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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8일 02시 46분 등록

구스피릿 24번째 북리뷰

호모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자크아탈리, 웅진)

 

1. 저자소개

1943년 알제리의 알제에서 태어난 자크 아탈리는 알제리 독립 운동이 한창이던 열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왔다. 파리 공과대학, 파리 고등정치학교, 국립 행정학교 등 프랑스 명문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위의 대학이라 불리는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을 네 군데나 거친 그를 두고, 시험 성적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단연 자크 아탈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농담이 프랑스인들 사이에 화자 되기도 했다.

정보기술력이 선도할 미래 사회 신인류의 패러다임을 상징하는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e’ 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장본인이다. 자크 아탈리는 인문학, 경제학, 정치학, 문학, 철학, 공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과 깊고 방대한 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해 왔다. 특히 그는 국제 사회를 전망하는 담론들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이전부터 세계의 지정학적 중심이 태평양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으며, 기상 이변, 금융 거품 현상, 공산주의의 약화, 테러리즘의 위협, 노마디즘의 부상, 휴대폰과 인터넷을 비롯한 유목민적 상품의 만능 시대 등을 예고했다.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1981~1989)을 거쳐,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을 설립하여 총재직(1990~1993)을 맡았으며, 1998년부터는 마이크로 파이낸스를 활성화시켜 빈민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조직플래닛 파이낸스(PlaNet Finance)'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40여 권의 저서를 펴냈으며, 『더 나은 미래』, 『위기 그리고 그 이후』,『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 21세기 사전』, 『인간적인 길』, 『합리적인 미치광이』, 『호모 노마드 : 유목하는 인간』 등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2.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1장 노마드, 여행자의 삶

개들은 끊임없이 늑대들을 찾아 대초원을 누빈다. 늑대를 개로 만들기 위해서.” – 앙토냉 아르토<통과>(13)

멀리 보이는 대상 행렬이 사막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요동치듯 흔들리는 실루엣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2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낙타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낙타 기수들, 앞쪽에는 마호메트의 정통 직계로 인정되는 사이드가 마의를 갖춘 낙타 위에 앉아 있다. 두건으로 얼굴을 가진 전사들이 그 뒤를 따른다. 언제 약탈자들이 불쑥 뛰쳐나올지 모르는 모래 언덕 곳곳을 지켜보면서, 가장 잘생긴 낙타들을 탄 여인들은 다음 번 오아시스를 꿈꾸고 있거나, 주위를 빙빙 돌며 뛰어다니는 남자들과 슬쩍 시선을 마주치기도 한다. 뒤쪽에선 상인들이 고리짝에 꽉 들어차 있는 비단제품과 무기를 되팔아서 얻게 될 이문을 따져보고 있다. 그들은 여로에서 만난 물소 사육사들, 노새를 타고 가며 염소와 양을 모는 목축민들을 무시하듯 위아래로 훑어보기 일쑤다. / 태양이 저 멀리 모래 언덕 뒤로 사라지면 대상 행렬은 우두머리의 신호에 따라 가던 길을 멈춘다. 남자들은 무거운 천막을 치고, 여자들은 불을 지핀다. 밤이 깊어지면 컴컴한 실루엣의 낙타 기수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그들은 야영지와는 좀 떨어진 곳에 지펴놓은 불 앞에서 사이드의 신호를 기다린다. 불 가까이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뜨거운 커피와 따뜻한 밀가루 음식을 나눠 먹자고 청하기를 말이다.(15~16)

즉 여행이 그들 존재의 본질이다. (16)

어떤 이들은 노마디즘이 마지막 여행자들을 구속하는 현대성의 타격 아래 사라져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17)

그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노마디즘이 모든 형태의 생활에 밀려들어와서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세계화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어, 그게 고통이 됐든 즐거움이 됐든 고독과 자유 속에서 끊임없이 여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17)

12세기 서방세계에 아베로에스로 알려져 있던 유럽 최초의 위대한 철학자이다 스페인의 모슬렌 이븐 루시드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지식인 노마드였다.917)

유목 민족들, 양치기들, 상인들, 기수들, 예술가들, 발견자들, 이주자들과 같이 지금까지 무시되었거나 잊혀지고 있던 이 주역들에게 역사의 맨 윗자리를 되찾아주는 것이 맞는 일일 것이다. (18)

이들은 불에서 예술에 이르기까지, 글자에서 야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명의 토대를 발명한 사람들이다.(18)

또 우리 시대의 주요한 재앙들, 쟁점들, 희망들이 드러나게 된다. 불안정성에서 폭력까지, 재정적 일탈에서부터 지정학적 도전들까지, 영양실조에서 비만까지, 기후 이상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의 소생까지, 마약의 재확산에서 예술과 기술에 대한 거대한 잠재력에 이르기까지. (18)

미래의 큰 분쟁들은 문명 간의 갈들이 아니라, 마지막 정착민 제국인 미국과 세 개의 노마드제국들 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19)

세 개의 노마드제국들은 시장, 종교(이슬람)  그리고 민주주의를 말한다.

< 몇 페이지로 말하기 p.(19~37)>

인간이라는 종을 탄생시킨, 생물체들의 그 엄청난 뒤 얽힘은 이동성, 미끄러짐, 이주, 도약, 여행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의 역사가 노마드적인 것이 되기 훨씬 전에, 아메바에서 꽃으로 생선에서 새로, 말에서 원숭이로 진화한 생명의 역사 자체가 이미 노마드적이었다.(19)

인간은 여행을 통해 태어난다. ….. 인간의 고유한 특질은 우선 두 발로 달린다는 점이다.(19)

3백만년 뒤(2백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손인 호모 하빌리스호모 루돌펜시스는 걸을 수 있었기에 존속할 수 있었다.(20)

1백만년 뒤(1백만년 전)에 최초의 인간인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생겨났는데, 이들은 여행에 더욱더 적응을 잘했다.(20)

호로 에르가스테르의 후손이면서 다른 종인 호모 에렉투스는 살던 곳을 떠났다.(20)

적어도 1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생겨난 듯하며, 이어서 선조들보다 더 잘 걷는 하이텔베르크인이 나타났다.그들은 더 똑바로 섰고, 뇌도 더 커졌다. …. 기원전 70만 년경에 필수불가결한 불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불의 발견만큼 극적이지는 않으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신발이 최초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식물을 익혀 먹게 되어 뇌에 영양분을 더 잘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20)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그들 중 가장 진화한 종이 호모 네안데르탈리스이다.(20)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살아남은 종들은 유랑 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 종들뿐이다.(21)

호모 사피엔스의 또 다른 가지가 16만 년 전쯤에 아프리카, 중동, 유럽에 차례로 나타났는데, 바로 최초의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최초로 초월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였고, 부족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불, 도구, 무기, 기억들처럼 갖고 다닐 수 있는 것을 빼고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세상을 보는 방법도 모두 유랑의 필요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21)

이때(4 5천 년 전쯤)부터 인간은 공간을 걸어간  날들의 수로써 측량했다. 거리란 얼마간의 시간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아끼지도 않았으며, 아무 것도 비축해두지 않았다…… 처벌할 때는 죽이기보다는 무리에서 쫓아냈던 것 같다. 최초의 예술은 음악이었다. (21)

3 5천 년 전쯤에…… 언어들이 생겨나고 분화되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여행에 의해 진화되었다.922)

노마드는 폭력의 폐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폭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물에다 폭력을 집중시켰다.(22)

3만 년 전쯤에 인간은 여행을 통해 물물교환을 알게 되었고, 물품들 간의 등가관계를 설정할 줄 알게 되었다. 시장의 배아가 형성된 것이다.(23)

인간보다 더 빨리 달리는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막강한 도구들을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최초의 지렛대라 할 수 있는 투창기와 최초의 모터라 할 수 있는 활이다.(23)

1만년 전에는 중동지방에 기후가 특별히 좋아서 수렵인들은 씨앗을 뿌리고 땅에 물을 주어 수확물을 거두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농경민이 되었고, 곧 이어 형성된 마을의 주민이 되었다.(23)

9천 년 전에 인간은 포획한 동물들을 번식시키기 위해 계속 교배를 시키면서 식용과 운송용으로 더 적합한 새로운 종자를 얻고자 애썼다. 인간은 이제 목축민이 되었다.(23)

정주성은 이렇듯 수렵인들에게서 비롯된 생각이었고, 농경은 정착민의 발명품이었으며, 목축은 농경민의 일이었다.(24)

같은 시기에  아시아의 부족들은 수레바퀴, , 순록, 낙타를 다룰 줄 알게 되어 교통수단에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승마가 시작된 것은 2천 년 뒤(7천 년 전)의 일이다.

