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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6
2013.10.29
글쓴이: 오미경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
2007년 10월 10일 초판
1. 저자에 대하여 : 장하준( 1963.10.07~)
1-1. 장하준 집안은?
장하준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박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집안은 소위 ‘엘리트 명문가’다.
아버지 장재식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3선 의원을 지냈으며 김대중정부 시절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어머니 최우숙은 경기여고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바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장하성과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진은 그와 사촌지간이다.
동생 장하석 역시 수재다. 장하석은 열여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이론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런던대 교수로 임용됐다. 2007년엔 과학철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라카토슈 상’을 수상했다. 2010년 9월부터 케임브리지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데, 한국인으로 이 대학 석좌교수’가 된 이는 장하석이 처음이며, 한국인으로 두 형제가 나란히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된 것도 처음이다.
1-2. 『사다리 걷어차기』 책으로 뮈그달 상 수상
장하준은 영국에서 공부한 지 4년 만에 교수로 임용됐다. 박사 학위를 받기 전인 27세였다. 이에 대해 그는 “경제발전론을 전공한 교수가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기회가 왔다”며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2002년에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출간했는데, 이 책으로 2003년 ‘뮈르달 상’을 수상하게 된다. 뮈르달 상은 유럽정치진보학회에서 지난 1년간 출간된 제도경제학 서적 중에서 가장 뛰어난 책에 주는 상이자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2004년에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책 제목인 ‘사다리 걷어차기’는 유치산업 보호론의 시조로 알려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1789∼1846)가 고안해낸 개념이다.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이 다른 사람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걷어찬다는 뜻으로, ‘보호무역’을 통해 발전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위선적 행태에 대한 비유다.
장하준은 2005년에는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했는데, 이 상은 미국 터프츠대에서 1973년 노벨경제학 상을 탄 바실리 레온티예프를 추모하기 위해 2000년에 제정됐다. 장하준은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개발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한 것이다.
1-3. 비주류학파는 모두 가라
케임브리지대에 재직하면서도 장하준은 모교인 서울대 교수직에 세 번이나 지원했는데 매번 탈락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서울대 경제학부가 미국 유학파를 우선시한다는 점과 주류 경제학자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제도경제학을 전공한 장하준은 비주류 경제학자이면서 유럽 박사 출신이라 서울대에서 달갑지 않게 볼 것임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인 정태인이 쓴 칼럼을 보자.
“연전에 뮈르달 상(학자에 따라서는 노벨상보다도 권위를 더 쳐준다)을 받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서울대에 교수 신청을 했다. 그는 당시에 <케임브리지 경제학 논집(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의 편집자(editor)였다. 유럽에서 유명 잡지의 편집자란 상상을 불허하는 권위이다. 한 서울대 교수가 한 마디 하셨다. ‘3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 미국 것이 아니면 3류라는 이런 사고는 미국에서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사고 탓에 장하준 교수는 쓸쓸히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케임브리지 경제학 논집>은 사회과학논문인용지수(SSCI) 3위 안에 들 만큼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경제학술지인데, ‘3류 잡지 에디터’라고 표현한 건 지나친 오만이다. 2007년 <경향신문>의 취재에 의하면 그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34명 가운데 31명이 미국 박사, 2명이 기타 박사, 1명이 국내 박사 출신이었다. 국내 대학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서울대에서는 특히 미국 박사 출신을 선호한다. 중요한 건 서울대 교수들 중 ‘사실상’ 전부 주류 경제학자라는 점이다. 여기서 주류 경제학자란 수학과 통계학을 많이 쓰는 시장주의자들로 시카고학파를 지칭한다. 이 학파를 태동시킨 시카고대는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다.
2007년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김수행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학부에서 유일한 비주류 경제학자였다. 정년퇴임을 1년 앞둔 그해, 김수행은 퇴임 후 오게 될 교수가 주류 경제학자일 것이라며 “아무리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의 시대라 하지만 33 대 0이라니 이건 너무하다”고 했다. 여기서 33 대 0이란 32(주류 경제학자) 대 1(비주류 경제학자, 김수행) 비율이 이듬해가 되면 33 대 0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김수행은 “제자이자 케인즈주의자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우리 학교에 왔으면 바랬지만 그것조차 잘 안 되더라”고 씁쓸해했다.
한편 <한겨레> 곽정수 기자는 서울대가 장하준을 탈락시킨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울대는 더 나은 후보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비주류인 장 교수에게 자격 미달이라며 퇴짜를 놓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장 교수는 당시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전 세계 대학 순위에서 10위 안에 드는 명문대의 교수를,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서울대 교수들이 자격 미달이라고 내친 것은 놀랄 만한 지적 자신감이다. 훗날 서울대 총장이 된 정운찬 교수도 당시 학문적 다양성을 위해 장 교수의 임용을 지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1-4. 장하준의 저서와 열풍 이유
서울대 교수 임용 탈락과는 무관하게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에 제동을 거는 저서를 연이어 출간한다. 『사다리 걷어차기』(2004), 『개혁의 덫』(2004), 『쾌도난마 한국경제』(2005), 『국가의 역할』(2006),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2007), 『나쁜 사마리아인들』 (2007),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2008) 등이다. 그리고 2010년 10월 드디어 문제(?)의 화제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내놓았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는 출간 4개월 만에 40만 부 팔렸다.
3년 전에 출간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50만 부를 넘어섰다. 『사다리 걷어차기』와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 다른 저서까지 합하면 100만 부를 훌쩍 넘는다. 이 가운데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는데, 2008년 ‘국방부 불온도서’로 지정된 이후 오히려 탄력이 붙었고, 최근 『23가지』 열풍에 힘입어 상승효과를 거두고 있다.
