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3년 12월 16일 00시 43분 등록

며칠 전 같이 공부를 하는 형을 만났다. 직장(또는 직상상사)의 비합리성과 사투를 벌이며 몸도 마음도 꽤나 지쳐있던 우리들, 퇴근 시간 즈음 형이 보낸 문자가 아니었으면 그날도 야근을 할 기세였지만, 형의 반가운 문자는 내게 야근탈출통로였다. 형을 만나 명동의 단골 생태집에 갔다. 생대구탕과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 ) 시작한 술자리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형의 상사이야기, 나의 회사 이야기, 우리가 쓰고 싶은 책이야기, 우리가 왜 그런 주제를 이야기하려 하는지 등등......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 나는 형에게 한 가지 큰 고민을 이야기했다.

'제가 책을 쓸 수 있을까요?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연말이 되면서 회사가 바빠지고 야근이 늘어났다. 직장인들이야 늘상 있는 일이긴 하지만, 한 몸으로 두가지를 해야하는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결과적으로 현재 하고 있는 공부도 겨우 진도를 빼나가는, 즉 현상유지 정도이다. 이래서야 매가 토끼를 잡는 방식, 즉 수직으로 하강했다가 평균속력의 두배로 먹이를 낚아채는 것처럼,  어느 순간 '' 하고 나의 실력이 늘겠는가? 우회축적이 되겠느냐는 말이다. 글도 책도 접한지 얼마 안되는 나 이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요 며칠 내 머리속을 순간 순간 찾아오는 녀석은 자꾸만 이렇게 질문 한다. '너가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날고 또 나는 사람들 많은데, 과연 너란 놈이 가능할까?' 질문과 고민은 계속됐지만 난 그 답을 유보해왔다. 딱히 답이 없었기도 했고, 답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책을 쓰려 마음 먹었을 때는 일종의 재테크와 같은 개념이었다. '정기적으로 책을 써서 기본 이상만 판매된다면, 나에게 부수입이 생길 것이다. 잘하면 대박날지도 모른다......' 이런 안이하고 허무맹랑하고도 세속적인 이유로 책쓰기를 생각했다. 농담반 진담반 그렇게 생각한게 수년 전이지만, 우연치 않은 기회를 잡아 지난해부터 크고 작게 책을 읽고 글쓰는 연습을 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책 읽기가 내 인생을 나답게 사는데 꽤 도움이 되고, 글쓰기가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사실말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된 뒤부터 책의 경제성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취미삼아, 자기계발 삼아 하다보면 책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책을 못써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맘이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올 봄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 거의 8개월이 지나가는 현재의 나를 봤을 때 심히 의심스럽다. 과연 책을 쓸 수 있을지..... 다시금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의 글쓰기는 '자유분방, 닥치는대로' 스타일이다. 짧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이렇게 짤막하게나마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닥치는대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대로 쓰기 때문이다. 문법도 철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많은 글쓰기 코칭 강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주저하지 않고 그냥 쓴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나면 이내 이런 고민이 생긴다. '내 글은 과연 사람들에게 잘 읽힐까? 사람들은 내 글에 공감할까? 이정도 주제와 실력으로 책 한 권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도대체 무얼 쓰겠다는 말인가?'

9년여간의 직자생활을 하며 내가 가진 큰 깨달음은 일상이 아깝다는 것이었다. 덧없이 흘러가는 일상,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 사람들의 모습과 꽃과 나무와 같은 생명의 움직임. 시간의 흐름, 우정, 소통, 여유, 여행 등 세상에 흩뿌려져 있는 다양한 가치들 -을 뒤로하고 오직 먹고 사는 문제, 성공하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내 모습이 어느 순간 한심해보였다. 증발해버리는 일상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첫 책의 주제를 일상으로 잡았다. '내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 내가 무시하거나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들을 조금 더 자세히 그리고 정성들여 들여다 보면 새로운 가치와 느낌이 올라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였다. 만연된 자본주의로 돈과 성공이 판치는 세상에 이름없고 얼굴없는 한 직장인이 쓰는 일상이야기가 뭐 그래 대수겠느냐마는,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을까?

