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 한정화
- 조회 수 209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여행을 하나 기획해보라"
출판사 휴머니스트 김학원대표의 강좌 4번째 시간이었다. 삶과 지식의 세계를 다루는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를 이야기하다가 여행을 하나 기획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내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전라도 기행이다. 강의 전 대표님과의 차를 앞에둔 좌담시간이었다.여행자 김성주씨가 여행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대표님께서는 강의시간 중에 여행을 기획해보고 이야기하자 하셨다. 그때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줄 몰랐다.
여행을 하나 기획해보라고 했을 때, 각자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제각각이다. 모두 세계여행만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떠나고자 하는 여행, 기획한 그 여행이 그 사람을 말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말로 미루어보면 나는 여전히 뿌리를 찾는 여행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전라도 기행은 20대부터 아버지의 고향과 내가 살아온 곳을 더듬는 것으로 봄철에 한번 들판을 돌아보고 싶어서 하고 싶은 것 목록에 넣어둔 것이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란 책을 보면서부터 써두었던 것. 그러니 나는 그 20대에서 여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 그보다는 나는 아직 내 뿌리에 대해서 궁금증이 덜 풀린 것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 싶다. 이 여행 기획에는 아버지와 몇 일동안 차로 몇 곳을 둘러보는 것과 아버지의 중요인물들을 만나는 것을 포함한다. 옆동네의 아버지의 외숙이라고 하는 분과 그 동네 분들도 포함해서.
이 여행은 봄날에 아주 느리게 느리게 하고 싶다. 20대나 30대 일때는 자전거로 돌고 싶었으나 체력이 쇠해가면서 점점 오토바이로 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은 자전거는 포기한다. 그러나 반대로 오토바이로 돈다면 여행이 빨리 끝나버릴 것 같아서 싫다. 오토바이도 좋지만, 마을을 도는 버스를 이용해도 좋을 듯 싶다. 그리고 아버지와 내 뿌리를 찾는 여행이라면 아버지가 자신의 발로 걷고 뛰었던 그 루트대로 간다면 빨리 다니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는다.
전라도로 꼽은 것은 그것이 내가 태어난 곳이고 자라난 곳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 고향을 떠나 명절때마다 고향에 갈 때 차안에서 아버지께 짧게 아버지 자신은 어디어디를 발로 돌았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곳.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곳, 아버지의 고향이고, 어머니의 고향이고, 시집가고, 시집오고 타향살이로 떠난 아버지 어머니의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의 삶의 이야기가 있는 곳, 순창. 차를 타고 갈때마다 새 도로를 놓는다고 몇 해마다 한번씩 길이 바뀌었던 곳. 그래서 30년의 변화를 지켜봐왔던 곳. 아버지가 걸어서 어디까지 가보았노라 하던 곳.
아버지께서 귀농하신다면 가시고 싶어하는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고향에 터를 잡고 싶어하시니까.
그리고 첫번째로 이사간 신태인.
아버지의 30대 초반의 삶이 있는 곳이다. 내 6살부터 10살까지의 뭐가 뭔지 모를 것들이, 기억들이 잔뜩 뒤엉킨 곳. 당시엔 내게는 너무 먼 학교 있으나 나중에 찾아갔을 때는 걸어서 10분 거리도 안되었던 아주 작은 읍내가 있는 곳. 그리고 동학에 대해서 말하면 나는 그곳이 태인....넓은 들판의 쌀을 들어내기 위해 철도를 놓으면서 생긴 신태인이라고 얘기하는 곳. 김제로 이어지는 수리조합과 모래들과 말조개가 있는 곳, 동네 뒷산과 방죽과 커다란 방아개비가 있는 곳.
세번째 전주를 중심으로 여행하고 싶다.
'너희들은 꼭 공부 많이 해라. 아버진 전주고를 나오지 않아서 잔챙이 일만 한다.'며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었던 곳. 건설업에서 조차 학벌를 따졌던 곳. 지금도 아버지의 생활권은 전주이다.
동서학동과 남고산성, 전주천 평평바위, 전주교대 부근, 남국민학교 인근 동네들, 근영여자중학교, 근영여자고등학교 일대. 전북대학교 일대와 친구와 함께 걸었던 동물원. 그리고 전주교와 전동성당, 남문교회, 한벽루를 중심으로 한바퀴.
내게는 전주에 대한 기억이 제일 많지만 이 여행에서는 내 기억을 더듬는 것은 줄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들과 같이 살았고 버섯따러 산을 돌았던 곳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던 곳으로 돌아다니고 싶다.
네번째 장소는 군산을 중심으로 한다.
군산 터미널과 옛날 군산역, 그리고 그 주변. 그리고 월명공원, 나포.
군산을 마지막 여행지로 해야할 것 같다. 군산을 나와서 광주로 옮겨가면 그때의 나는 30대를 앞두고 있는 나이가 된다. 40대에 하는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은 내 0살부터 29살까지를 돌아보는 여행이 될 터이다.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는 전라북도, 순창과 신태인을 중심으로 한 지도를 샅샅이 뒤져가며 아버지와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와도. 아버지의 고향은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니까. 옆동네는 할머니의 고향이고, 또 다른 옆 동네는 고모가 시집간 동네이고, 금과면 소재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닌 학교가 있고, 아버지 어머니의 선후배들이 살고 계시고, 그리고 옆동네는 외숙모가 태어난 동네이고, 지금은 할머니가 묻혀계신 곳이고, 거기서 조금 더 간 옆동네는 섬진강 상류 어느 마을.... 이종사촌언니가 시집가서 사는 동네이고, 고향동네에서 방향을 틀어 남쪽 대도시 광주로 가면 사촌오빠 하나가 사는 동네이다.