화제작 『23가지』는 주류 경제학에서 주창해온 시장개방과 자유무역, 세계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허구를 들춰낸다. 자본주의 중에서도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대해 메스를 들이댄 이 책이 대중에 이토록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베스트셀러 요소로 ‘3T’를 언급한다. 타이밍(Timing), 타깃(Target), 타이틀(Title)이다. 늘 성립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유용한 개념이다. 『23가지』는 우선 제목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다 탄탄한 내용으로 제목이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호응을 얻은 이유는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해 더욱 불안해하고 답답해하던 대중의 정서와 지적 욕구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융 지원 조건으로 요구한 구조 조정과 민영화,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해왔다. 그럼에도 일반 대중의 삶의 질은 나아진 게 없이 오히려 소득 불평등에 따른 양극화의 골만 깊어졌다. 2008년엔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목격했다. 이에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과 영국에서조차 기존 정책을 재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과 해법에 대해 어떤 경제학자나 전문가도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 시점에 장하준이 등장해 대중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것이다.
『23가지』가 뜬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장하준은 풍부한 사례를 동원해 탄탄한 논리를 전개해가는 건 물론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매력적인 글을 써낸다. 이는 우파 진영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는 장하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그의 책이 “정교한 논리와 풍부한 사례 때문에 웬만한 사람이면 그의 논리에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을 정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유기업원 원장 김정호는 장하준이 훌륭한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빼어난 스토리텔러라고 말했다.
장하준은 주류 경제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수학과 통계학을 동원한 난해한 경제이론이 아닌, 각국의 역사와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경제 논리를 전개해간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그의 인문사회적인 소양과 전공인 제도경제학에 기인한 바 크다.
원광대 교수 조용헌에 의하면 장하준은 홍익초등학교 시절부터 구내 홍익대 도서관을 자주 방문했는데, 역사와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워낙 많이 빌려 읽어 도서관 직원이 그의 아버지가 그 책을 보는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그의 전공인 제도경제학은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을 분석하는 데 있어 정치사회적 제도와 환경을 중시하는데 그 때문에 장하준의 경제 담론은 역사적 사례가 풍부하고 글의 전달력도 탁월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주로 약자를 배려한 경제학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23가지』에 언급된 담론들을 보자.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등이 주를 이룬다. 개발도상국 편에 서서 선진국들의 사악한 행태를 비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맥을 같이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의 반대편에는 강자의 횡포에 대한 분노가 있다. 언젠가 장하준은 “선진국들이 한 짓을 보면 원자폭탄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처럼 불의에 저항하는 고발성 글은 독자의 공분과 지적 자각을 일으켜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1-5. 장하준은 대중과의 소통자
그는 지식의 무장 해제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수학과 통계학을 동원해 경제담론을 역설하는 동안 장하준은 경제학의 본질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며 겸손하고 친숙하게 대중에 다가섰다.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나머지 5퍼센트도 아주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숨은 근본 논리는 쉬운 말로 설명 가능하다. …… 식품 공장, 정육점, 식당 등의 위생 기준이 어때야 한다는 것은 전염병 학자가 아니어도 모두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경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나면 상세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기에 독자들이 그에게 호감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좌우를 막론하고 경제학자들은 쉽게 쓰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내가 볼 때 일부러 그러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어떤 경제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자기 논리를 이해하면 오히려 걱정한다더라. ‘내가 잘 못 가르쳤나?’하고.(웃음) 어느 학문이나 학자들이 자꾸 진입장벽을 만드는 못된 버릇이 있다. 어릴 때 병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엄숙한 표정으로 처방전에 멋들어지게 영어로 사인하는 모습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스피린 한 알’ 뭐 이런 거였다.”
해박한 지식과 이해하기 쉬운 글쓰기로 먹기 좋게 밥상을 차려주는데 누가 이를 마다할 것인가. 경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말이다.
최근<중앙일보> 경제부 에디터 고현곤은 「장하준 한 명 못 당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라는 의미심장한 칼럼을 썼다. 그는 이 칼럼에서 주류 경제학자들과의 저녁 모임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참석한 학자들에게 왜 진작 장하준 책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그런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얼굴 내미는 학자들 문제 있어서’ ‘바빠서’ 등의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애써 무시해온 장하준의 책이 40만 권이나 팔린 사실에 그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며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주류 경제학은 위기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위기다. 복잡한 수학 방정식으로 계량화하거나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덧씌운 경제 모델에 몰입해 있다. 그 모델은 정확한 것도 아니어서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내놓는 경제 전망은 민망할 정도로 빗나가기 일쑤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난해한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6. 신자유주의 보완과 해결책은?
장하준은 일관성 있고 효과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해간다. 그는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설득을 위해 ‘비유’를 전략으로 자주 사용한다. 예컨대 자유시장주의(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시장을 자동차에 비유한다. 같은 자동차도 취객이 운전하면 살인 무기가 되지만 응급 환자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면 사람 목숨을 구하듯이, 시장은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성능이 개선된 브레이크를 장착하거나 더 효율적인 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자동차 품질을 개선할 수 있듯이, 시장도 참여자들의 태도와 동기 그리고 시장을 지배하는 규정을 적절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더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마냥 앞만 보고 달려온 신자유주의에 제동을 걸어 차분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동안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규제 완화 또는 철폐, 민영화, 주주자본주의 등을 강조했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소득분배 악화와 성장률 저하 그리고 금융위기 빈발, 급기야 2008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이래도 신자유주의가 대안일까.
장하준은 보호무역을 강조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사례로 언급한 적이 있다. 그에겐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아들은 그에게 의존해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뿐인가. 일을 하면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아들은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도 모른다.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경쟁에 더 많이, 더 빨리 노출될수록 아들의 발전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아들은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일 아들이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보호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비유는 개발도상국에 자유무역을 강요해온 선진국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장하준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제반 시설과 경제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보호무역과 보조금, 각종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에 관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 시절에 사용했던 정책이며 오늘날 그들이 부자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정책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보호무역으로 인해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선진국들이 팔 수 있는 시장도 그만큼 커지지 않을까.
