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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6일 06시 15분 등록

No 36

2014.01.06

오미경

즐거운 지식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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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사. 초판 1976.07.01

 

 

~~~ 프리free하고 대담하게 너 자신이 되어라

~~~리듬에 맞춰 우리의 발걸음과 영혼이 신을 강제하고 제압하려고 시도하자

           현대의 신은 끊임없이 증식만 일삼는 자본의 욕망과 탐욕, 어리석음을 버려라. 

~~~ 드리워지고 이미 마련된 공간을 찾지 말고 원하는 것을 만들고 창조하라

~~~리라를 부는 아폴론처럼 보이지 않는 선율이 자연과 신을 끌어당기듯이

~~~ 히히히, 삶은 결국 웃기 위해서 사는 것이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예술작품으로 빚어라

~~~니 외에 네 삶을 대신할 사람이 없나니

~~~체(~인척)하고 살고 남의 인생 쫒아가다가 네 몸이 태워지는 것밖에 없나니.

 

1. 저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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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니체의 집안 배경은

 

많은 학자들로부터 현대 철학의 문을 연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철학자다. 니체에 대한 잘못된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인종주의자, 나치즘의 사상적 선구자, 여성 혐오주의자, 광기 철학자, 무정부주의자 등 매우 다양하다.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독일의 뢰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사인 카를 루트비히 니체와 프란치스카 니체 사이에서 태어났다.

니체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루트비히 니체)는 루터파 기독교 목사로 신앙심이 두터웠다. 아내가 6명의 아이를 낳고 죽자, 목사 가정 출신의 젊은 미망인과 재혼을 해서 3명의 아이들, 즉 두 딸 아우구스테와 로잘리 그리고 아들 카를을 낳았다.

막내 아들(니체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는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지시로 어버지의 뒤를 이어 뢰켄 마을의 목사가 되었다.

 

누나인 아우구스테와 로잘리도 뢰켄에서 카를과 함께 살았다. 카를은 1843년, 역시 목사의 딸이었던 프란치스카와 결혼했고 두 사람은 다음 해인 1844년에 프리드리히 니체를 낳았다.

결국 니체의 집안은 전형적인 기독교 가정이었다.

 

카를은 아들의 이름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라고 지었다. 재미있게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생일이 니체와 마찬가지로 10월 15일이다. 카를은 이를 매우 뜻 깊게 생각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국왕의 이름을 붙였다. 2년 뒤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다시 2년 뒤엔 남동생 요제프가 태어났고 니체 집안은 한동안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1849년 니체가 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 카를 니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다음 해엔 니체의 남동생인 요제프마저 죽었다. 연이은 불행 끝에 니체 가족은 할머니의 결정에 따라 뢰켄을 떠나 친지들이 많이 사는 니움부르크로 이사했다. 니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목사였고, 할머니와 어머니 역시 목사 집안 출신이었다.

 

무엇보다 가족 중심이었던 카를 니체가 죽은 뒤여서 집안 여성들의 사이는 더욱 삐걱거렸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 노처녀 고모 두명과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어린 니체에게 서로 집착했고, 특히나 어머니의 집착은 더욱 심했다. 여동생 엘리자베트 역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오빠인 니체에게서 찾았고, 오빠를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다.

 

1-2. 니체의 학창시절

 

니움부르크라는 낯선 환경에서 어린 니체는 이런 상황이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명령으로 니움부르크 시립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었다. 아마 니체의 불안한 심리탓 이었으리라.

얼마 뒤 니체는 다시 칸디다텐베버란 사립 학교에 입학해서 종교,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접한 니체는 공부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858년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문계 학교인 슐포르타에 입학했다.

 

니체는 특히 고전어와 독일 문학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게다가 시도 쓰고 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작고도 했다. 이렇듯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똑똑하고 비상한 재주를 지닌 소년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학창 시절이 그리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여성들로 둘러싸인 가정, 이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자신과 동생에 대한 어머니의 지나친 집착 속에서 니체는 괴로웠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부장적인 남성상을 동경하게 되었다. 니체의 철학에 남성 우월주의가 배어 있다는 지적에는 이와 같은 니체의 성장 배경이 근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니체를 평생 괴롭혔던 신체적 증상들이 이미 어릴 때부터 나타났다. 위장장애, 극심한 투통, 빛에 예민한 눈의 통증 등이 소년 니체를 괴롭히지 시작했다.

 

1846년 슐포르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니체는 본 대학에 들어가서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다. 신학을 택했던 건 니체가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를 원했던 어머니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 니체는 이미 기독교에 대한 회의에 빠진 상태였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심한 갈등을 빚었다.

 

1-3. 니체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알게 되다

 

니체는 문헌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해서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문헌학자였던 리츨 교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리츨 교수는 니체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자리를 옮길 때, 니체를 데리고 갔다. 라이프치히에서 지내는 동안 니체는 삶에 있어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알게 된다. 또한 1868년 당시 굉장한 영향력을 떨쳤던 작곡가 바그너도 만났다. 바그너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던 니체는 바그너를 직접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바그너의 피아노 연주도 듣고 바그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바그너 역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매료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데다 바그너의 강렬한 인상과 말솜씨에 홀려 바그너에게 반하고 말았다.

 

1869년 니체는 스승인 리츨의 추천으로 스위스에 있는 바젤 대학의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됐다. 이때 니체의 나이가 24세, 니체가 얼마나 뛰어났고, 리츨이 니체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수가 있다. 하지만 니체는 그 당시에 이미 고전 문헌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었다. 고전 문헌학보다는 철학이 자신에게 더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대학 교수란 직업은 커다란 유혹이었다. 결국 니체는 바젤의 교수직을 받아들였다. 본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 그리고 바젤 대학에서의 삶, 그렇게 니체는 6세부터 34까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열정적인 교수로서 살았다.

 

거의 28년 동안 세상과 격리된 채 학교에서 책만 파고 산 셈이지. 하지만 그는 책만 붙들고 있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과 직접 부딪치면서 얻는 경험과 깨달음이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점점 더 고전 문헌학에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고전 문헌학이란 고전 문헌들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더 큰 세계 속에서 자유롭고 거침없는 사유를 펼치고 싶었던 니체에겐 맞지 않았다.

