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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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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5일 23시 35분 등록

부서장인 P는 부장이 된지 올해로 3년째이다. 이미 과장때부터 일잘하고 열심히 한다고 인정을 받아오던 그였기에, 부장 승진까지는 일사천리였다. P는 항상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했으며, 관리자가 되어서도 누구보다 꼼꼼하게 일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그가 상사에게 보내는 메일은 빈틈이 없었다. 요약은 깔끔했고, 자료는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또 업무 시간에도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아는 것도 많았다. 회의를 하면 그는 사람들을 이끌어가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런 그의 꼼꼼함과 박식함은 빈틈없는 임원들에게 신뢰감을 주었고, 임원들은 P에게 더 많은 인력과 업무를 주었다. P는 이런 과도한 업무에 도망치기보다는 정면으로 부딪쳤다. 더 열심히 일을 했으며, 가끔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였다 

게다가 P는 굉장히 호감형이다. 큰 풍체와 서글서글한 눈매는 누가봐도 좋은 인상을 준다. 항상 꽂꽂하게 다린 폴로셔츠와 베이지색 바지, 적당히 낡은 구두는 그가 곱게 자랐다는 느낌을 주었다. 굳이 화려하게 꾸미거나 멋을 내지 않아도 중후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항상 허리를 꽂꽂이 펴고 일을 했는데, 멀리서도 모니터를 노려보는 P의 모습을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른 자세로 뭔가에 집중하는 모습은 매력이 있었다. 설령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런 P의 모습에서 훌륭한 직장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P는 목소리마저 멋있다. 저음의 남성적인 목소리는 가볍거나 천박한 느낌을 주지 않았으며, 말투는 젠틀하여 항상 신뢰감과 안전감을 주었다 

가끔 회의에서나 메일을 통해서 만나본 P는 배우고 싶은 사람이었다. 실력과 매너까지 있는 직장상사.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인물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P에게는 안좋은 소문들이 뒤따랐다. 그와 같이 일해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생생한 증언들. '상사가 일을 잘하니 아랫사람이 힘들다'는 주제로 여러가지 소문들이 퍼졌다. 이게 문제일까 싶으면서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볼멘소리를 듣다보니 나도 이제 P를 좋게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직 개편과 함께 난 P밑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P와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그가 외로워 보인다는 것이였다. 그는 직장에서는 성공받는 직장이였는지 모르지만 가정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두딸의 아버지였지만 항상 새벽에 들어오는 남자를 가정에서는 반길리가 없었다. 소문으로는 이혼위기를 넘겼다고 하던데, 실제 그 소문이 있고 나서 항상 잠깐 저녁 먹으로 집으로 가는 P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한시간의 저녁시간을 부리나케 집에 갔다 오는 것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려는 모양이였다. P는 가정의 모든 문제가 가족들과 함께보내는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자신했었다. 사실 그는 매우 가정적인 남자다. 딸들이 크리스마스때 보냈다는 손편지를 자랑스럽게 사무실 파티션에 붙여놓는다. 딸들과의 통화는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는 아마 이 직업, 지금 하는 일이 아니였다면 충분히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P를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어느정도 동감한다. 적어도 그는 고집불통, 막무가내의 전통적 아버지상은 아니였다. 

하지만 문제는 가정만이 아니였다. P가 일중독에 빠지고 나서 직장에서도 하나둘씩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는 팀 내부의 문제였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가지 일을 맡았고, 상사가 시키는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다. 완벽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적어도 P에게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았다. 리포트에 들어간 단어는 그 토시 하나라도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하들의 리포트에 수많은 질문과 수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정규 근무시간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질문을 하거나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사람들을 다그쳤다 