그러니까 순창 일대를 여행 시작점으로 한다면 지역을 탐방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피로 얽힌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될 것이다.
그 탯줄을 끊고 나와서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자리잡은 동네 신태인에서는 아버지 젊은날의 이상과 만날 것 같다. 나는 그때 괴로운 일이 많았지만, 어쩌면 아버지의 빛나는 날들이 시작하는 첫번째 지역일 것이다.
세번째 지역인 전주는 '물의 나라'와 비슷하다. 치어는 자라나고 조금 큰 물고기는 연못 물을 휘젓고 싶어한다.
아버지께서는 "메기가 입이 크다고 해서 연못의 고기 다 먹는 건 아니다."라는 말로 내가 욕심부릴 일과 내 욕심과는 아무 상관없이 진행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일러주셨다. 아버지의 그 메기 이야기는 내 욕심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다. 아버지와 난 기질적으로 비슷하고 사고패턴이 같은 사람이니까. 이 시절의 나는 새벽밥 먹고 스쿨버스를 타려고 뛰어야 했던 학생이고 아버진 새벽밥 일찍 지어 먹고 오토바이타고 공사현상으로 가야했던 때다. 그 시절의 아버지와 나를 만나는 전주는 새벽의 어두컴컴한 산이나, 메뚜기를 잡던 들판이나 전주천 물가가 주가 될 것 같다.
네번째 지역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곳이다. 바닷바람이 좀 찼던 곳. 그리고 꽃비가 내렸던 곳. 이곳에서는 뿌리는 놓고 기차역이나 터미날이 주가 되어 떠날 궁리를 하는 나를 만날 것 겉다.
강의에서 김학원 대표님은 여행을 기획하고 떠나보는 것 좋은데, 그 여행을 글로 것은 어떠냐고 하셨다. 글, 좋지! 지금 기획한 이 여행은 진짜로 15일에서 한달 정도를 돌아다니는 여행이거나, 3번째나 4번째 책으로 엮어질만한 여행이었으면 한다. 물론 이걸 내가 책으로 엮는다고 하면 난 꼭 진짜로 그 속에 들어가서 주름진 얼굴을 한 그 사람들을 만나고, 그 풍경속에서 숨을 쉬고, 발로 걷고는 그것을 책으로 엮을 것이다. 김학원 대표님은 글 + 책쓰기 + 인생을 이야기하시는 데 책쓰기 쪽에서 여행 이야기를 하셨겠지만, 내가 기획한 이 여행은 인생쪽에 치우쳐 있기에 여행을 하지 않고는 책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여행이 없으면 생생함이 없어 쓸 것도 별로 없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나간 것을 눈으로 직접 좀 봐야 그것에 거리두기가 가능할 것 같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852 | 2-35. 인공수정을 준비하며 [10] | 콩두 | 2013.12.31 | 3567 |
3851 | #20_연하우편 속 신사임당 | 서연 | 2013.12.31 | 2289 |
3850 | 12월 오프수업 - 현실과 경영 [7] | 땟쑤나무 | 2013.12.31 | 2035 |
3849 | [No.8-4] 이제 우리는 현재를 기획하자 - 서은경 [2] | 서은경 | 2013.12.30 | 2054 |
3848 | 12월 오프수업 - 현실경영 [1] | 제이와이 | 2013.12.30 | 1963 |
3847 |
12월 오프수업-현실경영(2013.12.28) ![]() | 미스테리 | 2013.12.30 | 2027 |
3846 | 12월 수업 _ 유형선 [2] | 유형선 | 2013.12.29 | 1912 |
3845 | #31. 1인 기업의 전략 (12월 오프수업) [1] | 쭌영 | 2013.12.29 | 1910 |
» | MeStory(2) : 여행을 하나 기획해 보라 | 타오 한정화 | 2013.12.27 | 2098 |
3843 | MeStory (1) : 신부님, 저는 오늘 열여섯살이 되었습니다 | 타오 한정화 | 2013.12.27 | 2068 |
3842 | 키드니 6 | 레몬 | 2013.12.26 | 2291 |
3841 | 2-34. 아구병 걸린 에릭직톤의 딸 [1] | 콩두 | 2013.12.24 | 2763 |
3840 | #19_새알은 안 사? | 서연 | 2013.12.24 | 2573 |
3839 | [No.9-1]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 - 서은경 [1] | 서은경 | 2013.12.23 | 2154 |
3838 |
No34. 반가사유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 | 미스테리 | 2013.12.23 | 6034 |
3837 | 텅 빈 충만 [2] | 유형선 | 2013.12.23 | 2077 |
3836 | 편안함을 경계하며 [1] | 제이와이 | 2013.12.23 | 2167 |
3835 | #29. 어차피 인간관계 아닌가 [1] | 땟쑤나무 | 2013.12.23 | 2348 |
3834 |
#30. 감독님, 저 지금 잘하고 있는건가요? ![]() | 쭌영 | 2013.12.22 | 2122 |
3833 | 키드니 5 | 레몬 | 2013.12.22 | 2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