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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6일 10시 34분 등록

< 즐거운 지식>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권영숙 옮김, 청하 출판사

 

1.     저자에 대하여

 

1)    생애 - 출생과 학창시절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10 15일 프로이센 뤼첸(Lutzen)인근 뢰켄 (Rocken)에서 개신교 목사 아들로 출생했다. 당시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탄생일을 기념해 아버지는 왕의 이름과 같은 프리드리히로 작명했다.

2년후인 1846년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태어났다. 니체가 5살 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져 뇌진탕을 당해, 그 다음 해 사망했다. 남동생 요셉 또한 갑자기 죽는다. 1852년 성당 운영 김나지움에 입학, 10세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았으면 작곡도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어머니, 두 숙모, 그리고 여동생들과 지낸 탓인지 여성적인 감수성이 풍부했다. 이 때문인지 시 50여편을 짓기도 했다.

 

1858년 나움부르크 근교 슐포르타 김나지움 장학생으로 들어가 파울 도이센(Paul Deussen)과 칼폰 게르도르프(Carl Von Gersdorff)를 사귀게 되었다. 이 시기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64년 김나지움 졸업 후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비드 슈트라우스의 < 예수의 생애>을 읽고 신학 공부를 중단하고 자신의 신앙도 버리게 된다.

1865년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 고전 언어학을 공부한다.

 

1867 10월 나움부르크에서 프로이센 포병으로 입대, 군 복무 중 1868 3월 낙마 사고로 가슴을 심하게 다쳐 병가로 제대한다. 그 해 10월 라이프치히 대학 복학하여 11월 리하르트 바그너와 첫 만남을 한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접하다

186810월 라이프치히 대학 인근 브르멘가라는 허름한 뒷골목 헌책방 주인집에 하숙을 하던 어느 날 니체는 쇼펜하우어 책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를 접하고 정신 충격을 받는다. 훗날 그는 말했다. “ 그 책은 첫 줄부터 모든 말들이 하나같이 단념과 부정, 체념뿐이었다. 그 책을 통해서 나는 세계와 인생과 나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큰 거울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질병과 치유, 추방과 피난처, 그리고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 자기 인식과 자기 해체의 욕구가 나를 사로 잡은 것이다. “

 

교수시절

1869 2 25세 때 니체는 리츨 교수의 추천으로 스위시 바젤(Basel) 대학 고전문헌학 원외 교수로 당시로는 고전문헌 부문 최연소 교수가 된다. 다음 해 스위스 국적을 얻는다.

1870 3월 정교수가 된 후 그 해 8월에서 10월까지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에 위생병으로 종군한다. 종군 기간 중 이질과 디프테리아에 걸려 평생 쇠약한 몸으로 고생을 한다. 이때 니체가 매독에 관심을 갖게 된다.

 

바그너와의 만남과 결별

1868년부터 처음 바그너를 만나는데 당시 니체는 24세의 대학생이었고 바그너는 55세의 명성높은 오페라 작곡가였다. 그때 받은 느낌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쇼펜하우어가 천재라고 부른 바그너의 천재성은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뚜렷한 것이었다. 그의 곁에 있을 때 나는 신성한 존재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대>에 감동하여 1872 <비극의 탄생 >(원제:음악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이라는 최초의 저서를 바그너에게 헌정한다.  이 책은 그리스 비극을 통해 인생의 기쁨을 찬미하고 동시에 염세적인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바그너에 대한 경외와 찬사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1876년 바그너의 초청으로 첫 바이로이트 축제에 참석하나 진부한 공연과 대중의 천박함에 혐오감을 느껴 실망하고 만다. 그리고 1878년 바그너가 <파르지팔 Parsifal>을 니체에게 보내는데 니체는 바그너가 기독교적인 도덕주의 모티브를 이용하고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빠지자 바그너와 결별하게 된다. 같은 시기에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에 반감을 가지면서 그로부터도 벗어난다.

 

1879 35세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바젤 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 요양과 집필에 전념을 하게 된다.

 

루 살로메와의 사랑과 실연

사직 후 니체는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제네바, 질스마리아, 시칠리아등 10년 간 유럽각지를 여행하면서 집필 생활을 한다.

1882 4 38세의 니체는 21세인 루 살로메(Lou Andress Salome)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스위스취리히 대학서 철학, 신학, 비교 종교학과 예술사를 공부하다 건강이 나빠져 로마에서 휴양 중 니체를 만나게 된다. 니체는 루 살로메야 말로 자신과 대화가 통하는 유일한 지성인으로 여겼으며 두 번을 청혼하나 거절 당한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구속 받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다. 니체는 실망이 컸고 그녀와 헤어진 후 고독과 침잠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정신질환과 죽음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 광장에서 졸도해 예나의 빈스방거 병원에 입원 한 이후,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정신병 발작과 정신 상실을 잃은 상태에서 비참한 삶을 보낸다. 스위스 정신병원으로 옮겨 입원 후 치료를 받았으며 퇴원 후 1897년까지 나움부르크에서 어머니의 간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 해 어머니가 죽자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니체를 바이마르로 옮긴다. 정신착란 증세가 심해지면서 결국 1900 8 25일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잠복성 제 3기 매독에 의한 불규칙적 전신 마비였다고 전해진다. 누이 동생은 고향 뢰켄의 아버지 묘 옆에 니체를 안장했다.

