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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6일 04시 45분 등록

<북리뷰 9-2주차>

 

2013.01.05.

: 서 은 경

 

 

 

(No. 32)

 

 

           동서문화사 World Book No. 114 [비극의 탄생/즐거운 지식/반그리스도교]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지식] 동서문화사 (2013)

 

 

 

 

 

 

 

                                                                                                     

                                                                        책표지(즐거운지식).jpg

                                                                        @ 1976711

 

 

대담하게

너 자신이 되라!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말고...

 

* * *

 

 

 

 

 

 

 

1. 작가 소개

 

 

 

nietzsche.jpg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

니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까지 세상을 지배해 온 이상과 가치는 죽었다.

신은 죽었다.

우리 인간이 가치의 창조자다.

모든 가치를 선택하는 자유는 우리에게 있다.

초인이 되라.

 

그대로의 생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긍정하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강력한 힘과 용기로 자신의 삶을 기획할 때

허무주의로부터 진정한 구원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 초인이 되라!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서

창조적인 생을 살아라.

삶은 자기실현을 위한 방편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

자기실현을 향한 삶은

외부에서 의미를 구하지 않는다.

 

삶은

영원회귀의 속성이 있다.

매 순간과 모든 순간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 채 무한히 되풀이되는....

권태로움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자기실현을 하라.

 

그러면

삶이 곧 예술작품이 될 지니!

 

그런 자의 삶은

영원한 무()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永遠)으로 되돌아온다.

 

 

 

 

 

 

**

니체, 당신이란 사람은...

 

한방에 훅 치고 들어온다.

나에게 너만의 독자성을 찾아 실현하라고 충동질하네.

당신의 글은 내 생각을 자극해.

깊은 은유적 표현은 나를 한순간에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어.

 

무슨 철학책이 이래?

체계도 없어 보이고 더더구나 주장을 널어놓고 논증하는 방식이 아니잖아?

무언가 생각들이 서로 얽혀 있는 그물망을 짜내려 가는 것 같아보여.

은유와 통찰을 무기로

날카롭게 찔러대는 게 당신 책의 묘한 맛.

 

니체.

당신에게선 딱딱한 철학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어.

당신의 글은 은유의 긴장감과 재미가 있어, 언어의 마술사인 시인처럼.

당신의 통찰은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꿰뚫어보는 심리학자의 면면을 닮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당신이 편협 되지 않아서 좋아.

악조차 인정하는 당당함과 자유로움!

또 당신은 말하지.

늘 지켜내는 신조처럼

 

무엇을 버릴지의 결정은 자신이 해야만 한다.

나는 행함으로써 버리는 것이다.”

 

행함으로써 버린다는 말은

행동하라! 행동하라!

삶은 순간순간이 선택의 과정이고 살아있는 행위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

 

니체, 당신 책을 보며

한권의 책으로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단 몇 줄의 문장으로 탱탱하게 표현하고픈 욕망이 마구마구 쏟아났어.

언어의 묘미, 그것은 영원회귀 속에 우러나는 통찰의 힘에서 오겠지?

니체, 만나서 반가웠어.

 

 

 

 

***

독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

1844년 독일 레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5세 때 목사인 아버지를 사별하고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자란다. 1864년 본 대학에 진학하여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으며 1865년 스승인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긴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된다. 이후,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하여 철학적 사유에 입문한다.

 

28세 때 비극의 탄생을 펴낸다. 이 책은 아폴론적인 가치와 디오니소스적인 가치의 구분을 통해 유럽 문명 전반을 꿰뚫는 통찰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879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재직 중이던 바젤 대학을 퇴직한다.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한다.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니체는 병마에 시달리다 1900825일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한다. 니체는 사후, 나는 신화가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는데, 이 말은 사실이 되었다.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프란츠 카프카 등 니체를 선망한 세기의 작가들이 니체의 사상을 문학으로 형상화하였으며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등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니체를 실존철학의 시원이라고 주장했었다.

 

저서로는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학, 이 사람을 보라, 권력에의 의지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46]

나는 내 집에 살며

그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다.

더욱이 마음껏 웃을 줄 모르는

모든 대가들을 비웃는다

-우리집 문 위에 적은 글

 

 

2판을 위한 머리말

 

[147]

이 책은 얼음과 눈을 녹이는 봄바람의 언어로 씌어졌음이 분명하다. 신념과 긍지, 방황, 모순, 그리고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이 책 속에 뒤섞여 있다. 겨울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음을 경고하는가 하면 동시에 겨울을 이겨내고 다가올, 아니 어쩌면 이미 와 있는 승리를 일깨워 준다.

 

<즐거운 지식>길고 무거운 억압을 끈질기게 준엄하게 냉정하게 굴하지 않고 희망조차 없이 저항해 온 영혼의 사투르날리아 축제를 의미한다.

 

cf) 사투르날리아 Saturnalia: 로마시대 때 12월 중에 열린 농업의 신을 위한 축제

:

 

[148]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에서 철학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풍요와 활력에서 철학을 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그들은 버팀목으로든, 진정제, , 속죄양, 기분 전환, 혹은 자신을 고립시키는 수단으로든지 간에 아무튼 자신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한편 후자에게서 철학은 아름다운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149]

생동하는 영혼이란 곧 건강할 때는 자존심 때문에 허용이 안 되는 허약함, 회개, 포기, 실망, 경직된 상태 등 영혼의 온갖 병리학적인 상태의 다른 이름들이다.(옛날 속담은 아직도 유효하다.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짐승들은 자존심 강한 영혼, 공작새, 그리고 말이다.”)

 

객관적인 것, 관념적인 것, 혹은 순수하게 영적인 것이라는 이름 아래 무의식적으로 숨겨진 생리적인 욕구의 변장술은 놀랍도록 다양하다. 그래서 나는 넓은 안목으로 봐서 지금까지의 철학은 고작 육체에 대한 해설, 더 정확히는 육체에 대한 오해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해 본다.

 

[150]

그것들은 역사학자나 심리학자들한테는 육체의 성공과 패배, 역사에서의 육체의 충실함과 힘과 자주성의 징후, 혹은 그것의 좌절과 피로와 빈곤과 종말에 대한 경고, 종말에 대한 의지의 증세로서, 일종의 귀띔으로 더욱더 가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단어의 예외적인 의미에서 철학적인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 예리한 의사를, 국민, 시대, 인종, 인류 등의 총체적인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 나의 의혹을 끝까지 파헤쳐 대담하게도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하기 위하여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명제란 이렇다.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철학의 목표진리가 아닌 다른 것-건강, 미래, 성장, , 생명-이었다.

---> 철학의 목표는 건강, 미래, 성장, , 생명에 있다. 철학은 몸이다. 생명이며 성장이며 에너지다.

 

내가 심하게 아팠던 시절에 얻은 이득을 난 오늘날까지도 다 소모하지 못했다. 그 시절에 충분한 고마움을 전하지 않고서는 떠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나의 변덕스러운 건강이 나를 거친 영혼들보다 유리하게 만든다는 점을 알고 있다.

 

[152]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말을 해야겠다. 이러한 나락으로부터 무거운 병으로부터, 또한 심각한 의심에서 생기는 병으로부터 돌아올 때 우리는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우리는 낡은 껍질을 벗고 좀 더 민감해지고 더 심술궂은 사람이 되고, 기쁨에 대해 더 섬세한 취미를 갖고 좋은 것들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감사할 줄 아는, 좀 더 명랑한 감각을 지니고 기쁨 속에서 두 번째의 좀 더 위험한 순진함을 지닌, 좀 더 어린애 같으면서도 그전보다도 백배나 더 섬세해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제노바 교외의 루타에서

1886년 가을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

-독일식 압운의 서곡-

 

[155~169]

1 초대

.........

그대들이 내 음식을 더 원한다면

과거에 했던 내 모든 일들이

분발하여 제 능력껏 내게 새로운 영감을 주리라.

----> 현재의 나는 과거의 총체. 과거에 했던 내 모든 일은 현재의 나. 그 경험의 스키마에 걸려들어서 나는 현재에 새로운 영감을 얻는 것. (아이들의 역량과 경험이 새로운 영감이 된다. 이 구절을 써 먹자)

2 나의 행복

추구하는 일에 지치게 된 나는

발견하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

역풍을 만난 이후로 나는

어떤 바람과도 같이 잘 수 있게 되었다.

 

3 두려움 없이(주목구절)

네가 서 있는 곳을 깊이 파라

그 밑에 샘이 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외치게 놔두어라

아래로 가면 오직 지옥뿐이다라고 해도.

---> 6층 집 지하실에는 지하수가 흐른다. 내 마음의 중앙에는 샘이 있다. 참나, 근원이 있는 곳. 아래로 내려가면, 무의식으로 들어가면 지옥이 아니라 그 안에 내가 있다. 샘이 있다.

4. 대화

A: 나는 병이 났을까? 나았을까?

누가 나의 의시였을까? 너는 말해 줄 수 있느냐?

!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B: 너는 지금 정말로 건강하다.

잊어버린 자만이 건강한 것이다.

 

6 처세술

평지에 머물지 말라!

너무 높이 오르지도 말라!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중간 높이이다.

---> 노자의 말과 통한다. 허 사상

 

7 나를 따르라. 너 자신을 따르다.

나의 방식과 말에 유혹되어

나를 따르고 나를 추종하는가

오직 너 자신만을 충실히 따르라

그것이 나를 따르는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

 

8 세 번째 탈피에 즈음하여

벌써 내 껍질이 갈라진다.

이제껏 흙을 많이도 삼켜 놓고선

새로운 욕망을 불태우며

내 안의 뱀은 대지를 갈망한다.

돌과 풀의 경계를 기어

굶주림에 몸을 비틀며 나아간다.

항상 먹어 온 것을 나는 먹으려 한다.

너 뱀의 식량이여! 너 대지여!

 

11 잠언에 이르기를

예리함과 유연함, 조잡함과 세련됨,

낯섦과 친숙함, 더러움과 깨끗함,

바보와 현자와의 대면,

나는 이 모든 것이고, 또 모든 것이고 싶다.

돼지요 뱀이며 비둘기이고 싶다!

 

12 빛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과 마음이 시들기를 원치 않는다면

태양을 향해도 그늘 속을 걸어라!

---> 빛을 사랑하여도 그늘 속을 걸어라... 눈과 마음이 시들기 원치 않는다면... 빛의 이면, 어둠도 보라는 말이다. 이 말이 가슴에 콕콕 박힌다. ~ 니체여~!

 

14 용감한 사람

아교로 붙인 우정보다는

차라리 완벽한 적의(敵意)가 낫다!

---> 용감함은 솔직함이다. 완벽한 적의! 무식하면 용감했고 거친 야생에서는 용감했다. 도시 속의 세련됨, 세상 속 조련으로 아교 붙이고 사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옳은가는 정답이 없다. 하나는 용감으로 칭해 질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화로움으로 칭해질 수도... 가끔 용감하고 싶을 때는 용감할 수 있어야 한다.

From, 본래 30대까지 용감했다가 40대 들어와서 안 용감해진 나로부터

15

녹도 필요하다, 예리함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언제고 말할 것이다-‘너는 너무 어리다!’

----> 니체, 비유가 너무 좋아요...니체....^^

19 본의 아닌 유혹자(주목구절)

그는 기분 전환으로 공허한 말을 던졌다. 공처럼

허공 속으로-그것이 여자를 명중시켜 쓰러뜨렸다.

---> 오 마이 갓! 남자의 작업말에 걸려든 여자의 맹함이어. 그런데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또 몸사냥이 시작되고... 남자의 허세와 여자의 착각. ‘본의 아닌유혹자란 말은 유혹의 책임은 여자에게 넘기는 남자들의 책임지지 않으려는 심리.

22 남과 여

내 마음을 사로잡는 여성이 있으면 빼앗겠다!’

남자들은 생각한다. 여자들은 빼앗지 않고 훔친다.

---> 빼앗는 남자, 훔치는 여자... 누구의 스킬이 더 세련되었나? ㅋㅋ 알아서 내놓게 하는 무엇은 없냐?

 

25 소망

타인의 마음은 잘 알면서도

내가 누군지, 그것을 모른다!