 

그래서 1870년 니체는 답답한 학교를 떠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의무병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몸이 아파서 곧 바젤로 다시 돌아왔다. 니체는 고전 문헌학자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미 젊은 나이에 유럽 최고의 고전 문헌학자로서 명성을 떨쳤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교수였다. 학생들은 열정적으로 강연하는 니체를 보고 마치 고대 그리스인이 살아서 걸어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니체는 멋쟁이 교수였다. 옷도 잘 입었고 이 무렵부터 그 유명한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니체는 같은 학교의 교수였던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이탈리아 르네상으의 문화)도 깊은 우정을 맺었다. 교과서에 실린 르네상스 시대에 관한 설명은 그의 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부르크하르트는, 거대한 역사의 변혁은 그 시대의 공동체 집단이 아니라 자의식을 가진 특별한 개인들이 이루어내는 것이라 주장했고, 니체는 그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그때 마침 바그너와 그의 아내인 코지마가 바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트립센 별장으로 이사를 왔다. 바그너의 아내인 코지마는 유명한 작곡가 리스트의 딸이기도 하다. 코지마는 원래 바그너의 친구였던 지휘자 폰 뵐로우의 부인이었다. 폰 뵐로우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처음으로 지휘하는 등 바그너 음악의 충실한 해석자였다. 하지만 코지마는 바그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남편 몰래 바그너와 사랑을 나누었고, 둘 사이에선 딸이 태어났다.

 

바그너는 딸의 이름을 이졸데라고 지었다. 폰 뵐로우는 아내를 빼앗긴데다 바그너와 자신의 아내 사이에서 낳은 딸의 이름이 들어간 바그너의 음악을 지휘하는 비극적 운명에 놓였다.

 

1-4. 니체 문헌학자에서 철학자 되다

 

어쨌든 니체는 매주 바그너의 트립센 별장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가족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고전 문헌학 교수라는 현실적인 여건과 점점 더 커져가는 철학에 대한 열절 속에서 방황하던 니체는 극심한 편두통 때문에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1872년 니체는 <비극의 탄생>이란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그리스 비극의 탄생과 몰락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바그너가 독일의 희망이며 독일 문화의 새로운 전환점이라는 내용도 담고 있다. 니체는 당시의 독일 문화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 새로운 문화의 모습을 그리스 시대의 예술에서 찾았고 바그너의 음악에서 고대 그리스 예술의 재탄생을 보았다. <비극의 탄생>은 출판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바그너와 바그너 숭배자들은 이 책을 극찬했다. 하지만 많은 문헌학자들은 이 책을 비판했고, 심지어 니체의 스승인 리츨 교수도 혹평을 했다.

 

결국 니체는 문헌학계에서 왕따 신세가 되었고 동료들의 비난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니체가 서서히 문헌학자에서 철학자가 되어 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문헌학과의 불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후로도 니체는 바젤에서 게속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바그너의 이념을 전파하는데 전념했다. 바그너는 이때 트립센을 떠나 바이로이트로 가서 자신의 예술 극을 공연할 축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참고로 바이로이트 축제는 지금도 매년 독일에서 열리고 있다. 니체는 바이로이트에 자주 들러 바그너를 만났다.

 

하지만 니체와 바그너 사이는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바그너는 애초부터 니체를 자신을 위한 학문적인 봉사자쯤으로 생각했다. 바그너란 사람은 굉장히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우위에서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니체는 좀 더 동등한 위치에서 바그너와 관계를 맺고 싶어했다. 애초에 니체는 바그너의 충실한 하인이 되기엔 너무 큰 인간이었다. 게다가 니체는 유대인을 경멸하는 바그너의 인종주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니체는 점점 바그너와 거리를 두려 했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다. 바젤에서 열린 브람스의 공연을 본 니체는 그 곡의 악보를 사서 바그너의 집으로 갔다. 니체는 바그너 앞에서 브람스의 곡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했고, 그때 바그너와 주위 사람들은 매우 흥분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냐하면 바그너는 브람스를 지독하게 싫어했다. 니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했다. 니체는 1876년 8월에 마지막으로 바이로이트 축제를 찾았다. 하지만 몸도 굉장히 안 좋은 상태였던 데가 바그너 숭배자들의 야단법석에 진저리가 난 니체는 축제 일정이 남았는데도 바디로이트를 떠나 버렸다.

 

그날 이후 니체는 바그너와 결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니체와 바그너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878년 겨울이었다. 니체는 이때 건강이 안 좋아서 기후가 온화한 이탈리아의 소렌토에서 지내고 있었다. 우연히 바그너의 가족도 소렌토로 겨울 휴가를 왔다. 바그너는 니체와 함께 산책하면서 자신의 작품< 파르치팔>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작품이 지닌 기독교적인 면에 대해서 언급했다.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니체는 아무 말도 없이 바그너의 곁을 떠났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니체의 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소년 시절부터 시작된 두통과 위장 장애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바젤에서 교수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자 1879년 교수를 그만 두었다. 그후 니체는 자신의 생에서 남은 10년을 방랑자로 살아간다. 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남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를 떠돌았다. 하지만 건강이 좋아지진 않았고, 계속된 고통으로 발작 증세까지 자주 보였다. 그는 한정된 몇몇 사람들만을 만나며 고독하게 지냈고 바젤 대학에서 나오는 퇴직 연금을 모두 책을 출판하는 데 쓰며 자신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니체는 여전히 건강했다. 그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 직업도 가족도 없는 방랑 생활, 고독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일구어 갔다. 방랑의 시기에 한 여인을 사랑한 일도 있었다.