" 인생에는 영적 차원이 있으며,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 bodyshop 창립자 아니타 로딕

기업가는 기업가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사회와 그리고 수 많은 경쟁자와 맞장을 떠야 한다. 전문 컨설턴트가 당신의 방식은 구식이라고 하든, 경쟁자가 모방과 마케팅, 네트워크와 흑색선전으로 그들을 공격하든, 기업가는 기업의 가치를 대변하는 기업가 정신을 뚝심있게 밀고 나아야 한다. 그 안에 자신의 영혼을 심고, 이를 통해 직원들의 영혼과 마음에 울림을 주어야 한다. 결국 이 바이러스와 같은 정신은 고객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작가도 비슷하지 않을까? 오히려 기업가보다도 더 자신의 글에 영혼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을 현실과 맞닿아 쓰든, 허구의 인물 안에 녹여 표현하든, 자신만의 주관, 즉 작가관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는 진정성의 문제일수도, 영적인 차원일 수도 있다. 글을 쓰는데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고 생각한 이외수는 그 뒤로 4년동안을 자신의 집 내부에 만든 감옥 안에서 보내지 않았는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우리가 그 날 찾은 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답을 찾으려 만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술한잔 하며 직장생활에 찌든 우리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우리가 간 집은 명동에서 한치와 생태로 꽤나 유명한 집이었다. 쌀쌀한 날씨 뜨거운 생태국물로 속을 달래려 했는데, 이게 왠걸 생태가 아닌 생대구를 팔고 있었던 것. 몇 달 전부터 일본 원전사태의 부작용으로 방사능유출 여부가 이슈로 떠오른 여파인 듯 했다. 100% 일본 수입인 생태(냉장 명태)를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생대구로 바꾼 뒤 그럭저럭 영업을 하고 있었다.

외부환경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적이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경기 침체를 계속되고  있고 유리봉투인 직장인들의 벌이는 물가인상률을 따라잡지 못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뭔가 문제가 될 것 같은 것은 가까이하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들이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 중의 하나이고 그들이 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영혼을 담아 그들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IP *.218.137.71

프로필 이미지
2013.12.16 10:48:44 *.252.144.139

저도 대수씨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도 출판사에게 계속 거절을 당하면서도 '내가 정말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계속 물었죠.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누구도 그 대답을 줄 수는 없는것 같아요.

자신이 작가가 되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수 밖에는요.

그리고 막상 책을 내고 나니 이런 생각도 들어요.

'아, 책을 쓸 수는 있지만 잘 팔리는 책을 쓰기는 어려운거구나!'

이 역시 앞의 질문과 같은 맥락이겠죠.

잘 팔리는 책을 써서 '나도 잘 팔리는 책을 썼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수 밖에요.

너무 말 장난인가? ㅋㅋ

암튼 응원합니다. 기운내세요 :)

프로필 이미지
2013.12.17 18:12:41 *.91.142.58

대수야...

 

내년엔 내가 좀 더 자주 너랑 형선이랑 같이 1잔 하는 기회를 만들도록 하마~~!

내가 열심히 잔 채워주며 motivator가 되어 줄게!

넌 분명히 잘 쓸수있어... 왜냐구?! 느낌 아니까~~!!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대수 너만의 따뜻한 시선이 있다는 걸 알거든~~ ^^

 

그나저나 12월 30날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ㅎㅎ

프로필 이미지
2013.12.18 00:16:46 *.111.5.119
매일같이 고민되지만 되고자 하면
의심말고 믿고 죽 나가자!
지금 아주 잘 하고 있잖아?
그리고 이런 고민 역시 작가적인 고민이야 운명이야 대수야^*^
프로필 이미지
2013.12.18 01:12:32 *.169.218.58

오빠도 딱 어울리는 주제만 잡으면 촤악~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갖고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있거든요~ ^^

 

오빠 글을 읽다가 오래전 생각했다가 사라진 주제가 생각났어요.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공사장]을 주제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

빌딩이 들어서고 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상태.

삐까뻔쩍한 지금의 모습들이 간직했던 예전의 모습들.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으로 가득한 공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분주함이 가장 솔직해 보이는 순간.

참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겠다 생각했었어요.

근데 왜 오빠 글에서 이 주제가 다시 떠올랐나 모르겠어요. ^^

프로필 이미지
2013.12.27 20:32:58 *.209.202.178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나이기 때문에 쓸 수 있고 말고지요.

 

이제 연구소에 꽤 많은 노하우가 쌓여 있어 책쓰기,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팔리는 책은 다른 문제겠지만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60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3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7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6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49
5201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79
5200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9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89
5198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6
519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7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798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4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9
5193 감사하는 마음 [3] 정산...^^ 2014.06.17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