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4년 1월 12일 22시 22분 등록

며칠 전 일이다. 체감온도가 영하 15도 될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하니 어제까지 멀쩡한 난방기가 작동되지 않았다. 복사기의 전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빌딩 내 업무지원 센터에 연락했다. 잠시 후 전기실 직원 2명이 올라왔다. 배전반을 확인 후 전선 하나가 누전되었으며 전력 계량기도 고장 나 있었다. 새 것으로 교체를 해야 했다. 직원은 묻지도 않았는데 수리는 전기실 책임이 아니니 입주자가 알아서 하라고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전기 배선업체가 나온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퉁명스런 말투가 신경에 거슬려 한마디 했다. “상주 인구가 6천명 넘는 건물을 관리하는 전기실이 수리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입주한 지 2달도 안 되었는데 입주자가 알아서 수리하라는 게 말이 되냐구요?” 그 부분은 잘 모르겠으니 자기 팀장과 얘기하라고 했다. 팀장한테 전화를 거니 전기실은 건물 공용 면적의 전기시설만 책임진다고 했다. 임차인이니 임대인에게 연락을 해 수리 요청하면 되지 않느냐며 전화를 끊었다. 전기실 직원이나 팀장은 입주자가 추위에 떨고 사무기기 전원이 끊겨 겪고 있는 불편함을 모르는 듯 했다. 할 수 없이 임대차 계약서를 찾아 임대인에게 전화를 했다. 본 적은 없는데 52년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만약의 경우 나 몰라라 식대응으로 나올 것을 예상해 만반의 반격할 준비를 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의외였다. 상황을 얘기하니 우렁차고 시원한 목소리의 임대인은 추위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일하는데 지장을 주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물 전기실과 연락해 빠른 시간에 수리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잠시 후 임대인은 내일 아침 7시에 수리 시작해 업무개시 9시 전까지 완료 예정이라며 거듭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나이가 지긋한 분이 배전반 수리를 하고 있었고 830분 경에 끝이 났다. 그 분은 교체할 전력 계량기가 없어 부랴부랴 어제 공장까지 가서 갖고 왔다고 했다. 임대인이 비용 상관하지 말고 어떻게든 빨리 수리를 해달라고 신신 부탁을 했다고 한다. 비용을 넌지시 물어보니 6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 날은 환갑이 넘은 임대인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행복한 하루였다. 젊은 전기실 직원과 팀장한테 느꼈던 불쾌함과 괘씸함을 잊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임대인이 그렇게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전기가 나간 것이 임대인의 잘못이 아니며, 수리 또한 임차인이 대충 알아서 수리 한 후 임대인에게 영수증 청구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아니, 탐욕스럽고 거만한 임대인이라면 누전과 계량기 고장이 왜 임대인이 책임을 져야 하냐, 사용자도 일정 부분 책임을 질 일이 아니야하며 생떼를 쓸 만도 했다. 하지만 그 임대인은 가장 먼저 추위에 고생하는 임차인부터 걱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일처럼 연민을 갖고 자신의 책임과 비용으로 신속하게 처리해 주었다. 

 

내가 임대인이라면 그런 연민을 갖고 군말 없이 흔쾌히 처리해 주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한 번쯤은 당신이 너무 난방기를 과도하게 틀어 과부하(過負荷)가 걸려 누전이 되었고 전력 계량기가 고장 난 것이 아니야 하며 따졌을 것 같다. 

 

십 년 후에 육십인데 앞의 임대인처럼 인색하지 않고 궁색하지 않게 멋있게 나이 들어 갈 수 있을 지 생각해 보았다. 최소한 마음의 여유는 갖고 살아가고 싶다. ‘도 중요하지만 그 돈이 내 남은 인생에 무의식적으로 들어와 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그 임대인의 우렁차고 시원한 목소리가. 그 소리에는 젊음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몸과 정신도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으로 끓어 오르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나이 들어도 잃지 않은 당당함과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나이 들면 어린애처럼 자기만 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일 까. 인간에게는 격정적이며 낭만적인 디오니소스적 요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의 아폴로적 요소, 그리고 과감한 도전으로 자신의 세계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프로메테우스적 요소가 있다고 한다. 오십 이후의 삶도 이 들 요소를 갖추며 나이 들고 싶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   ()

 

IP *.50.96.158

프로필 이미지
2014.01.23 18:01:27 *.209.223.59

사추기의 감성이 마구 열리고 있나 봅니다.

보는 것마다 한 편의 글로 구성해 내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