 설명할 수 없는 승리이며, 모든 죽음은 자살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불행을 선택했다는 생각만큼 더 훌륭한 위로는 없다. 그래서 이런 개인 목적론은 비밀의 질서를 드러내고, 놀랍게도 우리를 신과 혼동하도록 만든다. 그날 저녁에 내가 그 탄환들과 절단 수술을 찾아낸 것에는 도대체 어떤 목적(나는 골똘히 생각했다.)이 숨어 있을까? 나는 그것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 핑계와 변명들 또한 운명이다.

* 순교 vs. 종교적 삶

순교에 대해서 말할 때, 종교적을 삶을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순교’를 비판한다면....‘한 번의 행동은 사람의 전 생애보다 빠른 법이다.’라는 말은 적절한 한 것 같다.

 

108. 그 직책을 수행하는 것은 내게 즐거운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결코 태만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 비겁한 사람은 칼 속에서 그런 비겁함을 증명한다. 반면에 자비로운 사람, 즉 신심이 돈독한 사람은 감옥과 타인의 고통 속에서 시험을 받고자 한다. 나치즘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행위, 그러니까 이미 부패한 노인에게 옷을 벗겨 새 사람에게 옷을 입히려는 행위이다. 지휘관들의 고함 소리와 아우성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그런 변환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음험한 동정심이 옛날의 사랑스러운 일들로 우리를 유혹하는 빌어먹을 감방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나는 동정심이란 단어를 공연히 쓰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잘난 사람이 베푸는 동정심이란 차라투스트라 최후의 죄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 역시 불후의 시인 다비드 예루살렘이 브로추아프에서 우리에게 이송되었을 때 그런 죄를 범할 뻔했다.

113. 세상은 유대주의와 예수를 믿는 유대주의의 병에 걸려 죽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유대주의에게 폭력과 칼에 대한 믿음을 가르쳤다. 그 칼은 우리를 죽이고 있고, 우리는 미로를 짜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 안에서 떠돌아다녀야 하는 마법사, 혹은 이방인을 심판하고 사형 판결을 내린 뒤에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는 계시를 듣는 다윗과 비교될 수 있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것을 파괴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독일이 바로 그것들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목숨보다 더한 것을 주었고, 사랑하는 우리 조국의 운명을 바쳤다. 혹자는 욕하고 혹자는 울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 둥근 원이며 완전하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 ‘독일 레퀴엠’에서는 독일이 전쟁을 일으켜 칼과 폭력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아베로에스의 탐색’

115. ‘비극이란 빌려온 예술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상상해보라.......’ - 에르네스트 르낭『아베로에스』48 (1861년)

 

‘자히르’

131. (주석) 자히르 : ‘눈에 보이는’ 혹은 ‘분명한’이라는 뜻을 지닌 아랍어. 이것은 『코란』57장 3절에 언급된 알라신의 속성 중의 하나이다. “그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눈에 보이시며(zahir), 숨겨진(batem) 분이시다.” ‘눈에 보이는’과 ‘숨겨진’의 이분법은 『코란』을 해석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반영된다. ‘자히르’는 『코란』을 글자 그대로 읽는 것이며, ‘바템’은 숨겨진 의미 혹은 비밀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138. 나는 “돈은 추상적이다. 돈은 미래의 시간이다”라고 되풀이했다. 그것은 외각 지역에서의 어느 오후일 수도 있고, 브람스의 음악일 수도 있으며, 지도일 수도 잇고, 체스일 수도 있으며, 커피일 수도 있고, 황금을 경멸하도록 가르치는 에픽테투스의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파로스 섬의 프로테우스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한 프로테우스이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즉 이슬람이나 스토아학파의 경직된 시간이 아니라 베르그송의 시간이다. 결정론자들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가능한 사건, 그러니까 ‘일어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사건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다. 그리고 하나의 동전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상징한다. 나는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하다가 잠들었지만, 내가 괴수 그리핀이 지키고 있는 동전들이 되는 꿈을 꾸었다.

