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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6일 01시 37분 등록

월터 미티, 한 잡지사의 16년차 포토에디터이다. 홀어머니와 결혼하지 않은(것으로 보이는) 철없는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해본 것도 없고 가본 곳도 없는 남자, 오래 전부터 마음에 담아둔 직장 동료에게 고백 한번 못해본, 40대 중반의 소심한 남자이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상상 멍때리기'. 상상 속에서 그는 슈퍼히어로가 되기도 하고 벤자민 버튼이 되는가 하면 남성미와 섹시미를 물씬 풍기는 산악가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기질로 인해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는 그의 일상은 그렇게 상상으로 채워지곤 했다. 그러던중 그의 회사 잡지가 폐간의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는 구조조정본부장을 영입해 구조조정 작업을 착수함과 동시에 폐간호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폐간호에 실릴 전설적인 사진가 숀의 필름이 없어진 것이다. 결국 해고위기에 직면한 그는 연락처도 없이 몇몇 사진 속의 단서만을 가진 채 사진가 숀을 찾아 그린란드로 떠난다. 그리고 그 여정은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신묘한 여정이 된다.

다른 한 남자가 있다. 묵은 해를 뒤로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해야 할 시기이지만, 그의 새해는 그렇지 못하다. 얼마 전 회사의 진급명단에 그이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웠다. 팀원들과 나름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내왔고, 그 해의 영업실적이 전년보다 많이 올라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동기들은 모두 진급한 상태라 당혹스러움은 이내 창피함으로 바뀌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부서장이 진급결과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였지만 회사로부터 온 대답은 NO 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회사에서 시행한 '신시스템'에 대한 시험 결과가 하위권이라는 것'. 신시스템'은 회사 측에서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진행한 프로젝트였으나, 시험의 실용성 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고, 개인적인 상황도 여의치 않아 준비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렀던 그였다. 그리고 그는 그 때까지만 해도 시험이 자신의 진급을 좌지우지할 줄은 그도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회사의 전략적 프로젝트에 소홀했던 그는 진급에서 떨어졌다. 월터미티처럼 해고 위기에 놓인 입장은 아니지만, 고교시절 반에서 꼴찌를 해본 이후 오랜만에 맛보는 절망감이었다.

하지만, 절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뭔가 새로움을 찾고 변화를 꾀하고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가 설계한 미래를 나누고 첨언해주기도 한다. 매월 한두 번 모이는 모임으로 그들의 인생이 크게 바뀐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 살 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왜냐하면 그는 건너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는 해고 당하지 않기 위해 험난한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여정 속에서 상어와 싸우거나 화산폭발을 뚫고 나오는 등 믿기 힘든 일들을 겪는다. 그리고 그의 인생 또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그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그는 조금 더 자기다운 존재가 되어간다.

우리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지금 처한 자신의 인생이 가장 무거워 보이고 힘들어 보일지 모르지만 길고 긴 인생의 끝자락에서 보면 잘 기억나지도 보이지도 않는 한낱 점에 불과할 수 있다 한 평생 살면서 우리는 그 가운데 수많은 몰락을 경험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면 지금은 불분명하지만, 그 불분명함이 분명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생여정을 통해 결국 우리는 짐을 짊어진 힘없는 낙타에서 당당한 사자의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모든 것을 순수하고 천연덕 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아이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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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4 16:59:27 *.209.223.59

아!  신시험에 대한 준비를 못한 데에는 과제 탓도 있었던 거였군요. ㅠ.ㅠ

 

이 달 컬럼을 몰아서 보고 있는데 글들이 신기할 정도로 다 좋네요.

이것이 철학의 힘인가, 알게 모르게 지난 1년간의 내공이 쌓인 것인가 감탄하며 보고 있습니다.

 

무수한 담금질을 통해 나는 점점 내가 되어 간다!

니체도 이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네요.

 

연구원  1년차의 노고와, 거기에 겹쳐진 개인사들 모두가 대수씨를 더욱 강하게 해 주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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