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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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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6일 13시 25분 등록

화산을 가다



“아이고~ 쑨, 우리 쫌만 쉬었다 가자.”


나는 애원하다시피 말하며 주저앉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벌써 6시간째 오르는 중이다. 쑨은 나랑 같은 방에 머무는 중국 대학생으로 이번에 같이 화산 트레킹을 나선 든든한 일행이다. 내가 힘들어하며 뒤쳐지자, 내 보조에 맞춰 같이 가 주었다. 다른 일행이 두명 더 있었지만, 둘은 이미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자고 싶은데 잘 수 없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바람을 피해 앉자마자,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잠결에 예전에 밤을 새워 3천배를 하던, 게 떠올랐다. .밤새 꼬박 7시간 반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절을 하는데... 몸 힘든것보다 졸음을 더 견딜수가 없었다. 1000배를 넘길 시점에선, 나중엔 아예 엎드린 자세로 코박고 한 10분씩 있기도 했다. 졸음이 오는데 자지 못하는 그 미칠 것 같은 심정이 여기서 재생되고 있었다. 아, 정말 그냥 바닥에라도 좀 잤으면 싶다.

 

사실 오늘 일정이 좀 ‘빡셌다’. 오후에 갈 ‘화산 트레킹’ 일정을 위해서 새벽 5시부터 시작했다. 먼저 양귀비 목욕탕으로 알려진 ‘화청지’를 갔다가, ‘진시황의 병마용’을 갔다. 화청지는 원래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병마용도 나을 건 없었다. 규모는 확실히 컸다. 덕분에 대충 보는데도 2시간은 걸렸다. 하지만 이미 사진 등으로 볼만큼 봐서, 실제봐도 큰 감흥은 없었다. 


다만 입장료가 기가 막히게 비쌌다. 여기 뿐 아니라 중국은 어딜가나 입장료가 비싸다. 보통 1만에서 3만원을 왔다갔다 하는데, 1천원이면 현지식당에서 아침 먹을 수 있는 중국 물가를 생각하면 정말 비싼 거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와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중국인이라는 것. 오늘 간 '병마용'만 해도 80%는 중국인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중국인들이 가득했다. 자국민이 자국을 여행하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엄창 비싼 입장료와 관광물가를 생각하면, 그정도 여유가 있는 중국인들이 많다는 뜻이라, 그게 놀라웠다. 중국산은 싸구려고, 중국은 가난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막상 중국와보니 호화로운 것 천지다. 하긴 중국 1%에 꼽히는 부자가 4천만이라니.... 우리는 게임이 안 될 정도로 중산층과 부자가 많겠지. 우리나라도 요즘엔 중국관광객들로먹고 산다는데.  


반나절을 뙤얕볕에 돌아다니다 숙소로 오니, 이미 몸이 파김치다. 하지만 오늘 일정은 이제 시작일 뿐. 아직  ‘화산’이 남아있다. 그것도 열라 빡신 트레킹코스로. 시안에서 화산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려 숙소에서 30분 쉬고 바로 나와야 했다.  

시안에서 1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 택시 타고 30분을 더 가자,

화산 입구가 저만치 보였다. 화산에 도착한 건, 밤 9시가 넘은 시각. 그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웃고 떠드는 중국 젊은이들로 입구가 와글와글거렸다. 화산은, 낮엔 너무 너무 덥기 때문데 이렇게 주로 야간산행을 한단다.

 


화산이라... 적힌 입구를 보며 감회가 남달랐다. 항상 책에서만 보던 ‘화산파’의 근거지, ‘화산’을 내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표를 끊으려고 보니, 매표소에 갔는데, 헉 입장료가 무려 180위안이다, 우리돈으로 치면 3만 5천원쯤 되는 거액 중의 거액. 아니, 내가 산을 가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고이 한번 올라갔다 오겠다는데 이게 말이돼? 궁시렁 궁시렁 대며 입장표를 끊었다. 입구에서 들어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방학도 아닌 평일 저녁이었는데 줄서서 들어갈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드디어 입장, 아니 입산이다. 오늘 우리가 갈 곳은 '서봉'이다. 무려 4900미터나 된다. 8시간이면 올라간다는데, 참 말이 쉽지. 내일이 과연 올까. 내가 정상에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벌써부터 기가 꺾였다. 중국 정부가 산을 입구부터 꼭대기까지 시멘트를 어찌나 잘 발라놨는지, 가는 내내 흙 한번 밟지 않았다. 끝은 보이지도 않는 계단길을 올라가는데, 행렬이 장관이다. 어둠이 자욱해 내 발밑만 간신히 보이는 산속에, 사람들이 든 램프가 저 앞에서부터 저 뒤까지 쭉~~ 이어졌다. 흡사 한 마리의 용을 연상케 했다. 한명만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길이 나오면 길게 줄을 서서 가는데, 그 줄의 규모는 우리나라에선 새해 일출 때만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어디에서나 인해전술


