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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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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6일 02시 27분 등록

태어남은 분명 축복입니다. 다만 인생이라는 레일을 달리다 보면 들어올려졌다가 내던져지기를 끝도 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참으로 우연히 라는 에너지 덩어리가 생성되었고 또 그럭저럭 유지하며 마흔 인생을 달리고 있습니다. 들어올려지기도 했고 또 내던져 지기도 하면서 배우자도 만나고 자식도 길러 가며 인생 레일을 달리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때로는 억울함에 주저앉기도 했고 슬픔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분명 기쁨에 춤추기도 했고 행복에 젖어 마냥 웃기도 하며 살아왔습니다.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미래라는 시간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저에게 다가갈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기쁘게 살자! 충만하게 살자! 새해 새 달력을 바라보며 다짐해 봅니다. 삶은 결국 해석하고 누리는 자의 몫이니 기왕이면 기쁨으로 해석하고 기왕이면 충만함을 느끼며 살아보려 합니다. 다만 얄팍하기에 한 철 유행 같은 긍정의 논리보다는 좀 더 묵직하면서도 근간을 채워주는 무언가로 중심을 잡으며 살고 싶습니다.

 

연구원 과제물로 니체를 읽다가 엉겁결에 공자와 장자까지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세 분의 가르침 속에서 기쁘게 사는 비결을 발견한 것 같아 여기 글로 적어 기억해 보려 합니다.

 

기쁘게 사는 인생에 대해 공자님 말씀부터 적어봅니다. 자신의 제자 가운데 즐거움을 안다고 직접 언급하며 칭찬한 사람은 증석과 안회 뿐이었습니다.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증석의 일화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만일 너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공자의 제자들 - 자로, 염구, 공서화는 자신의 경쟁력과 치국평천하를 이룰 큰 꿈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증석이라는 제자는 좀 다릅니다.

 

증석이 말하였다. “늦은 봄에 봄옷을 지어 입은 뒤, 어른 5~6, 어린 아이 6~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는 노래를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감탄하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점(증석의 이름)과 함께 하련다

 

공자께서는 나라와 국정을 논하는 거창한 이상보다 오히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상의 행복에 감탄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공자님도 감탄하신 즐거움은 지인 가족들과 함께 물놀이도 하고 좋은 곳에 가서 경치도 구경하고 노래도 부르는 삶입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종묘사직을 논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얼굴이 찌뿌려 지지만, 지인과 놀러다니는 삶은 생각만 해도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공자께서는 증석 외에도 안빈낙도의 경지에 이른 안회를 극찬하기도 하셨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도다, 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가지고 누추한 거리에 살고 있으니,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겠지만, 회는 그 즐거움이 변치 않는구나. 어질도다, 회여!” (논어 <옹야>편 중에서)

 

공자는 안회를 두고 가장 배우기를 좋아한 제자였다고 말합니다. 비록 가난하여도 배움을 통해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삶이야 말로 공자께서 격찬하시는 삶입니다.

 

이번에는 장자 입니다. 장자는 소통의 철학자로 불립니다. 장자에 따르면 주변과 내가 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좁은 자아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자신이 변해야 세상도 변한다고 강조합니다. 내가 즐겁지 못한 이유는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름 아닌 내가 나의 좁은 자아관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자는 잊어버리는 망의 가치를 최고의 가치라고 추켜 세웁니다. 요컨대 자신을 잊어버릴 때 진정한 경지의 삶을 맛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안회가 말했습니다. “저는 뭔가 된 것 같습니다.”

공자가 물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저는 인仁이니 의義니 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좋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얼마 후 안회가 다시 공자를 뵙고 말했습니다. “저는 뭔가 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저는 예禮니 악樂이니 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좋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얼마 지나 안회가 다시 공자를 뵙고 말했습니다. “저는 뭔가 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저는 좌망坐忘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좌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손발이나 몸을 잊어버리고, 귀와 눈의 작용을 쉬게 합니다. 몸을 떠나고 앎을 몰아내는 것, 그리하여 큰 트임과 하나됨.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좌망입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하나가 되면 좋다 싫다가 없지. 변화를 받아 막히는 데가 없게 된다. 너야말로 과연 어진 사람이다. 청컨대 나도 네 뒤를 따르게 해다오.”

- 장자 <대종사> 전문 -

 

장자는 공자와 안회를 주연배우로 내세워 잊어버림의 가치를 말합니다. 공자마저도 깜짝 놀라며 부러워하는 경지가 바로 자기 자신마저 망각하는 경지라는 것입니다. 장자해석의 권위자 오강남 교수는 좌망坐忘이라는 단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분법의 의식작용을 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새로운 의식,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국한되지 않는 비이분법적혹은 초이분법적의식, ‘우주 의식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공자마저도 안회를 따를 정도가 된다는 효과 장치까지 삽입했다.

