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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0일 01시 42분 등록

No 38

2014.01.20

Oh! 미경

 

                                                   장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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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주 지음, 김학주 역해, 연암서가

 

어떤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과 일정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법이다.

 

 

세계를 영원의 모습 아래에서 포착하는 데에는

예술가의 작업 외에도 또 다른 것이 있다.

내가 믿기로는,

그것은 사유의 길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세계 위로 날아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있게 한다.

세계를 위에서 날며 바라보며.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Ⅰ. 저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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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장자 (BC 390 - BC 270?)

 

사마천에 따르면 장자는 양나라 혜왕 그리고 제나라 선왕과 동시대의 사람이다. 두 군주의 재위 연도를 보면, 장자는 BC 390년에서부터 BC 359년 사이에 태어나서 BC 300년에서부터 BC 270년 사이에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는 당시 몰락해 가던 낡은 국가 송나라에 속한 몽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생 벼슬하지 않고 자연에 숨어 가난하게 살았다지만, 혜시 같은 재상금의 인물을 친구로 사귀고 있었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전국시대에 태어난 장주가 살던 시대적 배경은 이렇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고, 많은 자가 적은 자에게 포악하게 구는, 혼란과 고통의 시대였다. 이처럼 현실 세계의 고통은 수렁과 같았으니 속세를 떠난 현자는 위대한 것인가? 그렇지 못한 것인가?

 

이로 인하여 장주의 시선은 인간 세계를 떠났으니 그가 바라 본 것은 무궁한 시공이었다. 장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남으로부터 나를 구분할 필요가 없고, 과거와 미래로부터 현재를 구분해서 생각하지 말고, 무가치로부터 가치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무한과 유한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죽음과 삶을 구분할 필요가 없으니, 그리하면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주의 철학은 자유의 철학이다. 생명을 무한의 시간과 공간에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체험한 철학이다. 인간 세계의 생활은 장주가 보기에 <생명없는 질서>였고, 장주가 추구하고자 한 것은 <생명있는 무질서>였다.

장주가 말한 생명있는 무질서 즉 ‘완전한 자유의 경지‘란 사람들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행위와 사상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장주는 자신의 사상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른 일에 빗대어 얘기하는 우언(우화,寓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있으면서도 웃고 가슴이 찡하는 뭔가가 있다.

그의 사유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위정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장자가 국가주의를 거부하면서 삶의 철학을 옹호했다.

 

장자는 10여만 자로 이루어진 책을 남겼지만 위진시대 사상가 곽상이 편집했다. 현재 33편 6만 4606자가 전해져 오고 있으며 현재 2/3만 보고 있다.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3~400년에 걸쳐 기록했다.

장자와 장주의 차이가 있다. ‘장자’우화는 장자의 후학들이 자신들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다. ‘장주’우화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장자학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1-2. 장자가 공자의 유가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장자’ 천하의 사상가들편을 보아도

‘시(詩)’는 뜻(志)을 서술한 것이다.

‘서(書)’는 일事을 서술한 것이다.

‘예禮’는 행실을 서술한 것이다.

‘악(樂)’은 조화를 서술한 것이다.

‘역(易)‘ 은 음양을 서수란 것이다.

‘춘추’는 명분을 서술한 것이다.

유가의 육경을 긍정적인 방향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장자가 육경에 통달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38]

크고 작은 것도 사람들이 지닌 기준에 의하여 상대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본시부터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 판단을 하는 건 상대적이다. 모든 판단을 하는 근거는 크고 작음, 좋고 나쁨, 선과 악, 모든 것을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판단을 한다.

 

[45]

진정 자유로운 훌륭한 사람은 일반 세상의 가치 기준을 초월한다.

===>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님 형제 친척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로부터 세상의 기준을 배운다.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가치판단하고 쓸모있고 없고, 능력있고 없음을 판단하고 살아간다. 세상 속에 살면서 어찌 세상의 가치 기준을 초월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내가 타인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고 나홀로 삶을 살라는 말인가.

 

[46]

명분이란 사실의 부수물과 같은 것입니다.

