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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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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0일 10시 44분 등록

 

올해도 책을 출간하지 못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연초에 목표로 세웠던 운동량에는 반의 반도 이르지 못했고, 경제 상황은 연초보다 열악해졌습니다. (4/4분기에 엄청난 양의 책을 사들이는 바람에 마이너스 통장이 되었네요.) 굳이 연초까지 갈 필요 없이, 지난 주에 썼던 <연말을 보내는 10가지 방법>에서도 실행으로 옮긴 것은 고작 네 개 뿐입니다.

 

한 해를 갈무리할 즈음에 드는 이런 낭패감을 어찌할까요? 제게 뾰족한 수는 없지만, 낭패감을 잘 다뤄야 한다는 생각은 듭니다. 자칫하면 자괴감에 빠져 자신감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겁을 집어 먹어 인생을 소극적으로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인간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서른 아홉이 되는 나이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저도 벌써 서른 아홉이 되었습니다만,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망연자실할 따름으로, 아직 아무런 자신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소위 겁쟁이가 처자를 먹여 살린다는 것은, 오히려 비참이라고 해도 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자이 오사무(1909~1948)는 "내 반생을 말하다"라는 이 글을 쓴 그 해에 스스로 생을 접었습니다. 사람의 행동을 단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는 없듯이, 그의 자살을 인생살이가 두려워진 귀결이라고만 보기는 힘들겠지요. 글의 제목에서 '전생(全生)'이 아닌 '반생(半生)'을 말한다고 했던 걸 보면, 계속 살아갈 마음도 있었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을 낮추기를 즐기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거절을 못하는 연약한 면도 있었습니다. 진짜 겸손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저 사람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낮춤을 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겸손은 대개 진정일 겁니다. 과장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못된 구석까지도 정직하게 관찰하는 자의식 탓에 스스로가 형편없이 보이니까요.

 

"나는 더욱 행복해질 텐데 아마도 자의식 덕분일 것이다. 때론 불행에도 빠져들 텐데 그것 역시 자의식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제 단상노트에 썼던 글입니다. 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던 자의식이, 연말엔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내년에 더 잘 하면 되지 뭐!'라는 낙관적 희망을 가지려는 직전에, 자의식은 '너가 안 바뀌면, 내년도 비슷할걸'이라고 속삭입니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가 자기 논리에 의해 도출한 결론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하는 것까지 말입니다. 반면 저는 즉흥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고, 말한 것들을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기억하시죠? 첫문단에 보인 제 언행 불일치의 삶을! 아마, 또 하나의 일년을 더 살더라도 비슷하게 전개되지 않을까요?

 

특별한 것 없는 삶이라고 말하며 무덤덤해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김광석의 노래를 그토록 좋아하지만, 삶에 별 것 없다는 류의 자조적인 말은 아쉽습니다.) 올해로 마흔 일곱인 하성란 작가의 책 제목처럼, 저는 "아직 설레는 일이 많다"는 신조로 재미난 '별일'을 만들며 살자는 쪽입니다. 이글을 쓴 것은, 그것이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거고요.

 

설렘을 누리고 별일을 만들며 사는 것, 소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 즐겁고 신바람 나는 한 해를 창조하는 일은 내겐 현실인식부터 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칫하면 새해 역시도 올해처럼 보내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말입니다. 제가 새날, 새달, 새해를 맞을 때마다 나를 성찰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민망함을 딛고 다짐합니다.

 

내년이 올해와 비슷하게 전개될 확률이 높지만,

나는 낮은 확률에 도전하는 승부사가 되리라고.

2014년이 여전히 언행 불일치의 삶으로 끝나더라도

나는 또 다시 뻔뻔한 승부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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