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14년 1월 6일 02시 23분 등록

 구스피릿 30번째 북리뷰

즐거운 지식 (니체, 동서문화사)

 

 

1. 저자소개

프리드리히 니체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0.15 ~ 1900.8.25 ]

독일 레켄 출생.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을 계승하는생의 철학의 기수(旗手)이며, S.A.키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목사인 아버지를 5세 때 사별하고 어머니·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자라났다. 14세 때 프포르타 공립학교에서 엄격한 고전교육을 받고 1864 20세 때 본대학에 입학하여 F.리츨 밑에서 고전문헌학에 몰두하였다. 다음 해, 전임하는 스승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대학에 있을 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에서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고, 또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1869년 리츨의 추천으로 스위스의 바젤대학 고전문헌학의 교수가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지원, 위생병으로 종군했다가 건강을 해치고 바젤로 돌아왔다. 그 이후 그는 평생 편두통과 눈병으로 고생하였다.

28세 때 처녀작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ödie(1872)을 간행하였다.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悲劇)의 탄생과 완성을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해명하고, 이어 소크라테스적 주지주의(主知主義)에 의거하는 에우리피데스에서 이미 그 몰락을 보았으며, 다시 그 재흥(再興)을 바그너의 음악에서 기대 ·확인하는 이 저서는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을 예술적 형이상학에 쌓아 올린 것이다.

1873~1876년에 간행된 4개의 《반시대적 고찰 Unzeitgemässe Betrachtungen》에서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에 도취한 독일국민과 그 문화에 통렬한 비판을 가하면서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天才)를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이 이상은 1876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1878∼1880)에서 더욱 명확해져 과거의 이상을 모두 우상(偶像)이라 하고 새로운 이상으로의 가치전환을 의도하였다. 이미 고독에 빠지기 시작한 니체는 이 저술로 하여 바그너와도 결별하였고, 1879년 이래 건강의 악화, 특히 시력의 감퇴로 35세에 바젤대학을 퇴직하고, 요양을 위해 주로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남부에 체재하면서 저작에 전념하였다.

《여명(黎明) Morgenröte(1881) 《환희의 지혜 Die fröhiliche Wissenschaft(1882)의 뒤를 이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Also sprach Zarathustra(1883∼1885)로 그의 성숙기(成熟期)가 시작된다. 신의 죽음으로 지상(地上)의 의의를 설파하였고, 영겁회귀(永劫回歸)에 의해 삶의 긍정(肯定)의 최고 형식을 밝혔으며 초인(超人)의 이상을 가르쳤다. 《선악의 피안(彼岸) Jenseits von Gut und Böse(1886)에서는 위의 사상에 부연하여 근대를 형성해 온 그리스도교가 삶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라 하여 생긍정(生肯定)의 새로운 가치를 창설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도덕의 계보학(系譜學) Zur Genealogie der Moral(1887)에서는 약자(弱者)의 도덕에 대하여 삶의 통일을 부여하는 강자(强者)의 도덕 수립을 시도하였으며, 미완의 역작 《권력에의 의지(意志) Wille zur Macht(1884∼1888)에서는 삶의 원리, 즉 존재의 근본적 본질을 해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1888년 말경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다음해 1월 토리노의 광장에서 졸도하였다. 그 이후 정신착란인 채 바이마르에서 사망하였다. 니체 사상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며 그것의 극복이다. 그는 2000년 동안 그리스도교에 의해 자라온 유럽 문명의 몰락과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민하게 감득하였다.

사람들은 지고(至高)의 가치나 목표를 잃어 이미 세계의 통일을 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소화(矮小化)되고 노예화하여 대중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근대의 극복을 위해 그는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피안적(彼岸的)인 것에 대신하여 차안적(此岸的지상적인 것을, 즉 권력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하는 니힐리즘의 철저화에 의해 모든 것의 가치전환을 시도하려 하였다. ‘초인·영겁회귀·군주도덕등의 여러 사상은 그것을 위한 것이었으며,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체현(體現)하는 초인이라는 이상을 향하여 끊임없는 자기 극복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2. 마음을 무찌르는 글 귀

나는 내 집에 살며 그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다. 더욱이 마음껏 웃을 줄 모르는 모든 대가들을 비웃는다.(146)

이 책은 얼음과 눈을 녹이는 봄바람의 언어로 쓰였음이 분명하다. 즉 신념과 긍지, 방황, 모순 그리고 변덕스러운 봄날씨가 이 책 속에 뒤섞여 있다. 겨울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음을 경고하는가 하면 동시에 겨울을 이겨 내고 다가올, 아니 어쩌면 이미 와 있는 승리를 일깨워 준다.(147)

애 책을 통틀어 말할 것 같으면, 오랜 기간의 궁핍과 무기력 뒤에 벌어지는 축하 잔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147)

생동하는 영혼이란 곧 건강할 때는 자존심 때문에 허용이 안 되는 허약함, 회개, 포기, 실망, 경직된 상태 등 영혼의 온갖 병리학적인 상태의 다른 이름들이다(옛날 속담은 아직 유효하다.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짐승들은 자존심 강한 영혼, 공작새, 그리고 말 이다.”)

