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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6일 11시 04분 등록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지식

 

1. 작가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니체.

출생과 학업 (1844 – 1869)

출 생
니체는 1844 10 15일 예전의 프로이센 (독일)의 작센 지방의 소읍인 뢰켄(Röcken)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프러시아의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빌헬름 4세는 니체가 태어나던 날에 나이가 49세를 넘었었다(니체는 훗날 그의 이름에서 가운데에 있던 "빌헬름"을 빼 버렸다.) 
니체의 아버지인 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1813-1849)는 루터교회 목사이자 전직 교사이었고, 프란치스카 욀러(1826~1897) 1843년에 결혼하였다. 그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니체는 1846년에 태어났고, 뒤를 이어 남동생인 루드비히 요셉이 1848년에 태어났다니체의 아버지는 뇌 질환으로 184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린 남동생은 1850년에 죽었다. 그 후 가족은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니체의 할머니와 어머니 프란치스카, 아버지의 결혼하지 않은 두 자매, 두 하녀들과 함께 살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니체의 할머니가 1856년에 세상을 하직하자, 가족은 그들의 집으로 이사했다.

학 교
1861
년 니체는 소년학교에 출석했고 그 다음에는 그가 구스타브 크루크와 빌헬름 핀터와 친구가 되었던 곳인 사립학교에 다녔다.
두 친구는 모두 명망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1854년 그는 나움부르크에 있는 돔 김나지움에 다니기 시작했으나, 그의 특출한 재능은 음악과 언어에서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 후 국제적으로 유명한 슐포르타에 동료들처럼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의 학업을 1858년부터 1864년까지 계속했다
그는 파울 도이쎈, 칼 폰 게르도르프와 친구가 되었다. 또한 그는 시를 짓고 음악을 작곡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슐포르타에서 니체는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에 대해서 중요한 입문 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다. 그 동안에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조그만 시골 마을의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1864년 졸업을 한 후에 니체는 신학과 고대 철학을 본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짧은 기간 동안, 그는 도이쎈과 함께 대학생 학우회(Burschenschaft Frankonia)의 구성원이 되었다. 한 학기 후에 어머니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학 공부를 중단했고, 자신의 신앙도 상실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1835~1836년에 다비드 슈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란 책에서 그가 담당한 부분을 읽어나가던 중에, 그 책의 내용이 젊은 니체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 니체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 교수 밑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데 집중하였고, 이듬해에 그는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다. 거기서 그는 에르빈 로데와 친구가 되었다. 이 무렵 니체의 첫 철학 저서의 출판이 곧 이루어지게 된다.

철학공부와 군복무
1865
년에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알게 되었고, 그는 1866년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책,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한 비판》(Geschichte des Materialismus und Kritik seiner Bedeutung in der Gegenwart)을 읽었다
그는 두 사람의 저서 모두와 자극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저서는 니체가 그의 지평을, 철학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장하도록 격려했으며, 그의 학업을 지속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1867년 니체는 군에 자원하여 1867 10월 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나움부르크에서 프로이센 포병으로 한 해 동안 복무하였다. 그러나 1868 3월에 그는 말을 타다가 사고를 당해서, 가슴을 심하게 다쳤고 후송되었으나 군복무를 지속할 수 없었다.

바그너와의 만남
그 결과 니체는 장기간의 병가를 받고 그의 관심을 다시 그의 학업에 둘 수 있었고, 1868 10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동안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접하였고, 고전문학자 에르빈 로데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학업을 끝낸 후 그 다음 해에 바그너와 처음으로 만났다.

바젤 대학교에서의 교수 생활 (1869–1879)

바젤대학교 고전문헌학 교수
24
살에 리츨의 도움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에 취임하였다
바젤 대학교에 들어선 이후, 그는 프로이센의 국적을 포기했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공식적인 시민권이 없었다고 한다.(일부 저자들은 니체가 스위스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870년에서 1871년까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했는데, 카우프만은 그가 군의관 활동 당시 매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어떤 이들은 니체가 미친 까닭이 매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바젤 대학교로 돌아오면서 그는 독일제국의 성립과 비스마르크의 등장을 보았다.

강 연
그는 대학교에서 취임 강의로호메로스와 고전문헌학”(Homer und die klassische Philologie) 을 연설했다
그는 신학과 교수인 프란츠 오버베크와 어울렸으며, 그와 평생동안 친구로 지냈다. 당시 러시아 철학자였던 아프리칸 스피르, 니체가 자주 강의를 들었던 동료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등도 니체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그는 여러 강연회에 연사로 다니며 강연활동을 하기도 했다.

바그너와의 만남과 결별
니체는 이미 1868년부터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만나기 시작했었는데, 그의 부인과 그에게 매우 감탄하곤 했다. 또한 바젤에 있을 당시 바그너는 니체와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후 바그너의 뛰어난 제자의 한사람으로도 인정받았지만, 바그너가 점차 기독교화되고 〈파르지팔 Parsifal〉에서처럼 기독교적인 도덕주의 모티브를 많이 이용하고,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빠지자 그와 결별했다.

박사학위
1869
년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시험과 논문없이 출판된 저술들만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니체는 1872년에 《비극의 탄생》을 썼다. 하지만 리츨과 같은 니체의 동료들은 이 책에 대해 별로 열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 술
1873
년과 1876년 사이에는 《반시대적 고찰》을 썼는데, 4편으로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로 나눠진다
네 편의 에세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가 주장하는 대로, 독일 문화의 발전 노선에 도전하는 문화 비평의 방향을 공유하고 있다. 1873년이 시작할 무렵, 니체는 또한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철학 같이 사후에 출간된 기록을 점차로 모으고 있었다. 이 시기 동안 바그너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니체는 말비다 폰 메이센부르크와 한스 폰 뷔로우를 만났고, 1876년에 그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초기 저작에 나타난 비관주의를 해소시킨, 파울 리와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는 1876년에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진부한 공연과 대중의 천박함에 혐오감을 느끼고 실망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바그너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1878년 니체는 그 특유의 경구가 가득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출판하였다. 또한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철학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즈음에 혼인을 하려 애쓰기도 했다. 1879, 건강이 더욱 악화되면서 니체는 바젤 대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했다(사실 그는 어릴 적부터 병치레가 잦았는데, 가끔 두통이나 복통을 겪기도 했다. 1868년에 낙마사고와, 1870년에 걸린 병 때문에 니체의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 바젤 대학교에서 휴가를 많이 갖기도 했다.)

퇴 직
1879
년 이후 건강의 악화, 특히 시력의 감퇴로 35세에 바젤대학교를 퇴직하고, 요양을 하게 되었다.

독립 철학자 생활 (1879–1888)과 죽음
바젤 대학교에서 퇴직한 이후 그는 강연도 그만두고, 병든 몸이 적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집필생활에 몰두하였다
1881
, 프랑스가 튀니지를 점령했을 때, 튀니지로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이내 그 계획을 접고 만다.(건강에 대한 문제로 여행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1889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졸도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냈다
니체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완전히 정신 상실자가 되었고,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예나에서 거주했다. 어머니가 죽자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니체를 바이마르로 옮겼고, 니체는 1900 8 25일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니체가 죽자 엘리자베트는 고향 뢰켄의 아버지 묘 옆에 니체를 안장했다.

 

 

2.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나는 내 집에 살며

그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다

더욱이 마음껏 웃을 줄 모르는

모든 대가들을 비웃는다

 

P150

단어의 예외적인 의미에서 철학적인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 예리한 의사들, 국민, 시대, 인종, 인류 등의 총체적인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 나의 의혹을 끝까지 파헤쳐 대담하게도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하기 위하여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명제란 이렇다.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철학의 목표는진리가 아닌 다른 것-건강, 미래, 성장, , 생명-이었다.

병에 대해서는, 우리는 오히려 병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가? 오직 거대한 고통만이 영혼의 최종적인 해방자이다. 그것은 모든 U X, 알파벳 마지막에서 두 번째인 진짜 X로 바꾸는 거대한 의심의 스승이다.