내 눈은 나 자신과 너무 가까워서

내가 보았던 것, 그리고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한층 멀리 자리잡을 수 있다면

나도 내게 더 유익할 수 있으련만.

하지만 내 적만큼 멀지는 않는 곳에!

가장 가까운 친구조차도 역시 너무 멀다.

그와 나 사이의 중간 지점!

너는 나의 소망을 알아맞힐 수 있겠느냐?

----> 내 말이~~!!!!!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너는 내 소망을 좀 알아맞춰주면 안 되겠냐? 그러나 역시 너는 너무 멀다. 그 중간쯤에 있었으면....

 

28 초심자를 위한 위안

.......

(아이가) 언젠가 서서 걸을 날이 올까?

절망하지 마라! 곧 너희는

그 아이가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

일단 두 발로 설 수 만 있다면

곧 물구나무도 설 수 있으리라.

 

33 고독한 자

추종하는 것도 앞장 서는 것도 싫다.

복종, 아니, 지배, 그것도 아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남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만이 타인을 지도할 수 있다.

자신을 이끄는 것조차 나는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숲이나 바다의 동물처럼

한동안 나를 잊는 것

외딴 섬에서 행복한 망상에 잠겨 앉아 있는 것

이윽고 멀리서부터 나를 불러들여

나 자신을 나 자신에게로 유혹하는 것

 

37 주의

저 지역은 이방인에겐 안전하지 않다.

만일 너희에게 지혜가 있다면, 두 배로 주의하라.

너희는 유혹되거나 사랑을 받아, 마침내 갈가리 찢기리라.

열광하는 그들에게는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은, 스타는 열광을 원한다. 그리고 구설수에 오른다. 나 자신의 광신도, 골수팬이 생기기 시작할 때는 떠나야 한다.

 

40 질투 없는 눈

참으로 그의 눈에는 질투가 없다. 그래서 너희는 그를 존경하는가?

너희가 존경해도,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독수리의 눈이다.

그는 너희를 보지 않는다-오직 별, 별들만을 본다.

---->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의 것에 몰입하여 있기에 주변에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워 보인다. 거들떠보지 않기에 계속 사람들을 애달게 만든다. 나쁜 남자의 특성도 이런 거지? 나쁜 여자의 특성 역시... 그리고 자신의 일에 미쳐 몰입한 이들의 모습도.....

 

42 지나치게 고상한 자의 원칙

네발로 기어다니기보다는

발끝으로 서는 게 낫다!

열린 문틈으로 기어들어 가기보다는

차라리 열쇠구멍으로 훔쳐보는 게 낫다!

---> 표현이 재미있다. 조선시대 양반의 허세같어.

 

44 철저한 인간

내가 탐구자라고? 오오, 그런 말은 그만두라!

나는 다만 무거울 뿐-무게가 많이 나갈 뿐!

나는 떨어진다. 끊임없이 떨어진다.

마침내 바닥에 이르렀다!

----> 떨어진 그 바닥에서 다시 치고 일어나 꽃을 피울지니....

 

45 영원한 방문자

나는 오늘 왔다. 오늘이야말로 적절한 날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오는 자는 누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

 

46 피곤한 자의 판단

모든 지친 자는 태양을 저주한다.

그들에게 나무의 가치는-그림자뿐!

 

52 발로 쓴다 (주목구절-,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

나는 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발도 항상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확고하고 자유로우며 용감하게

혹은 들판을, 혹은 종이 위를 달린다.

---> 종이 위를 달린다..... 표현이 참 좋다.

 

54 나의 독자에게

튼튼한 치아와 튼튼한 위장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이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내 책을 소화하면

나와도 사이가 좋아질 터!

---> 결혼을 앞둔 사람, 따뜻한 심장과 꿰뚫어보는 지혜의 눈을 가져야. 쿵쿵탕탕 결혼생활의 환상을 거두고 남과 녀, 서로 성숙한 사랑에 도달하려면.

 

55 시인의 허영심

내게 아교만 다오, 나무는 내가 가까운 아무 데서나

찾을 수 있으니까!

4개의 무의미한 시구를 모아 의미 깊게 만든다.

그것은 꽤 자랑할 만하다!

---> 맞다. 자랑할 만하다!! 무엇이든 줄줄줄 꿰어서 엮을 수 있는 능력. 그게 재미다...

아이왈, “나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요~!” “무엇이든 표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때, 그때가 바로 천재다. 그것을 꺾지 않고 아니, 꺾이더라도 그것을 다시 발견하여 몰입하여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천재이며 아름다움이며 자신의 역량에 기대어 세상을 파도타는 멋진 풍경. 이런 허영심, 거만함이 있는 단계..... 굿굿굿.

59 펜을 휘두르다

펜이 휘둘러지지 않는다-빌어먹을!

이렇게까지 안 써질 팔자란 말인가?

그렇다면 과감하게 잉크병에

펜을 쑤셔 넣어 굻은 글씨로 검게 쓰리라.

그러자 어찌나 힘 좋게 내달려 가는지!

거침없이 흐르는 것처럼

뜻한 대로 되는지!

글씨는 별로 확실치 않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대관절 누가 이것을 읽는단 말인가?

---.--> 흐흑....눈물난다...

 

60 더 높은 인간

그는 높이 오른다-그를 칭찬하자!

그러나 또 다른 그는 늘 위로부터 온다!

그는 칭찬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산다.

너의 시야 저 너머에.

---> 아름다운 것들, 높은 것들의 시야에는 칭찬을 원하거나 눈치를 보는 기미가 없다. ..... 더 높은 인간들에 질투를 느끼며..

 

61 회의주의자는 말한다

네 인생의 반은 끝났다.

시곗바늘은 움직이고 네 영혼은 전율한다!

혼은 이미 오랜 시간 방황을 거듭하여

구하려고 했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이 혼이 이제 무엇을 주저하리?

네 인생의 반은 끝났다.

매시간이 고통이요 오류였다.

너는 무엇을 아직도 구하느냐? 무슨 이유로?

내가 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이러는 것에 대한 이유이다!

 

62 이 사람을 보라

그렇다 나는 내가 어떤 자인지 안다.

탐욕스러운 불꽃처럼

타올라 몸을 태워 버린다.

내 손에 쥔 것은 모두 빛이 되고

내가 버린 것은 모두 숯이 되니

그렇다. 확실히 나는 불꽃이다.

 

 

 

1

 

1. 생존을 일깨우는 교사

[173]

(내가 발견하는 어떤 사실) 인간은 전체로서나 특히 개인으로서나 종족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사명을 늘 지니고 있단 사실이다.

 

이 본능이야말로 바로 우리 인간 종족과 모든 무리의 존재적 본질이기 때문이다.

 

가장 유해한 인간조차 종족의 보존에는 가장 유익한 인간일지 모른다.

 

증오, 악의 어린 희열, 약탈욕, 지배욕, 기타 모든 악이라 불리는 것, 그런 본능들은 종족 보존을 위한 놀랄만한 경제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물론 그것은 너무 비싸고 소비적이며 전체적으로 극히 어리석어 보이는 경제지만 그러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인류를 유지하여 왔다.

그대들의 최선의, 또는 최악의 욕망에 몸을 맡기고 파멸하든 말든 오로지 전진해보라! 어떠한 상황이라도 그대들은 반드시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의 은인이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칭송을 받게 될 것이다-동시에 비웃음도 사리라!

[174]

웃음에도 미래가 있다. ‘종족이 전부이며 개인은 언제나 무나 다름없다라는 명제, 이것이 인간성 그 자체에 결합되어 각자에게 늘 이 최종적인 해방과 무책임을 향한 길이 열릴 때, 분명 그때에는 즐거운 지식만이 남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직 그곳에까지는 도달하지는 않았다. 현존재의 희극이 아직 스스로 의식되기에 이르지 않았다. 여전히 비극의 시대, 각종 도덕과 종교가 활개를 치는 시대이다.

이들 비극배우 역시 설령 그들이 신을 위해, 신의 사자로서 움직인다고 믿는다 할지라도 결국 종족을 위해서 일해 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도 또한 삶에 대한 믿음을 촉진함으로써 종족의 삶을 촉진한다. 산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 또는 이 삶에는 의미가 있다. 삶은 그 배우에 아니면 그 밑바닥에 중요한 뭔가를 감추고 있다. 명심해라라고 그들은 외치고 있다.

[175]

생존의 목적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끊임없는 출현으로 인간의 본성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 본성은 바야흐로 하나의 욕망을 증가시켰는데, 이것은 그런 목적의 교사와 그 가르침이 끊임없이 새로 출현하길 바라는 욕망이다.

 

[176]

웃음과 즐거운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탁월한 비이성을 지닌 비극도 종족을 보존하는 수단이 되며, 필요한 것이다!’라고........그대들은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지 이해하는가? ......우리에게도 역시 우리의 시대가 있다!

 

 

2. 지적 양심

[177]

현존재의 놀라운 불확실성과 애매함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 의문의 욕구와 즐거움으로 전율하지 않는다는 것, 질문하는 자를 미워하지도 않고 심지어 노리개 삼아 실컷 웃고 떠든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내가 경멸하는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런 감각을 나는 사람에게서 찾고자 한다-내 속의 어리석은 마음이 끝없이 나를 설득하려 한다.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나와 같은 이러한 감각을 지녔으리라 믿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내 방식의 편견이다.

 

3 고귀함과 비속

비속한 인간의 특징은 자신의 이익이 위협당하지 않을까 늘 주시한다는 점, 그리고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충동보다도 강하다는 점이다. 여러 충동 때문에 목적에 맞지 않는 불리한 행동으로 이끌리지 않으려는 것-이것이 비속한 인간의 지혜이자 자존심이다.

---> 극우 꼴통의 특징과 상통한다. 그들만의 지혜이자 자존심... 늘 그런 부류도 존재해왔다.

(고귀한 인간, 동물)

진실로 자신의 충동에 따르며, 그 최상의 순간에 이성을 멈추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어 제 자식을 지키고 교미 시기에는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암컷을 찾아 나서는 동물들은 위험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4. 종족보존

 

5. 무조건적 의무

[180]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고자 하기 때문에 우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조건 신뢰할 필요를 느낀다. 그리하여 무언가 궁극적이며 논의를 초월한 숭고한 율법을 근거로 자신을 그러한 것의 봉사자나 도구로서 느끼고 자청하려는 것이다.

6. 품위상실

명상은 그 형식적인 품위를 확실히 상실했다. 사람들은 명상하는 인간의 엄숙하고도 점잔 빼는 태도를 비웃으려 한다. 옛날과 같은 현자를 사람들은 더 이상 참고 인정해 주지 못하게 된 듯하다. 우리는 몹시 성급하게 생각한다.

 

[181]

심지어 사상이 찾아왔을’-한 발로든 두 발로든-때에는 길 위에라도 멈춰 서 몇 시간이고 생각에 잠겼다. 이것이 그 일에 어울리는품위 있는 태도였다!

7. 근면한 연구자들을 위한 몇 마디

[182]

바로 과학은 행동의 목표를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앞서 과학이 행동의 목표를 제거하고 파괴할 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8 무의식의 덕

어떤 인간이 스스로 의식하는 자신의 모든 성질-특히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도 명백하고 뚜렷하다고 스스로 전제하는 그런 성질-은 그에게 무의식적이거나 혹은 잘 인식되지 않은 여러 성질-그 섬세함 때문에 날카로운 관찰자의 눈에도 띄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듯 숨어 있는 그런 성질-과는 완전히 다른 발전법칙에 지배된다.

 

파충류의 비늘 위에 새겨진 정말한 조각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그것이 장식 혹은 무기라는 추측은 잘못된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것은 현미경을 통해서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을 장식이나 무기라고 여길 만한 다른 종류의 동물들은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든 예리한 눈이 없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도덕적 자질, 특히 눈에 보인다고 믿어지는 자질은 그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완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자질-그것은 타인에 대한 장식도 무기도 되지 않는다-은 또 그 자신의 길을 걷는다.

