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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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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6일 22시 44분 등록

, 5년 전에 신장을 팔았었지. 기억나?”

 

“... ...!”

 

아주 맛있었어.”

 

천둥이 쳤다. 순간 남자의 몸에서 기다란 검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커피잔의 커피가 핏빛으로 변하고 그의 눈동자는 세로로 좁아 졌다. 남자는 파충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기화했다. 목이 탔지만 커피를 홀짝이며 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저 남자의 손에 들린 식칼이 내 흉곽 왼쪽에 직각으로 꽂힐 것이 뻔했다. 아니면 이미 도안이 나온 대로 목을 따라 휙 나는 침을 삼켰다.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네.”

 

흐흠...”

 

집을 잘못 찾은 것 같으니 그만 나가...”

 

나는 거의 뒷걸음으로 현관문까지 가서 문을 열었다. 이로써 방문객에게 의도는 전달됐을 테지만, 에이 폼 잡지 말고 그냥 내가 나가 버릴까?

 

감회가 새롭더군.”

 

남자는 천천히 쇼파 뒤로 등을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왼손 검지로 칼등을 우아하게 쓰다듬었다. “네가 지금 입은 그 옷 말야. 똑같은 거더군. 5년 전에 신장을 하베스팅(havesting)하러 왔을 때와 같은 옷이야. 녹색, 니트.”

 

“... ...”

 

마치 날 환영하는 따뜻한 필연의 미소 같았지.”

 

“...무슨 헛소리야.”

 

라고 말하고 나는 불길해졌다. 남자는 눈동자만을 굴려 영겁의 시간 같은 찰나를 틈타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싱긋 나는 오금이 저렸다.

 

궁금했지. 내게 신장을 준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는지...?”

 

“... ...”

 

샤넬백을 샀다지? 여자가 좋아하던가?”

 

나는 현관문을 닫았다. 피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그리고 살려 보내서도 안 된다. 놈이 내 치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여자를 알고 있다.

 

그랬었다. 그것은 어린 날의 순수를 모독 당한 사건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힙합 바지를 끌고 다니던 S는 대학에 합격한 후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의과대학에, 나와 A는 학문을 계속 하기 위해 문리대에 입학하였다. 그녀는 모 기업 중간 임원인 아버지가 프랑스 출장에서 샤넬백을 사오지 않았다고 속상해 했다. 잊지도 않는다. 캐비어 2.55. 타르색의 느끼한 가죽을 오디처럼 울룩불룩 박음질을 하고 쇠사슬을 칠겅칠겅 늘어뜨린 그 징그러운 것이 갖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어리석다면 나도 어리석어 져야지. 그 순간의 결단은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었다. 대신 죽을 수 있는 여자라면 죽지 않을 만큼의 대가는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 해 겨울 내내, 그래 이 맘 때 즈음이었겠지. 나는 난방도 안 되는 골방에 누워 있었다. 몸 가운데 블랙홀이 있어 서서히 몸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으스러지는 아픔을 잊기 위해 초침을 바라보고 저기 창가에서 뜨고 지는 달에 정신을 던졌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약간의 회의 속에 그녀에게 선물을 내보였을 때, 나는 홀을 벗어난 골프공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전혀 뜻밖이었는데 망할... – 그녀는 매우 뜨악한 표정으로 선물을 받아들었다. 왜 그랬을까?

 

받을 수 없어.’

 

받아. 너 주려고 산 거야.’

 

‘... ...’

 

이거 진짜야.’

 

그 녀는 겨우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있는 동창 모임에서 한 번도 그 백을 메고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드문 드문 이어지던 연락도 끊겼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너무 값진 선물로 인해 오히려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선물이 마치 너와 내가 몸을 나눈 대가라고 여긴 것은 아닌지? 나는 의심하였고 며칠 후 확신하였다. 오해를 풀기 위해 연락을 시도하였으나 그녀는 바쁘다고 했다. 바쁘다고... 그리고 며칠 뒤, 그녀가 내가 사준 백을 메고 대학가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서 한 남자의 팔짱을 끼고 발랄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남자 앞에 섰다.

 

누구냐 넌?”

 

나는 요리사야.”

 

남자가 말했다.

 

최고의 요리사지.”

 

닥치고, 진짜 네가 누군지 말해.”

 

“... ...”

 

남자는 눈을 들어 나를 긴밀히 바라보았다.

 

최고의 요리사라고, 말했잖아. 최고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나 보지?”