장하준 같은 민족주의자도 필요하다
민족주의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제국적*공격적 민족주의’와 ‘저항적*방어적 민족주의’이다. 약소국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민족주의와 강대국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족주의가 같은 개념일 수는 없다. 한국이 부와 이익을 위해 아프리카를 탄압하는데 민족주의를 동원하면 그릇된 것이지만, 일본제국에 저항하고 방어하기 위한 민족주의는 정당하다는 뜻이다.
앞서 장하준이 약자를 배려하는 경제학을 펼친다고 말했다. 그런데 장하준은 재벌 문제에서 노동자 편만 드는 게 아니고 때론 재벌을 두둔하는 듯한 행태도 보인다. 왜일까. 필자가 볼 때 장하준이 재벌을 바라보는 관점은 ‘재벌 대 민중’보다는 ‘재벌 대 외국금융자본’ 개념에 가깝다. 아마 외국금융자본의 영향력과 파급력 때문일 것이다. 외국금융자본과의 구도에서 재벌은 장하준에게 약자가 된다. 그와 동시에 재벌은 민중과 대립하는 면도 있으니 장하준이 자신의 재벌관을 ‘중도’라고 표방하는 게 아닐까.
사례 하나를 들어본다.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의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된 해외금융자본은 재벌의 경영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해외 투기자본 소버린이 SK 주식 15%를 매집하면서 최태원가의 경영권을 위협하는가 하면, 제일은행은 뉴브리지캐피탈에 인수되면서 소비자 금융 전문 은행으로 주저앉았다. 사악한 주주자본주의를 도입했던 재벌이 바로 그 주주자본주의에 의해 부메랑을 맞아버린 것이다.
이때 장하준은 ‘사회-재벌 대타협론’을 주장한다. 우리 사회가 재벌에게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주되 재벌 역시 사회적 책무를 위해 노력하라는 게 요지다. <시사IN> 이종태 기자의 표현대로 장하준은 “재벌의 폐해보다 외국 자본주의의 폐해가 더 크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해외금융자본의 위험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본 장하준이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장하준은 방송 토론이나 인터뷰 등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미국 시가총액의 1∼2%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돈이 2%만 들어와도 한국의 모든 상장기업을 살 수 있다.”) 따라서 규제 장치를 강화하고 인수합병을 어렵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철학이다.
우리는 한때 ‘론스타’ 같은 어느 별에서 온지 모를 ‘스타’ 하나를 만났다. 그 ‘스타’는 ‘먹튀’라는 재앙을 남기고 자기 별나라로 돌아가버렸다. 제2의 론스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 장하준이 우려하는 건 그런 것이리라.
장하준의 말로 글을 갈무리한다.
“나는 민족이 영원히 불변하는 실체라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하며 또 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민족이란 집단이 일단 형성되어 있다면 중요한 것이고, 세상이 돌아가는 핵심적 축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안녕을 걱정하는데, 이런 걱정이 민족주의라면, 나더러 민족주의자라고 해도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참고문헌
http://ch.yes24.com/Article/View/17151
Ⅱ. 내가 저자라면
2-1. 제목에 대하여
성경에 ‘착한 사마리아인’이 나온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지만, 성경에서는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한 남자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사건이 인용된다.
오늘날 부자 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가난한 나라의 시장을 장악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경쟁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유시장과 자유 무역을 설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며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에는 아예 자신들이 권장하는 정책이 개발도상국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역사는 완전히 다시 쓰여졌다. 때문에 부유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을 권장하는 것이 역사적 위선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서 쓰여지는 것이고,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만큼 부자 나라들은 상당 정도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자국 역사를 실제 모습 그대로가 아닌 현재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국의 관점에 더 어울리게끔 점진적으로 고쳐 쓸 수 밖에 없다. 이는 요즘 사람들이 (1871년 이전에는 이탈리아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관하여 글을 쓴다거나, ‘영국’ 왕과 여왕의 목록에 프랑스어를 사용한 (노르만의 정복 왕들인) 스칸디나비아인을 포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바로 그 때문에 지난날 자신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을 채택했다는 순진하지만 잘못된 믿음을 갖고, 그것을 기반으로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장책을 권유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돕고자 하는 나라들의 형편을 더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이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사다리 걷어차기’에 전념하는 사람들보다 더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독선주의가 이기주의보다 더 고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2-2. 저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품은 의도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해를 끼치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느냐에 있다. 과연 이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을 설파하는 대신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해 역사와 현대 세계의 분석, 미래에 대한 예측과 변화를 위한 제안 등을 통해 몇 가지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2-3.이 책의 전체적 뼈대를 논하라.
1장과 2장은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진정한 역사를 검토하는 것에서 논의를 한다. 독자들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잘못되었거나 부분적인 진실에 불과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시한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은 보호관세와 보조금 정책을 오랜 세월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인 나라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무역은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자유 무역은 외부에서 강요된 것으로, 때로는 군사력을 통해 강요되기도 했다.
가장 좋은 성과를 올린 나라들은 선택적으로, 점진적으로 경제를 개방했던 나라들이었다.
시장이 자유화되고 국경이 개방되었던 지난 25년 동안 성장은 점점 둔화되어 온 것이다.
3장~9장까지는 경제 발전과 관련한 정통적인 지혜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뒤집기 위해 본격적으로 경제 이론과 역사, 당대의 증거들을 혼합한 논의를 전개했다. 자유 무역은 가난한 나라들의 선택의 자유를 축소시킨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회사들 가운데는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회사들도 상당수 있으며, ‘생산성이 높은 외국’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리는 것’은 경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부정부패는 시장이 지나치게 작아서가 아니라 시장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는 타고난 짝이 아니며, 국민들이 게을러서 나라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게으른 것’이다.
마지막 장은 ‘미래의 역사’를 통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선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경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맞게 될지를 제시한다. 또한 이 책에서 논의하는 세부적인 정책적 대안에서 추출해 낸 핵심적인 원칙 몇 가지가 제시된다. 이것들은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행동 방침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들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변화시켜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돕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이유를 설명한다.
