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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9일 06시 15분 등록

결혼의 여신 헤라

 

 

결혼의 여신 헤라를 결혼 이야기에서 빼면 안될 것 같다. ‘결혼의 여신이라고 특화된 전문 분야를 명시하는 건 그리스사람 특유의 일인 듯 하다. 여신은 그리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의 삶에 관련하여 한국사람들에게 익숙한 여신은 출산을 관장하는 삼신할미, 영등할미, 농경신 자청비나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이다. 일본사람에게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중국은 여와, 이집트의 이시스여신이 친숙하다. 그 중 어느 여신도, 세상을 창조하고 여러 만물을 낳고, 먹고 살 것을 정비하는 두루하고 편재하는 신의 모습이지 집 안에서, 오로지 남편에게만 집중해서 결혼만을 전담해서 팔딱거리지는 않았다. 제우스의 바람기와 중혼, 겁탈은 그리스인들이 통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토착민의 신이나 신의 배우자를 신화 속에서도 접수했던 방식을 반영한다. 이야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관계정립을 반영했다. 헤라여신 역시 위대한 여신의 일면을 쪼개가는 과정에서 가부장제에서 왜곡되고 오해된 부분일 수 있으리라. 비싼 화장품 브랜드 헤라가 있다. 헤라여신의 왕비 이미지를 차용했으리라.

 

조금 길지만 진 시노다 볼린의 책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 헤라 부분을 요약 발췌해 본다. 그녀는 신화를 가지고 여성의 삶에 적용해서 우리 안에 있는 여성 원형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했다. 원형을 씨앗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융 심리학을 소개하는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인종과 문화권을 넘나들며 여성 안에 있는 공통의 씨앗을 탐구한다. 그 중에서 그리스 신화 헤라의 이미지와 신화를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여성 안에 있는 공통속성을 탐구한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일본계 미국인인 그녀를 스승님 중 한 분으로 생각한다. 융 분석을 하는 정신과의사였고, 여성주의자로서 신화를 다루는 그녀의 관점을 사숙한다. 삶의 변화가 있을 때, 길 잃었을 때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고, 키 큰 나무에 기어 올라가듯 나는 그녀의 책을 펴든다. 신혼여행을 갈 때도 여러 번 읽어서 나달나달해진 그녀의 책 한 권 만을 꾸렸다. 신화와 꿈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인 기본적인 나의 입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게는 헤라가 빈약하다. 결혼을 원하니 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거다. 삼십 대 10년의 관점이다. 또 하나는 결혼을 한 후에는 어떤 식으로 내 안에서 헤라가 자라나는 지를 살펴보는 거다. 접을 붙인 나무라도 일단 성공하면 그 나무와 한 몸이니까. 현재 관점이다.

 

이제부터 결혼의 여신 헤라 이야기 두루마리를 풀어보려 한다. 군데군데 헤라 관련 신화는 이런 저런 책에서 가져왔다. 빨간책 <벌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지혜의 여신> 등에서다.

 

 

헤라 여신의 신화와 계보

 

헤라라는 이름은 위대한 여성을 뜻하는 것으로 영웅(hero)의 여성어이다. 헤라를 상징하는 것들로는 소, 은하수, 석류, 백합, 헤라의 경계심을 뜻하는 공작새의 무지개 빛깔 깃털에 있는 둥근 무늬가 있다. 그리스 시인들은 그녀를 소 눈을 가진 이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눈을 찬미하기 위해서였다. 신성한 소는 세계 여러 문화권의 신화에서 살찌우게 하는 위대한 여신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은하수는 그리스어로 어머니의 젖을 뜻하는 갈라에서 유래한다. 그 젖이 지상으로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 처녀 헤라는 봄에, 완숙한 여신인 헤라는 여름에, 과부 헤라는 겨울에 베풀어지는 의례를 통해 숭배받았다. 이 세 측면은 여성이 걸어가는 삶의 세 단계를 표현한다. 또 처녀 헤베, 아내 헤라, 할머니 헤카테이기도 하다. 헤라의 상징과 의례로 추정한다면 제우스의 배우자가 되기 전 그녀는 위대한 여신 혹은 삼위일체 여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헤라는 두 가지 상반된 면을 드러내고 있는데 하나는 결혼의 수호신으로서의 의식에 따라 엄숙하게 섬김을 받는 여신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호메로스가 표현한 것과 같이 걸핏하면 싸우기를 좋아하고, 원한이 가득하고 질투심 많은 심술꾼으로 훼손된 모습이다.