 

P153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진리를 찾겠다는 의지, 진리와 사랑에 빠진 젊은 열광, 이런 것들에 우리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고, 너무나 진지하고, 너무나 명랑하고, 너무나 지쳤고, 너무나 생각이 깊다.

어쩌면 진리란 자신의 바닥을 보여 주지 않을 만한 이유를 숨기고 있는 여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의 이름은-희랍어를 쓰자면-바우보가 아닐까?

바우보: 원시적이고 음란한 여자 귀신으로, 옥스포드 클래식 사전에는 여성 생식기를 인격화한 것이라고 나와있다.

 

P157~169

11 잠언에 이르기를

예리함과 유연함, 조잡함과 세련됨,

낯섦과 친숙함, 더러움과 깨끗함,

바보와 현자와의 대면,

나는 이 모든 것이고, 또 모든 것이고 싶다.

돼지요, 뱀이며 비둘기이고 싶다!

 

12 빛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과 마음이 시들기를 원치 않는다면

태양을 향해도 그늘 속을 걸어라!

 

24 염세주의자를 위한 처방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는가, 친구여?

지치지도 않고 여전히 불평하고 있는가?

너의 끝없는 욕설, 호통, 비방에

내 인내심은 점점 찢겨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다.

내게 처방이 있다. 친구여!

나의 좋은 충고와 보증된 휴식을 따르라.

눈 딱 감고 두꺼비를 삼켜라.

망설이지 말고 당장!

그러면 너의 소화불량이 고쳐질 테니까.

 

28 초심자를 위한 위안

돼지들 사이에 둘러싸인 어린아이를 보라.

어쩔 줄 몰라 말조차 못한다.

아이는 계속 울기만, 그저 울기만 할 뿐이다.

언젠가 서서 걸을 날이 올까!

절망하지 마라! 곧 너희는

그 아이가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

일단 두 발로 설 수만 있다면

곧 물구나무도 설 수 있으리라.

 

33 고독한 자

추종하는 것도 앞장서는 것도 싫다.

복종, 아니! 지혜, 그것도 아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남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만이 타인을 지도할 수 있다.

자신을 이끄는 것조차 나는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숲이나 바다의 동물처럼

한동안 나를 잊는 것.

외딴섬에서 행복한 명상에 잠겨 앉아 있는 것.

이윽고 멀리서부터 나를 불러들여

나 자신을 나 자신에게로 유혹하는 것.

 

35 얼음

그렇다. 때때로 나는 얼음을 만든다.

얼음은 소화를 도와주니까!

소화 안 된 것이 잔뜩 있다면

너희도 내 얼음을 사랑하게 되리라!

 

38 신앙심 깊은 자는 말한다

신은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를 창조했기 때문에!

‘하지만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너희 현명한 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창조한 것을 인간이 사랑하지 않겠느가?

하물며 스스로 창조했는데 그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악마의 발굽을 지닌 절름발이의 논리이다.

 

41 헤라클레이토스주의

친구여, 오직 싸움만이

지상의 온갖 행복을 준다!

그렇다. 우정이 싹트기 위해서는

포연이 필요하다.

친구가 되기 위한 삼위일체는

힘들 때는 우정,

적 앞에서는 평등,

죽음에 임박해서는자유!

 

52 발로 쓴다

나는 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발도 항상 함께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확고하고 자유로우며 용감하게

혹은 들판을, 혹은 종이 위를 달린다.

 

55 사실주의 화가

‘자연에 충실하자, 완전하게이것이 예술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 시작할까,

자연이 그림 속에 전부 담기는 날이 과연 올까?

세계의 지극히 작은 조각도 무한하다!

그는 결국 그의 마음에 드는 것만을 그린다.

무엇이 그의 마음에 드는가?

그가 그릴 수 있는 것!

 

62 이 사람을 보라

그렇다. 나는 내가 어떤 자인지 안다!

탐욕스러운 불꽃처럼

타올라 몸을 태워 버린다.

내 손에 쥔 것은 모두 빛이 되고

내가 버린 것은 모두 숯이 되니

그렇다. 확실히 나는 불꽃이다!

 

63 별의 도덕

별이여 가라, 예정된 네 궤도를,

너에게 암흑이 무슨 상관인가?

기쁨에 차서 구르며 이 세상 이 시대를 초월해 가라!

지상의 비참은 너에게 낯설고 먼 것이다.

너의 광휘는 먼 세계를 위한 것,

연민은 악덕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네게 필요한 단 하나의 계명은순수하라!

 

P173

인간은 전체로서나 특히 개인으로서나 종족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사명을 늘 지니고 있단 사실이다.

종족은 해롭게 하는 것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소멸해 버려서 이제는 신조차도 그것을 어찌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대들의 최선의, 또는 최악의 욕망에 몸을 맡기고 파멸하든 말든 오로지 전진해 보라! 어떠한 상황이라도 그대들은 반드시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의 은인이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칭송을 받게 될 것이다동시에 비웃음도 사리라!

 

P174

웃음에도 미래가 있다! ‘종족이 전부이며 개인은 언제나 무나 다름없다라는 명제, 이것이 인간성 그 자체에 결합되어 각자에게 늘 이 최종적인 해방과 무책임을 행한 길이 열릴 때, 분명 그때에는 즐거운 지식만이 남게 될 것이다.

 

P175

도덕교사는 우리가 생존 또는 우리 자신에 대해 웃는 것을, 특히 그들에 대해 웃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에게 개인이란 늘 개인이며, 처음이자 끝이며, 위대한 것이다. 그들에게 종족이란 없으며 전체도 없고, 그리고 0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한 발명이나 평가는 얼마나 어리석고 몽상적인가.

‘그렇다. 사는 것은 가치가 있다! 그렇다, 나는 살 가치가 있다!’는 사상으로 많은 개인을 공략하는 저 깊은 감동이, 이리하여 삶과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당분간 다시 한번 우리의 관심 거리가 될 것이다.

 

P176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지적 양심이 부족하다는 것, 그것이 확실한데도 나는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그런 지적 양심을 품어야 할 때, 나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심에 있으면서도 마치 사막에 고독하게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P177

고귀한 인간은 훨씬 비이성적이다. 고귀하고 관용적이고 희생적인 인간은 진실로 자신의 충동에 따르며, 그 최상의 순간에 이성을 멈추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어 제 자식을 지키고, 교미 시기에는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암컷을 찾아 나서는 동물들은, 위험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P178

고귀한 인간에게 일반인은 일반인으로서 이해하고 받아줄 이성의 여유가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된 정열보다 자신의 정열을 믿으며, 바로 여기서 웅변의 힘을 얻는다.

 

P183

우리의 분출

우리는 모두 비밀 정원이나 밭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분출할 때를 기다리며 성장해 가는 활화산과 같다. 다만 이 분출의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차도.

 

P184~185

의식에 대한 이 웃지 못할 과대평가와 오해는, 의식의 너무나도 급속한 성장을 막아주기에 결과적으로 크게 유익하다. 지혜를 자기 몸에 동화시켜 본능으로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새로운 결과적으로 인간의 눈에 들어온 것으로서, 아직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은 과제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의 착오만이 우리에게 동화되어 왔다는 사실, 우리의 모든 의식은 착오와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들에게만 인식되는 과제인 것이다!

그대들은 환희를 맛볼 수 있는 능력을 저하시키고 소멸시켜야만 한다. 실제로 우리는 학문을 통해 한쪽 목적과 함께 다른 쪽 목적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학문은 인간으로부터 기쁨을 박탈하고, 인간을 차갑고 기계적이고 스토아적으로 만드는 그러한 힘으로서 많은 사람들에 더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은 또한 위대한 고통을 가져오는 것으로서 발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아마 동시에 그 반대의 힘, 즉 환희의 새로운 별을 빛낼 위대한 능력도 발견될 것이다!

