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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 11시 12분 등록

직업으로서의 정치

(막스 베버, 나남, 2007.01.25)

 

1. ‘영원한 정치청년’ 

 

  막스베버.JPG

Max weber (1864~1920)

 

 막스 베버 하면 거부감부터 느끼던 때가 있었다. 부르주아 자본주의 정당화를 위한 지적 엘리트 에 지나지 않는 자로 보았고 프로테스탄티즘에 윤리를 부여하고 이를 자본주의 정신으로 높이 올려놓은 그의 지적 작업을 폄하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 마음은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신 그의 관점과 그의 정신은 그의 저작에 대해 철저한 3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학자로서의 객관성, 균형감각, 책임감 등은 누구 못지 않게 높이 평가한다.

 

 막스 베버는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치는 시대에 활동한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종교 등 학문과 문화 일반에 대해 박식하고도 깊이 있는 조예를 가진 학자였다. 그는 19세기 후반기의 서구 사회과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철학이나 사회학 등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 소년시절
 
베버는 1864 4 21일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인 에르푸르트에서 아버지 막스 베버와 어머니 헬레네 사이에 태어난 8남매 중 장남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 베버가()의 계승자가 될 이 장남에게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었다. 아버지 막스 베버는 에어푸르트 시청의 공무원이었는데, 1869년 국회의원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여 되었고, 이에 따라 베버 가족은 베를린으로 이주하게 된다. 종교적이고 인문학적 분위기의 아내와 달리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 정치를 중시하는 당시 독일의 전형적인 부르주아 정치가였다.


 8
세가 되어 막스 베버는 왕립 김나지움에 진학한다. 김나지움 시절 베버는 다독가로서 역사서적들, 그리스-로마 고전들,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칸트 등의 철학 작품들, 그리고 괴테의 문학작품을 즐겨 탐독한다. 여러 방면의 독서를 할 수 있게 한 능력도 겸비하여, 가령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물론이고 이미 이 시절에 구약성서를 원어로 읽을 수 있을 만큼 헤브루어를 습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성년이 가까워지면서부터는 학교공부에는 힘쓰지 않고 학업에도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가령 3학년 때에는 수업 중에 책상 아래에다가 40권으로 된 괴테 전집을 놓아두고 전부 읽어버렸을 정도였다. 1877년 초 만14세가 채 되지 않았을 시기에 그는 어울리지 않게도 두 편의 역사 논문을 썼다. 스스로 말하기를 ‘많은 사료에 의거하여’
황제와 법황을 주안으로 삼은 독일사의 전개 콘스탄티누스에서 민족이동까지의 로마 제정시대라는 논문은 “미흡한 필자 자신이 그 양친과 그 형제 및 그 외의 사람에게 바친다.”라는 헌사를 담고 있다
.

 2
년 후 그는
인도 게르만 여러 국민에 있어서의 민족 성격, 민족 발전 및 민족사의 고찰 썼는데, 이 논문은 이미 하나의 ‘역사철학적’ 사색의 성과로서 문화사 전체의 이해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며 그 ‘발전법칙’을 뚜렷이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시기에 베버는 아버지와 교류하던 당대의 명인들과 자주 접촉하여 활발한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청소년기의 이러한 지적인 체험은 후에 관심영역의 다양함과 광범위함으로 발전하게 된다
.

 2)
대학시절: 학생 및 교수 시절

 1882
년 그는 베를린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을 가기 위해 외조부가 살고 있는 하이델베르크로 간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제1전공으로 법학을 선택하였지만, 그 또한 법학 외에 경제학, 역사, 철학, 신학 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883
년 병역 의무를 마치기 위하여 대학 수학 도중에 쉬트라스부르크에서 일 년간의 군대 생활을 체험했다. 쉬트라스부르크에 체류 중에 자신의 친척이기도 한 지질학자 베네케(E. W. Benecke)와 역사학자 바움가르텐(Hermann Baumgarten)과 자주 접촉하였으며, 이들과의 접촉은 이후 그의 학문적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된다. 이듬해 병역을 마치고 이번에는 베를린대학으로 옮겨 학업을 계속하였는데, 그의 학문적 관심은 법률, 경제, 철학, 역사 등 다방면에 걸쳤으나 특히 역사 문제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

 1889
년 베를린 대학에서
중세 상업 사회의 역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891년에는 국가 공법 및 사법(私法)의 의미에서 본 로마 농업사라는 취직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로마 제국의 농업에 관한 중요한 연구로서 후세의 사사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논문으로 그는 1892년 베를린대학에서 상법 및 로마법의 강사가 되었으며 이후 그의 대학 교수시절이 시작되게 되었다
.