목 차
추천사
감사의 말
프롤로그-나라가 부자가 되려면
1장.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다시 읽기-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
2장. 다니엘 디포의 이중생활-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3장.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자유 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
4장. 핀란드 사람과 코끼리- 외국인 투자는 규제해야 하는가?
5장.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 민간 기업은 좋고, 공기업은 나쁜가?
6장. 1997년에 만난 윈도 98 - 아이디어의 ‘차용’은 잘못인가?
7장. 미션 임파서블? -재정 건전성의 한계
8장. 자이레 대 인도네시아-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에는 등을 돌려야 하는가?
9장. 게으른 일본인과 도둑질 잘하는 독일인 -경제 발전에 유리한 민족성이 있는가?
에필로그.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까?
2-4. 나의 감상
경제에 문외한인 내가 ‘나쁜 사마리아인’을 읽으면서 전세계의 경제 흐름을 미약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인간은 경제활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가장 가깝게는 자신의 차를 타고 다니기 위해서는 기름을 넣는 일과 전기, 수도, 개인의 모든 활동이 돈과 연관되어 있다. 당장 기름값이 몇십원 몇백원이 올라도 바로 파급효과가 내 개인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차를 굴려야 할 것을 전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걸로 갈아타는 것도 바로 돈과 연관이 있다. 그 작은 지폐의 활용 ‘정부의 인가를 받으면 하잘 것 없는 종잇조각이라도 돈으로 만들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존 로의 급진적인 생각이 오늘날에는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돈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결국은 힘의 원리와 같다. 강대국과 약소국을 나누는 구분은 돈, 경제, 즉 실용적인 돈과 경제를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돈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과 맞닿아 있다. 중국의 흑묘백묘론, 영국이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자립하고 성장이 이루어진 후에는 ,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개발도상국들에 가하는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자본의 횡포가 바로 사다리 걷어차기로 설명되어진다. 이를 두고 어찌 강대국에게 약소국인 나라들이 도덕적 의무로만 봐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립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성공할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적 여건이 만들어져서 자립할 수 있었다’라는 생각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각 나라들간의 경제성장의 역사를 봐왔다.
그렇다면, 국가간은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상황이 먼저 떠올랐다. 대기업의 횡포에 동네 중소상인들이 발디딜틈을 주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 대기업이 미국이나 영국의 제국주의에 비유되고, 옆집 이웃이나 가장 가까운 동네에 사는 중소상인들이 식민지나 개발도상국에 비유한 것이 너무 과정되었다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대기업은 대기업에 집중할 것이 있는데도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네 슈퍼나 빵집, 커피숍, 문구 센타, 분식 센타 등 손 안대는 것이 없고 자본으로 밀고 몇 십원이라도 싸게 공급하는 대기업을 무슨 수로 중소상인들이 막을 수 있겠는가. 이것 또한 그들의 도덕적 의무로 해결해야 함을 사회나 국가가 종용해야 해결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가 고민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한 부분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이듯이 ‘도덕적 의무’는 이러한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감으써 모든 부문에 속속이 체화되어야 함이다.
Ⅲ. 마음을 무찔르는 글귀
추천사
[6-7]
☸‘경제 발전의 원리’라는 것이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황당한 교리인지를 폭로한다. -노암 촘스키-
☸세계화와 경제 발전 같은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밥 겔도프(가수, 빈곤 퇴치 운동가)
☸세계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절로 새롭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조셉 스티글리츠(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 성장과 세계화와 관련해 모든 나라가 따라야 할 정답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치명적 일격이다. - 래리 엘리엇 ( 가디언 경제부장)
프롤로그-나라가 부자가 되려면
[15]
“우리는 월계관을 썼다고 해서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분야( 수소연료전지 생산)는 기술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힘든 산업이다.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기 때문에 단 한번의 혁신을 이룬 것만으로는 마켓 리더의 지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은 없다고 하지만 언제 어디서 경쟁자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 누마이오
[16]
1950~1953년 한국 전쟁 3년 사이에 400만 명이 목숨을 잃을 만큼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잔인한 전쟁이었다.
1910년~1945년 일본 식민 통치의 후유증으로 78%에 달하던 문맹률을 1961년까지 29%로 끌어내리는 능력을 과시했다.
삼성은 1938년 어류, 채소, 과일 수출업체로 출발.
1950년대 중반 ~ 1970년대까지 삼성의 주요 사업은 제당, 섬유였다.
1974년 삼성이 한국 반도체 주식의 50%를 확도하면서 1983년 삼성이 독자적인 칩을 개발하여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지배하는 반도체 산업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했을 때, 그 말을 곧이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 삼성은 휴대폰, 반도체, 컴퓨터 수출업체다.
[17]
1963~2007년 43년동안 한국의 1인당 소득은 구매력 관점에서 약 14배 증가했다. 이와 똑같은 결과를 달성하는데 영국은 (18c후반~2007년까지) 2세기. 미국은 (1860년대~2007년까지) 1.5세기가 걸렸다.
[22-23]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에 접어들자 야심적인 중화학 공업화 정책을 강행해 나갔다. 최초의 제철소와 최초의 현대적인 조선소가 생산에 돌입하고,(비록 부품의 대부분이 수입품이기는 했지만) 최초로 국내에서 설계한 자동차 생산 공정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물론, 그 밖에 전자, 기계, 화학 등 여러 가지 선진적인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그결과 1972~1979년 사이에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달러로 따려 5배가 넘는 놀라운 증가를 기록했다. 수출도 점차 빠른 속도로 증가해 수출 총액이 9배로 늘어났다. 또 모두들 터무니 없는 것이라 여기던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의 목표는 계획보다 4년이나 일찍 달성되었다.