참, 중국이란 나라는 규모가 가늠이 안된다. 고작 자기무덤 지키라고, 수천 개나 되는 실물 크기의 토기를 제작해 자기 무덤에 같이 묻지 않나, 무슨 평일에 산을 가는데 그 큰산을 온통 사람들이 뒤덮을 정도지 않나, 지하철 역은 기차역만하고, 기차역은 공항만하질 않나. 어딜가나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처음 중국 기차를 탔을 때도 기겁했다. 기차칸마다 사람들이 얼마나 빽빽이 들어찼는지, 세면대에 올라간 사람,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 바닥에 앉은 사람, 의자밑에 들어가 자는 사람,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마작하고, 담배피고, 떠들고... 아수라장이 그런 아수라장이 없었다. 정말 중국은 어딜가나 흔뚜어런(사람많다는 뜻)!!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지 않을까 싶다.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난터라 무척 피곤했는데, 밤새 또 걸으려니 죽을 맛이다. 힘든 것 보다 졸음이 쏟아져, 꾸벅꾸벅 거리며 비몽사몽간에 걸음을 옮겼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들이 한 떼가 즐겁게 얘기하며 내 옆을 지나간다.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인데, 남자들은 티를 가슴까지 걷어 올려 배꼽티로 만들고 가거나 아예 벗고 갔다. 여자들도 치마입고서 잘만 올라갔다. 한국의 트레킹 문화를 보여주겠다며, 등산화에 등산바지, 등산점퍼를 입고 뒤처지자 자존심이 상했다. 일출을 보기로 한 ‘서봉’은 무려 4900미터. 그 정상이 지금 내게 히말라야보다 더 아득해보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일정거리를 두고 늘어져 있는 숙소와 음식점에 놀랐다. 4천미터가 넘는 그 높은 곳에서도 한 모퉁이를 돌아가면 음식을 파는 매점과 숙소가 짠~ 하며 나타났고, 또 한모퉁이 돌아서면 짠~ 나 여깄지 하듯 나타났다. 그 모든 곳이 밤샘 영업을 했다. 먹는 걸 유난히 좋아하고 즐기는 민족답게 중국인들은 올라가면서 끊임없이 마시고, 먹셔댔다. 그리고 쓰레기를 모조리 길 옆에 버렸다. 침도 아무데나 퉤퉤 뱉어댔다. 쓰레기통은 넘치고, 길엔 쓰레기가 쌓여가고... 환경의식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대체 저 많은 쓰레기를 어쩔까 싶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침 6시, 걸으며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다. 정상엔 발디딜 틈도 없이 이미 엄청난 인파로 가득했다. 일출을 기다렸는데, 해가 이미 뜬 건지 안뜬건지 모른 상태에서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피곤하고 추워, 어서 빨리 내려가고픈 마음 뿐이었다. 제대로된 일출은 못보고 그냥 내려왔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그 더럽고 쓰레기 천지이던 길이 아주 깨끗해졌던 것. 어제 밤 저 많은 쓰레기를 어찌할꼬 걱정하며 왔는데, 쓰레기통들은 이미 깨끗이 비워졌고 바닥도 깨끗해졌다. 요정이 밤새 갔다왔나! 궁금해졌다. 조금 더 내려와, 그 요정의 정체를 밝혀냈다. 다름아닌, 청소부 아저씨들. 한 사람이 100미터 정도 마다 배치돼 있었는데,  길고 긴 등산로를 일일이 빗자루질 하고 있었다. 마치 골목길 쓸 듯이. 나는 4900미터에서 본 일출보다, 4900미터 되는산에서 일정간격으로 늘어져 빗자루질하고 있는, 그게 더 장관이었다.

 

중국은, 정말 모든 게 상상이상이었다. 안되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다. 사람으로 생기는 문제를 역시사람으로 풀어간다. 

처음 기차역을 갔을 때를 기억한다. 중국기차는 평일, 주말, 행선지 가릴 것 없이 언제나 만차인만큼, 승객수가 어마어마 하다. 그를 수용하려다 보니 기차역도 왠만한 공항규모다. 그런데 그 엄청난 공간을 청소부들이 ‘걸레질’ 하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고, 문을 닦고, 계단을 닦고. 기가찰 노릇인데, 워낙에 많은 인원이 하다보니, 그게 통하더라고. 그런식이면 63빌딩도 걸레질 할 수 있을 듯 했다.


역시, 인해전술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사람이 많고, 사람도 많고, 사람은 많은 중국. 워낙 많은 사람들 속에 부대껴 살아서인지 그들 특유의 독기가 있다. 한번은 기차에서 식당차를 밀고 다니는 젊은 여자를 보았는데, 갓 스무살은 됐을까? 그 눈빛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꽤 이쁜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듯했는데 그 눈만은 독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뭐든 다 해버릴 거 같은 오기에, 누군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독기가 뚝뚝 떨어졌다. 수십만되는 사람들에게 볶여서 만들어질 법한 눈빛이었다. 한국에선 한번도 보지 못한 그 눈빛을, 중국에선 그 후로도 꽤 자주 보았다. 그간 중국에 대해 별 생각도, 관심도 없었는데, 여행다니면서 겪어보니 중국은 정말 정말 만만치 않은 나라다.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문제들을 사람으로 해결해버리는 힘.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이 만들어지고 일어나는 곳, 그게 중국이었다. 


역시나 그 인구만큼 가늠이 안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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