 1893
년 가을 그는 마리안네와 결혼했다. 사촌 누나의 딸인 마리안네는 그녀 자신도 학자로서 이후 27년간 잠시도 베버의 곁을 떠나지 않은 평생의 동반자였다. 마리안네 베버는 베버 서거 후 베버의 동료 및 제자들과 함께 그의 유고 정리를 하고, 그의 저작집을 편찬했다. 또 한편으로는 방대한 전기인 『막스 베버의 생애』를 저술하여 1926년에 내놓았다. 이 전기에는 베버의 성장, 성격, 가정, 교우관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의 형성, 학문적 활동까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것은 마리안네가 베버의 가정적 동반자인 동시에 사상세계에서도 그와 호흡을 같이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

 
베를린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 베버의 관심은 점점 더 경제학 연구에 기울어졌으며, 이 시기에 쓴 논문들도 대체로 경제학에 관한 주제가 많았다. 1892년에 발표된
동부 독일의 농업노동자의 상태, 국민국가와 경제정책 등은 이러한 그의 관심을 잘 나타내 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189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추천을 받게 되고, 이듬해 5월에 동 대학 경제학 정교수로 취임하게 된다. 프라이부르크에서 리케르트(Heinrich Rickert)와 각별한 친교를 맺었는데, 리케르트는 베버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이어 베버는 1896년 자신의 최초의 모교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초빙되어 은사인 크니이스(Karl Knies)의 후계자가 되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는 특히 공법학자인 게오르크 옐리네크(G. Jellineck), 신학자인 에른스트 트뢸취(E. Tröltsch) 등과 친교가 있었다. 1897년 하이델베르크에서 많은 연구가 본격화 될 무렵 그에게 심각한 신경질환이 발병하였다. 또한 그 동안 사이가 좋지 못했던 아버지가 이 해에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그의 건강 상태가 더욱 나빠져서 강의와 연구를 계속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로 한동안 이탈리아 등지에서 체류하여 요양하였으나 병이 호전되지 않았고, 1903년 하이델베르크로 귀환함과 동시에 교수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대학재임 기간은 형식상으로는 13년이지만, 나중의 4년은 전연 강의를 할 수 없었다
.

 3)
교수직 사퇴 이후

 
병으로 대학을 떠난 이후 그의 건강이 상당히 호전되었고, 이에 따라 그의 학문 연구는 이전에 비해 더욱 힘차게 추진되었다. 1904년 이래로 그는 베르너 좀바르트(W. Sombart)와 함께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지의 편집을 맡아보게 되었다. 1904 8월에 부인과 함께 3개월 간 미국을 여행하였고, 귀국하여서는 바로 이 잡지의 공동편집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그는 대학을 떠났지만, 이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지에 계속해서 귀중한 연구를 발표했다.

 
마리안네 베버에 따르면, “공동편집자로서 베버는 우선 이 잡지에 끊임없이 원고를 공급해야 하는 강한 의무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문화과학의 논리에 있어서의 비판적 연구, 루돌프 쉬타믈러의 유물사관의 극복, 세계 종교의 경제윤리 문제 등이 학술논문들이 이 잡지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는 그의 연구생활에 있어서 가장 소득이 많은 시기라 할 수 있었다
.

 1914
년 그의 나이 50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무를 지원하여 하이델베르크의 야전 병원에 근무하였으나, 곧 돌아와서 빌헬름 2세의 전쟁 방침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베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의 비참한 패배와 굴욕적인 강화조약에 충격을 받고 1918년에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1918년 여름에는 빈대학의 초청을 받아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건강악화 대학 교단을 떠난 지 15년만의 일이었다. 다음 해에는 뮌헨 대학 류요 브렌타노(Lujo Brentano)의 후임자로 초빙되어 사회학 및 사회경제사 강의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다시 대학에 들어가 활동한 시기는 채 2년이 되지 못했다. 1920년 봄부터 건강이 다시 악화되었고, 그 해 6 14일에 56세를 일기로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생애 연보

