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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일 11시 10분 등록

"거기에도 확정금리 적금이 있습니까?"

엉덩이를 반쯤 까고 엎드린 환자에게 침을 놓으시던 의사선생님이 말한다. 이 말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아 듣는다.

", 있습니다. 다음 번 병원 올 때 자료 가지고 오겠습니다."

 

초겨울 낮은 탁자에 마주앉아 상담을 하다 허리가 삐끗한 것이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의 통증을 유발했다. 고객의 소개로 온 병원에서 침을 맞고 있는 중이다. 허리를 잘 보는 의사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어보는 것일 게다. 침을 놓으며 손실 난 펀드에 대하여 말을 한다. 거래은행에서 가입했고 지금은 납입중지상태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중이고 은행에서 펀드를 팔기 시작하면서 묻지마 투자가 가지고 온 현상이기도 했다. 적립식펀드가 무슨 만능이라도 되는 듯이 광고를 하던 시기였으니. 위험에 대한 생각 없이 시작한 펀드가 수익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트리고 있던 때이다. 증권회사에는 확정금리적금은 없다. 비슷한 것이 있다면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상품에 매월 일정한 금액을 불입했다가 목돈을 찾아가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이틀 후 내가 준비해간 자료는 A4용지 한 장이다. 대한민국의 종합주가지수 그래프이다. 자신이 펀드를 시작한 시점에 대한 이해와 주식시장의 궤적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이다. 펀드의 이해를 위해서 많은 자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디테일에 집중하기보다 시장움직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자료이면 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펀드라는 것을 처음 경험한 그는 자신이 가입했던 시기가 모든 사람이 펀드 하나 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별다른 생각 없이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깊은 이해 없이 원금 손실이 나니 납입중지라는 선택을 했다.

 

확정금리상품의 장점은 불확실성이 없다는 것이고 중도해지를 하더라도 원금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고객이 가입해서 손실을 내고 있는 펀드라는 놈은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유일한 장점이라고 하면 확정금리이상의 수익을 볼 수도 있다라는 점이다. 10년이상의 종합주가지수를 보면서 내가 한 설명은 평이하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국가이고 그 경제체제에서 주식시장이 사라질 확율은 없다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주식시장이 존재하는 한 투자된 회사가 모두 동시에 파산하지는 않는 다는 것. 그러니 펀드에 투자해서 원금을 몽땅 날려버리는 깡통계좌는 발생하지 않는다. 간접투자(펀드)가 직접투자와 비교하여 위험이 적은 이유이다. 주식시장은 경제가 성장하는 방향과 같이 움직인다는 것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더라도 파동을 그리면서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는 것도 설명한다. 말을 끝내고 고객의 선택을 기다렸다. 그래도 확정금리적금을 원하면 예금자보호가 되는 한도 내에서 저축은행적금을 권해드릴 작정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펀드를 합시다. 어떤 펀드를 하면 좋을까요?”

 

허리를 치료하는 데에는 족히 3개월이 넘게 걸렸다. 그 동안 그는 나의 고객이 되었고 은행에 중지했던 펀드도 다시 넣기 시작했다. 주거래은행이 있지만 금융상품뿐만 아니라 투자에 관련한 문의사항이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하곤 한다. 물론 시장이 좋지 않을 때 시작한 펀드라 수익도 많이 나왔다. 필요할 때 돈을 쓰고 다시 펀드를 하고 선 순환이 시작되었다.

 

한 韓나라 한비자의 세난(說難)편에는 설득의 어려움에 대하여 자세히 적혀있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거나,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명성을 원하는 이에게 이득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 되고,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이름을 원할 때 이름을 얻는 방법을 말하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한다." (사기열전1, 김원중옮김. 민음사 86)

 

군주와 유세자라는 관계설정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비의 말대로 지식과 말솜씨를 갖추고 있어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설득의 관건이다. 상대의 장점은 드러나게 하고 단점은 덮을 줄 알아야 하며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된다. 군주의 신뢰를 얻고 의심을 받지 않아야 유세자가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듯이 불확실한 투자상품을 팔고 사는 일은 시장에 대한 믿음과 그 상품을 제안하는 이에 대한 신뢰가 동반되어야 한다. 설득은 설득 당하는 이가 행동할 때 비로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상호작용이다. 설득이 어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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