영혼이 어떻게 단 하나의 상태만 유지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면, 남자가 강함으로 일관하거나 여자가 약함으로 일관하는 등의 하나의 모습은 단선적이고 지루하다. 살아있음은 변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시각각 때때로 변하는 영혼을 생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나약함, 실망, 우울 등 영혼의 어두운면(?!)일지라도……

지금까지 사상의 흐름을 장악해 온 최고의 가치판단 뒤에는, 개인의, 계급의, 특히 현존재의 가치 문제에 대한 오해가 숨겨져 있다.(149)

거대한 고통, 시간을 끌대로 끌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길게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 마치 생나무 장작불 위에서 불태워지는 것과 같은 고통, 오직 이러한 고통만이 우리 철학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게 강요할 것이다. 또한 그 고통은 모든 신뢰, 모든 선량한 것, 온유한 것, 적당한 것, 중간에 베일을 드리우는 모든 것,  즉 우리가 지금까지 그 속에서 인간성을 찾았던 것들을 저버릴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러한 고통이 우리를 좀더 좋게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생각을 좀더 심오하게 만든다는 것만은 안다(151)

삶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가능하다(151)

아니다, 우리 회복기 환자에게 아직도 예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다른 종류의 예술이어야 한다. 조롱할 줄 알고, 가볍고, 지나치듯 머물지 않고, 신처럼 완벽하고 신의 기술처럼 정묘한, 순수한 불꽃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핥아 올라가는 예술이어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예술가를 위한, 예술이어야 한다!(152)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 : 독일식 압운의 서곡

2. 나의 행복

추구하는 일에 지치게 된 나는 / ‘발견하는일을 배우게 되었다. / 역풍을 만난 이후로 나는 / 어떤 바람과도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155)

3. 두려움 없이

네가 서 있는 곳을 깊이 파라! / 그 밑에 샘이 있다! / 어리석은 인간들은 외치게 놔두어라. / ‘아래로 가면 오직 지옥뿐이다!’라고 해도. (155)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그리고 수많은 영화에서 말하는 메시지 이다. 네가 있는 곳에 답이 있고 보물이 있다.

6. 처세술

평지에 머물지 말라! / 너무 높이 오르지도 말라! /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 중간 높이이다.(156)

7 나를 따르다 너 자신을 따르다

나의 방식과 말에 유혹되어 / 나를 따르고 나를 추종하는가. / 오직 너 자신만을 충실히 따르라 – / 그것이 나를 따르는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 (156)

8 세 번째 탈피에 즈음하여

벌써 내 껍질이 갈라진다. / 이제껏 흙을 많이도 삼켜 놓고선 / 새로운 욕망을 불태우며 / 내 안의 뱀은 대지를 갈망한다. / 돌과 풀의 경계를 기어 / 굶주림에 몸을 비틀며 나아간다. / 항상 먹어 온 것을 나는 먹으려 한다. / 너 뱀의 식량이여! 너 대지여!(156)

23 해석

나를 해석하려면 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그러므로 나는 나의 해석자는 될 수 없다. / 다만 자신의 길을 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나의 모습도 밝은 빛 속으로 높여 주리라. (159)

28 초심자를 위한 위안

돼지들 사이에 둘러싸인 어린아이를 보라. / 어쩔 줄 몰라 말조차 못한다. / 아이는 계속 울기만, 그저 울기만 할 뿐이다. / 언젠가 서서 걸을 날이 올까? / 절망하지 마라! 곧 너희는 / 그 아이가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 / 일단 두 발로 설 수만 있다면 / 곧 물구나무도 설 수 있으리라.(161)

33 고독한 자

추종하는 것도 앞장서는 것도 싫다. / 복종, 아니! 지배, 그것도 아니다! /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남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만이 타인을 지도할 수 있다. / 자신을 이끄는 것도차 나는 싫다! /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숲이나 바다의 동물처럼 / 한동안 나를 잊는 것. / 외딴섬에서  행복한 망상에 잠겨 앉아 있는 것. / 이윽고 멀리서부터 나를 불러들여 / 나 자신을 나 자신에게로 유혹하는 것.

53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어떤 책

과거를 회고하는 동안은 우울하고 부끄럽지만 신뢰가 있어야 미래에 대한  쇤뢰도 있다. / 오오 새여, 너를 독수리의 일종으로 생각해야 하나? / 아니면 너는 미네르바가 사랑하는 부엉이인가?(166)

 프리드리히 헤겔이 『법철학』에서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는 말을 쓴 이후로미네르바의 부엉이철학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보통 역사연구에서거리두기의 지혜를 의미한다. 아침부터 낮까지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그 즉시 관찰해선 모든 걸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일이 끝난 황혼녘에 가서야 지혜로운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오랜 시행착오 끝에 갖게 된 지혜의 가치를 역설할 때에 쓰이기도 한다.

55 사실주의 화가

…… 그는 결국 그의 마음에 드는 것만 그린다. / 무엇이 그의 마음에 드는가? / 그가 그릴 수 있는 것!(166)

 

1

호의적인 시건으로 바라보든 악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든 나는 인간에게서 어떤 사실ㅇ르 발견하게 된다. 즉 인간은 전체로서나 특히 개인으로서나 종족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 한다는 사명을 늘 지니고 있단 사실이다.(171)

그러나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이들 위대한 목적의 교사들이 웃음과 이성과 자연의 지배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75)

인간은 점점 다른 모든 동물들과 달리, 추가로 또 하나의 존재조건을 충족해야만 하는 일종의 공상적인 동물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때때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스스로 알고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인간이라는 종족인 삶에 대한 주기적인 신뢰, 다시 말해 삶에 내재하는 이성에 대한 믿음 없이는 번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176)

(비속한 사람들은) 마치 미친 사람의 즐거움을 경멸하듯 고귀한 사람의 열정을 과소평가한다. 비속한 인간의 특징은 자신의 이익이 위협당하지 않을까 늘 주시한다는 점, 그리고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충동보다도 강하다는 점이다.(177)

그들(비속한인간들)과 비교하면 고귀한 인간은 훨씬 비이성적이다. 고귀하고 관용적이고 희생적인 인간은 진실로 자신의 충동에 따르며, 그 치상의 순간에 이성을 멈추기 때문이다.(178)

비속한 인간은 뱃곡의 정열에 굴복하는 인간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폭군으로 군림하는 그 충동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인식의 정열 때문에 자기건강과 명예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178)

의 판단은 합목적비합목적에 대한 경험의 축적에서 나온다. 은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며, ‘은 종족을 해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실은 악한 충동도 선한 충동과 마찬가지로 고도로 합목적적이며, 종족을 보존하는 데 필요불가결하다. 단지 그 기능이 다를 뿐이다.(179)