 

1-5. 니체 루살로메 만나다

 

루 살로메는 러시아 출신의 매우 지적인 여인이었다. 1882년 로마에 머물고 있던 중 친구인 파울 레의 소개로 루 살로메를 만났다. 사실 파울 레가 이미 루 살로메를 마음에 품고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했던 일이 있었다. 니체도 레와 마찬가지로 루에게 두 번이나 청혼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 루는 니체의 정신과 지식을 사랑했을 뿐이었다. 니체와 파울 레, 루 살로메 세 사람 사이의 미묘한 삼각관계는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루에 대한 니체의 감정을 알게 된 파울 레가 니체와 루 사이를 떨어드려 놓으려 했다.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는 자기보다 젊고 지적인 루를 좋아하는 오빠를 보고 질투심에 불타 루를 험담하는 등 갖가지 방해공작을 펼쳤다. 엘리자베트의 집요한 음모가 계속되면서 두 사람의 오해는 쌓여 갔고 결국 니체와 파울 레, 루 살로메의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동생 엘리자베트는 니체에게 많은 고통을 준 인물이다. 우선 니체와 루 살로메와의 관계를 깨뜨리려고 온갖 음모를 만들었고, 반유대주의자인 푀르스타와 약혼해 니체를 힘들게 했다. 엘리자베트는 니체가 죽고 난 뒤에도 니체에게 독과 같은 인물이었다. 니체의 명성이 점점 커지자 그녀는 오빠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니체에 관해 사실과 다른 신화들을 만들어 냈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명성과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 했다. 심지어 니체 박물관을 만들어 정신이 쇠약하고 말도 못하는 니체를 전시하기도 했다.

 

엘리자베트가 조작한 니체에 대한 수많은 잘못된 이야기들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니체에 대한 편견레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루 살로메와의 사랑이 실패한 1882년 겨울, 니체는 다시 고독한 방랑 생활로 돌아가 최악의 겨울을 보냈다.

잠시 청명한 날이 찾아왔던 1883년 여름, 위대한 사유가 몰려오자 니체는 권태감과 우울증에서 벗어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1부를 집필했다. 이때부터 니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책의 3부까지 쓰고 1884년 1월에 마지막 4부를 완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이 책을 자신의 최고 작품일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작품보다 뛰어난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니체의 창조적인 정신은 거의 정점에 달했고 아포리즘<잠언>이라는 니체만의 스타일도 완성된 상태였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소년기, 빼어난 문헌학자로서의 시기, 열렬한 바그너주의자를 지나 이제 니체는 자신이 그렇게 갈구했던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지닌 철학자가 되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고 , 니체 건강 역시 악화되는 와중에도 니체의 지력은 다음과 같은 책을 펴냈다. <선악의 저편, 1886><도덕의 계보,1887><바그너의 경우, 디오니소스 찬가, 우상의 황혼, 반그리스도, 이 사람을 보라,1888> 하지만 창작욕이 불타는 시기는 곧 끝나고 만다. 1888년 니체의 정신이 온전했던 마지막 해였다. 1889년 1월 3일, 투린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난폭한 마부가 말을 심하게 채찍질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남자가 통곡을 하며 그 말에게 다가가 말의 목을 끌어안고 쓰러졌다. 이 남자가 바로 니체였다. 의사는 니체에게 정신병 진단을 내렸다.

 

그 후 10년 동안 니체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엘리자베트의 간호를 받으며 살았다. 1900년 8월 25일, 니체는 생을 다했으며, 뢰켄 마을의 묘지에 아버지와 함께 묻혔다. 10년간 방랑하다가 마지막 10년은 정신별자로 살았고, 사후에도 나치주의자, 인종주의자로 몰려 소문에 휩싸였다.

니체의 철학은 생명력이 넘치고 환희에 차 기뻐 노래하고 춤추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인간을 그려내고 있다. 니체는 철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치유한 몇 안되는 사상자 중 한 사람이다.

 

 

Ⅱ. 마음을 무찔르는 글귀

 

[146]

 

나는 내 집에 살며

그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다

더욱이 마음껏 웃을 줄 모르는

모든 대가들을 비웃는다

- 우리집 문 위에 적은 글-

 

===> 니체는 ‘ 짜라투스라의 입’을 빌려 말한다.

“더 이상 그런 옛 기준과 법칙들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 자신의 기준과 법칙을 찾아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삶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건강하게 살기.

특히나 니체는 삶의 비극을 넘어서 자신을 보고 웃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 말했다. 삶이란 가까이거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지금 너무 힘든가? 그렇다면 자신을 좀 더 멀리서 보아라. 그리고 실컷 웃어보아라. 자신과 세상을 향해.

 

[148]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에서 철학을 한다. 이는 버팀목으로든, 진정제, 약, 속죄양, 기분전환, 혹은 자신을 고립시키는 수단으로든지 간에 아무튼 자신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풍요와 활력에서 철학을 할 수도 있다. 이는 철학은 아름다운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것은 승리감에 도취한 감사의 기쁨이며, 그마저도 결국 개념의 하늘에 우주적 대문자로 새겨져야 할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모든 인간은 결핍을 가지고 있다. 결핍을 메우려고 무엇이든지 한다. 누구는 공부로, 돈으로, 지위로, 정치로, 글쓰기로, 책으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사진으로, 반항으로 폭력으로 자해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든지 말한다.

 

[148]

 

철학역사에는 병든 사색가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괴로움이 철학을 낳는다면, 생각 자체가 병으로부터 압력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여행자가 조용히 잠들기 전에 특정한 시간에 일어나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우리 철학가들 역시 병이 났을 때는 몸과 영혼을 병에게 맡기고 우리 자신들로부터 눈을 감아 버린다.

무엇인가가 잠자지 않고 시간을 재다가 그를 깨울 것을 여행자가 알듯이, 우리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 깨어 있을 것이며 그때에 그 무엇인가가 생동하는 영혼을 잡아줄 것을 알고 있다.

생동하는 영혼이란 곧 건강할 때는 자존심 때문에 허용이 안 되는 허약함, 회개, 포기, 실망, 경직된 상태 등 영혼의 온갖 병리학적인 상태의 다른 이름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짐승들은 자존심 강한 영혼, 공작새, 그리고 말馬이다.”

 

===> 생동하는 영혼이란 인간의 무의식속에 흐르는 모든 감정들이네. 예의상 인간관계상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결국은 생동하는 여혼이라고 이름지었는가.

 

[149]

 

객관적인 것, 관념적인 것, 혹은 순수하게 영적인 것이라는 이름 아래 무의식적으로 숨겨진 생리적인 욕구의 변장술은 놀랍도록 다양하다. 그래서 나는 넓은 안목으로 봐서 지금까지의 철학은 고작 육체에 대한 해설, 더 정확히는 육체에 대한 오해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해 본다. 지금까지 사상의 흐름을 장악해 온 최고의 가치판단 뒤에는 개인의 계급의 또는 종족 전체의 육체 구성에 대한 오해가 숨겨져 있었다.

