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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3일 01시 00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 1872.05.18 ~ 1970.02.02)

할아버지는 영국의 총리를 지낸 존 러셀 백작이며, 그의 부모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의 지식인층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피를 이어받았던 러셀은 항상 거침없고 열정적이며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그의 유년기는 외롭고 고독했다. 그의 부모는 일찍 죽었으며 할아버지 역시 아버지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지 2년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부분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할머니는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였지만 그 외의 부분은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러셀은 러셀 백작 부인 밑에서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사춘기 시절 고독하게 자랐다. 그당시 종교와 수학에 관심을 가졌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것들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통해 그는 사고의 깊이와 내면의 소리를 진실되게 듣게 된다.

러셀은 1890년 켐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수학과 철학에 두각을 보내고 최우등생으로 좁업하게 된다. 특히 엘리스 페어살 스미스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그의 할머니의 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고집을 꺽지 않았는데, 결국 둘은 별거하며 형식적으로 부부로 남는 사이로 지내게 된다. 이 기간동안 오톨린 모렐과 배우 콘스턴스 말레슨등과 열애를 하게 되고 엘리스와는 이별하게 된다.

러셀은 생애 2차례의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렬한 사회 분위기 안에서 그는 반전 운동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데 감옥에서 <수리학 개론> <정신의 분석>등을 집필하게 된다. 참고로 그의 첫번째 책은 난해하고 어렵다는 <수학의 원리>였다. 그는 98세까지 장수하면서 <서양철학사>를 비롯하여 40여 권이 넘는 책을 남기기도 하였다.

러셀의 두번째 결혼은 애인이였던 도라 블랙이였다. 그녀와 같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베이징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슬하에 두자식을 두었다. 특히 이 시기에 러셀은 물리, 윤리, 교육등을 설명하고 대중서를 쓰는데 열성적이였으며 도라와 1927년 실험학교인 비콘힐 학교를 설립하기도 한다. 하지만 러셀의 여성편력 때문인지 결혼 생활은 점점 파경으로 치닫는데, 도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그리핀 베리와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들은 결국 이혼하게 되고 러셀은 가정교사였던 패트리샤와 세번째 결혼을 하게된다.

러셀은 2차 세계대전후 대학에서 수많은 강의를 한다. 또한 <서양철학서>라는 베스트 셀러를 집필하여 고정적인 수입을 확보하였으며, BBC TV 매체를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도 한다. 1949년 러셀은 그의 자취와 그의 학문적 업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얼마 지난 1952년 러셀은 패트리샤와 이혼하고 이디스 핀치와 네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이것이 마지막 러셀의 결혼이였다. 이디스는 러셀의 마지막까지 곁에 있었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다.

중년에 러셀은 정치적 사건에 참여하였다. 반전운동을 하였고, 거기에 멈추지 않고 실직적인 활동들을 많이 하였다. 그는 전쟁을 막기 위해 수많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썼으며 반전영화 감독인 로고신 감독과 접촉하기도 한다. 러셀은 미국의 전쟁관련 여러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고, 평화주의자, 좌파의 영웅이 되었다.

말년의 러셀은 자서전을 출간하였고, 88세에는 대중집회를 하다 구류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평화를 사랑하고 끊임없이 반전운동에 앞장섰던 러셀은 70 2 2일 자신의 자택에서 독감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어떤 종교 의식도 치러지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기독교의 교리가 합당한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며 18세에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과연 마지막까지 그는 그답게 떠났다.

 

 

 

. 내 마음을 무찌러드는 글귀

11, 알렌산드리아 시기의 시인 칼리마코스는 큰 책은 큰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12, 서양 철학은 모두가 그리스 철학이다.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와 우리를 맺어주는 유대를 단절하면서 철학 사상을 즐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14, 모든 다양한 과학 분야는 철학적 탐구에서 시작된다.

15,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과학은 어떤 해답을 주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은 점쟁이가 이미 준비한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탐구하고 때때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과업이다.

19, 중요한 것은 종교의 기능이 지적 모험심을 자극하는 데 쓸모가 없었다는 점이다.

22, 한편에는 질서 바르고 합리적인 면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제어할 수 없는 본능적인 면이 있다. 전자는 철학, 과학, 예술을 낳았고, 후자는 풍년 기원과 결합된 비교적 원시적인 종교 속에 나타난다.