 

헤라는 제우스와 남매간이다. 레아와 크로노스의 자식으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 의해 삼켜졌다. 헤라는 토해진 뒤 두 명의 자연신을 양부모로 해서 길러졌다. 헤라는 아름다운 여신으로 성장했다. 헤라가 마음에 든 제우스는 비에 젖어 애처로운 작은 새로 변했고, 헤라는 그 새를 가슴에 품었다. 제우스가 그녀를 취하려 하자 헤라는 결혼을 약속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들은 서쪽 바닷가 끝 영원한 봄의 정원에서 정식으로 결혼했다. 그곳은 황금사과가 열리는 정원이었다. 제우스에게는 이미 첫번째 지혜의 여신 메티스, 두번째 아내 법과 정의의 여신 테미스를 비롯해 여섯 명의 동거인과, 그 사이에 난 자녀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혼 뒤 삼백 년에 걸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제우스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외도를 계속 했다. 헤라는 자신이 굴욕감을 느낄 때마다 반드시 행동으로 보복했다. 헤라의 분노는 남편에게 향하지 않고 상대 여성들에게, 제우스가 낳은 자식들에게, 또는 아무 상관도 없는 구경꾼에게 쏟아졌다. 제우스는 헤라가 여자들에게 복수할 때는 어쩌지 못했지만 어떤 경로로 왔든 그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그의 마음에 드는 공적이 있으면 후대했고 재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고 역할을 주고 보호했다.

 

몇 케이스, 헤라의 고통이면서 다른 이들의 수난 장면을 재생해보자. 디오니수스를 낳은 세멜레는 헤라의 사주에 의해 벼락불에 타죽었다. 나아가 헤라는 디오니수스를 양육하던 이모 부부를 미치게 만들었다.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섬으로 데려갔을 때 헤라는 괴물을 풀어놓아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칼리스토를 마음에 둔 제우스가 아르테미스여신으로 변신하여 그녀를 유혹하자 헤라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들고 그녀의 아들이 어머니인 줄 모르고 곰을 사냥하게 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 레토여신이 해산할 땅을 찾지 못한 건 헤라가 엄금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산의 여신인 자신의 딸 에일레이티이아를 붙잡아두어 레토의 해산을 방해했다. 올림포스의 다른 여신들이 무지개여신을 불러 금과 호박 목걸이를 주기로 약조하고 해산의 여신을 데려오도록 구슬렀다. 아르고스의 왕녀 이오를, 제우스는 아내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암소로 만들었다. 헤라는 제우스에게 이오가 변해서 된 소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제우스는 난감했지만 어물쩍 이오를 헤라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헤라는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를 시켜 감시했다.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 아르고스를 죽이자 이오는 이집트로 도망갔다. 거기서 아들을 낳았는데 헤라는 이 아들을 납치해버렸다. 다시 아들을 찾아나서는 이오(이시스 여신)의 고난이 계속되었다. 알크메네가 헤라클레스를 낳을 때 헤라는 출산의 신 에일레이티이아가 다리를 꼬고 팔장을 꼬고 앉아 알크메네의 해산을 도와주지 말도록 사주했다. 헤라는 제우스가 알크메네에게 한 축복 (그녀가 낳을 페르세우스의 후손이 그지역의 통치자가 되리라)에 분통이 터져서 그녀의 해산을 늦추고 당시 임신 7개월이던 사촌을 먼저 태어나게 했다. 사촌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의 사주로 헤라클레스에게 12가지 과업, 난제를 주게 된다.      

