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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4일 06시 51분 등록

구스피릿 34번째 북리뷰

“삶은 홀수다(김별아, 한겨례 출판)

 

1. 저자 소개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데뷔 초기 사회변화와 함께 불어닥친 혼란을 개인적 감성으로 써내려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을 발표해 젊은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후 소재의 다각화에 몰두한 『축구전쟁』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미실』은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비의 여인, 미실을 천오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현대에 되살린 소설이다. 타고난 미색으로 진흥제, 진지제, 진평제와 사다함 등 당대 영웅호걸들을 녹여내고 신라왕실의 권력을 장악해 간 미실의 일대기를 통해 현대와 같은 성모럴이 확립되기 전의 여성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는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요녀로 전락하지 않은 자유로운 혼의 여인과 그런 여인이 가능했던 신라를 그려낸다.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여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이 작품은 적극적인 탐구 정신, 작가적 상상력, 호방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그간 우리 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개성적인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스럽고도 우아한 문체 속에 거침없는 성애 묘사가 소설과 역사를 읽는 묘미를 풍성하게 해준다.

『가족 판타지』에서 작가는 아이와 그녀의 사랑이, 그가 중심이 되어 이루고 있는 가족 관계가, 그리고 전통적 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확장된 관계로서의 가족이 인류애와 박애주의로 연대하는 것을 꿈꾸고 내일에 저당 잡히지 않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 혼자서도 행복하고, 헤어져서도 행복하고, 다시 만나서도 행복하고, 상처와 장애와 실패와 절망 속에서마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그가 희망하는 가족 판타지를 넘어선 가족의 참모습을 제시하였다.

‘일본 천황가 폭탄 투척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조선 청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치명적 사랑을 그린 『열애』에서 작가는 『미실』에 이어 다시 한 번 가열 차게 벼린 내공 풍부한 역사소설을 선보인다.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관계, 일본 내의 식민지였던 가네다 후미코, 일본 사상사에서 후미코의 의미, 아나키스트이자 허무주의자이며, 테러리스트이자 시인인 박열의 투쟁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버무려 그저조선인 독립운동가와 일본인 아내'라는 한 문장으로 일축되었던 이들을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국경, 이념, 죽음까지도 초월한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즉 인류의 숭고한 가치인 휴머니즘이 발로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에세이집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에서는 상처와 시련이 바닥을 치는 고통 속에서도, 죽도록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저자는 자신이 책과 시를 읽으며 삶과 사랑을 사유하고 길을 찾아간 경험을 토대로 눈물 흘리고 힘을 얻고 닫힌 마음을 열었던 그의 지난한 기억들을 글로 담아냈다.

소설집으로는 『꿈의 부족』, 장편소설 『미실』『열애』『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개인적 체험』『축구전쟁』『영영이별 영이별』,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식구-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가족 판타지』,『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등이 있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 귀

작가의 말 / 어섯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기록들

당시의 개인적인 형편이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생각하면 모르쇠를 잡고 숨어들고만 싶었으나, 그 와중에도 칠실지우나마 넋두리를 풀어놓고픈 의뭉수가 있었다 보다. 얼결에 제안을 수락하고 시작한 연재가 어찌어찌 당초에 약속한 6개월을 너머 햇수로 4년동안 이어졌으니, 내가 아니라 시간이 쓴 듯한 토막글을 모아 이렇게 책을 묶는 지경에 이르렀다.(5)

삶의 홀수다의 구성과 글을 스타일은 내가 추구하던 것이었다. 글의 밀도나 메시지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 없다. 그저 무언가 나의 머리는 치고 지나갈 때,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글로 옮기고 또 옮겨, 그런 글들 중 괜찮은 글 몇 편을 가려내어 책을 내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김별아 같은 내로라하는 작가가 이 책을 내는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내게는 조금 더 압축적이고 집약적이고 글쓰기와 책쓰기 플랜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은 이미 충분히 수다스럽다. 말과 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넘쳐서 문제다.(5)

신문은 재미있는 지면이다. 독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이고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1600자에서 1800자 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6)

하지만 한 꼭지의 글감을 마련하기 위해 어섯눈으로나마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6)