 

9 우리의 분출 (주목구절)

[183]

많은 개인의 경우처럼 많은 시대의 경우에도 이러저러한 재능, 이러저러한 덕이 부족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혹시 기다릴 여유가 있다면 손자나 증손자 대까지 한번 기다려 봐라. 그러면 그들은 할아버지 안에 있었지만, 할아버지 자신은 미처 몰랐던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는 경우도 자주 있다. 아버지는 자식을 얻은 뒤에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비밀 정원이나 밭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분출할 때를 기다리며 성장해 가는 활화산과 같다. 다만 이 분출의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조차도.

 

10 일종의 격세유전

나는 어떤 시대의 비범한 인간들을, 가능하면 과거의 문화와 그 힘에서 갑자기 솟아난 새로운 싹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한 민족과 그 풍습의 격세유전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낡은 충동으로부터 새로운 싹이 출현하는 것은 특히 한 민족의 오래오래 보존된 가계나 계급에서다. 이에 반하여 종족과 습관과 가치평가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곳에서는 이러한 격세유전이 발생할 확률이 극히 낮다.

 

11 의식

[184]

의식은 유기체에서 가장 최종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따라서 가장 미완성이고 무력한 부분이다.

 

하나의 기능은 그것이 형성되어 성숙하기 전에는 유기체에게 위험하다. 그러므로 그것이 오랫동안 학대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리하여 의식은 지독하게 학대를 받게 된다.

 

인간은 의식을 이미 소유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획득하는 데에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한 사정에는 변함이 없다. 지혜를 자기 몸에 동화시켜 본능으로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새로이 점진적으로 인간의 눈에 들어온 것으로서 아직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은 과제이다.

 

12 학문의 목표에 대하여

[185]

뭐라 했는가? 학문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에게 되도록 많은 쾌락과 초소한의 불쾌를 주는데 있다고? 그러나 가령 쾌락과 불쾌가 한 개의 끈으로 이어져 있어서 한쪽을 되도록 많이 가지려는 자는 다른 한쪽도 되도록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늘을 찌를 듯한 환호를 욕심내는 자는 또한 죽을 만큼의 비애도 각오해야 할 수 밖에 없다면 어찌될 것인가! 실제로 그러할 것이 틀림없다.

---> 그래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늘 함께 붙어있다. 슬프게도

 

13 권력 감정에 대하여

[186]

기쁨이나 고통을 줌으로써 우리는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뿐이다. 먼저 우리의 권력을 좀 더 느끼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고통을 준다. 쾌락보다는 항상 원인을 묻는다. 그러나 쾌락은 자기만족에 그칠 뿐, 뒤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할 때는 기쁨을 줄 때만큼의 쾌감, 그토록 순수한 쾌감이 거의 없다. 그것은 아직 우리에게 권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이거나, 또는 이 부족함에 진력이 났다는 표시이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권력에 새로운 위험과 불안을 가져오며, 우리의 시야를 복수, 조롱, 형벌, 실패의 예측으로 어둡게 한다. 단 권력 감정이 가장 민감하고 가장 탐욕스런 인간에 한하여,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권력의 인장을 찍는 것은 유쾌한 일일 것이다.

 

[187]

별다른 긍지도, 원대한 정복에 대한 희망도 없는 사람에게는 동정이 가장 쾌적한 감정이다. 그들에게는 손쉬운 획득물-모든 번민하는 사람-이 매력적인 것이다. 여기서는 보통 창녀의 덕이라고 불리는 동정이 인기가 높다.

 

14 사랑이라 불리는 모든 것

소유욕과 사랑, 이 두 단어는 우리에게 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 같은 충동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즉 한쪽은 이미 소유한 자- 그 소유의 충동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고, 이제는 그 소유물을 보살피는 위치에 있는 자 -의 관점에서 폄하되는 호칭이며, 다른 한쪽은 만족에 이르지 못하고 갈망하는 자의 관점에서 당연히 선한 것으로 찬양되는 이름일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기한 것을 구하려는 저 모든 충동 역시 그러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낡은 것, 확실히 소유하고 있는 것에 점차 권태를 느끼며 다시 다른 것에 손길을 뻗친다.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그곳에서 3개월 정도 생활한 뒤에는 더 이상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 먼 해변이 우리의 소유욕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소유물은 소유됨으로써 대개 시시해진다.

 

[188]

소유의 충동이 가장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이성 간의 사랑에서다. 사랑하는 자는 상대를 무조건 독점하고자 한다. 그는 상대의 마음과 육체에 대한 절대권을 요구한다. 자기 혼자만 사랑받기를 원하며, 상대에게 최고의 존재로 임하려 들고, 상대를 지배하려 한다. 이것이 하나의 귀중품과 행복과 쾌락에 사로잡혀 그 밖의 모든 세상을 배제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또 사랑하는 자가 다른 모든 연적들을 몰락시키고 실패하게 하여 마치 모든 정복자와 착취자 중에서도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이기주의자처럼 자신의 보물을 지키는 용이 되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결국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하고, 무가치하게 여겨져 어떠한 의생도 치를 수 있고, 모든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슨 이익도 무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성애의 이런 난폭한 소유욕이나 부정이 모든 시대에 걸쳐 그토록 찬미되고 신성화되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사람들이 이러한 성애로부터 에고이즘의 반대라고 생각되는 사랑의 개념을 끌어낸다.-사랑은 분명 에고이즘의 가장 솔직한 표현일텐데-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5 멀리서

[189]

이 산은 그것이 군림하는 지방 전체를 온갖 방법으로 매력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16 다리를 건너서

자기감정에 대하여 수치스러워하는 사람들과 사귈 때에는 위장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상냥하고 달콤하거나 또는 몽상적이고 고조된 감정을 지적당하면, 그것을 알아챈 사람에게 갑자기 증오심을 품기 때문이다. 마치 소중한 비밀을 들킨 것처럼 말이다.

 

17 빈곤함을 그럴듯하게 하다.

[190]

현명한 정원사의 솜씨는 이렇다. 그는 정원의 보잘 것 없는 물줄기를 분수대에 있는 님프 상의 팔에 연결시킴으로써 제법 그럴듯하게 활용할 줄 안다. 세상에 그와 똑같은 님프 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가 있을까?

 

19 (주목구절)

[191]

하늘높이 자라려는 나무가 과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겪지 않고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불이익과 반대, 증오, 질투, 의심, 냉혹, 탐욕, 횡포 등등, 덕의 위대한 성장에 거의 반드시 필요한, 저 알맞은 환경의 구성 성분이 아닐까? 약한 천성의 인간을 쓰러뜨리는 독은 강자에게는 강장제이며, 강자는 또한 그것을 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 악은 강자에게는 강장제다. 위대한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악. 선도 알아야 하지만 악도 알아야 한다. 여러 가지의 감정을 다 경험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그 감정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타인의 악의 감정을 생각해봐야 한다. 위대한 성장은 그러한 통찰에서 오는 것이다.

 

21 사심 없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192]

여러 덕이 칭송될 때 실제로 칭송되는 것은 결국 덕의 도구적 성질이며, 각 개체의 어떠한 이익에도 제약당하지 않는 맹목적인, 모든 미덕에 내포되어 있는 충동이다. 요컨대 그것은 개인을 전체의 기능으로 탈바꿈시키는 대부분의 미덕에서의 비이성적인 충동이다. 미덕에 대한 찬미는 대부분 개인에게 유해할 것에 대한 찬미이다. 인간으로부터 그 가장 고귀한 자기애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상의 자주적 능력을 앗아가는 충동에 대한 찬양인 것이다.

 

물론 교육을 위해 또는 여러 유덕한 관습을 확립하기 위해, 사람들은 미덕과 개인적 이익 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미덕의 효과를 나열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밀접한 관계는 존재한다. 예를 들면 무조건적인 근면, 이 전형적인 도구적 미덕은 부와 명예에 이르는 길로서 권태와 정열에 대한 특효약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약의 위험성, 그것도 치명적인 위험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22 국왕의 하루 일정

[194]

몇몇 인물을 맞아들일 예정이다(인물! 그중 하나인 늙고 오만한 개구리가 이 단어를 듣는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 이러겠지. ‘나는 인물 따위가 아니다. 언제나 사물 자체이지’) 그리고 배알은 누구나 지겨워할 만큼 오래오래 길게 이어질 것이다.

 

자기 집 문에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은 나에게 존경을 바칠 테지만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나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라고 써 붙인 어느 시인의 일화를 이야기해야 할 이유가 충분할 정도로, 이는 그야말로 무례한 것을 예의바르게 말한 예이다. 이 시인은 무례를 선택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그의 시가 시인 자신보다도 훨씬 뛰어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더욱 많은 시를 지어서 자신을 되도록 세상에서 떨어져 있는 편이 좋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예의바른 무례함의 의미이다.

 

23 부패의 징후

[195]

어디에서든 부패가 생기자마자 곧 여러 가지 미신이 맹위를 떨치게 되고, 그에 비해 그 민족 본디의 보편적 신앙은 색이 바래서 무력해진다. 이윽고 미신은 이류 자유사상이 된다. 미신을 좇는 자는, 기분 내키는 형식이나 방식을 선택하며 또 그런 선택의 권리를 스스로 허용한다.

 

미신적인 인간은 종교적인 인간에 비교할 때 훨씬 인격적이다. 따라서 미신적인 사회는, 많은 개인과 개인적인 것에 대한 긍정이 이미 존재하는 사회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신은 언제나 신앙에 대한 진보로서, 지성이 더욱 그 권리를 주장하려고 하는 표지처럼 보인다. 이때 낡은 종교, 종교심의 숭배자들은 부패를 슬퍼한다. 그들은 과거에 언어 용법까지 규정해 더없이 훌륭한 자유사상가마저 미신적 존재라고 비방해 용서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미신이 계몽의 징조임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둘째로 사람들은 부패로 찌든 사회는 느슨해진다고 비난한다.

 

[196]

셋째로 사람들은 미신과 이완의 비난에 대한 변호로서, 그러한 부패의 시대에 대하여 보통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그 시대가 더 온정이 있고 낡은 신앙이 존재한 더욱 강력했던 시대와 비교하면 잔혹함이 대단히 줄었다고.

 

넷째로 도덕이 땅에 떨어지면저 폭군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출현한다. 이러한 자들은 개체의 선구자들로서 이른바 개체의 조숙한 첫아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열매 중의 열매는 노랗게 익어 민족이라는 나무에 붙어 늘어진다. 그리고 다만 이 열매만을 위하여 이 나무는 존재한다.

 

도덕의 부패가 가장 심해지고 또한 동시에 여러 종류의 폭군들이 벌이는 투쟁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최후의 독재자인 카이사르가 나타난다. 그는 독재권을 둘러싼 투쟁의 피로가 극도에 이른 그때, 그 피로를 잘 이용해서 투쟁을 끝맺는다. 그러한 시대에는 통상적으로 개인이 카이사르를 위한 것도, 카이사르에 의한 것도 아니다. 설령 최고의 문화인들이 자기를 카이사르의 작품이라 말함으로써 그에게 아부하더라도 말이다. 진실은 문화인들이 외부로부터의 안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내면에 불안과 고생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197]

부패의 시대는 과실이 나무로부터 떨어지는 시대이다.

 

부패라는 것은 한 민족의 가을에 대한 비방에 지나지 않는다.

 

24 여러 가지 불만

약하디 약한, 이른바 여성적인 불평가들은 삶을 미화하고 심화하는 데 온 힘을 쏟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다. 강한 불평가들, 비유하자면 남성적인 불평가들은 삶을 개선하고 안정화하는 데 온 힘을 쏟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전자는 자주 기만을 당하고 약간의 도취, 몽상에 기대어 안주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결코 만족하지 못하며 자신의 불만을 해소할 수 없음을 고민하다는 점에서 나약함과 여성적인 점을 내보인다. 게다가 그들은 대체로 진정제와 마취제 같은 위안을 만들어 내는 일당의 후원자이다.

 

29 겹거짓말쟁이들

[200]

즉 사람들이 그 법칙이 존속해야 하는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법칙에 익숙하며 더는 그것이 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일반화된 모든 도덕이나 종교에서도 언제나 재연되어 왔다. 모든 관습의 근거와 목적은 항상 거짓말로서, 이는 혹자들이 이러한 관습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근거와 목적을 물을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이 점에서 모든 시대의 보수주의자들은 철저하게 불성실하다. 그들은 뒤늦게 거짓말을 보탠다.