 

그래서, 최고의 요리를 위해서는 사람 고기도 요리한다, 이런 뜻인가?”

 

, 최고의 미식가라고 해두지.”

 

나는 도로 원래 자리에 앉았다. 바라본 남자의 눈동자는 다시 사람의 것으로 돌아왔다. 나는 남자에게 목이라도 쳐달라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걸 먹었다고?”

 

으흠.”

 

그걸 회쳐 먹었다고? 내 신장이 무슨 핫도그처럼 보였단 말이냐?”

 

핫독?”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 요리를 핫독에 비교하다니, 충격적이군.”

 

충격? 충격이라고?

 

원하는 게 뭐야?”

 

“...진정해.”

 

남자는 아이를 달래듯이 칼등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물론 내 대답은 매우 짧을 수도 있지만 너에겐 긴 설명이 필요할거야.”

 

“... ...”

 

긴 설명을 하려 했으나 귀찮으니 짧게 말하자면, 네 다른 쪽 신장을 원해.”

 

이 봐. 요리사라서 그런지 다른 공부는 좀 덜 한 모양인데, 그 식재료란 게 말이야 맛이 있기 전에 말이지. [기능]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으흠?”

 

신장을 두 개 모두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

 

투석을 하면 몇 년 더 연장해서 살 순 있어.”

 

뭐라고?”

 

네가 굳이 더 살기를 원한다면 말이야.”

 

남자는 검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였다. 아니다. 저 행위는, 내 목의 난 상처를 인지하라는 뜻이었다. 넌 스스로 죽으려던 놈이잖아. 안 그래?

 

거절하겠어.”

 

나는 잘라 말했다. “혹시나 해서 와본거라면 말이야. 내 대답은 노 . 매우 상식적인 대답이지.”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난 혹시나 해서 와본게 아닌데... 내가 부탁이라도 할 줄 알았어?”

 

그래서... 그래서 지금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죽일 뜻은 없었어.”

 

남자는 과거형으로 말했다. 언어시제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의지. 기분이 나빴다. 남자는 말을 고르고 있었다. 보다 간곡한 표현을... “죽일 뜻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죽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어차피 사람은 모두 죽어.”

 

그냥 다른 사람의 신장을 사면 되잖아. 굳이 누굴 죽이지 않더라도.”

 

말했잖아. 네 신장이, ////.”

 

그것 참 고맙네.”

 

그래. 고마운 점이 있었다. 죽음의 방식에 관하여 자살보다 더 치욕적인 죽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굳이 알려줘서. 지적으로 세상에 공헌하는 데 실패한 둔재, 결국 식재료로 공헌을 이루며 생을 마감. 그의 뇌는 쓸만한 것이 못되었지만 신장의 맛은 세계 최고였다고.

 

그럼 죽이든가.”

 

“... ...”

 

뭐해? 그냥 차라리 들어설 때부터 죽이지 그랬어? 뭐 이리 서두가 길어?”

 

나의 말에 맞은 편의 남자는 단두대에 스스로 고개를 들이미는 돼지를 보듯이 멀뚱거렸다. 그리곤 뭔가 깨달은 듯 선뜻 칼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미안, 요리할 때 칼을 잡는 게 습관이 되어서. 오해를 했다면 미안해.”

 

... 미친 놈, 그러게 사람 죽이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냐?”

 

그래... 뒷처리가 조금 힘들긴 하지.”

 

“... ...!”

 

너도 그럼 죽여 본 적이 있는 거야?”

 

야 이 미친 놈아! 횡설수설하지 말고 뭐 어쩌겠다는 거야? 너 정신병원 어디야? 어디서 탈출한 자식이야?”

 

그럼 그렇지. 이 놈 그냥 미친 놈이 확실하다. 살인자가 아니라 정신병자였어. 나는 허탈감에 휩싸여 핸드폰을 찾으러 일어섰다. 이 자식, 그냥 신고해야겠어. 어디로? 112? 119? 병자는 119? 그 때, 무엇인가가 목을 강하게 뒤틀었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지르려고 했으나 목구멍이 뒤틀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칼로 죽이겠다는 말은 안 했어.”

 

내 목을 틀어진 남자가 나직이 말했다. 키가 컸지만 그래도 얇은 체구인 줄 알았는데 도저히 악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는 강철로 만든 프레임이었다.

 

어때? 짜릿한 거 좋아해?”