 

2)    니체의 철학과 사상-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인간은 삶의 주인으로 살 것을 주장한다. 누가 왜 만들어 놓은 지도 모르는 가치와 규범에 복종하고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의미 없는 생을 이어가는 것은 죽음보다 더 비참한 삶이라고 한다.

니체는 새로운 가치와 세계를 창조한 사람이었다. 인간은 신이나 도덕, 진리에 의존할 필요도 없으며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

 

신은 죽었다- “위번멘쉬

신의 죽음은 인간이 만든 모든 형태의 우상 숭배를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구속했던 가치관, 규범 등에 복종하는 것은 노예적인 생활이므로 자기 삶의 주인, 즉 위버멘쉬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신보다 오랜 신앙을 가졌고 그 신앙으로 신을 창조했다. 신은 인간의 피조물이고 그림자이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고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중력의 영이라는 경험, 관습, 도덕, 법률, 법칙 등이 인간 개인의 자유로운 비상을 막았다. 새처럼 가벼워 지기를 바라는 자는 먼저 자기 삶을 사랑하라고 한다. 날기 위해서는 심각하고 무거워서는 안 된다. 웃고 춤을 추라고 주문한다.

 

위버멘쉬라는 말은 인간을 넘어선  또는 인간의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구성하는 규정들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넘어선다는 것은 변신을 의미한다.

 

영원회귀

니체는 영원불변한 것은 없으며 생성과 소멸의 운동만이 영원히 반복되며 이것이 영원회귀의 세계상이라고 본다. 살아있는 우리 자신이 영원회귀를 능동적으로 택할 것을 얘기한다.

영원회귀는 인간적인 것이라고 규정된 하나의 정체성으로부터의 떠남이요 그 떠남을 통해 새로운 건강의 신체를 얻는 치료법이라고 한다. 지금의 나와 이별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이다.

 

3)     주요 저서

-       비극의 탄생 (1872),반시대적 고찰 (1873~1876),즐거운 학문(지식) (188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1885),선악의 저편(188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886)

 

<참고 자료>

-       위키피디아 한국

-       <인생론 에세이 어떻게 살 것인가>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이동진 옮김, 해누리

-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 그린비

 

2.     마음에 무찌르는 문구 유첨

 

3.     저자라면

 

책의 제목

니체의 심오한 지식, 철학, 그리고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어 책 제목이 <즐거운 지식> 또는 <즐거운 학문>이라고 번역되었지만 기쁨을 주는 책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데 자신이 없다.

하지만 저술 당시 종교계나 기존의 사고방식, 관습, 가치관등에 혁명적인 반향을 일으켰을 것 같다. 니체의 최고의 전문가의 카우프만은 이 책을 쾌락학이라고 번역한 바 있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 인습, 관습, , 제도 등을 거부하는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니체는 책에서 당시 도덕성이나 가치관을 재평가했다. 니체의 깊은 철학과 사상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즐거운 지식>이라 하지 않았나 한다. 니체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이 책은 즐겁고 통쾌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포함해서.

 

책의 구성과 내용

 

책은 농담, 음보, 그리고 복수라는 부제로 63편의 시로 이루어진 서곡으로 시작해 4 342항으로 끝난다. 342항은 니체의 불후의 명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머리가 된다. 5부는 <짜라투스트라> <선악을 넘어서>이후 씌어진 것으로 4부까지 쓴 내용을 부연 설명해 주고 있다.

 

니체 스스로 <즐거운 지식>가장 인간적인책이라고 부른다. 위험을 감수하고 종교(기독교,불교), 철학, 예술, 도덕, 윤리, 여성 등 다양한 분야뿐만 아니라 예수, 쇼펜하우어, 바그너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 및 평가를 한다. 논리정연하고 절제된 표현 방식이 돋보인다. .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눈에 띈다. 

 

여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야말로 남자이다. 여자들의 모든 결함은 남자들에 의해 씻기워지며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남자는 멋대로 여성의 상을 그리고, 여성은 그 이미지를 흉내 내어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 ( 68의지와 승락중에서)

 

기독교, 유대인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은 정열에 대해 악마적 눈을 갖고 있다, 그들이 열정에 대하 알고 있는 것은 고작 더럽고, 인간을 추악하게 하며 지루한 것이라는 정도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이상주의적 경향은 정열의 전멸을 목적에 두고 있으며 신성함에서 완전한 순수를 발견한다. 사로 바울이나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이상을 정확히 정열로 향하도록 했고 그 정열들을 사랑했으며 상승시켰다 “ ( 139정열의 색중에서)

 

기독교, 유대교는 인간을 쾌락과 탐욕, 추악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 인간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니체는 세상을 추악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선동하는 기독교라고 보았다.

 

느낀 점

당시 세상을 보는 관점,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 관습, , 가치관뿐만 아니라현상에 대한 니체의 인식이 비범하다. 너무 파격적이고 동시에 논리적이고 난해해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당대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종교를 인간의 정신을 나약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마약과 같다고 한다. 니체는 그런 맹목적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사람간에 신뢰와 사랑이 충만하다면 종교가 필요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습을 타파하고 독자의 사고의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는 위험한 책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완점

 

독자의 이해와 상관없이 저자의 심오한 철학과 사상, 현상을 보는 탁월한 또는 기이한 식견을 피력하기 위해 저술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는 우매한 독자에 영합하는 글을 쓰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니체는 다수의 대중 독자를 상대로 한 책이라기 보다는 소수의 수준 높은 지식인을 위한 전문 학술 도서를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곡의 63편의 시는 저자의 사상이 압축되어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다수였다. 부연 설명을 하여 행간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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