 

31 상업과 귀족

[201]

읽거나 쓰는 기술처럼, 팔고 사는 일은 이제 일상사로 취급되고 있다. 예컨대 상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랄 것 없이 그런 일을 두고두고 되풀이해 매일 이 기술을 닦는다. 마치 옛날에 인류가 수렵생활을 할 때, 누구나가 사냥꾼이었고 매일 사냥기술을 연마했던 것과 같다. 그 시대에 사냥은 일상사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권력자나 귀족의 특권이 되었고, 그에 따라 일상다반사의 성격을 상실했다. 사냥은 필요한 일이 아니라 변덕스럽고 사치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매매도 언젠가 그런 모습이 될지 모른다.

 

32 바람직하지 않은 제자

이 두 청년은 대책 없는 자들이다예전의 소크라테스처럼 청년들을 타락시켰던 어느 철학자는 불쾌한 기분으로 부르짖는다. “그들은 나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제자이다. 이 중 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하질 못한다. 또 한 사람은 어떤 일에나 적당히 하자고 말한다. 그들이 나의 가르침을 이해했다면, 첫 번째 제자는 너무나도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사고방식은 전투적인 혼을, 고통을 주려는 의지를, 거부의 즐거움을, 견고한 피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자는 결국 외상이나 내상 때문에 쇠약해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제자는 그가 대변하는 여러 사항 중 중용을 골라 그 모든 사항을 범용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이런 제자는 적에게나 주고 싶다.

 

36 유언

[203]

티베리우스 황제는 침묵을 지키며 죽었다. 모든 번뇌하는 이들 중 가장 심하게 번뇌했던 이 사람은 배우가 아니라 진실된 자였다. 마지막 순간에 그의 뇌리를 스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 그것은 완만한 죽음이다. 그런데 이 바보같은 나는 그토록 많은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나는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42 일과 권태

[206]

보수를 위하여 일을 구한다는 점은 문명국가에 사는 거의 모든 인간에게 똑같다. 그들 모두에게 일은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별로 주의 깊게 일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저 그 일이 충분한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충분하다.

 

그런데 일의 기쁨 없이 노동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람도 있다. 골라잡기 좋아하고 쉽게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겐 일 그 자체가 최대의 수익이 아니라면 충분한 수익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렇게 독특한 인종에 속하는 이가 여러 부류의 예술가와 명상가이다. 또한 일생을 사냥, 여행, 연애, 모험에 소비하는 한가로운 사람들도 그러하다. 이들 모두는 그것이 쾌락과 관계될 때만 그리고 필요할 때만 육체적 고통이나 힘들고 가혹한 일을 감당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철저히 게으르다. 설령 빈곤, 불명예, 건강이나 생명의 위험 등이 이 게으름에 연결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은 권태보다도, 차라리 즐거움이 없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들의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권태가 필요하다. 사상가에게 또 모든 독창적인 정신에, 권태는 그 순조로운 항해나 즐거운 바람에 앞선 유쾌하지 못한 마음의 잔잔한 바다이다. 그들은 그것을 견디어 내야 한다.

---> 권태를 견뎌내는 일, 그래야 일도 순조롭게 성공한다. 내가 견뎌내야 할 권태...

 

47 정열의 억압에 관하여

[209]

오랫동안 끊임없이 정열의 표현을 삼간다면, 이를테면 그 표현을 무언가 저급한 패거리, 저속하고 서민적이며 농민 같은 계층에나 맡겨야 할 일로 생각한다면, 정열 그 자체를 억압하려는 게 아니고 정열적인 말이나 태도만을 억압한다면, 그 결과 우리는 본디 의도하지 않았던 바도 동시에 달성하게 된다. 즉 정열 그 자체의 억압을 적어도 정열의 쇠약과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교훈적인 예로서 루이 14세의 궁정과 그 궁정에 종속된 모두가 체험한 것을 들 수 있다. 표현의 억압을 계승하는 시대에는 정열이 줄어든 대신에 그 자리를 풍류적이고 천박하며 유희적인 것이 메우게 되었다.

 

48 고통의 지식

[210]

육체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 현대인은 누구든 예외없이 육체적 결함이나 질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자기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능하면서도 동시에 공상가이다. 공포의 시대(가장 길었던 시대)에 비하면 말이다. 그 시대에는 개개인이 폭력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지켜야만 했으며, 또 이 목적을 위해 스스로 폭력적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그 시대에 인간은 끊임없는 육체적 고통과 결핍으로써 충분히 단련되었다. 인간은 자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잔혹이나 더 나아가 스스로 부과한 고통의 훈련을 통해 필요한 자기 보존의 사단을 얻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자기 주변 사람들도 고통에 견디게끔 교육했다. 즐겨 남에게 고통을 가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 타인의 육체에 일으키는 고통을 보면서도, 자신의 안전 말고는 다른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211]

염세철학과 극심한 민감함-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진정한 현재의 고통으로 생각되지만-에 대한 처방은 당연히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이 처방은 너무나 잔혹하게 여겨지고, 그 자체가 징후-사람들로 하여금 지금이야말로 생존은 악한 것이다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징후-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 ‘고통에 대한 처방은 고통이다.

 

 

 

2

 

57 리얼리스트들에게

[221]

너희 냉철한 자들아 너희는 정열이나 환상에 대해 갑옷을 입은 것 같이 느끼며, 자기의 공허함을 자랑거리와 장신구로 삼고 싶어 한다. 너희는 스스로 리얼리스트라 칭하면서, 이 세계는 너희의 눈에 비치는 모습과 똑같은 것이라고 암시한다. 너희 앞에서만 현실은 베일을 벗으며, 너희 자신은 그 현실의 최고의 부분이라고 암시한다. , 너희 사랑스런 자이스(Sais)의 신상이여! 그러나 비록 완전히 껍데기를 벗어젖혔다 해도, 너희는 역시 물고기들 못지않게 매우 정열적인 어두운 존재이며, 여전히 사랑에 빠진 예술가와 유사한 존재가 아닌가?

 

예를 들면 너희의 현실에 대한 애착, 오오! 그것은 오래된, 참으로 오래된 사랑이다.

 

58 오로지 창조자로서!

[222]

내가 이제까지 가장 노력했고, 지금이라도 가장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물이 무엇인가 하는 점보다는 사물이 무엇이라 불리는가 하는 점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통찰하는 일이다.

 

59 우리 예술가!

여성을 사랑할 때 우리는 걸핏하면 자연에 대해서 증오를 품는다. 모든 여성을 지배하는 일체의 꺼림직한 자연성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60 여성들과 원격작용

[223]

사방팔방에서 천지가 울부짖고 위협하고 비명을 지르고 절규하며 나에게 덤벼드는데, 한편 깊고 깊은 밑바닥에서는 늙은 땅을 흔드는 자(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가 마치 울부짖는 황소처럼 불분명한 소리로 그 아리아를 노래하고 있다. 또한 그는 노래와 아울러, 땅을 흔드는 자 특유의 박자에 발장단을 맞추고 있다.

 

[224]

이 소음이 나를 몽상가로 만들어 낸 것이다. 모든 커다란 소음은 우리로 하여금 행복을 조용한 먼 곳에서 찾게끔 한다. 남자는 자신의 소음 한가운데, 온갖 구상이나 기획의 격랑 한 가운데 있을 때, 조용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자기의 곁을 미끄러져 가는 모습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행복과 은둔을 동경하게 된다. 그 존재가 바로 여성이다.

 

남자는 그 여성 곁에 자기의 보다 좋은 자아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조용한 장소에서는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란스러움마저도 죽음과 같은 고요로 변하고, 인생 자체가 인생을 초월한 꿈이 된다고. 그러나! 그러나! 나의 고귀한 몽상가여, 가장 아름다운 범선에서도 많은 잡음이 있으며, 또한 유감스럽게도 온갖 잡다하고 가련한 소음이 있다! 여성들의 매력과 그 가장 강력한 작용은, 철학자의 말을 빌려 말하면 원격작용인 것이다. 그러나 그 작용에는 우선 필요한 것이 있다.-거리라는 것이

 

68 의지와 승낙

[226]

사람들이 한 청년을 현자 앞에 데리고 와서 말했다. “보십시오. 여자 때문에 타락한 자입니다.” 그러자 현자는 고개를 흔들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한 것은 남자다그는 말했다. ‘여자를 타락시키는 것이야말로 남자다. 여자의 모든 결함을 남자가 보상하고 고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멋대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여성은 그 이미지를 흉내 내어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

---> 여성은 그 이미지에 흉내내어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흉내를 낸 것이지 그것이 그 여성은 아니다.

 

[226]

군중속의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여자들을 더욱더 잘 교육시켜야만 하오현자는 말했다. ‘오히려 남자들을 더 잘 교육시켜야 한다.’

 

70 남자를 지배하는 여성

[227]

우리는 갑자기 이 세상 어딘가에, 고귀하고 영웅적이며 왕자다운 혼을 가진 여성, 당당한 응수와 결의와 희생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여성, 따라서 남성들도 지배할 수 있는 여성이-그 내부에 남성의 가장 좋은 요소가 성별을 초월하여 재현되어 있는 이상적인 여성-존재함을 믿게 된다.

---> 여자 안의 남성 에너지, 남자 안의 여성 에너지 이야기

 

71 여성의 정결에 관하여

귀족가문의 여성교육에서는 실로 놀라울 만치 당치도 않은 것들이 다루어진다. 아니 아마 이 이상 모순된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은 그 여성들을 성적으로 되도록 무지하도록 교육한다.

 

[228]

그런데 그들은 결혼과 함께 마치 무서운 번개에 맞은 것처럼 그 점에 관한 현실과 지식의 한복판으로 처넣어진다. 그것도 그들의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상대에 이끌려서. 그녀들은 사랑과 수치의 모순된 현장을 몸으로 맛보는 것이다. 아니! 황홀, 몸을 내맡김, 의무, 연민, 게다가 예상도 못했던 신과 동물의 가까운 관계에 접했을 때의 경악,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을 단숨에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젊은 아내들은 피상적이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녀들에게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일종의 뻔뻔스러움으로 치장하는 것이다. 아내들은 남편들 자기들 명예의 의문부호로 느끼고, 지식들을 이에 대한 변명, 또는 속죄로 여긴다.

 

72 어머니들

동물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인간과는 다르게 생각한다. 동물에게 암컷은 생산적인 존재이다. 그들에게 부성애란 없다. 단지 사랑하는 이의 자식들에게 대한 사랑과 같은 것, 또 그 자식들에 대한 친밀감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암컷은 자식들을 통해 자신의 지배욕을 만족시키려 한다. 자식들은 재산이며, 일거리이며, 말 상대가 되는 거리낌 없는 존재인 셈이다. 이 모두를 종합한 것이 모성애이다. 그것은 예술가가 자기 작품에 쏟는 사랑과 비교할 만하다. 임신은 여성을 더욱 온화하게, 더욱 기대감에 부풀게, 더욱 조심스럽게, 더욱 순종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임신도 여성적인 성격에 가까운 명상적인 성격을 낳는다. 그것은 남성성을 지닌 어머니이다.-그리고 동물의 경우 아름다운 성은 수컷이다.

 

74 실패자들

[229]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 대하면 불안에 빠져 침착성을 잃음으로써 말이 많아지는 여성들은 늘 성공을 잡으려다 놓친다. 남성들은 조용하고 느긋한 우아함에 가장 잘 유혹되기 때문이다.

 

80 예술과 자연

[234]

무엇이 그리스 비극시인의 근면, 창의, 경쟁심을 가장 많이 부채질 했는지 살펴보라. 감동으로 관중을 사로잡으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아테네인은 아름다운 이야기 쪽에 귀 기울이기 위해 극장에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소포클레스가 노렸던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 쪽이었다. 나의 이러한 이단적인 견해를 관대하게 용서하시라.

 

84 시의 기원에 관하여 (주목구절)

[237]

전달의 명료성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는, 그럼에도 모든 유익한 합목적성을 바보 취급하듯이 자상 구석구석까지 뻗어 갔으며 지금도 뻗어 가고 있는 언어의 운율화는! 시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비합리성은 너희공리론자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이익 자체를 단호히 물리치료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을 고양시키고 인간에게 도덕성과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운율이 있는 소리가 더욱 멀리까지 들리고, 운율 있는 기도 문구가 신의 귓가에 더 가깝게 올라간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신이 음악을 들을 때 경험하는 근원적 압도감에서 이익을 얻고자 했다. 리듬은 말하자면 하나의 강제력이다.

