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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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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7일 10시 03분 등록

며칠 전 전라남도 강진에 위치한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다녀왔습니다. 세 번째 방문입니다. 처음으로 초당을 찾은 때는 2006년 4월입니다. 당시 구본형 사부와 첫 책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를 쓰면서 함께 왔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내 인생의 계절은 초봄이었습니다. 초당을 바라보고 오른쪽 끝에 있는 천일각(天一閣)에서 사부가 해준 말이 떠오릅니다.

 

“저 앞에 보이는 것이 강진만이다. 9개의 하천이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해서 구강포(九江浦)라 부르기도 한다. 관심사가 여러 개더라도 마침내 하나로 모여야 한다. 그래야 책이 되고 일이 된다.”

 

내가 아닌 함께 간 연구원 제자에게 넌지시 건넨 말이었지만 내 마음에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사부는 2000년 홀로 떠난 50일간의 남도 여행을 담은 <떠남과 만남>에서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선생에 대해 “몸과 영혼을 다하여 한 가지 일에 깊이 몰입하니 총명한 사람의 깨달음이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제자에게 해준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두 번째 방문은 2009년 7월, 홀로 떠난 여행 중에 이곳을 거쳤습니다. 사부의 여행을 어줍게 따라한 여행이었습니다. 사부는 50일을 걸었고, 나는 고작 5일을 돌아다녔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게 당시 내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여행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장소는 천일각입니다.

 

당시 나는 더위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천일각에 올랐습니다. 탁 트인 조망으로 구강포가 아련하게 보이고, 바람 소리는 파도 같았습니다. 이 소리는 몸보다 귀를 더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갑자기 휴대폰으로 책 출간을 축하하는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박승오 연구원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제자들이 책 출간 선물로 해준 이벤트였습니다. 이때 나온 책은 박승오 연구원과 함께 쓴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여는 법>입니다. 첫 책을 쓸 때 이곳에 처음 왔는데 네 번째 책 출간 소식을 여기서 들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때 나는 앞날을 생각했습니다. 내 삶에 봄이 찾아오기를 기대했습니다. 몇 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사부와 동료 연구원과 함께 또 한 권의 책 집필도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삶에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리라 예감했습니다. 돌아보면 이때 내 삶의 계절은 가을이었고, 나의 예감은 맞았지만 기대했던 대로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봄을 바랐지만 삶은 내게 겨울을 선사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6개월이 지나고 다시 천일각에 섰습니다. 두 번째 방문 때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이 별처럼 반짝이다 사라집니다. 사부가 떠오릅니다. 가슴 한편이 뜨거워집니다. 또 그때처럼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그때는 귀를 씻어주었는데 이번에는 눈을 맑게 해줍니다. 구강포 풍광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한참을 바라봅니다. 지금 이 순간,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도 필요 없습니다. 풍광이 마음에 스며들도록 나를 열어둘 뿐입니다.

 

마음속에서 다시 미래에 관한 생각이 꾸물꾸물 올라옵니다. ‘지금 내 삶의 계절은 무엇인가?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계절은?’ 여전히 겨울인지, 아니면 봄이 시작되었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봄이라면 찬란하면 좋겠고, 겨울이라면 어둡고 깊기를 바랍니다. 겨울의 긴 밤과 찬바람은 외부 세계의 일만은 아닙니다. 삶과 마음에도 겨울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둠과 추위를 쫓아다니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왕 겨울이라면 어둡고 춥기를 바랍니다. 겨울에 나무의 전모가 드러나듯이 내 마음의 실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춥고 어두웠으면 합니다. 그러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소의 나는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내 안의 누군가는 바라고 있습니다. 그 누군가를 만나고 싶습니다.

 

다산초당에 봄과 여름, 그리고 이번에는 겨울에 와 봤으니 다음에는 가을에 오고 싶습니다.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지,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 그리고 내 인생의 계절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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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저, 윤광준 사진, 떠남과 만남, 을유문화사,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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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 11:01:32 *.242.48.1

천일각에 서서 구강포를 함께 바라보고 온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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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8 00:27:38 *.38.189.36

잘 댕겨왔냐? 난 구강포보다 다산초당의 별빛이 더 좋더라. 구강포랑 천일각은 이제 별로. 난 올해부터 사부랑 어긋나기로 했거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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