9 우리의 분출. (…) 우리는 모두 비밀 정원이나 밭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분출할 때를 기다리며 성장해 가는 활화산과 같다.  다만 이 분출의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조차도.(183)

의식은 유기체에서 가장 최종적으로 발전한 것이며, 따라서 가장 미완성이고 무력한 부분이다. 의식으로부터 무수한 실책이 생겨나고, 그것이 동물이나 인간을 필요 이상으로 빨리 호메로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명을 넘어서’ – 파멸에 도달하게 한다.(184)

하나의 기능은 그것이 형성되어 성숙하기 전에는 유기체에게 위험하다. 그러므로 그것이 형성되어 성숙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학대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리하여 의식은 지독하게 학대를 받게 된다.(184)

서서히 권력을 증대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급격히 그러길 원하는가, 안전하고 확실한 권력 증대를 원하는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것을 원하는가, 그것은 기질 문제다. (187)

별다른 긍지도, 원대한 정복에 대한 희망도 없는 사람들에게 동정이 가장 쾌적한 감정이다. 그들에게는 손쉬운 획득물 모든 번민하는 사람 이 매력적인 것이다. 여기서는 보통 창녀의 덕이라고 불리는 동정이 인기가 높다. (187)

???

소유물은 소유됨으로써 대개 시시해진다.(187)

15 멀리서. (…)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위대함은 선과 아름다움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욱이 절대로 위로부터가 아니라 밑에서 바라볼 때만 감화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그대들의 주변에도 자기를 일정하게 먼 거리에서 조망했을 때 비로소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을 매력적이며 쾌활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 인식은 그들에게는 금물이다. (189)

여러 덕이 칭송될 때 실제로 칭송되는 것은 결국 덕의 도구적 성질이며, 각 개체의 어떠한 이익에도 제약당하지 않는 맹목적인, 모든 미덕이 내포되어 있는 충동이다. (192)

당신은 자신을 내버리고 희생해야만 한다는 명제가 그 도덕 자체와 모순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직 다음과 같은 사람의 입에서만 선포되어야 한다. 바로 자신의 이익을 내버리고 희생이라는 요구에 따라 스스로를 파멸시킨 인물이다.

부패의 시대는 과실이 나무로부터 떨어지는 시대이다. 나는 지금 개인들, 즉 미래의 씨앗을 심는 사람들, 새롭게 정신적 식민운동과 국가적 사회적 결합을 형성하는 창시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패라는 것은 한 민족의 가을에 대한 비방에 지나지 않는다.(197)

26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 그것은 죽음을 우리 몸으로부터 부단히 떼어 놓는 과정이다. ,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약해지고 늙은 것들에 대하여 잔혹하고 인정사정없이 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 그것은 죽음에 이른 것, 초췌해진 것, 늙은 것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 없다는  말 아닐까? 결국 부단히 살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은 모세는 말한다. ‘살인하지 말라!’ (199)

27 속세를 떠난 사람. 속세를 떠난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는 더 높은 세계를 추구한다. 그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사람보다 아득하게 멀리, 높이 날아가고자 한다. 그는 비상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내버린다. 그중에는 그에게 반드시 무가치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것이 많이 포함된다. 그는 그것들을 높은 곳에 대한 욕망의 희생물로 삼는다. 그런데 이런 희생과 내버림이야말로,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유일한 것이다.(199)

28 최선의 것으로써 해를 끼치다. 우리의 강점은 때때로 우리를 대단히 몰아세운다. 이로써 약점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우리는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199)

재능이 자신을 갉아 먹는다. 란 말이 있다.

27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1) 과학과 함께 또 과학을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 인식의 절대적인 유익함을, 더욱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심오한 결합을 믿었기 때문에, 3) 과학을 통해 무엇인가 공정한 것, 무해한 것, 자기만족적인 것, 진실로 선한 것, 요컨대 인간의 사악한 충동과 전혀 얽히지 않은 듯한 것을 손에 넣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키는 이유가 되었다.(204)

아이러니. 세상엔 이런 아이러니가 얼마나 많을까. 의도치 않게 인생의 다른 조건들을 채워넣게 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또한 월터의 여정이 일종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살고 싶은 인간은 자기를 팔아야만 한다.(205)

노동자는 보통 고용주를, 단순히 교활하고 착취하며 모든 궁핍을  돈벌이의 기회로 이용하는 비굴한 인간으로 본다……. 공장주나 기업가에게는 모든 고귀한 종족이 갖춘 풍채나 특색(그것이 있어야 비로소 관심을 끄는 인물이 된다)이 너무나도 결여되어 있다. 만일 그들이 세습귀족의 고귀함을 그 선이나 태도에서 드러냈다면 아마도 대중의 사회주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은 본디 여러 종류의 노예적 봉사를 달갑게 여기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의 위에 서 있는 자가 늘 더 높은 자로서, ‘명령하도록 태어난 자로서  고귀한 풍채를 통해 자기를 증명한다면 말이다.(205)

그렇다 고통에 대한 처방은 고통이다.(211)

관대함에는 복수와 마찬가지로 에고이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질이 다른 에고이즘이다. (212)

52 타인이 우리에 대해 아는 것. 우리가 자신에 대해 알고 또 기억하는 것은, 생각보다 우리 인생의 행복에서 그렇게 결정적이지는 않다. 어느 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관하여 아는 (또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를 덮쳐 온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그것이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나쁜 평판보다도 양심의 가책을 훨씬 쉽게 처리한다.(212)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 사회적 동물의 본능?

