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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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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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9일 22시 56분 등록
40대 중반의 여류작가가 문학상 심사를 하는데, 응모작 중에서 ‘40대 초의 중후한 남자’라는 표현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여류작가는 속으로 ‘너는 꽝이다!’ 하며 혀를 낼름 내밀지는 않았을까. 그 정도로 요즘 40대 초에 처한 사람과 ‘중후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거꾸로 요즘 40대 초의 사람들 중에는 한창 때 청춘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응모작을 쓴 사람은 자기 나이를 기준으로 상투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고, 그 심사위원은 시대의 변화에 무감각한 표현에 딱지를 놓았을 것이다.

나도 마흔 된 사람이 자신을 중년이라고 칭하면 다시 쳐다봐진다. 시대 자체가 젊어진 요즘 뭐 그렇게 고루한 생각을 하나 싶어서이다. 이미 환갑잔치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환갑을 축하하던 풍습은 평균수명 60세 시대의 관습이므로 환갑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평균수명이 90세를 바라보는 지금 칠순을 맞이하는 분들도 예전 환갑 맞은 분들보다 젊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생물학적인 나이에 0.7을 곱해야 체감나이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나이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글에서는 50세 넘은 사람들을 노년이라고 칭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나이든 사람들을 노년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흑인을 블랙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불공평한 일이다. 노인 혹은 노년이라는 말에는 무력함, 추함, 쇠퇴의 이미지가 중첩되어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명이 연장되면서, 더욱 젊어지고 길어진 장년기를 중년이라고 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무기력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는 것처럼, 중년이라는 단어에는 무개성하고 몰염치한 아저씨 아줌마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이들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중년’이라는 용어보다는 차라리 베이비붐 세대라는 표현을 쓰고싶다. 대략 1955년에서 1963년에 이르는 시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대중적인 대학교육을 받아 자의식이 무척 강하다. 그들은 또한 7,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몸으로 겪으며,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해 결집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이 탄탄한 경제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베이비붐세대는 전세계적으로 막강한 숫적 강세에 힘입어 세상을 바꾸며 살아왔다.

-베이비붐 세대는 음식을 먹기만 한 게 아니라 스낵과 레스토랑, 수퍼마켓 산업을 변혁시켰다.

-베이비붐 세대는 옷을 입기만 한 게 아니라 패션 산업을 변화시켰다

-베이비붐 세대는 자동차를 사기만 한 게 아니라 자동차 산업을 바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랑데부만 한 게 아니라 성의 역할 이미지와 성행위를 바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일만 한 게 아니라 일자리를 혁명적으로 뒤집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결혼만 한 게 아니라 인간관계와 그 제도의 본질을 바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돈을 빌리기만 한 게 아니라 금융시장을 바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컴퓨터를 이용하기만 한 게 아니라 기술을 바꾸어놓았다


이처럼 혁신적으로 주변환경을 주도하며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나이드는 방법도 새롭게 할 것이다. 젊음만을 추구하고 칭송하는 문화에 반기를 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렇게 혁명적인 시기에 우연히 나도 나이들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자의식이 강하여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삶의 조건에 순응할 생각이라고는 없으며, 생산적인 활동을 못하게 되는 그 날이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청년정신의 소유자가 어디 나뿐이랴. 아직 젊은 육신에 체험에서 얻은 자신감까지 더해졌는데, 구태의연한 연령역할개념에 떠밀려 사라질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유심히 책을 읽다보니, 중년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서 탐구한 사람이 없지않다. 심리학자 융은, 중년에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문화적 각본에 따라 살아가느라 기운이 소진된 중년에는, 자신의 숨겨진 정체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한 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본성 중에서 아직 발현되지 않은 소질들, 융이 ‘그림자’라고 부른 그것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살아간다면, 또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화학자 조셉 켐벨 역시 중년에 극진한 의미를 부여했다. 중년이야말로 사회화, 문명화 속에 방치해둔 정신의 원시적 힘을 되살릴 때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번 생에 타고난 소명, 운명에 내재된 비밀, 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하고, 이성과 합리에 따라 재단해온 감성과 직관을 되찾는 것을 조셉 켐벨은 ‘너의 천복을 따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 처음 접했을 때, 내 마음에 조용한 희열이 일었다. 내 안에 조그만 씨앗으로 존재하던 기질이 세월에 걸러지면서 단단한 나무로 자라난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시절 살아낸 경험에 의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저물기 시작한 시간 앞에서 한번은 나답게 살고 싶다는 절실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합하여 나는 행복한 글쟁이요, 순간을 향유하는 쾌락주의자인, 조르바 더 붓다로서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것을 감히 나의 천복을 찾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수리의 수명은 보통 7,80년이라고 한다. 그 중 40년쯤 되는 시기에 독수리는 높은 산에 올라 스스로 바위에 부딪쳐서 부리와 발톱을 부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 다음 새롭게 40년을 다시 산다는 것이다. 구부정하게 줄기가 굽어져 젊어서부터 할미 소리를 듣는 할미꽃은 정작 수명을 다 할 때 쯤이면, 줄기를 꼿꼿하게 바로 세운다고 한다. 씨앗을 잘 휘날리기 위한 자연의 섭리이겠지만, 우리는 그로인해 나이듦에 대한 좋은 상징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할미꽃을 일러 백두옹이라고 한다. 비록 머리는 하얗게 세었어도, 나이들수록 꼿꼿해지는 백두옹! 우리도 독수리와 할미꽃처럼, 중년에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삶을 살자. 고루한 연령차별주의에 굴복하는 것보다 그 편이 얼마나 의연한가.

IP *.209.3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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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1 00:12:25 *.70.72.121
" 나는 행복한 글쟁이요, 순간을 향유하는 쾌락주의자인, 조르바 더 붓다로서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것을 감히 나의 천복을 찾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이 더 좋으네요. 선배도 느끼고 끌고 가는 힘이 느껴져서요.

주문 잘 한 것 같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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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8.03.01 10:57:32 *.209.33.137
그러네요. 주문을 잘 해 주었네요.
써니의 왕성한 댓글위원장 역할은 4기 출범 이후에도
계속될지 궁금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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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8.03.02 06:55:37 *.18.196.47
향기는 꽃에서만 나는게 아닌가 봅니다.

한선생님의 글에서도 향기가 나네요.

쓰세요, 멋지게 쓰세요. 좋은 글은 쓸수록 생긴다고 하잖아요

뼈속까지 써내려갈 때 진한 향기로 가득할 것입니다.

좋은 결실이 이미 보이네요

보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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