짧고 어눌한 이 토막글들과 함께, 어쨌거나 한 시절을 지났다. 이제 또다시 새로운 계절이 다가온다. (7)

 

1부 달려라 앨리스

밥지어 밥을 떠서 밥을 먹을 때, 삶은 비로소 뜨거워진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지어 누군가를 위해 밥을 떠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존비와 보상의 경계는 까무룩 사라진다. 먼 곳에서 떠돌던 햇살의 시간, 바람의 시간, 비와 풀벌레와 거름이 썩어가는 시간이 내 배 속에 그득하다. 그리움의 시간, 외로움의 시간, 홀로 거리를 헤매던 방황의 시간을 연민과 안도감으로 소화한다.

삶은 홀수다

계집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귓불에 입술이 닿을 듯 바싹 다가앉아 속삭인다. (15)

시시풍덩한 얘기에도 배를 잡고 뒹굴며 웃고,(15)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다.”(16)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라 그리워서 가만히 외로워져야 사랑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사랑하기 보다는 지나친 포만감을 경계하며 그리움의 공복을 즐기는 편이 낫다.(17)

삶은 어차피 홀수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17)

인간의 삶에 외로움은 숙명이다.(18)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여섯 남매에 열두 손자와 올망졸망한 증손들까지 다 모여 떠들썩한 잔치 같은 장례를 치렀다. (19)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불효녀인 나는 얼마 전 전에 없던 별짓을 했다. (21)

누군가는 말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삶이 그러하듯 사랑도 순간이기에 진정한 삶의 용기는 아낌없이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22)

정말 두려운 것은 남아 있는 부끄러움보다 남기지 못한 용서와 감사와 사랑이다. 그 세 마디 말밖에는 더 남길 것도, 가져갈 것도 없으리니.(23)

먹고살기의 괴로움,                    혹은 즐거움

제가 벼르고 별러 맛있는 거 사드린다는데 고작 고등어구이를 고르세요?”(25)

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부터 생겨난 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먹는 일은 본능을 넘어선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이다.(26)

생애전환기 검사

단테가 말한 인생의 반고비 35세인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말하는 생애전환기는 만 40세와 66세다. 삶의 방향이나 상태가 다른 것으로 뒤바뀌는 시기, 한번쯤 왔던 길을 톺아보고 가는 길을 헤아려봐야 할 때가 닥쳐왔다는 것이다. (29)

사회학자 에밀뒤르케의 이론대로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을 분류해 현상 뒤의 사회적 원인을 분석해보아도 지독한 고독 속에서 마지막 결단을 해야 했던 개인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29)

서양 격언 중에 사람은 자기의 부모보다 자신이 사는 시대를 더 닮는다는 말이 있다.(30)

세상에 난 지 꼬박 마흔 해 되는 날, 생애 전환기라는 한마디 말이 무겁고, 무섭다.(30)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낸 통지서에서 생애 전환기의 정의를 알고 저자의 처지와 대조하면서얻어낸 느낌과 글. 일상의 소소한 일들도 밀도 있는 글을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쏜살 같은 그 사이에 우리 주변에선 42개의 목숨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30분의 갈피짬은 참 짧은 시간이다.(31)

그건 다름 아닌                        슬픔이었다

소크라테스 선생은 관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하셨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단과 편견의 잣대를 내려놓고 가만히 살펴보는 것이 필수이리라.(32)

시위대가 몰고 온 트럭에서는 군가가 우렁우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33)

나는 문득 배꼽노리쯤에서 치밀어 오른 어떤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혔다.(33)

그때 내 가슴 속에선 뭉글하고 뜨거운 기운이 치밀었다. 슬픔. 그래. 그건 다름 아닌 슬픔이었다.(34)

노인들은 가난, 고독, 불구, 그리고 절망의 형을 언도받았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일갈이 절로 떠오른다.(35)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훌륭한 거짓이 서투른 진정에 못 미친다는 한비자의 말을 들먹일 것도 없이, 이처럼 서투른 거짓으로 사기를 치려는 작가가 한심하다 못해 안쓰럽다.(37)

내가 만든 산을                        넘다

등산로 입구의 먹자골목에서 동동주에 도토리묵을 먹으며 앙버텼다.(41)

턱없이 요망하고 괴이쩍은 소리인 줄은 알지만, 치열한 삶과 그 삶 속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줄도 알지만, 한 때 나는 마흔이 넘은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42)

지리멸렬한 도덕과 제도에 붙매인 채 시들부들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했다.(42)

나는 어느덧 그토록 혐오하던 후줄근한 나이가 되었다.(42)

나에게 마흔이란??????? 젊은 시절 내가 생각한 마흔은???????