 

P187

사랑이라 불리는 모든 것

우리의 이웃사랑도 새로운소유권에 대한 충동은 아닐까?

 

P188~189

사랑하는 자는 상대를 무조건 독점하고자 한다. 그는 상대의 마음과 육체에 대한 절대권을 요구한다. 사랑하는 자가 다른 모든 연적들을 몰락시키고 실패하게 하여 마치 모든정복자와 착취자 중에서도 가장 용서 받을 수 없는 이기주의자처럼 자신의 보물을 지키는 용이 되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결국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하고 무가치하게 여겨져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고, 모든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슨 이익도 무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성애의 이런 난폭한 소유욕이나 부정이 모든 시대에 걸쳐 그토록 찬미되고 신성화되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 상호의 소유욕이 새로운 욕망과 소유욕에, 즉 그들을 초월한 이상으로 향하는 공동의 고차원적 갈망에 길을 양보하는 사랑의 지속이 있다. 그러나 누가 이 사랑을 알겠는가? 누가 이 사랑을 체험했겠는가? 그것의 참된 이름은 우정이다.

 

P190

그리스의 철학자는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예가 있다는 비밀스런 감정, 즉 철학자가 아니면 모든 노예라는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갔다. 지상 최대의 권력자라 해도 그의 이런 노예들 속에 포함된다고 생각할 때, 철학자의 긍지는 흘러 넘쳤을 것이다. ‘노예라는 말은 비유로 사용될 때조차 우리에게는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P191

‘사심이 없거나’ ‘비이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완벽한 미덕(어떤 미덕을 추구하는 단편적인 충동이 아니라을 지녔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 미덕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당신의 미덕을 떠받든다. 사람들은 근면한 사람을 칭찬한다. 그가 바로 그 근면 때문에 자신의 시력을 해치고 정신의 독창성이나 참신함을 상실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몸이 망가질 때까지 일한청년을 칭찬하고 애석해하길 마지않는다.

자신의 성공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순종적인 도구 – ‘부지런한 인물’ – 가 죽음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P193

‘주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익을 얻기 때문에 사심 없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사심 없는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자신들을 위해 투여된힘의 소모나 손해를 거절하고 그런 경향에 저항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그것을 선이라 부르지 않음으로써자신의 사심 없음을 알릴 것이다.

오늘날 매우 존경 받는 특정 도덕의 근본적 모순이 드러난다. 이 도덕의 동기는 그 원리와 충돌하고 있다! 이 도덕을 증명하려는 바로 그 대상이, 도덕을 그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 반박하고 있다. ‘당신은 자신을 내버리고 희생해야만 한다는 명제가 그 도덕 자체와 모순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직 다음과 같은 사람의 입에서만 선포되어야 한다. 바로 자신의 이익을 내버리고 희생이라는 요구에 따라 스스로를 파멸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또는 사회이 이타주의를 이익을 위해 장려하는 순간 정반대의 명제, 설사 다른 모든 사람에게 불이익을 초래할지라도 당신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명제가 성립한다. 결국해라하지 마라가 동시에 주장되는 것이다!

 

P194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은 나에게 존경을 바칠 테지만,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나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P195

민족 본디의 보편적 신앙은 색이 바래서 무력해진다. 이윽고 미신은 이류 자유사상이 된다. 미신을 좇는 자는, 기분 내키는 형식이나 방식을 선택하며 또 그런 선택의 권리를 허용한다. 미신적인 인간은 종교적인 인간에 비교할 때 훨씬인격적이다. 따라서 미신적인 사회는, 많은 개인과 개인적인 것에 대한 긍정이 이미 존재하는 사회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신은 언제나 신앙에 대한 진보로서 우리는 이러한 미신이 계몽의 징조임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p196

 부패의 징후

도덕이 땅에 떨어지며 저 폭군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출현한다. 이러한 자들은 개체의 선구자들로서 이른바 개체의 조숙한 첫아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열매 중의 열매는 노랗게 익어 민족이라는 나무에 붙어 늘어진다.

 

p197

 나폴레옹이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는 것 일체에 대하여 나는 언제라도 변함없이 그것이 나다라고 대답할 권리가 있다.

 

p199

 속세를 떠난 사람

그는 긍정의 인간이다. 그것은 그가 세상을 체념하더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긍정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p201

 상업과 귀족

팔고 사는 일이 없는 사회, 이러한 매매 기술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져 버리는 사회를 생각해 보자. 어쩌면 이곳에선 일반 사회의 법칙에 복종하지 않는 소수자가, 감각의 사치로서 매매하는 일을 멋대로 할지도 모른다. 그때 비로소 상업은 고귀성을 획득하는데 그러면 귀족은 마치 과거에 전쟁이나 정치에 즐겨 매달렸던 것처럼 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정치에 대한 평가는 그때 완전히 일변해 버릴 것이다. 지금은 이미 정치가 귀족의 전업이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람들이 정치를 모든 당파문학이나 통속문학에 그랬듯이 정신적 매음이란 꼬리표를 붙여도 될 만큼 비속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p203

, 그것은 완만한 죽음이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나는 그토록 많은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나는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어야 했다. 그러면 그들이 영원토록 죽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나의 눈은 그럴 수 있을 만큼 실로 훌륭하지 않은가. 이토록 뛰어난 관찰자가 나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다니

 

p205

 산업문화는 그 현재 형태로 볼 때, 지금까지 있었던 것들 중 가장 비속한 생활양식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짐승 같은 궁핍의 법칙에 좌우된다. 살고 싶은 인간은 자기를 팔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이 궁핍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을 사들이는 자를 경멸한다.

 

 p206

 인간의 기품이라는 것이 즉각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 기품은 오랜 세월에 걸친 과실로서 존중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러나 고상한 풍채 없이 손만 불게 살찐 악명 높은 공장주의 속물근성은 단순한 우연과 행운이 한 사람을 다른 사람 위로 밀어 올린다는 느낌을 비속한 자들에게 안겨 준다. 그래, 그렇다면그들은 진심으로 생각한다.- 우리도 우연과 행운을 시험해 보자! 우리도 주사위를 던져 보자. – 이리하여 사회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p206~207

 일과 권태

그런데 일의 기쁨 없이 노동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람도 있다.

독특한 인종에 속하는 이가 여러 부류의 예술가와 명상가이다. 또한 일생을 사냥, 여행, 연애, 모험에 소비하는 한가로운 사람들도 그러하다. 이들 모두는 그것이 쾌락과 관계될 때만 그리고 필요할 때만 육체적 고통이나 힘들고 가혹한 일을 감당하려고 한다.

 

권태를 여러 방법으로 우리 몸에서 내쫓는 일은 즐거움 없는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천박하다.

 

p207

 법률이 말하는 것

와하비파에서 죽을 죄는 다만 두 가지뿐이다. 와하비파의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믿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 그러면 살인이나 간통은 어떻습니까? 라고 이런 법률을 발견한 영국인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신은 인정이 많아 관대하시네!’ 라고 늙은 추장은 대답했다.

 

 p208

 에피쿠로스

나는 에피쿠로스에 관하여 무엇을 듣고 읽는 데에서 고대 오후의 행복을 음미하게 된다. 햇볕을 흠뻑 쬐는 바닷가의 절벽 위에서 에피쿠로스의 눈은 그 너머에 광대하게 펼쳐져 희게 빛나는 바다를 보고 있다.

 

 p209

 우리의 경탄

기적적인 것은 가끔 규칙과 영원성에 진저리 난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었다. 지반을 잃어 버리는 것! 둥둥 떠돌아다니는 것! 헤매는 것! 미치는 것! 그것은 과거 시대의 낙원이며 건전하지 못한 쾌락의 일부분이었다. 반면 우리의 행복은 물에 빠진 자가 뭍에 올라가 반갑고 든든한 땅 위에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데 경탄하며두 다리로 서 있는 행복과 유사하다.

