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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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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7일 23시 53분 등록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삶이란 단 하나의 틀, 하나의 장소, 하나의 가족, 하나의 정서적 안식처, 하나의 직장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심지어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여러 번의 사랑, 여러 개의 직업으로 구성됨을 인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은밀한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 자크 아탈리 <살아남기 위하여> (p 166) -

 

병만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서바이벌 버라이어티 쇼 <정글의 법칙>에서 병만이 보여준 생존방식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베어 그릴스Bear Gryls도 아신다고요? 디스커버리 채널 <Man vs. Wild>에 나오는 오지생존 전문가를 아신다는 말씀이시군요. 김병만과 베어 그릴스는 오지에서 탈출하는 동안 전갈이나 벌레를 그대로 씹어 먹기도 하고 뱀의 가죽을 벗겨내 모닥불에 구워 먹기도 합니다. 김병만과 베어 그릴스를 관통하는 단어는 생존입니다. 살기 어려운 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이들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놀라운 적응능력에 감탄합니다.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라고 기억해온 모습을 고수하면 변화한 환경에서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자연은 언제든 인간을 잡아 먹기 위해 덤벼 드는 괴물이 됩니다. 괴물의 공격을 피해가며 자기를 보존해 가는 길을 찾아 내야 합니다. 지혜를 짜 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해 변화하는 모습의 원형을 찾아 봅니다. 고대 희랍의 오디세우스야 말로 살아남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최고의 생존전문가 입니다. 이마에 눈이 하나 밖에 없는 거인 괴물 키클롭스를 속이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기억하실 겁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양과 젖과 치즈가 있는 동굴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 동굴의 주인은 키클롭스인 폴리페모스 입니다. 폴리페모스는 동굴입구를 거대한 돌로 막아버리고는 선원 몇 사람을 잡아 먹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식인 괴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꾀를 냅니다. 폴리페모스에게 포도주를 권합니다. 벌컥벌컥 포도주를 마시며 취해가는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는 내 이름은 우데이스Udeis’라고 대답합니다. 우데이스는 아무도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포도주에 취해 폴리페모스가 잠이 들자 오디세우스 일행은 올리브나무 말뚝으로 폴리페모스의 하나밖에 없는 눈을 찌릅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자 이웃에 살던 키클롭스들이 도와주러 달려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고 묻지만 폴리페모스가 알고 있는 범인의 이름은 아무도 아니다뿐입니다. 그러니 다들 하릴 없이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지혜는 자신을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마치 자신을 보호하는 가면처럼 아무도 아닌 자를 뒤집어 쓰면서 괴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뒤집어쓴 가면은 가면일 뿐입니다.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목숨을 위협하는 괴물 앞에서 자신을 감추는 또다른 정체성을 부여할 뿐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이름을 통해 괴물을 속일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기 때문입니다. 무시무시한 키클롭스의 낯선 세상에서 자기 보존을 위해 자신을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을 뿐입니다.

 

프랑스 최고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하여지켜야 할 7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 중에서 6번째 원칙이 유비쿼터스의 원칙입니다. 요컨대 동시에 도처에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도처에 존재하기란 본질적으로 두 세계의 틈새에 사는 사람, 본래의 진실이란 없으며, 남들이 강요하려는 진실 또한 없다고 믿는 사람, 두 개의 확신이 충돌하는 틈새에서 자기만의 진실을 창조하고 자기만의 리듬대로 세계 속에서 전진하는 사람이 지니는 덕목이다." - 자크 아탈리 살아남기 위하여’ (p 167)

 

자크 아탈리의 유비쿼터스 원칙을 보고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거인 괴물에게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오디세우스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외침 속에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결국 너라는 괴물의 손아귀를 빠져 나가 자유와 생존을 움켜 쥘 수 있다는 오디세우스의 패기가 번뜩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참된 본질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와 아들을 기억하는 마음입니다. 김병만과 베어그릴스도 오지를 탐험하면서도 사실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의 본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적응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에도 자신을 보존하려는 의지는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도 변화 시킬 수 있는 유비쿼터스의 능력을 선사해 줍니다.

 

살아남기 위하여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살아 남아야 할 이유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강렬하고 분명할 수록 우리는 놀라운 생존능력을 발휘합니다. 평소에는 망각했던 자기 존재 이유를 기억해 내십시오. 남이 써 놓은 모범답안지 같은 자기 존재 이유는 개나 줘 버리십시오. 자크 아탈리의 표현처럼 자기만의 진실을 창조하고 자기만의 리듬대로 세계 속에서 전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생존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자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자신을 가장 낮출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나는 내 자신입니다라는 자기 긍지 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은 곧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3-11-17

坡州 雲井에서 

IP *.65.1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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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8 02:59:33 *.58.97.140

이번 칼럼 짱이다~!

 

댓글을 길게 쓰고 싶지만,  일단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서....

침대로... 엄청 피곤.....

잔다....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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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8 14:25:58 *.62.188.73
누님... 우리도 빡센 과정에서 살아남아요! 얼른 쾌차하시길 빕니다.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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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8 11:39:17 *.46.178.46

좋아요...

느낌 아니까...

그런데, 형님이 나레이션 하는 모습이 머릿 속으로 오버랩되면서 왠지 웃음이 ㅋ

 

아탈리와 오비디우스의 결합?  또는 아탈리와 구본형의 결합?

지금까지 어렵사리 공부한 내용들이 조금씩 결실로 나타나는걸까요?

 

이번 글을 보면 제 글은 뭔가 자꾸 걸리는 듯 한데, 형님 글은 물 흐르듯 부드러워 좋아요.

부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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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8 14:29:57 *.62.188.73
팬클럽 회원으로서 이런 댓글 받아보니 좋긴 허다.
대수야, 몸은 좀 어때? 우리 잘 살아남아서 (ㅠ ㅠ) ... 훗날 지금 이 빡센 시기를 웃으며 기억해보자. (너나 은경누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주말동안 설설 겨 다녔단다.. 휴..ㅠ 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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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09:37:05 *.39.145.61

이번 글 참 편안하고 좋아요. 

페이스북에서 사진이랑 함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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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21:21:46 *.62.162.2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홈피에는 사진 어떻게 올리는지 몰라서 못올렸습니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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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16:34:42 *.97.72.106

형선 아우와 잘 맞는 느낌이네. 살아남기 위하여 평소에 골몰하는 탓이겠지?

글을 쓰다보면 잘써지고 술술 풀려나갈 때가 있곤 하지. 평소의 신념이나 관심과 잘 맞아떨어질 때가 그런 것 같지? 아마

(글 쓴지가 오래되나서 왠지 쑥쓰럽다는... .)

위에서 다들 이번 글의 느낌이 좋다는 데에 더해 나도 한표 추가하며, 

더불어 아침마다 받아 읽는 한통의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구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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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21:24:10 *.62.162.22
생존이란 주제와 자크 아탈리 작가 모두 저와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주 마음편지 보내시는 선배님들 ..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글 쓴다는 것 ...너무 어려워요.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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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17:55:31 *.131.5.196

더 넓어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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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2 01:21:46 *.65.152.36
그렇잖아도 이마가 자꾸 올라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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