고귀함의 비밀은 고귀한 사람을 엄습하는 열정이 특수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차갑게 느껴지는 일을 뜨겁다고 생각하는 감각, 아직 저울로 잴 수 없는 가치를 살펴서 아는 일, 알려지지 않은 신의 제단에 희생을 봉헌하는 일, 명예를 대가로 구하지 않는 용기, 흘러넘치는 부를 소유하고 그것을 인간이나 사물에 나눠주는 자기만족 상태, 이런 데에 고귀함의 비밀이 있다. 요컨대 이제까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기이한 것이며, 이 기이한 것에 관한 무지이다. (214)

 

2

57 리얼리스트들에게……. 얼마간의 환상, 선입관, 부조리, 무지, 공포, 그 밖의 모두가 그것에 섞이고 있다! 저 편의 저 산! 저 하늘의 저 구름! 도대체 그 어디가 현실적인가? 환영과 모든 인간적인 첨가물을 거기서 제거한다면 말이다, 너희 냉철한 인간들아!.....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것이 없다. 역시 너희에게도 없다. 냉철한 인간들아, 우리는 너희가 생각하듯이 서로 그렇게 무관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221)

우리 오늘날의 인간 역시 깨어 있는 낮 시간을 요구하는 좋은 의지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너무나 잘 꿈꾸는 법을 알고 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열망하기만 하면, 즉 느끼기만 하면 갑자기 꿈꾸는 정신과 힘이 우리를 덮친다.(223)

남자의 본성은 의지이고 여자의 본성은 응낙이다 진정 이것이 양성의 법칙이다.

광기의 폭풍우는 결국 느끼고 보고 드는 일에 발생하는 자유분방한 정신의 돌발이며, 두뇌의 방탕한 향락이며, 인간의 무분별을 즐기는 처사이다.(230)

여기에 하 시인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처럼 불완전함을 통해 고도의 매력을 발휘한다.그의 작품은 그가 본디 말하려 했던 것,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전부 표현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는 비전에 대한 예언적 취미가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비전 그 자체를 즐긴 적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이 비전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열망은 그의 가슴속에 남고, 거기에서부터 그는 소망이나 갈구의 거대한 화술을 끌어낸다. 그에 따라 그는, 그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들을 그의 작품이나 모든 작품을 초월한 곳으로 끌어올리고, 대체로 듣는 사람이 이제껏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이 오르도록 날개를 달아 준다.(233)

본디 정열이라는 것은 지극히 말수가 적은 것이다! 침묵하여 낭패하는 것이다! 또는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올때는 더없이 혼란하여 그 부조리 때문에 스스로도 수치를 느끼는 것이다!(233)

어원상 선율(melos0은 진정제를 의미한다. 그 자체가 평온한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238)

노래는 악마를 인간에게 예속된 유순한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모든 행동은 정령의 도움과 결부 되었기 때문이다. 즉 마법의 노래가 주문은 시의 원시형태로 추정된다.(238)

스스로 충분히 비극과 희극을 체험하는 사람은 되도록 극장을 멀리하는 법이다.(241)

나는 쓰는 것이 개탄스럽고 수치스럽다. 쓴다는 것은 내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당신은 왜 쓰는가? / 그런데 나의 친구여. 솔직히 말한다면 여태까지 나의 생각들을 털어버릴 다른 어떤 방식도 발견해 내지 못했다. (245)

이 두 명의 연설가 중 한 사람은 열정에 취해 있을 때만 그의 주제 전체를 완전히 파악한다…… 그의 경우에는 항상 정열의 파도가 정신을 집어삼켜 버린다. 아마도 그의 정열이 처음 연사보다 더 강렬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는 감정의 범람에 저항하여 실제로 그것을 비웃을 때 힘의 절정에 도달한다. 그때야 비로소 그의 정신, 논리적이며 냉소적이고 농담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운 정신은 은신처에서 완전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247)

97 작가의 수다스러움에 관하여.  분노에서 나오는 수다스러움이 있다.(247)

99 쇼펜하우어의 제자들. 야만인들이 고도의 문명과 접할 때 볼 수 있는 현상이 있다. 즉 저급한 문화는 고급문화로부터 무엇보다도 먼저 그 악덕과 약점, 방종을 받아들여 여기에서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는 획득한 악덕이나 약점을 매개로 고차원 문화가치를 풍부히 지닌 힘의 일부를 함께 받아들여 마음껏 향수하게 된다. (249)

모든 욕구는 필요로부터 즉 결핍으로부터 생긴다. 그것이 충족되면 욕구는 사라진다. 그러나 충족된 욕구가 한가지라면 적어도 열 가지는 거부된 채로 남아 있다. 더구나 욕망은 오래 계속되고 욕구는 한이 없으며 충족은 잠깐이고 그나마도 부족하게 채워지기가 일쑤이다. (…) 그것은 마치 오늘을 연명시켜 삶의 고통을 내일까지 연장시키는 거지에게 베푼 자선과 같은 것일 뿐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34)

그는 우리의 주위에 분명히 드러나 보이는 세계의 고통과 혼돈, 열정, 악에 대하여 이야기한 첫 번째 철학자이다. 이 모든 것을 다른 철학자는 보지 못한 듯하며, 그들은 항상 모든 것을 포괄하는 조화만을 이야기 하여 왔다. 드디어 여기에 우주의 근저에는 모든 것이 최상의 상태는 아니라는 점을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철학자가 한 명 있다. (구스타프 융 [기억, , 성찰])

그들을 매혹시킨 것은, 사실은 존중하는 이  사상가를, 세계 수수께끼의 해명자가 되겠다는 허영 가득한 충동에 타락하도록 만든, 쇼펜하우어의 신비적 낭패나 핑계들이었다.(250)

삶에 대한 의지는 가장 미미한 존재물 속에 이르기까지,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게 완벽히 존재하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내면을 총괄하는 완벽함으로’(250)

바그너는 [지크프리트] 작곡을 1856년에 시작했지만 15년이나 지나 완성했고, 초연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에서 1876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지크프리트]를 작곡하는 동안 자신의 후원자였던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데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 작품의 작곡을 중단하고 자신의 사랑을 반영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먼저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바그너의 음악을 열렬히 사랑했던 바이에른 군주 루트비히 2세의 재촉으로 바그너는 시작한 지 13년이 지나서야 [지크프리트] 3막의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1, 2막보다 3막이 더 음악적 깊이를 지니게 된 것은 아마도 [지크프리트]의 오랜 공백기 동안 바그너가 음악적으로 더욱 발전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니벨룽의 반지]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에는 독일 중세 서사시 [니벨룽엔의 노래] 내용 중 여러 부분이 바그너가 선택한 방식으로 새롭게 조합되어 있습니다. [니벨룽엔의 노래] 4-6세기에 이루어진 유럽의 민족대이동 시기부터 구전(口傳) 형태로 전해져오다가, 1200년경에 이르러 현재 알려진 이야기의 형태로 정착되었습니다. 배신과 암살, 약탈과 방화, 협박과 사기가 난무하던 시대의 험악한 정치사회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기사계급의 품위와 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니벨룽엔의 노래]는 더욱 독보적이랍니다.