 

 p210

고통의 지식

아마도 인간이나 시대는 다름 아닌 고통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가장 잘 구분될 것이다. 즉 정신의 고통에 따라서 또한 육체의 고통에 따라서.

 

그 시대에 인간은 끊임없는 육체적 고통과 결핍으로써 충분히 단련되었다. 인간은 자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잔혹이나 더 나아가 스스로 부과한 고통의 훈련을 통해 필요한 자기보존의 수단을 얻었다.

 

 p211

염세철학과 극심한 민감함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진정한 현재의 고통으로 생각되지만에 대한 처방은 당연히 있다. ‘고통에 대한 처방은 고통이다.’

 

p211

 우울한 사람의 유머

 

p212

 고독화의 논거

이러이러한 것은 네가 속한 사회의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는 감정. 그들 아래에서 교육받고 또 그 사람들을 위해 교육되었는데 그런 그들에게서 냉대를 받고 험한 말을 듣는다면 아주 강한 사람이라도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를 무섭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독해지는 것, 개인이나 여러 가지 일을 위한 최선의 논거마저 파괴해 버릴 논거로서의 고독화! 우리 내부에 있는 군집본능은 그렇게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p212

 사람들은 나쁜 평판보다도 양심의 가책을 훨씬 쉽게 처리한다

 

 p213

 선이 시작되는 곳

눈이 침침해질수록 선의 범위는 광대해진다. 거기에서부터 민중이나 아이들의 한결 같은 명랑함이 생겨난다. 거기에서부터 위대한 사상가들의 암울함과 양심의 가책과 비슷한 우울도 생겨난다.

 

 p214

 최후의 고귀함

고귀함의 비밀은 고귀한 사람을 엄습하는 열정이 특수하다는 사실이다. 고귀한 사람은 이 특수성을 모르지만 이런 기이하고도 특수한 척도에 따라 거의 광기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p221

2

 리얼리스트들에게

모든 감정에, 모든 감각적 인상에 이 오래된 사랑의 한 조각이 있다. 마찬가지로 얼마간의 환상 선입관, 부조리, 무지, 공포, 그 밖의 모두가 그것에 섞이고 엮여 있다. 저편의 저 산, 저 하늘의 저 구름, 도대체 그 어디가 현실적인가?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것이 없다. 역시 너희에게도 없다. 냉철한 인간들아, 우리는 너희가 생각하듯이 서로 그렇게 무관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p222

 오로지 창조자로서!

처음엔 가상이었던 것이 결국에는 언제나 본질이 되어 본질로서 작용한다! 여기서 본질로서 인정되는 세계, 이른바 현실을 멸망시키기 위해 그 기원과 모호한 망상의 덮개를 지적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는 오직 창조자로서만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

 

 p223

 우리 예술가

아직도 너무나 잘 꿈꾸는 법을 알고 잇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열망하기만 하면 즉 느끼기만 하면 갑자기 꿈꾸는 정신과 힘이 우리를 덮친다.

 

p224

 여성들과 원격 작용

가장 아름다운 범선에서도 많은 잡음이 있으며 또한 유감스럽게도 온갖 잡다하고 가련한 소음이 있다. 여성들의 매력과 그 가장 강력한 작용은 철학자의 말을 빌려 말하면 원격작용인 것이다. 그러나 그 작용에는 우선 필요한 것이 있다. 거리라는 것이!

 

 p225

 사랑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정욕조차도 허락한다.

 

 약자의 강함

모든 여성은 자신의 약함을 과장하는 데는 교묘하다.

 

p226

 의지와 승낙

여자의 모든 결함을 남자가 보상하고 고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멋대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여성은 그 이미지를 흉내 내어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p228

 여성의 정결에 대하여

아내들은 남편을 자기들 명예의 의문부호로 느끼고 자식들을 이에 대한 변명 또는 속죄로 여긴다. 그녀들은 남편이 자식을 원하는 것과도 전혀 다른 의미에서 아이가 필요하다. 요컨대 우리는 여성들에게 아무리 상냥히 대해줘도 지나침이 없다.

 

p230

 최대의 위험

광기의 폭풍우는 결코 느끼고 보고 듣는 일에서 발생하는 자유분방한 정신의 돌발이며 두뇌의 방탕한 향락이며 인간의 무분별을 즐기는 처사이다.

 

 p231

 양심을 아프게 하지 않는 동물

동물도 인간에 뒤지는 일 없이 그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동물도 자유롭게 뛰어다녀도 좋다. 그리고 친애하는 인간이여, 그대도 결국 동물이다. 어떻게 표현해도 그렇다. 나는 이것이 당면한 문제의 도덕이며 남국적인 인간성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p233

 예술과 자연

본디 정열이라는 것은 지극히 말 수가 적은 것이다. 침묵하여 낭패하는 것이다. 또는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올 때는 더없이 혼란하여 그 부조리 대문에 스스로도 수치를 느끼는 것이다!

 

p236

 번역

로마는 또 얼마나 고대적인 그리스의 훌륭하고 고귀한 모든 것에 난폭하고도 단순한 방식으로 손을 댔던가. 그것을 얼마나 제멋대로 로마의 현재로 해석했는가.

 

 p237

 시의 기원에 관하여

만약 우리가 어떤 시대에든 이익이라고 하는 것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존중해 왔다면 대체 시는 어디에서 유래되었단 말인가

 

p238

 어원상 선율 melos 은 진정제를 의미한다. 그 자체가 평온한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p241

 극장에 관하여

그것이 도취를 낳는 수단이다. 유럽인이 대마초를 피우고 빈랑자 (마약의 일종를 씹는 것과 같은 극장과 음악이여. 누가 우리에게 마취제의 모든 역사를 이야기할 것인가. 그것은 거의가 교양의 역사, 이른바 고등 교육의 역사인 것이다.

 p243

 빛과 그림자

책이나 기록 같은 것들은 사상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상가는 책 속에 빛을 모은다. 그의 마음 속에 번쩍였던 인식의 광선으로부터 재빨리 훔쳐 낸 빛을.

다른 사상가는 우리에게 그림자만을 줄 뿐이다. 낮 동안 그의 마음속에 쌓아 놓았던 것의 검은색이나 회색 잔상을 재현하는 것이다.

 

 p243

 조심

그는 마침내 숭고함의 엄격한 형식을 발견해 내고 그 속에 그의 삶과 기억을 강제로 짜 맞추었다. 이 모든 일에는 심한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나는 플라톤 자신이 쓴 자서전도 전혀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루소의 자서전이나 단테의 신생도 마찬가지다.

 

p244

 산문과 시

산문의 대가들은 거의 항상 시인들이었다공공연하게는 은연중에는 또는 단지 침실에서만든 간에는 사실을 주목하라. 실제로 사람들은 좋은 시를 마주 대했을 때에만 좋은 산문을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산문은 시에 대한 끊임없는 우아한 전쟁이기에

 

p245

 그렇다면 도대체 당신은 왜 쓰는가?

B : 아니, 그렇다면 당신은 왜 쓰는가?

A : 그런데 나의 친구여, 솔직히 말한다면 여태까지 나의 생각들을 털어버릴 다른 어떤 방식도 발견해 내지 못했다.

B : 왜 당신은 생각들을 털어 버리고자 하는가?

A : …나는 어쩔 수 없기에….

 

p247

 작가의 수다스러움에 대하여

분노에서 나오는 수다스러움이 있다. 이것은 쇼펜하우어나 루터다. 칸트처럼 개념적 공식들의 풍부한 저장량 때문에 수다스럽게 되는 사람도 있다. 좋은 말과 언어형식에 대한 쾌락으로부터 나오는 수다스러움, 이것은 괴테의 산문.

