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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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부치고 나서 저는 사과 따러 갑니다. 서리 오기 전에 부사를 수확하는 시즌이고요,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서 아부지와 엄마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출동 호루라기를 부셨어요. 그 동안 엄마가 택배로 보낸 반찬통들을 모으고, 제가 담은 장아찌들을 거기다 조금씩 덜어서 싸두었습니다. 기분 엄청 좋아요. 빈 그릇이 아니라 채워서 돌려드리게 되어서요. 장아찌요? 간장물을 끓을 때 들이부어 익힌 간장장아찌예요. 양 조절에 실패 엄청난 양을 만들었기 때문에 양쪽 집에 퍼 나르고 있습니다. 인터넷 파워 블로그 레시피 고대로 계량컵으로 계량해서 만들었어요. 비트, 무, 오이, 양배추, 우엉, 연근, 당근, 마늘쫑, 마늘, 양파, 청양고추를 썰어댔습니다. 방풍나물과 깻잎을 한 다라이 씻었어요. 정신 사나울 땐 칼질과 물일이 최고입니다. 또 10월에 단식을 하면서 못 먹는 걸 대리충족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감식, 단식, 죽과 미음을 먹는 보식기간 동안 8가지 장아찌를 담았거든요. 나중에는 재미가 나서 둘이서 노량진수산시장에 가서 꽃게를 3kg 사다 간장게장도 담았어요.
10월에 단식을 했어요. 감식을 3일하고 5일 단식하고 미음과 죽을 먹는 보식을 5일 했습니다. 이번은 저의 생애 4번째 단식이었어요. 단식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는 임신을 위해 몸을 만들기 위한 거였구요. 하나는 구본형선생님의 <낯선 곳에서의 아침> 책을 읽고서 선동된 이유입니다. 그 책에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7일의 포도단식 프로그램이 있어요. 저는 혼자 하는 포도단식이 자신이 없어서 생활단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수팥떡 모임에 갔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면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감 느낌에 부릉부릉합니다. 사소한 것 한 가지라도 슬라이딩 세이브를 해서 성취하고 싶었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주도성을 실험하기 위해서 1달이면 족하다 했지요. <낯선 곳에서의 아침>의 저의 교본입니다. 자아혁명의 상징으로서 자신과의 첫번째 전면전 단식에 반드시 승리하고, 하루의 인프라인 먹고 자는 일에 충격을 주어 자신을 위한 2시간을 확보하여 하루를 재편하는 걸 올해 남은 동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단식을 하는 동안 굶주린 피가 온 몸을 콸콸 돌면서 잡동사니 불순물을 끄집어내어 활활 태워 없애는 소각로같이 된 내 안에서 나의 욕망과 재능, 그리고 내 개인명함에 쓸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변화를 위한 저항 극복의 조건을 읽으며 마음을 다졌습니다.
변화에의 승리가능성은 생존의 문제로 접근할수록 높아진다. 변화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 그대는 승리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205쪽) 변화에 성공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어려운 때에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다.(219쪽) 세번째 조건, 시간을 쓰지 않으면 욕망은 그저 그리움으로 남을 뿐이다. 네번째, 전면전의 첫번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라. 다섯번째, (이순신이나 안네 프랑크처럼)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하라.(287쪽)
감식과 단식, 보식 5일은 잘 보냈어요. 마흔 세 살에 첫 책을 출산한 이후 1년에 한 권씩 책을 쓴그는 마흔 여섯에 1인 기업가로 독립했습니다. 나는 마흔 세 살에 첫 아이를 출산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니 막배를 타는 심정은 차고 넘쳤습니다. 연구원 수업료를 내기 위해 한 달에 35만원씩 붓고 있는 적금 역시 첫 책의 출간 기한을 새록새록 확인해 줍니다. 변화가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는 첫번째 조건은 오케이입니다. 배는 몹시 고팠지만 출퇴근을 그대로 하고 요리를 하면서 지냈어요. 아침에 풍욕과 관장을 하는 일정이 추가되고 저녁에 각탕과 냉온욕을 위해 목욕탕에 가는 일정이 추가된 10일을 살자니 바빴어요. 먹지 않으니 낙이 없었어요. 커피 끊은 게 젤 불편하고 거북했어요. 아침 공복에 마시는 커피가 제일의 낙인데 말입니다. 날마다 일기를 썼습니다. 새벽에 전날 일기를 쓰는 게 편했습니다.
욕망과 겨자 같은 분노가 보글거리는 10일을 보냈습니다. 깡패처럼 내 수업을 휘젓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내 살림살이를 살지 않고 남의 살림의 곁다리가 되려는 시녀병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두 페이지의 ‘하고 싶은 일’을 적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과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죽순처럼 올라왔어요. 새벽에 풍욕을 하다가 내 생을 걸만한 최고의 울컥한 욕망은 ‘( )을 내 대에서 끝내는 것’임을 알았어요. 저 괄호가 아버지와 엄마에게는 ‘가난’이었습니다. 저는 괄호에 자기사랑 부족, 우울감, 아토피 같은 걸 넣어봅니다. 딱 이거다 싶게 안성맞춤 한 게 없습니다. 저는 좀 더 탐색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가계를 살펴서 새로운 각본을 쓰는 원점에 선 할머니가 되는 게 내 꿈의 원줄기인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13년 이상 일해온 특수교사인 나에게는 개인 명함에 쓸 이렇다 할 전문성이 한 톨도 없다는 것 역시 아프게 인정해야 했습니다.
공복보다는 단식기간의 정서적인 출렁거림, 극심한 추위와 보식기간의 식욕의 쓰나미를 더 두려워합니다. 역시나 밥을 먹게 된 후의 양 조절에 참패하고 있습니다. 탄수화물 홀릭에 빠졌어요. 새벽 기상은 정해진 시간의 30%만 달성했습니다. 2시간은 확보를 했는데 이것저것을 왔다갔다 하고, 일어나는 시간이 들쭉날쭉합니다. 그래도 아직 남은 2달이 있습니다.
오늘 비가 내립니다. 비에 젖은 은행나무가 있는 길을 좋은 사람과 걸어보고 싶은 주말입니다. 주말 잘 보내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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