근래 한동안 대학가에서 리얼리스트가 되어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라는 경구와 함께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고, 40대에도 마르크스주의자면 바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42)

설령 40대까지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나는 절대 그런 소리를 지껄이며 젊은이들을 야코죽이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43)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고 상황이 바뀐다고 자신의 뜻과 신념을 함부로 내팽개치지 않는다.(43)

어지간히 청순한 뇌를 가진 요변쟁이, 혹은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는 사이코패스라야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라는 식으로 뒤스럭뒤스럭 지랄버릇을 떠는 것이다.(43)

다만, 너무 익숙해진 삶은 짐이 된다. 변화는 두렵고 몸은 무겁다. (43)

산을 오르는 내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살아온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폴 부르제의 말을 곱씹었다.

산을 오르며, 삶과 마흔의 삶을 곱씹다.

실로 10대에 해야 할, 20대에 하고 넘어가야 할,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40대에 반드시 해야만 할 과제 같은 건 없다. 삶은 바로 여기, 지금 이순간에 있다.(44)

그래도 봄은 오고                      꽃이 핀다면 ???

애애한 봄기운에 들썽들썽 봄바람이 나도 시원찮을 판에 마음은 자꾸만 낮게 가라 앉는다.(45)

희생자가 영웅이 되고, 그 영웅이 현실을 장악한 허깨비들에게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면 비탄마저도 싸늘하게 식는다. 여전히 춥다. 슬픔은 얼음가시처럼 날카롭다. 봄은 쉽사리 와주지 않을 것만 같다.(46)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면, 바야흐로 완벽하게 사랑의 반대편에 터를 닦고 말뚝을 박을 지경이다.(46)

어쩌면 삶은, 인간의 역사는 그러하기에 마땅히 지속되는 것이라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이다.(48)

그래도, 봄은 온다, 오고야 만다.(48)

지렁이, 부처님,                        달팽이 예수님

그런데 열브스름한 여명 속에 걸음을 옮기노라니 발치에서 곰작거리는 것들이 눈에 띈다. (49)

…… 그만 발걸음이 균형을 잃고 비치적거린다.(49)

한 생명이 끊길 때에는 종을 넘어선 고통의 기운이 날카롭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50)

삭정이로 떠서 든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몸을 뒤칠때의 몸서리쳐지는 이물감, 엄지와 검지로 달팽이집을 조심스레 잡았다가 얇은 막이 팍삭 깨져버렸을 때의 허무함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업보의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평하겠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쏘삭인다.(50)

산책 지렁이 달팽이 부처님 생명의 소중함 – 4대강 삽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그랬다. 삶은 본능이었다. 치사하고 더럽고 구차하지만, 갸륵하고 애틋하고 미쁜 욕망 혹은 의지.(54)

타인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밧줄을 움켜잡고 산다. 누구에게는 돈과 명예가, 다른 누구에게는 그것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놓칠 수 없는 밧줄일 것이다.(55)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인간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게 던질만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와 반대로 인간은 삶으로부터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기에 행동을 통해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묻기보다는 대답해야 한다.(55)

뱀의 길은 뱀이 안다

애꿏은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탐욕스런 정력제의 재료로 쓰이다보니 뱀이 사라진 들판에 쥐들만 살판났다. 그런데 자연의 사슬은 섬세하고도 엄정한지라,  쥐똥의 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침투하면서 발열, 두통, 구토, 빈혈등 위험한 증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행성출혈열이 창궐하게 되었다. 아무튼 쥐새끼가 문제다. (60)

도대체 어떤 쥐새끼일까?