 

[238]

철학자들이 존재하기 휠씬 전부터 사람들은 음악성이 지닌 격정을 가라앉히는 힘, 영혼을 정화하는 힘, 마음의 광란을 진정시키는 힘을 믿었다. 바로 음악의 율동적인 속성에서 나오는 힘을, 영혼의 적절한 긴장과 조화가 상실되었을 때 인간은 노래 부르는 사람의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만 했다. 그것이 이 의술의 처방이었다. 이 방법으로 테르판드로스는 소요를 가라앉혔으며, 엠페도클레스는 관인을 달랬다. 또한 다몬은 사랑에 빠져 수척해진 젊은이를 회복시켰다. 이것은 또한 복수에 대한 열망으로 미쳐 버릴 정도였던 신에게도 사용된 치료법이었다.

 

어원상 선율(melos)은 진정제를 의미한다. 그 자체가 평온한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음악이 신에게조차 치료법으로 씌었다는 대목, 흥미롭다. 긴장과 이완을 조화롭게 시켜주는 운율, 시와 음악... 그래서 아이들이 음악으로 심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

[239]

전체적으로 보자면, 미신적이었던 옛날 인간종족에게 무릇 리듬보다 더 유익한 것이 있었겠는가? 리듬만 있으면 무엇이라도 완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법으로 어떤 일을 촉진하는 것 : 신의 출현, 근접, 경청을 강요하는 것, 미래를 자기 뜻대로 만드는 것 : 과도한 불안, 광기, 연민 또는 복수로부터 그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날뛰는 악령의 영혼조차도 해방시키는 것 등 뭐든지 할 수 있었다.

 

90 빛과 그림자

[243]

책이란 기록 같은 것들은 사상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상가는 책 속에 빛을 모은다. 그의 마음속에 번쩍였던 인식의 광선으로부터 재빨리 훔쳐 낸 빛을.

다른 사상가는 우리에게 그림자만을 줄 뿐이다. 낮 동안 그의 마음속에 쌓아 놓았던 것의 검은 색이나 회색 잔상을 재현하는 것이다.

---> 빛을 모은다. 탈무드를 읽는 유태인들도. 지혜의 조각이 곧 빛이고..... 나도 빛을 모으는 작가이고 싶다. 하지만 그림자의 잔상도 알아야 빛을 말 할 수 있다.

 

97 작가의 수다스러움에 관하여 (주목구절)

[247]

분노에서 나오는 수다스러움이 있다. 이것은 쇼펜하우어나 루터에게서 자주 접하게 된다. 칸트처럼 개념적 공식들의 풍부한 저장량 때문에 수다스럽게 되는 사람도 있다. 동일한 내용에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을 부여하는 기쁨으로 인한 수다스러움이 있다 .몽테뉴에게서 발견되는 수다스러움이다. 악의에 찬 인물들의 수다스러움도 있다. 현대의 저작을 읽는 자는 누구나 여기서 두 명의 작가를 떠올리리라. 좋은 말과 언어형식에 대한 쾌락으로부터 나오는 수다스러움, 이것은 괴테의 산문에서는 드문 것도 아니다. 감정의 소음과 혼란스러움과 깊은 쾌감을 느끼는 수다스러움도 있다. 이를테면 칼라일의 그것이다.

---> 작가들의 수다스러움을 재미있게 정의내렸다. 분노에서 나오는 수다스러움, 좋은 말과 언어형식에 대한 쾌락으로부터의 수다스러움, 그리고 감정의 소음과 혼란과 깊은 쾌감을 느끼는 수다스러움..... 나는 분노와 감정의 소음과 혼란?? 그리고 새로운 표현을 부여. 작가를 만날 때 그의 수다스러움을 나도 한번 관찰해 봐야겠다.

 

98 셰익스피어를 찬미하며

[247]

영혼의 독립성-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지나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은 그것을 위해 가장 친한 친구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 친구가 누구보다 명예로운 인간, 세계에 빛을 더해 주는 인물, 비길 데 없는 천재일지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위대한 영혼의 자유를 위협한다면 말이다.

 

99 쇼펜하우어의 제자들

[251]

이 철학의 신비적인 화려함이나 장관 전체만이 그를 이토록 매혹했던 것이 아니라-그것은 그저 칼리오스트로와 같은 인간을 매혹했으리라-이 철학자의 몸짓과 감정 하나하나가 그를 유혹했다.

 

예를 들면 바그너는 독일어의 붕괴(타락)에 격분한다는 점에서 쇼펜하우어적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점에서 그의 모방을 칭찬하려면 바그너의 문체 자체가 온갖 궤양과 종기로 뒤덮여 있어 그것을 본 쇼펜하우어를 격분시켰다는 사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

 

[251]

유대인에 대한 바그너의 증오는 쇼펜하우어적이다. 유대인의 가장 위대한 행위조차 바그너는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실로 그리스도교의 발명자가 아닌가! 그리스도교를 바람에 날려 흩어진 불교의 씨앗으로 해석하여, 가톨릭적 방식 및 감각과 잠시나마 화해하면서 유럽에 불교적 신기원을 마련해 보려는 바그너의 시도는 쇼펜하우어적이다.

 

[252]

바그너의 제자인 우리는 바그너가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하고 근본적인 것을 잃지 않는 한 그에게 신뢰를 남겨 두리라. 특히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하고 근본적인 것에 따라 스스로에게 신뢰를 남김으로써 우리는 그의 지적 변덕이나 경련을 비난하지 말자. 오히려 공정하게 고려하자. 바그너의 예술 같은 예술이 살아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특이한 영양이나 필수품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사상가로서 그가 종종 그렇게 잘못을 저절렀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의와 인내는 그의 본업이 아니다. 그의 삶은 그 자신을 통해 충분히 정당화되고 또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족하다. 우리 모두에게 인간이 되어라. 그리고 나를 따르지 마라. 차라리 너 자신을 따르라. 차라리 너 자신을!’ 이라고 외치는 것이 그의 삶이다.

 

[252](주목구절)

정열은 스토아주의 위선보다 낫다. 악에 대해서도 진솔한 것은 전통적인 도덕에 열중해 스스로를 잃는 것보다 아직은 낫다. 자유로운 인간은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유한 인간은 자연에 대해 수치이며 천상 또는 지상의 위안을 공유하지 못한다. 결국 자유로워지고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노력으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자유는 기적적인 선물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니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부분. 선도 봐야 하고 악도 봐야 한다. 인간은 악할 수도 선할 수도 있다. 자유의지다.

 

103 독일 음악에 대하여

[254]

만약 이러한 음악과 어울리는 인간을 상상하고자 한다면 베토벤을 떠올리면 된다. 예를 들면 테프릴체에서 베토벤이 괴테의 곁에 서 있던 모습을. 문화의 곁에 반야만, 귀족 곁에 있는 평민, 선하지만 선한 것 이상인 존재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선량한 사람, 예술가 옆에 서 있는 몽상가, 위안을 얻은 자 곁에 있는 위안을 얻고자 하는 자, 공정한 자 곁에 있는 과장하는 자, 수상쩍은 자, 우울하고 자학이 버릇된 자, 어리석을 만큼 환상에 빠진 자, 황홀에 넘쳐 불행한 자, 고지식하게 무모한 자, 불손하고 서투른 자, 한마디로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 이것이 괴테가 베토벤에 대해 느낀 바이며 그를 가리키는 말이다. 괴테, 그는 독일인들 중에 예외이다. 아직 그의 수준에 오른 음악은 발견되지 않았다.

 

106 매개자로서의 음악

[258]

개혁가는 대답했다. 나는 묘목이 나무가 되기를 원한다. 하나의 교설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되려면,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신봉을 받아야 한다. 그 나무가 그 묘목의 본성과 힘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폭풍, 회의, 벌레, 악의가 필요하다. 만일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그것은 베여 쓰러져도 상관없다. 그 편이 더 낫다. 그러나 새싹은 뿌리 채 뽑힐지언정 논박되지는 않는다.’

 

107 예술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인 감사

진실을 억지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우리를 구토와 자살로 이끌 것이다.

 

예술은 그러한 현상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눈과 손, 특히 좋은 양심을 제공한다. 우리는 잠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쉬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깔보며 예술적인 먼 곳으로부터 자기 자신에게 대해 웃고 슬퍼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인식의 정열 속에 숨어 있는 주인공과 광대를 발견해야만 한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어리석음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우리의 지혜에서 계속적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본질적으로 엄숙하고 심각한 인간이며, 인간이기보다는 오히려 저울추이다. 따라서 확실히 우리에게 광대의 방울달린 모자보다 더 쓸모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그것을 필요로 한다.

 

 

3

 

108 새로운 투쟁

[269]

붓다가 죽은 뒤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수 세기 동안 동굴 안에 그의 그림자를 안치했다. 거대하고 섬뜩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세상이기에 분명 앞으로도 수천 년에 걸쳐 신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온갖 동굴이 존재하리라. 그리고 우리는, 계속 신의 그림자를 정복해야만 한다.

---> 누구는 아직도 중세에 살고 누구는 근대에 살고 또 누구는 현대에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중첩된 시대 속에서 범벅되어 사는 것이다. 물론 각 시대의 시대정신이 있지만... 저마다 다른 방식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109 경계하자 (주목구절)

[269]

우주가 생명체라는 생각을 경계하자.

우주가 기계다라는 믿음도 경계하자.

 

리가 생존하고 있는 이 별의 질서는 하나의 예외이다. 그리고 이 질서와 그에 따라 제약된 상당 기간의 지속이, 예외 중의 예외인 유기체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 반해 이 세계의 전체적 성격은 영원한 카오스(혼돈)이다.

 

[270]

필연성의 결여라는 뜻의 혼돈이 아니라, 질서, 조직, 형식, , 지혜, 기타 모든 우리의 미적 인간성의 형용사, 즉 미적 신인동형론의 결여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혼돈이다.

 

우주의 운동이라는 음악상자 전체는 도저히 멜로디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시도라는 말조차 이미 그 가운데 비난의 의미를 포함한 의인화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우주를 비난하거나 칭찬할 수 있겠는가? 냉혹함이나 부조리, 또는 그 반대를 우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경계하자. 우주는 완전하지도 아름답지도 고귀하지도 않다. 또한 이러한 것을 중 어느 것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전혀 인간을 모방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떠한 미적, 도덕적 판단도 우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주는 자기보존본능을 비롯하여 다른 어떤 본능도 없다. 우주는 어떠한 법칙도 준수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그곳에는 단지 필연성만이 있을 뿐이다.

 

명령하는 자는 없다. 복종하는 자도 없다. 위반하는 자도 없다. 일단 그대가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연 또한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이라는 말은 목적의 세계와 비교될 때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삶과 반대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삶은 죽음의 한 형태, 그것도 매우 드문 한 형태이다.

 

세계가 영원히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경계하자. 영속적인 실체는 없다.

 

언제 우리는 순수하고 새로이 발견되었으며 새로 구제된 자연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을 자연화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 니체의 경계해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연 속에 법칙이 존재한다는 말도 경계하라고 하고......단지 필연성만 존재할 뿐.... 그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삶을 이해하고 죽음을 이해하는 척도다. 그리고 무지로부터 인간을 깨어나게 하는 통찰이다.

 

116 군집본능

[276]

도덕성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또한 인간의 충동과 행위에 대한 한 가치 평가 및 순위매김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가치평가와 순위는 항상 공동체와 집단이 필요로 하는 욕구의 표현이다. 이 공동체와 집단에 최고로 또는 두 번째 세 번째로 도움이 되는 것 그것이 모든 개인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제일의 기준으로 역시 고려되는 것이다.

