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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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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9일 08시 13분 등록

지난 9월 체코와 프랑스를 다녀왔습니다. 열흘간의 일정 가운데 사흘을 프랑스의 프로방스(Provence) 지역에 속하는 작은 마을 아를(Arles)에서 보냈습니다. 내가 아를에 가는 데는 정수복 선생이 쓴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고 아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급증에 걸려 삶을, 시간을, 풍경을, 음식을, 포도주를, 사람을, 햇빛을, 바람을, 정적을 음미하지 못하게 되었다. 프로방스는 그런 조급증을 치료하는 요양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곳에서 일정 기간을 지내다보면 무엇이든 깊이 느끼고 음미하고 교감할 줄 아는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

 

“프로방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분주함과 부산함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주관하며 느린 속도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 프로방스로 가야 한다.”

 

“프로방스에는 작가와 시인이 겪는 창작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또 정수복 선생에게 프로방스, 특히 아를의 어떤 점이 ‘정신적 휴식과 영감의 장소’로 작용했는지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화가 고흐는 아를을 좋아했고 고갱은 아를을 프로방스에서 가장 지겨운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고갱은 고흐의 권유를 따라 아를에 왔습니다. 둘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를에 대한 느낌은 둘 사이의 파국적 관계처럼 극과 극입니다. 정수복 선생은 말합니다.

 

“모든 만남은 상호 간의 교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교감의 내용은 한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지역의 특성이 그 지역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과 ‘나’ 사이에 ‘들리지 않는 대화’와 ‘보이지 않는 교감’이 일어나야 그 지역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고흐와 고갱은 기질이 달랐고, 서로 원하는 것이 달랐으며, 아를과 나눈 교감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이 아를에 관해 상이한 느낌을 가진 이유인 듯합니다. 그럼 내게 아를은?

 

파리에서 며칠을 보내고 아를에 도착할 즈음 아내와 나는 지쳐 있었습니다. 파리에서의 여행 일정을 무리하게 짰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아를에 숙소를 두고 그리 멀지 않은 아비뇽(Avignon)이나 니스(Nice)를 둘러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를에 도착하고 한두 시간만에 우리는 이곳에서만 삼일을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파리에 비할 수 없이 조용하고 한적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마을 분위기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를에서 에너지를 완전하게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 아를은 치유와 휴식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를의 투명한 햇빛과 맑은 바람, 한적한 분위기를 좋아했습니다. 평소보다 많이 걸어도 활기찼으며, 평소 먹는 양이 적음에도 아를에서는 점심 저녁으로 전식과 본식과 후식까지 느긋하게 즐겼습니다. 아내는 아를에 다시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함께 여행하며 아내 입에서 다시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치유는 상처와 고통을 전제로 하고, 휴식은 바쁨과 소진을 전제로 합니다. 아내는 여행을 떠나기 한주 전까지 회사에서 큰 행사를 맡아 동분서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었고, 상처도 받았으며, 더 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녀에게는 치유가 필요했고 아를에 도착한 시점은 휴식을 취할 적기였습니다. 아를은 고흐와 정수복 선생, 그리고 아내에게 그랬듯이 내게도 치유와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내가 아를에서 치유되고 휴식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아픔과 조급함이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치유와 함께 깨달음이 찾아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깨달음에는 깨짐이 먼저 있어야 하는데, 치유는 고난에 숨겨져 있는 선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줍니다. 그렇게 보면 치유는 깨짐을 깨달음을 전환시키는 과정의 일부이고, 깨달음이 있을 때 치유는 피상적인 위로를 넘는 체험이 될 수 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내는 한동안 놓아두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나는 의무감으로 하던 일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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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 저,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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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7 10:05:08 *.43.131.14

저 승완님 칼럼 읽고 이 책 샀습니다.

프로방스에서 한 달간 체류한 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더군요.

자신을 전문산책가라고 소개해서 독특했어요.

이 칼럼이, 이 책이 프랑스, 프로방스 여행에 꼽사리 끼는 인연을 제게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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