23, 니체는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어느 것이나 그 중 한 가지만으로는, 그리스 문화가 비상하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29, 자세히 보면 마치 공상처럼 보일지 모르나, 하나의 물질이 여러 가지 집합 상태에서도 여전히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햇다는 것은 훌륭한 업적이다.

31, 아낙시만드로스: 인간이 바다의 어류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했으며, 물고기의 화석을 관찰하고 상어가 그 새끼들을 기르는 방법을 관찰하여 이를 지지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우리에게 물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32, 신비주의의 무게가 사회를 조금도 압박하지 않을 경우, 과학적 사변은 진보한다.

39, 피타고라스학파의 신념에는 오르페우스교적 요소가 있었지만, 그들이 믿는 최대의 신은 아폴로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아폴로적 성격이 유럽의 합리주의 신학과 동양의 신비주의를 구별해 주기 때문이다.

40, 다툼이야말로 세계를 움직이는 추진 원리이다. “다툼이 신과 인간 사이에서 사라지면 좋겠다는 호모의 말은 잘못이다.

41, “만물은 불의 교환물이며 불은 만물의 교환물이다. 이는 물건이 황금의 교환물이고, 황금이 물건의 교환물인 것과 전적으로 같다.”

48,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 이상이 파르메니데스의 논의의 전반적인 경향이다.

51,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에 이들을 원소라고 했다. 이것은 물 공기 불 흙으로 구성된 유명한 4원소 이론인데, 이는 약 2000년 동안 화학을 지배했다.

53, 전과 같이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는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옮아가는 일은 없다. 이상이 완전한 엘레아학파의 유물론이다.

58,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은 대중들로부터 눈총을 받았고바보라 불렸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60, 올림픽 경기는 그리스인들이 육체에 가치를 부여한 살아있는 표시였다. 이것은 조화를 강조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인간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가지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모두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63, 물질을 무한히 분해할 수 있다는 가설은 흥미있는 일이다.

64, 사물을 움직이는 것은누스이며, ‘누스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생물과 무생물로 나뉜다.

65, 시각이란 빛이 반대의 어둠에 침입하는 일이며, 매우 강렬한 감각은 고통과 불쾌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69, 기본 요소는 정육면체 모양의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겼다. ‘원소란 말 자체도 이들 후기 피타고라스학파의 사상가들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71, 아무런 크기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73, 잘못된 형태의 후퇴적 논증은 사실 귀류법의 한 형식이다.

81, 1성질에는 형태와 크기와 물질이 있고, 2성질에는 빛깔이나 소리와 맛 등이 있다. 2성질은 제1성질로 설명되는데, 1성질은 원자 자체에 속한다.

82, 소크라테스가 경멸하면서 대단한 녀석들도 아닌데 대단해 보이려는 녀석들이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을 가리켜서 한 말이다.

83, 궤변론자들은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지식은 시시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요한 것은 쓸모 있는 의견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그 어떤 진리가 있다. 실제적인 문제를 처리할 때,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성공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소크라테스의 견해는 정반대이다.

84, 논쟁술과 변증법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논쟁을 일삼는 사람은 이기려고 기를 쓰는 반면, 변증가는 진리를 발견하려고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논쟁과 토론의 차이가 생긴다.

90,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제국주의를 시샘해서 일으킨 전쟁은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계속되었고, 아테네의 완패로 끝났다.

91,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아무데서 멈추어 섰고, 대로는 계속해서 몇 시간이고 사색에 잠겼다. 동시에 그는 몸이 튼튼했다.

92, 중용이란? 우정이란? 용기란? 이들 의문의 긍극적인 해답은 주어지지 않았으나, 이들 의문을 던지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94, 소크라테스는 국가 종교를 신봉하지 않고 청년들을 가르쳐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다.

95, 소크라테스는 법정을 향해서 자기의 의무는 국가와 충돌하는 위험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탐구하라는 신의 명령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98, 아카데미는 중세 이후에 발달한 대학의 시초이다. 아카데미는 학교로써 900년 이상이나 유지되었다.

99, 수학, 2차원, 3차원 쌍방의 기하학, 천문학, 음향 또는 화성학이 기본 교과 과정이었다. ... 이 과정은 10년이 걸렸다.

102, 실제로 철학적인 저서가 깊이가 있기 위해서는 문체가 난해하고 서툴어야 한다는, 거의 전통에 가까운 생각이 여기저기에 깔려있다.