 

===> 철학은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학부에서 거의 대부분 철학을 공부한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사유를 다양하게 배우는 것일게다.

‘전쟁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혁명이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육체와 육체가 품는 정념에서 온다. 모든 전쟁은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부를 축적해야만 하지 않는가. 그 때문에 우리는 육체의 노예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철학을 생각할 시간이 없는 이유다.

- 앙드레 보나르, <그리스인 이야기> 중에서 -

 

나또한 육체의 노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된다. 배고파서 피곤하고 잠이 와서 할 일을 제때에 못하고 허둥지둥하고 있다. 육체와 정신은 같이 가야 한다. 어느 한쪽을 짓누를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육체가 없이 정신만 펄펄 살아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귀신이다. 정신은 없고 육체만 살아있다면 그것 또한 살아있는 시체이다. 올해는 몸과 마음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는 법을 익히고 생활화하고 싶다.

 

[153]

 

사람들은 진줏빛 불확실함들과 수수께끼들 뒤에 몸을 숨긴 자연의 수줍음을 좀더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진리란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지 않을 만한 이유를 숨기고 있는 여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의 이름은 –희랍어를 쓰자면- 바우보(baubo)가 아닐까?

 

===> 여자는 양파와 같아야 한다. 루 살로메가 말한 “너의 전부를 보여주지 말라. 네 자신을 전부 보여주면 사람들은 더 이상 볼 것이 없어 너를 떠날 것이다”라고 했다. 루 살로메의 이런 경구가 어쩌면 한 세기를 풍미하게 만드는 매력이었을 것이다.

‘바우보’란 원시적이고 음란한 여자 귀신으로 여성 생식기를 인격화한 것이다.

 

 

*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

독일식 압운의 서곡

[155]

 

2 나의 행복

추구하는 일에 지치게 된 나는

발견하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

역풍을 만난 이후로 나는

어떤 바람과도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

 

===> ‘추구하는 일’은 쫒아가는 것이요. ‘발견하는 일’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사를 살아가는 방법중의 하나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역풍이란 원하지 않는 일이 느닷없이 뜬금없이 별안간 다가온다해도 “왜 나에게만 이런일이”라는 질문보다는 “ 이 바람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는 것인가. 이 바람에게서 내가 체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한다. 그러면 삶의 어떤 바람과도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3 두려움 없이

네가 서 있는 곳을 깊이 파라!

그 밑에 샘이 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외치게 놔두어라.

아래로 가면 오직 지옥뿐이다! 라고 해도

 

===> 내가 서있는 곳을 깊이 파라고? 내가 하는 일을 미친듯이 해보라구?. 사부님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미~~미친듯이 해보라구” 올 한해 정말이지 미친듯이 살아볼까!

 

6 처세술

평지에서 머물지 마라!

너무 높이 오르지도 마라!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중간 높이이다.

 

===>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 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터보다 집이 크면 그 터의 기가 건물에 눌립니다. 고층 빌딩은 지기를 받지 못하는 건축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립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조금 작은 듯한 집이 좋다고 하지요.

 

자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 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7급이 바둑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신영복 <강의 101, 103p>-

 

7 나를 따르다 - 너 자신을 따르다

나의 방식과 말에 유혹되어

나를 따르고 나를 추종하는가.

오직 너 자신만을 충실히 따르라 -

그것이 나를 따르는 것이다 - 천천히, 천천히!

 

===> 나 자신을 따르라구, 나 자신의 무엇을?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남과 함께 있어봐야 한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성격에 대해 무지하다.

사람은 자기를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 칼융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나만의 우물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밖을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있으면서 비로소 나의 참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

 

9 나의 장미

그렇다! 나의 행복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

모든 행복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리라.

너희는 나의 장미를 따고 싶으냐?

바위와 가시덤불 산울타리 사이에

너희는 웅크리고 몸을 감추고

자주 손가락을 찔릴 것이다.

나의 행복은 조롱을 즐기기 때문에

나의 행복은 음모를 즐기기 때문에

너희는 나의 장미를 따고 싶으냐?

 

===> 행복은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기쁠때 함께 나누는 행복일 것이다.

 

12 빛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과 마음이 시들기를 원치 않는다면

태양을 향해도 그늘 속을 걸어라!

 

===> 낮과 밤, 양과 음, 양지와 그늘, 조화로움과 균형의 추구. 햇빛이 쬔 날이 있고 비가 오는 날이 있어야 자연의 조화를 이룬다. 자연을 보면 세상살아가는 법도 배운다.

 

16 위로

산을 오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그저 오르기만 하라!

 

===> 과정 그 자체를 즐겨라. 과정속에 삶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 있나니.

 

17 권력자의 말

구걸하지 마라! 왜 우는 소리를 내느냐!

빼앗아라! 부탁하노니, 자 뺏어 가라

 

===> 부탁하거나 구걸하지 않고 전쟁이라도 일으켜 빼앗는 것이 권력자다. 권력은 승리자의 것이다. 승리자의 편에 쓰여있는 것이 역사이지 않던가.

 

22 남과 여

내 마음을 사로잡는 여성이 있으면 빼앗겠다 고 남자들은 생각한다.

여자들은 빼앗지 않고 훔친다.

 

===> “남자들도 의외로(!)로 똑똑하다. 전혀 가능성 없는 여자들에게는 함부로 덤벼들지 않느다. 여자가 가만히 있는데 남자들이 대시하지는 않는다. 뭔가 시그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가만 있다. 하지만 자기 기준에 합당한 남자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낸다. 아무것도 아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이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남자가 관심을 보였다? 그건 아니다. 신호를 읽는 자만이 여자를 얻는다. 물론 그 남자는 여자가 신호를 보낼 만한 뭔가를 갖춘 사람이다. - 명로진< 연애에 말걸기 30-31p>

 

23 해석

나를 해석하려면 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해석자는 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나의 모습도 밝은 빛 속으로 높여 주리라.

 

===> 내 안으로 들어가되 나의 해석자가 될 수 없다? 나를 바라보되 나를 생각하는 것이지. 나를 해석할 수 없다는 뜻인가? 해석은 내가 할 수 있되, 나를 해석하는 해석자는 다를 수 있으니까. 해석자에 따라 나를 해석하는 것이 다르니까.