4천 년 전에 아메리카 대륙과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는 세계와 단절되어 여행이 중지되었고 정주화로 인해 노마디즘에 제동이 걸렸다.(24)

같은 때( 4천 년 전) 중앙아시아에서는 몽골 노마드, 인종으로서가 아니라 문화로 구분될 수 있는 인도유럽 노마드, 투르크 노마드들이 말을 가축으로 길들였으며 평원 정복에 뛰어들었다.투르크인들과 몽골인들은 중국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인도유럽인들과 투르크인들은 인도와 메소포타미아에 관심을 가졌다. 최초의 도시국가들이 생겨났다. 중국의 황허 유역, 인도의 엘로라,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르, 니니베, 바빌론 등이 그런 도시국가들이다.(24

기원전 1500년에는 이 박식한 여행자들이 교역을 더 활발히 하기 위해 알파벳을 만들어냈다. 알파벳은 그러니까 노마드적인 필요에서 생겨난 것이다.(25)

몽고족, 인도유럽인들(스키타이인, 사르마크인, 그리스인), 투르크인(흉노족, 카자르족)은 한때 정착민이 되었으며, 중국과 인도에서 아주 세련된 문명을 발달시켰다.(25)

노마드들은 그때(기원전 15세기경) 중요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 사냥, 언어, 농경, 목축, 신발, , 연장, 제식, 예술, 그림, 조각,음악, 계산, 바퀴, 글씨, , 시장, 세라믹, 야금술, 승마, 배의 키, 항해, , 민주주의가 그것들이다. 미래의 정착민들이 발명하도록 남겨놓은 것이라고는 국가, 세금, 감옥, 저축, , 대포 화학등이었는데, 맨 먼저 그런 발명이 이루어진 곳은 로마였다.(25)

기독교는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노마드적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이는 사는 동안 폭력도 없고 재산도 없이 약속의 새 땅인 영원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을 찬미하는 메시지였다.(26)

서기 5세기경 투쟁으로 기초를 세운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또한 투르크 기마대들의 공격으로 흔들렸다. 무수한 인도유럽어족들(고트족, 프랑크족, 반달족, 슬라브족, 알라만족, 롬바르드족, 베네티족, 튜튼족, 바이킹족)과 훈족, 몽골족이 그 이전의 노마들과 뒤섞여서 오늘날의 민족국가를 형성하였다. 이 민족들과 그들이 이루어낸 문명들이 없었더라면 언어, 법제, 문화, 신앙, 국경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26)

이런 엄청난 혼합을 거쳐 강력한 두 나라가 생겨났다. 바로 프랑스와 러시아다. (26)

11세기까지 계속된 바이킹족의 이동으로 덴마크인, 스웨덴인, 노르만족, 아이슬란드인, 브리타니아  , 러시아인, 시칠리아인은 공통의 기원을 갖게 된다.(27)

특히 당시(12세기경) 프랑스는 러시아와 더불어 수도가 항구가 아니면서도 해상권을 장악한 유일한 나라였다. 하지만 여전히 농업이 우선이었다. 프랑스는 이동하는 사람들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그들의 입국을 금지하고 가두거나 세금을 물리거나 형벌을 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프랑스는 세계 속에서 부의 중심이 될 기회를 상실하였다.(27)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들은 모두 장벽을 치고 사는 정착민들과 노마드적 충동에 빠져 있던 이웃들 사이의 충돌의 결과였다.(27)

13세기와 14세기에는 몽골의 칭기즈 칸, 투르크의 타메를란이 중국의 만리장성에서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들을 세우고 있었다.(28)

17세기부터 최초의 세계화, 최초의 상업적 노마디즘이 시작되었다.(28)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시아로부터 흘러들어왔던 수천만의 노마드 후손들이 17세기부터 유럽에서 온 겨우 수천 명에 의해 학살당하였다.(28)

그로 인해서 18세기 초에 세계화에 대한 최초의 거부 현상이 생겨났다. 이런 거부는 상업적 노마디즘이 정착민들의 세력보다 우세해지려 할 때마다 다시 나타난다.(28)

18세기 말, 원주민들과의 만남들은 노마드가 농민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으며 가난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럽인들에게 보여준 셈이 된다.(29)

전체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온 노마드들이 1500년 전 아시아에서 온 야만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을 학살했다.(29)

19세기 미국에서는 두 가지 새로운 형태의 노마드가 생겨났다. 하나는 카우보이이고, 다른 하나는 호보(hobo, 뜨내기 노동자)인데, 둘 다 이주 노동자들을 가리킨다.(29)

가난한 사람들의 이동을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해 신분증이 생겨났다.(29)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영향으로 마르크스는  노마디즘을 극복해야 할 원시적 단계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라첼은 그 반대로 보존해야 할 생명력일고 주장하게 되었다.(30)

첫 번째 세계화처럼 두 번째 세계화도  중단되었다. 1880년경에 그 세계화가 빚어낸  빈곤과 거기에서 발생한 전체주의 때문이었다.(30)

2차 세계대전 후 상업적 노마디즘은 새로운 도약하였고 세 번째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가려 했다. 이번에도 사람들의 순환보다 물건들의 순환에, 그리고 남쪽의 가난한 사람들의 순환보다 북쪽의 부유한 사람들의 순환에 더 주력했다.(30)

오늘날에는 5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일 또는 정치와 관련된 노마드로 간주될 수 있다. 이민자, 망명객, 고국을 떠난 사람들, 노숙자, 그리고 온갖 종류의 이주 노동자들이 그들이다.(31)

지구에 사는 60억 인구 중에서 3억은 아직도 원시부족에 속한다. 그리고 수천만 명이 아직도 노마드이다. 그들 중 5분의 4이상은 빈곤의 문턱 안쪽에 있다.(31)

상업적 노마디즘이 확산되면서 번복될 수 있는 것, 새로운 것, 시급한 것, 고독한 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고, 무한히 다양한 형태의 신체적 정신적 여행이 가능하게 됐다.(32)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임시적인 것이 되었다. 사람, 사물, 제도, 기업, 개념, 가치, 연대감, 사랑, 가족, , 소비 양식, 식사시간, 수면시간, 이데올로기, 전쟁 형태, 명성, 여가나 여흥 등이 그런 것들이다. 사라질 권리, 이름, 신분, 모습, 선택한 삶 등을 바꿀 권리가 자리 잡았다.(32)

9천만 명은 자기가 살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가 있고, 매년 약 1천만 명이 자기 나라를 떠나고 있다. 앞으로 50년 후면 10억 명 이상이 조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32)

세계화는 정주성이 아주 높은 행정 서비스들마저 와해시키고야 만다. 지리적 연대감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 실제로 권력은 법의 통제 밖에 있게 된다. 엘리트들은 세금 부담을 줄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너무 소수여서 높은 세금을 물리는 나라를 떠나고야 만다.(33)

얼마 전 프랑스에서도 프랑스가 세금을 인상하자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지난 1월에는 사회당정부의 부자증세(슈퍼증세안, 소득에 따라 최대 75% 중과)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드 드빠르디유가 러시아로 귀화하였고, 명품기업이 루이비통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의 벨기에 국적 신청, 푸조사주의 가족이 스위스 거주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소비, 노동, 여흥, 예술은 잠재적으로 노마드화한다. (33)

미래의 스포츠는 골프, 승마, 범선 경기, 댄스 등이다. 북크로싱도 새로운 여흥 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관음증은 근접형 노마디즘이다. 그렇게 해서 상업적 세계화는 원시부족들의 노마디즘을 그것의 시뮬라크르의 교역으로 바꾸면서 자신의 행로를 마치게 된다.(33)

앤디 워홀(Andy Warhol)의 그림을 떠올려보자. 그저 당신 생각나는 대로 한 장 고르면 된다. 마를린 먼로(Marilyn Monroe)의 얼굴들이 색조의 변주 속에서 나열되고 있다. 다른 그림에선 코카콜라 병들이 기나긴 행진을 하고 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 앞에서 우리는 후, 입김으로 불어 날린 손오공의 머리카락처럼 많은 분신(分身)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저 많은 여배우 가운데 누가 진짜인가? 저 많은 콜라 병들 가운데 어느 것이 원본인가? 원본이 있다기 보다는 오직 모사품들의 행렬이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원본과 모사물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의 가짜, 원본과 복제가 구별되지 않는 영역 속에서 바로 시뮬라크르가 서식한다.