* 그리핀이 지키고 있는 동전이란 이 세상의 지극한 보물이다.

* 자히르 = 신 = 호랑이

 

145. 언젠가 테니슨은 만일 우리가 한 송이의 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누구이고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아무리 하찮은 사실이라도 우주의 역사와 무한한 인과론적 연결 관계와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 한송이 꽃 = 우주

 

146. 나는 더 이상 우주를 보지 않을 것이고, 오로지 자히르만 볼 것이다. 관념론의 가르침에 의하면 ‘살다’와 ‘꿈꾸다’라는 동사는 모든 점에서 동의어다. 나에게 있어 수천 가지의 모습들은 단 하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또한 지극힌 복잡한 꿈은 지극히 단순한 꿈으로 화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는 꿈을 꿀 테지만, 난 자히르를 꿈꿀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밤낮으로 자히르를 생각한다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이겠는가. 지구 아니면 자히르?

* 살다 = 꿈꾸다

* 동전 뒤에서 하느님을 본다.

‘자히르’ = ‘바템’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보이는 것만을 보니까 그것의 한 면만을 보게 되고 본질은 알지 못한다. 동시에 동전의 양면을 볼 수 있을 때(느낄 때) 그것의 전체를 이해하게 된다.

 

‘신의 글’

153. 어느 날 혹은 어느 날 밤에 - 내가 보내는 낮과 밤에 무슨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 나는 감방 바닥에 한 개의 모래알이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는 꿈과 두 알의 모래가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세 개의 모래알이 있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점차 모래알들은 증식되었고, 결국 감옥을 가득 메웠다. 나는 모래로 만들어진 그 반구 아래서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엄청난 노력을 한 끝에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이 나를 질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잠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이 꿈은 또 다른 꿈 안에 들어 있으며, 그렇게 무한히 계속되는데, 그것이 바로 모래알의 숫자이다. 네가 되돌아가야 할 길은 끝이 없으며, 네가 정말로 깨어나기 전에는 너는 죽게 될 것이다.”

* 무아경은 동일한 상징을 되풀이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 감방에서 깨달음을 얻는 자의 이야기

 

153. 사람은 점차로 자기 운명의 모습과 뒤섞여 닮아간다. 따라서 길게 보면 사람은 자신의 상황들 자체이다.

 

‘자기 미로에서 죽은 이븐 하캄 알 보크하리’

157. ‘집을 짓는 거미와 같나니.......’ - 『코란』29장 40절

 

171. “........ 만일 네 추측이 옳다면, 사이드는 탐욕 때문이 아니라 증오와 공포에서 그 일을 했던 거야. 그는 보물을 훔쳤지만, 나중에 보물이 자기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중요한 것은 이븐 하캄이 죽는 것이었어. 그는 이븐 하캄으로 위장했고, 이븐 하캄을 죽였고, 마침내 이븐 하캄이 되었어.”

“그래, 맞아.” 던레번이 동의했다. “그는 죽어서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 되기 전에, 언젠가 자신이 왕이었거나 왕인 것처럼 위장했던 사실을 기억할 떠돌이였어.”

* 어떤 사람이 왕인지 헛갈리는데, 그것이 바로 미로인 듯이 보인다.

* 이븐 하캄 - 이야기 속 사람

 

‘두 명의 왕과 두 개의 미로’

173. 그는 바빌로니아의 왕을 날쌘 낙타 위에 묶고서 사막으로 데려갔다. 사흘간 낙타를 타고 간 다음, 그는 바빌로니아의왕에게 말했다. “오, 시간과 실체의 왕이시고, 금세기이 상장이시여! 바빌로니아에서 당신은 내게 수많은 계단과 문과 벽으로 만들어진 청동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하려고 했소. 이제 전지전능하신 알라신께서 당신에게 내 미로를 보여 주도록 허락하셨소. 그곳에는 올라갈 계단도 없으며 힘들게 열어야 하는 문들도 없고, 돌아다녀야 할 진저리 나는 복도들도 없으며 당신의 길을 막을 벽들도 없소.”

