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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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추운 날이면 학창시절 10년 가까이 살았던 방 두 칸의 13평짜리 연탄아파트가 생각이 난다. 70년대 후반 의왕 부곡이라는
마을에 처음 들어선 D회사 사원 아파트였다. 다섯 식구 한
가족이 단칸방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 내게는 동화 속 궁전처럼 넓고 아늑했다. 별도의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처음 보는 수세식 좌변기도 설치되어 있었다. 자주 목욕도 하고 물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더 이상 재래식 공동 화장실에 줄 설 필요도, 전기세 문제로 집주인과
얼굴 붉히며 실랑이 할 필요도, 그리고. 손바닥 만한 방에서
서로 등을 맛 대고 다섯 식구가 잘 필요도 없었다. 이사간 아파트 부엌에는 작은 연탄 광이 있었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어머니는 연탄을 미리 들여 놓곤 했다. 가득
쌓이는 연탄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으시던 어머니가 기억이 난다. 한쪽 방은 연탄 아궁이가 현관 밖에
있어 매일 추운 밤 연탄을 갈아야 했다. 성가신 일이었다. 주로
아버지 몫이었는데 철야 근무를 하실 때는 내가 맡았다. 종종 내 부주의로 갈 시기를 놓치거나 갈고 난
후 아궁이 공기 유입을 조절하지 못해 연탄불을 꺼트리곤 했다. 조금이라도 불씨가 있으면 숯을 넣어 살리기도
하고 안쪽 방의 아궁이를 활짝 개방하여 빨리 타게 만들어 밑의 연탄을 이용해 갈곤 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양쪽 방의 불을 꺼트리면 이웃집에서 연탄불을 빌리기도 했다. 물론 그 날은 한바탕 집안이 시끄러웠다. 어떻게 연탄불을 꺼트릴 수 있냐며 아버지는 일하랴 살림하랴 바쁜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하셨다. 긴 겨울 밤 배추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은 후 구진해 지면 어머니는 고구마를 깎아 주거나 김장하고 남긴 무를
깎아 주었다. 방학이 되면 집 근처 공장에 다니셨던 어머니는 추운 칼 바람을 맞으며 집에 와서 내게
따뜻한 점심을 차려주셨다.
돌이켜 보면 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요, 용접공의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힘든 육체 노동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학 방학 때
어려운 가정형편 감안해 노동현장이나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학비 일부라도 벌었어야 했음에도 그렇지를 못했다. 부모님
또한 당신이 배우지를 못해 힘든 노동의 삶을 살아가니 자식만큼은 그런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
부모님의 무학을 창피하게 생각했으니 불효 막심한 자식이었다. 부모님이 일터에서 고된 일을 할 때 나는
여름에는 냉방이, 겨울에는 난방이 나오는 도서관에서 한가하게 책 나부랭이나 읽고 있었으니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며칠 전 뒤 늦게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책 서문에 저자가 계수한테 보내는 한 편의 편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섭씨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
가슴이 찡했다. 30여년 전의 수형생활의 실상이지만 존재 하나만으로
남을 미워하고 미움을 받게 만든 그 극한의 상황이 서글펐다.
이제 인생 2막에 접어들고 있다. 문득
지나온 삶이 너무 ‘사치스럽게’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폐되어 통제되고 억압된 상황에 처해 본 적도 없고 심신이 피폐할 정도로 극한 충격과 고통을
경험한 적도 없다. 너무 편안함에 길들여져 이제는 조금만 불편하면 짜증내는 횟수가 빈번하다. 속물적,
개인적, 그리고 획일적인 삶을 살아오고 또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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