[26]
주요 수출 산업이었던 섬유와 의류 산업 노동자들은 대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근로 환경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다. 자동차, 강철, 화학, 기계등 새롭게 부상한 중공업의 근로 조건은 훨씬 좋은 편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의 노동자들은 당시로서는 세계 최장의 장시간 노동에 해당하는 주당 평균 53~54시간 노동을 해야 했다.
[29]
한국은 1996년에 부자 나라들의 모임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등 제법 살게 되었음을 은연중에 과시했지만, 그 행복감은 한국을 삼켜버린 1997년의 금융 위기로 말미암아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한국은 이 금융 위기 이후 과거의 성장세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한국이 ‘자유 시장 원칙’을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신봉하게 된 데 있다.
[30]
한국은 아이티가 스위스가 된 것만큼의 진보를 이루어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단히 간단하다.
한국이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자유 시장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한국은 안정된 통화 가치와 작은 정부를 갖추고 민영 기업과 자유 무역을 토대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18세기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자유주의 경제학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것으로, 흔히 신자유주의 경제학으로 알려져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과거의 자유주의자들이 지지하지 않던 일부 정책과 제도를 옹호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특허나 중앙은행의 독점적인 화페 발행 등) 특정한 형태의 독점과 정치적 민주주의다.
[31-34]
신자유주의 주도자들은 1960년대~1980년대에 이르는 기적의 세월 동안 한국이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전략을 추구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시장 인센티브와 국가 관리의 교묘하고도 실용적인 조합이 빚어낸 결과이다.
한국 정부는 이 기간 동안 민간 부문과의 협의 아래 특정한 새로운 산업을 선택하고, 보호 관세나 보조금을 비롯해 (무역진흥공사가 제공하는 해외 마케팅 정보와 같은) 여러 가지 형태의 정부 지원을 통해 그 산업이 국제 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할 수 있도록 육성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실질적으로 모든 은행을 소유하기 있었기 때문에 기업의 생명줄인 대출까지 관리할 수 있었다.
일부 대형 사업은 국영 기업에 의해 직접 추진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제철 회사인 포스코였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는 국가 소유라는 사안에 대해 이데롤로기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민간 기업들이 제대로 일을 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한고 주요 분야에 투자를 게을리 한다거나 하면 한국 정부는 주저하지 않고 국영 기업을 설립했다. 또 한국 정부는 종종 부실한 기업을 인수하여 재정비한 다음 민간에 다시 매각히곤 했다.
한국 정부는 그와 함께 부족한 외환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했다. (외환 관리법을 위반한 사람은 사형을 받을 수도 있을 정도로) 한국 정부의 절대적인 외환 통제권을 신중하게 선정된 외환 사용의 우선순위목록과 함께, 어렵게 벌여들인 외화가 중요한 기계설비류와 산업 원자재를 수입하는데 우선적으로 사용되도록 보장했다.
한국 정부는 그렇게 해서 도입된 새로운 산업들- 한국 수출품들은 새롭고 보다 고도화된 산업에 필수적인 선진 기술과 값비싼 기자재를 사들이는 데 필요한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관세와 보조금으로 보호했는데, 그것은 국제 경쟁으로부터 영원히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당 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고 조직화하여 세계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 전략은 시장이 정책 개입을 통해서 조정되어야 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거의 대부분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배치되는 정책 처방을 토대로 해서 부자나라가 되었다.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의 본거지라고 여겨지고 있는 영국과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은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보호 관세와 보조금을 사용하고, 외국인 투자자를 차별했다.
[34]
왜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기 나라에서 실제로 시행해 성공을 거둔 전략을 사용하라고 권하지 않는 것일까? 왜 자본주의의 역사에 관하여 꾸며 낸 엉뚱한 이야기-그것도 앞뒤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 거짓말-를 퍼뜨리는 것일까.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영국이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서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정작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유 무역을 권장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영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적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고 비난하며,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꼬집었다.
1장.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다시 읽기-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
[43-44]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에 대해 설명하면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정통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황금 구속복을 입고 싶은 나라는 국영 기업의 민영화, 안정된 물가 수준, 정부 조직의 규모 감축, 재정 균형의 달성, 무역의 자유화, 외국인 투자와 자본 시장에 대한 규제 해제, 외환 자유와, 부정부패의 감소, 연금의 민영화 등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황금 구속복은 세게화라는 가혹하지만 상쾌한 게임에 뛰어드는 데 이용 가능한 유일한 의복이다. 프리드먼은 “안타깝게도 이 황금 구속복은 ‘누구에게나 맞는 치수’로 된 옷이다. ... 그 옷은 누가 입어도 아름답거나 점잖거나 편안한 옷은 아니다. 그러나 그 옷은 이미 팔리고 있도, 지금이라는 역사의 계절에 진열장에 놓여 있는 유일한 모델이다” 라고 단언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만일 일본 정부가 1960년대 초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따랐다면 렉서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의 도요타는 기껏해야 구미 자동차 외사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일본이 일찌감치 프리드먼의 황금 구속복을 입었더라면 여전히 1960년대 수준의 3류 산업국가로,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나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일본은 1960년대만 해도 수상이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에게 ‘트랜지스터 라디오 판매원’이라는 모욕적인 말로 퇴박을 맞은 적이 있는 나라였다.
세계화의 정사(正史)
[44-46]
3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진행되어 온 세계화의 정사는 다음과 같다.