그런 다음 그를 묶었던 끈을 풀어 주었고, 그를 사막 한가운데 남겨 두었다. 그곳에서 바빌로니아의 왕은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었다. 영원히 죽지 않으실 ‘그분’과 영광이 함께하기를.

* 바빌로니아의 미로, 아랍의 사막

* ‘미로’는 신과 관련된 것이다. 다른 소설에서 보르헤스가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을 통해 말하길...... ‘혼란’과 ‘카오스’는 오직 신만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무척 놀랐다.

지금 이 아름다운 세상, 혼란스러운 세상은 오직 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상이 아름답다.

 

‘기다림’

180. 마침내 알레한드로 비야리와 낯선 남자 한 명이 그를 덮쳤다. 그는 몸짓으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고, 마치 다시 잠을 청하려는 것처럼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기를 죽인 사람들의 자비심을 일깨우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일까? 아니면 끔찍한 사건을 상상하면서 끝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는 게 더 쉬운 일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 이게 아마도 가장 그럴듯한 설명일 것이다. - 이미 수없이 바로 그 장소와 그 시간에 있었던 것처럼 그 살인자들이 꿈이 되어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그가 그런 마법의 상태에 있을 때, 총탄 소리가 그를 지워 버렸다.

* 죽음을 기다렸던 비야리. 죽음이 자신이 찾아오길 기다렸던 비야리.

 

‘문가의 남자’

188. “미친 사람에게 맡겼소.” 그가 되풀이해 말했어. “하느님의 지혜가 그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 교만한 인간들을 부끄럽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의 이름은 잊혔소. 아니면 아마도 결코 알려진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그는 벌거벗은 채, 혹은 넝마를 걸친 채 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손가락들을 세거나 나무들을 비웃곤 했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들은 나는 이의를 제기했어. 그러면서 미친 사람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은 재판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어.

“피고가 재판관을 수락했어요.” 노인이 대답했어. “아마도 그는 자기가 석방된다면 음모자들이 획책한 위험한 운명을 맡게 될 것이고, 단지 미친 사람에게만 사형이 아닌 다른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재판관이 누구인지를 듣자 그가 웃었지요. 나는 그 소리를 들었어요. .........”

 

189. “나는 아까 그를 시골 농가에 가뒀다고 했지만, 재판이 그곳에서 열렸다고는 말하지 않았지요. 바로 이 도시에서 재판이 열렸소. 이 집처럼 다른 모든 집들과 비슷한 집에서 말이오. 집들이 서로 다를 수 없소. 중요한 것은 집이 지옥에 지어 졌는지, 아니면 천국에 지어졌는지를 아는 것이지.

나는 음모자들의 운명에 관해 물었어.

“나는 모르겠소.” 그는 참을성 있게 대답했어. “이런 일들이 일어났지만, 이미 오래전에 잊혀 버렸소. 아마도 신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자들에게 판결을 내렸을 거요.”

그렇게 말하고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어. 나는 그의 대답이 나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으며, 그 순간부터 나는 그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어. 펀자브 지방에 있는 모든 국가의 남녀 군중들이 모여들더니 기도하고 노래하면서, 거의 우리를 휩쓸어 버리고 말았어. 나는 기다란 현관보다 조금 커다란 그 비좁은 마당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 또 다른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나오고 있었어. 물론 그들은 토담을 뛰어 넘었지....... 나는 밀치고 욕을 퍼부으면서 길을 열었어. 마지막 안마당에서 나는 노란 꽃을 머리에 얹은 벌거벗은 남자와 마주쳤어. 모든 사람이 그에게 입을 맞추며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어. 칼은 더러웠어. 글렌케언을 죽인 칼이었기 때문이야. 나는 뒷마당의 마구간에서 그의 절단된 시체를 발견했어.

