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스테리
- 조회 수 1917
- 댓글 수 7
- 추천 수 0
N0 32. 감히 여자애가? 2013년 12월 9일 오미경
일요일 아침이다. 토요일 새벽부터 서둘러 한양 다녀오느라 힘들었는지. 주말마다 쉬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몸에 무리가 갔다. 잠잘 때 누가 나를 때린 것처럼 어깨며 팔이며 종아리며 쑤시고 아팠다. 옛날 어른들이 몸이 쑤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비가 오려는지. 일기예보가 따로 없는듯....
토요일 학술제가 늦게 끝나서 한양 숙소에서 잠을 자고 온 다보기가 일요일 오전 11시경에 들어왔다. 잠시 샤워를 마친 다보기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딸이면서도 늘 나에게 친구처럼 재밌는 이야기를 해준다. 손을 잡고 걸었다. 다보기가 말을 했다.
어제 학술제 마시고 회식을 하는데, 모두 술을 마셨다고 했다. 와인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참고로 아직 스물살도 안된 청소년 그룹이다. 그런데 남자 k가 술 잘 마신다면서 원샷을 계속 하더란다. 이윽고 k는 술이 취했고 다보기와 또 다른 남자 학우가 부축을 하면서 숙소에 데려다 주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 남자 k 입에서 “감히 여자애가 어디다 남자 어깨에 손을 대고.... 씩~~~씩~~~~씩”
“ 엄마, k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했지?”
“그때, 넌 어떻게 했어”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었어. 그리고 그냥 먼저 간다하면서 여자 숙소로 돌아왔지.”
“음....다보기 잘 행동했네. 그런데 평소 수업할 때는 그 k 어떠니?”
“과제도 잘 해오지 않고, 발표할 때나 토론할때도 그냥 가만히 듣고 있어. 자기 의사 표현을 별로 하지 않아. ”
“사람이 말이야 술을 마시면 억압되어 있던 무의식이 붕~~하고 풍선처럼 떠올라.
풍선도 떠오르다가 어느 순간 되면 빵~~하고 터지지. 내 생각에는 아마도 k아빠가 k엄마에게 그런 말- 여자가 어떻고, 감히 여자가- 을 평상시에 사용하지 않았을까. 부모님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자란 k는 배우는게learning 아니라 습득acquisition을 하게 된 거고, 알코올이 피를 타고 흘러들어가서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을 들어 올린거지. 평상시는 말도 별로 없었는데 , 술이 들어가니 평소에 너에게 느낀 열등한 감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걸꺼야. ”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남자다움을 상징한다. 그 증거로 미국의 남성 작가들은 지금도 전통적으로 술꾼이라는 사실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동시에 극히 융통성이 부족한 사람이기도 한 미국의 남성 작다들은 지금도 여전히 고전적인 방법으로 남자다움을 증명하려 한다. 헤밍웨이처럼 직접 사자를 죽이는 남자도 있고, 너대니얼 웨스트처멈 오리를 쏘는 남자도 있다. - 미국 작가 폴 셀로-
한국 사회에서 ‘남자’는 한때 (물론 지금도 부분적으로 그렇지만) 감투가 아니었던가.
내 어린 시절도 생각난다. 우리 엄마는 나와 두 살 위인 오빠를 장손이라는 이유로
떠받들었던 같다. 자고 있는 오빠 머리위로 지나가던가 몸을 넘어가면 “감히 여자가 남자 머리위로 지나간다고” 야단맞았었다. 피해자나 가해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오빠와 이야기를 하면서 알았다.
오빠도 엄마 아빠가 기대했던 만큼 자신의 행동이 따라주지 못해서 늘 마음한구석이 바위덩어리를 지고 다닌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오직 남자라는 이유로, 오빠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다고 했다. 공부를 잘한 나와 계속 비교를 당한 그 마음을 아냐고 어느날 오빠는 말했다.
“어유, 아들이 딸보다 공부를 더 잘해야 하는데, 어째 반대로 되어가지고.”
오빠는 그 말을 들을때마다,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했다. '남의 기대에 부응 못하는 그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라는 짠한 마음이 들었고, 한때 미워했던 마음도 미안했다.