 

118 호의

[277]

동정은 분명 전자의 형태이다. 즉 약한 것을 보았을 때 소유하려는 본능의 유쾌한 흥분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 강한 것약한 것은 상대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125 광인 (주목구절)

[281]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광장에 나와 나는 신을 찾노라고 계속 고함쳤다는 저 고아인의 이야기를 그대는 들은 적이 없는가. 마침 광장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어 없어지기라도 했나보군한 사람이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길을 잃어버렸다 보지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아니면 숨어 버렸단 말인가?’ 신은 우리를 겁내는가? 배를 타고 가 버렸단 말인가. 떠나 버렸단 말인가?' 그들은 떠들썩하게 소리치며 비웃었다.

광인은 그들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신이 어디로 사셨느냐고?’그는 소리쳤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주마. 우리가 신을 죽였다. 너희와 내가 말이다. 우리 모두가 그의 살해자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대낮에 등불을 밝힐 필요가 없을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이 소란 피우는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는가? 신의 사체가 부패되는 냄새가 나고 있지 않은가? 신도 역시 부패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우리가 그를 죽인 것이다.

 

[282]

여기에서 광인은 입을 다물고 청중을 둘러보았다. 그들 역시 입을 다물고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침내 그는 자기의 등불을 땅에 내동댕이쳤다. 등불은 산산조각 나고 불은 꺼져 버렸다. ‘나는 너무 일찍 왔다.’ 그는 계속 말했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도 중도에서 꾸물거리고 있다. 그것은 아직 인간의 귀에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번개와 뇌성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별빛에도 시간이 있어야 한다. 행위 역시 비록 완성된 것일지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이 행인은 아직 인간들에게는 가장 멀리 있는 별보다도 더욱 멀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런 짓을 했던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그 광인은 그날 여러 곳의 교회에 뛰어들어 자신의 신의 영혼 진혼곡을 불렀다고 한다. 교회 밖으로 끌려 나와 심문을 받았을 때 그는 오직 다음과 같은 말만 계속했다고 한다. ‘이 교회들이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이게 그 유명한 니체의 신은 죽었다와 광인이구나... 별빛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나에게도 니체를 만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128 기도의 가치

[284]

기도는 본디 자신의 사상이 전혀 없는 사람들, 영혼의 고양을 알지 못하거나 적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신성한 장소에서 또는 정숙과 일종의 위엄이 요구되는 삶의 모든 중대한 국면에서, 이런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크고 작은 모든 종교의 시도들은 지혜를 짜서 기도문을 처방했다. 기도는 오랜 시간 입술을 놀리는 기계적 움직임을 통해 손이나 발, 심지어 눈까지 고정된 자세로 있게 하며 기억을 위한 노력 역시 획일적으로 만든다.

---> 인문학의 승리

 

131 그리스도교와 자살

[285]

그리스도교는 그 성립 당시 인간이 품고 있던 자살에 대한 이상한 동경을 자기 권력의 지렛대로 이용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자살 가운데 오직 두 가지 형식만을 허용하였다. 디 두 가지 자살은 최고의 존엄과 최고의 희망으로 꾸며졌고, 나머지 자살은 놀라운 방식으로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오직 순교와, 고행자의 완만한 자살인 금욕만이 허용되었다.

----> 자살은 인간 자신이 자신의 삶에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결단이 아닐까? 종교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다.

134 희생자인 염세주의자들(주목 풍경, 상상하고픈)

[286]

인생에 대한 깊은 불만이 만연한 곳에서는, 오랫동안 한 민족이 저질러 온 식생활의 커다란 과오의 영향이 분명히 나타난다.

 

근대 유럽에서 나타나는 불만은 우리 이전 시대, 중세 전체에 걸쳐 게르만족 성향이 유럽에 미쳤던 영향으로 조상들이 음주를 계속하게 된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중세는 유럽이 알코올중독에 빠져든 시기를 의미한다. 독일인들의 인생 불만은 본질적으로는 독일 주택의 숨막힐 듯한 지하 술 창고 공기와 거실에서 나오는 난로 연기의 독기로 인해 악화된 겨울 질병이다.

---> 그래서 환경을 쾌적하게 하면 생활도 바뀐다.

 

135 죄의 기원

[286]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는 곳 도는 지배했던 곳 어디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죄, 이 죄는 유대인의 감정이며 유대인 특유의 발명품이다. 모든 그리스도교적 도덕성의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보면, 그리스도교의 목적은 사실 전 세계를 유대인화하는 것이었다.

 

136 선택된 민족

[287]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모든 민족 중에서 선택된 민족이라고 느끼는데, 왜냐하면 많은 민족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도덕적 천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인간을 더 심하게 경멸하는 능력이 있다.)

 

148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곳

[292]

교회의 타락이 일반적으로 극에 달했던 시대에 가장 적게 타락했던 교회가 독일의 교회였다. 그래서 이 땅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이며, 이는 타락의 징조조차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즉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루터 시대의 독일인들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교이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그리스도교 문화는 이미 수많은 화려한 꽃봉오리를 피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직 필요한 것은 하룻밤의 시간뿐이었다. 그러나 이 밤이 모든 것을 끝장내는 폭풍우를 몰고 왔다.

 

151 종교기원에 관하여

[293]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것처럼, 형이상학적 요구는 종교 기원이 아니다.

 

다만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종교적인 것이 아닌 단순한 형이상학적 세계일뿐이다. 어쨌든 태고시대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하는 가정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던 것은 어떤 충동이나 욕구가 아닌, 특정한 자연현상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며 지성의 곤경이다.

 

162 에고이즘

[296]

에고이즘은 감정의 원근법이다. 가까운 것일수록 크고 중요해 보이며, 반대로 사물이 멀어짐에 다라 그 크기나 중요성은 줄어든다.

 

165 체념한 자의 행복

[296] (공감구절)

만일 누가 철저하게 오랫동안 어떤 것을 체념해 오다가 우연히 그것과 다시 만난다면 그는 그것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느낄 것이다. 발견 안에는 얼마나 많은 행복이 있는가? 똑같은 햇볕 아래 너무 오랫동안 누워 있는 뱀보다는 더욱 현명해지자.

 

175 웅변에 대하여

[299]

지금까지 누가 가장 설득력 있는 웅변을 했는가? 바로북 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왕들이 그들을 장악하고 있는 한, 그들은 여전히 가장 훌륭한 웅변가이자 민중 선동가로 남는다.

---> 그래서 스승님이 북치는 사람에서 변화 선동가를 따 온 것인가?

 

182 고독 속에서

[300]

홀로 사는 사람들은 크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또 글에서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공허한 울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메아리의 요정이 들려주는 비판을, 게다가 고독 속에서는 모든 목소리가 이상하게 울린다.

---> 그래서 미친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므로.... 몰입하면 고독하지 않다.

 

196 우리 청각의 한계

[302]

우리의 귀는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듣는다.

----> 자기 스키마에 따라 보고 듣고 느끼고.....ㅋㅋ

 

197 그러니까 조심하라!

[303]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 이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기를 즐기는 일도 없다.-그 비밀의 내용과 더불어

---> 그러니까 정말 조심해야한다. 비밀은 아예 발설금지.

 

205 필요

[304]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는 대개 발명의 결과일 뿐이다.

---> ㅎㅎㅎ 잼있다. 발명의 결과는 필요다..... 소비는 생산을 촉구하고, 아니 생산이 소비를 촉구하는.....

 

206 비가 올 때

비가 오고 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의 많은 근심을 껴안은 채, 그 근심들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함께 떼 지어 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몰래 다른 사람을 해치고, 날씨가 나빠도 그 자신만은 비참한 만족감을 누리려 한다. 그것, 바로 그것이 가난한 자들의 가난함이다.

 

207 질투심 많은 자

그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라자, 그는 아이에게도 질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아이가 될 수 없으므로.

 

216 목소리의 위험

[306]

목소리가 큰 자는 섬세한 것을 생각할 능력이 거의 없다.

 

218 나의 반감

나는 어떤 효과를 내기 위해 폭탄처럼 작렬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곁에 있을 때 항상, 갑자기 청력이나 그 이상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된다.

 

239 기쁨을 모르는 인간

[309]

단 한사람의 기쁨을 모르는 인간만으로도 온 가정에 구름 낀 하늘과 끊임없는 불쾌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반면에 행복은 그렇게 전염성이 강한 병이 아니다. 왜 일까?

---> 왜 일까? 악은 더 잘 퍼지고 행복은 전염성이 약하다. 왜일까? 나도 궁금하다.

 

265 궁금적 의심

[314]

그러면 결국 인간의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논박할 수 없는 인간의 오류일 뿐이다.

 

268 무엇이 사람을 영웅적으로 만드는가?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향하여 동시에 나아가는 것이

 

270 너의 양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 악하던 선하던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양심이다.

 

273 너는 어떤 자를 악하다고 부르는가?

[315]

항상 남에게 모욕을 주려는 자를.

----> 나는 오늘 잔소리를 하며 아이와 남편에게 살짝 모욕을 주었다. 그러면 나는 악한 자다. ㅋㅋㅋ 그들의 자유의지에 맡기고 그들을 부끄럽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게 인간적이다..에휴~

어렵다. 각자 자신의 자유가 있으니....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부끄러워 하고 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다.

 

274 네게 가장 인간적인 행위란 무엇인가

누구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

----> 이것은 바로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사람 스스로 느끼고 발견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그의 상태에만 공감하기

 

275 무엇이 자유의 징표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4

성 자누아리우스

 

그대가 불꽃의 창을 휘둘러

내 영혼의 얼음을 깨뜨리며,

내 영혼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지고한 희망의 바다로 서둘러 갖다.

더 밝고, 더 건강하게

사랑으로 충만한 운명 속에서 자유롭게.

그대의 기적을 내 영혼은 찬양하노라.

더없이 아름다운 1월이여!

---제노바에서, 18821

---> 성 자누아리우스의 마른 피가 어느 축제일, 기적이 일어나 액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니체가 노골적으로 빗대어... 니체 자신의 피가 다시 물로 변하고 있다는...

 

276 새해에

[323]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아직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야만 하고, 나는 아직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278 죽음에 대한 사상

[324]

그것은 언제나 이민선이 떠나는 바로 그 순간과도 같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 할 말이 많다. 그러나 시간은 임박했으며, 큰 바다와 그 황량한 침묵은 초조해하며 이러한 소란 두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탐욕스럽게 그들의 먹이를 갈망하여, 당장이라도 손에 넣으려는 듯이!

 

279 별들의 우정

[325]

우리는 친구였으나 점점 서먹서먹한 사이가 돼 버렸다. 그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그것을 부끄럽다는 듯 우리 자신들에게서 숨기거나 애매하게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저마다목표와 진로가 있는 두 척의 배다. -

 

280 지식 추구자를 위한 건물(주목구절-나와 니체가 통하는 구절)

[326]

아마도 곧 우리는 큰 도시에 특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색을 위한 조용하고 넓게 펼쳐진 장소이다. 날씨가 안 좋거나 햇볕이 지나치다 싶은 때를 위해 높은 천장과 길게 뻗은 회랑이 있는 곳, 호객 소리나 마차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곳, 매우 숙연한 분위기 때문에 성직자조차도 큰 소리로 기도할 수 없는 곳, 요컨대 전체적으로 자기성찰과 속세 이탈의 숭고함을 표현하는 건물과 환경이다.

----> 주변 환경이 나를 몰아에 빠지게 한다. 주변환경이 나를 변화시킨다. 그래서 주변환경이 중요하다. 그래서 빽빽한 아파트 숲에서만 살고 싶지 않다. 경주 감은사지터, 황룡사터, 그리고 태국 아유타야의 사원터, 인도 타지마할.... 넓게 펼쳐져 사색을 부르는 공간이다. 아름다움이 있는 공간이다. ....어디에서 살고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어른들은 아이들의 사색적 환경은 고려하지 않는걸까? 일명, 교육환경이라는 것. 그것이 무엇이더냐? 기준을 따져봐야겠다. 환경과 사람....이것은 음식과 사람 만큼이나 밀접하고 중요한 사항이다. 그래서 니체도 게르만족의 집안 환경의 문제점과 알콜 과다 섭취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이 주제는 참으로 재미있는 주제다...나의 이란 컨셉과 관계하며 공간과 아이들에 대해서 풀어보고 싶다. 자기 확장이 되는 공간.... 어린시절 호연지기의 추억.... 그런 공간에 노출시키는 것. 그것이 그 사람의 성장을 돕고 역량을 끌어올린다.... 빽빽한 아파트 숲, 압구정동에 사는 내 친구...평생 그곳에 살았던 내 친구.... 그곳을 절대 벗어나지 않는, 아니 못하는 내 친구.... 어디가 되었던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적인 삶은 사람의 차원을 확장시킨다. 시야를 넓고 깊게 한다. (이 부분으로 꼭 교육칼럼의 한 꼭지 쓸 것!)