 

p250

 쇼펜하우어의 제자들

하나의 의지에 관한 증명 불가능한 설 : 모든 원인은 단지 그 시기 그 장소에서 의지 표상의 기회원인에 불과하다. 삶에 대한 의지는 가장 미미한 존재물 속에 이르기까지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게 완벽히 존재하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내면을 총괄하는 완벽함으로

 p252

 정열은 스토아주의나 위선보다 낫다. 악에 대해서도 진솔한 것은 전통적인 도덕에 열중해 스스로를 잃는 것보다 아직은 낫다.자유로운 인간은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잇다. 그러나 부자유한 인간은 자연에 대해 수치이며 천상 또는 지상의 위안을 공유하지 못한다. 결국 자유로워지고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노력으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자유는 기적적인 선물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p257

 독일어의 음향에 관하여

외국인의 귀에 반감과 혐오감을 주는 악센트가 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그것을 참아 낸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참아 내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인 감사

우리의 이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저 사물을 초월하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화려하고 가볍고 춤추고 조롱하는 어린애 같고 기쁨에 찬 예술을 필요로 한다.

 

p259

우리는 도덕을 초월해야만 한다. 또한 당장이라도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의 염려스러운 긴장을 느끼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을 초월하여 춤추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광대 없이는 못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술 없이 살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 아직 얼마간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동안은 아직 우리의 동지가 아니다.

 

p269

3

 새로운 투쟁

붓다가 죽은 뒤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수 세기 동안 동굴 안에 그의 그림자를 안치했다. 거대하고 섬뜩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그러나 인간의 세상이기에 분명 앞으로도 수천 년에 걸쳐 신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온갖 동굴이 존재하리라. 그리고 우리는 계속 신의 그림자를 정복해야만 한다.

 

 p270

 경계하자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이 별의 질서는 하나의 예외다. 그리고 이 질서와 그에 따라 제약된 상당 기간의 지속이 예외 중의 예외인 유기체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 반하여 세계의 전체적 성격은 영원한 카오스 다. 그것도 필연성의 결여라는 뜻에서의 혼돈이 아니라. 질서, 조직, 형식, , 지혜, 기타 모든 우리의 미적 인간성의 형용사, 즉 미적 신인동형론의 결여라고 하는 의미에서 혼돈이다. 우리의 이성으로 판단하건대 법칙이란 어떻게 보든지 실패한 시도들이며 예외가 숨겨진 목적은 아니다.

 

 

p270

 우주는 어떠한 법칙도 준수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그곳에는 단지 필연성만이 있을 뿐이다. 명령하는 자는 없다. 복종하는 자도 없다. 위반하는 자도 없다. 일단 그대가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연 또한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이라는 말은 목적의 세계와 비교할 때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삶과 반대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삶은 죽음의 한 형태, 그것도 매우 드문 한 형태이다.

 

 p272

 오늘날 사색가는 진리에 대한 충동과 생의 보존을 위한 오류들이 그 첫번째 투쟁을 벌이는 전쟁터와 같은 존재이다.

 

p273

 논리적인 것의 기원

따라서 그렇게 자세하게 사물을 보지 않았던 존재들은 유동속에서 모든 것을 보았던 사람들보다 유리했다. 사실 추론에서 고도의 주의와 모든 회의적 경향은 삶에 대해 큰 위험을 형성한다. 만약 반대의 경향판결을 보류하기보다는 차라리 확정하는 것,기다리기보다는 정도에서 벗어나 사물을 형성하는 것, 부정하기보다는 찬성하는 것, 공정함을 유지하기보다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특별히 강하게 양육되지 않았더라면 생명체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p274

 우리는 상을 넘어서거나 상 뒤에 도달하진 못한 채 단지 만들어진 상을 완성해 오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빌려서 조작하고 있다. , , 평면, 물체, 원자, 나눌 수 있는 시간들, 나눌 수 있는 공간들 따위가 그것이다. 우리가 먼저 모든 것을 하나의 상, 우리의 관념적인 상으로 바꿔 버리는데 어떻게 해명이 가능하겠는가!

과학은 되도록 충실하게 사물들을 인간답게 하려는 시도로만 여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p276

 군집본능

도덕성은 개인을 대중의 한 기능이 되도록 그리고 오직 그 기능으로서만 자신의 가치를 정하도록 훈련한다. 도덕성은 개인들 속의 군집본능이다.

 

 집단의 양심적 가책

인간이 자기 혼자서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혼자라는 것, 복종하지도 지배하지도 않는 것, 자기 힘으로 사물들을 경험하는 것, 개인이 되는 것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어떤 개인적 의향보다 군집본능이 더 많이 표현되면 될수록, 인간은 더욱더 자신을 도덕적이라고 느꼈다.

 

 삶은 결코 논거가 될 수 없다. 삶의 조건은 오류를 포함하는지도 모른다. p278

 

 p281

 무한의 수평선에서

그러나 바다는 무한하다. 그리고 무한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 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아아, 자유를 느꼈던 불쌍한 새여, 지금은 무한이라는 새장의 벽에 부딪히고 있구나. 아아, 마치 대지가 더 많은 자유를 제공했던 것처럼 네가 대지에 대한 향수를 느낄 때, 더는 어떠한 대지도 없다.

 

 광인

신이 어디로 가셨느냐고? 그는 소리쳤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마! 우리가 신을 죽였다. 너희와 내가 말이다. 우리 모두가 그의 살해자다.

우리는 끊임없이 돌진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뒤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어떤 위아래가 있는가? 우리는 마치 무한한속을 헤매듯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p282

 이 교회들이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기도의 가치

기도는 본디 자신의 사상이 전혀 없는 사람들, 영혼의 고양을 알지 못하거나 적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들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크고 작은 모든 종교의 시조들은 지혜를 짜서 기도문을 처방했다.기도는 오랜 시간 입술을 놀리는 기계적 움직임을 통해 손이나 발, 심지어 눈까지 고정된 자세로 있게 하며 기억을 위한 노력 역시 획일적으로 만든다. p284

 

 p285

 신의 조건

신은 현명한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루터는 말하였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신은 어리석은 인간 없이는 더더욱 존재할 수 없다. – 우리의 훌륭한 루터는 이 점을 말하지 않았다.

 

 위험한 결심

세상을 추하고 악한 것으로 보려는 그리스도교적 결심이, 세상을 추하고 악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스도교와 자살

이 두 가지 자살은 최고의 존엄과 최고의 희망으로 꾸며졌고 나머지 자살은 놀라운 방식으로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오직 순교와 고행자의 완만한 자살인 금욕만이 허용되었다.

 

 그리스도교에 반대하여

지금 우리를 그리스도교에 반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것은 우리의 취향이지 더 이상 우리의 이성이 아니다.

 

 죄의 기원

비극은 하나의 예술이요 쾌락이다.

 

 p287

 선택된 민족

이 비참함을 느끼지 않고 잊어버리기 위해 비할 데 없는 국왕의 영광과 권위와 권세- 오직 귀족만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를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특권으로 그들은 궁정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그 위치에서 모든 것을 자신의 발 밑으로 내려다 보았다. 모든 것을 경멸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양심의 가책을 넘어서 버렸다.

 

p.288

 비유로 이야기하자면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려 준 하늘에 이르는 사다리의 꿈을 꿀 수가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좋은 날씨든 햇빛이든 매우 평범한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질 뿐

 

 그리스도의 착각

그리스도교의 창시자가 말하기를 인간만큼 자신의 죄에 고통 받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착각이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느끼는 자, 죄의 최초 경험을 하지 못한 자의 착각이다.

 

p289

 너무나 유대적인

심판자는 비록 자비로운 심판자라 할지라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는 이 점에서 충분히 섬세하지 못했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동양적인

내가 너를 사랑한들 거기에 네가 주의를 기울일 일이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전체에 대한 충분한 비판이다.

 

p290

 종교전쟁

종교전쟁이란 각 종파간의 정교히 다듬어진 논쟁들이 일반 사람들의 이성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 때 생겨난다.

 

p291

 독일의 희망

루터는 말하였다. 여기에 내가 서 있다. 나에게는 이렇게 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질문과 대답

오늘날 야만족들이 유럽인으로부터 무엇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가? 유럽의 마취제인 독한 술과 그리스도교이다.