프랑스어로 시늉, 흉내, 모의(模擬) 등의 뜻을 지니는 시뮬라크르(simulacre), 가상, 거짓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simulacrum)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라틴어 단어는 영어 안에도 그대로 흡수되어서 모조품, 가짜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요컨대 시뮬라크르는 원본의 성격을 부여받지 못한 복제물을 뜻하는 개념이다.(네이버 캐스트 발췌)

하이퍼노마드들(예술가, 노마드적 자산 보유자, 특허권 또는 노하우 보유자)은 이 세 번째 세계화의 주역들이다. 정착에 대해 아무런 애착도 없는 그들은 서커스단이나 연극단의 스타들이다.(34)

수많은 빈곤층 노마드들(인프라노마드)이 인류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사거리와 갓길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중앙아시아, 지중해, 카리브 해 등과 같은 충돌 지역은 주요한 전략적 쟁점이 될 것이다.(34)

2001 9 11일과 더불어 노마드 반란자들과 현존 제국의 대립하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노마드적 전쟁의 영구불면의 원칙(도망가도록 만들기 위해 겁을 준다)과 가장 발달된 기술을 혼합하게 될 것이다. (35)

세계화가 우세해진다면, 시장 자체가 새로운 종류의 제국이 될 것이다.(35)

국가들은 지나가는 대상 행렬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하는 오아시스로 전락할 것이다. 국가 안에는 몸이 너무 약하거나 혹은 너무 젊거나 늙었거나 너무 가난하여 노마드가 될 수 없는 사람들만 살고 있을 것이다.(35)

초극대제국은 소비자들이나 근로자들을 위한 초감시체제를 조직하게 될 것이다.(35)

이민은 줄어들 것이다. 일자리가 남쪽 국가로 옮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수명이 연장되고 에너지는 귀해지면서 인구 밀도가 높아져서 노마디즘에 장애가 될 것이다.(36)

노마드는 결국 꿈만 꾸게 될 것이다. 멈춰서는 한 자리에 머무르며 여유를 부리게 될 것이며, 세계를 약속의 땅으로 만들 것이다. 비만은 점점 이런 정주성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 될 것이다. 관광은 휴식에 대한 욕망과 인간의 새로운 권리 주장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그 새로운 권리란 움직이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36)

시장에 대항해서 두 종류의 노마드제국이 나타날 것이다. 하나를 이슬람을 중심으로 다른 하나를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생겨나는데, 정착민적이고 지역적이며, 방책을 쌓아놓은 제국들이 이런 세계화를 피하려 할 것이다.(36)

시장도 이슬람 제국도 세계를 지배하는데 실패하고 분열될 것이다. (36)

로마제국이 무어지던 때처럼 굉장한 혼란이 시작되어 새로운 문명이 탄생될 것이다. 이 새로운 문명은 스러져가는 제국의 영화로운 잔재들, 그리고 새로운 노마드들을 사로잡고 있는 새로운 가치들로 형성된 것이다. 내일의 세계는 민주주의적인 동시에 종교적이면서 상업적인 곳이 될 것이다. 이 세계는 노마드적이면서 동시에 정착민적이다.(36)

도시와 정치 세계에서는 새로운 문화와 노동구성, 세계 정부와 트랜스휴먼적인(정착민적이면서 동시에 노마드인) 민주주의가 요구될 것이다.(37)

그러면 전 세계가 온통 혼합될 듯한 거대한 무질서 그 너머에 모든 인생 여행자들을 환영하는 땅이 그려질 것이다.(37)

20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요약을 처음 읽었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책 한권을 참으로 매끄럽게 요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에 대한 글귀만 7페이지에 가까우니 말이다.

 

2장 노마적 인간의 기원

1.노마드의 탄생

35억 년 전 생명이 지구에 생겨난 이래로, 선천적으로 이동성인 이들 생명체는 이 유기체에서 저 유기체로 옮겨 다녔다.(41)

영장류는 5 5백만 전 당시 그들이 생존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었던 남아프리카에서 생겨났다.(42)

1 7백만 년 전에는 동아프라키에서 이 원숭이들 중 프로콘술이라 불리는 원숭이가 최초로 나타났다.(42)

두 발로 걷게 된 덕분에 그들은 다른 원숭이들보다 자기 방어를 더 잘하였다. 걷기 위해 똑바로 서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보다 더 먼 데까지 맹수들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47)

호로하빌리스와 호모루돌펜시스를 인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인간이다. 200~180만 년 전이었다.(49)

호모에렉투스들은 큰 변혁을 가져왔다. 생존하기 위해 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수렵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정당방위 차원이었으나 차차 소비자로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한 일이 되었다.(50)

130만년 전쯤에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사라져가는 동안 호모 에렉투스는 대단한 신체적 지적 능력으로 이른바 아슐리언이라 일컫는 최초의 문화를 형성하였다.(51)

70만 년 전쯤에 불에 채소를 익혀 먹기 시작해 뇌에 영향분을 더 잘 공급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52)

2. 호모사피엔스, 만능의 노마드

뇌의 용량을 커졋고, 신체는 가늘어졌으며, 수렵 능력은 확실해졌다. 장소에 따라서 이들은 사자, , 야생 양 등을 어느 정도 다듬은 돌로 쳐서 죽였다.(55)

최초의 신발, 최초의 장례식 : 네안데르탈인(BC 38만년)(56)

아메리카라 불리게 될 그곳은 그러니까 오세아니아 대륙보다도 더 늦게, 그러니까 맨 마지막으로 사람이 살게 된 대륙이다.(59)

크로마뇽인에게는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아마도 최초로 시간을 측정한 인류였던 것 같은데, 해시계판 비슷한 것을 이용하였다.(61)

언젠가 자기(크로마뇽인)도 식량으로 먹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육은 그전보다 덜 먹었다.(62)

이렇게 이동 속도가 늦춰지자 집단의 존속을 위해 아이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63)

3만 년 전쯤에는 이런 노동 분재가 물물교환으로 이어지게 되어 물품을 가지고 여행하게 되었다.(63)

동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미래의 소비를 보장받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저축의 시대가 시작된다. 여기에는 유랑 생활 중에도 동물들을 이끌고 다녀야 할 필요성까지 포함되어 있다.(66)

기원전 제7 천년기에 최초의 도시 문명이 생겨난다. 이른바 차탈휘위크 문명으로 5천 명가량의 주민이 살던 주거지가 소아시아에서 발생했다.(72)

(기원전 5000년쯤에는) 모든 혁신은 아직도 종교를 위해 쓰였다. (74)

3. 노마드의  문화

노마드는 집단으로밖에 생존할 수 없다. 자연선택 법칙은 일을 분업하고 경험을 전수하는 데 뛰어난 자들에게 유리하다.(76)

1백만 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한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최초의 가족을 이루었는데, 이때의 우두머리는 가장 강한 자라기보다 대개는 유랑 생활을 하는 동안 그 무리를 가장 잘 이끌 줄 아는 자였다.(76)

우두머리는 우선 가장 힘이 세고 날렵하고 민첩했으며, 가장 지혜롭고 경험이 많았다. 우두머리는 종종 가장 큰 천막을 사용했으며, 이 천막은 우두머리의 가족들 천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78)