104, 철학에 끼친 플라톤의 영향은 아마도 다른 그 누구의 여향보다도 위대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후계자이자, 아카데미의 창립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던 플라톤은 철학 사상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의 논리학자 E. 고블로가 플라톤 철학은 하나의 형이상학이 아니라 유일한 형이상학이라고 한 것도 분명히 이 때문이다.

105, 철학자란 진리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106, 그리스어의이데아그림이나형상이라는 뜻이다.

129,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리로 인정하는 진술은 누구나 듣자마자 명료하게 이해할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모두가 특별히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필요 없는 진술이다.

130, 로고스는 말, 한도, 공식, 논증, 설명 등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136, 후세가 입은 진짜 손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의 틀린 생각을 거부하여 평판을 떨어드리는 대신에 전적으로 그의 생각을 승인해 버렸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140,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하면 덕이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물론 이 목적에는 누구나 똑같은 정도로 도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건 그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도 최선의 삶은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이성에 의해 음미하면서 사는 삶이다.

150,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의 분명한 한 가지 특징은 증명의 관념이다. p150

151, 명제는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으로 나뉜다.

155,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증 형식의 연구를 분석론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문자 그대로 해방시킨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검사를 위해 풀어헤치는 것이 논증의 구조이다.

158, 그리스어로 물리학이 자연을 뜻한다는 것은 상기해 볼 만한 일이다.

159,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 가운데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율이다. 이것은 질료와 형상의 이론과 결부되어 있다. 인과율 관계에서는 진료적인 면과 형상적인 면이 있다. 형상에 그 자체가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천째, 한정된 의미에서의 형상적인 면, 말하자면 배치가 있다. 둘째, 방아쇠를 당기면 총이 발사되는 것처럼 변화를 현실에 나타나게 하는 동인이 있다. 셋째, 변화가 달성하려 하고 있는 목표 또는 목적이 있다. 이들 네 개의 면은 각기 질량인, 형상인, 동력인, 목적인 이라고 불린다.

167, 윤리적 문제는 우리가 인간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물을 때 생긴다.

177, 비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감을 세탁해서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카타르시스를 뜻하는데, 자기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대리 경험하면 영혼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비극에는 치료의 의도가 있다.

188,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은 페르시아 침입에 대항해서 싸웠고, 기원전 4세기 초에 페르시아 대왕의 제국은 이미 덩치만 크고 쓸모가 없는 거목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볼 수있다.

189, 그리스에서 박트리아까지, 나일 강에서 인더스 강까지 세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알렉산더 한 사람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는 그리스인에게 한낱 마케도니아의 군주에 지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그리스 문명을 짊어질 사람으로 보았다. 실제로 대왕은 실력을 보였다.

191, 끝을 모르는 불안은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의 결여와 지적, 도덕적 쇠퇴를 가져왔다.

193, 유대감이 약하면 약할수록 상처를 입고 실망하는 가능성도 적어진다.

197, 적극적 쾌락은 결여되어 있는 사물을 요구하는 원동력이며, 즐거운 목적을 향해 노력할 때 경험한다. 일단 그 목표에 도달하면, 이미 그 이상의 요구가 없어지는 곳에서 소극적 쾌락이 얻어진다.

199, 다른 학파와 달리 에피쿠로스학파는 과학적 전통을 낳지 않았다. 그 자유 사상적 태도와 미신적 풍습 타파의 태도는 초기 로마 제국의 상층 계급 중에서도 특히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줄곧 존중되었다.

201, 이와 같이 신은 내재하는 힘이며, 그 일부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부에 살아 있다.

203, 스토아 학설에서 핵심적인 요점은 어떤 의미에서 덕의 내적인 선이야말로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물질적 소유물을 잃는 것은 언제나 어느 정도까지 보상할 수 있으나, 자존심을 잃으면 인간 이하로 전락하고 만다.

205, (세네카)의 일생은 전체적으로 성격상 스토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죽은 방법은 그의 철학에 충실했다.

207, 중동은 알렉산더의 영향으로 헬레니즘화되었고, 서방에서는 로마가 그리스 유산의 전수자가 되었다.

209, 결국 군대까지도 권력을 이용하기 시작하여 자기가 지지한 대가로 황금을 얻기 위해 권력을 휘둘렀다.

211, 철학은 영향력은 약했으나, 그 성격은 스토아적이었다.