테너 주인공의 이름지크프리트에서 지크(Sieg)는 승리, 프리트(Fried)는 평화를 뜻합니다. 승리를 통해 얻은 평화라는 뜻이죠. 이 이름만으로도 그가 게르만 신화 속 최고의 신 보탄(Wotan)의 손자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탄이야말로 태초에 거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평화와 계약이 지배하는 세상을 실현했으니까요. [지크프리트]에는 [라인의 황금]이나 [발퀴레]에 등장했던 신들의 세계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건은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보탄조차 인간으로 변장을 한 채방랑자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닙니다. ( 네이버 인용 )

* 코페르니스적 전환(혁명) : 우리들의 인식은 대상에 의거한다고 이제까지 생각되어 왔지만, 칸트는 이 사고방식을 역전시켜서, 대상의 인식은 우리들의 주관 구성에 의하여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과학적 인식의 근거를 객관으로부터 주관쪽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천문학상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에 비견할 만한 인식론상의 전환이라고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Kopernikanische Wendung, ─的轉換] (두산백과)

 

나는 묘목이 나무가 되기를 원한다.  하나의 교설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되려면,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신봉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신봉을 받으려면, 그 교설은 논박할 수 없다는 것으로 여겨져야만 한다. 나무가 그 묘목의 본성과 힘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폭풍, 회의, 벌레, 악의가 필요하다. 만일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그것은 베여 쓰러져도 상관없다. 그 편이 더 낫다. 그러나 새싹은 뿌리 채 뽑힐 지언정 논박되지는 않는다!’(258)

우리는 이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저 사물을 초월하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화려하고 가볍고 춤추고 조롱하는, 어린애 같고 기쁨에 찬 예술을 필요로 한다.(259)

우리가 우리의 신경질적인 정직함 때문에 도덕 속으로 완전히 함락되거나, 또는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도덕적인 가혹한 요구들 때문에 고결한 괴물이나 허수아비가 되어 버리는 것은, 우리에게 병이 도진다는 의미이리라. 우리는 도덕을 초월해야만 한다.(259)

예술에 대한 필요성

 

3

108 새로운 투쟁. 붓다가 죽은 뒤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수 세기 동안 동굴 안에 그의 그림자를 안치했다. 거대하고 섬뜩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세상이기에 분명 앞으로도 수천 년에 걸쳐 신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온갖 동굴이 존재하리라. 그리고 우리는, 계속 신의 그림자를 정복해야만 한다!(269)

냉혹함이나 부조리, 또는 그 반대를 우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경계하자. 우주는 완전하지도 아름답지도 고귀하지도 않다. (…) 우주는  자기 보전 본능을 비롯하여 다른 어떤 본능도 없다. 우주는 어떠한 법칙도 준수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그곳에는 단지 필연성만이 있을 뿐이다. 명령하는 자는 없다. 복종하는 자도 없다. 위반하는 자도 없다.(270)

원인과 결과, 그러한 이원성은 아마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실은 하나의 계속적인 것이 있을 뿐이고, 우리는 거기서 약간의 부분을 분리하여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많은 결과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돌발성, 그것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우리에게만 돌발성이다. 이러한 돌발성의 짧은 시간 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무수한 과정이 있다.(274)

115 네 가지 오류. 인간은 오류를 통해  배우곤 한다. 첫째, 그는 항상 자신을 불완전하게만 보았다. 둘째, 그는 자신에게 허위의 속성을 부여하였다. 셋째, 그는 동물과 자연과의 관련 속에서 자신을 잘못된 순위에 놓았다. 넷째, 그는 언제나 선의 새로운 목록을 만들어 그것을 얼마 eddks은 영원하고 무조건적인 것으로 인정하였다.(275)

어떤 존재를 자신의 한 기능으로 변형시키려고 하는 강자에게는 기쁨과 욕망이 함께 나타난다. (….) 동정은 분명 전자의 형태이다.  즉 약한 것을 보았을 때  소유하려는  본능의 유쾌한 흥분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 강한 것약한 것은 상대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277)

삶은 결코 논거가 될 수 없다. 삶의 조건은 오류를  포함하는지도 모른다.(278)

우리가 신을 죽였다. 너희와 내가 말이다. 우리 모두가 그의 살해자다!(281)

신은 현명한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루터는 말하였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신은 어리석은 인간 없이는 더더욱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훌륭한 루터는 이 점을 말하지 않았다!(285)

붓다는 말한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되풀이하라! 즉시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맑아질 것이다.(289)

일신교, 즉 하나의 규범적 인간이라는 교리의 완고한 논리적 귀결  - 다시 말해 규범적인 유일신 외의 나머지 신들은 모두 허위라고 믿는 신앙 - 은 분명 지금까지 인간이 직면해온 최대의 위협이었다. (…) 다신교에는 인간의 자유정신과 다수정신의 작용이 전형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곧 자신을 위해 새롭고 독자적인 안목을 창조하는 힘, 게다가 또다시 새롭게 보다 독자적인 안목을 창조해 내는 힘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래서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에게만 영원한 지평과 관점이 주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290)

위대한 승리의 가장 좋은 점은, 그 승리자에게서 패배의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져도 괜찮지 않을까? 나에게는 지금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있다.’(296)