 

25 소망

타인의 마음은 잘 알면서도

내가 누군지, 그것을 모른다!

내 눈은 나 자신과 너무 가까워서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한층 멀리 자리 잡을 수 있다면

나도 내게 더 유익할 수 있으련만.

 

===> 타인과 나는 적당한 거리가 있기에 잘 볼 수 있다. 적당한 거리는 타인을 잘 볼수 있게 한다. 나는 내 자신과 거리가 없기에 볼 수가 없다. 자신의 우물속에 빠져버리기 쉽다. 나를 멀리서 보는 연습을 하자. 나 자신을 저 멀리서 두고 관찰해보자.

 

28 초심자를 위한 위안

일단 두 발로 설 수만 있다면

곧 물구나무도 설 수 있으리라.

 

===> ‘시작이 반이다‘ 시작하면 계속해서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뭔가 원하는가. 그렇다면 일단 시작을 하고 습관화 해라. 습관화가 되기까지는 힘들고 힘든 여정이 기다려지지만, 이래도 저래도 시간은 가니까. 선택했다면 집중하자. 자기만의 유니크한 것을 창조해내기까지.

잡동사니 몇 개를 더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시간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팔지마라.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것은 꿈에 쏟은 시간의 양이다.

- 구본형-

 

33 고독한 자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남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만이 타인을 지도할 수 있다.

외딴섬에서 행복한 망상에 잠겨 앉아 있는 것.

이윽고 멀리서부터 나를 불러들여

나 자신을 나 자신에게로 유혹하는 것.

 

===> 자신을 감동시키는 자만이 남을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다.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썼을까?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어디로 튈지 몰라? 예측 불가능한 자?

 

38 신앙심 깊은 자는 말한다.

신은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를 창조했기 때문에!

하지만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고 너희 현명한 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창조한 것을 인간이 사랑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스스로 창조했는데 그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악마의 발굽을 지닌 절름발이의 논리이다.

 

===>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현세 너머의 이상을 늘 그리워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이데아를 그리워한다.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이데아를 그리는 것으로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과 전쟁을 일으켰는가? 그들이 말하는 신이 과연 그렇게 하라고 말했을까?

 

41 헤라클레이토스주의

친구가 되기 위한 삼위일체는

힘들 때는 우정

적 앞에서는 평등

죽음에 임박해서는 – 자유!

 

43 권고

네가 원하는 것이 명성이냐?

그렇다면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라.

적당한 때에 스스로 체념하라.

명예를!

 

===> 권력과 명성 맛본자는 그것을 손에 놓기가 힘들다. 적당한 때에 물러나는 것은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켜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에 끝장을 보고야 만다. 권력과 명성 지위를 얻었지만, 명예를 얻지 못하는 까닭이다.

 

50 분별을 잃다

그녀는 방금 현명함을 손에 넣었다 – 어디서 얻었는가?

조금 전 그녀에게 매혹되어 한 남자가 정신을 잃었다.

이 혼란 전에 그는 상당히 분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지는 악마의 손아귀 속으로 사라져 버린 건가?

아니, 아니다! 틀림없이 그녀에게로 간 것이다!

 

===> 남자의 완성은 여성이다. ‘거울이론’에서 보면, 남자가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왔을때 여자가 환하게 웃으면 자연히 남자도 밝아진다. 그러나 아무리 성공한 남자라 하더라도 집에 왔을때 여자가 찡그리고 화를 내면 남자는 깨진 거울을 보는 효과와 같다. 남자가 세상을 움직이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이다.

 

52 발로 쓴다

나는 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발도 항상 함께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확고하고 자유로우며 용감하게

혹은 들판을, 혹은 종이 위를 달린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머리에는 차가운 이성이

얼굴에는 미소가

가슴에는 따듯한 마음이

발에는 열나게 뛰고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이

전라도의 홍어삼합- 홍어+ 묵은김치+ 돼지고기 삶은것, 장흥 키조개 삼합 - 키조개 + 소고기 + 표고버섯이다. 음식에만 삼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차가운 이성 + 따뜻한 가슴 + 실천할 수 있는 발 = 삼합이다.

삶에도 이런 삼합이 어우러져 살아간다면,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느 덧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54 나의 독자에게

튼튼한 치아와 튼튼한 위장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이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내 책을 소화하면

나와도 사이가 좋아질 터!

 

===> 책은 세 번을 읽어야 한다고 어디선가 읽었다. 첫째는 텍스트를 읽고 두 번째는 저자를 읽고 세 번째는 책을 읽는 나 자신을 읽어야 한다. 저자가 쓴 책을 소화한다는 것은 저자를 이해하고 텍스트로 인해 나의 삶이 변화하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까지 책을 읽은다고 읽었지만, 확~~ 변하는 것은 없어도 서서히 내 삶이 변했을 것이다. 겨울 다음 바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듯, 서서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계절이 변해간다. 이 또한 나의 삶도 바로 그럴 것이다. 서서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하고 성장해 갈 것이라는 것을.

 

62 이 사람을 보라

탐욕스러운 불꽃처럼

타올라 몸을 태워 버린다.

내 손에 쥔 것은 모두 빛이 뵈고

내가 버린 것은 모두 숯이 되니

그렇다, 확실히 나는 불꽃이다!

 

===>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나의 육신이 타올라 불꽃을 피우고

산산이 흩어진 불꽃이 하늘로 올라

밤하늘을 수놓는 별꽃이 된다.

 

제1부

 

[174]

웃음에도 미래가 있다! ‘종족이 전부이며 개인은 언제나 무(無)나 다름없다’라는 명제, 이것이 인간성 그 자체에 결합되어 각자에게 늘 이 최종적인 해방과 무책임을 향한 길이 열릴 때, 분명 그때에는 즐거운 지식만이 남게 될 것이다.

 

===> 그리스 시대에 자유인은 공부하는 철학자였다. 공부하는 것은 자신을 알아가고 지혜를 구하는 길. 그것이 바로 즐거운 지식인가.

