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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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분주했다. 연말을 맞아 내년도 회사 달력을 배부해야 날이다. 방문해야 할 대상은 지난 1년동안 우리 회사와 거래한 거래처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그나마 겨우겨우 뺀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준비해서 거래처를 돌기 시작했다.
1년에 두어 번 만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들과의 만남은 조금 어색하게 시작했다.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고 일상적인 일로 대화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히면서 간단한 업무 이야기를 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대화방식이지만, 이런 순서를 무시하고 업무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대화의 분위기는 딱딱해지고 말게 된다.
그런데 오늘의 미팅은 조금 힘이 부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과 대화
하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만 시계쪽을 보려하는 나를 발견했다. 일정이 조금 빡빡하기도 하지만 며칠 전에
잡힌 저녁 약속이 있어 퇴근을 정시에 해야 하는 마당에 쌓여 있는 일이 많아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그 안에 미팅을 끝내기 위해서는 시간조절을 할 수 밖에 없다. 해야 할 말을 다 못하고 적절한 시점에 엔딩멘트를 날리고 자리를 떠야만 했다.
다른 거래처와의 점심약속을 잡아놨기에 더더욱 시간을 맞춰야 했다. 이럴 때면 나와 거래처의
미팅은 말 그대로 거래관계를 위한 미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야 하는
통에 첫 번째 미팅은 그저 그런 미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미팅을 끝내면 고생해서 움직인 수고가 반감되고
보람은 떨어진다. 한마디로 재미없어 진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 될 뿐이다. 일이 일이 되어버리는 불편한 순간이다.
영업의 달인 정도는 아니지만 수년간 고객과 영업적 관계를 유지했던 나는 영업 노하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거래처와의 미팅 시 업무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서로의 관심사나 화제거리를 이야기하다가 미팅을 끝낸다. 보통은
업무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때 이거나,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괜히 딱딱해질 것 같을
때 그렇게 한다. 어색한 분위기는 어색한 인간관계로 연결되고, 어색한
인간관계는 오히려 거래관계에서 좋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거래처 방문이
잦아지다 보면 업무적인 이야기로는 대화를 이어가는데 한계가 있다. 그럴때는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그런데 그게 의외로 효과를 보일 때가 있다. 공적인
관계가 사적인 관계로 바뀌게 되면 때때로 공적인 일(업무)이
술술 풀릴 때도 있다. 서로 간의 거리가 멀게 느껴질 때, 업무적인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닐 때는 정색을 하던 일들도, 약간의 사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던 일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영업의 힘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대상이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영업적(업무적) 관계를, 단순이 업무적으로 보지 않고 그저 동시대에 사는 비슷한 직장인으로서 알고 지내려 노력한다. 사실 영업은 필요한 거래는 얻어내고 회사에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줘야 하는 것이 제 1 목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을 단순히 물건을
팔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면 너무 삭막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접근하면 그들과의 만남이 재미도 없을뿐더러, 그들 또한 나의 사심(?!) 알아내기 쉽니다.
대신 이를 인간 대 인간으로 접근하면 ‘통’ 하는게 조금 더 수월해진다. 왜?
우리는 한 회사의 직원이기 이전에, 영업사원이기 이전에,
뜨거운 가슴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그것인 인간관계의
기본아닐까.
강남에서 미팅일정을 마치고 강북으로 넘어왔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영업사원이 있는 러시아에 본사를 둔 회사의 한국대리점에 방문했다. 오랜만의 방문이기도 하고, 연말이기도 해서 간식거리로 도너츠 두박스를 구매해 들고 갔다. 도너츠를
전달하고 자리에 앉았다. 바쁘게 움직인 탓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터라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말끔하게 생겼지만 조금 어눌한 면 없지 않은 그는 결혼상대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듯 했다. 이젠 나이가 있어서 누구를 만나도 쉽게 다가설 수가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저 많이 만나보고 자주 만나 보고 느낌이 통하는 사람을 택하라고 했다. 말이 쉽지
그게 쉽게 되냐고, 그렇게 쉬웠으면 벌써해도 여러 번 했겠다며 그가 반문했다. 우리는 그저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실적이 좋지 않아 연말 보너스가
안나올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유리봉투인 봉급쟁이들이 연말 보너스까지 안나온면 생활이
빡빡해진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공감을 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보너스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나누기도 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미팅 일정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왔다. 약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이제는 쌓여 있는 일을 하고 저녁약속
시간에 맞추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려 하니 왠걸, 다른
동료가 이런 저런 조언을 구해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문제해결을 위해 한동안을 이야기했다. 거래처의 어이없는 회신에 울그락 불그락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구하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아차, 과연 오늘 저녁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순간 순간 콩밭에 가 있는 나의 마음. 나의 하루는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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