☸영국은 18세기에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자유시장과 자유 무역 정책을 체택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눈부신 경제 성공으로 자유시장, 자유 무역 정책의 우수성이 명백해지자 다른 나라들도 역시 무역을 자유화하고 국내 경제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유주의적인 세계 질서는 영국의 패권 아래 1870년 즈음에 완성되었는데, 이를 뒷받침했던 것은 자유방임주의적인 국내 산업 정책, 상품, 자본, 노동의 국가 간 흐름을 막는 장벽의 완화(물가 안정으로 상징되는) 화폐 가치의 안전성 원칙과 재정 균형에 의해 보장된 국내외적인 차원에서의 거시경제의 안정 등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후 1930년 미국은 자유무역을 버리고 저 유명한 스무트-홀리smoot-Hawley tariff를 법제화했다. 독일, 일본 등은 자유주의 정책을 버리고 무역 장벽을 높이 세웠으며, 파시즘 및 대외 침략과 관련이 깊은 카르텔을 구성했다. 결국 1932년 자유 무역의 옹호자였던 영국마자 유혹에 굴복하여 관세 제도를 다시 도입하게 되면서 세계의 자유 무역 시스템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세계 경제의 위축과 불안정, 그에 뒤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말미암아 첫 번째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마지막 자취는 사라지고 말았다.
[48]
1841년 영국 정부는 중국 측이 불법적인 아편 화물을 압수하자 이를 빌미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 전쟁에서 대패한 중국은 난징조약에 서명함으로써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자국의 관세 자주권을 포기해야 했다.
아편전쟁은 한마디로 자칭 ‘자유’ 무역의 선도자가 자국의 마약 불법 거래를 방해했다는 이류로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렇듯 (1870~1913년 사이의) 첫 번째 세계화 시기에 영국의 패권 하에 발전 하고 있던 상품, 사람, 돈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부분 시장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
[49]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자유로운’ 무역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0]
영국이 자유 무역을 포기하게 된 진정한 원인은 경쟁국들이 보호 무역주의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데 있다는 사실이 거의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냐 신바보주의자냐?
[51]
정작 부자 나라들이 성장을 둔화된 것은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52]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보호 무역과 국가 개입이라는 ‘잘못된’ 정책을 추구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1인당 국민소득이 연간 3.0%나 증가했다. 이 시기를 ‘제3세계의 산업혁명’ 시기라고 강조했다- 아지트싱교수-
중국과 인도는 지금까지도 프리드먼이 제시한 황금 구속복을 입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나라이다. 경제성장의 실패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그곳은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 아시아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실행된 곳들이다. ...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은 증대한 반면, 성장은 사실상 크게 둔화되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가 풍미했던 기간에는 경제 불안정까지 급증했다. 세계는 그 중에서도 개발도상국의 세계는 특히 1980년대 이후 더 큰 규모의 금융 위기를 보다 빈번하게 겪어 왔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경제 생활의 모든 전선-성장, 평등, 안정-에서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례 없는 풍요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57]
요약하면 1945년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진실은 정사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1950~1970년대는 국가주의적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던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였다. 반면 지난 25년간은 급격하고 통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기였다. 통제된 세계화 시기의 세계 경제는 최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훨씬 안정적이었으며, 소득 분배도 훨씬 균등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개발 도상국들에서 두드러졌다.
누가 세계 경제를 운용하는가?
[58]
세계화 경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부자 나라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부자 나라들의 의도이다.
개발도상국들의 정책 형성에 있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다자적 기구들, 즉 IMF, 세계은행, WTO.이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부자 나라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 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 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59]
제3세계 외채 위기가 있었던 1982년 이후 IMF와 세계은행의 역할은 크게 달라졌다. 이들은 이른바 구조조정 프로그램SAPs 이라는 합동 작전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정책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브레턴우즈 기구의 본래 임무에서 훨씬 벗어나 정부 예산, 산업 규제, 농산물 가격, 노동 시장 규제, 민영화 등 개발도상국들의 거의 모든 경제 정책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대 들어 차관에 이른바 체재 관련 유자 조건을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들의 ‘임무 확장’이 한층 더 진전되어 민주주의, 정부의 분권화, 중앙은행의 독립은 물론 기업의 지배구조와 같은 그 이전까지는 생각조차 없었던 영역에 대한 간섭이 시작되었다.
[60]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경제 활동과 관련이 있는 만큼 IMF와 세계은행은 출산율의 결정에서부터 인종 통합, 남녀 차별은 물론 문화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에 대해 조건을 달 수 있어야만 한다.
2장. 다니엘 디포의 이중생활-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76]
월풀의 선언은 “공산품을 수출하고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것이야말로 공공복지를 도모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임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월풀이 1721년에 제정한 법률의 기본적인 목적은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영국 제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데 있었다.
[79]
영국이 진정한 자유 무역 국가가 된 것은 <국부론>이 출간되고 나서 84년 만의 일이었다.
[81]
‘농산물과 1차 원료에 대한 시장을 확장하여 유럽 대륙의 공업화 추세를 멈추’려는 의도를 가진 ‘자유 무역 제국주의’에 입각한 행동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영국은 국내 농업 시장을 대규모로 개방함으로써 경쟁자들을 농업으로 유인하려 했다. 실제로 곡물법 폐지 운동의 지도자 리처드 콥텐은 곡물법이 없었더라면 “십중팔구 미국과 독일에서 공업이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에서는 공업이 자리 잡기는 하겠지만 지금처럼 번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국의 숙련공들이 먹던 값비싼 식량은 사실상 값싼 식량을 생산하는 나라들의 제조업자들에 대한 보조금 역할을 했다”고 논한 바 있다.
영국은 ‘장기간 지속되어 온 높은 관세 장벽 뒤에 숨어 경쟁국들을 누르며 기술적 우위를 획득하고 나서야 자유 무역을 채택한 셈이다.- 경제 사학자 폴 베어록-
사정이 이러니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83]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제조업을 발전시켜야 하며, 그것을 목표로 정부의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의 정신적 지주는 반(半)스코틀랜드인인 신출내기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다.
1791년 해밀턴은 미국 의회에 <제조업에 관한 보로>를 제출했다. 그의 견해의 핵심은 미국과 같은 후진적인 나라는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그 산업들이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84]
해밀턴은 <보고>에서 자국의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한 일련의 방법을 제안했다. 그 방법 가운데는 보호 관세와 수입 금지령, 보조금, 핵심 원자재의 수출 금지령, 산업 원자재에 대한 수입 자유화와 관세 리베이트, 발명품에 대한 포상과 특허 부쳐, 상품의 표준에 대한 법령 제정, 금융과 운송의 하부 구조 개발 등이 포함된다.