인간 혐오는 인간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인간 탐식  결과이다.(297)

인간은 자신의  미덕,  용감함, 쾌활함을 발휘하는 데 반드시 공공의 적이 필요하다.(298)

자신을  깊이 있게 알고 있는 사람은 명석함을 얻기 위해 힘쓴다. 대중에게 자신을  깊이 있게 보이려는  사람은  애매함을 얻으려 애쓴다.  대중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깊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겁이 많아서 물 속으로 들어가기를 꺼린다.(298)

사고는 우리 감각의 그림자이다. 사고는 감각보다 항상  더 애매하고 공허하며 단순하다.(299)

192. 선량한 사람들 (…) 선량한 사람들은 새로운 인물을 만나자마자 곧 호의를 느끼며  곧 그에게 푹 빠지게 된다.(302)

199 인색하지 않은 것. 인색하지 않다는 것은 부자들에게는 흔히 나약함의 하나일 뿐이다.(303)

205 필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는 대개 발명의 결과일 뿐이다.(304)

221 소중함.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보다 서로를    소중하게 여긴다.(306)

???

227 오류,  오발.  그는  자신을 조절할  수 없다. 그래서 한 어리석은 여자는 그를 쉽게 지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고 그에게 그물을 던진다. 그녀는 곧 그의 노예가 될 것이다.(307)

다른 사람을 넘어서는 힘에 대한 의지는 스스로를 넘어서는 힘의 결여에 뿌리박고 있다.

246 수학은  단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지식에 이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310)

258 우연을 부정하는 자.  승자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313)

261 독창성.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의 눈앞에 있지만 아직 이름이 없으므로 불릴 수 없는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있는 평범한 것, 그것은 이름이 있어 비로소  사물로서  보이는 것이다 독창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명명자들이기도 했다.(313)

268 무엇이 사람을 영웅적으로 만드는가?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향하여 동시에 나아가는 것이.(314)

270 너의 양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314)

275 무엇이 자유의 징표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315)

 

4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323) 운명애

사랑하는 나의 친구, 우리 인생이란 무엇일까. 큰 바다에서 헤엄치는 하나의 배, 모든 사람은 그것이 언젠가 뒤집히리라 확신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웃에 서로 충실해 하던 두 척의 선하고 낡은 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네 손길은 내 배가 뒤집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막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항해를 계속하도록 하자. 서로 상대를 위하여 한층 오래도록’, 오래도록! 우리는 서로서로 그렇게 많이 그리워해야 한다! 특히 조용한 바다와 좋은 바람, 무엇보다도 태양을. 나를 위해 바랐던 것은 또한 너를 위해 바랐던 것이다. 나의 감사가 그러한 소망속에서만 표현되었다는 것, 그리고 바람이나 날씨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281 유종의 미. 일류 대가들의 특징은 일의 대소를 불문하고, 완벽한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데 있다. 멜로디의 결말이든 사상의 결말이든, 비극 또는 정치극의 제5막이든 간에 모두. 이류 대가들은 으레 결말에 가까이 갈 때마다 점점 불안해진다. (326)

이로서 나는 여지없이, 아직은 이류임이 판명됐다.

왜냐하면 생존으로부터 최대의 수확과 최대의 향락을 거두어들이는 비결은 바로 위험하게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 위에 세우라! 그대들의 배를 미지의 대양으로 보내라! 그대들과 동등한 사람, 또 그대들 자신과 더불어 싸워 가며 살라! 그대들 자신이 지배자요 소유자가 될 수 없다면, 강도와 약탈자라 되라!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마치 겁많은 노루와도 같이 숲 속에 숨어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곧 지나갈 것이다! 마침내 인식은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인식은 지배하고 소유하기를 원한다. 물론 인식과 더불어 그대들도 그러하게 되리니! (328)

285 보다 높이(Excelsior).  그대는 이제 더 이상 기도하지 않으리라. 이제는 숭배하지 않으며 더 이상 끝없는 신뢰 속에 안주하지 않으리라. 그대는 궁극적 지혜, 궁극적 선의, 궁극적 힘 앞에 멈추어 서서, 사상의 굴레를 벗기기를 단념하리라. 그대는 그대의 일곱 가지 고독을 지켜 줄 파수병도 친구도 두지 않으리라. 그대는 머리 위에 만년설이 있고 가슴에 불길을 짊어진 산악에 대한 조망도 없이 살아가리라. 그대에게는 궁극의 심판자도 교정자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이미 세상에 생겨난 일들에는 아무런 체계가 없고, 그대에게 일어날 일들에는 더 이상 사랑이 없으리라. 그대의 심장에는 다만 발견해야 할 뿐이지 구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 안식의 장소는 이미 없다. 그대는 어떤 궁극적 평화도 거부한다. 그대는 전쟁과 평화의 영원한 회귀를 원하는 것이다. 체념의 인간이여! 그대는 모든 것 안에서 체념하기를 원하는가? 그런 힘을 누가 그대에게 주겠는가? 아직 그 누구도 그런 힘을 지니지 못하였다!’ 호수가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것은 스스로 흘러 나가기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흘러 나가던 길목에 둑을 쌓았다. 그러고 나서부터 그 호수는 자꾸 높아만 갔다. 아마도 저 체념은 체념까지도 견디어  내는 힘을 우리에게 주리라. 아마도 인간은 더 이상 신에게로 흘러 나가지 않을 때부터 점차 높아져 가리라.(329)

287 맹목성의 기쁨. (…) 나는 미래에 관한 나의 무지를 사랑한다. 약속되어 있는 일을 미리 훔쳐보는 식으로 나의 파멸을 손짓해 부르고 싶지 않다.(329)

지금은 우리를 전율케 하는 예외로서 가끔씩만 우리의 영혼 속에 들어오는 것이, 어쩌면 미래의 영혼에게는 일상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높이와 깊이 사이의 지속적인 운동, 높이와 깊이의 감정, 끊임없이 계단을 뛰어오르는동시에 구름 위에서 휴식하는 느낌이.(330)

290 하나의 일이 필요하다. (…) 약하고 자기 자신을 지배하기 못하는 성격의 사람들, 양식의 구속력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하나의 일이 필요한 것이다. 즉 인간이 자신에게 만족하는 일이. 어떤 시와 예술을 통해서든 상관없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볼품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자신에게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누구든지 계속 복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 다른 인간들은, 적어도 그의 추한 모습을 견뎌 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추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인간을 열악하고 음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32)

294. (…)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하자. 지구의 불을 밝혀라. ‘지상의 빛이어라! 그 빛이 되자. (…) 우리 곁에서 몸을 따뜻하게 할 뿐 스스로 몸을 밝히지는 못하는 자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자!