 

그들도 또한 ‘삶에 대한 믿음을 촉진함으로써’ 종족의 삶을 촉진한다. ‘산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 또는 ‘이 삶에는 의미가 있다. 삶은 그 배후에 아니면 그 밑바닥에 중요한 뭔가를 감추고 있다. 명심해라.’ 라고 그들은 외치고 있다.

 

===> 왜 사느냐 묻지 말고,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라. 내가 태어나서 살아감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니까.

 

[175]

삶을 사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와 이웃의 삶을 촉진시켜야만 한다.

아이스킬로스이 말을 빌리면 ‘무수한 웃음의 물결’은 마침내 이 비극의 가장 위대한 주인공조차 압도해 버린다.

[176]

인간이라는 종족은 삶에 대한 주기적인 신뢰, 다시 말해 삶에 내재하는 이서에 대한 믿음 없이는 번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77] 3. 고귀함과 비속

그들은 고귀한 인간이 샛길 어딘가에서 이익이나 챙기고 있는 듯 나쁘게 생각한다.

‘어떻게 손해를 입어도 즐거워하며, 뻔히 보이는데도 일부러 손해를 입을 수 있는가! 그것은 일시적으로 흥분된 고상한 감정과 결합한 이성의 병이나 다름없다’-

 

비속한 인간의 특징은 자신의 이익이 위협당하지 않을까 늘 주시한다는 점, 그리고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충동보다도 강하다는 점이다. 여러 충동 때문에 목적에 맞지 않는 불리한 행동으로 이끌리지 않으려는 것- 이것이 비속한 인간의 지혜이자 자존심이다.

 

그들과 비교하면 고귀한 인간은 훨씬 비이성적이다. 고귀하고 관용적이고 희생적인 인간은 진실로 자신의 충동에 따르며, 그 최상의 순간에 이성을 멈추기 때문이다.

비속한 인간이 고귀한 인간에게서 발견하고 경멸하는 바로 그 점이 정열의 비이성 또는 반(反)이성이다.

 

[179] 4. 종족보존

어느 시대에나 선인들이란 낡은 사상을 경작하여 열매를 맺는, 정신의 농부들이다. 그러나 토지는 언젠가 전부 경작될 테고, 따라서 밭을 뒤엎는 악의 쟁기가 또다시 필요해진다.

 

[180]

명성이나 명예의 힘은 굴종을 허락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이익의 힘이 굴종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182] 7. 근면한 연구자들을 위한 몇 마디

과학은 행동의 목표를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앞서 과학이 행동의 목표를 제거하고 파괴할 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182] 8. 무의식의 덕

우리의 근면, 우리의 명예심, 우리의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183] 9 우리의 분출

아버지는 자식을 얻은 뒤에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비밀 정원이나 밭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분출할 때를 기다리며 성장해 가는 활화산과 같다. 다만 이 분출의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조차도

 

[184-185] 11의식

지혜를 자기 몸에 동화시켜 본능으로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새로운 점진적으로 인간의 눈에 들어온 것으로서 아직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은 과제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의 착오만이 우리에게 동화되어 왔다는 사실 우리의 모든 의식은 착오와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들에게만 인식되는 과제인 것이다!

 

[185] 12 학문의 목표에 대해서

환희의 새로운 별을 빛낼 위대한 능력도 발견될 것이다!

 

[186] 권력감정에 대하여

기쁨이나 고통을 줌으로써 우리는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고통은 항상 원인을 묻는다. 그러나 쾌락은 자기만족에 그칠 뿐, 뒤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187] 사랑이라 불리는 모든 것

소유욕과 사랑, 한쪽은 이미 소유한 자- 그 소유의 충동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ㅓ 있고, 이제는 그 ‘소유물’을 보살피는 위치에 있는 자-의 관점에서 폄하되는 호칭이며, 다른 한쪽은 만족에 이르지 못하고 갈망하는 자의 관점에서 당연히 ‘선한 것’으로 찬양되는 이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사랑도 새로운 ‘소유권’에 대한 충동은 아닐까? 또한 우리의 앎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사랑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소유물은 소유됨으로써 대개 시시해진다.

우리가 자신에게서 느끼는 쾌락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우리 자신 속에 흡수해 변형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다. – 소유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어떤 소유물에 권태를 느끼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권태를 느낀다.

 

[188]

자기 마음속에 눈든 새로운 소유에 대한 욕망을 ‘사랑’이라 부르며, 그때에도 그에게 손짓하는 새로운 정복에 나선 듯한 희열을 느낀다.

그는 상대의 마음과 육체에 대한 절대권을 요구한다.

소유하지 않은 채 갈망하는 자들이 이러한 언어 용법을 만들어 냈단 것이다.

 

[189]멀리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위대함은 선과 아름다움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욱이 절대로 위로부터가 아니라 밑에서 바라볼 때만 감화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그대들의 주변에도 자기를 일정하게 먼 거리에서 조망했을 때 비로소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을 매력적이며 쾌활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인식은 그들에게는 금물이다.

 

[190]18. 고대적인 긍지

그리스의 철학자는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예가 있다는 비밀스런 감정, 즉 철학자가 아니면 모두 노예라는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갔다.

‘노예’라는 말은 비유로 사용될 때조차 우리에게는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191] 19. 악(惡)

하늘 높이 자라려는 나무가 과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겪지 않고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불이익과 반대, 증오, 질투, 의심, 냉혹, 탐욕, 횡포 등등은, 덕의 위대한 성장에 거의 반드시 필요한, 저 알맞은 환경의 구성 성분이 아닐까. 약한 천성의 인간을 쓰러뜨리는 독은 강자에게는 강장제이며 강자는 또한 그것을 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192] 21. 사심 없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희생이 따르며 그 희생양의 마음가짐이 여실히 확인되는 이익 쪽을 보다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리가.

자신의 이익을 내버리고 희생이라는 요구에 따라 스스로를 파멸시킨 인물이다.

 

[194] 22 국왕의 하루 일정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은 나에게 존경을 바칠 테지만,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196] 23. 부패의 징후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위해 산다. 이는 모든 유혹자가 쉽게 이기는 도박을 할 수 있는 정신상태이다. 사람들은 미래와 덕은 미뤄둔 채 다만 ‘오늘 하루’만 유혹되고 매수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패라는 것은 한 민족의 가을에 대한 비방에 지나지 않는다.