1864: 421일 독일 중부의 소도시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남.
1882
: 베를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학을 제1 전공으로 택함. 2년 동안 학생조합에서 활동함
.
1889
: 골트슈미트 교수 및 크나이스트 교수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를 받음
.
1892
: 베를린 대학에서 골트슈미트 교수를 대신하여 강의 및 세미나를 맡음
.
1893
: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추천 받았고, 다음 해 동 대학에 취임
.
1896
: 하이델베르크대학 경제학 교수로 초빙
.
1898
: 질병으로 대학으로부터 휴가를 얻음
.
1903
: 질병이 재발, 교수직을 사퇴
.
1904-05
: 2회에 걸쳐 논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지에 발표함. 1905년 러시아 제1혁명이 일어남. 베버는 이에 대한 러시아의 자유주의화에 기대를 가짐
.
1918
: 빈 대학 초청으로 한 학기 강의
.
1919
: 뮌헨 대학에서 사회학 및 사회경제사 강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발표
.
1920
: 6 14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남
.
1920-21
: 부인 마리안네 베버의 편찬으로 "종교사회학 논문집" (3) 출간
.
1922
: 부인 마리안네 베버의 편찬으로 "과학론 논문집", "경제와 사회"(2) 출간
.
1956
: 빈켈만(J. Winkelmann)의 편찬으로 "사회학 및 사회정책 논문집" 출간.

 

 

2. ‘직업으로서의 정치(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문제제기와 개념 틀

 

□ 근대국가를 우리는 사회학적으로 결국 그것의 업무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특수한 수단을 준거로 정의할 수밖에 없는데 이 수단이란 곧 물리적 강제력입니다. 물론 이것은 근대국가 이외의 다른 모든 정치적 지배체제도 가지고 있는 수단이기는 합니다만.

모든 국가는 폭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라고 트로츠키는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p. 19)

 

Ü 물리적 강제력에 대해 노자와 장자가 할 말이 있다. 먼저 노자다.

인은 사회적 개념이다. 그리고 지극히 인위적 개념이기도 하다. 노자의 시선으로는 인, , , 지만큼 인위적인 것 또한 없다. 따라서, 노자는 이 모두를 도와 덕의 하위개념으로 쏟아 넣는다.’

 

 그러나 장자는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고 전한다. 삶의 유한성을 인지해야 무한의 의식 확장이 가능하다 하면서 이러한 사회적 관념 체계는 실제 자신의 육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물리적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냥 배격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라고 일렀다.

 

 , 유가는 지배체제다. 그 물리적 속박과 체제를 배격했을 때의 육신에게 전해지는 파괴력은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무대의 마음으로 유대의 세상을 보는 법. 그것이 관건이었다. 장자는 말한다. ‘소용돌이나 태풍의 눈이 비어 있는 상태는 강렬한 소용돌이를 가능하게 하는 부동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용돌이의 내부가 비어 있음은 외부의 강렬한 운동과 동시적인 사태인 것이다. 그래서 장자가 권고하는 원환의 중심을 얻는 것, 혹은 빔 일종의 정적주의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고요함이 역동성의 이면이라는 것, 비움이 타자와의 민감한 소통과 동시적 사태 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는 곧 국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국가는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입니다. 요약컨대, 정치란 국가들 사이에서든 한 국가 내 집단들 사이에서든,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 또는 권력배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노력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p. 20)

 

Ü 개인에게 물리적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힘, 그러나, 존 로크는 국가도 개인의 소유권에 대해서는 함부로 그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했었다.

 

국가는 정당한 강제력이라는 수단에 기반하여 성립되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관계입니다. 따라서 국가가 존속하려면 피지배자가 그때 그때의 지배집단이 주장하는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피지배자들은 어느 경우에 그리고 무엇 때문에 복종을 할까요? 이러한 지배는 어떠한 내적 정당화 근거와 외적 수단에 기반하고 있는 것일까요? 첫째로 관습의 권위, 즉 옛 유형의 가부장과 가산제 군주가 행사하는 전통적 지배가 이 유형에 속합니다. 둘째로 비범한 개인의 천부적 자질(카리스마)에 의거한 권위 즉 카리스마적 지배로 선출된 전쟁군주, 국민투표에 의거한 통치자, 탁월한 선동정치가(데마고그). 마지막으로 합법성에 의거한 지배, 근대적 공무원을 비롯하여 공무원과 유사한 모든 권력자가 행사하는 지배형태입니다. (p. 21~23)