 

교회가 사색의 독점권을 쥐고 있던 시대, 묵상생활이 항상 종교생활이어야만 했던 시대는 지나갔다. 실제로 교회가 세운 모든 것은 이러한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 건축물이 그 사회적 특징을 벗어버린다 해도, 우리가 어떻게 그런 건축물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이 건물들이 말하는 언어는 너무 웅변적이고 부자연스러워 내게는 이것들이 신의 집이며, 어떤 영적 세계와 소통하는 호사스러운 기념비로서 여겨진다. 그러한 환경에서 우리 무신론자들이 우리의 사상을 생각하기란 너무 괴롭다. 이들 홀이나 정원에서 산책할 때, 우리는 차라리 우리 자신을 돌이나 초목으로 바꿔 우리 자신 안으로 산택하기를 바란다.

 

283 준비된 인간

[327]

그들은 모든 사물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착심을 가지고 거기에서 극복해야 할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방식의 휴일, 근무일, 애도일을 가졌으며, 확실하고 원숙한 솜씨로 명령을 할뿐더러 필요하다면 명령에 복종할 준비도 되어 있다. 명령할 때와 마찬가지로 복종할 때도 긍지를 지니고 어떤 일에나 한결 같이 자기 일처럼 몰두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보다 많은 위험에 부딪혀 왔던 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이며, 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다.

 

284 자기에 대한 믿음

[329]

극히 적은 수의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믿는다. 이 극소수의 사람들 중 몇 명은 유익한 맹목성에 사로잡히거나 그들 정신이 부분적으로 덮여 가려짐으로써 그 믿음을 얻는다. (만일 그들이 자기 마음속 밑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인정할 것인가!) 반면 그 나머지들은 스스로 그것을 얻어내야 한다. 그들이 행하는 선한 것, 유용한 것, 위대한 것은 모두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 내부에 있는 회의주의자에 대한 반박이다. 이 회의주의자를 납득시키고 설득하는 데에는 대개 천재적인 재능이 필요하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위대한 인간들이다.

---> 스스로에 대해 만족 못하는 인간.... 반면 노자처럼 노회한 삶.... 무엇이 정답인가? 정답은 없다. 이런 형태 저런 형태가 존재할 뿐... 나는? 나는? 만족 못하는 인간. 하지만 용두사미. 가끔 노자를 붙들고 위안 받는....

 

289 승선하라

저마다 살아가고 사고하는 그 나름의 방식에 관한 전반적이고 철학적인 시인(是認)이 각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라. 그는 특히 따뜻함과 축복, 비옥함을 내려 주는 태양처럼 철학적 시인을 경험한다. 철학적 시인은 그를 칭찬과 비난으로부터 독립시켜 주며, 행복과 선한 의지를 느끼고, 자기만족적이며 부유하고 자유분방하도록 만든다. 또한 그것은 끊임없이 악을 선으로 바꾸고, 모든 힘을 꽃피워 열매 맺게 하며, 슬픔과 분함의 크고 작은 잡초마저도 도대체 돋아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결국에는 누군가가 외친다. , 그런 새로운 태양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나는 얼마나 바랐는가! 악인도 불행한 자도, 예외적 인간도 모두 자신의 철학, 정당한 권리, 햇빛을 가져야만 한다. 필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동정이 아니다. 지금가지 오랫동안 인류가 이런 교만한 생각, 즉 동정을 베풀고 실행해 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를 포기하고 잊어야 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영혼의 고백도, 마술도, 죄의 용서도 아니다. 새로운 정의다. 새로운 해결책이다. 새로운 철학자다.

 

도덕의 지구 역시 둥글다. 도덕의 지구 역시 양 극점이 있다. 양 극점의 사람들 역시 생존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발견해야 할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아니 하나가 아니라 많은 세계가! 승선하라. 철학자들이여.

 

295 단기적 습관

[335]

나는 단기적 습관을 사랑한다. 이것이 많은 사물과 상태에 관해 그 달콤함과 쓰라림의 밑바닥까지를 알게 해 주는 더없이 귀중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단기적 습관은 밤낮으로 나에게 자양분을 주며, 주위의 모든 것에 깊은 만족을 나누어주고 있다. 또한 그 만족이 내 속 깊이 스며들어 있음으로 해서 나는 비교할 것도, 경멸할 것도, 미워할 것도 전혀 없으며 남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이 끊임없는 되풀이. 이것이 나의 식사, 사상, 인간들, 도시들, , 음악, 이론들, 일과, 처세술들이다.

 

반면에 나는 지속적인 습관을 싫어한다. 마치 폭군이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다. 지속적인 습관이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사태에서 나는 내 신변의 공기가 나를 짓눌러 오는 것처럼 느낀다. 예컨대 관직이나 똑같은 인간들과 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것, 고정된 주거, 변함없는 건강 등이 그런 것들이다. 사실 나는 나의 모든 비참과 질병, 내가 지닌 불완전한 모든 것에 감사하다. 이런 것들이 내가 지속적인 습관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많은 뒷문을 열어두기 때문이다.

 

 

 

308 매일의 역사

[344]

그대에게는 무엇이 매일의 역사인가? 그것을 이루고 있는 그대의 습관들을 돌아보라. 그대의 습관들은 수많은 사소한 비겁함과 게으름의 산물인가? 아니면 용기와 창의적인 이성의 산물인가? 이 둘은 매우 다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그대에게 똑같이 칭찬을 보낼 수도 있고, 사실상 그대는 그 사람들에게 어느 경우에든 똑같이 이익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칭찬과 이익과 명성은 오로지 양심의 평안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충분한 것이다. 그것은 그대들 신장을 검사하려는, 양심의 사정을 훤히 아는 자에게는 불충분한 것이다.

 

337 미래의 인간성

[360]

어떤 먼 미래를 보는 눈으로 이 시대를 바라볼 때, 나는 역사적 감각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고유한 미덕과 질병 이상으로 눈여겨 볼만한 어떤 것도 현대인에게서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대체로 역사에서 새롭고 낯선 무엇인가를 꽃피워낼 것이다. 만일 이 씨앗이 자라도록 몇 세기 또는 그 이상 세월이 주어진다면, 이로부터 경이로운 향기를 지닌 경이로운 꽃이 피어 우리의 오랜 지구는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아질지도 모른다.

 

[361]

인류의 역사 전체를 자기 자신의 역사로 느낄 수 있는 자무엇이든 다 무서우리만치 보편화해 버리는 방식으로 저 건강할 때를 떠올리는 병약자의 슬픔을, 청춘을 꿈꾸는 노인의 비애를, 연인을 잃어버린 자의 참담함을,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순교자의 아픔을,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한 채 다만 상처 입고 친구를 잃은 전쟁터의 저녁에 서 있는 영웅의 비참함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종류의 엄청난 비통함을 짊어지고 견딜 수 있다면, 또한 자기의 앞 또는 뒤로 몇 천 년을 바라보는 인간으로서 지난날 모든 정신적으로 고귀한 유산의 계승자-그것도 책임있는 계승자로서 과거의 모든 숭고한 자 가운데서 가장 숭고한 자인 동시에 아직 누구도 보지 못하고 꿈꾸지도 못했던 새로운 숭고함의 첫 상속자로서, 2의 전쟁이 시작되는 날 새벽 서광을 맞으며 자기 행운과 악수하고 있는 영웅일 수 있다면 이러한 모든 것을 - 인류의 가장 오래된 것, 가장 새로운 것, 손실, 희망, 정복, 승리 등을-그의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가 마침내 이 모두를 하나의 영혼에 포함시켜 그것을 유일한 감정으로 묶을 수 있다면-이는 확실히 인간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행복을 낳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힘과 사랑이 충만하여, 눈물과 웃음이 넘치는 신의 행복이다. 그것은 노을같이 계속적으로 없어지지 않는 풍부함을 부여하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행복, 게다가 태양처럼, 매우 가난한 어부조차 황금으로 된 노를 젓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한없는 부유함을 깨닫는 그러한 행복이다. 이러한 신적인 감정을 그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부르리라. ‘인간성이라고

 

 

342 비극이 시작되다

[366]

차라투스트라는 30세가 되었을 때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면서 10년 동안이나 권태를 모르며 살았다. 그러나 결국 그의 마음에 변화가 왔다. 어느 날 아침 차라투스트라는 새벽같이 일어나 태양을 마주하고 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 위대한 천체여, 만약 네 빛을 흠뻑 쬐는 자들이 없다면 너는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너는 10년 동안 내 동굴을 비춰 주었다. 내가 그리고 내 독수리와 뱀이 없었다면 너는 네 햇살과 네 빛의 여정에 지쳐 버렸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아침마다 너를 기다렸고, 너로부터 충만함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너를 축복해왔다.

보라. 지나치게 많은 꿀을 모아들인 벌처럼 나 역시 내 충만한 지혜에 싫증이 나 있다. 이제 나에게는 나의 넘치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 뻗쳐오는 손이 필요해졌다. 사람들 가운데에서 지혜롭다는 자들이 다시금 그네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기뻐하고, 가난한 이들이 다시금 그네들의 풍성함을 기뻐할 때까지, 나는 내 지식을 선물하고 싶고 나눠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하계로 내려가야만 한다. 마치 네가 저녁마다 바다 속에 잠겼다가 다시금 이 세상을 비춰주는 것처럼. 이 충만한 천체여.

나 또한 너처럼 몰락해야만 한다. 나는 내가 이제 내려가고자 하는 곳의 인간들이 말하는 대로 몰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축복해 다오. 크나큰 행복을 질투 없이 응시할 수 있는 너 고요한 눈초리여. 이 잔을 축복하라. 금빛으로 빛나는 물결이 흘러넘쳐 사방을 기쁨으로 물들이는 이 잔을. 보라. 이 잔은 다시 비워지기를 갈망하고,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한다.

이리하여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 다시 권태 속으로 들어간 차라투스라....

 

 

5

우리 두려움 모르는 존재들

 

육체여! 떨고 있느냐?

내가 너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가를 안다면

더욱 떨게 되리라.

 

                                                                튀렌

 

 

363 양성은 사랑에 대해 저마다 어떤 선입견이 있는가

[406]

나는 일부일처제의 선입견은 전면적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은 결코 승인할 수 없다. 이러한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 성이 다른 성에 대하여 똑같은 감정을 사랑에 대한 똑같은 개념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양성 사랑의 조건들 중의 하나이다.

 

364 은둔자는 말한다

[408]

, 다른 인간을 소화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첫 번째 원칙: 재난이다 하고 생각하여 용기를 내는 것, 용감하게 덤벼드는 것, 자신을 칭찬하는 것, 혐오를 누르고 욕지기를 삼켜버리는 것

두 번째 원칙; 다른 사람을 좋은 인물로 만드는 것, 예컨대 칭찬을 하는 방법으로, 그러면 상대는 그 행복감에 젖어 노력하기 시작하리라.

세 번째 원칙: 자기 최면

.

 

 

포겔프라이 왕자들의 노래들

 

시인의 소명

[439~440]

.....

나는 이 숲에서 무엇을 기다리는가

강도처럼 매복하고서 누구를 기다리는가?

격언을? 비유를? 갑자기

내 시의 운율이 그 뒤에서 덮쳐온다.

몸부림치는 그 운율을 시인을 시구로 요리하지.

-‘물론 친구여 그대는 시인이랍니다.‘

딱따구리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운율은 화살과도 같은가?

저 떨림을 보라. 저 흔들림을 보라

화살이 도마뱀의 급소를 맞췄을 때

그 버둥대고, 떨고, 뛰어오르는 모습!

, 죽어가고 있구나. 가엾은 녀석!

술 취한 거처럼 비틀거리며!

-‘물론, 친구여. 그대는 시인이랍니다.’

딱따구리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지.

 

[441]

남쪽에서

[441]

....

이성이라고! 그것은 불쾌한 것, 하나의 홍수다.