제2편 모든 사물은 한결같음 (제물론薺物論)

‘제물’이란 모든 사물을 한결같이 똑같은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제물론薺物論’을 ‘물론物論’을 한결같이 하나‘라고 보는 것으로 풀이하는 이도 있다. ’물론‘이란 유가를 비롯한 제자 백가들의 사물에 대한 논의를 뜻한다.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관을 초월하여 높은 경지에서 볼 때, 모든 사물은 한결같이 보이는 것이다.

 

[60]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여유가 있지만 작은 지혜를 지닌 사람은 남의 눈치만 본다. 위대한 말은 담담하고 너절한 말은 수다스럽기만 한다. 잠잘 때에는 혼백에 의해 꿈을 꾸고, 깨어나면 몸에 의해 활동한다. 외물을 접하게 되면 어지러워져 매일처럼 마음은 갈등을 일으킨다. 그렇지만 너그러운 자도 있고 심각한 자도 있으며 꼼꼼한 자도 있다. 두려움이 작을 때에는 두려워 떨지만 두려움이 크면 멍청해진다.

===>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그 장의 주인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세상을 사는데 배려 외에 눈치를 본다는 것은 뭔가 두려움 혹은 부탁할 일이 있을 때 남의 눈치를 보겠지.

 

[67]

순자를 보면 “마음이란 육체의 임금이며, 신명의 주인이다. 명령을 내리기는 하지만 명령을 받는 일은 없다”며 마음을 인간 행위의 도덕적 근거이자 행동의 주체라 말하고 있다.

===> 마음이 육체의 임금이면, 마음만으로 살아야지요. 왜 육체를 가지고 살까요? 관념이 사람을 폐쇄적으로 만든다. 육체가 없다면, 몸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몸은 소중한데, 몸이 허해서 죽으면서 왜 마음이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가, 살아 있으라고. 제발 좀.... 몸과 마음은 같이 간다는 것을. 마음이 몸의 주인이 아니라 몸과 마음은 함께 간다는 것이라는 것을. 몸이 피곤하면 판단을 잘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순자여 마음이 육체의 임금이면 육체는 마음의 시녀니?

 

 말이란 소리가 아니다. 말이란 것은 말로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나, 그 말로 표현하는 생각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과연 말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본시부터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해설] 올바른 말은 보통 사람들의 시비를 초월할 수 있는 밝은 지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69]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 역시 저것에 말미암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저것과 이것이 함께 생겨난다는 설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고 죽음이 있으면 삶도 있다.

저것과 이것이란 상대적인 개념이 없는 것, 그것을 일컬어 도추(道樞)라 한다. 도추가 가장 알맞은 가운데에 들어맞아야만 비로소 무궁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옳음도 역시 무궁한 변화 중의 하나이고 그름도 역시 무궁한 변화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밝은 지혜로써 판단하는 것이 가장 좋다” 고 하는 것이다.

 

[72]

보편적이고 영원하다는 뜻의 ‘용(庸)’은 작용이란 뜻의 ‘용(用)’과 통한다. ‘용(用)’은 또 ‘통(通)’과 뜻이 통한다. ‘통(通)’은 제대로 된다는 ‘득(得)’과 뜻이 통한다. 알맞게 제대로 된다면 거의 도에 이른 것이다.

 

[78]

지혜의 이상적인 형태란 아무런 인식 작용도 없는 것이다.

 

[87]

모장과 이희는 사람들이 미인이라 하지만 물고기는 그를 보면 물 속 깊이 들어가고, 새는 그를 보면 높이 날아가고, 고라니와 사슴은 그를 보면 후닥닥 달아난다. 이 네 가지 것을은 누가 천하의 올바른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것인가?

내가 보건대 어짊과 의로움의 기준이나 옳고 그른 방향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 내 어찌 그 분별을 알 수가 있겠는가?

해설/ 자연이란 큰 입장에서 사람들의 모든 평가나 판단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105]

모든 일에 자기를 버리고 대상에 대한 의식 없이 자연의 원리를 따라 행동하는 것이 바로 삶을 기르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107]

삶을 기르는 것은 완전한 몸을 지님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분수대로 자연을 따름으로써 이루어진다.

 

[107-108]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가 태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죽은 것도 죽을 운명에 따른 것이다. 윤회하는 때에 안주하고 주어진 운명에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은 꺼여들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것을 하늘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 불렀다.

 

[109]

기름은 촛불이 되어 타 없어져 버리지만, 불은 옮겨 붙여 주면 다할 줄 모르게 된다.