 

[199] 26.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 그것은 죽음을 우리 몸으로부터 부단히 떼어 놓는 과정이다.

 

[201] 30. 저명인사의 희극

명성은 그들의 성격처럼 끊임없이 변화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변화하는 수단이 이 변화를 바라고, 때에 따라 이런저런 현실 또는 허구의 성질을 끄집어내 무대에 올리기 때문이다.

 

[201] 31. 상업과 귀족

사냥은 필요한 일이 아니라 변덕스럽고 사치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매매도 언젠가 그런 모습이 될 지 모른다.

팔고 사는 일이 없는 사회, 이러한 매매 기술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져 버리는 사회를 생각해 보자. 어쩌면 이곳에선 일반 사회의 법칙에 복종하지 않는 소수자가, 감각의 사치로서 매매하는 일을 멋대로 할지도 모른다.

 

[202] 34. 숨겨진 역사

모든 위대한 인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 있다.

 

[205] 39. 취향의 변화

다수자에게 일종의 압박을 가하고, 그 압박이 점점 다수의 습관으로 바뀌어 결국에는 만민의 욕구로 변하는 것이다.

 

[205] 40. 고귀한 풍채의 결핍에 관하여

인간이 짐승 같은 궁핍의 법칙에 좌우된다. 살고 싶은 인간은 자기를 팔아야만 한다.

 

[206]

인간의 기품이라는 것이 즉각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 기품은 오랜 세월에 걸친 과실로서 존중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러나 고상한 풍채 없이 손만 불게 살찐 악명 높은 공장주의 속물근성은 단순한 우연과 행운이 한 사람을 다른 사람 위로 밀어 올린다는 느낌을 비속한 자들에게 안겨 준다. 그래, 그렇다면 – 그들은 진심으로 생각한다.- 우리도 우연과 행운을 시험해 보자! 우리도 주사위를 던져 보자. – 이리하여 사회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207] 일과 권태

일의 기쁨 없이 노동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람도 있다.

독특한 인종에 속하는 이가 여러 부류의 예술가와 명상가이다. 또한 일생을 사냥, 여행, 연애, 모험에 소비하는 한가로운 사람들도 그러하다.

권태를 여러 방법으로 우리 몸에서 내쫓는 일은 즐거움 없는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천박하다.

 

[208]44 믿어졌던 동기

인류를 지금까지 실제로 행동하게 만든 여러 가지 동기를 아는 일은 확실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각 동기에 대한 ‘신념’, 즉 인류가 지금까지 자기 행위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공상해 왔던 것이, 인식자에게는 한층 더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적인 행복과 비참을 결정짓는 것은, 이런저런 동기에 대하여 그들이 품은 신념이지 실제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후자, 즉 실제 동기는 모두 이차적 중요성밖에 없다.

 

[209] 정열의 억압에 관하여

표현의 억압을 계승하는 시대에는 정열이 줄어든 대신에 그 자리를 풍류적이로 천박하며 유희적인 것이 메우게 되었다.

 

[211]

‘고통’에 대한 처방은, 고통이다.

 

[213] 54. 가상의 의식

나에게 가상이란 정말로 생생하게 움직이는 것 그 자체이다. 가상과 도깨비불과 유령의 춤만이 존재한다는 것.

 

제 2부

 

[222] 58. 오로지 창조자로서!

사물이 무엇인가 하는 점보다는 사물이 무엇이라 불리는가 하는 점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통찰하는 일이다.

 

[225]사랑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정욕조차도 허락한다.

 

[225] 66 약자의 강함

모든 여성은 자신의 약함을 과장하는 데는 교묘하다. 약함 속에서 지혜를 짜낸다.

그녀들의 존재는 남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식함을 깊이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끼게끔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그녀들은 강자와 모든 ‘강권’에 저항하는 것이다.

 

[226] 68 의지와 승낙

여자를 타락시키는 것이야말로 남자다. 여자의 모든 결함을 남자고 보상하고 고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멋대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여성은 그 이미지를 흉내 내어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229] 74 실패자들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 대하면 불안에 빠져 침착성을 잃음으로써 말이 많아지는 여성들은, 늘 성공을 잡으려다 놓친다. 남성들은 조용하고 느긋한 우아함에 가장 잘 유혹되기 때문이다.

 

[231] 양심을 아프게 하지 않는 동물들

대중적인 것은 어느 때이건 가면이다

 

[237-238] 84 시의 기원에 관하여

리듬은 말하자면 하나의 강제력이다. 리듬은 그것에 굴복하고, 또 영합하도록 하는 누르기 어려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발걸음뿐만 아니라 영혼도, 계속 울리는 이 박자에 따른다. 인간은 리듬을 써서 신을 강제하고 제압하려고 시도했다.

시는 신에게 마법의 덫처럼 던져졌던 것이다.

영혼을 정화하는 힘, 마음의 광란을 진정시키는 힘을 믿었다.

어원상 선율 melos 은 진정제를 의미한다. 그 자체가 평온한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은 정령의 도움과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즉 마법의 노래나 주문은 시의 원시형태로 추정된다.

시구는 또한 신탁으로 쓰였다.

 

예언을 듣는다는 것은 본디 결정된 어떤 것을 얻는 일을 의미한다.

리듬의 신이며 운명의 여신들조차 구속할 수 있는 아폴로의 발명품인 것이다.

시인의 언어를 빌려온다는 점이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시인은 참으로 거짓말을 많이 한다’-ㅡ호머

 

Ⅲ. 내가 저자라면

 

3-1. 제목에 대하여

 

이 책은 얼음과 눈을 녹이는 봄바람의 언어로 쓰였음이 분명하다. 즉 신념과 긍지, 방황, 모순 그리고 변덕스러운 봄날씨가 이 책 속에 뒤섞여 있다. 겨울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음을 경고하는가 하면 동시에 겨울을 이겨내고 다가올, 아니 어쩌면 이미 와 있는 승리를 일깨워준다.

