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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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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7일 13시 53분 등록

그 사람은 내가 여덟살 때부터 죽 보아왔는데, 부모들과 함께 보러 갔을 때 나와 동생 앨리는 이 사람을 더 잘 보기 위해 앞자리로 옮기곤 했다. 그렇게 훌륭하게 북을 치는 사람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한 곡에서 북을 치는 기회란 단 두 번밖에 없는데, 북을 치지 않고 있을 때에도 그는 절대로 지루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러다가 북 치는 차례가 되면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그야말로 멋지고 아름답게 북을 치곤 했다.

p.202, 호밀밭의 파수꾼, 소담출판사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이런 장면이 그저 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연의 왕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존재했다. 하찮은 직급의 시덥잖은 일일지라도 이 회의실이, 이 보고가 그의 무대였다. 그 사람이 놓여있는 모든 상황과 맥락이 적재적소가 되어 사건들이 꿰어졌다. 태생적 주인공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고, 자신감에 차있었으며 열정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업무가 앞으로의 일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 알고 있었다.

 

 우리가 감상하는 모든 형태의 예술은 주인공의 이야기이며, 변모의 과정이다. 어떤 희곡도 1막에서 그저 들러리였던 사람이 2막에서 극적으로 데뷔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극 초반에 하품이 나올 정도의 평범함과 지리함은 훗날 벌어질 극적이고 놀라운 사건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초석 같은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하는 일과 전체의 사업, 나의 비전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깨닫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내가 주연인 이야기의 1막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서 나의 소명이 나타났을 때, 내가 충분히 그 의미와 깊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어야 된다는 생각이 나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단련시키는 데도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는 전보다 실수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게 되었고, 불편한 일들에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좀더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려 애썼고, 좀더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조금 더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자각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계획과 정치의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말자. 대신 지금 이 시간이 나의 인생 2막을 위한 1막이라고 생각해보자. 내 곁에는 여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이 모든 우연한 골목들을 지나 나의 필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른 길로 갔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나만의 깊은 숲이 분명하다.

 

우연이 운명이 되는 이야기는 그 동안 문학이 다루어온 흔하고도 멋진 만남의 방식이었듯이, 우리 역시 현실 속에서 운명적 우연을 겪게 된다. 그 우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이 세상에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홀연 깨닫게 된다. 이런 우연은 거듭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점점 더 높이 뛰어오르게 된다. 우연이 그저 우연으로 끝나고 마는 무수한 버림의 과정을 지나 우연이 운명이 될 때의 조건은 단 하나, ‘바로 때가 무르익어 감이 떨어지듯필연이 되는 것이다.

p.14, 깊은 인생, 구본형

 

 

 

 

IP *.128.229.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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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8 12:54:22 *.38.189.36
해언의 글에서 운명적 낙관이 느껴지네. 그걸 1막에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그후 인생에서 천양지차다. 그러므로 너는 깊은 인생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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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3 11:21:06 *.64.231.52

병곤 댓글에 아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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