214, 이론이 섞인 것이 신플라톤주의라고 불렸고, 그리스도교 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이는 어떤 뜻에서 고대와 중세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리하여 고대 철학을 종말을 고하고 중세 철학이 출발하게 된다.

217, 영혼은 영원하지만, 그것은누스가 되는 경향이 있고, 다라서 영혼의 실체까지는 잃지 않아도 개성은 잃게 된다.

220, 그리스인의 실패가 뛰어난 지력에서 생긴 일종의 자만심 때문이었다고 하면, 로마임은 상상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223, 사제는 정통 신조의 수호자였으며, 서방에서는 교회가 여러 이단의 충격에 충분히 견뎠기 때문에 사제라는 지위는 크게 강화되었다.

225,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내세에 대한 관념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었다. 이 관념은 의로운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악인은 지옥의 불로 떨어진다며 그 속에 인과응보의 요소를 확실히 밝혔기 때문이다.

226, 신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은 희생 의식 없이 지내야 했다.

228, 유대 교도는 전체적으로 자존심이 강하고 거만했다. 이와 같은 점은 고전시대의 그리스인과 흡사했다. 그들은 단호히 자기들의 신 이외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230, 그들은 육식을 금하고 그 어떤 형태의 성도 모두 죄라고 선언했다.

231, 한때는 그리스도교 자체도 가공할 만한 박해를 받았으면서 일단 권력을 잡자, 전적으로 같은 정도로 확고한 신념에 불탔던 소수파에게 광폭하게 대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232, 마르크스주의자는 제도적인 그리스도교에 동의하지 않고, 종교를 사람들의 아편이라 하며, 실용주의적 이유에서 이에 반대할 수 있는 완전한 자격을 갖추려 한다.

246, 위클리프의 이런 주장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던 성직자들의 마음에 들 턱이 없는 것이었지만, 교황청의 터무니없는 징수금을 단절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영국 정부에 지지를 받게 되었다.

263, 요하네스의 말에 따르자면 이성과 계시는 진리의 독립된 근원으로, 겹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정한 경우에 충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면, 이성은 계시 이상으로 신뢰되어야 한다. 참다운 종교는 참다운 철학이며, 반대로 참다운 철학은 참다운 종교다.

273, 아비케나의 커다란 철학적 관심 가운데 하나는 보편적 개념이라는 영원한 문제로, 이것은 나중에 나중에 스콜라 철학의 중심 문제가 되었다.

274, 아퀴나스가 나중에 믿었던 것처럼, 아베로에스는 신의 존재를 합리적 근거로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영혼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누스를 불멸이지만, 영혼은 불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277, 스콜라 철학은 하나의 운동으로 결론이 사전에 제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 철학과는 다르다. 그것은 정통 신앙의 궤도 내에서 작용해야 한다.

279, 그러나 어떤 면에서 교회가 속세 문제로 광범위하게 성공을 거둔 것이 오히려 이미 교황권의 쇠퇴를 나타내고 있었다. 교회의 세속적 세력이 튼튼해질수록 내세 문제에 대한 권위가 반대로 시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 나중에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331, 조난당한 선원이 섬나라 사회에서 5년동안 살면서 쓴 보고서 형식을 취한다.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종교적인 관용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자유주의 방식이다.

333, 개혁을 구하는 움직임이 발전해서 분열이 된 것은 정치적 세력 때문이었다.

334, 예수의 가르침과 현존 사회 질서 사이에 중대한 간격이 있다는 것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 이라면 이제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335, 교리면에서 아우그스티누스학파에 속한 칼뱅주의는 루터의 복음주의보다도 엄하고 완강했다.

337, 그 어떤 명확한 비례를 얻으면, 일종의 미적 만족이 생기는 모양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비례의 존재는 하나의 이상으로서 완전함을 보장하게 된다.

339, 인간은 어는 정도 그 수학적 기능을 사용하거나 연마할 수 있다면, 신의 지위에 한층 접근하게 된다.

345, 정통 스콜라 철학자는 망원경을 비난했다. 망원경이 이와 같이 그들의 독단의 잠을 깨웠기 때문이었다

351, 인간이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오류에 대한 베이컨의 설명은 그의 철학 가운데 가장 빛난다. 우리는 네 가지 타입의 정신적 약점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것을우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354, 대학이 개선해야 할 주요 결점 가운데 하나가 '무의미한 말을 자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356, 어느날 평소보다 더 추워져서 데카르트는 어느 오두막으로 들어가, 타일을 바른 아궁이 옆에 앉았다. 적당히 몸이 따뜻해졌을 때 그는 명상을 시작했는데, 그날 그의 철학 전체의 윤곽을 분명히 마음 속에 떠올렸다.