스파르타 전사들은 황금으로 능력을 과시할 때 존재감을 느낀다. 반대로 강력한 전사임을 증명할 화려한 전리품이나 이력이 없으면 눈에 띄게 기가 죽어 어느 순간 삐둘어지고 만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명령하는 그리스의 군신 아레스의 신전을 저마다 갖고 있는 남자들은 바로 그 때문에 수많은 순간 연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남인숙-
며칠전 사건이 떠올랐다.
태식이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다. 승헌이도 태식이와 같은 1학년 남학생이다. 영수 특별반 아이들이라 공부를 꽤나 한다.
태식이는 수학에 일가견이 있으며, 아주 잘한다. 영어는 수학에 비해 약간 어려워한다. 복도를 지나갈 때였다. 승헌이가 간절한 눈빛을 하면서, 두 손으로 태식이 손을 잡고 무릎을 꿇으며 스마트폰으로 한번 만 게임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 모습을 본 태식이 말이 걸작이었다.
" 야~~ 남자는 함부로 무릎을 꿇는게 아니야"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게 있었다. 며칠 전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남자들에게는 무의식 깊이 사회가 강요한 '스파르타 증후군'이 있다는 거였다.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로부터 아빠로부터 남자의 역할을 강요받는다. 사내아이가 눈물을 흘려서는 안되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여자아이들이나 하는 것이지 남자가 체신머리 없게...
유치원이나 학교를 가도 사회는 남자들에게 남자의 역할을 강요한다.
어느새 남자는 '자신이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감정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사회, 남자라는 이유로 감정표출은 약함을 암시한다.
‘남자다움의 짐’을 안고 살아가는 한국남성들은 어떠할까?
“남자답다는 말 속에는 책임과 의무, 용기와 기백, 상명하복과 무리에 헌신하기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힘이 세고 싸움을 잘하고, 아프거나 울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바보 같은 음담패설도 잘하고, 만능 스포츠맨이고 등등. 인류 역사와 감께 이어져온 ‘남자답다’는 말 속에는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우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이미지도 들어있다. 전쟁이 없는 현대에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남성다움이라 여긴다.
-남자를 위하여, 김형경-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요즘에는 맞벌이로 인해 남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물론 여자들이 퇴근해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말이다.
여자 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교육받고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그 아이도 같이 책임져야 하는거 아냐? 왜 여자는 육아에 필수고 남자는 선택인거야. 그 아이를 나 혼자 낳았냐구?.
같이 돈벌고 들어와서 어린이집에서 아이 데려오면 내가 집안 청소하고 빨래하는 동안 최소한 아이는 봐줘야 하는거 아냐. 아이 보면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남편은 리모콘으로 tv에 눈을 박아서 어쩔때는 tv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
물론 각각의 예화지만,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남성우선주의가 낳은 잔재가 그래도 많이 좋아지지 않았던가. 내가 자랄 때보다 나의 딸이 자란 세대가 다르고, 나의 딸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세대또한 남녀 차별이 더 적은 시대가 되지 않겠는가.
어떤 남성이 말했다. 자신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 휴게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여자 청소부가 들어와 볼일 보고 있는 곳에 걸레질을 하는데. 민망해서 볼일도 제대로 못 본다고 한다. 만약 남자청소부가 여자 화장실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성희롱, 성추행이라고 하면서 여성 단체에서 들고 일어날 거라고.
남자와 여자는 각각의 성역할이 다르다. 오로지 여자만이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며, 남자들은 여자에게 임신시킬 역할이 있다. 각자 성역할을 존중해주고, 성역할이 아닌 남자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거라 기대한다.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의 역할보다 한 인간으로서 교육하고 있지 않던가.
다보기가 사주는 맛있는 아구찜을 먹으면서 마냥 행복하다. 콩나물은 별로 안먹고 아구만 먹은 우리 둘을 보고 서빙하는 사장님 왈, “아구만 드셨네요”
우리는 메인을 즐긴다. 삶을 간결하게 사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삶의 메인이 무엇이지에 대한 북극성을 정해둔다. 헤매더라도 북극성이 라는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를 사용하는 법을 배울거니까.
볶음밥을 다 먹을 무렵, 다보기가 계속 말을 이어간다.
“ 선생님이 학술제 끝나고 말씀해주셨어. ”
“능력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더 많이 기억하는 법이라구.