링컨과 관세와 남북전쟁
[89]
링컨은 즉각적인 노예 해방을 촉구하는 신문 사설에 대해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야만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일부 노예만 해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 두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역시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라고 썼다. 당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링컨이 1862년에 노예 제도를 철폐한 것은 도덕적인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인 조처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남북전쟁을 초래한 노예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무역정책을 둘러싼 불화였다.
하지만 링컨은 당선이 되자 공업 관세를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다른 나라들, 부끄러운 비밀들
[97]
핀란드나 노르웨이, 오스트리아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금융 자원을 전략 산업에 집중 지원했다. 그 밖에 핀란드는 외국인 투자를 엄격하게 통제했고, 이탈리아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방 정부가 직접 나서서 중소 기업들에게 마케팅과 연구 개발에 대한 지원을 제공했다.
역사에서 배우는 올바른 교훈
[99]
“과거에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항상 어린아이처럼 지내는 셈이다. 과거의 노력을 무시한다면 세계는 늘 지식의 유아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
[100]
우리는 역사를 통해 거의 모든 부자 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와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겅더차기’를 하면서 자유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더욱 어이없는 현실은 한국에서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이들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 어느 시기에 국가 개입주의와 보호 무역주의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겼던 장본인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장.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 자유 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
[109]
개발도상국의 산업 역시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처음으로 이론화하고, 그 이전과 이후의 정책 입안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사용해 온 것이라고 소개한 유치산업 이론의 핵심이다.
자유 무역은 통하지 않는다!
[110]
“명심하라, 일방적인 무역 자유화는 어느 누가 보상을 받아야 하는 ‘양보’나 ‘희생’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한 ‘깨인’ 행동이다. 호혜적인 무역 자유화는 무역의 이익을 더 늘리지만, 호혜적인 아니더라도 무역의 자유화는 이익을 가져온다. 이 경제 이론은 자명한 것이다.” -유럽부흥개발은해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윌렘 뷔더 교수-
[119]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부자 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대개는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121]
“우리와 거래하는 무역 상대국들가 새로운 그리고 훨씬 개방적인 협정- 상대국들이 자국의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자국의 상품을 대하는 것처럼 미국의 상품을 대하게 될 협정”을 요구했다. -레이건
[124]
한마디로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된 새로운 국제 무역 체제를 만들어 냈다. 그들은 과거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무역과 산업 정책의 여러 가지 도구들을 가난한 나라들이 사용할 수 없게끔 방해하고 있다. 이들이 기를 쓰고 막으로려는 대상은 관세와 보조금만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의 규제, 외국인 지적소유권의‘침해’까지 포함된다.
[128]
개발도상국들의 입장에서는 해외 농산물 시장이 확대되는 것보다 보호와 보조금, 외국인 투자 규제 등을 적절히 사용하여 자국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개발도상국들이 유치산업을 장려할 수 있는 도국들의 사용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부자 나라들에 의한 농산물 자유화르르 따낼 수 있는 조건이라면 이런 비용은 더더욱 지불할 가치가 없다.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미래를 팔아 눈앞에 있는 사소한 이익을 챙기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130]
무역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논리와 자유 무역이 경제 발전에 가장 좋아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논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반대론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서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암시하는 교묘한 속임수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왔다.
[131]
한국의 성공 비결은 새로운 유치산업이 발전하여 노련해지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보호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바꾸어 가면서 보호와 개방 무역 정책을 적절하게 혼합한 데 있다.
4장. 핀란드 사람과 코끼리- 외국인 투자는 규제해야 하는가?
[137]
개발도상국으로 흘러드는 외국 자본의 흐름은 크게 원조, 부채, 투자의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원조는 다른 나라에게서 증여 받은 돈으로, 흔히 해외 원조 혹은 공적개발원조ODA라고 한다. 부채는 은행 융자와 채권으로 이루어진다.투자는 포트폴리오 지분 투자와 외국인 직접투자 형태로 이루어진다. 포트폴리오 지분 투자는 경영에 대한 영향력보다는 경제적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지분(주식)을 소유하는 방식이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회사 경영에 일상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분을 매수하는 방식이다.
[139]
세계 금융의 개방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1945~1971년 사이에 개발도상국들은 금융 위기는 단 한 번도 겪지 않았고, 통화 위기는 16번,(금융 위기와 통화 위기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쌍둥이 위기’는 한 번 겪었다.
[140]
IMF는 현재 “자본 계정의 때 이른 개방은... 유입 구조를 불리하게 만들고, 해당 국가에 갑작스런 자금 흐름의 중단이나 역류 상황에 노출시키는 등의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146]
잭슨은 두 번째 미연방은행에 대한 인가를 거부했다. 잭슨은 이 조치를 발표하면서 “이 은행 주식의 대부분이 어는 외국 국민의 손에 넘어가고, 공교롭게도 우리와 그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통화를 통제하고, 우리의 공공자금을 받아가고, 수천 명의 국민들을 의존 상태에 묶어 두게 되면, 이는 적의 해군과 육군을 합친 군사력보다 훨씬 더 무섭고 위험한 상황이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은행을 가져야 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미국인의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경제 발전 초기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때까지 줄곧 세계 최대의 자본 수입국이었다. “우리는 외국 자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을 미국이 관리하기만 하면 말이다”-해밀턴주의 계통의 민족주의 잡지 <위클리 레지스터>
미국연방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여 외국인 투자를 강력하게 규제했다. 주규모가 아닌 전국 규모 은행이 경우 영주권 없는 주주즐은 의결권 행사조차 할 수 없게 하고, 미국 시민이 아니면 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하였는데, 이는 “외국인 개인과 외국인 금융 기관은 자신들의 대표로 미국 시민을 이사회에 앉힐 의사가 있어야 전국 규모 은행의 주식을 살 수 있다”는 의미였던 만큼 은행 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151]
요켠대 역사는 규제자들의 편이다.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 대부분은 자국이 투자를 받는 입장이었을 때는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보다 나쁜 딱 한 가지는...’
