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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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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2일 23시 32분 등록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능겨? 어째 얼굴이 그렇게 축이 난겨?”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객지생활을 하는 내가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당신은 한결같이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여든이 그리 멀지 않았음에도 어머니는 쉰 살이 멀지 않은 내게 여전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능겨?”라고 물으십니다.

 

봄이 오면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할 딸과 조금이라도 눈을 맞춰두고 싶어서 이 겨울에는 비교적 자주 아내의 집을 찾아 머무는 편입니다. 혼자 밥 먹는 생활에 익숙한 나는 함께 둘러앉아 따순밥을 먹는 느낌이 좀 각별한 편입니다. 특히 딸 녀석이 그 작은 입으로 연신 수저를 퍼 나르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녀석과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밥상에서 나는 뜬금없이 딸에게 물었습니다.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능겨?” 딸 녀석은 어리둥절해 하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나 역시 잠시 침묵하며 녀석의 평소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늘 느낀 것이지만 녀석은 참 밥을 빨리 먹습니다. 나는 아직 반도 밥을 먹지 않은 상태인데 녀석은 벌써 수저를 내려놓습니다. 밥그릇을 살펴보면 딸의 밥그릇은 그새 말끔히 비워져 있습니다. 아내야 워낙 소식을 하는 사람이니 속도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창 때로 제법 양이 되는 딸 녀석은 제 어미와 같거나 더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치곤 했습니다.

 

애비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딸에게 다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 내가 밥을 먹고 있구나, 알아채며 밥을 먹고 있느냐는 뜻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니?” 녀석이 그 뜻이 무엇인지 알겠다고 대답을 합니다만 내가 다시 부연합니다. “입으로 들어오는 밥 한 숟가락의 느낌, 엄마가 익혀준 생선 한 젓가락, 물 한 모금의 개운 청량함... 그러한 것들이 입 안으로 찾아오는 기쁨을 누리며 먹고 있느냐는 뜻이야.” 녀석이 대답합니다. “맞아, 내가 밥을 너무 빨리 먹어. 좀 천천히 먹으면서 음미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근데 학교에서 급식을 먹다보면 그러기가 쉽지가 않아. 후다닥이 일반적이지... 하하.”

 

만날 때마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능겨?”라고 물으시는 어머니의 안부는 고등학생시절부터 지금까지 객지에서 배는 안 곯는가 하는 염려였음을 나는 압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웬만해서는 배를 곯으며 살지는 않습니다. 인스턴트식품도 많아졌고 길거리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들도 널렸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딸 녀석을 포함해 나와 겸상을 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짬짬이 묻는 편입니다.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능겨?”

 

나다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부터 나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일하기 위해 밥을 먹지 않습니다. 나는 차라리 밥을 먹기 위해 일하는 편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는 시간이 참 소중합니다. 하니 밥을 먹는 시간에 나는 온전히 밥과 대면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자발적으로 산책을 할 때 땅과 바람과 하늘과 다가서는 풍경을 온전히 마주하고 누리듯, 밥도 그렇게 누리고 있습니다. 숨 쉬는 것을 자각하고 쉬려고 자주 나의 호흡을 더듬고 있습니다. 어딘가 목적한 곳을 두고 걷거나 뛰기 위해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귀한 호흡을 누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대는 어떠신지요? “밥은 제대로 먹고 사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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