 

p293

 종교개혁의 실패

개인 또는 개인의 사상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으로 작용하면 할수록 영향 받는 대중은 더욱더 동질적이고 저급한 존재로 하락함이 분명하다.

 

p294

 시인으로서의 인간

나는 와전한 자력으로 이 비극 중의 비극을 지금까지 만들어 왔으며 도덕적 갈등의 매듭을 처음으로 현존재에 결부시켜 오직 신만이 그것을 풀 수 있도록 단단히 잡아매었다.

그리고 이런 내가 지금 제4막에서 모든 신들을 살해했다. 도덕을 위하여. 이제 제5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디서부터 비극적 결말을 끌어낼 수 있을까? 머지않아 희극적 결말을 생각해야만 하는가?

 

p295

 우리에게 결여된 것

우리는 위대한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발견해 왔다. 우리 머릿속에 위대한 인간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은 그 반대였다. 자연에 대한 그들의 느낌은 우리와는 다르다.

 

p296

 위대한 승리 뒤에

위대한 승리의 가장 좋은 점은 그 승리자에게서 패배의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져도 괜찮지 않을까? 나에게는 지금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있다.

 

p297

 어떤 병자

뭐가 됐든 이 몸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인간 따위는 사양하겠다.

 

p298

 깊이 있는 것과 깊이 있게 보이는 것

자신을 깊이 있게 알고 있는 사람은 명석함을 얻기 위해 힘쓴다. 대중에게 자신을 깊이 있게 보이려는 사람은 애매함을 얻으려 애쓴다. 대중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깊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많아서 물 속으로 들어가기를 꺼린다.

 

 p299

웅변에 대하여

지금까지 누가 가장 설득력 있는 웅변을 했는가? 바로 북 치는 사람이다.

 

 p299

 교육제도에 대하여

독일에는 상류층 사람들을 이한 중요한 교육수단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상류층 사람들의 웃음이다. 독일에서는 이들은 웃지 않는다.

 

 사고

사고는 우리 감각의 그림자이다. 사고는 감각보다 항상 더 애매하고 공허하며 단순하다.

 

p300

 

내 주위에 허수아비를 세워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을 당하겠다. 이것이 나의 취향이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취향의 문제이지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p301

  가난

그가 모든 것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자발적 가난을 오해하는 자야말로 가난한 자이다.

 

 p302

 솔직한 사람

그 사람은 항상 숨겨진 이유에 따라 행동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항상 제시 할 수 있는 이유를 입에 달고 다닐 뿐 아니라, 그 이유를 손바닥 위에 펼쳐 놓고 여봐란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p303

 칭찬

칭찬에는 항상 하나의 잡음이 따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칭찬할 때조차.

 

p306

 원인과 결과

우리는 결과 이전에는 결과가 나온 이후와 다른 원인을 믿는다.

 

 

 형벌의 목적

형벌의 목적은 형벌을 가하는 사람들을 선하게 만드는 데 있다. 이것이 형벌을 변호하는 자들의 마지막 도피처이다.

 

 시인과 거짓말쟁이

시인은 거짓말쟁이를 젖형제로 생각한다.

 

 p307

 동물의 비판

동물은 인간을 정신이상을 일으킨 동물로서, 웃는 동물로서, 우는 동물로서 불행한 동물로서 여기지나 않을까.

 

 p307

 중재자에 반대하여

두 명의 확고한 사상가를 중재하고자 하는 자는 평범이란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다. 그는 단 하나뿐인 독특한 것을 보는 안목이 없다. 모든 사물을 비슷한 것인 양보는 것. 똑 같은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 이러한 것은 허약한 눈의 특징이다.

 

p308

 침묵의 결여

그의 인격은 전체적으로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 자기가 한 선행에 대해 전혀 침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꿈꾸는 것

꿈을 전혀 꾸지 말든가 아니면 재미있게 꿈을 꾸든가 해야 한다. 깨어 있을 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아예 깨지 말든가. 아니면 재미있게 깨어 있든가.

 

p309

 바다에서

만일 집을 가져야만 한다면 많은 로마인들이 그랬듯이 바다 가운데로 뚫고 들어가 집을 세울 것이다. 나는 바다라는 이 아름다운 괴물과 몇 가지 비밀을 함께 나누고 싶다.

 

 p310

 선과 악의 기원

이것은 좋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개선이라는 것을 고안해 낸다.

 

p312

 항상 집에 있다.

어느 날 우리는 목적지에 이르러 자부심을 느끼며 우리가 거쳐 온 기나긴 여행길을 가리킨다. 사실상 우리는 자신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먼 곳까지 도착한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집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313

 낙원으로부터

선악은 신의 편견이다. – 뱀은 이렇게 말했다.

 

 

 독창성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의 눈앞에 있지만 아직 이름이 없으므로 불릴 수 없는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있는 평범한 것, 그것은 이름이 없어 비로소 사물로서 보이는 것이다. – 독창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명명자 들이기도 했다.

 

 

 영원에 관한 견해

A: 너는 살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매우 빨리 멀어져 가고 있다. 그들은 곧 네 이름을 자기들의 명부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B: 그것이 죽은 자의 특권에 참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A: 무슨 특권?

B: 더 이상 죽지 않을 특권

 

 p315

 네게 가장 인간적인 행위란 무엇인가

누구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

 무엇이 자유의 징표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4부 성 자누아리우스

p323

 새해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아직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야만 하고 나는 아직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사물의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범을 배우고자 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이것이 앞으로 나의 사랑이 될지어다.

 

요컨대 언젠가 나는 긍정만 표시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p324

 인격적 섭리

가장 현명한 신도 이때 우리의 바보스런 손이 만들고 있는 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을 고안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p325

 죽음에 대한 사상

오직 죽음과 죽음의 침묵만이 이러한 미래에 모두에게 확실하고 공통적인 것이다. 이 유일하게 확실하고 공통적인 것이 인간들에게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자기를 죽음의 형제로서 털끝만큼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인간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백배로 생각할 만한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기꺼이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다.

 

 별들의 우정

우리는 저마다 목표와 진로가 있는 두 척의 배다.

우리가 서로 서먹서먹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법칙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위해 더욱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로써 더욱 신성해질 지난날 우정의 추억을 위해서도.

 

p326

 지식 추구자를 위한 건물

교회가 사색의 독점권을 쥐고 있던 시대.

 

p327

 걸음걸이

길고 무거운 의상과 같은 문장들을 정력적으로 중첩해 쓰기를 즐기는 작가들을 볼 때면 나는 웃음이 난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발을 감추려고 애쓴다.

 

 p328

 보다 높이 excelsior

그대는 머리 위에 만년설이 있고 가슴에 불길을 짊어진 산악에 대한 조망도 없이 살아가리라

 

p333

 도덕의 설교자에게

도덕을 설교하는 인간에게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싶다. 만일 그대가 최상의 사물과 상태로부터 그 모든 명예와 가치를 빼앗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것들에 관해 계속 설교하라.

나는 나에게서 신을 없애게 해 줄 것을 신에게 간청한다.

 

 p335

 자연의 비방자에게 반대하여

날고 싶은 곳을 향하여 망설임 없이 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고귀함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주위에는 항상 자유와 햇빛이 있을 것이다.

 

p336

 단기적 습관

지속적인 습관이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사태에서 나는 내 신변의 공기가 나를 짓눌러 오는 것처럼 느낀다.예컨대 관직이나 또 같은 인간들과 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것, 고정된 주거, 변함없는 건강 등이 그런 것들이다.

 

 p337

 고정된 평판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난 몇 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정신의 역사 속에서는 인식 추구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움을 당했을 것이며 수많은 자기 경멸과 남모를 비참함이 그 안에 포함되었음이 틀림없으리라

 

 p342

 행동함으로써 내버려 둔다.