 

그 중 한 장면 칼리스토 모자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드라마와 소설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 연출된다. 헤라는 요정 칼리스토에게 득달같이 달려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로구나, 자식을 배는 것부터가 나를 능욕하는 처사인데 그 자식을 낳기까지 해서 나를 또 한번 능욕하고 내 지아비가 저지른 난봉의 증거로 삼아? 네가 무슨 수로 이 징벌을 피하겠느냐? 이 호난 계집아, 너와 내 남편을 시시덕거리게 만든 너의 그 아름다움을 빼앗아버릴 테다.”

헤라는 연적인 요정의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으로 내굴렸다. 그리고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들어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했다. 하지만 제우스는 모자를 연민하여 하늘로 올려 큰 곰 자리와 작은 곰 자리로 만들었다. 헤라는 그 처사에 더 화가 났다. 양부모를 찾아가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어보자.

두 분께서 신들의 왕비인 제가 어째서 천궁의 보좌를 떠나서 여기 왔냐고 물으시니 말씀드리지요. 제 지아비의 사랑을 입은 저 아닌 다른 계집이 별이 되어 하늘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제 손으로 벌을 내렸는데 저것들이 하늘에서 저런 명예를 누리는 판에 누가 나에게 죄짓기를 망설일 것이며, 누가 저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제 권능이 이 지경이 되어도 좋습니까? 제우스가 왜 나와 인연을 끊고 저 계집과 정혼하지 않는 지 모르겠습니다. 왜 저 계집을 제 방에 들어앉히고 그의 아버지를 장인으로 모시지 않는 겁니까?   

헤라의 고통이 생생히 느껴지고 그녀의 처리방식이 선명히 보인다. 

 

제우스는 헤라가 신성시 하는 결혼을 모욕했으며 더구나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 난 자식을 더 총애하여 그녀를 비탄에 빠뜨렸다. 더구나 이런 굴욕감을 가중시킨 것은 제우스가 스스로 지혜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낳은 일이다. 이로써 제우스는 아이를 낳는 일마저도 아내의 도움이 필요없음을 과시했다. 헤라도 혼자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대장간의 수호신 헤파이스토스를 임신했다. 태어난 아이는 장애가 있었고 헤라는 화가 나서 헤파이스토스를 올림포스산에서 던져버렸다. 헤라가 잔인한 괴물인 티폰을 홀로 낳았다고도 한다. 전쟁의 신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의 아들이었는데 매번 아테나에게 지고, 감정적으로 대응해 제우스의 경멸을 받았다. 연회에서 술 따르는 소녀인 헤베와 출산의 수호신인 에일레이티아가 딸이다.

 

헤라 원형

 

원형으로서의 헤라는 아내가 되고 싶은 여성의 욕구를 대표한다. 심리적 상태는 물론 운명까지도결혼과 배우자의 성격에 달려있다. 이런 원형은 커플로 묶이고자 하려는, 그래서 독신으로 남는 것을 무척 어렵게 하는 내면의 힘이자 본능이다. 결혼이 그녀의 정체감과 행복의 근원이므로 그녀가 결혼을 했는지, 상대가 누군인지는 그녀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 때의 헤라 여성은 아이를 낳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끼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못할 때 느낌과 같은 정도의 깊은 절망을 경험한다. 헤라원형은 부부의 반쪽이 되게 한다. 이것은 결혼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일이나 프로젝트에도 적용된다. 그녀의 주요 관심사는 혼자서 한 인간이 되기보담은 커플이 되고 싶은 원형적 욕구의 발현이다. 자신의 창의성이 파트너와 함께 있을 때 살아나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파트너가 될 사람을 찾았을 때 집필 되고 프로젝트가 활성화되고 사업이 번창한다. 헤라는 이런 식으로 꽃 피운다.

 