해설/ 세상에서 바라는 사물이나 사람의 몸에는 한계가 있지만 ‘삶을 기르는’ 바탕이 되는 정신은 영원히 존속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122]

그대는 그대의 뜻을 통일하여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도록 해야 한다. 다음에는 마음으로도 듣지 않고 기운으로 듣도록 해야 한다. 귀란 듣기만 할 뿐이며 마음이란 느낌을 받아들일 뿐이지만 기운이란 텅 빈 채 사물에 응대하는 것이다. 도란 텅 빈 곳에 모이게 마련이다. 텅 비게 하는 것이 마음의 재계인 것이다.

===> 텅비게 하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에 계산이 없어야 한다. 마음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단지 관찰하고 의식의 흐름을 관찰하는가.

 

[130]

모든 말이란 풍파와 같은 것입니다. 행동이란 득실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풍파란 요동하기 쉬운 것이고, 득실이 있으면 위태로워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분노가 생기게 되는 까닭은 다름 아니라 바로 교묘한 말과 약삭빠른 말에 있는 것입니다.

===> 이솝의 이야기. 세상에 가장 좋은 물건이며 해로운 것은 ‘혀’이다. 말을 멈추고 들을 줄만 알아도 잘 살아갈 수 있을텐데.

 

[133]

상대방이 아이 같다면 아이 같이 되십시오. 상대방이 분수 없는 사람이라면 분수 없게 행동하십시오. 상대방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종잡을 수 없게 행동하십시오. 여기에 통달하게 되면 탈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135]

자기의 훌륭함을 크게 뽐내면서 상대방의 권위를 범하면 위태로워집니다.

호랑이와 사람은 종류가 다른 동물이지만, 자기를 길러 주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성질을 따라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호랑이가 길러 주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의 성질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154-155]

거울이 맑은 것은 먼지와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고, 먼지와 때가 묻으면 거울이 맑지 않다 하였네. 오랜 동안 현명한 사람과 생활하면 곧 잘못이 없게 된다고도 하였네.

어찌할 수도 없는 일임을 알고서 운명을 따라 평안히 지내는 일은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세.

사람들 중에는 자기의 다리가 완전하다고 해서 내 불완전한 다리를 비웃는 사람이 많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지만 선생님 계신 곳에 가기만 하면 곧 다 잊고 돌아오게 되네. 선생님께서 훌륭함으로써 나를 씻어 주시는 것인지 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네. 나는 선생님을 따라 공부한 지 19년이 되지만 내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의식한 일이 없었네. 지금 당신은 나와 형체 속의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으면서도, 당신은 내게 형체의 외모를 따지고 있으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나?

 

[159]

애태타. 남과 화합하기는 하지만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고, 명성은 그가 살고 있는 사방의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있소. 그런데도 남녀들이 그의 앞에 모여들고 있소. 이것은 반드시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오.

 

[160]

새끼 돼지들이 어미를 사랑하는 것은 그 형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형체를 부리는 정신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전쟁을 하다가 죽은 사람에게는 그를 장사지낼 때 칼을 함께 묻어 주지 않습니다. 다리를 잘린 사람은 신발에 대하여 애착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그렇게 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162 - 163]

애공이 말하였다.

“무엇을 가지고 재질이 완전하다고 말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죽음과 삶, 존속과 사라짐, 곤궁과 영달, 가난과 부, 어짊과 우둔함, 욕 먹음과 칭찬,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이러한 것들은 일의 변화요 운명의 실현입니다. 낮과 밤이 눈앞에서 엇바뀌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지혜는 그 시작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조화를 어지럽히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 스며들지도 않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여금 조화됨으로써 즐겁게 통달하여 충실함을 잃지 않게 하면, 밤낮으로 변화가 들어올 틈이 없게 되어 만물과 더불어 어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물과 접하여 마음에 조화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재질이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두고 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까?”

 

“평형이란 물이 가득히 멈춰져 있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법도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안으로 그 평형을 보전하여 밖으로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덕이란 조화를 이룩하는 수양인 것입니다. 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그로부터 떠날 수가 없게 됩니다.”

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만물의 변화와 함께 어울림을 뜻한다는 것이다.

