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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올해는 왠지 연말이라는 기분이 좀체 들질 않는다. 그렇고 그런 똑같은 나날들. 내일이면 새로운 연도가 바뀌는 날인데도 들뜸은커녕 지루한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직원들이랑 점심식사와 차 한 잔을 나누다 보니 종무식이 얼마 남질 않았다. 13시 20분. 앞으로도 잊지 못할 정지된 듯한 그 시간. 핸드폰 벨이 울린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병원으로 와라.”
무슨 소리지. 엄마가 돌아가시다니. 수화기 너머 누나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가 윙윙 거리며 산에서의 메아리가 울리듯 가슴에 똬리 친다. 내가 잘못 알아들었으리라. 형이 저세상으로 떠난 지 이제 한 달여가 지나가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지. 더구나 오늘이 어떤 날인가. 하루만 더지나면 모든 이가 그렇듯 열기를 품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소망을 바라는 새해가 아닌가. 확인차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그래.”
아니기를 바란 나의 바람과는 다른 대답이 나오자 머릿속은 하얀색 도화지로 채어진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나. 침착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해야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 그렇지. 상조회사 가입한 게 있으니 일단 그쪽에 먼저 연락을 하고 상담을 구해야지. 그다음에는 무얼 챙겨가야 하지. 컴퓨터를 끄고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 방울 하나가 떨어진다. 어떻게 이럴 수가. 외투를 걸치고 택시를 잡아탄다.
“기사님, 오산이요.”
시동을 걸고 얼마 가지도 않던 그가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한다.
“교대 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질 않아 다른 차를 이용하시는 게 낫겠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 그럼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어야지. 급하다는 상황설명을 해도 그는 막무가내다. 시팔. 정말 시팔 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단 말이야. 내려서 기다려도 택시는 오질 않는다. 어떻게 하지. 서둘러야 되는데.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오늘 일기예보 상으로는 따듯하다고 했었거늘. 세 번째 차량을 잡아타고 다시 외친다.
“기사님, 오산이요.”
앞의 그들처럼 난감한 표정. 뭐야.
“기사님. 요금 더드릴께요.”
가는 내내 의식은 이곳저곳을 헤맨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보니 그 와중 모레 대구 출장이 생각난다. 거래처에 양해를 구해야 되겠구나. 다음으로는 무얼 하지. 이모님과 외삼촌에 전화를 걸고 어머님 상황을 설명하노라니 맺혔던 방울이 꽃의 개화처럼 다시 터진다. 아문 상처에서 다시 피고름이 쏟아지듯이. 그럼에도 차창 밖의 풍경은 한가롭다. 현재의 나의 상황과는 딴판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연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비비대며 깔깔거린다. 그렇지. 젊은 날의 시절은 무얼 해도 좋은 나이지. 저들은 이런 상황을 모르리라. 그들의 일이 아닌 나에게 닥친 상황이기에. 모든 일이 그렇듯 멀리서 바라본 풍경과 체험하는 현실의 체감온도는 다르다. 거기에 돌발 상황까지 겹치게 되면 그 온도는 배로 상승이 된다.
그때의 그 작은 사건 하나가 이런 비극으로 치닫게 할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일 년 육개월전. 고관절로 처음 개인병원을 찾았을 때만 하여도, 한 달이면 완치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처음의 나날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혼수상태로 빠지게 되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직행. 요도감염으로 이어진 그 연계 질병은 그 후 노환이라는 병명으로 이어져 치료방법이 없게 만들고 결국은 요양병원으로까지 귀착되게 하였다. 그 후 중풍, 우울증, 치매로 이어지는 발병단계의 수순을 밟더니 결국은 오늘의 결과로 끝이 맺게 되다니.
어머니가 계신 병실로 황급히 들어서니 덩그러니 차가운 침대 하나와 이제는 고된 이승에서의 삶을 끝낸 육체 하나가 황망히 늘어져 있다. 붕대로 칭칭 감긴 쇠약해진 얼굴. 이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인가. 꿈에서도 아무런 조짐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숨이 차다. 왜, 왜, 결국 사람이란 것이 이렇게 끝이 나는 삶임에도 그렇게 아옹다옹 거리며 살다니.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아무런 구절이 떠오르질 않는다.
사람이 날숨 끝자락을 내뱉는다는 것은 이승의 삶이 끊긴다는 것은
살아오고 경험한 느껴온 모든 시간과 역사와 행위가 멈춘다는 것
그런데 멈춤 그 이후에는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지.
입관 예식. 장례지도사의 익숙한 손길에 따라 기계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저들은 얼마나 많은 시신들을 다루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억겁의 울음을 들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 손과 발을 정성껏 닦고 옷을 입히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며 머리를 감기고 나서 유족들에게 선을 보인다.
“승호야, 평생 찡그린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 하였었는데 이마에 그 주름이 없어졌다.”
누나의 말. 그러했다. 세상 가득 갖은 풍상을 다안고 산 그 고됨의 흔적이 온데간데없다. 좋은 곳에 가신 것일까. 가톨릭이란 종교를 믿고 있지만 땅을 딛고 사는 한 인간이기에 단테처럼 지옥, 연옥, 천국을 경험할 수는 없는 상황으로서 그녀는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이런 인간에게 그는 <신곡>을 통해 이야기를 건넨다.
인간들이여,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라!
그대들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면
마리아께서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었겠지.
만족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헛되이 바라는 것을 그대들은 보았으니,
그들은 영원히 통곡할 자들이로다.
현실에서의 만족을 가지지 못했던 엄마.
그곳은 아늑하신가요.
엄마의 삶은 어찌 그리 그런가요.
어째서 살아생전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죽어서의 세계를 더반기는 모습인가요.
진정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하셨나요.
그런데 그 이후에 남겨진 나는 어떻게 되나요.
남겨진 내가 어떤 멍울을 짊어지고 살아갈지 생각은 해보셨는지.
관 뚜껑을 덮기 전에 장례 지도사는 마지막 한마디를 하라고 한다. 마지막 한마디? 무슨 말을 하여야 하나.
‘엄마, 잘 가세요.‘
겉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눈물은 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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