 

Ü 누군가 말했다. 문명이란 인간자체가 인간에게 최선의 가축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 정치적 지배층은 자신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우선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p. 24)

 

Ü 궁금하다. 나는 역법개정(자신의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훌륭한 방법), 국호 개정, 군사, 토지제도 정비 등을 생각했다. 베버의 생각은 무엇인지 보자

 

□ 지속적으로 행정체제를 구축하려는 모든 지배조직은 두 가지 요건을 필요로 합니다. 첫째, 정당한 권력의 담지자임을 주장하는 지배자에게 복종하도록 인간의 행위를 조율하는 것. 둘째, 이러한 복종을 이용하여 상황에 따라 불가피한 물리적 폭력행사에 필요한 물질적 재화를 확보하는 것. 다시 말하여, 지속적 지배조직은 첫째 복종하도록 조율된 행정 간부진이라는 인적 요건과 둘째 행정수단이라는 물적 요건을 필요로 합니다. (p. 25)

 

Ü 간단하고 명쾌하다. 즉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관료집단과 그 관료집단이 실력행사 가능한 사회간접자본

 

□ 데마고그의 추종자들에게는 엽관(獵官) (, 관직의 독점을 통한 피지배자의 착취) 이나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이권 그리고 허영심 충족이라는 추가보상이 주어집니다. (p. 26)

 

Ü 은 사냥하다는 뜻이다. 관직사냥 즉 관직을 배분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한다.

 

근대국가의 발전은 어디서나 군주가 그와 공생해 왔던 독립적이며 사적인 행정권 소유자층의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시작합니다. 이 계층은 그때까지는 행정수단, 전쟁수단, 재정수단 및 기타 정치적으로 이용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재화들을 직접 소유하고 있었던 계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박탈과정은 독립적 생산자들의 생산수단을 점차 박탈함으로써 진행되는 자본주의적 기업의 발전에 전적으로 상응하는 과정입니다. (p. 29)

 

Ü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중세의 길드 또는 가내 수공업 위주의 상품 시장이 대규모 생산수단을 앞세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기 시작하면서 무너진 것처럼 자본주의는 영세하고 독립적인 생산수단을 소유한 모든 생산참여자들의 철저한 파괴 위에 세워졌다. 영세하고 독립적 상공업 기능들이 무너지는 과정과 근대국가의 정치적 기반이 세워지는 과정은 같다고 막스 베버는 말하는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는 소규모 소상공인들의 생산수단을 침탈했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근대국가는 사적 행정권 즉 도로, , 수레, 병기, 가옥 등의 소유자층의 권한을 침탈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민주화는 사적 행정수단의 박탈과정이고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독점 과정이라 말할 수 있겠다.

 

□ 오늘날 국가에서는 행정인력을 즉 행정관료와 행정고용인을 물적 운영수단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과정이 완전히 관철되었습니다. (p. 29)

 

Ü 관료의 탄생이다.

 

□ 자본주의적 기업의 운영은 정치적 행정과 상당부분 유사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정치적 행정과는 전혀 다른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p. 30)

 

Ü 그 법칙이란 무엇일까? 생각컨대 유한한 주주권의 행사와 다수의 공리가 아닌 사적 법인 이익관점의 운영 아니겠는가.

 

□ 근대국가는 공적 법인체의 성격을 띤 지배조직입니다. 이 지배조직은, 한 특정한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지배수단으로 독점하는 데 성공한 지배조직입니다. 근대국가는 이러한 독점을 위해 모든 물적 운영수단을 국가 운영자의 수중에 통합시켰고 과거에 이 물적 운영수단에 대해 독자적 처분권을 가졌던 모든 자립적 지배층의 권한을 박탈하고 그들의 자리에 국가 자신을 그 정점으로 정립하였습니다. (p. 30~31)

 

Ü 근대국가로의 이행은 획기적이다. Nation, state, capital 이 세가지 관점과 수단이 더 해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최대의 파괴자다.

