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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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맘 때면 연말 송년회 약속을 잡느라 분주합니다. 올해는 정말로 조용히 보내려고 마음 먹었는데 이틀 만에 12월 달력은 빈틈이 별로 없습니다.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한번 보고 싶다는데 뿌리칠 재간이 내겐 부족합니다. 쓸데 없는 약속을 줄여야 하는 게 저희 과업 중의 하나인데 연말에 한번 얼굴 보는 걸 쓸데 없다고 치부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입니다.
며칠 전 이전 직장 동료들과 올해 첫 송년회를 가졌습니다. 지금은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 없지만 같은 직장에서 십 년을 함께 보낸 동지이며 전우들입니다. 마포의 어느 횟집에서 과메기와 막회 몇 접시를 비우면서 모처럼 긴 수다를 떨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서로 안부를 물었고, 월요병을 없애려면 일요일에 출근하라는 처방을 내린 모 기자에 대한 뒷담화로 시작해서 과거 근무했던 직원들의 생존 확인을 잠시 하면서 과거의 추억을 매만지며 낄낄댔습니다. 현실로 넘어와서는 고위층에 계신 분들을 안주로 좀 씹어주다가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건강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여기까지는 통속적인 송년회의 레퍼토리입니다. 그러다가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몇 년 지낸 후에 다들 뭐하며 살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무기력한 현실과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한탄이 잠깐 흘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력한 현실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실이란 우리가 현실 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그것을 이길 다른 방법이 없다. 밥이라는 경제적 요구 앞에 너무도 쉽게 무릎을 꿇으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작은 세상'은 인연이 없는 것으로 물 건너간다.
- 구본형 칼럼 ‘미래를 경영하는 법’ 중에서
해가 갈수록 현실이 더 크게 보입니다.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진짜 힘든 건 지금이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쥐구멍만큼 작아져 있고 그 앞에 선 나는 초라하고 나약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미래는 절대 다른 사람을 통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으며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겪은 크고 작은 깨달음을 미래의 삶 속에 다시 적용하며 사는 것이 진짜 인생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로등 불빛 아래서 잠시 앉았는데 ‘내년에는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십 년의 직장을 뒤로 하고 새롭게 시작한 지 2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불안합니다. 나 혼자 몸이라면 어떻게든 건사할 자신이 있지만 가족 앞에서는 처신이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은 불안보다는 진짜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가능성의 마음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 인생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수 있구나 라는 기대도 섞여 있습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이 자조에서부터 기대까지 스펙트럼이 넓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때 나는 내게 외쳤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올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새로운 세상의 두려움을 미리 과장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어야 한다. 좀 배고프면 어떠냐. 평생에 한 번 찾은 이 일의 불알을 꽉 쥐고 놓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천복이니 이 길이 내 길이다. 엎어지고 뒹굴어도 이 길 위에서 죽으리라. 때마다 주어진 밥이 사슬이지 않더냐. 굶주림을 두려워하면 들판의 이리가 되지 못한다. 이런 마음이 나를 지배할 때까지 나는 매일 걸었다.
- “떠남과 만남” 중에서
저도 술 기운에 빌려서 가벼운 떨림을 느끼며 집으로, 내일로 조금씩 걸었습니다. Tomorrow is anoth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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