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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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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4일 10시 05분 등록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본다. 토요일 저녁시간, 적당히 사람이 있고 적당히 빈자리도 있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세로로 긴 사각형의 공간에 가운데는 통로가 있다. 양 옆으로 책상이 놓여 있는데 커다란 책상 세 개가 옆으로 붙어있고 책상을 중심으로 마주 보며 의자가 놓여있다. 하나의 책상에 의자가 여섯 개이다. 한 줄에 18명이 앉을 수 있다. 이런 조합이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양편에 11줄씩이다. 어림잡아 4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공간이다. 지금은 한 줄에 두 세 명, 서너 명이 앉아있다. 통로와 먼 가장자리에는 백과사전보다 두꺼운 책 십 여권 이상이 쌓여있고 책이 놓여진 독서대가 있다. 머리는 덥수룩하거나 질끈 동여매었다. 고시생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이들이 구석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열람실 출입문 유리에는 휴대폰 벨소리, 노트북사용, 음식물 반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부착되어있다. 동그라미 안에 휴대폰과 노트북 종이컵이 그려져 있고 빨간 사선으로 금지를 알리고 있는 것이 무색하게 책상 위에는 커피잔, 음료수 병 등 저마다 한 두 가지의 음식물과 노트북, 휴대폰이 있고, 이어폰을 꽂거나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남자. 미간에 세로 주름을 만들어 책을 보고 있는 남자는 푸른색 줄무늬가 상단에 있는 셔츠를 입고 있다. 책장을 앞뒤로 뒤적거리는 모양이 세로주름과 함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모양새이다. 머리가 길고 흰 상의를 입은 여자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장소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데 오늘은 남자가 더 많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나이 즈음이라고 보여지는 사람은 없다. 대학도서관에서 내 연배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함을 잠시 잊고 있었다.

 

2014년 나의 계획에는 특별함이 없다. 방학숙제를 하듯 24시간을 쪼개어 계획표를 만드는 행위도 잘 만들어진 다이어

리에 오늘의 할 일을 적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체크를 하는 행위도 나에게는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한 해를 보내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올해 내가 계획한 일은

단 하나. 책을 한 권 엮는 일이다. 어떤 모양의 책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어떻게 살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정리가

될지, 다른 형태의 글이 나올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는 없다. 다만 지금쯤이면 어떤 형태로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

는 것이 좋겠다라는 것과 그 형태가 책이라는 것만 정했다.

 

평일에는 일곱의 식구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 밥을 먹는다. 주말이지만 큰 아이는 헬스클럽에서 아르바이트 중이고 작은 아이는 미술학원에 있고 시아버지는 시동생 집에서 오시지 않았다. 구성원의 50%가 빠졌으니 집도 한산하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TV시청 중이다. 나도 어디 한자리 잡고 내 할 일을 하면 되지만 굳이 도서관으로 향한다. 겨울저녁은 춥고 어둡다. 옷을 입고 집을 나서기까지 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고민을 한다는 것은 대문을 나서기가 싫다는 증거이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하루의 일을 다음날로 미루기 위한 생각일 뿐이니까.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기 위해 "저녁 먹고 도서관 갔다 올 께"라고 미리 말을 해놓는다.

 

가슴에 불덩이 하나를 품고 있는 것처럼 안으로부터 열기가 피어난다. 순식간에 몸에 열이 오른다. 갱년기 증상 중 하나이다. 특별한 징후 없이 지나가기를 바랐지만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모양이다. 내의 까지는 아니어도 긴 바지와 스웨터 양말을 신어야 할 정도로 난방을 하는 집에서 나는 요즘 자주 반팔차림이다. 여름옷을 입고 그 위에 스웨터를 걸친다. 벗기 좋은 옷차림이 아니면 시시각각 변하는 체온을 견딜 수가 없다. 한파주의보에 내의를 챙겨 입고 출근을 하지만 회사 화장실에서 속옷을 벗는 사태가 매일 일어나고 있다.

 

적당한 나이에 찾아온 갱년기증세를 마주하니 살아온 시간이 어디쯤인지 가늠이 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잊고 살던 내게 지금의 네 시간은 하루 중 언제인지를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급할 것은 없지만 마냥 여유롭지도 않은 어중간한 시간에 걸쳤다. 오전이 지나고 오후에 접어 들었고 열심히 달린 오전시간만큼 그 속도로 달려낼 자신도 없어지고 있다. '아직 속도를 줄이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는 않나?' 라고 반문 해본다. 마음의 브레이크도 잘 작동되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준비가 덜 된 채로 변화하는 몸의 신호를 받아들여야 한다. 많아진 생각에 머리무게만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마음에 체기滯氣도 생겼다.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생각해본다. 단순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힘든 일임도 알아간다.

신의 역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나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책으로 만들어 내는 일로 한 자리를 차

지하기로 한다. 이곳에 오면 어린 시절의 내가 그대로 있는 듯하여 마음이 새로워진다.  하나의 계획으로 한 해를 살고

자 마음먹었지만 작심 삼일이 다섯 번이나 지나가고 있다. 오늘 다시 작심을 하고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백지와 마

주 한다. 한 페이지의 글을 쓰기 위해 삼일 동안 끙끙대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올해의 계획이 온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 의심이 고개를 든다. 오늘은 다시 작심을 해야 하는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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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4 05:56:38 *.153.23.18

행님 그 하나의 계획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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