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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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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30일 00시 32분 등록

그렇고 그러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보통 온돌에 배 깔고 누워 깊고 맛있는 책 조금 읽다가 배고파오면 밥을 먹었습니다. 현미에 기장과 검은 쌀을 더하여 밥 짓고 신 김치 단정하게 썰어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 함께 먹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된장찌개로 바꾸거나 김을 구워 달래를 넣은 간장에 찍어 먹는 날도 있었습니다. 배불러지면 조금 걷거나 지게지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난 눈에 부러진 소나무 길고 푸른 가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실어 내려다가 불쏘시개용으로 다듬어 두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느티나무 삭정이를 주워서 똑같이 다듬어두었습니다. 이삼일에 한 번씩은 장작을 패서 쌓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읽다 만 책을 읽었습니다.

 

이윽고 산 그림자가 화선지 위 먹물처럼 마을을 향해 번져올 즈음 다시 뒤란에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멀찍이 놓은 참나무 동가리에 앉아 뜨거워지는 아궁이를 지키며 모락모락 연통으로 빠져나와서 별빛 생겨나는 하늘로 뭉게뭉게 흩어져 가는 하얀 연기를 하염없이 보았습니다. 이 즈음이면 작은 새들의 소리는 사라지고 대신 어떤 날은 뒷 숲에서 고라니인지 멧돼지인지 모를 짐승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리가 짧게 일어섭니다. 정겨운 것은 어둠 속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이상하리만치 푸근한 날이 계속되어 바람마저 평화로웠고, 해서 더 없이 좋은 저녁 정취를 누리는 몇 날을 만났습니다.

 

두어 번은 오두막을 벗어나 길을 나섰습니다. 방학을 맞은 선생님들을 만나 강의를 하거나 연초부터 부지런한 기업에서 요청한 강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갈 때마다 푸른 채소나 두부, 혹은 귤이나 빵 몇 조각을 장만해서 들어왔습니다. 이따금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책 작업은 하고 있는지 조심스레 채근하는 출판사의 전화도 있었고, 딸 녀석의 안부도 있었습니다. 등기우편이나 택배를 아래 주차장에 두고 간다는 전화 외에도 하루 두어 통씩 이런저런 전화가 걸려왔는데 모두 짧아서 좋았습니다. 오두막을 찾아온 손님도 두세 팀 있었습니다. 전기 사용량을 검침하기 위해서 오신 분도 있었고, 올해 여우숲에서 무언가 함께 프로그램을 해볼 수 있을까 살피러 온 팀, 혹은 함께 할 프로그램을 논의하러 온 팀 정도 였습니다.

 

숙제처럼 안고 있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그저 그렇고 그러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지게를 지거나 그냥 숲을 거닐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내게는 이런 날들이 참 좋은 날들이구나. 바깥으로 향하는 날보다 안으로 향하는 시간이 많은 날, 밖으로 내뱉는 말보다 자연과 생명, 시간의 소리로부터 무언가 들을 수 있는 날, 내 사유를 반복해서 재생하는 날이 많은 것보다 다른 누군가의 깊이 있는 사유를 찬찬히 음미할 수 있는 날,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마주하기를 기대하는 날보다 그저 그렇고 그러한 날을 하루하루 담담히 맞이하고 보내는 날... 이런 날들이야말로 내게는 참 좋은 날들이구나.’

 

그대 일상에도 참 좋은 날이 있으시지요? 그대에게 참 좋은 날은 어떤 날인지요? 내일이 설이니 다시 한 번 그려보면 어떨까요? 참 좋은 날에 대해! 그리고 새해에는 그대는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우리 그렇게 참 좋은 날 더 자주 마주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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