 

2. 직업 정치가의 제 측면

 

□ 정치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정치를 위해서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것입니다. (p. 36)

 

□ 정치를 위해서 산다는 것과 정치에 의존해서 산다는 것 사이에 상기한 구분은 곧 경제적 측면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은 정치를 지속적 소득원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인데 반해, 정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p. 36)

 

Ü 결국, 경제적 자유가 있는 사람만이 정치행위가 가능하다는 말인데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적 세계가 완성된 근거가 되겠다.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가능한 사람은 자본가가 유일하지 않은가.

 

□ 정치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자는 이에 더하여 경제활동에 묶여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완벽한 경우는 금리 내지 지대 생활자입니다. 그는 완전히 불로소득 생활자입니다. (p. 37)

 

Ü 그렇지

 

□ 변호사는 직업 정치가로서는 다른 직종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큰 역할을 때로는 지배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p. 38)

 

□ 한 국가나 정당이 경제적 의미에서 정치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된다 함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지도층이 금권 정치적으로 충원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 39)

 

Ü 변호사는 사건의 논리를 세우는 사람이다. 윤리와 도덕, 상식에 어긋난다 해도 논리적으로 합리성을 검증 받게 되면 사건에서 이겼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정치에 필요한 것은 논리와 합리성이다.

 

□ 정당간의 모든 투쟁은 본질적 목표를 위한 투쟁일 뿐 아니라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p. 41)

 

Ü 엽관 투쟁

 

□ 스페인의 식민지에서는 이른바 선거라는 것도 또한 이른바 혁명이라는 것도 그 목적은 사실은 국가의 여물통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승리자들은 이 여물통에서 관직이라는 사료를 얻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p. 42)

 

Ü 비단 스페인뿐이겠는가.

 

□ 근대 관료층은 장기간의 예비교육을 통해 전문적 훈련을 받은 고급 정신노동자로 발전했으며 청렴성의 확립을 위해 신분적 명예심을 고도로 개발했습니다. 미국만 해도 과거에는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심지어는 우편배달부에 이르기까지 수십만의 관리들을 갈아치우는 약탈정치가들의 아마추어 행정이 지배했습니다. (p. 43)

 

Ü 약탈정치가들의 아마추어 행정이라바로 이 나라를 말하는 게 아닌가. 원칙 아닌 것을 원칙이라 우기며 국가 행정권을 남용하여 제 나라 국민을 때리는 어이없는 행태 말이다. 막스 베버가 살아 있었다면 일갈 했을 터

 

□ 실질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 자문관 예컨대 동방에서는 통치의 결과에 대한 개인적 책임으로부터 술탄을 가능한 한 보호하기 위해 대재상이라는 전형적인 인물이 창출되었습니다. (p. 45)

 

Ü 무개념 약탈에 대한 물타기

 

□ 혁명국가는 완전한 아마추어들에게  - 이들이 기관총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행정권을 넘겨주었으며 전문 훈련을 받은 관료들을 단지 명령을 집행하는 두뇌와 수족으로 이용하고자 할 뿐 입니다. (p. 51)

 

Ü 해방 이후, 미군정이 시작될 무렵 친일 행정 관료들과 전쟁 수행능력을 지닌 일본군 부역자 군 간부들이 그대로 중용되었다는 점은 이와 다를까.

 

3. 직업 정치가의 역사적 제 유형

□ 성직자, 문인, 궁정귀족, 도시문벌 (p. 53)

 

□ 성직자, 특히 독신 성직자는 봉건 가신들과는 달리 일상적인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이해관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군주에 대항하여 자기 후손을 위한 독자적 정치권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유혹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p. 54)

 

Ü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 등 각 종교가 지배논리화 되는 메커니즘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 다섯 번째로 대학교육을 받은 법률가 층이었습니다. 정치구조의 혁명적 변화가 합리적 국가의 발전이라는 방향으로 진행된 곳이면 어디서나 숙련된 법률가들이 이 변화를 주도 (p. 56)

 

□ 프랑스 혁명기의 국민회의 구성원들의 직업을 검토한다면 여러분은 비록 이 국민회의는 평등선거법에 의해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의 프롤레타리아와 극소수의 부르주아 기업가, 그리고는 수많은 온갖 종류의 법률가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p. 58)

 

Ü 역시 법은 인민의 편은 아니었어.

 

□ 정당의 출현 이래 서양 정치에서 변호사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정당을 통해 정치를 운영한다는 것은 곧 이익집단들을 통해 정치를 운영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곧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안을 이해 당사자인 고객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 가는 것, 이것이 곧 숙련된 변호사의 특기입니다. 이 점에서 변호사는 관료보다도 우월합니다. (p. 59)

 

Ü 변호사는 위정자가 볼 때는 최고의 관료다.