* 노인은 음모자들을 재판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는 이 글의 화자가 찾는 통치자(폭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레프’

191. ‘오 하느님, 난 호두알 속에 갇혀 있다 해도, 나 자신을 무한 공간의 왕이라 생각할 수 있다네.’ - 『햄릿』 2막 2장

 

191. ‘그러나 그들은 ‘영원’이란 ‘현재시간’이 그대로 있는 것, 즉 여러 스콜라 철학자들이 부르는 것처럼 Nunc-stans(지금 있는 것)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한한 장소의 위대함을 Hic-stans(여기에 있는 것)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 『리바이어던』 4권 46장

 

208. 이제 나는 말로 다 하기 어려운 내 이야기의 핵심에 이르고 있다. 바로 여기서 작가로서의 나의 절망이 시작된다. 모든 언어는 상징들로 이루어진 알파벳이고,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하나의 과거를 공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겁에 질린 내 기억이 간신히 간직하고 있는 그 무한한 알레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이와 비슷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신비주의자들은 많은 상징을 사용한다. 신성을 의미가 위해 어느 페르시아 사람은 어쨌거나 모든 새들인 한 새에 관해 말한다. 알리누스 데 인술리스는 중심에 대해 말한다. 에제키엘은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동서남북을 동시에 바라보는 어느 천사에 대해 말한다. (내가 이런 믿기 힘든 유추를 떠올리는 것은 절대로 무용한 짓이 아니다. 이것들은 알레프와 어느 정도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신들은 내가 동등한 이미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테지만, 이런 이야기는 문학과 거짓으로 오염되어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중심 문제 - 무한한 전체를 부분이나마 열거하는 것-는 해결될 수 없다. 나는 그 거대한 찰나에서 즐겁고도 끔찍한 수많은 행위들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서로 겹치거나 투명하지도 않게 동일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었다. 내 눈은 동시에 그런 것들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연속적 순서로 글로 옮길 것이다. 바로 언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이 닿는 한 뭔가를 포착해 볼 작정이다.

 

209-211. 알레프의 직경은 2~3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지만, 우주의 공간은 전혀 축소되지 않은 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각각의 사물(예를 들자면 거울의 우리 표면)은 무한히 많은 사물들이 들어있다. 그것은 내가 우주의 모든 지점들에서 그 사물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붐비는 바다를 보았고, 여명과 석양을 보았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군중을 보았고, 검음색 피라미드의 한가운데에 있는 은색 거미줄을 보았고, 산산조각 난 미로(그것은 런던이었다.)를 보았고, 아주 가까이 있는 무한한 눈들이 마치 거울에 있는 것처럼 내 안에서 자신들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보았으며, 지구상에 있는 모든 거울들을 보면서도 그 어떤 거울도 나를 비추고 있지 않는 것을 보았고, 솔레르 거리의 뒷마당에서 삼십년 전 프라이 벤토스의 어느 집 현관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타일을 보았으며, 포도송이들과 눈(雪)과 담배와 금속의 줄무니와 수증기를 보았고, 적도의 볼록한 사막과 그곳에 있는 각각의 모래알을 보았으며, 인버네스에서 결코 잊지 못할 어느 여자를 보았고, 그녀의 심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도도한 육체를 보았으며, 그녀의 가슴에서 암을 보았고, 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던 오솔길에서 원 모양의 메마른 땅을 보았으며, 아드로게에 있는 별장을 보았고, 플리니우스며, 각 페이지 안에 있는 각각의 글자를 동시에 보았고(어렸을 때 나는 닫힌 책 속의 글자들이 밤을 보내는 동안 서로 뒤섞이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밤과 낮을 동시에 보았으며, 벵골에 있는 어느 장미의 색깔을 반사하고 있는 것 같은 케레타로의 석양을 보았고, 아무도 없는 내 침실을 보았으며, 알크마르이 서재에서 두 개의 거울 사이에 놓인 지구본과 그 거울들이 지구본을 끝없이 증식시키는 것을 보았고, 새벽녘의 카스피 해의 해변에서 바람을 맞아 갈기가 뒤엉킨 말들을 보았으며, 어떤 손의 가냘픈 뼈마디들을 보았고, 우편엽서를 보내고 있는 한 전쟁의 생존자들을 보았으며, 미르자푸르의 어느 진열장에서 스페인 트럼프 한 벌을 보았고, 어떤 온실 바닥에서 양치류 식물들의 비스듬히 기운 그림자를 보았으며, 호랑이와 금관 악기와 들소와 거대한 파도와 군대를 보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미들을 보았으며, 페르시아의 천체 관측기를 보았고, 한 책상 서랍에서 베아트리스가 카를로스 아르헨티노에게 보낸 음탕하고 믿을 수 없으며 상세하게 쓴 편지(그 글씨를 보자 나는 떨지 않을 수 없었다.)를 보았으며, 차카리타 공동묘지에 세워진 사랑스러운 기념비를 보았고, 한때는 달콤하게도 베아트리스 비테르보의 것이었던 끔찍한 유해를 보았으며, 내 어두운 피가 순환하는 것을 보았고, 사랑의 톱니카귀와 죽음으로 인한 변화 과정을 보았으며, 모든 지점에서 알레프를 보았고, 알레프 안에서 지구와 또다시 지구 안에 있는 알레프와 알레프 안에 있는 지구를 보았으며, 내 얼굴과 내장을 보았고, 네 얼굴을 보았으며, 현기증을 느꼈고, 눈물을 흘렸다. 내 눈이 그 비밀스럽고 단지 추정적인 대상을 보았기 때문이지. 그 대상들은 사람들이 함으로 이름을 부르지만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 그러니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였다.

