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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6일 11시 20분 등록

                       산다는 것은.                                                                                        오미경

 

주말마다 어디를 다니느라 집에 있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가만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늘 쫒기고 바쁘게 사는 삶. 뭔가를 해야 하는 일들이 쌓여있고 어떤 때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많다. 어느 순간 시간이 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었다. 돌고 도는 원 속에 있었다.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인 시간으로 살아야 했다. 시장에 가면 노인들이 많다. 나도 저렇게 늙어갈텐데, 그러다가 홀연히 바람처럼 가겠지. 내 딸을 보면, ‘나는 저만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흔을 넘은 사람들을 볼 때, 어떻게 그 나이 들도록 사나 했었다.’ 어느 덧 마흔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삶의 길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살아있는지, 숨을 쉬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때에 맞게 주어진 일을 하고 할 일들을 하면서 나이 들어서 혹은 갑자기 병으로 사고로 삶을 마감하게 될 때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요즈음 ‘사는게 뭘까?’라는 생각을 자주 가지게 된다. 고칠 수 없는 평생 안고가야 하는 병일꺼야?

 

해야 할 과제가 있었지만, 내 손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갔다. 빌려다 놓고 읽지 못했었다. 1~10권까지 읽었다. 이성계의 건국부터 시작해 이 방원의 1,2차 왕자의 난, 문종이 세종을 도와 측우기 제작, 단종의 죽음, 수양의 외척 배척, 예종의 갑작스런 죽음. 성종, 연산군의 금표 정책, 중종의 살아남기, 어진 인종의 죽으므로 안타까운 심정, 문종의 모후가 하는 문정왕후의 수렵청정, 선조의 임진왜란과 비루하게 살아남은자의 후안무치 등... 몇백년간의 역사가 만화로 되어 있었지만, 읽는데 폭 빠져서인지 졸리다 싶어 시계를 봤더니 아침 7시 반이 훌쩍 넘어섰다. 잠시 눈을 붙이는데 꿈속에서도 그 인물들이 살아남아서 돌아다닌다. 죽은 인물들은 죽은게 아니라 이 시대에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

 

권력의 비정함과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질문했다. 시대만 바뀌었을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같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수많은 권력가들의 말로가 제대로 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영화 ‘관상’을 볼 때 주연이 관상쟁이와 수양, 단종, 한명회가 있었다. 죽어서도 죄가 밝혀지면, 시체를 관에서 꺼내 사지를 자르는 부관능지와 시체의 목을 막대기에 매달아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부관참시 등. 사화와 옥사는 사람들을 줄줄이 사탕을 엮어서 죽게 만든 장면들. 특히 선조의 후안무치적인 발언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화장실 들어갈때와 나올때의 마음변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였다.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진 자와 권력 있는 자가 죄를 지으면 언론에서 떠들고 시간이 지나면 보석금으로 풀려나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왕조시대는 권력으로, 자본주의 시재는 자본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초등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청렴한 황희정승은 부패의 전형적인 인물상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지, 원래 그런 속성이 있었는데 자리를 차지하다보니 그렇게 되는건지, <사기>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 역사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 속에 수만가지 군중인상들이 부끄럽지만 내속에도 무수히 들어있었다. 어떤 인물로 표현되고 살아가야 하는지는 자신의 선택이 달려있다.

 

삶은 선택이다.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닥칠때도 있다. 기쁘고 좋은 일들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가 비슷하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고 돈과 시간이 요구되는 일 앞에서 사람들은 각기 달리 행동한다. 친구도 그렇지 않던가. 내가 기쁘고 즐거울때는 누구나가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부탁할때나 어려울때는 전화받는것조차 꺼려한다는 것을. 그것이 그 사람이 잘못된게 아니라 바로 인간의 속성이요 세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칼리피오리나 <힘든 선택들>에서도 그렇지 않던가.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여자라는 약점을 이용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저 여자 나랑 잤어’라고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를 만들었다.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것을 믿고 행하는 용기 앞에서 숙연해진다.

 

“인생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특히 그렇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 때문에 위축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리라.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만한 이유가 있는 옳은 일에 매진하리라. 내가 선택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혹은 하면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 아니, 많을 거야. 그건 그들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야. 그런 사람들이 다시는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 마음 역시 내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106p>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입은 재앙의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연산군때는 이것을 달고 다니라고 할 정도로 신하들이 하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 생각없이 했던 말들이 남의 가슴에 비수가 되게 한 적이 없었던가. 남의 가슴을 베는 칼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웃으면서 다니고 있지 않았는지 두손모아 반성해본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을 되돌아보야야 겠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것이 삶일진대, 나의 삶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벌어진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는 나의 선택이다. ‘영혼은 여전히 나의 것이니까’

 

 

 

IP *.5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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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7 17:42:22 *.91.142.58

언니...

 

이번 칼럼은 왠지 무겁고 비장함?!

역시..  팔색조처럼 다양한 컬러와 향기를 지닌 우리 오~프로~티테 언니!

 

힘내세요~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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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8 00:22:29 *.111.5.119
가끔씩 아주 깊은 관조로 들어가는 오미경 깊은슬픔이 저 아래에 흐르고 있는 듯 슬픔을 관조하며 삶을 즐겁게 즐기자는 깨달음을 끌어올리는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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