그의 눈은 단호하게 그의 목표에 고정되어 옆도 뒤도 아래로도 향하지 않고 앞만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가 내버려 두는 것을 결정한다. 우리는 행동함으로써 내버려 둔다.

 

 극기

입을 열 때마다 무조건 자신을 통제하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저 도덕 교사들은 그로 인해 인간들을 특수한 병에 걸리게 한다. 곧 모든 자연스러운 흥분이나 애정에 대한 끊임없는 신경질과 하나의 간지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어떤 본능이나 자유로운 날개짓에 맡기지 않는다.

 

 p343

 비판을 위하여

우리가 어떤 것을 비판할 때 이것은 자의적이거나 비개인적인 일이 아닌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 안에서 생생히 활동하며 피막을 찢는 활기찬 힘의 증거이다. 우리는 부정하고 부정해야만 한다.

 

p345

 의지와 파도

흡사 누군가를 앞지르기라도 하려는 듯이 마치 가치 있는 가장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 거기에 숨겨져 있기나 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제 파도는 다소 천천히 그래도 아직 흥분하여 하얀 거품을 내며 되돌아오고 있다. 실망했는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는가?실망한 척을 하고 있는가? – 그러나 이미 또 다른 파도가 처음 것보다 더 탐욕스럽고 야만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파도는 산다.

 

p350

 비유

모든 별이 순환궤도 위에서 움직인다고 보는 사상가들은 가장 심오한 사상가가 아니다. 자기 내면을 마치 끝없는 우주 공간을 보듯이 들여다보며 그 내면에 은하수를 간직한 자는 누구든지 또한 모든 은하수가 얼마나 불규칙한지를 알고 있다. 이들은 현존재의 혼돈과 미궁 속 깊숙한 곳으로 인간을 안내한다.

 

 운명이 주는 행복

운명이 우리에게 가장 큰 경의를 표하는 경우는 우리를 잠시 적의 편에 들어가서 싸우게 만들 때이다. 그로써 우리는 위대한 승리에 이르도록 이미 예정된 것이다.

 

p351

 위대함에 속하는 것

인간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하는 힘과 의지를 자기 내면에서 발견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대한 것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p353

 어리석음을 공격하다

이기주의는 비난할 만한 것이다라는 끈질기게 주장된 믿음이 크게 보아 이기주의를 공격해 온 것은 사실이다. (군집본능을 위해

‘네 이기심은 네 삶의 재난이다.’ 이것이 몇 천 년 동안 설파돼 온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 설교는 이기심을 공격하고 그것으로부터 많은 재능, 많은 명랑, 많은 독창력, 그리고 많은 아름다움을 빼앗아 갔다. 그것은 이기심을 어리석은 것, 추한 것, 해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한가함과 여가

사람들은 마치 언제나 무엇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하라. 이 원칙이 모든 문화와 고상한 취미의 맨 마지막 숨을 끊어 버렸다.

 

 p354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여유를 위한 시간과 능력이 더는 없다. 왜냐하면 이익을 좇는 삶이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기만하고 계략을 짜내고 남을 앞지르는 일에 언제나 정신을 기진맥진하도록 소모해 버릴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정한 미덕은 어떤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해치워 버리는 것, 그것이다.

 

 

 과거에는 사정이 달랐다. 고귀함과 명예는 오직 여가와 전투에만 있었다.

 

 p357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결국 생소한 것에 대해서 우리의 선의와 인내, 공정함, 부드러움을 베푼 보상을 받는다. 우리는 사랑도 배워야만 한다.

 

 고뇌에 대한 의지와 동정자들

다른 사람의 고뇌로부터 개인 고유의 특징적인 요소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 동정이라고 하는 감정의 본질이다.

 

p362

그는 나 또는 너의 그 고통스러운 불행의 내적 경위와 착잡함의 전모를 전혀 모른다. 내 영혼 전체의 경제 economy 와 불행으로 말미암은 그 결산, 새로운 원천과 요구의 분출, 오랜 상처의 유착, 모든 과거의 거부이러한 불행과 연관되어 있는 전체를 동정자들은 마음에 담지 않는다.

 

p365

 삶은 아름다운 가능성의 황금실로 짜인 베일약속하고 거부하고 수줍어하며, 냉소적이고 동정적인 또 유혹적인로 싸여 있다. 그렇다. 삶은 여성이다.

 

 

5부 우리 두려움 모르는 존재들

 p378

 진리를 향한 의지그것은 죽음에 대한 의지일지도 모른다.

, 자연, 역사가 비도덕적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도덕은 존재하는가?

신 자체도 우리가 꾸며 낸 가장 오래된 허위임이 입증된다면?

 

p380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누구냐? 우리는 자신을 단순히 진부하게 그저 무신론자, 불신자 또는 비도덕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그런 호칭이 알맞은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말기 단계에 이른 위의 세 가지(무신론자, 불신자, 비도덕주의자를 결합한 자이다.

 

p381

 불신이 많으면 그만큼 철학도 많다.

 

 p383

 신앙은 의지가 결여된 곳에서는 항상 가장 심하게 기대되고 긴급히 요구된다.

이 두 종교는 의지가 닳아 없어진 시기에 열광주의의 선생이 되었다. 왜냐하면 열광주의는 약하고 불안정한 자조차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의지력이기 때문이다.

 

p388

 종교의 기원에 관하여

종교 창시자들이 본디 창안한 것은 생활에 하나의 해석을 부여하는 것. 그 해석으로 생활에 최고의 후광이 비치게 하고 그 결과 바야흐로 그 생활을 인간이 그것을 위해 싸우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까지 포기하는 귀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p389

 부처는 그러한 종류의 인간들이 불가피하게 그야말로 타성의 힘 때문에 지상의 노고의 반복을 방지하겠다고 약속해 주는 신앙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부처의 천재성이었다.

 

p390

 의식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생각건대 의식의 정밀함과 강함은 항상 인간 또는 동물의 전달능력에 비례하며 그 전달능력은 또한 전달의 필요성에 비례한다.

의식 일반은 오로지 전달의 필요에서 오는 압력 때문에 발전된 것이다.

 

p391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을 되도록 개인으로서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는 최선의 의지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비개인적인 것, 평균적인 것만을 인식하는 데 그칠 뿐이다.

 

 인식이라는 개념의 기원

사람들은 대체 인식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는가?

곧 어떤 낯선 것을 친숙한 것으로 환원하는 일.

모든 낯선 것, 익숙하지 않은 것, 의심스러운 것 속에서 이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 않을 어떤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아닐까? 우리에게 인식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사실 두려움의 본능이 아닐까?

 

p392~393

그런데 습관적인 것은 인식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낯익지 않은 것으로서 멀리 있는 것으로서 우리 밖에 있는 것으로서 바라보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다.

 

 

 p395

 유럽은 어느 정도까지 예술적이 될 것인가?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사회를 이루는 재료가 아니다. 이것이 이 시절의 진리다.

 

p396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이 세 명의 철학자가 제시한 세 개의 명제는 독일적 자기인식, 자기경험, 자기 파악에 나타나는 깊이 있는 사고의 한 조각이다.

 

 p398

 도대체 인간의 실존에는 의미가 있는가? 그것의 가장 깊은 의미까지 완전히 듣는 데만도 몇 세기가 필요한 문제이다.

 

 p400

 정신의 농민혁명

오랜 세월 세워져 온 그리스도교와 같은 작품, 물론 한번에 모두 파괴될 수는 없었다. 지진이 그 유형물을 흔들어 대고 모든 유형의 정신이 거기에 구멍을 뚫으며 파고 그것을 갉아먹으며 축축하게 적시며 파괴에 힘을 빌려 주어야만 했다.

 

 p402

 정신의 천민주의

 

p403

 정신에 대한 복수 그리고 도덕의 여러 다른 배경들

정신적인 인간을 뛰어넘을 만큼 우월해 보이는 외관을 만들어 내며 적어도 그의 상상 속에서 성취된 복수의 즐거움에 이르는 데 필요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그대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언제나 도덕성이다.