 

진정한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그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지고한 의미에서의 도덕적 자기통제와 자기부정 없이는 조직 전체가 붕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가장 지고한 품성을 가진 관료들이야말로 정치가로서는 부적절하고 무책임책임개념의 정치적 의미를 기준으로 볼 때 말입니다만 사람들이며,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낮은 수준의 정치가들입니다.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이런 정치가들이 지도적 위치에서 활동하는 것을 되풀이해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관료지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p. 61)

 

Ü 관료, 도덕적 자기통제와 사상적 자기부정을 강요 받는 자. 정신병적인 자기 분리를 매번 겪어야 하는 사람. 그러나 신념이나 사상이 없다면 그저 편한 자.

 

4. 근대적 정당과 직업 정치가

 

□ 지도자와 그 추종자는 모든 정당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입니다. (p. 70)

 

sowjet, 소비에트라는 말은 평의회, 대표자회의를 의미하는 러시아어였지만 러시아 혁명 때에 자연발생적으로 노동자, 군대, 농민 대의원 소비에트가 형성된 후로부터 특수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러시아 혁명 후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의 권력기관 또는 권력형태를 총칭하는 용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역자주석 p. 71)

 

□ 지도자의 개성이 선거전에서 데마고그적 영향을 발휘하여 당에게는 표와 의석, 즉 권력을 가져다 주고 그러함으로써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더 많은 보상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p. 77)

 

Ü 우리도 한번 휩쓸린 바 있는 콩고물 정치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때 우리 모두는 자신 스스로 어떤 콩고물을 바랐는지 물어볼 일이다.

 

□ 모든 연방관직을 승리한 후보의 추종자들에게 배분하는 시스템인 엽관제가 오늘날 미국의 정당구조에 대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전혀 이념적 원칙이 없는 정당들이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당은 순수한 관직 사냥꾼 조직으로서 선거전이 있을 때마다 득표 가능성에 따라 정강을 바꾸어 버립니다. (p. 88)

 

Ü 미국의 근본 없는 정당주의다. 바로 엽관제적 민주주의가 미국에서 시작했고 그 추종 국가들이 지금의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거대한 주류가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이러한 기반을 가진 엽관제가 미국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 문화가 아직 젊어서 순수한 아마추어적 국가 경영을 감당해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단지 미국과 같이 아직도 무한정한 경제적 기회를 가진 나라만이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p. 89)

 

Ü 미국을 추종하는 것은 결국 내면적으로 바꿀 수 없는 외연의 경제적 기회를 추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스스로를 미국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바라 보아야 한다. 아직 젊어, 에너지가 남아 있어 그것이 다할 때까지 자신의 내적 성장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5. 직업 정치가의 자질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

 

□ 정치가라는 직업은 우선 권력감을 제공합니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에 대한 지배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 어떤 사람이 정치가가 되는가의 문제는 윤리적 문제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인물이라야 감히 자기 손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도 좋은가 라는 문제는 윤리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p. 103)

 

Ü 정치가, 역사의 수레를 움직이는 자

 

□ 열정, 게오르크 짐멜 (막스베버와 동시대의 사회학자로 이른바 형식사회학을 정립) 비창조적 흥분상태라고 했습니다 (p. 104)

 

□ 하나의 대의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열정이 우리를 정치가로 만들 수 있으려면 그것은 헌신과 동시에 바로 이 대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이라야 하며, 더 나아가 이런 책임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주도하도록 만드는 열정이어야 합니다. (p. 104)

 

Ü 정치적 열정에 대한 막스 베버의 말이다. 내가 아는 가장 윤리적 열정이다. 또 하나, 윤리에 대해 짚고 가자. 윤리는 인화성 짙은 사건들을 애써 피해간 삶의 무늬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한 말이다. 그럴 듯 한가, 알 수 없다.

 

균형감각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입니다.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서 모든 정치가의 가장 큰 죄과 가운데 하나입니다. (p. 105)

 

Ü 3자적 시각으로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 그리하여 이해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사안의 핵심에 접근하는 방법, 이것이 정치적 시각이겠다.

