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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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이다. 인생길 반 고비에서 올바른 길을 잃었다라고 하던 단테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잘 나갈 때 내 발로 멋지게 걸어 나오고 싶었던 직장이다. 삶은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 걸까. 한 통의 전화로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내가 걸어온 길은 신기루 같이 사라져 버렸다. 한발 한발 오르던 사다리를 누군가 걷어차버린 느낌이다. 내가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고 삶을 살아오고 있었음이 판명되는 순간이다. 초라한 뒷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란 놈이 나를 붙든다. 백지 한 장을 꺼내 놓고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 내가 잃을 것과 얻을 것을 적기 시작했다. 실수는 좋은 선생이 되는 법이니 오늘의 내 모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알기 위한 방법이다. 타인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의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는다. 잃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돈을 잃을 것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자리를 잃을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울 수 없을 것이고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는 비웃음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5년간의 구술작업으로 사후에 출간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을 읽으며 생각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생각으로는 두 가지 길 모두 가 볼 수 있다. 현실은 다르다. 한 길을 선택하면 다른 한 길은 선택하지 못한다.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갈림길은 더 나갈 수 없는 하나의 벽이 된다. 그에게도 중요한 두 번의 갈림길이 있었다고 말한다. 23세 의사로서의 직업을 선택할 때, 38세 학문적인 출세의 길과 자신에게 흥미를 주는 ‘무의식과 직면하는 실험’을 선택할 때이다. 갈림길에 서면 객관과 주관의 느낌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하는 경우에는 거리 두기가 잘 되던 것도 자신의 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인식하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현장을 떠나면 현실이 더 잘 보일 것이다. 고민의 마침표를 찍기 위한 곳이었다. 울람바토르 행 비행기를 탔다. 직장인으로 26년을 정리하고 그 동안 맺은 인연을 정리할 장소로 선택한 곳. 몽골의 초원과 푸른 하늘은 눈에 익었다. 어제도 보던 장면인데…공간이동을 한 걸까. 서울에서 보던 윈도우 바탕화면이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이 pc화면에서 보던 장면과 현장의 그것은 같으면서 달랐다. 러시아산 사륜승합차를 타고 하루를 달렸다.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다. 초원을 가르는 길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 도로이다. 초록의 평원에 한 줄의 황토길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아름다운 길도 가까이가면 먼지를 뒤집어 써야 하고 야생의 꽃밭 곳곳에는 동물의 배설물이 지천이다. 꽃과 똥이 함께 존재한다.
탄탄대로의 내과의사를 포기하고 정신의학을 선택할 때를 회상하며 융은 말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과의사는 무척 유혹적이었다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학비를 빌려야 할 만큼 그는 가난했고 내과의사를 선택하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든 정신의학을 선택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말리던 일이고 이 일로 그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사람으로 회자된다. 어릴 때부터 심령현상에 관심이 많았고 꿈과 환상을 체험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크라프트 에빙(Kraft_Ebing)이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는 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호흡을 해야 할 상태로 흥분한다. 정신의학 말고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 정신과 자연이 합류하여 합해진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된다.
38세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 그는 8년간 강의해온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앞에 펼쳐진 학문적인 출세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내적 인격 즉 ‘보다 높은 이성’의 길을 좇아 무의식과 직면하는 실험, 그 흥미 있는 과제를 서서히 밀고
나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심사 숙고한 끝에 학문적 출세의 길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무의식과의 실험이 끝나기 까지는 내가 공중 앞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이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 말한다.
융은 갈림길이 보일 때마다 의식보다는 자신의 가슴을 믿고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스스로 중요하다고 믿은 것을 선택하고
인생의 충만을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선택한다. 다른 이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길을 자신의 떨리는 심장
하나로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비범함이 있다. 눈에 보이는
탄탄대로를 가지 않고 자신에게 울림이 있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눈으로는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앞차의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며 달리던 우리차가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 일행들과 거리가 멀어진다. 새로 잡은 길은
길이 아닌 초원이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먼지가 없는 초원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길은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인 법’ 나의 선택이 가져올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다. 오늘의 선택이 삶을 충만하게 할
것이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할 것이니. 생의 마지막 갈림길에서 “좋은 세상 행복하게 잘 살고 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위한 오늘의 선택. 길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는 재미를 느끼며 사는 삶이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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