 

[168]

사람은 본시 감정이 없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따라 자기 삶을 이익되게 하려는 노력 없이 자연에 자신을 맡겨야만 참된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 육체는 물론, 자기 감정에도 얽매임이 없어야 지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71]

옛날의 ‘참된 사람’은 적은 일에도 거스르지 않고, 성공을 뽐내지 않으며, 일을 꾀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람은 잘못 되는 일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으며, 잘 되어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도 떨리지 않고, 물에 빠져도 젖지 않고, 불 속으로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는다. 그의 앎이 도에까지 승화되면 이와 같이 되는 것이다.

해설/ ‘참된 앎’이란 지각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감정이나 욕망 또는 이롭고 해로운 것을 잊음으로써 순수한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추위나 뜨거움은 물론, 죽음이나 삶까지도 그런 사람의 마음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184]

삶의 욕망을 죽이는 사람은 죽지 않으며, 삶의 욕망을 살리는 사람은 살지 못하오. 그는 만물을 전송하지 않는 것도 없고, 마중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파괴하지 않는 것도 없고, 생성시키지 않는 것도 없소. 그런 것을 ‘혼란 뒤에 안정된다’는 뜻의 영녕이라 부르오. 영녕이란 혼란한 뒤에야 이루어지는 것이오.

 

[186]

“누가 무無를 머리로 삼고, 삶을 척추로 삼고, 죽음을 궁둥이로 삼을 수가 있겠는가? 누구든 삶과 죽음과 생존과 멸망이 한 가지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와 더불어 친구가 될 것이다.”

해설/ 무는 사람이 태어나기 전을 뜻한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과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뒤를 일치시키는 비유로서 “무를 머리로 삼고, 삶을 척추로 삼고, 죽음을 궁둥이로 삼는다” 하였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적인 제약을 초월하는 사람들 넷이 친구로서 모인 것이다.

첫째로 자여가 지독한 곱사등이 병에 걸리지만, 자기의 몸의 변화를 위대한 자연 변화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모든 변화에 순응하는 자연의 태도에서 장자가 추구하고 있는 지극한 사람의 일면을 볼 수가 있다.

 

[189]

대지는 나에게 형체를 부여하여 살게 함으로써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써 나를 편안케 하고 죽음으로써 나를 쉬게 하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을 잘 사는 것이 곧 자기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이오.

 

[204]

자상이 말하였다.

“나는 나로 하여금 이런 궁지에 몰리게 한 것이 누군가 생각해 보았으나 알 수가 없네. 부모라면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바라시겠는가? 하늘은 사사로이 어느 개인만을 덮어 주지 않고, 땅은 사사로이 어느 개인만을 길러 주지 않으니, 하늘과 땅도 어찌 나를 가난하게 만드셨겠는가?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던 것이네. 그러나 이토록 궁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이것이 운명이란 것인 모양일세.

해설/ 사람에 관한 모든 것, 가난하고 부한 것, 귀하고 천한 것 등은 모두가 운명에 의한 것이며, 이 운명의 주체는 하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며, 자연의 필연적이고 맹목적인 힘인 것이다. 그것을 맹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차별하고 선택하는 것 같은 작용을 전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218]

명성을 추구하는 자가 되지 말라. 모의를 일삼는 자가 되지 말라. 일의 책임자가 되지 말라. 지혜의 소유주가 되지 말라. 무궁한 도를 철허지 터득하여 아무 조짐도 없는 경지에 노닐라.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을 다하여 이득을 추구하지 말라. 언제나 마음을 텅 비울 따름이어야 한다.

지극한 사람의 마음 쓰임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가는 것은 전송하지 않고 오는 것은 마중하지 않는다. 변화에 호응하되 감추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물을 이겨 내면서도 상처받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248]

대도: 남의 집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알아 맞추는 것은 성인이다. 남조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이다. 남조다 뒤에 나오는 것은 의로움이다. 도둑질해도 되는가 안되는가를 아는 것은 지혜이다. 고르게 나누어 갖는 것은 어짊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서 큰 도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263]

노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삼가 인심을 교란시키지 말라. 인심이란 아랫사람을 밀쳐내고 위로 올라가려 하는 것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서로 구속하고 서로 헤치려 한다. 부드러움은 억세고 강한 것을 유하게 만드는데, 사람들은 모나고 날카롭게 깎고 쪼으려고만 한다. 뜨겁게 달아오르면 타오르는 불길 같고, 차갑게 식으면 꽁꽁 언 얼음 같게 된다. 마음의 빠르기는 잠깐 사이에 이 세상 밖을 두 번 도는 정도이다. 가만히 있을 적에는 심연처럼 고요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늘로 날아오른다. 성이 났다 뽐냈다 하여 잡아매 둘 수가 없는 것이 인심인 것이다.