우선 사람이 주인이라는 오만을 떨쳐버러야 한다. (60)

사무에 데데한 문인들 사이에서 단연 탁월할 일꾼으로 꼽히는 도종환 선생과생색 쓸 것 없는 뒷자리에서 손을 보탠 많은 충북 예술인들의 자존심이 담겨 있는 행사였다.(60)

달려라 앨리스

입이 닷 발 나온 아이를 데리고……(62)

종합편설채널 사업자로 선정된 언론들이 젯밥에 눈이 멀어 염불에는 입 닥치고 있는 사이,(63)

정치라는 것이 아예 실종되다시피 한 이 난국에도 위정자라는 자들의 자화자찬, 아전인수, 적반하장의 소리가 드높으니 그것은 필시국민들에게 미치기 싫으면 웃기라도 하라는 뜻이렸다!(63)

새해라고 이등변삼각형이나 마름모꼴의 해가 뜨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 속에서 해와 달이 바뀌고 날과 요일이 변하는 건 인간의 자의적 분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64)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흐른다. 무한한 시공간을 그저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간다.(64)

나와 앨리스, 그리고 2011년은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 또다시 벅찬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싶은가?(65)

이 책을 보면 공사가 다망한 현실을 돌이켜보며 이처럼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반문을 하듯 마무리하는 글들이 많다. 한마디로 문제의식을 가지라는 것이겠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 1955년 영국의 정신과 의사 토드에 의해 명명되었다. 물체가 실제보다 작아 보이거나, 커 보이거나, 왜곡되어 보이거나,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한 것처럼 멀어 보이는 등 형상이 왜곡되어 보이는 증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저자인 루이스 캐럴이 그러했듯 주로 편두통 환자들에게서 나타난다고 한다.(65)

저자는 앨리스 증후군에 대한 정의를 하며 현상을 왜곡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유하며 그래도 앨리스는 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즐거운 지옥에서            살아남기

노동이라기엔 객쩍은 소꿉질 같은 구메농사지만 조금만 바지런히 품을 들으면 밥상이 싱싱한 남새로 푸질 것이다.(68)

가수나 코미디언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작가에게야 이 즐거운 지옥이 꽤 괜찮은 창작의 산실이라고 엉너리를 부렸건만, 가끔은 욕지기가 나도록 고단하다.(68)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남들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모든 것에 능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남들 비웃지 말라, 아무도 신경쓰지 않느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 (안테의 법칙) (69)

벌써부터 배 속이 그득히 푸르러진다.(70)

맑고 고요한 것은 오직 변함없는 자연뿐이니(71)

99퍼센트를 위하여 산행을 하며 느낀 삶에 대한 자세와 의지를 이야기하다

2011 10 22, 나는 군사작전지역인 향로봉을 제외한 남측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인 진부령을 넘고 있었다.(…) 오로지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한반도 산줄기의 거지반을 지르밟았다.(72)

나는 종종 의식적으로, 때로 무의식적으로 산과 삶을 헷갈렸다.(73)

그중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왜 오르느냐는 시비곡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곳에서 의연한산처럼, 삶은 권리이자 의무인 동시에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이었다. (73)

털어서 먼지 정도가 아닌 방사능 분진이 매캐하게 피어오르고,(73)

숨차다. 힘겹다. 하지만 산을 넘게 하는 건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한 걸음 한 걸음뿐이다. 숨을 고르고 이를 악문다. 넘어온 숱한 산을 뒤로한 채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삶을 향해,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일 때다. (74)

이 높디높은 산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들이 바다에서 높이 솟아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없이 깊은 심연에서 더 없이 높은 것이 그 높이까지 올라왔음에 틀림없다.” – 니체(75)

아픈 만큼 성숙하고, 깊은 만큼 높아지고, 고통만큼 언젠가 행복해지길. 지금 심연에 갇혀 허우적대는 우리, 99퍼센트에게 그보다 더 큰 격려는 없다. (75)

에페메테우스의 변명

독수리에게 생간을 파 먹히는 지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형 프로메테우스에 비교되는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어리석음의 대명사다.(80)

(스마트폰에 대한 현대의 모습을 보면서) 하지만 에피메테우스 뺨칠 벙어리 오줌이라 우세질당한대도 내 눈엔 얻은 것보다 잃은게 더 커 보이니 어쩌겠는가?(82)