처음에 P의 팀으로 들어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은근히 P를 왕따시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미묘하고 불편한 공기가 내 눈에는 조금씩 보였다. P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처럼 일해주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러지 않은 팀원들에게 약간의 짜증과 약간의 섭섭함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P의 업무량은 누가봐도 비정상적이였다. 하루 14시간~16시간 근무는, 아무리 일에 빠진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도를 넘었다. 사람들은 P를 불편해 하고 무서워했으며, 어떤 이는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P는 어느날 술자리에서 팀원들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의 꿈은 이곳에서 임원이 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조금만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콧방귀를 치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난 그의 진솔한 고백이 맘에 들었다. 그를 도와주는 것과는 별개로 그 발언을 통해, 왜 그가 워커 홀릭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윗사람의 지시나 명령에는 절대 복종했고, 업무처리를 완벽하게 하려고 했다. 상무와의 술자리에서는 버섯발로 나가 상무를 맞았으며 옆에서 온간 아부성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부사장과의 정규회의에서는 조폭이 하는 90도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주었는데, 아마 꼰대같은 부사장은 특히 그 인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끔 그 이질적인 행동에 거부감이 들지만, 그가 임원이 되기 위해 비굴함을 껴안으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P를 모두가 이해하는 것은 아니였다. 대외적으로 정치를 하면서, P는 점점 같이 커피를 마실 동료들을 잃어갔다. 같은 등급의 수석들은 P에게 저질적인 별명을 가져다 붙이고 경계했으며, 그의 워커 홀릭 기질때문에 팀내의 부하직원들과의 사이도 소원해져갔다. 회의시간에 호탕하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도 공허하게 들렸다. 그가 웃을때 같이 웃어주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다는 것을.. 모두들 P에게 사무적으로 대한다는 걸 P도 이제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는듯 하다. 자상하고 가정적이지만 가정불화에 시달리고, 회사에서 어떤 사람보다 열심히 제대로 일하지만 행복해보이지 않는 P.  

1년후, P의 팀을 떠났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몇번의 팀을 옮겨 오면서 점점 고립되어 가는 P의 소식을 들었다. P는 이제 자신의 임원의 꿈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10년간 열심히 달려왔는데 여기서 멈추기에는 너무 억울할 것이다. 더욱 정치적이며, 팀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루 16시간씩 일하고도 임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 그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그가 열심히 일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을 임원이 되어 보상받으려는 P의 모습은 안스럽고 처절해 보였다. 

P는 성공한 CEO의 전기에서 보이는 화려한 임원의 삶과 승리의 과정을 꿈꿔왔겠지만, 현실에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잃었다. 일에서 얻는 기쁨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 기쁨을 많이 희생했다. P의 선택과 삶의 방식에 왈가불가할 마음이 없지만, 이건 많은 이들이 인정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P가 임원이 되면 더 많은 희생과 업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돈과 명성을 얻겠지만, 가족과 건강 그리고 여유를 잃을지 모른다. 그에게 업무적인 성취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면 할말 없지만, 왜 많은 이들이 죽기 직전에 일만하고 살았던 것을 후회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오늘도 P는 열심히 일한다. 주말도 평일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일을 한다. 사장단 발표가 나고, P의 라이벌이 다른 팀 상무로 승진해 나가면서 이제 P는 상무를 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되었다. 한때는 라이벌이 상무로 승진하는 것을 쓸쓸히 지켜보는 P이지만, 그는 이런 걸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있고, 강하며, 업무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치밀했다. 아마 다음 진급을 기회로 삼고 있을 것이다. P가 임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가 꼭 임원이 되기를 바란다. 임원이 꿈인 P, 부디 꼭 그 꿈을 이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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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7 17:27:39 *.91.142.58

참.. 씁쓸하구만.

나 역시 그 분이 꼭 임원이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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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8 00:13:49 *.111.5.119
나도 그가 임원이 되길 바란다
묵묵히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며 미쳐서 하는 사람은 임원이 거의 된다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는 희생하거나 잃는 법
잃은 것들의 그림자를 부여안고 슬퍼하기보다 얻은 것에 대해 집중하며 감사하면 행복해 지는것 같아

그리고 임원이 되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 물론 그 안에 또 다른 어려움이 있지만 한 차원 넓어지는 시야에 들어서고... 그 분야가 좋고 평생 그곳을 팔 생각이면 이왕 고생하는 거, 치열히 일하여 임원이 되는것도 좋은 일
삶의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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