니체의 이러한 아포리즘은 약한 자들의 마음 속 불씨가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선동하는 듯하다. 니체는 진정 선동가인가……

299 예술가에게서 배워야 할 것. (…) 우리 몸을 사물로부터 멀리하여 그 많은 부분이 보이지 않게 되도록 하거나, 그래도 사물을 계속해서 보기 위하여 거기에 많은 부분을 덧붙이는 것. 또는 사물을 부분적으로 한 단면만 보는 것. 또는 위치를 바꿔 사물들이 원근법에 따라서만 보이게 하는 것. 또는 석양에 비추거나 색유리를 통해서 보는 것. 또는 사물에게 어느 정도 불투명한 표면과 피부를 주는 것 우리는 이 모든 방법을 예술가로부터 배워야만 하며, 게다가 그 밖의 점에서 그들보다 현명하여야 한다. (338)

301 관조자의 환상. 고귀한 인간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는 점, 게다가 생각하면서 보도 듣는다…… (…) 그런데 이 때 하나의 환상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줄곧 그를 따른다. 곧 그는 인생이라는 저 거대한 연극과 음악 앞에서 자기는 관중이나 청중으로 앉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본성을 관조적이라 규정함으로써, 자기 자신 역시 그 인생의 창작자이며 또 계속 창작하는 자임을 간과하게 된다. (…)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을 실제로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는 것이 진실로 사고하는 자이며 감독자인 우리의 할 일이다. (…) 우리가 바로 이 부여자이며 증여자였다! (…) 우리는 자신의 최선을 능력을 오인하고, 우리 관조자들을 한 단계 낮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가 지닌 능력만큼의 자부심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340)

나는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의 연출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마음이 이끌리는 장면에서 내가 창조하는게 아닌, 관조하는 태도를 가지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실행하고 창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즉시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302 가장 행복한 인간의 위험. (…) 그렇다! 소소한  수수께끼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간들이 부딪치는 위험이다.(340)

303 두 종류의 행복한 사람. (…) 실제로 이런 사람이 원하고 계획하는 모든 것은 결국 실패한다. (…) 그는 자신에게 말한다. ‘이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아마 다른 것이 성공하지 않을까? 전체적으로 보면 나는 무엇인가 성공보다도 실패 쪽에 감사할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본디 고집스럽고 위험한 성정인 것일까? 내게 인생의 가치와 성과를 지니는 것은 어딘가 다른 데 있다. 나의 비극 뿐만 아니라 나의 자존심 역시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나는 인생의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인생을 잃을 만큼 위험한 순간을 종종 겪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너희 모두보다 인생의 더 많은 것을 소유했다!’(341)

창피한 일(?!)을 겪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글귀

318 고통 속의 지혜. 대담한 뱃사람인 인간은 온갖 종류의 돛을 조정하는 기술을 배워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즉시 궁지에 몰릴 것이며, 바다는 그를 삼킬 것이다. 우리는 감소된 에너지로 사는 법 역시 배워야만 한다.  고통이 경고신호를 울리는 바로 그 시간은 우리가 에너지를 감소시켜 버려야 할 때이다.(348)

네 이기심은 네 삶의 재난이다이러한 설교가 어리석음으로부터 양심의 평화를 빼았았다는 사실이다. 이 철학자들은 어리석음을 공격했던 것이다! (353)

337 미래의 인간성’. (…) 인류의 역사 전체를 자기 자신의 역사로 느낄 수 있는 자는 무엇이든 다 무서우리만치 보편화해 버리는 방식으로, 저 건강할 때를 떠올리는 병약자의 슬픔을, 청춘을 꿈꾸는 노인의 비애를, 연인을 잃어버린 자의 참담함을,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순교자의  아픔을,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다만 상처 입고 친구를 잃은 전쟁터의 저녁에 서 있는 영웅의 비통함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361)

338 고뇌에 대한 의지와 동정자들. (…) 다른 사람의 고뇌로부터 개인 고유 특징적인 요소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 동정이라고 하는 감정의 본질이다. 자혜로운 후원자들은 다른 적들보다 더욱더 우리의 가치와 의지를 왜소하게 만드는 자들이다.(362)

상대에게 호의, 선의를 베풀때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해야한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342 비극이 시작되다. (…) (차라투스트라) 또는 너(천체)처럼 몰락해야만 하다!. 나는 내가 이제 내려가고자 하는 곳의 인간들이 말하는 대로 몰락하지 않을 수 없다. (367)

 

5부 우리 두려움 모르는 존재들

343 우리의 쾌활함이 의미하는 것. (…_ 비록 아직 밝지는 않다 하더라도 마침내 수평선이 우리 앞에 다시 펼쳐진 것이다. 가디라고 기다린 끝에 우리 배는 다시 모험을 떠날 것이며 온갖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인식의 모든 모험이 다시 허락되었다. 바다가, 우리의 바다가 다시 열리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까지 열린 바다는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으니라.