헤라에게 결혼은 세 가지 의미를 띤다. 짝을 이루고 싶은 내면의 욕구 충족, 사회로부터 부부로 인정받으려는 외적 욕구의 충족, 신성한 결혼을 통해 완성을 이루려는 것이다. 제우스는 헤라 신전에서 완성시키는 이라고 불린다. 헤라는 남편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려는 지향을 갖고 있다. 헤라는 언약을 지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헤라가 마음의 동력인 여성은 혼인서약에서 조건부의 언약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결혼했으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결혼을 지속한다. 결속의 깊이 덕분에 많은 결혼이 평생 지속되어 두 사람에게 성소가 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녀는 결혼이 영적, 성적, 신체적인 합일이기를 원한다. 헤라의 결속력은 파괴적일 수도 있다. 폭력을 휘두르거나 중독된 남편을 떠날 수 없게 하여 그녀를 공의존자나 희생자로 만든다. 헤라의 부정적 모습은 남편에게 거부당하고 무시당함으로써 나타난다. 제우스가 다른 여성들과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헤라는 남편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보복한다. 이유는 헤라 원형이 감정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해있기 때문이다. 헤라가 개발되지 않은 상태의 결혼에서는 깊은 의미에서의 남편과의 연대감을 느낄 수 없다. 결혼 욕구가 없거나 다른 우선순위보다 남편을 만나는 일이 과소평가되는 여성의 경우 의식적으로 헤라를 개발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여성으로서의 헤라의 삶

 

여성으로서의 헤라는 남편을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삼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남편은 언제나 모든 것의 우선이다. 헤라여성이 원만한 부모에게 키워지든 불화하는 가정에서 자라든 결혼을 지향함에는 변함이 없다. 결혼을 통해 불행한 가정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꿈꾼다. 사춘기의 헤라는 깊이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다면 만족스럽다. 남자친구는 헤라 소녀의 정체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그녀는 높은 신분의 젊은이와 사귀고 싶어하고 그를 통해 감정적 안정감을 얻길 원한다. 대학을 남편감을 찾기 위한 장소와 시간으로 본다. 헤라 여성에게 일은 대학과 마찬가지로 부차적이다. 헤라 여성의 태도는 남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로 대별된다. 주말부부가 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으며, 자기 일도 남편 일만큼 중요하다는 주장을 할 생각을 못한다. 직장은 자신이 하는 일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다. 직장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헤라 여성은 대개 다른 원형을 함께 지니고 있다.

 

헤라 여성은 남편과 같이 있기를 좋아하며 여자 친구와의 우정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처녀적의 친구 관계는 완전히 끊긴다. 결혼 후에는 남편 친구의 부인들과 어울리게 된다. 이 모임은 남편을 위한 동맹의 성격을 띤다. 상대 여성들이 이혼을 하거나 과부가 되면 그 모임에 끼워주지 않는다.

 

헤라여성은 능력 있고 성공한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능력있고 성공한 것의 기준은 자신이 속한 가족과 계급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성공지향적인 남성 안의 미성숙한 감정이나 여성편력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그녀는 남편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들으며 판단하지 못한다.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녀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지 가능성과 잠재력은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헤라 여성은 성과 결혼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결혼하기까기 성경험이 없기가 쉽다. 남편과의 성관계는 그것이 아내의 의무이기 때문에 갖는다. 헤라에게 행복의 조건은 남편이 그녀에게 헌신적이며, 결혼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녀의 아내 역할에 대해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성공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현대판 제우스 남편은 결혼을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의 일부로 이용한다.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헤라 여성은 사회 활동에 맹렬히 참여하는데 그럼으로써 완벽한 부부라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나간다. 그러나 공식 석상의 다정함이 사석에서도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생활이 불만족스러울 때도 그녀는 결코 이혼을 고려하지 않는다. 굴욕적인 취급을 참아냈던 헤라여신처럼 헤라 여성도 그러한 상황을 참아낸다. 마음 속 깊이 자신은 결혼한 여자라고 다짐하고 있다. 이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이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그녀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배신당한 헤라는 다른 여성에 집착하며 복수를 꿈꾼다.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보면 슬픔보다는 수치심을 느끼며 이런 집착이 영혼을 파괴하는 것을 볼 수 없다. 내면으로 향한 성찰은 일어나지 못한다.

 

헤라여성이 아이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아내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성애의 본능은 약하다. 남편과 자식 간에 이해가 상충하여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헤라 여성은 남편의 이익을 위해 자식을 희생하는 방향을 택할 것이다.