 

[304]

내가 우리 선생님께 들은 얘기지만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를 쓴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계에 관한 마음 쓰임이 있게 됩니다. 기계에 관한 마음 쓰임이 가슴 속에 차 있으면 순수함과 깨끗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고, 순수함과 깨끗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하게 됩니다.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게 됩니다. 나는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305]

도를 지키는 사람은 덕이 완전해야 되며, 덕이 완전한 사람은 몸이 완전해야 되고, 몸이 완전한 사람은 정신이 완전해야 된다. 정신이 완전한 것이 성인의 도이다.

 

[342]

도를 배움에 있어서 세상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은 글이다. 글이란 말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 귀중한 것이 된다. 말이 귀중한 까닭은 뜻이 있기 때문인데, 뜻이란 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뜻이 추구하는 것은 말로써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그 때문에 말을 귀중히 여기며 글을 전한다. 세상에서는 비록 그것들을 귀중히 여기지만 귀중히 여길 것이 못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이 귀중한 것이 못되는 까닭이다.

 

[371-372]

발자취란 것은 신발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 발자취가 어찌 신발이겠습니까?

진실로 도를 터득하기만 한다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고, 도를 잃으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392]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관한 얘기를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선비에게 도에 관하여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물가를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서야 당신의 추함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이제서야 위대한 도리를 얘기하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75]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각자의 분수는 일정하지 않고 변하는 것이며,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있는 것이란 없다. 그러므로 위대한 지혜를 지닌 사람은 먼것 가까운 것을 똑같이 본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무시하지 않고 근 것이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물건의 양이란 무궁하여 한정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또 옛날과 현재를 한 가지 것으로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오래 산다 하더라도 고민하지 않고 생명이 짧다 하더라도 더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간이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402]

묻노니 어째서 옳다는 것은 존중하고 그르다는 것은 무시하며 다스림은 존중하고 혼란은 무시하는가. 그것은 하늘과 땅의 이치와 만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은 존중하면서 땅은 무시하고 음은 존중하면서 양은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것이 통용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버리지 않고 내세우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408]

발이 하나밖에 없는 기라는 짐승은 발이 많은 지네를 부러워하고, 지네는 발 없이도 움직이는 뱀을 부러우하고, 뱀은 의지하는 데 없이 움직이는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움직이지 않고도 가는 눈目을 부러워하고, 눈은 가지 않고도 아는 마음을 부러워한다.

 

[411]

자기가 곤궁해진 것은 운명임을 알고, 뜻대로 되자면 시세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 큰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의 용기이다.

 

[449]

공자도 말씀하시기를 ‘안으로 들어가 내부만을 기르며 숨지 말 것이며, 밖으로 나와 외부만을 기르며 드러내지 말 것이며, 마른 나무처럼 중앙에 우뚝 서 있어야 한다. 내부와 외부와 중앙의 조화가 잘 되면 그의 명성은 반드시 극치에 달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일상 생활 속에서 먹고 마시고 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경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잘못입니다. “

 

[468]

만물의 실정이나 인간 윤리의 변화는 그렇지 않다. 합해지면 떨어지게 되고, 이룩되면 무너지게 되고, 모가 나면 꺾이게 되고, 높으면 비판을 받게 되고, 뜻있는 일을 하면 공격을 받게 되고, 현명하면 모함을 받게 되고, 못나면 속임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꼭 재난을 면할 수가 있겠는가? 슬프다. 너희들은 이것을 잘 기억해 두어라. 자연의 도와 덕이 행해지는 고장에서만 제대로 지낼 수가 있을 것이다.”

[479]

그 구슬이란 이익 때문에 나와 맺어진 것이고 이 아이는 하늘에 의하여 나와 맺어진 것이오. 이익으로 맺어진 것이란 궁지에 몰리거나 환난을 당하거나 해를 보게 되면 서로 버려지게 마련이오. 하늘에 의하여 맺어진 것은 궁지에 몰리거나 환난을 당하거나 해를 보게 되면 서로 거두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오.

