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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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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3일 23시 32분 등록

예전 여드름 투성이였던 시절, 수영을 다녔다. 처음으로 수영이라는 것을 배웠던 그 시절, 난 순수한 몰입(flow)를 경험는데 증상은 간단했다. 하루종일 수영 생각만 났던 것이다. 밥먹는 것도 재미난 일도 그닥 흥미가 없었고, 오직 수영만이 내 유일한 즐거움이였다. 그리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첫날 몸이 뜨는 것도 힘들었는데, 일주일만에 어설프지만 자유형을 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일주일에는 배형, 그리고 다음 일주일에는 평형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진도를 나갈 수 있었떤 것은 역설적으로 수영 강습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수영 강습은 일주일만에 그만두었다. 너무 지루했고 진도가 느리다고 느꼈었다. 강사가 말하는 것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였기 때문에, 내 호기심을 전혀 채워주지 못했다. 반면에 뻔한 강사의 이야기 대신에 인터넷의 수많은 자료는 좋은 스승이였다. 난 수영장 가기 전에 오늘은 이런 동작을 해봐야지 생각했고, 집에 와서는 오늘 되지 않았던 동작들을 인터넷을 통해 연구했다. 싸이월드나 디씨 인사이드 같은 사이트밖에 몰랐던 내게 인터넷이 유익하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난 미친듯이 수영장을 다녔다. 술자리나 기타 어떤 약속보다 수영이 우선순위가 높았다. 비가 오는 날은 수영장 가는 것이 귀찮은 게 아니라, 텅빈 풀장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번은 숨을 너무 오래 참아서 오바이트를 한적도 있었다. 힘들면서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많은 날에는 상급자 코스에서 아줌마들과 레일을 돌았다. 속으로 저 한달도 안된 학생인데, 초보 티 안나죠?’ 라고 말하고 싶었다. 점점 늘어가는 수영 실력이 너무나 뿌듯했다.

하지만 즐거웠던 수영은 두달을 채우지 못했다.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여드름이 너무 심해졌다. 피부과 선생님이 수영을 그만두라고 했을 때 뒤도 안보고 수영을 그만다녔다. 두번째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난 수영을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니였다. 나중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보니 잘되지 않았다. 아마 기초를 등한시 했던 이유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경험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였다. 열심히하면 되는구나 라는 느낌을 주었다. 우연히 시작한 수영이 너무 즐거웠고, 내 힘으로 하나씩 깨우쳐 가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공부해 갔던 원리들이 실제 되는 순간 느꼈던 환희의 감정들이 기억에 난다.

최근에 잊고 있었던 수영의 기억이 떠올랐다. 인터넷을 뒤져 수영에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고, 몇시간이고 수영을 해대던 당시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순수하게 즐겁게 하나에 빠져들었던 그 시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수영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아니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들에서 몰입을 느낄 수 없을까?

사실 변경영에 들어오고 매주 책을 읽지만 몰입이 되지 않는다. 책 읽는 것이 즐거웠으면 좋겠지만, 가끔은 무거운 짐처럼 힘들게 한다. 매주마다 읽어야 하는 한권의 책. 그리고 숙제는 나에게 경각심을 주기도 하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꼭 독이 든 성배 같다는 기분이 든다.

왜 책을 읽는 것에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예전에는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내 주위환경에서 원인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독서에 흥미가 없는 것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였다. 그게 내 독서의 흥미를 반감시키고 있던 것이였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재밌게 읽었던 책은 부족한 시간을 줄여서라도 읽었다. 결국 몰입의 문제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시간은 흐르고 인생도 흐른다. 얼마나 집중하고 즐겁게 경험하는 문제는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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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7 12:00:30 *.216.38.13

준영씨- 결혼준비로 바쁘실텐데 이렇게 차분한 글쓰기에 다시한번 놀라움을 전달해주시네요. 참 공감이 많이 갔던 부분이 바로 이점이었어요.  변경연에서 책을 읽을때 정말 저도 몰입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요. 저도 동일한 이유로 고민이 많았거든요. 말씀하신대로, 경각심도 주지만 부담으로 느껴졌던 것이 대부분이었고요. 저의 방법을 하나 밝히자면, 저는 그래서 이 과정을 '몰입'이 되느냐 아니냐에 치중하기보다는 대니얼 코일이 주장한 deep practice (심층연습)-이라고 생각했하고, 이에 더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이것 또한 하나의 deep practice 이다.. 뭐 그 정도로요. 제가 의견을 드릴 입장도 못되지만, 그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 '공감' 정도는 함께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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