초기의 이동은 사냥감의 흔적을 쫓거나 적을 피해 아무 데로나 가는 우연한 발걸음이었다. 그 뒤로 진화된 이 커다란 영장류를 자극했던 것은 필요를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호기심이다.(79)

노마드는 하루 보행을 단위로 공간을 측정한다. 그들에게 거리란 시간일 뿐이다.(81)

사냥을 하는 동안에는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사냥이 끝나면 시간은 아주 다른 밀도를 갖게 된다. 시간은 기본적으로 은신처 마련, 제례의식 준비, 도구 제조, 식사 준비, 그리고 특히 이야기 구술에 소요된다. (86)

이야기 구술은 집단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이야기를 통해 젊은이들이 생존 조건이나 집단 정체성의 기본 원칙에 입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87)

전쟁은 제례의식을 통해 복수를 금지시킴으로써 중단된다. 하지만 그래봤자 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는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97)

 

3장 제국의 말

문명이 몰락하거나 몰락한 듯이 보일 때면 정복자는 언제나 야만인이다. 그리스인에게는 그리스인이 아닌 자는 누구나 다 야만인이며, 중국인에게는 중국인이 아닌 자는 누구나 야만인이다. – 페르낭 브로델, <물질 문명, 경제, 자본주의>(99)

처음 역사를 주도한 주체도 오늘날 그토록 으스대고 있는 오만한 국가들이 아니라, 떠돌다니다가 이제는 거의 사라져버린 고도의 문명들이다.(100)

1. 제국의 말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고, 수레를 끌며, 병사들을 태울 수도 있는 동물들을 목축민들이 사육하는 바람에 세계는 큰 혁신을 맞게 된다. 진보는 다시 한 번 노마드의 전유물이 되었다.(101)

기원 전 2000년즘에 인간이 말 위에 올라탔다. 말의 사육은 인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말과 바퀴 덕분에 인간은 무거운 짐도 실어 나르고, 수레에서 살 수도 있었으며, 먼 데 가서 많은 양의 물건을 교환할 수도 있었고, 또 말을 타고 사냥이나 전쟁도 할 수 있게 되었다.(103)

말이 그렇게 유라시아에서 사육되던 때, 순록은 북아시아, 쌍봉낙타는 중앙아시아, 단봉낙타는 근동에서 사육되었다.(103)

처음에는 노마드들이 조개껍질을 교환 단위로 사용하였고, 그 다음에 정주민들이 곡식을 이용하였다.(106)

기원전 2370년경, 마지막 대홍수가 났을 즈음에는 아카드, 우르, 바빌론이라는 세 도시국가가 그렇게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있었다.(107)

바빌론은 최초의 법인 함무라비 법전에 의해 통치되었다.(기원전 1750년 경)(108)

기원전 4세기에는  크세노폰이라는 그리스인이 승마 개론서를 최초로 저술한다.(114)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국가가 없는 자는 인간보다 뒤떨어진 존재이거나 우월한 존재(초기 노마드)이다……. 자기 혼자만으로 충족하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살 줄 모르는 인간은 결코 국가에 속해 있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괴물이거나 신이다.”(아리스토텔리스)(115)

오디세우스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했다.(117)

정착민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고 노마드의 시간은 이야기의 시간이다.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성경이 그러하듯이.(117)

2. 유일신주의와 약속의 땅

선은 노마드적이고 악은 정착민적이다.(118)

(타인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헤브루인은 가장 간단하고, 가장 세련디며, 가장 완벽한 노마드적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이 통과하는 지역의 신들을 자신들의 신들이 공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신은 하나뿐이라고 공표하였다. 그리고 그 신은 자신들을 받아들여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신이며, 모든 인간들의 신이라고 설명했다.(119)

성경의 이야기들 속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관계는 바로 노마드와 정착민을 대립시키고 있다. 그들은 최초의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과 차장, 카인과 아벨이다.(122)

이전의 모든  제국들처럼 로마제국도 노마드들이 세웠다. 기원전 753년에 트로이 출신의 쌍둥이가 건국했다고 한다. 이들 쌍둥이, 레무스와 로물루스는 마르스 신의 아들인 아이네이아스의 후손들이며 알베의 왕자들이었다.(125)

새로운 형태의 노마디즘이 로마에서는 위험한 것이 되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무질서한 유랑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33년에는 그들의 반동적인 움직임을 진압하려고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농지개혁을 제안했다. 하지만 소유주들의 항거로 호민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두려움은 이후 몇 세기 동안에도 계속 로마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로마는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먹여주고, 기분전환을 시켜주고, 가두고, 축출해야만 했다. (126)

이 모든 이들을 공존케 하고 가난한 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로마는 이제 힘과 여흥, 서커스와 카니발, 군대와 농업의 도움을 빌렸다.(126)

로마제국이 가장 멀리 뻗어나간 때는 2세기 초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때였다. 로마제국은 당시 브리타니아에서 중앙아시아까지, 게르마니아에서 아프리카까지 팽창되었다.(127)

3. 아시아의 시베리아인

적어도 5천 년 전 지금의 내몽고에 상당히 진보된  문명이 있었으니, 이 문명의 주인공은 수렵인으로 한때 농경민이 되었다가 말을 길들인 뒤 다시 노마드가 된 몽골족이다.(130)

이들(투르크족)은 다른 몽골족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에서는  푸른 하늘, 즉 천신을 숭배하는 탱그리 제례의식이 지배적이었다. 사제나 샤먼이 이 천신과 교신을 하였다.(136)

4세기에 이 부족들 중에서 흉노족(7백 년 뒤에는 훈족이 된 것 같음)은 아랄 해 북쪽으로 이동해 고비사막을 횡단한 뒤 중국 북쪽 스텝 초원에까지 가게 된다. 3세기 말쯤 되자 이들은 너무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려서 당시 몽골족을 이끌던 진나라는 그들을 막기 위해 후에 만리장성이 될 성벽을 쌓았다.(137)

4. 아시아 국가들의 계보

기원전 11세기 초기 몽골의 한 부족인 주나라가 웨이 계곡에 정착하여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들로 무장하여 북중국을 통치하고 하오(시안)을 수도로 한 뒤 거기에 진정한 행정부를 만들고 왕조를 세웠다. (140)

기원전 771년에는 다른 몽골족이 주나라를 뤄양으로 몰아냈다. 이렇게 해서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시대가 시작된다.(140)

기원전 481년에 중국은 전국칠웅으로 나뉘었다. 모두 몽골족에서 파생된 국가들로 진, , , , , 위였다. (140)

331년에 진나리의 영정왕은 남쪽을 침공하고 나서 시황제라는 이름으로 중국 전역을 통치하는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그는 화폐, 도량형, 문자를 통일하고, 종이의 사용을 강요함으로써 중국을 이집트의 파피루스로부터 해방시켰다.(141)

220년에 한족은 이미 본 바대로 다른 몽골족인 유연족에 의해 전복되었다. 유연족 또한 중국 땅에 자리 잡아 불교를 들여오고 위나라를 창건하는데, 그 영토가 만주에서부터 바이칼 호수까지 이어진다. 로마제국의 패망이 마무리될 무렵인 552, 위나라는 투르크족인 돌궐족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고, 이 돌궐족 또한 618년에 다른 몽골족에게 밀려나 그들을 대신한 이 몽골족이 당나라를 세우게 된다.(143)

686년에는 다른 몽골족인 거란족이 만주 땅의 랴오허 강 근처에 정착하여 당나라를 공격하고, 697년에 당나라는 과거 적이었던 돌궐족과 합세하여 거란족을 밀어냈다. 하지만 당나라는 세력이 약화되고, 이로써 ‘510이라 불리는 혼란기가 시작된다.(143)

917년 키르기스족은 다시 돌아와 동나라를 결정적으로 전복시키고 당시 라고 불리던 베이징을 점령하여 요나라를 세운다. 요나라는 만주까지 뻗어 있었으며, 당시 만주에는 주르체트 족이라 불리는 몽골족이 살고 있었다.(144)