서로 거두어 주는 사이와 서로 버리는 사이란 먼 것입니다. 또한 군자의 사귐이란 담담하기 맹물과 같고, 소인들의 사귐이란 달콤하기 단술과 같습니다. 군자들의 사이는 담담하지만 더욱 친해지고, 소인들의 사이는 달콤하지만 결국 끊어지게 됩니다. 이유 없이 맺어진 것들이란 이유 없이 떨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육체는 자연을 따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며, 감정은 본성을 따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481-482]

선비에게는 자연의 도와 덕이 있는데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곤경에 빠지는 것입니다. 옷이 해지고 신에 구멍이 난 것은 가난한 것이지 곤경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505]

선비가 둥근 관을 쓰고 있는 것은 하늘의 때를 안다는 표시이고, 모난 신을 신고 있는 것은 땅의 형상을 안다는 표시이고, 오색 실로 구슬을 꿰어 차고 있는 것은 일을 하게 되면 내린다는 표시라 하였습니다.

 

[545]

지극한 이론이란 이론을 초월한 것이며, 지극한 행위란 행위를 초월한 것이다. 지혜로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려 한다는 것은 천박한 일이다.

 

[573]

앎이란 물건과의 접촉에서 생겨난다. 앎이란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은, 곁눈질로써 물건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597]

이 원숭이는 자기 재주를 자랑하며 그의 날램을 믿고 내게 오만하게 굴다가 이처럼 죽음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나, 그대들도 잘난 얼굴을 하고 남에게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 될 것이다.

[610]

얻는 것이 삶이고 잃는 것이 죽음일 수도 있지만, 얻는 것이 죽음이고 잃는 것이 삶일 수도 있다. 약이라는 것은 그 내용을 보면, 오두나 도라지나 계두나 시령 같은 것으로 지어지고, 이것들이 때에 따라 번갈아가며 주제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어찌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636]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세상에는 변화가 있다. 화와 복은 유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되는 수도 있다. 모두가 제각기 따르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바르다고 인정되는 것이 한편에서는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다. 큰 택지에 비유하면, 갖가지 동식물이 한데 어울려 살고 있는 것 같다. 큰 산에 비추어 본다면, 나무나 바위들이 다 같이 자리잡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고을의 여론이라 말하는 것이다.

 

[638]

도라는 것은 그것들 전체에 공정히 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의 위대함을 근거로 하여 그것을 도라고 부른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도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면 곧 다른 물건과 상대적인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논한다면 비유를 들면 여론과 도는 개와 말이나 같은 것이 되어 도의 진실한 작용에는 멀리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된다.

 

[641]

물건이 생겨나기 전에 생겨나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없는 것이며 이미 죽어 버린 것을 죽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죽음과 삶은 우리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원리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주재자가 있다거나 주재자가 없다는 설은 결국 억측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내가 보건대 종말은 오는 데가 한정이 없는 것이다. 끝도 없고 한정도 없으니 그것을 무로서 표현할 때에 비로소 물건의 이치와 합치되게 되는 것이다. 주재자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은 이론의 출발점으로서 만물과 더불어 영원히 부침할 것이다.

 

[656]

혜자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자네의 말은 쓸데가 없네,”

장자왈 “쓸데가 없음을 알아야만 비로소 쓸 곳을 얘기할 수가 있는 것일세. 땅은 넓고 크기 짝이 없지만 사람들이 걸을 때 쓰는 것은 발로 밟는 부분뿐일세. 그렇다고 발을 재어 가지고 그 밖의 땅은 땅 속 황천에 이르기까지 깎아내려 버린다면 사람들이 그대로 땅을 쓸 수가 있겠는가?”

 

[659]

마음에 자연스럽게 노닐 공간이 없으면 여러 가지 정욕이 서로 다투게 된다.

삶의 보호는 자기의 관능을 지키는 데서 이루어지고, 일의 성과는 모든 조건이 알맞을 때 나타난다. 봄에 비가 오고 날씨가 따스해지면 풀과 나무들이 무성해지며, 밭 갈고 김 매는 일도 여기에서 비롯되게 된다.

