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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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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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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15시 17분 등록

막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나의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재한 어느 도사님의 산방에 몇몇이 모여 송년모임을 하는 것으로 나는 2013년 해를 넘기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첫날은 서울, 조용한 숙소를 예약해 그냥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대학로 한쪽 귀퉁이 찻집에 앉아 책 몇 쪽을 읽었고 시간에 맞춰 연극 한 편을 보았습니다. 서울 떠나고 처음 본 연극이니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감회가 각별했고 참 좋았습니다. 막 바로 대전으로 내려가 밤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곳 어느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남은 명과 함께한 올해의 마지막 강의는 아주 느린 호흡으로 진행했습니다. 오늘 다 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내년에 다시 하자고 제안해 두고. 나도 청중도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전화기를 방해금지모드로 바꿔두고 지리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갔습니다. ‘벌교로 가자! 올 한 해, 내게 가장 컸던 슬픔을 다시 불러내어 마주하러 가자!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슬픔이 나를 비추는 별이 되게 하자!’ 큰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벌교는 내게 아름답고 깊은 기억의 땅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구본형이라는 사람을 내 마음의 스승으로 만났습니다. 선생님과 나는 이미 그 전에도 자주 만났지만, 선생이 스승으로 바뀌는 시간의 화학적 변화는 바로 벌교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벌교, 그 작은 읍내를 함께 걸었습니다. 꼬박정식으로 성찬을 나누었고 허름한 모텔을 잡아 소박한 술판과 이야기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의 대화 속에는 금기가 없었습니다. 자유와 흥에 겨워 방을 박차고 나왔고 술을 마신 상태였지만 나는 차를 몰아 스승님을 모시고 작은 어촌마을을 낀 해안도로를 쏘다녔습니다. 법 따위가 규정한 금지에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되 스스로를 책임지겠다고 호기를 부린 밤이었습니다. (스승님마저 슬그머니 동의를 하셨던 호기... 후후.) 밤 뻘과 맞닿은 자리에서 작게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놀기도 했고, 재잘대며 걷기도 했습니다. 가슴 속에 담아 둔 어떤 은밀한 이야기도 걸림 없이 꺼내 보여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한 일행 모두는 스승님의 선동에 이끌려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무덤에 누워 별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한참동안 말없이 그 별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벌교는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스승님과 꼬막정식을 나누었던 집도, 짱뚱어탕을 먹었던 장터의 식당도 얼른 찾아낼 수가 없었고, ‘길의 끝이라고 씌어있던 인상 깊은 간판도 다른 관광안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도로는 정돈된 블록이 깔려 있었고, 간판들은 모두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태백산맥문학관이 새로 생겼고,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 속에 등장한 남도여관보성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벌교의 근대문화를 되살려내고 있었습니다. 스승님과 다시 이곳에 왔더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저 보성여관에 묵었겠구나 생각하며 하루를 묵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핀 봄’,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핀 봄은 그녀 스스로 자신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 예쁜 호칭은 성춘이라는 자신의 본명에서 비롯했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그녀는 보성여관의 매니저입니다. 그곳에 가거든 그녀를 꼭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노래를 청해야 합니다. 그녀는 여행객 단 한 명을 위해서라도 노래를 불러준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그녀에게 노래를 청했습니다. 그녀로부터 두 곡의 가곡을 들었습니다. 따로 배운 적 없이 홀로 노래를 부르며 배웠고, 그래서 부끄러운 솜씨라고 겸손해 했지만, 나는 그녀의 노래를 조수미의 그것보다 더 깊이 있게 음미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진심을 담아 노래를 하는 이유는 벌교 출신의 요절한 근대 음악가요 영혼을 판적 없는 민족음악가로 불리는 채동선 선생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긴 시간 그렇게 노력해 온 결과 벌교에 채동선 선생의 기념관이 들어섰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녀 가슴은 앞으로 갈 길도 품고 있다고 했습니다. ‘벌교를 떠난 적 없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남편을 따라 서울에 올라가 산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삶이 힘겹고 어려운 날도 있었다고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 어려움 이겨내며 벌교와 함께, 또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가치와 함께 지금의 자리를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작시가 수록된 앨범을 사왔습니다. 그 곡들 곁에 두고 자주 들어보려 합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다시 그녀를 만나러 갈 생각입니다. 나의 스승님이 내 가슴에 영원한 별로 기억되는 그 벌교 땅에 가서 스승님이 늘 가르침으로 주셨던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그녀를 만나면 흐물흐물해지는 삶이 다시 일어설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일, 진심을 다해 살아내는 삶은 그곳이 어느 장소에 처해 있건, 어느 시간대에 처해 있건 밤 하늘을 밝히는 별과 같은 것이라 가르쳐주신 스승님을 생생히 만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노래와 삶을 통해 그분, 구본형 스승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피어난 봄을 만난 겨울여행이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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