960년에 다른 몽골족인 송나라가 권력을 잡고 카이펑에 수도를 건립한 뒤 요나라에는 만주와 몽골의 일부만을 내주었다. 12세기초 주르체트족은 요나라를 침공하고 1115년에 카이펑에서 송나라를 몰아낸 뒤 금나라를 세운다.(144)

5.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고립

기원전 3000년경에 빙산이 녹자 북극 통로는 끊어지고 노마드의 이동은 여러 갈래로 갈리게 되었다. 노마드들이 말을 길들이고 바퀴를 발명해내고 있던 아시아의 그 굉장한 혁신들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은 단절되어버렸다.(147)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기술이 뒤떨어져 아주 독창적인 농경 정착 생활 또는 원시적언 노마드 생활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이후로ㄷ 1500년 동안 태평양과 대서양 저 너머에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모든 일이 펼쳐지게 되었다.(150)

 

4장 제국의 말 II

노마디즘은 국가를 탄생시킬 정도로 전투적이고 충동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생명력이다. 하지만 처음에 노마드적이던 집단에서 도시성과 사치 풍조에 의해 도발된 향락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정부, 이어서 나라 전체가 방어 능력을 잃고야 만다.” – 이븐 칼둔(133~1406) <베르베르족의 역사>(151)

1. 유럽의 시베리아인

스키타이인들은 한 세기 뒤(기원전 6세기) 이번에는 다리우스가 지휘하는 페르시아 군대를 무찔렀고 그런 다음 다른 인도유럽어족인 위구르족을 몰아냈다.(156)

로마인들과 사르마트족의 만남은 아주 빈번해졌고 로마는 아주 강력해져서 스키타이 전사들 중에는 로마 군대에 용병으로 입대하는 이들도 있었다.(161)

서기 370년경에는 이 무시무시한 전사들(훈족)이 중앙아시아에서 천년 이상 통치하던 스키타이족의 지배를 종식시켰고, 이어서 사르마트족의 통치를 종결시켰다. …… 그리고 서기 440년경에는 헝가리와 러시아의 평원에 정착한다. 그들은 거기에서 새로운 우두머리인 아틸라와 블레다 형제의 지휘 아래 로마인들에게 도전한다.(163)

2. 유럽의 인도유럽어족

게르만이란 켈트어로 이웃을 가리킨다.(165)

인도유럽어족의 두 번째 가지들 중 하나는, 그리스인들에게는 켈트라는 이름으로, 로마인들에게는 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데서는 웰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 2000~1200년에 중앙아시아에서 형성되었다.(167)

3. 로마제국의 결말

로마제국이 쇠약해진 징조를 보일 때, 로마를 둘러싼 종족들은 이제 더 이상 제국에 얹혀살거나 제국의 속국이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제국 안에서 한자리 차지하기를 원했으며, 어떤 종족들은 로마제국을 파괴하고 싶어했다. 이에 관한 역사는 다른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복자의 관점이냐 피정복자의 관점이냐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되고 있다.(172)

훈족은 새 지도자들인 아틸라와 블레다 형제의 지휘 하에 이번에는 직접 두 로마제국에 침투하기로 결정했다. 두 형제는 우선 라인 강가에 부르군트왕국을 괴멸시켰다. (178)

막시무스가 죽은 뒤에는 황제들의 계승이 잦아졌다. ……  461~476년에는 여섯 명의 황제가 비지고트족 용병들에 의해 조종되었다. (180)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리쿠스가 죽자 그의 왕국은 사라졌다. 서로마제국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곧 구원을 받게 된다. 훈족을 제외하고 모든 야만인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으니 말이다.(181)

4. 유럽 국가들의 계보

서로마제국은 사라지고 대신에 아시아로부터 온 옛 부족들이 언어, 문화, 생활양식을 섞어가면서 서서히 융합되어 생겨난 왕국들이 모자이크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광장한 혼합으로 몇 세기 뒤에 두 국가가 생겨나게 된다. 프랑스와 러시아이다. 프랑스는 프랑크족이통치하였고, 러시아는 바이킹 족이 통치하였다. 이 두 나라외에 스페인에서는 비지고트족이 지배하는 공국들이 있었고, 독일은 색슨족, 이탈리아는 랑고바르도족, 브리타니아 켈트족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땅이 말보다 우세하게 되었다.(182)

5. 세 노마드의 상업적 역할

이 기간 동안 세 노마드 집단이 북해와 중국 사이를 포함하는 모든 곳에서 상업적 흐름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 중 바이킹 족과 아랍인들은 정복자가 되려 했으나,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열망뿐이었다.(196)

그들(유태인)은 오로지 신앙과 문화를 지키고 공동체 안에서 생존하기 위한 노력만 했다. 그들은 교역이나 교환을 위해서만 또는 추방당하여 도피할 때만 이동을 했다.(204)

6. 다시 제국의 말로 돌아와서

 

5장 새로운 노마드, 주변인과 발견가

우리는 역사를 쓴다. 하지만 언제나 정착민의 시각에서 국가의 도구라는 이름으로 써왔다. 역사는 노마디즘을 이해한 적이 결코 없었다.” –질 들뢰즈와 펠리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207)

1. 러시아-중국

성실하고 이해를 초월한 성격의 칭기즈 칸은 전설과는 달리 파괴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이끌던 부족들에게 문화적이고 과학적인 놀라운 발전을 가져온 인물이다.(215)

만주족은 할하족, 그리고 중가리안들을 굴복시킨다. 만주족은 중국 북쪽을 점령하여 1644년에 청나라를 세우는데, 청나라는 3세기 전에 세워졌던 금 왕조 이후에 새로 생긴 몽골 왕조였다. 청나라는 그로부터 268년 동안 북경의 권좌를 차지하게 된다.(222)

2. 걸으면서 꿈꾸는 자

순례자들의 여행에는 약탈도 빠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십자군병사라고 불리지 않았던 그들은 유태인 공통체를 만나기만 하면 철저히 약탈했는데, 특히 라인 강이 이어지는 길에서 그랬다. 유태인들에게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았고, 이따금 남겨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목숨이었다.(234)

13세기에 팍스 몽골리카는 중국해에서  동유럽과 메소포타미아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는 광대한 영토를 하나로 만들었다.(240)

이븐 바투타는 거의 30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 12만 킬로미터나 돌아다녔다. 이 여행기들을 통해 유럽인들은 비단제조업, 도자기, 대포, 화약, 벼농사, 나침반 등을 발견했다. (241)

인간의 조건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꽤 공통적이다. 우리 자신의 것보다는 낯선 것을 더 즐기고, 요동과 변화를 사랑한다는 점…… 새로운 것, 모르는 것을 갈구하는 이런 기질은 내 안에서 여행에의 갈망을 키워가고 있다. …… 여행을 한다는 것은 유익한 훈련처럼 보인다. …. 삶을 형성해가는 데 끊임없이 다양한 많은 다른 사람들, 기발함, 다른 관습들을 제안하는 것보다 더 좋은 학교는 없다.”(244)

3. 관료제의 적, 주변인

군주제적 관료제의 최고 적은 바로 불행한 여행자인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249)

관료들의 강박관념 : 일하지 않으면서 이동하는 자를 경계할 것(249)

장군들은 농작물을 훔치는 도적들을 기꺼이 자기 부대에 받아들였던 반면, 민간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거부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빗대면서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고 일자리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세속의 자선이나 교회로 통제할 수 없는 위협이 되었다.(250)

프랑스에서는 공공질서가 세 가지 범주, 안전’, ‘공공 안녕’, ‘위생으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마지막으로 특기할 만한 것은 생활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다시 세 부류로 나뉘어 서로 다르게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저등급인’, ‘제적인’, ‘주변인으로 나뉘었다. (251)

저등급인은 정착해 있지만 언제 떠돌이 생활로 돌아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제적인은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일하는 사람들(어릿광대, 이야기꾼, 곡예사, 그리고 나중에는 골리아르라 불리는 유랑 학생 시인, 광대, 희극배우, 대서인과 사회 규범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 즉 보통사람들과 다른 사람들(마녀, 연금술사, 고리대금업자, 창녀, 유태인 집시, 이교도, 남색가, 나병 환자, 미친 사람, 추방된 자, 망명자, 도망자, 탈영병)이다. (251)