나는 무한한 존경과 무한한 연민을 느꼈다.

"자네를 부르지도 않았던 곳을 그토록 샅샅이 살펴보았으니 지금 어리둥절할 거야."

* 후기에서 혹은 번역자 후기에서 여기서 제시한 알레프를 다시 해석하기를 ‘카를로스의 지하실에만 존재하는’ 알레프는 ‘가짜 알레프’라고 했다. 보르헤스가 전하고자 하는 알레프는 ‘모든 순간’, ‘모든 공간’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곳에만 존재하는 알레프는 알레프의 개념과 맞지 않다.


Ⅲ. 내가 저자라면

이 소설집은 각각의 단편들이 하나의 개념들을 담고 있다. 하나의 단편에서 이전에 읽은 다른 단편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단편이 그 개념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듯이 보인다. 문학박사 김홍근은 보르헤스의 ‘알렙’을 주제로 강연할 때, 그의 소설은 그 각각이 전하고자 하는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거나 설명할 수 있는 소설적인 기법을 사용해서 전하려 한다고 했다. 김홍근 박사의 안내에 따라 각각의 단편들을 읽을 때는 그것을 잘 드러내는 구절에 집중했다. 그러나 때로는, 대부분의 소설들이 그러하듯이 한 구절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가 개념을 드러내기도 한다.

본 리뷰의 앞부분 ‘가슴을 치는 글귀’는 개념을 드러낸 부분과 필자를 놀라게 한 부분을 옮겨 적은 것들이다. 또한 각각의 구절에 포함되어 있는 혹은 대립하고 있는 개념들을 ‘*’ 뒷부분에 달아 두었다.

 

보르헤스가 각각의 소설에서 가져온 개념들이 들어 있는 원전들을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에세이나 소설로 써보고 싶다. 이 소설을 읽기를 추천받았다. 김홍근 박사님이 강좌의 주요 테마로 잡은 것뿐만 아니라, 시를 창작하는 지인이 보르헤스를 강력히 추천했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많이 보라는 주문이었다. 창작하는 데 영감을 많이 주리라는 이유를 달았다.

 

많은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시간의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는 역사의 반복이고, 그 사건에 관여한 인물들의 혼동이다. 이는 단편집의 마지막 단편 ‘알렙’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접하게 된 작가가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창작활동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써야할 이유, 그려야할 이유, 만들어야 할 이유,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고, 또한 파괴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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