357, 그는 무엇보다도,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논쟁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359, 신이 우리를 일관되게 헤매개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의심하는 자가 인정하는 것도 자기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기본 공식,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바탕이 된다. 여기에 바로 형이상학의 분명한 출발점이 있다고 데카르트는 생각했다.

363, 데카르트는 물질과 정신은 서로 다른 실체이며, 각기 자기 충족적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호 작용을 미칠 수 없다고 인정했다.

368, 신과 우주, 즉 모든 사물의 총체는 동일하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유명한 범신론이다. 스피노자의 설명에 신비주의의 흔적을 조금도 볼 수 없다는 것은 강조되어야 할 점이다. 문제 전체가 놀라울 만큼 교묘하게 조립된 한 조의 정의와 공리에 입각한 연역 논리의 연습일 뿐이다. 이것은 아마도 철학사상 가장 돋보이는 체계적 구성의 한 예일 것이다.

369, 정신의 본성은 어떤 무시간의 관점에서 사물을 지각한다.

373, 그러나 라이프니츠를 때로 어렵게 만드는 재미있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철학의 이중성에서 비롯된다. 한편에는 단자론으로 끝나는 실체의 형이상학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많은 점에서 형이상학적 사고와 병행하는 논리설의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374,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에 관한 이론은, 앞서 말했듯이 단자에 의해서 실체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385, 일상 언어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탐구를 하기 위해 한층 날카로운 언어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과학과 철학이 할 일이다.

391, 개인주의라는 이론은 대체적으로 합리론적 이론이며, 이성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감정에 지배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야만적이라고 여겼다.

392, 19세기 산업 사회의 발생과 함께, 자유주의는 심한 착취를 당하고 있던 노동 계급을 사회적으로 개선시키는 데 강력한 원인이 되었다.

394, 로크의 <인간오성론>은 이와 같이 새로운 체계를 제공하려고 하기보다는 예부터 내려오는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려는 것이다.

395, 이 새로운 계획의 첫걸음은 지식을 엄밀하게 경험 위에 놓는 일이었는데, 이것은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선천적인 관념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400, 로크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뉴턴의 광범위한 정복과 결부되어 있다. 뉴턴 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결정적으로 폐기시키고 말았다.

401, 로크의 영향은 프랑스에서 더욱 강했다.

402, 로크의 자유주의를 이어받은 공리주의자들은 개화된 이기주의 윤리를 지지했다.

403, 로크의 이론에 남아 있는 중대한 하나의 결함은 추상 관념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407, 로크는 담화 중에서 한 마디의 말이 관념을 불러일으키고, 이런 식으로 지식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되는 것이라고 주장했음이 틀림없다.

408, 귀를 기울일 때,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의 흐름이지, 일련의 말의 뜻을 서로 분리하고 다음에 이것을 다시 이어 맞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15,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상 또는 관념의 연속뿐이며, 따라서 달리 더 깊은 관련이 있는가의 여부의 문제는 생각하는 것조차 낭비라는 것이다.

416,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연속해서 일어나는 지각뿐이다.

421, 이와 같은 회의론을 흠잡아 쓸데없이 잘못을 들춰내려고 애를 쓴 사람은 누구나 경쟁 상대도 없는데 논쟁을 해온 사람이다.

422, 회의적 입장은 윤리학과 종교 분야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425, 왕권신수설은 여러 종교관을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정세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

433, 낭만주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은 장 자크 루소이다.

435, 낭만주의 운동의 형성에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 것 중 하나가 루소가 이성에 반하여 감정을 옹호한 것이다.

437, 논리학과 형이상학 교수로 승진하여 죽을 때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438, 칸트는 흄이 한 것처럼 경험에 의해서 개념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개념으로 경험을 설명하려고 했다.

443, 칸트는 이와 같은 경험의 근원을 가상 또는 현상과 대조시켜서 '사물 자체' 또는 '누메나(Noumena,실체)'라고 부른다. 칸트의 이론은 사물 자체를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445, 의지는 행동이 인식의 이론적 과정과 대비된다는 뜻에서, 실천적이라고 한다.