불안정하게 사는 이들의 세 번째 부류는 가장 감시가 심했던 주변인으로서 이들은 일정한 거주지도 없고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서나 무서운 존재였고 강력범으로 여겨졌다.(253)

감옥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제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아도 감옥에 갇혔다.(255)

흑사병은 잘 알려진 바대로 5세기 중반에 나타나 지중해 지역에서부터 아일랜드 해변까지 번졌으며 로마제국이 패망한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256)

1345, 폐렴 형태의 (, 전염성이고 치명적인) 흑사병이 중국에서 생겨나 수백만명이 사망했다.(257)

마르세유는 이 기회에 유리한 상거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1347 11 1일 그 배들에게 정박지를 열어주었다. 흑사병이 배 안에서 떠돈다는 사실을 마르세유 당국이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쥐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흑사병이 육지까지 번져나갔다.(257)

흑사병을 두고 사제들은 사람들의 죄를 비난하며 회개를 호소했고, 유럽의 의사들은 세 학파로 분열되었다. ( 행성들간의 잘못된 회합-일직선-에서 오는 공기로 부터의 오염, 신체 접촉을 통한 전염 그리고 물에 의한 전염 특히 유태인들이 우물들에다 독을 풀었다는 비난을 받음)

이로 인해 툴롱에서는 1348 4 13 40명의 유태인이 학살당했다. 그리고 뉘렘베르크, 보른스, 바르셀로나, 타레가, 레리다에서 1348 5월 수천 명의 유태인들이 학살당했다. 결국 십여 만의 유태인들이 몰살됐다.(259)

유럽에서는 이제 움직임이라곤 없었다. 상인, 예술가, 순례자, 설교가 수도사, 음유시인 그 누구도 여행하지 않았다.(259)

1348년 에서 1350년 사이에 유럽의 희생자들은 2 5백만 명에 달했는데, 이는 유럽 대륙 인구이 3분의 1에 해당되었다. 모든 지역에서 주민의 90퍼센트를 잃었다. (260)

흑사병은 교훈 하나를 남겼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병을 퍼뜨릴 수 있다면 추방은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가두어야 한다. 병원에, 감옥에, 또는 일터에.(260)

새로운 노예제도 : 돌아다니는 자를 일하게 만들기- 14세기~15세기의 강제노동(260)

최초의 세계화 : 일하는 자들을 돌아다니게 만들기(265)

17세기 중만, ‘최초의 세계화가 예고되고, ‘최초의  세계적인 상인 노마디즘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세계화가 유발시킨 가난한 자들의 이동에는 전과 똑같이 적대적이었다.(266)

상인들의 자유로운 통행, 지식인들을 위한 공통적 대륙 공간의 발달, 이러한 사물과 사고의 최초 세계화는 다음에 이어질 두 차례의 세계화와 마찬가지로 불평등과 빈곤의 원천이었다.(267)

14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강제 노동은 18세기 중반에 사라졌다.

4. 발견가, 미지를 항해하다

가난한 자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상로를 열기 위해, 물자나 귀금속을 찾기 위해, 예전의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럽인들도 먼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그래서 발견가들과 식민지 개척자들의 여행이 시작되었고, 이는 새로운 형태의 노마디즘으로 이어졌다.(273)

1518년에 아메리카로 가는 노예들에 대한 계약이 시작되었다.(276)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은 이 부족들(공카파이라족, 아우라칸 족)에 맞서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노마드들이 저항하면 학살한다. 정착민들이 저항하면 일하게 만든다. , 그들이 계속 살아남게 된다면……(278)

무섭도고 잔인하다. 인간이란……

디드로는 <백과사전에서 노마디즘에 대해 일정한 거주지가 없고, 새로운 방복지를 찾아 끊임없이 거처를 바꾸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붙이는 명칭이라고 정의하하면서, “그래서 이 단어는 특별한 한 종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종족의 생활 형태를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하였다.(288)

그러니까 통행의 자유를 요구하고, 수입에 대한 영국의 독점을 거부함으로써 미국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288)

프랑스 혁명의 이상은 무엇보다 정착민적인 이상이다.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장전에는 통행의 자유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290)

(18세기경) 혁명은 유럽 전역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사상을 수출하여 운 좋은 노마드들에게 권력을 쥐어주면서 봉건제의 마지막 유물들을 부숴버렸다. 이 운좋은 노마드들은 바로 상인들, 부르주아들이었다. 두 번째 세계화가 예고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더 광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화는 여러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관료들과 군주들에게서 많은 권력을 박탈하기 때문이다.(293)

 

6장 산업적 노마디즘

1. 미국의 독립

유일하게 좋은 인디언이란 죽은 인디언이다.”(298)

15세기 북아메리카에서 1천 만명이 넘던 인디언들이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3백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302)

최초의 증기 추진기관이 1790년에 하천 교통수단으로 시험가동 된 곳도 미국이다.(304)

1869년에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사이의 철로가 완성되지 대륙 횡단 시간은 4개월에서 1주일로 줄어들었다! 더 나중에, 역시 유럽에서 발명된 자동차가 대서양 너머의 자본주의에 경제적 우위를 부여하게 된다.(304)

1865년 남북전쟁의 종식과 함께, 그리고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헌법 제13조와 더불어 흑인들은 공식적으로 해방된다. “40에이커의 땅과 노새 한마리를 받게 된다는, 즉 정착할 방법을 얻게 된다는 약속과 함께. 하지만 남부 사람들에게서 압수된 농장은 북부에서 온 백인들 차지가 된다. 예전의 노예들은 거기에서 소작인 자리를 얻을 수 있을 따름이다.(306)

2. 두 번째 세계화

(농촌의 빈곤이 도시의 빈곤으로 이어지면서) 적은 이제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가난 그 자체였고 방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방랑 그 자체였다. 정체계의 목표는 가난한 자들이 생활비를 더 잘 벌어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되었다.(310)

영국인 스티븐슨이 자동차를 발명하고, 베세머가 철강산업 기술을 발명하가 19세기 후반에는 살마과 상품뿐만 아니라 사상과 화폐를 더 빨리 더 싸게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노마디즘은 이제 속도, 자유, 고독이라는 사고와 연결되었다. 두 번째 세계화가 가동된 것이다.(314)

우선 수에즈 운하가 1869년에 개통되었고 같은 때에 아메리카 대륙 횡단 열차가 개통되었다. 최초와 사시사철 쓸 수 있는 휘발유 모터가 1876년 에 고틀리에프 다임러에 의해 완성되기도 했다. 1891년에는 파나르와 르바소가 좌석이 네 개 있는 자동차에 다임러 모터를 장착하였다. 자동차 노마디즘이 시작된 것이다. 사동차 노마디즘으로 인해 산업적 절대권력은 미국으로 넘어갔고, 도시들은 변화했으며, 모든 도시들은 노마드가 되었다. 전쟁의 규칙들도 바뀌었고, 새로운 에너지 자원이 필요해졌다. 그 새로운 에너지란 산업적 노마디즘의 에너지인 석유이다.( 같은 해애 전보, 전화, 라디오가 출현했다.)(314)

1873년에 최초의 유급 휴가가 영국에서 생겼다.(324)

빈곤한 노마드들과 호사스런 노마드들을 갈라놓은 첫 번째 세계화가 도입했던 절대적인 분리는 이렇게 해서 두 번째 세계화에 의해 더욱 공고해진다. 이러한 점은 세 번째 세게화에서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325)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주민은 1900년에 1 5백만 명이었으나, 1914년에는 학살 때문에 5백 만명으로 줄어들었고 1920년에는 제 1차 세계대전 참전 때문에 다시 280만명으로 떨어졌다.(325)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수천 명에 불과한 도형수 출신 영국인들이 75만명의 애버리진을 학살하였다.(326)

3. 노마드에 대한 끊임없는 통제

1880년부터 두 번째 세계화의 그 잘난 체계적 조직화에 균열이 생긴다. 첫 번째 때와 마찬가지로 이 번에도 여행, 다른 데서 온 문화, 사람, 상품에 대한 두려움에 봉착하게 된다.(334)

운송회사, 에너지 회사, 철도회사의 파산, 보호무역주의, 허무주의적 또는 자폭적인 테러리스트들 등.