공동체에서 살아남는 법 중에 하나는 잘 하는것보다 그냥 견디는거라구. 견디는 사람만이 마지막에 남는 거라구“
나도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말이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즐기는 사람은 질긴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오늘 다보기는 나에게 또 하나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밥 먹고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서 그네도 타보고 서로 밀어주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닮았다. 생존 경쟁을 하다보면 인간이라는 아름다움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남성 여성 어느 한쪽의 희생이 아닌, '너 살고 나 살기'라는 생존모형으로 두 성이 협심해서 살아갔기에 지금까지 발전해오지 않았을까. 다보기는 오늘도 또 하나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니 부럽네요. 나중에 저도 딸 나으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전 아이 낳으면 남편이 육아를 좀 했으면 해요. 제 성정이 좀 급해서 아이를 힘들게 할 것 같고... 남편이 더 자상하게 잘 할 듯.
우리 세대가 좀 그래요. 부모님들이 남자, 남자가 더 능력있고, 남자 먼저, 여자가 감히, 여자가 어떻게, 여자가, 하는 것을 들으며 자라서 여러저기 상처받고, 상처주고 살고 있죠. 딸들 때문에 아들들도 역차별 받고 그러죠. 그게 언제쯤 풀어지나 몰라요. 자기 새끼낳아 기를 때쯤에야 아,내가 미안한 짓 많이했구나 하면 그건 너무 오랫동안 미안하고, 힘든거잖아요. 그런 바보 같은 짓 안했으면 좋겠어요.
한때 공지영, 김형경, 남인숙 책을 끼고 지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여자가 감히..."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부르르 떨며 세상을 온 여자를 모두 지켜낼 태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ㅎㅎㅎㅎ
세 사람의 책 중에는 남인숙이 제일 편안해 보인다...
20대의 시작점에 쓴 우리 다보기.
한번쯤은 겪게되는 사회 속 남자, 여자...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 금성에 살고 화성에 살고....^^
다양한 경험과 깊은 고민 속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멋진 뇨자로 커가지 않을까 싶당.
미경이 닮았으면 유머 감각도 한 유머 하겠지?
다보기의 멋진 20대를 위하여~~!!!
그리고 k는 세상 속 누나들 여동상들 틈에서 좀 정리되겠쥐?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832 | 2-33. 태몽일 지도 모르는 꿈 [4] | 콩두 | 2013.12.20 | 9453 |
3831 | #18_생물의 겨울나기 | 서연 | 2013.12.17 | 2493 |
3830 | [2-32]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2] | 콩두 | 2013.12.17 | 2307 |
3829 | [No.8-3]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 - 서은경 [3] | 서은경 | 2013.12.16 | 2176 |
3828 | 산다는 것은 [2] | 미스테리 | 2013.12.16 | 1977 |
3827 | 지난 겨울 [3] | 제이와이 | 2013.12.16 | 1910 |
3826 |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3] | 유형선 | 2013.12.16 | 1920 |
3825 | 인연은 타이밍이다. [2] | 라비나비 | 2013.12.16 | 6484 |
3824 | #28. 진정, 작가가 될 수 있을까? [5] | 땟쑤나무 | 2013.12.16 | 1946 |
3823 | #29. 임원이 꿈인 부서장 P의 서글픈 이야기 [2] | 쭌영 | 2013.12.15 | 2246 |
3822 | [2-31] 사랑이 올 때 경계경보가 울리는 여자를 위한 세 개의 사과 | 콩두 | 2013.12.12 | 4284 |
3821 | [2-30] 신, 영웅을 기른 양모, 양부들 | 콩두 | 2013.12.10 | 2654 |
3820 |
[No.8-2] "잘 살아보세...." - 서은경 ![]() | 서은경 | 2013.12.09 | 2005 |
» | N0 32. 감히 여자애가? [7] | 미스테리 | 2013.12.09 | 1917 |
3818 | 목적있는 삶 [3] | 제이와이 | 2013.12.09 | 2101 |
3817 |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 [2] | 라비나비 | 2013.12.09 | 1937 |
3816 | 여름을 지나는 나무처럼 [1] | 유형선 | 2013.12.09 | 2097 |
3815 | Climbing - 세상이라는 것 | 書元 | 2013.12.08 | 1993 |
3814 |
#27. 생의 간결함을 추구하자. ![]() | 땟쑤나무 | 2013.12.08 | 5708 |
3813 | [2-29] 미래의 아이에게 [4] | 콩두 | 2013.12.07 | 29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