[156]
“자본에 의해 착취다하는 것보다 나쁜 딱 한가지는 자본에의해 착취당하지 않는 것이다. ”-전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 경제학자인 조안 로빈슨-
5장.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 민간 기업은 좋고, 공기업은 나쁜가?
[169]
“우리 외국 은행가들은 돈을 벌 것 같을때는 자유 시장을 지지하고, 돈을 잃을 것 같을 때는 국가를 믿는다”고 -어느 외국 은행가는 제3세계 외채 위기가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 <윌스트리트 저널>
[172]
중국은 30여년간의 경제 개혁 과정에서 큰 것은 쥐고 작은 것은 놓아 준다는 집대방소의 기치아래 소규모 국영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민영화되었다.
[173]
특히 핀란드와 프랑스에서는 국영 기업 부문이 기술 현대화에 앞장섰다. 핀란드의 공기업은 임업, 광업, 제철업, 운송설비업, 제지 기계업, 그리고 화학 산업에서 기술 현대화를 주도했다.
[174]
언론은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범죄, 파산 따위의 나쁜 사건들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언론의 특성은 대중들에게 세상의 좋지 못한 면만을 제시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국영 기업들 역시 상대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지난 20~3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인해 국가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 나간 탓에 성공한 국영 기업들 스스로가 국가와 연관되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6장. 1997년에 만난 윈도 98 - 아이디어의 ‘차용’은 잘못인가?
[193]
“특허는 천재의 불에 이익추구라는 연료를 붓는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194]
“특허는 발명과 발견을 촉진할 수 있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과학적 호기심과 인류를 이롭게 하고자 하는 욕망은 전체 인류 역사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영국의 왕립자연과학학회인 로열 소사이어티 소속 회원 13명은 <파이낸셜타임즈>에 보낸 공개편지에서-
[197]
지적소유권 보호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경제 발전을 위해 선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술 후진국으로 지식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발전의 핵심은 선진적인 외국 기술의 흡수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특허 제도든 선진 기술의 수출 금지령이든, 선진 기술의 흡수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경제 발전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과거 부자 나라들은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이런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다.
[206]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지식의 관점에서 볼 때 후진적이었던 시절에 하나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특허권과 상표권, 저작권을 닥치는 대로 침해했다. 스위스는 독일의 화학적 발명을 ‘차용’했고, 독일은 영국의 상표를 ‘차용’했으며, 미국은 영국의 저작권을 ‘차용’했다. 물론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지금 기준으로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지는 않았다.
[212]
아이작 뉴턴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뉴턴의 이 말은 아이디어는 누적적으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219]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사람들을 격려해야 할 필요성과, 지적 소유권으로 인한 독점 때문에 빚어지는 손실이 새로운 지식이 가져오는 이익을 넘어서지 않도록 보장해야 할 필요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재 널리 퍼져 있는 지적소유권 보호의 강도를 약화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적소유권 보호 기간을 단축하고, 독창성 기준을 높이고, 강제 인가와 병행 수입의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
[220-221]
어려운 것은 지적소유궈을 완전히 폐지할 것이냐 아니면 철저하게 강화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소유권 보유자들의 이해관계와 시회의 나머지 구성원들-혹은 세계의 나머지 구성원들-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이런 균형이 제대로 잡혀야만 지적소유권 제도는 애초에 계획했던 유용한 목적, 즉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을 격려하되 사회에는 최대한 낮은 비용을 부과한다는 목적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7장. 미션 임파서블? -재정 건전성의 한계
[243]
미국 작가 고어 비달이 미국 경제 체제를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 기업,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하소 묘사한 것은 매우 유명하다. 세계적인 규모의 거시경제 정책도 이와 유사하게 부자 나라에게는 케인즈주의를, 가난한 나라에게는 통화주의를 적용한다.
[244]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누자와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거시경제 정책을 개발도상국에게 강요하고 있다. ‘세입을 초과한 지출’을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비난하는 그들의 태도는,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투자를 위한 차입’을 하는 것을 막고 있다.
8장. 자이레 대 인도네시아-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에는 등을 돌려야 하는가?
[256]
미국의 원로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엄격하게 지나치게 집중화된, 그리고 부정직한 관교들이 존재하는 사회보다 더 나쁜 사회가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엄격하고 지나치게 집중화괸, 그리고 정직한 관료들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는 유명한 진술에서 의도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다.
기업들이 규제 규정을 위반하기 위해 사용하는 뇌물 수수가 경제적으로 유익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규제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부정부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해당 부패 행위가 어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느냐, 뇌물을 받은 사람이 뇌물을 어떻게 쓰느냐, 그리고 만일 부패가 없었다면 뇌물이 과연 어떻게 쓰일 수 있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264]
경제 발전은 교육받은 중산층을 형성하는데, 이들은 당연히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민주주의의 미덕을 칭송하면서도 ‘우방’인 나라가 비민주적인 경우에는 침묵을 지킨다. 이런 견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에 대해서 “그는 개자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개자식이디‘라는 유명한 말로 대표되는 실리주의 정책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9장. 게으른 일본인과 도둑질 잘하는 독일인
-경제 발전에 유리한 민족성이 있는가?
[300-301]
문화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변화한다. 문화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 어떤 나라가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설명이다.
[308]
문화는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만, 경제 발전은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문환느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다. 문화는 변화될 수 있다. 경제 발전과의 상호 작용과 이데올로기적 설득, 그리고 특정한 행동 양식을 정려하고 장기적으로는 그것을 문화적 특성으로 바뀌게 하는 보완적인 정책과 제도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문화가 숙명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관주의로부터,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설득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순진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