그것은 우리를 날며 너무 빨리 목적지에 데려간다.

나는 하늘을 날며 나를 우롱하고 있던 것들을 깨달았다.

벌써 새로운 삶, 새로운 놀이를 위한

용기와 피와 활력을 느낀다.

 

 

사랑 고백

[444]

- 바로 그 순간 시인은 구덩이에 빠졌다.

 

오 놀라워라, 그는 아직도 날고 있는가?

그는 높이높이 올라간다. 그의 날개는 움직이지 않는데도

무엇이 그를 그토록 높이 띄워 올리는가?

무엇이 그의 목표이며, 진로이며, 의지인가?

 

별처럼 영원처럼

이제 그는 생명마저 뛰어넘는 높은 곳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의 질투조차 동정하면서

그저 떠도는 듯 보이지만, 그는 사실 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 앨버트로스여!

영원한 충동이 나를 휩싸 높은 곳에 이르게 하노라

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서

그칠 수가 없다. 고귀한 새여,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불확실한 영혼들에게

[446]

....

이 불확실한 영혼들에게는

정말이지 화가 치밀 만큼 싫증이 난다.

그들의 모든 명예는 고통이고

그들이 모든 찬양은 자기혐오와 수치

 

그들이 끈에 묶여서

살아가지 않는다 하여

나는 그들의 눈길에 쫓기게 되었다.

희망 없는 질투의 눈길

 

차라리 심하게 나를 저주하고

나를 멸시해 다오!

그런 불확실한 눈길의 방황은

영원히 거절하고플 뿐이다.

 

북서풍에 바친다

[452]

....

우리는 끝없이 변화하며 춤을 추리라.

자유로워라-우리의 예술이여!

즐거워라-우리의 지식이여!

....

마치 음유시인처럼

성자와 매춘부 사이에서

신과 세상 사이에서 춤을 추자!

 

 

 

 

 

 

3. 책 소개와 평가

 

 

 

즐거운 지식

 

2판을 위한 머리말147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155

 

1171

2219

3267

4부 성 자누아리우스321

5부 우리들 두려움 모르는 존재들373

 

프린스 포겔프라이 왕자의 노래들438

 

 

 

(1) 목차와 전체적인 뼈대

 

이 책은 20세기의 정신을 날카롭게 예측한다.

니체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수동적 허무주의 시대라고 말한다. 19세기, 실증주의가 출현하여 종교적 철학적 절대성이 이미 해체되었는데도 그 시대의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시대라는 점에서 그는 허무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는 초인정신을 말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20세기를 이어갈 인간형은 바로 초인이라고 말한다. 초인은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긍정하며, 또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독창적으로 매 순간마다 몰입, 끊임없이 반복하며 수행, 발전시켜가는 인간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예술로 만드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지적 용기를 북돋워주는 교훈이 가득 차 있다.

그는 모두 5부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383개로 나눠 소제목을 달고 지식으로 펼쳐낸다. 글을 전개하는 형식은 자유롭다. 몇 개의 연을 갖춘 싯구로 글을 쓰기도 하고 몇몇의 짧은 문단으로 간략하고 함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사유를 풀어놓는다.

 

 

 

 

 

(2) 감동적인 절 또는 장

 

*

<머리말>의 시작부터가 눈길을 끈다.

 

[147]

이 책은 얼음과 눈을 녹이는 봄바람의 언어로 쓰였음이 분명하다. 즉 신념과 긍지, 방황, 모순 그리고 변덕스러운 봄날씨가 이 책 속에 뒤섞여있다. 겨울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음을 경고하는가 하면 동시에 겨울을 이겨 내고 다가올, 아니 어쩌면 이미 와 있는 승리를 일깨워 준다.”

 

봄바람의 언어로 쓰이고 봄날씨의 변덕이 뒤섞여있다는 표현, 참으로 시적이다. 그리고 겨울을 이겨내고 얻는 승리는 바로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저자, 니체로부터 얻어가는 지식과 사유의 힘이 곧 삶의 승리로 이끌어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저자의 의도가 담긴 머리말도 은유적이며 함축적이라 참 좋다.

 

또한 그는 머리말에서철학적인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시대와 인류의 총체적인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니체는 말한다. 모든 철학의 목표는 진리가 아니라 건강, 미래, 성장, , 생명이라고. 이 얼마나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인가?

 

니체, 그가 바로 철학적인 의사이자 삶을 노래하는시인이다.

음율 있는 리듬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삶의 자세를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는.

 

[150]

나는 아직도 단어의 예외적인 의미에서 철학적인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 예리한 의사를, 국민, 시대, 인종, 인류 등의 총체적인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 나의 의혹을 끝까지 파헤쳐 대담하게도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하기 위하여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명제란 이렇다.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철학의 목표진리가 아닌 다른 것-건강, 미래, 성장, , 생명-이었다.

 

 

 

 

**

<1>의 시작은 1.생존의 목적을 일깨우는 교사로 시작한다.

첫 시작이 왜 생존을 목적을 일깨우는 교사일까? 누구보다도 교사는 생존의 목적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한다는 점에서 일순위로 내 세운 것이 아닐까? 철학하는 의사의 진단에 이어 아이들을 일깨우는 교사역할의 중요성. 나는 니체가 배열한 구성의 의도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지식은 웃음과 즐거운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탁월한 비이성을 지닌 비극도 종족을 보존하는 수단이 되며, 필요한 것이다라고 니체는 말한다. 편협 되지 않고 한 곳에 치우지지 않는 사고, 나와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물론 그것이 내 기준에서 선한 것 일 수도 있고 악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좋고 나쁘고의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일단 수용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자세일 것이다.

 

[175]

생존의 목적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끊임없는 출현으로 인간의 본성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 본성은 바야흐로 하나의 욕망을 증가시켰는데, 이것은 그런 목적의 교사와 그 가르침이 끊임없이 새로 출현하길 바라는 욕망이다.

 

[176]

웃음과 즐거운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탁월한 비이성을 지닌 비극도 종족을 보존하는 수단이 되며, 필요한 것이다!’라고........그대들은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지 이해하는가? ......우리에게도 역시 우리의 시대가 있다!

 

 

 

 

 

***

에 대한 니체의 생각은 책 여러 군데에 나온다.

악은 덕의 위대한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환경의 구성 성분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무찔러든다. ‘악은 강자에게는 강장제이며 강자는 그것을 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선과 더불어 악도 보아야 하고 아이를 일깨울 때 선과 악을 동시에 보게 해야 한다. 선만 가르칠 것이 아니다. 악도 가르쳐야 한다. 모든 좋은 것은 나쁜 것과 붙어 다닌다. 악을 물리치는 힘은 세상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의 힘에서 나온다. 또한 선과 악 역시 사람사이의 관계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19 (주목구절)

[191]

하늘높이 자라려는 나무가 과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겪지 않고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불이익과 반대, 증오, 질투, 의심, 냉혹, 탐욕, 횡포 등등, 덕의 위대한 성장에 거의 반드시 필요한, 저 알맞은 환경의 구성 성분이 아닐까? 약한 천성의 인간을 쓰러뜨리는 독은 강자에게는 강장제이며, 강자는 또한 그것을 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252](주목구절)

정열은 스토아주의 위선보다 낫다. 악에 대해서도 진솔한 것은 전통적인 도덕에 열중해 스스로를 잃는 것보다 아직은 낫다. 자유로운 인간은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유한 인간은 자연에 대해 수치이며 천상 또는 지상의 위안을 공유하지 못한다. 결국 자유로워지고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노력으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자유는 기적적인 선물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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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가 들려주는 경계해야 할 것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그다지 비판적 사유를 하지 않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우주가 생명체라는 생각, 우주가 기계라는 믿음, 자연 속에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라 경계하라. 나는 자연에는 법칙이 있고 보편성이 있다고 거의 믿고 살았다. 또한 내가 믿는 대로 우주도 만들고 세상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어내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경계하지 못하고 습관적인 내 생각의 근육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깨우쳐주는 경계하라는 문구는 다시금 내 사고를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109 경계하자 (주목구절)

[269]

우주가 생명체라는 생각을 경계하자.

우주가 기계다라는 믿음도 경계하자.

 

리가 생존하고 있는 이 별의 질서는 하나의 예외이다. 그리고 이 질서와 그에 따라 제약된 상당 기간의 지속이, 예외 중의 예외인 유기체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 반해 이 세계의 전체적 성격은 영원한 카오스(혼돈)이다.

 

[270]

필연성의 결여라는 뜻의 혼돈이 아니라, 질서, 조직, 형식, , 지혜, 기타 모든 우리의 미적 인간성의 형용사, 즉 미적 신인동형론의 결여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혼돈이다.

 

우주의 운동이라는 음악상자 전체는 도저히 멜로디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시도라는 말조차 이미 그 가운데 비난의 의미를 포함한 의인화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우주를 비난하거나 칭찬할 수 있겠는가? 냉혹함이나 부조리, 또는 그 반대를 우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경계하자. 우주는 완전하지도 아름답지도 고귀하지도 않다. 또한 이러한 것을 중 어느 것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전혀 인간을 모방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떠한 미적, 도덕적 판단도 우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주는 자기보존본능을 비롯하여 다른 어떤 본능도 없다. 우주는 어떠한 법칙도 준수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그곳에는 단지 필연성만이 있을 뿐이다.

 

명령하는 자는 없다. 복종하는 자도 없다. 위반하는 자도 없다. 일단 그대가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연 또한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이라는 말은 목적의 세계와 비교될 때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삶과 반대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삶은 죽음의 한 형태, 그것도 매우 드문 한 형태이다.

 

세계가 영원히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경계하자. 영속적인 실체는 없다.

 

언제 우리는 순수하고 새로이 발견되었으며 새로 구제된 자연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을 자연화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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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 후반부에 실린 짤막짤막한 한줄 질문/한줄 답문구가 짧지만 강하게 내 뒤통수를 후려 갈린다. 니체의 날카로운 통찰의 힘이 나의 눈을 꼼짝없이 잡아둔다.

 

어떤 자를 악하다고 부르는가? -> 항상 남에게 모욕을 주려는 자

찔린다. 물론 큰 악은 아니지만 나는 매일 매일 생활에서 악행을 범하고 살아왔구나. 오늘도 살짝 살짝 모욕을 섞어 남편과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들을 내가 마치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함을 가지고. 나의 악행. 오호~ 부끄럽도다. 바로 이어 나온다.

 

그렇다면 가장 인간적인 행위란 무엇인가?->누구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

이것은 바로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람 상태 그대로에 공감하기. 그리고 그 사람 스스로가 느끼고 발견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기.

 

무엇이 자유의 징표인가?->더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바로 배려를 받고 때론 스스로 남을 배려하며 자신의 못난 모습 조차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가고자 하는 길, 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서 나갈 때, 그 사람은 성숙한 인간이며 바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자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까?

 

273 너는 어떤 자를 악하다고 부르는가?

항상 남에게 모욕을 주려는 자를.

 

274 네게 가장 인간적인 행위란 무엇인가

누구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

 

275 무엇이 자유의 징표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3) 내가 저자라면

 

니체의 문구는 한 구절 한 구절 받들며 읽어야 한다. 정말 대단한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다만, 내가 읽은 동서문화사의 니체 책 버전은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두 배로 오래 걸렸다. 번역체는 왜 문장을 꼬아서 쓸까? 좀 더 다듬어 풀어쓰면 좋으련만.

 

번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니체를 읽는 사람은 니체의 말대로튼튼한 치아와 튼튼한 위장이 필요하다. 19세기를 살았던 독일인 니체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치열히 반성하고 20세기의 문을 여는 시대적 화두를 제시한 철학자이다. 철학, 문학, 심리학, 음악, 미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니체는 영향력을 행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니체의 책 주요 저서를 챙겨서 여러 번 읽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제대로 된, 내 서양철학 공부의 시작점이 바로 니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가 질문 던진 383개의 소제목 중 과연 나는 몇 개나 내 방식과 생각으로 정리해 낼 수 있을까? 50개도 힘들 것이다. 그의 글쓰기 방식을 모방하여 각 소제목을 뽑고 내 생각을 짧고 함축적으로 기술하는 통찰적 글쓰기를 나도 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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