 

p406

 배우 문제에 대하여

몸을 맡길 때조차 그녀들은 무언가를 상연한다는 것, 여성들은 그토록 예술적인 것이다.

 

 양성은 사랑에 대해 저마다 어떤 선입견이 있는가

조건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녀의 사랑은 믿음이다.

여자처럼 사랑하는 남자는 노예가 된다. 반면 여자처럼 사랑하는 여자는 더욱더 온전한 여성이 된다.

 

p407

여성은 소유물로서 여겨지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소유물과 소유된다는 개념으로 변해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주거나 포기하는 남자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남자를 원한다.

 

p409

 길조차 생각에 잠긴 것 같은 길가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p413

 냉소주의자들은 말한다.

극장에서 사람들은 모두 민중이며 청중이며 무리 부녀자, 바리세인, 위선자, 민주주의자, 이웃, 동포 등 보통사람이 된다. 그곳에서는 가장 개별적인 양심도 최대 다수의 평준화하는 마력에 굴복하게 된다.

 

 p416

 낭만주의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창조 작용을 하는 것은 굶주림이냐 풍요로움이냐? 즉 창조 원인은 고정되고 불변하고자 하는 욕망,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인가? 아니면 파괴, 변화, 새롭고 기이함, 미래, 생성하고자 하는 욕망인가 하는 문제에 주목하는 것이다.

 

p420

 편견으로서의 과학

본질적으로 기계론적 세계는 필연적으로 무의미한 세계다. 한 음악이 얼마만큼 계산될 수 있는가, 세어질 수 있는가,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평가된다고 가정하자. 그러한 음악의 과학적 평가는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대체 음악의 무엇을 파악하고 무엇을 이해하고 인식했다는 것인가. 하나도 여기에 진짜 음악은 실제로 하나도 없다.

 

p421

 우리는 왜 에피쿠로스파로 보이는가

우리는 아직도 난폭한 미친 짐승에 타고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주저의 빛을 보인다 해도 이때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것은 결코 위험한 것이 아닐 터이다.

 

p424

 소국으로 분열된 유럽을 영구화하려고 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p427

 이해 문제에 대하여

그들은 또 확실히 이해되지 않을 것도 바라고 있다. 누군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도 그것은 책에 대한 항의는 전혀 아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지은이 의도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포겔프라이 왕자의 노래들

 

 시인의 소명 중에서

 

나는 이 숲 속에서 무엇을 기다리는가

강도처럼 매복하고서 누구를 기다리는가

격언을? 비유를? 갑자기

내 시의 운율이 그 뒤에서 덮쳐 온다.

몸부림치는 그 운율을

시인은 시구로 요리하지.

- 물론, 친구여, 그대는 시인이랍니다.

딱따구리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남쪽에서 중에서

 

이성이라고! 그것은 불쾌한 것하나의 홍수다.

그것은 우리를 너무 빨리 목적지에 데려간다.

나는 하늘을 날며 나를 우롱하고 있던 것들을 깨달았다.

벌써 새로운 삶, 새로운 놀이를 위한

용기와 피와 활력을 느낀다. p441

 

 신앙심 깊은 베파 중에서

 

내가 아름다워 보이는 한

신앙심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우리는 알고 있지. 신은 젊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특히 그녀가 아름답다면 더더욱.

나의 가련한 작은 수도사여,

신은 그대에게 기꺼이 허락하실 것이다.

 

기꺼이 용서하시는 신께.

내가 아름다워 보이는 한

신앙심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

내가 늙어 비칠거리는 노파가 되면

악마가 나를 사랑해 주리라! p443

 

p444

 

 사랑고백 중에서

 

오 놀라워라! 그는 아직도 날고 있는가?

그는 높이 높이 올라간다. 그의 날개는 움직이지 않는데도~

무엇이 그를 그토록 높이 띄워 올리는가

무엇이 그의 목표이면 진로이며 의지인가

 

별처럼 영원처럼

이제 그는 생명마저 뛰어넘는 높은 곳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의 질투조차 동정하면서

그저 떠도는 듯 보이지만 그는 사실 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p452

 북서풍에게 바친다 중에서

 

우리는 끝없이 변화하며 춤을 추리라.

자유로워라우리의 예술이여

즐거워라우리의 지식이여

 

모든 꽃들로부터

한 송이 정화를 피워 내라. 우리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화관을 휘감는 두 개의 잎을 피워 내자.

마치 음유시인처럼

성자와 매춘부 사이에서

신과 세상 사이에서 춤을 추자!

 

바람과 같이 춤추지 못하는 자들

기저귀나 차야 할 허약한 인간들

불구자, 늙고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들

얌전한 척하는 자들

허영에 찬 녀석에 수다스런 도덕가들,

너희는 우리 천국에서 썩 꺼져라!

 

 

3. 내가 저자라면


인생 처음으로 니체를 읽었다. 


니체는 통쾌하다. 소크라테스부터 칸트와 기독교 등, 당대까지 이어오는 지식사회와 도덕규범 사회의 모든 권위와 중심들을 낱낱이 발가벗긴다. 발가벗긴 것 뿐만 아니다. 너희들이 진리라고 외치는 것이 얼마나 허구이며 진실하지 못한지 드러낸다. 대충 욕하다 마는 술부정뱅이나 정신병자의 헛소리가 아니다. 맑스와 더불어 왜 니체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인지 수긍이 간다. 철학은 허위의식을 벗겨야 한다. 이 점에서 니체만큼 철저했던 철학자는 없었다. 


니체를 읽으며 사장 궁금했던 부분이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명제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니체는 신의 죽음에 분노했다. 신을 죽여 놓은 인간들이 그럼에도 신을 자신들이 죽인지도 모르고 엉뚱한 껍데기 신, 또는 신의 대체제를 섬기는 모양새가 얼마나 분통한 일인지 고함치며 짱돌을 던진다. 당대의 사회정신을 마치 돌을 깨듯 글이라는 무기로 저항한다. 


비유하자면 신을 죽인 살인자는 칸트일 것이고, 신의 죽음을 세상에 알린 검시관은 니체일 것이다. "세상사람들아, 너희는 이미 신을 죽였다. 그러니 제발 생명력 없는 신의 허울을 종교니 도덕이니 둔갑시켜 사회를 지배하려 하지 말라!"고 니체는 소리친다. 


신 없는 세상에서 결국 한 층 고양된 삶, 자신의 중심을 잡고 세상과 맞설 '초인'의 삶을 살 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니체는 평범한 인간과 초인 사이에서 외줄을 타며 인간들에게 소리친다.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고 선언한다. 


비록 철학자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니체에게 논증을 바라면 곤란하다. 오로지 선언과 외침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깨어있으라 외치는 김수영의 폭포처럼, 세상이 얼마나 허위와 거짓투성이인지 온몸을 던져 글을 쓰는 장정일처럼, 니체는 지금도 서양 정신사에 외로운 봉우리로 우뚝 솟아 우러러 보는 우리 우매한 인간들을 가르친다. 


내가 니체라면, 저렇듯 처절히 몸을 던졌을까? 내가 니체였다면, 저렇듯 기존 도덕체계와 철학체계에 도전했을까? 기품과 명예를 유지하며 적당히 선을 그어가며 애둘러 비판했을 것이다. 


철저히 또 철저히 진실을 추구하여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니체. 마치 만년설이 뒤덮힌 에베레스트 산봉우리 처럼 여전히 차디차게 소리치고 있다. "신은 죽었다. 바로 우리가 죽였다. 이제 우리가 갈 길은 명확하다. 운명을 사랑하다. 고통의 운명 한가운데로 나아가 낙타에서 사자로 변하라. 자유롭게 살라. 그리고 망각하라. 모든 과거를 잊고 어린아이로 새어태어나 창조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라. 피안의 세계가 기다리는 바보짓을 그만 두라. 지금 바로 이순간 충만하게 살라. 사랑하며 살라. 저 별처럼 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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