나치의 반노마드적 강박관념

히틀러 관료기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일에 불청객으로 들어와 있는 유태인들과 집시들을 처치하려 했다. …… 다 합쳐보면, 당시 유럽에서 살고 있던 70만 집시들 중에서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에 있던 50만명의 집시들이 학살되었다.(342)

(메르, 바르카레스, 리브살트 에서) 이로써 뛰어난 노마드였던 유태인 6백만 명이 학살되었다.(343)

4. 세 번째 상업 노마디즘을 향하여

20세기 후반부 초에 평화가 되돌아 오자 상업적 노마디즘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344)

모든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시작되었다. 1943년부터 미국과 영국은 이러한 상품 유통의 자유를 자기들에게 이롭게 체계화할 목적으로 국제기구 창설을 생각하고 있었다. …… 1947년 국제통화기금이 통화의 자유 교역을 위해 창설되고, GATT가 상품의 자유 교역을 위해 아바나에서 조인되었다.(345)

(1947) 그해에서야 비로소 애리조나 주와 뉴멕시코 주의 인디언들이 지방선거에서 마침내 투표권을 얻게 되었다.(346)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 걸쳐 10억 이상의 인구가 자동차나 트럭으로 토행하고 있다. 해마다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비행기로 여행을 한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기차로 여행을 한다.(349)

미국인 중 적어도 2 5백만명은 외국에서 태어났으며, 그만큼의 숫자가 이민자들의 자식 혹은 손자들이다.(350)

전체적으로 보면, 직업적인 이유로 몇 년 나가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전 세계에 걸쳐 5억 이상의 인구를 노마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세 번째 세계화의 틀 속에서 보면, 지구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구 중 첫 번째는 통행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351)

7장 노마드를 구해야 한다.

노마드는 좋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노마드가 된 것이다.” – 아널드 토인비(353)

오늘날까지 노마드로 남아 있는 마지막 노마드 민족들은 후계자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나 삶 그 자체를 위해서도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만이 살아왔고, 그들만이 알고 있고, 그들만이 보고해왔던 지역과 숲의 마지막 지킴이들이기 때문이다.(355)

1. 사라져가는 남쪽 노마드

때로 이런 학살은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도록 부추기는 외부 세력들에 의해 유발되기도 한다. 그래서 에콰도르의 와오라니족은 이 노마드들의 영토를 횡령하려 했던 석유회사들이 조종한 농민들에 의해 학살됐다. (359)

1세기 전에는 숲의 일등국 중 하나였던 필리핀은 지금은 숲이 없어 목재 생산이 쇠퇴하고 있다. 나이지리라조차도 목재 수입국이 되었다! 이러한 삼림파괴는 그러니까 결국 그 삼림 파괴를 촐발했던 경작에 이롭지 못한 것이다. (360)

2. 북쪽 한가운데 선 노마드의 외침

몽골리아에서는 칭기즈 칸 전사들의 마지막 후손인 투바족이 낙타와 함께 여행을 한다. 때로는 트럭을 타고 여행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내몽고와 신장의 260개 현에서 아직도 4천만 명의 몽골족 후손들이 대부분 정착민이 되어 살고 있다.(393)

실제로는 애버리진들의 상황은 여전히 끔찍하다. 그들의 평균 수명은 다른 오스트레일리아 주민들의 수명보다 20년이나 짧다. 애버리진 두 명 중 한 명만이 50세까지 생존한다. 젊은이들의 사망 원인 중 첫째로 꼽히는 알코올 중독과 함께 자살도 여전히다.(397)

3. 세계의 전방위

UN과 그 밖의 국제기구들은 노마드 민족들의 생존권을 거부하기 위한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UN은 노마드들의 발언권을 완전히 거부하고 그 어떤 요구사항도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노마드들을 말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401)

소멸되지 않으면서 노마드가 될 수 있을까? 노마드가 되지 않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404)

 

8장 한 명의 정착민, 세 명의 노마드

1. 세 번째 세계화의 절정

상업적 노마드는 어떤 집단의 요구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재정적 자원의 제약을 받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자기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여 생겨난 결과들에 의해서만 제약을 받는다.(409)

상업적 노마디즘은 결과적으로 사적인 상황들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상황의 불안정을 심하시킨다.(410)

인간, 상품, 용역, 관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점점 더 즉각적이고 일시적이며 단기적인 것으로 변해간다. 그러므로 이런 개인적 자유의 지배는 불성실에 대한 권리를 내포하고 있다.(410)

개인의 자유는 그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전복’, 불안정, 경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411)

브랜드의 생명을 점점 더 짧아졌다.(411)

은행가들은 회사들에게 미국의 회계기준에 따라 점점 더 단기적인 결과를 제공해주기를 요구한다.(412)

하지만 이러한 (기업들이 이동한 ) 장소는 끊임없이 바뀌므로 회사들도 쉬지 않고 이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며, 공급자나 유통업체가 바뀔 때마다 회사 위치를 바꾸고 직원들을 해고하면서 노마드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직원들도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조차, 정착, 충성, 지속성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413)

기업은 이제 직원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한다.(414)

2. 노마드적 경제

세 번째 세계화의 결과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곳에서는 기업들도 점점 더 불안정하고, 유동적이고, 노마드적으로 변모했다.(415)

인류는 이제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비자발적 노마드 또는 인프라노마드로서 대물림에 의한 노마드(원시부족의 마지막 후손들)과 어쩔 수 없이 노마드가 된 이들(주거지가 없는 사람, 이주 노동자, 정치 망멱객, 경제 관련 추방자, 트럭운전수나 외판원과 같은 이동 근로자)이 포함된다. 두번째 부류는 정착민으로서 농민, 상인, 공무원, 엔지니어, 의사, 교사, 한 곳에 소속된 노동자, 장인, 기술자 은퇴자, 어린이 등이다. 세 번째 부류는 자발적 노마드로서 이 또한 하이퍼노마드(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삶들, 고위 간부, 연구원, 음악가, 통역가, 안무가, 연극배우,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없는 여행자)’와 유희적 노마드(관광객, 운동선수, 게이머)로 나뉘는데 유희적 노마드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한때 포함될 수 있는  부류이다.(418)

하이퍼 노마드들은 자기 자신에게 고용되어 있으며, 때로는 동시에 여러 직장을 갖고 있기도 한 프리랜서 들이다. 부유한 그들은 윤리적 규범과 새로운 미학을 공들여 만들어서 퍼뜨리며 ,경박스럽고 태평하고 이기적이며 불안정한 사회의 최선 또는 최악을 만들어낸다.(420)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성실하고 후손들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포도주 창고의 미래에 더 관심이 많으며, 후손들에게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줄 걱정도 하지 않는다.(420)

그들은 더 이상 공적인 일들을 이끌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420)

고독과 불안정은 이제 정착민의 생활양식 위에 무겁게 내리누르는 위협이 되었다. 정착민의 생활 리듬은 노마드의 생활리듬을 본떠 점점 더 파편화 되고, 잘게 쪼개졌다.(421)

40년 내에 매년 30억 명 이상이 비행기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비행기는 점차 대형화되고 점점 더 안전하며 더 안락해지고, 점점 더 고도의 기술로 제작될 것이다.(423)

유권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충성심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는 제품에 대해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태도와 똑같다. 인프라노마드들은 사회적인 이득과 생활환경이 더 나은 곳으로 이주하려 한다.(425)

내부적으로 보면 미국은 무엇보다 경찰기구이다.(426)

3. 이주의 가속화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 특정한 땅이나 도시, 지역에 대한 애착은 사라져가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정착민들의 불안정화가 가속화된다.(428)

미국에서는 근로자의 3분의 2가 조만간 5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하게 되고, 평생 직장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사하는 사람은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회사가 회국으로 나가버리거나 문을 닫는 바람에 이사하는 간부들이 더 많아진다. 유럽의 근로자들은 절반 이상이 5년마다 거주지를 바꾸고 점점 더 자주 고용주를 바꾸게 될 것이다. / 교통수단은 이런 변화를 감안하여 더 빨라지고 있다.(428)