 

열정적 정치가의 특징인 강한 정신적 자기 통제력은 거리감에 익숙해짐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정신적 자기 통제력이 그를 단순히 비창조적 흥분에만 빠져 있는 정치적 아마추어들로부터 구분하는 자질입니다. (p. 105)

 

Ü 정치가의 자질, 그러나 자칫 이것은 자기규제를 강화시키고 자기통제를 내면화 시키는 소극적 행동양식을 부추길 수 있겠다. 제레미 벤담이 파놉티콘에서 간수과 수감자들을 감독하는 시스템을 두고 이와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권력추가 대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채 순전히 개인적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그때부터 정치가-직업의 신성한 정신에 대한 배반이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정치영역에서는 궁극적으로는 단 두 가지 종류의 치명적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성의 결여와 무책임성이 그것입니다. (p. 107)

 

Ü 권력지향은 정치가의 양분이다. 그러나 객관성과 책임이 결여된 권력지향은 욕망의 악마로 변한다.

 

□ 그 어떤 경우이든 하나의 신념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표면적으로는 아무리 정치적 성공이라 하더라도 이 성공에는 사실은 피조물 특유의 공허함이라는 저주가 드리워져 있으며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p. 109)

 

Ü , 이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피조물 특유의 공허함이라니

 

□ 정치의 윤리적 고향은 어디일까요? (p.111)

 

□ 인간의 선의와 완전성을 전제할 어떠한 권리도 자신에게는 없다는 입장 피히테- (p. 120)

 

□ 모든 폭력성이 제거된 상태를 가져다 줄 마지막 폭력 (p. 123)

 

Ü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가? 막스 베버는 말한다.

 

□ 어떤 목적이 어떤 수단을 정당화하는지를 윤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p. 123)

 

어떻게 전지전능하면서 동시에 자비롭다고 믿어지는 신의 힘이 그렇게도 비합리적 세계, 다시 말하여 부당한 고통, 처벌받지 않는 불의, 그리고 개선의 여지가 없는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비합리적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는가? (p. 124)

 

Ü 신의 그러나 무가치적이고 무자비하다. 인간이 하는 일은 모두가 비합리적이고 즉흥적이고 단순하며 감정적이기 때문에 부당, 불의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캠벨은 칼리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왼손에는 피 묻은 칼을 들고 있었고 그 아래의 손은 참혹하게 잘린 인두의 머리터럭을 거머쥐고 있었으며 위의 오른손으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손짓하고 있었고 그 아래 손으로는 은혜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 목에 걸린 목걸이는 인간의 머리를 꿴 것이었고 치마는 인간의 팔을 짜맞춘 것이었다. 긴 혀는 피를 찾아 낼름 거렸다. 이 여신은 다름아닌 절대 절멸의 공포와 비인격적이지만 모성적인 평화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우주적인 권능, 우주의 전체성, 대립물의 조화였다. 시간의 강이 사람의 흐름으로 바뀌면 여신은 순식간에 창조하고 보존하고 파괴한다. 이 여신의 이름은 검은 존재 the black one, 즉 칼리 kali. 별명은 존재의 바다를 건네주는 나룻배다.’

 

□ 통상적 의미에서 마키아벨리즘의 진정으로 극단적 형태는 카우탈리야 아르타사스트라 라는 인도 문헌(찬드라 굽타 시대) 에 고전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오히려 순진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p. 127)

 

□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폭력이라는 이 특수한 수단과 손을 잡는 자는 누구든 이 수단이 가져오는 특수한 결과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지상에서 절대적 정의를 폭력에 의거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이 목적을 위해 추종자, 즉 인적 기구가 필요합니다.

 

Ü 결국, 정치는 폭력을 전제로 한다. 정치적 다툼은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수단의 쟁취를 위함이다. 겉은 열정으로 넘치지만 그 목적으로 그래서 항상 저열하다.

 

그의 성공은 자기 자신의 동기가 아니라 이 기구의 동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조건하에서의 활동을 통해 실제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는 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의 행위에 깔린, 윤리적으로 대부분 저열한 동기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주관적으로는 정직한 것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복수심, 권력욕, 전리품과 봉록에 대한 욕구의 윤리적 정당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p. 130)

 

Ü 동기부여, 그것은 윤리적으로 저열한 것, 정치가 또는 자본가에게 정치적 또는 이익목적을 위해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자발적 봉사를 부추기는 것. 저급한 것.

