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 조회 수 3961
- 댓글 수 2
- 추천 수 0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느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된 여자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었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어느 날 뱀이 말했더라. '우리도 이 실과를 먹어야 한다. 왜 우리만 주려야 하느냐?' 영양이 말했더라. '우리는 이 실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이렇게 되자 남자와 그 아내는 실과를 집어먹었더라. 우눔보테가 하늘에서 내려와 물었더라. '누가 이 실과를 먹었느냐?' 그들이 일제히 대답했더라. '저희가 먹었나이다.' 우눔보테가 물었더라. '누가, 그 실과가 먹어도 좋은 실과라고 하더냐?' 모두 일제히 대답하더라. '뱀이 그랬나이다." <바사리 전설>*
신화 속에서 때때로, 그리고 자주 이야기는 반복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인간이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먹는다. 순간 낙원은 둘로 쪼개어지고 남자와 여자, 선과 악의 분별이 생겨나게 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에서 쫓겨나고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인간의 삶이 뱀의 유혹에서 시작되었듯, 살아간다는 것은 뱀을 닮았다.
뱀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허물을 벗는다. 달이 그늘을 벗고 다시 차듯, 삶은 뱀처럼 끝없이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써 살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달처럼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지만, 뱀처럼 잔혹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말처럼 "인생이라는 게 어차피 말썽"인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속성상, 인생은 죽이고 먹음을 통해야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없이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것, 인생이 원래는 이런 것이 아니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
인도에는 인간의 삶에 대한 두 개의 신화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데시(desi)로 이는 사회 생활을 하고 삶의 방법을 배우고 규칙을 따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마르가(Marga)이다. 이것은 길이란 의미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을 뜻한다.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인 우로보로스의 둥근 이미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삼키고 다시 태어나는 뱀처럼, 자신을 죽이고 다시 차오르는 달처럼 모든 영혼의 길은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
길은 어디로 가닿는 것일까? 해질 무렵이면 괜시리 마음이 들뜬다. 심장이 콩닥거리며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바퀴 작은 자전거를 달려 땅의 끝으로 향한다. 그 곳에 바람이 분다. 물결이 인다. 풀이 눕고 달이 뜬다. 어느덧 어스름이 깔리고, 강 건너 불빛들이 하나 둘, 눈을 뜨면 이유없이 서러워진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외로움인지 두려움인지, 동정인지 연민인지, 혹은 모든 것이 한데 뒤섞인 그 무엇인지.
지구는 달의 백일몽. 잠시 달의 한켠에 앉아 지구를 바라보며 꿈을 꾼다, 떠나간 길을 되돌아 오다. 그제서야 알게 된다. 모든 길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임을. 어둠 속이 온통 환하다.
------------------------------------------------
* 조셉 캠벨, '신화의 힘'에서 재인용
** 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