직업적인 공백은 일련의 가혹한 단계들을 거쳐 사회적인 공백으로 이어진다. 실업, 가난, 주거지 박탈, 친구 집에서의 기숙, 공공 숙박소, 수용소, 구걸 노숙자, 걸인으로의 전락.(430)

이주의 가속화는 도시 조직도 급격히 변화시켰다. 정착화를 위해 생겨난 도시가 이제는 통과하여 지나가는 곳이 되었다. …. 그 가운데서 도시 노마드들은 점점 더 고독해지고, 개인주의화되고, 유동적인 상태가 된다.(431)

불안정한 정착민들은 점점 더 도시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살게 된다. 그들의 일일 도시 통과시간은 점차 늘어난다.(431)

도시들은 마침내 모텔처럼 구성되어 임시적인 주거지가 될 것이다. 도시 속의 건물이나 빌라의 수명은 점점 더 짧아질 것이다.(432)

이런 도시들은 대부분 도로, 식음수, 교통로, 위생시설, 경찰, 병원도 없이 벙커로 변해버린 부유한 동네를 둘어싸고 초라한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곳이다. 리우데자네이루, 라고스, 킨샤사, 마닐라가 이미 그런경우이다.(434)

프랑스 같은 북쪽 국가들은 이런 이민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은 인구 감소에 시달리고 있어서 젊은 인구가 몰려오는 것이 자국의 발전 조건임을 이해하고 있다.(436)

게다가 새로운 기술들이 이러한 인구 이동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다. 즉 가상적 이동이 여행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437)

4. 하이퍼월드

하이퍼월드는 역사가 없는 새로운 장소, 새로운 세계이다. 하지만 뒤에 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모든 행위의 초감시 장소이기도 하다. (439)

가상적 정착성의 도구들 :, , , 워크맨, 애완동물, 로봇……(439)

5. 유희적 노마디즘의 환상

도시민의 여행은 점점 더 짧아진다. 전통적인 관광은 이미 쇠퇴해가고 있다.(442~442)

별장이 주거지가 되고 유일한 고정점이 되어갈 것이다.(443)

6. 세 번째 세계화의 후퇴

가난의 문턱 안쪽에 살고 있는 인프라노마드들의 숫자는 1940년대 말에는 5억이었다가 003년에는 25억으로 증가했으며, 2040년이면 50억으로 늘어날 것이다. (452)

하지만, 세 번째 세계화가 실패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처 징후인 빈곤은 이전의 두 세계화 때처럼 폭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 할 수있다.(453)

이 극빈자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노동을 통해 운명을 해치고 나아가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부자들에 대한 폭력과 무장 투쟁 속에서 길을 찾는다.(455)

하이퍼노마드들은 이제 이 세계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이미지를 더 이상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계가 그들에게 가져다 준 고독, 북적거림, 불안정, 불성실, 욕구 불만, 사생활 침해 등을 비판하고 거부한다.(456)

그들은 삶의 질이 최고인 곳이 아니라 시장이 자기들을 원하는 곳에 가서 살아야만 하게 된 것을 불평한다.(456)

그들은 이제 근본적으로 새로운 권리를 요구한다. 움직이지 않을 권리,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권리, 정착민이 될 권리를 말한다. 그래서 노마드의 전방위대 중 일부는 움직이지 않는 세력의 동맹자가 되었다.(456)

7. 정착민의 복수

비만은 사람들이 보통 얘기하는 것처럼 정착성을 떠안아서 생긴 질병이 아니라, 노마디즘에 대한 절망적 거부의 표현이며, 노마드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실어 옮길 수 없는 상태로 만들려는 무의식적 의지의 표현이다. 마침내는 북쪽 국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런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460)

1900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4퍼센트에 불과했으나 2025년에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될 것이며, 그들 중 7백만명은 85세 이상이 될 것이다. 65세 이상인 인구가 2030년 일본에서 전체 인구의 25퍼센트가 될 것이며, 중국에서는 22퍼센트가 될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85세 이상 인구의 숫자가 향후 10년 사이에 두 배가 될 것이다.(461)

8. 미제국의 전지구적 라이벌

노마드 기업은 그 어떤 국적도 표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익이라는 준거에만 따를 것이다.(465)

이런 노마드 제국에서는 불안정성이 보편화되어 지배적이 될 것이다. 혼란은 안정, 안전, 영원성에 대한 요구를 부추길 것이다.

이슬람교는 원래부터 지나친 개인적 자유와 불안정한 삶에 대해 대응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468)

사실상 회교도 수는 다른 어떤 종교의 신도들보다 더 빨리 증가하고 있다. 높은 인구  증가율, 종교적 신념, 정복 정신 등이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1991년에는 10억명 정도(세계인구의 19퍼센트) 였던 회교도 수는 2020년에는 필시 두 배이상( 전 세계 인구의 23퍼센트)이 될 것이다.(469)

인프라노마드들은 한 사람, 한 표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모든 국제기구와 정치조직에 적용되기를 꿈꾼다.(471)

로마제국처럼 미제국도 오래전부터 이 모든 세력들이 무겁게 가하는 위험들을 의식하고 있었다.(472)

현재 미국의 전략은 로마제국이 마지막 3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국가의 중요한 수단을 외부 노마드들에 대한 투쟁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472~474)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최소한으로의 축소, 감옥과 정신과 치료기관의 활용. 군사비용의 증가. 외국인 용병을 수용. 감시의 강화(개인에 대한 40페이지 분량의 정보수립 예상)

이 모든 것을 피할 수 없는 몰락을 조금 늦출 뿐이다. 로마제국의 패망처럼, 미제국과 유럽의 미 동맹국들은 굉장한 혼란을 겪을 것이며, 그 혼란 속에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될 것이다.(475)

 

9장 트랜스휴먼

아주 큰 혼란이 예고되는 시기에는 그 누구도 군대의 운명에 대해 예견하지 못한다. 모든 종류의 노마드들이 지배 제국과 그 문화와 군대, 정치에 맞설 것이다.

무질서, 심지어 끔찍한 재앙이 지나간 후에 지구는 국경없는 단일체가 될 것이다. 인간들은 거기에서 정착민인 동시에 노마드가 될 것이며, 새로운 종류의 권리를 누리고 새로운 종류의 의무를 떠안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류 공동의 이익을 위한 보편적 민주주의이다.(479)

 

3. 내가 저자라면

500페이지 분량에 인류의 역사를 간결하게 압축해 놓은 굉장한 역사서이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기 이전부터 인간의 모습을 띈 순간, 로마제국의 성립과 멸망, 몽골족의 대륙지배와 프랑스 러시아의 성립. 유럽국가의 대륙탐험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식민지화, 미제국의 독립, 산업혁명, 상업혁명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미국 911테러까지…… 인류의 역사를 노마드(노마디즘이라는 개념으로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과거를 옅보고 인간의  발자취를 보며, 저자가 제시해준 미래의 단상들을 통해 내가 살아가야할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충분히 재미있는 저서였다. 500페이지란 한정된 페이지에 인류의 역사를 담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물론 노마드라는 기준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저자가 이 시대 최고의 석학 중에 한 명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인류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다보니 상당 부분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의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일반 독자가 그 많은 노마드들 , 돌궐족, 비지고트족, 흉노족, 켈트족, 게르만족 등 을 다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정된 페이지 안에 모든 내용을 넣으려니 사이사이 지식의 나열 수준에 머문 챕터들은 지루함과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저자라면 노마드와 노마디즘을 개념과 의의 그리고 예를 조금 더 심층적으로 다룬 뒤 인류의 역사를 주제별로 적절히 연결시키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예를 들면 노마디즘의 부흥’, ‘노마디즘의 실패(폐해)’ , ‘노마디즘의 빛과 어둠등과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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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8 02:52:40 *.58.97.140

땟수야 고생많았다.

흑흑..... 나도 고생 많았다...

잘....살아남기 위하여.....

 

좀 자고 일어나서 칼럼 써야겠다.

 

호모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 몽골이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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