 

[661]

통발이란 것은 물고기를 잡는 기구이지만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게 된다. 올가미란 것은 토끼를 잡는 기구이지만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게 된다. 말이란 것은 뜻을 표현하는 기구이지만 뜻을 표현하고 나면 말을 잊게 된다. 우리는 어찌하면 말을 잊은 사람들과 더불어 얘기할 수 있게 되겠는가?

 

[670]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떻게 가는 곳이 없을 수가 있는가?

하늘에는 천체 운행의 법도가 있고 땅에는 평평하고 험한 변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서 생사의 문제를 추궁할 것인가? 생명이 끝나는 곳을 알 수가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천명이 없다고 하겠는가? 물건과 정신이 서로 호응하는 것이 있다면 어찌하여 귀신이 없다고 하겠는가? 서로 호응하는 것이 없다면 어찌하여 귀신이 있다고 하겠는가?

 

[694]

공자가 안회에게 말하였다.

“안회야, 집안이 가난하고 신분도 천한데 어찌하여 벼슬을 하지 않느냐?”

“벼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게는 성곽 밖에 밭 오십 묘가 있으니 죽을 공급하기에 충분합니다.”

“훌륭하다. 그대의 뜻이여! 내가 듣건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이익 때문에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자득할 줄 아는 사람은 이익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속마음의 수행이 되어 있는 사람은 지위가 없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현대판 노예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원하지 않는데 나를 고용해준 고용주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다. 세상의 주인으로 사는 사람은 안회처럼 최소한의 먹을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695]

삶을 소중히 하십시오. 삶을 소중히 하면 이익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겠거든 그대로 마음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정신적 고뇌가 없어질 것입니다.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마음을 따르지 않는 것을 거듭 자기를 손상시키는 것이라 합니다. 거듭 자기를 손상케 하는 사람 중에는 오래 사는 이가 없습니다.

 

[720]

하늘과 땅은 무궁하지만 사람이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일정한 한계가 있는 몸을 무궁한 공간에 기탁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덧없음은 준마가 좁은 틈바구니 사이를 달려 지나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그의 의기를 기쁘게 하지 못하고 그의 수명을 보양하지 못하는 자란 모두가 도에 통달한 사람이 못 되는 것이다.

 

[723]

수치를 모르는 자가 부자가 되고 말이 많은 자가 출세합니다. 큰 명예와 이익이란 거의 수치도 모르고 말만 많은 자들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명예란 관점에서 보든가. 이익으로 계산하든가 말 많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 됩니다. 이익으로 계산하든가 말 많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 됩니다. 만약 명예와 이익을 내버리고 마음에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선비의 행동으로서는 그의 천성을 간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731]

부란 사람에 대하여 이롭지 않은 점이란 없다. 부는 어떤 아름다움도 이룰 수 있고 어떤 권세도 다 추구할 수 있으므로 이것은 지극한 사람도 미칠 수가 없는 일이요, 성인도 따라갈 수가 없는 일이다.

부는 남의 용기와 능력을 빌려 위세를 떨치고 강한 힘을 발휘한다. 남의 지혜와 계략을 이용하여 명석하게 잘 살필 수가 있다. 남의 덕을 근거로 하여 현명하고 어질게 행동할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고 있지 않아도 임금이나 아버지 같은 위엄을 지닐 수가 있다. 또한 음악이나 미술이나 권세 같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배우지 않고도 즐길 수가 있다. 몸은 다른 물건을 빌리지 않고도 편안할 수 있다. 탐나는 것을 얻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일고 스승을 기다릴 것 없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온 천하가 비록 나를 비난한다 하더라도 누가 그것을 사양할 수가 있겠는가?

 

[756]

진실함이란 정성의 지극함에 있습니다. 정성되지 못하면 성실하지 못하게 되어 남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진실로 슬픈 사람은 소리를 내 울지 않아도 슬프게 느껴집니다. 진실로 노여운 사람은 성내지 않아도 위압이 느껴집니다. 진실로 친한 사람은 웃지 않아도 친밀하게 느껴집니다. 진실함이 속 마음에 있는 사람은 정신이 밖으로 발동합니다. 이것이 진실함이 귀중한 까닭입니다.