 

<즐거운 지식>은 길고 무서운 억압을 끈질기게, 준엄하게, 냉정하게, 굴하지 않고 희망조차 없이 저항해 온 영혼의 사투르날리아 축제1)를 의미한다. 이제 이 영혼은 건강에 대한 희망과 회복의 도취에 한꺼번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오랜 기간의 궁핍과 무기력 뒤에 벌어지는 축하 잔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되돌아온 활력과 내일과 모레에 대해 새롭게 피어나는 믿음의 환희이다. 갑자기 생겨난 미래, 입박한 모험, 다시 펼쳐진 바다와 다시 허락되고 믿게 된 삶이 목표들. 이러한 것들을 느끼고 예감한 기쁨이다.

 

니체는 어쩌면 반어법을 사용해서 <즐거운 지식>이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추측한다. 이 보잘 것 없는 책 마지막에 ‘비극이 시작되다’라고 쓰인 것과 독자들이여 조심하아! 사악하고 고약한 것이 발표됐음을 경고한다면서 ‘패러디가 시작된다, 의심할 바 없이’ 라고 했다.

삶의 냉혹한 현실에서도 언젠가는 봄이 찾아온다는, 얼음과 눈을 녹이는 봄바람의 언어로 쓰였다고 니체는 말하고 있지 않은가.

 

1)사투르누스 또는 사투르날리아(Saturn)은 로마 종교에서 씨앗 또는 씨 뿌리는 신이다. 제우스에게 쫓겨 이탈리아 로 도망가 농업기술 을 보급함으로써 황금시대 를 이룩하였다고 한다.

영어 'Saturday'(라틴어로는 Saturni dies)는 사투르누스에서 유래한 것이다.사투르누스는 이탈리아의 농경신이지만 일반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의 아버지 그리스의 농업신 크로노스와 동일시된다.

이 축제는 한 해의 가장 즐거운 축제로 모든 일과 사업이 중지되고 노예들에게도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일시적인 자유를 주었으며 도덕적인 규율도 완화되고, 선물을 자유롭게 교환했다. 영어 'Saturday'(라틴어로는 Saturni dies)는 사투르누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3-2. 저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

 

나는 아직도 단어의 예외적인 의미에서 철학적인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철학의 목표는 ‘진리’가 아닌 다른 것 - 건강, 미래, 성장, 힘, 생명- 이었다.

건강상태가 바뀔 때마가 철학자는 자기 자신의 상채를 가장 영적인 형태와 거리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변모의 기술이 바로 철학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을 낳아야만 하고, 또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 피, 심장, 활기, 쾌락, 정열, 고뇌, 양심, 운명, 숙업 등을 그 사상들에게 물려주어야만 한다.

삶-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빛과 화염으로 바꾸는 것이다.

오직 거대한 고통만이 영혼의 최종적인 해방자이다.

니체는 죽기 10여년 전부터 극심한 편두통으로 심하게 앓았다. 니체를 위대하게 만든 원인중의 하나는 아마도 니체를 극도로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병이었을 거다. 마치 생나무 장작불 위에서 불태워지는 것과 같은 고통, 오직 이러한 고통만이 우리 철학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게 강요할 것이다. 고통이 우리를 좀더 ‘좋게’만드는 것보다 우리의 생각을 좀 더 심오하게 만든다는 것만은 안다.

 

우리는 길고 위험한 자제훈련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이렇게 더욱 영적이며 영적화된 사람이 지닌 모든 문제적인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니체는 우리들에게 말한다. 삶이 어떠한 형태로든 다가와서 괴롭게 하더라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이 우리를 좋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고 심오하게 만들 수 있으니, 그게 바로 새로운 행복을 맛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3-3.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나는 내 집에 살며

그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다

더욱이 마음껏 웃을 줄 모르는

모든 대가들을 비웃는다

- 우리집 문 위에 적은 글

 

삶-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빛과 화염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들도 또한 ‘삶에 대한 믿음을 촉진함으로써’ 종족의 삶을 촉진한다. ‘산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 또는 ‘이 삶에는 의미가 있다. 삶은 그 배후에 아니면 그 밑바닥에 중요한 뭔가를 감추고 있다. 명심해라.’ 라고 그들은 외치고 있다.

삶을 사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와 이웃의 삶을 촉진시켜야만 한다.

 

소유물은 소유됨으로써 대개 시시해진다.

우리가 자신에게서 느끼는 쾌락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우리 자신 속에 흡수해 변형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다. – 소유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어떤 소유물에 권태를 느끼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권태를 느낀다.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위해 산다. 이는 모든 유혹자가 쉽게 이기는 도박을 할 수 있는 정신상태이다. 사람들은 미래와 덕은 미뤄둔 채 다만 ‘오늘 하루’만 유혹되고 매수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품이라는 것이 즉각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 기품은 오랜 세월에 걸친 과실로서 존중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3-4. 나의 감상

 

니체 책을 한번 읽고 이해할 수 는 없다 나에게는. 몇 번이고 되새기고 보고 소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잠언이나 시 형식으로 쓰였기에 짧은 글 속에서도 예리한 본질이 포함되어 있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처럼 글을 쓰고자 했다. 내적 감흥과 사상을 하나로 표현하고 싶었다. 니체는 위대한 메시지를 이성적인 언어만 가지고는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메시지와 사유에는 이성적인 측면과 함께 감정이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니체는 자라투스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책들도 시적인 잠언 형식으로 썼다. 물론 이런 형식의 글을 쓴 데에는 니체의 몸 상태도 한몫을 했다.

 

니체는 평생 수많은 병을 달고 살았다. 장시간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산책을 하며 그때 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공책에 재빨리 적어 놓곤 했다. 그러한 짧은 글들을 나중에 다시 편집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니체의 이러한 문체는 읽는 사람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준다.

니체의 어떤 책을 읽어도 그의 사상은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 고전 중의 고전은 니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읽어도 읽어도 다르게 생각하는 사고의 다각형과 입체형을 선사한다.

 

현대는 디지털 시대에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른 행주 짠다고 물이 나오겠는가. 읽고 생각하고 쓰고를 반복하고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위의 현실에서 읽은 내용을 연결시켜야 한다. 책따로 글따로가 아닌 배움과 삶이 함께가는 실천의 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책속에 길이 있나니 ‘삶을 사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와 이웃의 삶을 촉진시켜야만 한다’ 고 니체가 말한 것처럼, 나를 사랑함으로써 나를 만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애정을 갖자. 진지함속에 웃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내공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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