 

중년의 헤라여성의 행복은 그녀가 결혼을 했는지, 그리고 누구와 결혼을 했는 지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적으로 지위와 명성을 획득한 남편, 그리고 자신의 내조를 고마워하는 남편을 둔 헤라 여성의 중년은 가히 인생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아직도 미혼이거나 이혼을 했거나 남편을 잃은 헤라 여성의 삶은 비참하다. 많은 겨우 중년에 결혼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헤라 여성은 보통 위기를 잘 넘기지 못한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헤라 여성은 질투심과 분노에 싸여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말년에 혼자 되었을 때가 헤라여성에게 가장 어려운 때다. 헤라 여성에게 과부가 된다는 것은 단지 남편을 잃었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녀는 아내 역할도 함께 잃은 것이고, 다시 말하면 삶의 의미조차 잃었다는 뜻이다. 그녀는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긴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헤라 여성은 상심이 지나쳐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감, 그리고 외로움을 겪게 된다. 이런 반응은 헤라 여성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 즉 남편 중심으로 살아온 삼의 결과다. 같은 이유로 헤라 여성은 일반적으로 자식들과 가깝지 않다. 그녀가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조건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든지 아니면 자신 안에 다른 원형이 있어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지 두 가지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 역할이 인생의 의미와 만족감을 줄 것인지 아니면 고통과 분노심만 남길 것인지는 결혼 생활의 경제적 수준과 남편의 충실성에 달려 있다. 헤라 여성이 결혼 뒤 그녀의 삶을 아내 역할에만 국한시킬지는 그녀가 지니고 있는 헤라 원형이 얼마나 강력하냐에 달려 있다. 또한 결혼 전에 그녀가 자신의 다른 면을 얼마나 계발해 놓았는 지도 중요하며, 헤라를 극복하도록 남편이 격려해주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한 요소다. 일단 결혼을 하면 헤라 여성은 다른 어느 여성보다도 강하게 좋든 싫든 남편과 묶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혼이 잘못된 것임이 드러날 때도 헤라 여성은 가부장적 문화의 지지를 받으며 이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헤라의 고통과 성숙의 길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헤라 여성은 이혼할 생각은 없고 그 대신 변모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헤라 여신은 데메테르 여신을 제외한 다른 어느 여신보다 고통받았다. 그러나 한편 헤라 여신은 자신의 고통을 삭이지 않고 상대방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여신들 중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메데이아 신화는 마음을 다하여 한 남자에게 전념할 수 있는 헤라 여성의 능력과 동시에 그녀의 노력을 남편이 전혀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복수를 할 수 있는 능력 둘 다를 보여준다. 콜키타에 보관된 황금양털은 이아손과 아르고나우테스가 서로 가지려고 하는 물건이었다. 이아손의 수호신인 헤라와 아테나는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해 콜키타 공주인 메데이아가 이아손과 사랑에 빠지도록 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결혼을 약속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손에 넣도록 도왔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했으며 결과적으로 오빠를 죽게 했다.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코린토스에 정착하여 두 아들을 낳고 살았다. 이방인인 메데이아의 지위는 지금으로 치면 동거인에 불과했다. 여전히 왕이 되고픈 욕망을 가진 기회주의자인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할 기회를 잡았다. 결혼의 전제조건은 메데이아와 두 아들을 추방하는 것이었다. 이아손의 배반에 분노한 메데이아는 적극적으로 복수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이아손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두 아이를 살해했다. 놀랍게도 가장 파괴적인 헤라의 모습을 보이는 메데이아조차 남편 이아손을 죽이지는 않았다. 버림받은 헤라는 자신을 굴욕스럽게 만든 남편을 해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해친다. 그녀는 특히 자식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첫째, 결혼에 대한 강한 동경과 본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결혼을 한 후에는 그 결혼 자체에 충실할 것임을 알아 제대로 된 놈을 골라야 한다. 상대방의 인격과 성품, 그리고 충실성, 자신과의 조화 등등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 둘째, 문화가 남편과 아내에게 할당한 성역할을 수행하는 전통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반성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남편이 헤라 아내를 배려할 수 있다. 불안해서 의심하지 않도록 좀 더 친절히 대할 필요가 있다. 넷째, 불행한 결혼의 경우 헤파이스투스처럼 자신의 분노를 동력삼아 창조적인 작업을 해 볼 수 있다. 남편이 자신의 떠났을 때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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