 

[775-776]

사람이란 두툼한 외모 속에 감정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모는 성실한 듯하면서도 마음은 교만한 자가 있고, 외모는 잘난 듯하면서도 사실은 못난 자가 있고, 외모는 신중한 듯하면서도 마음은 경박한 자가 있고, 외모는 견실한 듯하면서도 속은 유약한 자가 있고, 외모는 느슨한 듯하면서도 마음은 성급한 자가 있다. 그러므로 목마른 듯이 의로움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뜨거운 것을 피하듯 의로움을 떠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782]

장자가 죽으려 하자, 제자들은 그를 성대히 장사지내려 하였다. 그때 장자가 말하였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과 겉관으로 삼고, 해와 달을 한쌍의 구슬 장식으로 삼고, 별자리를 진주와 옥 장식으로 삼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삼으려 하니, 나의 장구는 이미 다 갖추어진 것이 아닌가?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태겠느냐?”

제자들이 말하였다.

“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먹어 버릴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하였다.

“땅 위에 놓아 두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을 것이고, 땅 아래에 묻으면 개미들이 먹을 것이다. 이쪽 놈이 먹는다고 그것을 배앗아 딴 놈들에게 주는 셈이다. 어찌 그렇게 편벽되게 생각하느냐?

 

[806]

사람들은 모두 알맹이 있는 것을 추구하는데, 그 홀로 텅 빈 것을 추구하였다. 그는 저장하는 것이 없었으므로 언제나 남음이 있었다. 홀로 우뚝하여 여유가 있었다. 그는 행동함에 있어 더디고도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 무위하였고 사람들의 기교를 비웃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는데, 그 홀로 자연스러움에 완전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깊은 것을 근본으로 삼고, 간략함을 원칙으로 삼았다.

노자는 또 말하였다.

“굳은 것은 깨어지게 되고, 예리한 것은 깎여지게 된다.”

그는 언제나 외물을 너그럽게 포용하였고, 남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그러니, 도의 극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812]

불은 뜨겁지 않다(뜨거운 것은 사람의 감각이다). 산에도 입이 있다 (산울림이 나오니까) 수레바퀴는 땅 위를 밟지 않는다 (언제나 극히 일부만이 닿아 있다) 눈은 물건을 보지 못한다 (빛이 없으면 안 되니까)

 

 

Ⅲ. 나의 감상

 

내가 장자를 만났던 것은 1988년 대만 만화작가 채지충이 지은 ‘장자, 자연의 피리소리’라는 만화였다. 대머리이며 귀엽게 그려진 장자는 내 손을 떠날 줄 몰랐다. 힘들 때마다 장자를 꺼내들고 만화를 읽다보면 얼마나 재미있고 위로를 받았던가. 이번에 연암서가에서 김학주가 번역한 책을 읽으면서, 만화와 오버랩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손때가 묻은 장자 만화가 역시 더 애정이 간다.

장자는 ‘유머’며 ‘웃음’이다. 동양의 ‘이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솝도 까마귀, 개미, 여우 등 동물들을 소재로 우화이야기를 썼다. 장자도 마찬가지다. 우화를 이용해서 말하는 장자의 재미있는 웃음과 우화는 삶을 긍정하게 만든다.

 

장자의 정신은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 즉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이라는 짧은 구절에 잘 응축되어 있다. ‘내가 걸어가야 길이 만들어진다’뜻일거다. 만들어져 있는 길을 가는 것도 있겠지. 그러나 정말 가야 할 길이 있다면, 없는 길도 내가 자주 다니다보면 길이 나게 되고 만들어진다.

 

장자가 말하는 도란 무엇일까? 아마 ‘자유로움’이라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절대적 가치 - 종교, 국가, 자본- 라고 말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삶을 되찾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것은 남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다.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갈 것. ’무용의 용’에서 말하는 것처럼 쓸모없다는 것을 모두 버리면, 쓸모 있음은 사라진다는 것. 마음의 자유는 자신의 마음을 속박하는 것을 알아야 벗어날 수 있는 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장자는 이제는 내 삶에 편안하게 스며들고 있다.

 

 

철학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낮섦과 차이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철학을 필요로 한다. 철학은 현실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친숙한 생각을 문제 삼으며, 항상 새롭게 그리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선을 바꿔 놓기 때문이다.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자신의 삶을 비판적으로 음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강신주,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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