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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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 천주교 공원묘지가 있다. 5년전 돌아가신 아버님을
모신 곳이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1시간 남짓 걸린다. 돌아가신 후 처음 2년 정도는 매월 한번 찾아가서 묘를 돌보곤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횟수가 뜸해져 이제는 두 달에 한번 가기도 힘들다. 당시에는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많은 묘들을 보면서 자식과 후손들의 무관심에 혀를 차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처지가 아닌 것 같다. 생전에
내게 쏟은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갈수록 아버님이 그리워지는데 자주 찾아가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벌초하러 갔다. 고속도로 정체를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갔다. 아버님을 모신 묘역으로 가는 도중에 많은 묘를 지나치게 되는데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묘지가 하나 있었다. 묘는 잡초 하나 없이 항상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묘 경계에는 하얀 국화가
심어져 있었다. 작은 대리석 묘비 앞 제단에는 유리 상자가 놓여 있는데 그 안에는 고인의 사진, 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 다정하게 찍은 빛 바랜 사진, 성모마리아 상, 그리고 성물 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극 정성으로 그 묘지를 돌보는 백발의 한 노인이 있었다, 매번
갈 때 마다 그 분은 성모송을 틀어놓고 먼저간 아내의 영정을 보면서 상념에 젖어 있었다. 나중에 그
노인한테 들은 얘기다. 아내는 5,6년 전에 70이 안되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죽기 전 30 여년의 긴 세월을
병상에 있었다고 했다. 아내가 죽은 후 그 노인은 묘지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 매일 묘지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긴 병간호에 심신이 지쳤을 텐데 아내 사후에도 매일 묘를 찾는다고 하니 집착이라는 단어로 그 분의 마음을 폄하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아내를 향한 지고 지순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듯싶다. 금실 좋은 부부가 노년에 배우자를 잃으면 특히, 남자는 삶의 의욕을
잃어 먼저 간 아내 뒤를 따라 가는 안타까운 사연도 종종 접한다. 앞서 말한 노인은 남은 삶의 목적이
생전의 병상의 아내를 돌보듯 아내의 묘지를 관리하는 것인 아닌가 한다.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래도 그 노인의 얼굴에는 체념과 포기의 표정을 찾을 수 없었다.그
보다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감과 책임감이 엿보였다.
지난 두 달 가량 부산에 거주하면서 한 지역신문의 기획기사가 생각이 난다.
부산 지역의 고독사를 다룬 기획물이었다. 그 신문에 따르면 2013년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고독사를 통계 분석한 결과, 65세 이후의 노인보다는 사 오십 대의 중년. 특히 남성들의 죽음이 과반수를 넘었다. 경제적 궁핍, 무직, 그리고 이혼 등의 사유로 홀로 남겨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망자의 시신이 몇 개월 또는 몇 년이 지나 발견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 이요, 우리 자신이 이야기일 수도 있다.
몇몇 업종만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경기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사십
대 후반, 오십 대 초반에 일터에서 내쫓기는 사람들, 몇
개월 또는 몇 년치의 월급을 받아 명예 퇴직을 하든 앞날이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당장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눈 높이만 낮추면 주변에 할 일이 많다.
한달 전에 오십이 넘어 재무팀장으로 입사한 사람은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에 한때 잘나가는 증권회사 간부요, 기업합병 전문 컨설턴트였다. 몇 차례 사업을 하다 망해 주유소 아르바이트, 일당 육만원 건설현장 잡부를 수년간 했다. 아내, 자식들, 그리고 더 중요한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고 했다. 살아야 할 목적이 있으니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일을 해야 만 했던 것이다.
무슨 이유가 되었건 살아야 할 목적을 찾으면 된다. 그 목적이
보 잘 것 없더라도 그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영화나 영광을 거론할 필요
없다. 지금 자신이 모습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살아야 한다는 일념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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