 

네 척추는 부러질 때 무슨 소리를 내나 궁금하지 않아? 남자의 목소리는 놀랄 정도로 차분했다.내가 말했지. 널 보았을 때, 운명의 미소를 보았다고. 너 자살하려던 중이던데... 굳이 내가 칼을 더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목만 꺾으면 될 것을... 사실 교수형 때 죽는 이유는 저산소증이 아니라 척추골절이야... 몰랐다면 이제, 내가 제대로 해주겠다는 거야. – 라고 지껄지껄.

 

이제 보니

 

이 자식은 살인자도 아니고 정신병자도 아니다.

이 자식은 악마다.

 

나는 갈등했다.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왜?

 

내가 죽지 말아야 하는 이유 따윈 없었다. 남자는 내 목을 꺾은 후 신장을 빼내고 다시 보기 좋게 전등에 내 목을 매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목적했던 대로 자살자가 될 것이고. 죽은 후의 세계는 평등하겠지. 어둡고 어둡고 어둡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어둠이라면 어두울 테지. 전등에 매달려 눈 먼 어둠에 도달하다. 기막힌 아이러니로군 그래. 남자의 팔힘은 자비롭지 않았다. 나는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내가 포기하면 나는 바로 죽을 수 있었다. 딱 그만큼만 남자는 힘을 주고 있었다. 어떻게 할래. 선택해. 그렇게 계속 버틸거야? 버틸거냐고? 이 세상 살아봤자 별 거 없어. 나는 눈을 감았다. 그래 망할 자식아, 알았어. 알았으니. 그만 괴롭히고 그냥 죽여버려. 죽이라고. 그냥...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

차라리 나를 데려가소서. 하나님.

이 악마같은 개자식의 손아귀에서 나를 구하소서!

 

그 때, 남자는 튕기듯이 나를 놓았고 나는 바닥으로 무너졌다. 반동으로 목이 반대로 꺽였다. 경련이 일었다. 온몸이 흐느끼듯 떨렸다. 제기랄... 쪽팔리다. 남자의 반짝이는 검은 구두가 보였다. 내 쪽을 향해 있는 구두 콧날. 아아아... 모르겠다.

 

아직도 상황 판단을 못한 것 같아서 운동 좀 했네.”

 

“...헉헉...”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 이라 함은. 이 놈이 의지를 꺾지 않는 이상 내 신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식이라면 아아아 I SEE 8 이런 식이라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가지고 말 것이다. 나는 흡뜬 눈으로 엎드린 채 놈을 노려보았다. 이제 보니 일제 앞잡이 같이 생겼네. 분명 조상 중에 그런 헤리티지가 있고도 남을 놈이다. 이 안티소셜 사이코패스 자식! 남자는 희한하게도 조금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요는, 죽일 수 있는 스케일은 나오는데, 얼마 전에 종교에 입문을 해서 말야.”

 

허어?”

 

이 뭔 또라이 같은 소리야?

 

남자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리곤 다시 습관이라던, [칼 들고 노닥거리기]를 시작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난 좀 신실한 편이거든. 그래서 살인은 안되겠고... 신장은 얻어야겠고...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해.”

 

서두가 긴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남자는 사람 좋게 웃었다.

 

제안이라고?”

 

성대가 눌려서 쉰 목소리가 났다.

 

물론 선택권이 있는 제안은 아니지. 하지만 듣고 나면, 넌 내가 얼마나 자비로운 요리사인지 알게 될 거야. 오히려 날 만난 걸 고마워 하게 될 거라고.”

 

퍽이나.

 

나는 요리사의 종교 입문 이야기에 정줄의 맥아리를 놓고 그냥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래 C8, 지껄여 봐. 제안이 뭔데? 별 거 아니면 그냥 할복한다. 신장 못쓰게.”

 

남자는 기가 차다는 듯 헛기침 하듯 한 번 웃었다.

 

뭐 계약이란 건 서로가 원하는 걸 얻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말은 청산유수야 아주.”

 

네가 신장을 팔면서까지 이루고 싶었던 걸, 이루게 해줄게.”

 

“... ...”

 

그 여자, 말이야.”

 

나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인생이란 것이 종잡을 수 없는 거라고 늘 말하곤 했었지.

 

어때, 네 생각은? S는 웃곤 했었다. 나를 향해...

 

A C 8

 

오늘은 정말로 희한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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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19:28:31 *.153.23.18

저 영어를 입으로 읽으니 실감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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