345 문제로서의 도덕. 인격성의 결함은 여기저기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약하고 얄팍하며 활력을 잃어 가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인격은 더 이상 좋은 일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특히 철학에는 가장 쓸모없다. (378)

모든 위대한 문제들은 위대한 사랑을 요구한다. 그리고 위대한 사랑을 할 능력은, 자기 자신에 대해 확고히 아는 강하고 원숙하며 태연한 정신에만 있다.(379)

인간은 삶을 꽃피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신앙을 필요로 하는지, 또 자신을 지탱해 줄 흔들림 없이 확실한 것을 얼마나 많이 필요로 하는지. 이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역량(더 분명하게 말하면 그의 약함)을 측정하는 척도이다.(382)

351 종교적인 인간들에게 경의를. 교회에 대항하는 투쟁은 특히 왜냐하면 그것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겁고 깊고 명상적인 인간들, 곧 존재의 가치와 그들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도 계속 의혹을 품는 악의 있고 의심 많은 인간들의 지배에 대항해, 비속하고 무례하고 경박하고 만족에 찬 사람들이 벌이는 투쟁이기도 했다. 즉 민중의 속된 본능, 그 감각적 쾌락주의, 그들의 선한 마음은 교회에 대항하여 궐기하였다.(386)

습관적인 것은 인식하기가장 어려운 것이다.(393)

라이프니츠와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통찰, 즉 의식은 표상의 예기치 않은 속성에 불과하며 그 필연적, 본질적 속성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우리가 의식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우리 정신과 영혼 세계의 한 상태일 뿐 정신 세계 그 자체는 아니라는 통찰이다.(396)

우리의 내면 세계는 더욱 풍부하고 넓으면 은밀하다’(397)

360 사람들이 혼동하는 두 종류의 이유. (…) ‘목표목적이라는 것은 흔히 배가 우연히 급류에 휘말려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려는 허영심에서 비롯된 자기기만, 즉 현실을 미화할 핑계가 아니었던가? 배가 거기로 갈 수밖에 없는 까닭에 거기로 가려 한다는 것, 분명히 방향은 잡혀 있지만 전혀 키잡이는 없다는 것, 이런 사실을 승인하지 않으려는 허영심이 사후에 만들어 낸 자기기만 아닌가? 우리는 목적이라는 개념을 비판해야 할 것이다. (404)

여성들에게 최면을 걸었던 의사들의 소리를 들어보라. 그 결과는 무엇인가? ‘몸을 맡길 때조차 그녀들은 무언가를 상연한다는 것. 여성은 그토록 예술적인 것이다. (406)

368 냉소주의자들은 말한다. (…) 그대가 이해하는 것처럼 나는 본질적으로 반연극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바그너는 뼛속부터 연극주의자였으며, 배우였으며, 음악가로서도 전 시대에 걸쳐 가장 열광적인 팬터마음광이었다.

378 ‘그리고 다시 맑아질 것이다영혼이 너그럽고 풍요로운 우리는 길가의 공동 우물처럼 우리의 물을 길으러 오는 누구의 손도 거부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우리는 거절하고 싶어 한들 거절하는 방법을 모른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는 탁하고 더럽고 어둡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 가장 시대적인 것들을 우리 안에 던져 넣고, 시대의 부정한 새들이 오물을 떨어뜨리고, 어린아이들이 허섭스레기를 쑤셔 두고, 피로에 지친 나그네가 우리 곁에서 쉬면서 그 크고 작은 고통을 우리 안에 던져 넣는데, 우리는 이를 막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까지 우리가 했던 대로 해 나갈 것이다. 사람이 우리에게 던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의 깊은 곳으로 끌어들이리라 왜냐하면 우리는 깊으며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맑아질 것이다.(425)

 

포겔프라이 왕자들의 노래들

이성이라고! 그것은 불쾌한 것 하나의 홍수다. / 그것은 우리는 너무 빨리 목적지에 데려간다. / 나는 하늘을 날며 나를 우롱하고 있던 것들을 깨달았다. / 벌써 새로운 삶, 새로운 놀이를 위한 / 용기와 피와 활력을 느낀다.(441)

 

새로운 바다로

저편으로 나는 가련다. 이제 믿을 것은

나 자신과 내 실력뿐.

눈앞에 열린 저 아득한 바다 끝으로

나는 내 배를 띄운다.

 

모든 것은 더욱 더 새롭게 나를 비춘다.

시간도 공간도 잠으로 감싸 안은 정오-

오직 너의 눈동자만이 두렵게

나를 응시한다. , 끝없는 영원이여! (450)

 

 

 

3. 내가 저자라면

뭐든 문외한이 아니겠냐마는, 특히나 철학에는 문외한인 나에게 니체란 이름 자체만으로도 부담이 큰 책이었다. 대부분 그냥 읽고 넘어가는 수준이었고, 그 문장이 내포한 의미를 깊이 새겨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몇몇 인상 깊은 아포리즘들이 있었는데,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는 108항이나 115, 자주적인 인간이 되기를 선동하는(것으로 보이는) 283, 285항 그리고 289항 등은 꽤나 흥미로웠다. 예전 법의 정신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내용, 중세나 19세기 독일을 묘사하는 아포리즘들은 거리감도 느껴질 뿐더러 가지고 있는 지식도 많지 않아 쉽게 와닿지 않았다.

사이사이 나온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지크프리트’ ‘볼테르등과 같은 사람(또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 없이 책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조금 더디더라도 검색을 하고 찾아보며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동서문화사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러한 고전에는 세세한 주석이 필수인 것 같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를 이해하기 위해선 108~115항을 비롯한 그 이하의 항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었는데, 실제 뒤의 항에 가서야 주석을 통해 앞의 항들과 연결되는 것을 보고, 세세하고 친절한 주석이 책의 이해를 돕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깨닫게 되었다. 결구 앞으로 읽으려고 계획중인 몽테뉴의 수상록이나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같은 고전들도 이러한 이유로 동서문화사 책을 찾게 될 것 같다.

고전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왜 그렇게 급히 읽어 치우려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책들은 몇번이고 곱씹어 읽어야 하는 책인 듯 하다. 꼭꼭 씹어서 읽고 또 읽고 해야하는 책들. 다 읽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것.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IP *.218.137.7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