 

□ 신념투사의 추종자들은 일단 지배층이 되고 나면 매우 쉽사리 하나의 평범한 봉급자층으로 전락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p. 131)

 

Ü 베버는 정치 또는 혁명의 추종을 부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아무리 순수한 신념으로 출발했다 하더라도 정치에는 폭력성과 물질적 저열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고 그 안으로 나아갈 때는 그것들을 모두 감내해 내야 하거나 또는 그런 폭력적 인간이 되어 감을 무서워하거나 반성하지 않을 수 있을 때라야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론

<신념윤리> <책임윤리>의 상보성

 

정치,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 (P. 133)

 

Ü 인간에게 정치란, 그 철학적 담론과 사회학적 의미를 단 한 줄로 막스 베버는 집약하고 있다.

 

□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업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p. 134)

 

Ü 정치라는 것은 우리가 인지하는 폭력 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 그리고 인간이 가진 그 모든 폭력에 대해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 우리는 사회주의의 미래라든가 국제적 평화라든가 이런 모든 것을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추구하는데 정치적 행위는 폭력적 수단을 가지고 그리고 책임 윤리 하에서 수행되는 것이며 따라서 위의 목적들의 추구는 영혼의 구원을 위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신념윤리를 따를 경우 행위자는 모든 정치적 행위에 개입되어 있는 상기한 악마적 힘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p. 135)

 

Ü 폭력수단의 책임윤리 하 수행, 인간에게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인간에게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기 시작한 때부터겠다. 그리고 영성이 겸비된 정치가 가능한가? 나는 인류 역사상 단 한 사람 보았다. 예수.

 

□ 이것이 나의 신념이오, 나는 이 신념과 달리는 행동할 수 없소 (p. 137)

 

Ü 인간이라면 이 정도 신념은 가질 만 하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p. 139)

 

Ü 그러나 이런 신념에 근거한 정치가들이 인류에게는 존재했기 때문에 어쩌면 민주적 의사결정과 1인 통치, 1당 독재 등을 사멸 시킨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존재한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p. 140)

 

Ü 막스 베버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마지막에 나왔다.

 

3. ‘미친 세계의 무게 중심(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1919년 그러니까 막스 베버가 영면하기 한 해 전에 뮌헨대학에서 강의했던 녹취록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 그래서 구성은 치밀하지 못하다. 그러나 내용은 구성의 엉성함을 압도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이 어떻게 근대 정치, 사회학의 고전이 되었는가를 읽어 내리면서 알았다. 우선 그의 시각은 매우 객관적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어지러운 세계, 파시즘의 태동이 시작되는 외골수의 세계, 무엇보다 전쟁통 한 중간에 있는 독일 사회, 그 세계에서 이런 객관적 관점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관총 앞에서 여전히 돌격 앞으로를 외치던 시대였고 기계의 위대함에 인간의 무력함이 무릎 꿇던 시대였다.

 

 어느 시대이건 전쟁은 그 시대의 사유와 생활방식을 지배했는데 막스 베버는 유일하게 지구별을 자기 손 위에 올려놓고 각각의 세계를 저울질하고 모서리를 들어보는 3자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구 전체가 전쟁터에 있던 시절, 이데아를 말하는 플라톤과 사뭇 유사하지 않은가. 막스 베버는 이 책에서 초반, 중반, 후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정치적, 그리고 사상적 스탠스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하는 제일 말미에 말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소명에 대한 정치가의 자세를 함축하고 있다. 막스 베버는 좌우를 물어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 그는 학자였다. 학자의 본분은 학문의 체계화다. 그가 살던 시절, 그가 살던 지역, 그와 살던 동시대 사람들을 생각하여 볼 때 막스 베버는 학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한 것이었다. 그는 분석이 아니라 지향을 말하고 있었다.

 

 이 책으로 나는 막스 베버와 처음 조우했다. 이전에는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혁명에 반하는 부르주아지 대변자, 얼치기 엘리트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의 시각은 매우 객관적이다.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 모양이다. 나의 협소한 시각과 관점이 어떻게 세계를 편협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지를 나는 막스 베버를 통해 배웠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학을 선도하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다. 나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그의 저작을 하나 더 읽어 보기로 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이 책을 읽고 나면 막스 베버라는 사람의 사회학적 철학에 대해 좀 더 접근해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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