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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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공부를 잘 했던 사람들이 차지한 직장 구성원들을 만나 강의를 하거나 소위 국내 최고의 대학생들을 만나 강의할 때, 나는 늘 느끼게 됩니다. ‘참 맥없다.’ 학교에서 암기했던 내용과 관련한, 비교적 명확한 답이 가능한 질문은 되받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침묵을 작정합니다. 모바일 단말기나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외국대학의 강의를 보면 교수의 질문에 참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장면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풍경입니다.
보기를 주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도 멀뚱하니 나를 바라보거나 다가서는 나의 눈길을 피하기 일쑤입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바꿔줍니다. ‘다음 중 ......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1번, 2번...’ 질문을 바꾸자마자 청중은 조금 전과는 달리 눈에 안도감을 드러냅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보기 속에서 정답을 고르기 위한 모드로 순식간에 전환하는 것이 단박에 느껴집니다. 참 신기하지만 무척 한심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살아보면 삶과 경영에 있어 답이 보기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과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많은 사람들이 항상 보기를 갈구하는 걸까요? 나는 그 이유를 우리 사회와 교육이 보기 속에서 답을 잘 찾는 사람들이 세상의 구조를 다룰 자격을 획득하는 시대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좋은 처우의 조직을 장악하는 풍토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죽으라고 그런 방식 중심으로 공부를 해 온 탓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현대의 인물 중에서 그런 형태로 높은 자격을 얻은 사람들, 즉 공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각계를 차지한 인물들이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려낸 인물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생각하고 떠올려 보시지요! 현대사의 어느 공부 잘 한 인물이 싸이나 박지성이나 김연아나 추신수나 류현진이나 박세리, 혹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혹은 몇몇의 한류 연예인처럼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상에 알렸는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한 고단했던 정치인을 빼면 공부로 그 상을 수상한 인물은 또 누가 있는지요? 아주 드물게 문학 영역을 빼면(이 부분도 뭐 그다지 진지하게 거론되지는 않지만) 과학에서도 경제에서도 아직 거론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지구에 기후 불확실성만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역시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기 중심의 문제해결능력만으로는 다가오는 불확실성을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데도 기존의 방식으로 세상을 주도할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헤게모니만을 더욱 견고하게 지키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상의 질서를 절묘하게 바꿔나가려 수를 쓰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세상을 뒤덮어오고 있는 기후와 경제적 불확실성은 창의력과 돌파력을 지닌 사람들을 점점 더 필요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는 결국 보기 밖에서도 답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의 때, 다시 말해 세상을 이끌 새로운 자격의 시대를 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늘 강조합니다. ‘새로운 자격의 시대가 머지않아 오고야 말리니 머리로만 사유하는 방식을 덜어 ‘Just Do It!’의 방식에 공부와 삶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과서와 현재의 질서가 요구하는 공부를 넘어 본질을 향한 공부가 필요하다. 깊이 있는 인문적 사유가 필요하다.‘ 올해 늦추위라는 불확실성에 대부분의 감나무가 죽었지만 그 감나무를 접목하기 위한 대목으로 쓰인 고욤나무는 죽은 감나무의 밑 둥에서 시퍼렇게 살아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기후변화를 온 몸으로 겪어낸 나무들은 그렇게 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돌파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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