454, 변증법은 몇 가지 점에서의 형상에 접근하는 소크라테스적 노력을 생각나게 한다. 선의 형상에 대응하는 것이 헤겔의 이른바절대적 정신이다.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이 특정한 가설을 타파하고 마침내의 형상에 이르는 것처럼, 헤겔의 변증법도절대적 정신에 이른다.

463,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헤겔은절대자가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견해로 볼 때 항상 사건 후에 생기는 철학 세계를 수립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이것은 <<법철학>> 서문에 인상적으로 표명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닥쳐오지 않으면 날지 않는다.”

465, 이 세상은 신성한 과학이 속해 있는 세계가 아니고, 우리의 세계 이외의 세계는 우리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관념론 체계는 가짜 개념이다.

468, “최고의 윤리적 존재는 자기이며, 의지 결정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선택을 통해 인생을 창조한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결혼은 가장 중요한 개인적 결단 중 하나이다.

469, 키에르케고르는 하나의 상태를 안에서 파악하는실존주의적사고 방식을 인정한다.

471, 헤겔을 실존주의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은 세계 자체가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일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문제를 다루지는 않지만, 그의 실존주의는 관념론적 관점과 대립한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실재론적 지식 이론을 전제로 한다.

477, 니체는 대문호로 그의 저서는 철학이라기보다는 시적 산문에 가깝다.

478, 남을 그다지 납득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소수자를 위해 다수자가 고통 받는 일에 전혀 무관심ㅎ하다는 의미이다.

481, 과거 수세기 동안 , 귀족이 자기 용도로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는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 때문에 공유지에서 이익을 얻어 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던 농촌 사람들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483, 전문화된 작업이 너무 단편적이어서 일에 대한 인간의 흥미가 손상된다고 하면, 결국 고통 받는 것은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487, 이렇게 해서 얻는 것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489, 그는 현재의 희생 도덕은 지배 계급이 자기 손으로 가진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해 부과하고 있는 정교한 속임수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희생을 기대하면서도 자기는 아무런 희생을 지불하지 않는다.

491, 무엇인가 바람직하다는 증거로 들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웡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493, 벤담과는 반대로 밀은 자유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495, 다윈이 한 일은 자신이 자연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자상한 사실을 대량으로 공급한 일이었다.

499, 변증법적 투쟁이 취하는 형식은 계급 투쟁이다. 이 싸움은 사회주의하에서 계급이 없는 사회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501, 마르크스는 사회의 과학적 관심 전반이 어느 정도 이 사회의 지배 그룹의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p, 이것은 아마도 옳은 말일 것이다.

506, 콩트는 사회가 최초의 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마지막으로 그의 이른바 실증적 단계로 옮겨가며, 이 마지막 단계에서 역사 과정이 생겨나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는 견해를 채택하고 있다.

507, 이 점에서 콩트의 사고방식에 일맥의 이상주의적 영향이 눈에 띈다.

510, 탐구는 어떤 종류의 불만이나 불안에서 생기는 것으로, 그 목적은 불안을 주는 영향이 제거되는 휴지 상태를 획득하는 데 있다.

513, 윌리엄 제임스는 <의식은 존재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주관과 객관의 전통적 이원론이 인식론의 올바른 관점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제시하려 했다. 제임스에 의하면, 우리는 자의식을 물질 세계의 대상과 마주보고 있는 하나의 실재물이라고 하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514, 경험론대 합리론이라는 전반적인 문제에 관해서, 제임스가 설정한 유명한 구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합리론자의 이론은 물질적인 것을 희생하고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515, 그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프래그머티즘이 아무런 특수한 결과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세계를 처리하는 하나의 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520, 논리학을 완전하다고 생각한 칸트 이래, 논리적 이론의 연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수학공식에 의해 논리적 증명을 다루는 새로운 형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524, 철학자에게 문장이 어떻게 해서 구성되고, 말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조사할 필요성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527, 19세기 후반의 특징은 현대의 지적 풍조에 영향을 끼친 새로운 발전이다.

529, 과학적인 삶의 방식과 이에 수반되는 실험실이나 실험은, 예술가가 요구하는 자유와 진취 정신을 질식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532, 과학의 영향을 오늘날 한층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현재 이용할 수 있는 파괴 수단이 가공할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차이는 근대 과학의 힘과 지배의 근원을 파괴하는 목적으로 사용했을 경우에 그것들이 무차별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점에 있다.