(중략) 장자의 이 좌망坐忘이 선불교와 신유학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 이 좌망坐忘과 선불교에서 말하는 좌선坐禪, 그리고 신유학에서 말하는 정좌靜坐는 모두 연관이 있는 것이다. (장자, 오강남 풀이, 현암사, pp315-316)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려서 궁극적으로 라는 마음을 잊어 버리게 되면 우리는 세계를 그만큼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나라는 고정된 관념을 버릴수록 새로운 나를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망각이야 말로 늘 새롭게 탄생하는 비결입니다.

 

서양철학에서 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최초의 철학자는 니체 입니다. 니체는 정신의 변화 단계를 낙타, 사자, 아이로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인내심 많은 정신은 이 모든 무겁기 그지없는 짐을 짊어 지고 그의 사막을 달려간다. 가득 짐을 실은 채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하지만 고독하기 그지 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정신은 사자가 된다. 정신은 자유를 쟁취하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중략) 그러나 말하라 형제들이여, 사자도 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아이가 할 수 있단 말인가? 강탈하는 사자가 이제는 왜 아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낙타가 가득 실은 짐은 사실 내 것이 아닌 짐입니다.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하여 우리를 교육시킵니다. 그들을 위한 권위체계와 규범체계는 시나브로 우리에게 각인됩니다. 왜 짐을 지고 다녀야 하는지 모르는 낙타의 운명처럼, 우리도 모르게 우리에게 주입된 각종 규범과 도덕체계 속에서 우리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자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면서 그 동안의 삶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실은 타인을 위한 삶이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낙타에서 사자로 변하는 단계는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위한 자유로운 삶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시나브로 주입된 노예근성을 버리고 주인된 삶을 살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니체는 사자의 단계에서 한층 고양된 어린아이의 단계를 세번째로 설정합니다. 니체에게 망각이란 새로운 창조를 위한 불가피한 관문입니다. 낙타에서 사자로 변하면서 자유를 쟁취하였다면, 이제는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하기 위하여 망각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기존의 가치를 망각해야만 인간은 자신에게 내재한 힘에의 의지를 긍정할 수 있습니다. 그때서야 진정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장자와 니체 모두 망각, 즉 잃어버림을 강조하였다는데 놀랐습니다.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존의 자신을 잃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어제의 나를 잃어버릴수록 더 새롭게 성장할 수 있다고 장자와 니체는 말합니다. 보다 자유롭고 보다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지금의 나를 잃어버리라는 두 현인의 가르침을 기억하겠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어제의 나를 잃어버릴 때 가능하다는 가르침을 기억하겠습니다.

 

2014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새해가 될 때 마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작심삼일을 반복을 반복하며 살아왔습니다.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보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는 새해 목표를 매년 반복해서 세웠습니다. 학교를 떠나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새해에는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좀더 큰 집으로 이사 가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른 계획을 가져 봅니다. 먼저 공자에게 배웁니다. 원대한 이상을 내려 놓고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것을 이제는 내려 놓고 소박하더라도 소중한 것을 찾아보겠습니다. 가족과 지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또 배고픔을 걱정하면서도 공부하는 재미를 잊지 않겠습니다. 우둔한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서고금의 인문고전을 가지고 다니며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아 보겠습니다.

 

장자와 니체에게 배웁니다. 오늘을 그저 내일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삶을 이제는 더 이상 살지 않겠습니다. 매일매일 어제를 잃어버리는 삶을 살아 보겠습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보겠습니다. 궁극적인 피안의 세상보다 하루 하루의 일상을 온 몸으로 누리며 살겠습니다. 내일에 겁먹지 않겠습니다. 내일을 바로 지금, 오늘에 살겠습니다. 기쁘게 살겠습니다. 누리며 살겠습니다. 춤 추며 살겠습니다. 제 안에 간직된 제 꼴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276 새해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중략) 나는 사물의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이것이 앞으로 나의 사랑이 될 지어다! 나는 추한 것과 싸우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비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자를 비난하는 일조차 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되리라. 요컨대 언젠가 나는 긍정만 표시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 니체 <즐거운 지식> 중에서

 

2014-01-06

坡州 雲井에서

IP *.65.152.54

프로필 이미지
2014.01.24 16:52:13 *.209.223.59

제 안에 간직된 제 꼴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공부의 귀결점으로 최고입니다. 자유롭게 철학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모습도 아주 멋집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2.02 19:12:12 *.65.152.249
선생님 댓글에 힘을 얻습니다. 아자아자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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