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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일 21시 04분 등록

이십대 대학시절 나병환자들이 모여 산다는 소록도를 다녀왔었다. 신체 외양의 모습도 남달랐지만 개개인의 살아온 사연들은 말 그대로 인생은 고(苦)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중 어떤 한분의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어느 하루 물을 데워 목욕을 하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해 살펴보니 살이 익고 있더란다. 물이 너무 뜨거웠기에 화상을 입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감지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증상중 하나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데 있기 때문이었다. 통증을 느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신이 원죄를 지었다는 인간에게 준 형벌중의 하나일까.

 

생선회를 먹을 때 산채로 회를떠 살이 갈가리 흩어짐에도 물고기가 숨을 쉬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신기함 혹은 불쌍함. 그런 가운데 의문이 들었다. 재들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학자들 간에도 이 사항은 이견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물고기는 뇌에 통증 인식 영역이 없다는 것에 무게 추를 둔다. 그렇기에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럼 당사자인 이 물고기는 그런 환경과 처해진 상황을 행복하다고 여길지.

 

참을성이 많다는 것은 통념상 조직사회에서 우대의 조건으로 통한다. 그렇기에 시련과 고난의 어려운 여건들을 참고 이겨내 끝내는 정상의 자리에 서는 이들에게 우리는 존경의 시선을 보낸다. 그런데 그 참을성이 도를 지나쳐 어느 선을 넘을 경우에는 때로 커다란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남성들이 자신 신체의 자각증상을 참고 지내다 병원 검진 후 곧잘 시한부 인생의 판정을 받는 것은, 드라마속 시나리오만이 아닌 현실속의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기에.

그랬다. 내가 그러했다. 초기에 출혈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 처방을 바로 하였으면 쉬웠을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종합병원에 검사 한번 받으려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핑계와, 외근직 업무 탓에 일정을 내기도 빡빡하였고, 합법적인 연차지만 직장인의 생태상 상사의 눈치가 느껴짐은 당연하였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그러기를 해가 바뀌자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왔고, 결국 그렇게 가기 싫어하던 병원을 스스로 찾아가 수술 일자를 받아 왔다.

 

수술 당일 나는 혼자 가지를 못하였다. 통증이 너무 심해 이러다 까무러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덜컥 들어, 마눌 님의 출근을 막고 부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 시간을 앞두고 있을 즈음 쓴웃음이 나온다. 남들에게 얘기하기도 무안한 질병인 치질로 인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척추 깊숙이 주사 바늘이 꽂힌다. 마취제다. 시간이 지나고 무뎌짐이 진행되자 일부러 발가락을 까닥여 보지만 감각이 없다. 뭐야. 이게 마취제의 효력인가. 그럼에도 복부 깊숙이 무언가 들이밀어질 때는 거북한 의식의 느낌이 밀려온다. 수술이 끝난 후 의사의 한마디.

“사진 상으로 보던 것보다 증상이 심하였고 석회화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랬었던가. 부끄러웠다. 그 정도가 될 때까지 왜그리 미련하게 참고 있었던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십분 여의 짧은 수술 이었기에 나는 며칠이 지나면 자연스레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당연하게 생각되던 화장실에 다녀올 적마다 천국과 지옥을 셀 수 없이 경험한다. 한 번에 배변이 나오질 않기에 횟수가 계속되노라면 자연히 기력이 쇠해지고 식은땀이 이마에 맺힌다. 찢어짐의 고통과 살이 불에 데는 통증이 반복되노라면, 평소에 부르지도 않던 신을 찾고 엄마, 아버지의 단어가 목이 메어 절로 나온다. 쌍소리가 나올 때면 여자들이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출산할 때 욕을 한다는 누구의 레퍼토리가 실감이 된다. 혹자의 말로는 치질의 고통은 애를 놓는 것만큼 힘들다고 하더니 내가 딱 그 경우였다. 누워만 있고 아무 일도 못하였다. 화장실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워 식사를 걸렀으면 하는데, 현실은 역설적으로 살기 위해 상처가 빨리 아물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정말 살다 살다 이런 고통은 처음 이었다. 내가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일찍 처신하지 못해 일어난 상황이지만 괜한 심통이 났다. 너무 아프다 보니 애꿎은 화장실 벽을 내려치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진통제만 찾게 되고 눈가에 눈물이 절로 아린다. 이럴 때 만약 누구처럼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듯 시간이 지나자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완화가 되기 시작하였다. 부모님을 부르짖는 횟수가 줄어들고 외부의 활동도 더디지만 이루어진다. 얼마나 다행인지. 화장실에서 변을 볼 수 있음이 외출할 수 있음이 걸어 다닐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하늘 태양빛이 눈부시게 가슴으로 적셔온다. 그런데 그 감탄사의 연발은 얼마가질 않는다. 사람이란 동물의 잔혹했었던 과거사를 잊어버리는 습성이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다.

 

좌욕을 하고 때때마다 거즈를 갈고, 식생활의 변화를 주는 것이 귀찮아졌다. 회식자리에서 테이블에 놓여있는 주류에 예전처럼 은연히 시선이 꽂힌다.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 힘들었던 시절. 그 아픔의 시절을 기억치 못하고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을 때 재발이 될 수도 있다는데 나는 왜 그것을 망각하는 것일까. 몇 해 전 작가 조정래를 기념하는 아리랑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관람을 하면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곳은 <태백산맥> 작품을 완성키 위해 쓰인 원고지를 세워둔 공간이었다. 한 장 한 장 마다의 피땀과 몰입의 흔적이 나의 키를 훌쩍 넘었다.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기에 얼마나 많은 창작의 고통을 헤아렸기에. 사람은 누구나 일상의 편함을 갈구한다. 소원하는 것들을 것을 쉽게 이루길 원한다. 그런데 세상이란 녀석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시련을 겪고 아픔을 승화하는 이들에게만이 밝음의 빛을 허락한다. 고통이 있다는 것, 아픔이 있다는 것. 너무나 힘든 일이다.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되돌아가고 싶기도 하는. 그럼에도 출산을 앞둔 여성이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자신의 분신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듯, 한권의 책을 내기위해 무명작가는 오늘도 쓰디쓴 책상에 걸터앉아 언젠가는 알아줄 자신의 목소리를 토해냄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화장실에 걸터앉아 라마다 분만법에서의 호흡법을 시도하며 내가 믿고 있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쪼매만 살살 해주이소.'

그 기도에 응답이 되노라면 환희의 되뇜을 소리 높여 외친다.

'감사 합니데이.'

 

 

파도 (유승우)

 

파도에게 물었습니다.

왜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고,

밤이나 낮이나 하얗게 일어서느냐고,

일어서지 않으면

내 이름이 없습니다.

파도의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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