533, 과학 이론에 대한 이런 접근은 탐구활동의 철학적 의미에 관심을 품고 있는 과학자 전체의 특징이다.

540, 크로체,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나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

541, 삶의 힘은 그것이 작용할 때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어느 정도는 모양이 만들어지지만, 행동할 때 기본적 자유의 특징은 잃지 않는다.

542, 인간의 지능은 본능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간에게 자유를 빼앗고 말았다. 지능이 스스로 자기 개념적인 속박을 세계에 강요하여, 왜곡된 세계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543, 베르그송은 이 직관의 진짜 시간을 우리가 합리적인 사고를 삼가고, 다만 나와 나의 몸을 시간의 흐름에 맡겼을 때, 우리를 압도하는 순수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44, 베르그송의 이론은 경험의 논리적인 특징보다도 오히려 심리적인 특징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546, 프로이트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출발해서 결국 숨은 실재물을 무제한으로 받아들이는 심리학으로 옮겼다.

552, 1차 세계대전은 한 시대의 끝을 나타낸다.

552, 서양은 정치적으로나, 공업이 주는 물질적인 힘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나 단연 우세했다. 이상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넘치는 자신감과 신도 진보편이라는 감정이었다.

553, 마르크스주의는 유연성이 결여된 채 독단적으로 주장하고 유토피아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점에서 19세기의 유물이다.

554, 사람은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사회적 지위와 몸의 안녕을 얻는다.

558, 비합리주의의 주된 철학적 특징은 최근 프랑스와 독일 철학에서 매우 지배적인 역할을 해 온 실존주의 이론의 부활에서 볼 수가 있다.

560, 우선 우리는 이런 사고가 요구하는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의 삶 속에는 의의나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인생의 목적은 될 수 있는 한 재미있게 사는 것이다. 앞날의 목적은 공상적인 것이다.

562, 우리가 자유라고 느껴도 거기에는 어떤 근심하는 기분이나 공포의 기분이 따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현존재의 단계가 이성이 지배되는 데 반해, 자아 존재는 기분에 지배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566, 전반적인 철학에서 마르셀이 강조하는 것은 해부하고 분석하는 보통의 반성을 넘는 필요성이다.

567,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이 우리에게 총체적인 지식을 주고, 낡은 형태의 형이상학은 엄밀하게는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569, 실증주의 입장의 또 다른 문제는 모든 철학적 사고를 횡설수설이라며 거부한다는 점이다.

572. 앞에 아무것도 없는 시작을 구한다는 것은, 둥근 사각형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일단 이것을 인정하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지한다. 그런 일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기 때문이다.

575, 지식의 습득 외에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이 자기 것이 된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진지한 숙고를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577, 탐구의 대상인 세계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580, 결국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581, 인간에게 성찰하지 않는 삶은 정말로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 내가 저자라면

러셀이 <수학의 원리>라는 책을 써서 그런지, 혹은 기본적으로 과학적인 마인드가 있어서 그런지 글이 논리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철학과 과학을 분리시키고, 연결시키려는 시도들이 확실히 기존 인문학 서적들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조금더 믿음감을 준다고 해야할까? 철학이란 복잡한 사유를 최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그리고 서양 철학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대단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내공이 있기 때문일까? 하나의 사상, 하나의 인물도 이해하기 힘든 나로써는 이 많은 시대와 인물을 전부 다루려고 하는 러셀을 보면서 존경심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을까? 그리고 가능할까? 팔십이 다 된 노학자의 열정에 박수를 치면서도 한편으로 부러웠다.

무엇보다 러셀은 인물 한명한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다. 혹은 그 인물을 통해 반대 인물과 비슷한 인물을 엮어 이야기를 차분히 꾸려나간다. 시간이 부족해 책을 빨리 읽었지만, 템포를 놓쳐도 다시 찾아 올 수 있을만큼 책 한권이 유기성이 느껴진다. 그가 얼마나 이 글에 신경썼는지 알 수 있었다.

또 백과사전 식의 지식 제공과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러셀의 능력은 이 책을 개론서 수준으로 시작하여 서양철학을 이해하려는 초급자에게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철학에 대한 낮은 수준으로 개인적으로는 조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지만, 여러번 정성스럽게 읽다보면 서양의 철학, 그리고 서양문화가 주류인 현재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관념들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 왔는지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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