커피숍에 모여 앉은 젊은이 서넛이 잡담조차 않고 각자의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채 열중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대화를 나눌라치면 상대의스마트폰이 거푸 또롱 또롱운다. 그토록 넓디넓은 세계와 소통하느라 눈앞의 사람들을 소회시키는 것이다.(82)

그렇게 똑똑해질 생각이 없는 내가 똑똑한 폰을 마련해 소셜내트워크 머시기에 몰두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아마도 너무나 외롭다는 증거에 다름 아닐 테다. 아서라! 이 모두가 (어리석은) 에피메테우스의 씁쓸한 변명이다.(82)

나 또한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 모순적 인간이기는 하나, 스마트폰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나나 구본형 선생님이나 그리고 김별아씨 조차도 비슷한듯 하다. 우리는 모두 아날로그적인 세대이기 때문일까?

말하는 남생이, 말하는 매실

그때 인터넷으로 비용과 부작용을 검색하며 엉두덜거리던 내게 동생이 던진 촌철살인의 한마디. “말을 잘하고 싶다고? 이젠 말을 줄여야 할 때가 아닌가?”(84)

우연히 맞은 죽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야흐로 막말과 궤변과 요설의 시대다.(85)

함께 말할 만한 사람과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함께 말할 만하지 않은 사람과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공자(85)

말이란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일임을 깨달으면, 유창한 달변보다는 가만한 경청이 소통의 첫걸음임을 깨닫게 된다.(86)

내 입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듣는 이가 주인일지니, 말은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받는 데 쓰일 때에야 뜻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의 목적인 동시에, 금 같은 침묵을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야 할 이유이리라.(86)

말할수록 말이 어렵다. 침묵하지 못할 바에야 눌변가로 남을지니, 그나마 발음이라도 정확하게 해보려고 조심할 수 있어 다행이다.(87)

원 플러스 원 플러스알파

겨울 외투들을 갈무리할 짬을 놓치고 하릴없이 걸린 분홍 원피스를 매만지며 이러다 겨울에서 곧장 여름으로 건너뛰는게 아닐까 걱정했다. (88)

난분분히 흩날리며 향기를 뿜어야 할 꽃잎들이 차가운 봄눈에 스러지는 모습이 쓸쓸했다.(88)

그때 우연히 전철로 이어지는 지하상가 층계참에 쪼그려 앉은 초라한 행색에 늙수그레한 아저씨 한 분이 내 눈에 띄었다.(89)

갑자기 내 목이 메는 듯하며 생목이 치밀었다. (89)

값싼 동정은 암의 환부에 연고를 바르는 일에 불과하다”(90)

그렇게 좁고 옹색한 마음을 추슬러 노상의 메마른 광경을 열없이 스쳐 지나가려는 찰나,(90)

아무리 길고 추워도, 봄은 변함없는 봄이었다.(90)

삶의 교훈이 꼭 악담과 으름장을 통해 얻어져야 마땅한가?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연민과 애수, 혹은 공포와 혐오 중 무엇이 앞서야 마땅한가?(91)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

고향에 계신 엄마와 아버지와 그것을 떠나 사는 나와 남동생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을 믿으며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한 연락을 하지 않는 맹맹한 가족이다.(92)

우리 가족이 이토록 -하게 된 것은 애초에 타고난 성정이 관계에 애면글면하지 않는 탓도 있으려니와 평생토록 직장 생활을 해온 부모 밑에서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생활에 익숙해진 자식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핵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93)

…… 일면 죄송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으로 불퉁거렸다.(93)

하지만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늙어간다. 밝아진 눈으로 백발이 다가오는 현실부터 바라봐야 한다.(94)

예사로운 실수로 눙치고 지나가려니,(95)

모든 것을 늑슬게 하는 시간의 흐름에도 기억만은 좀처럼 늙지 않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젊지 않은데, 어린 딸의 원군이자 맞수였던 젊은 아버지는 어느덧 세월 속에 가뭇없는데.(95)

 

2부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꽃이, 꽃이로구나…… 이진명의 시구를 가만히 중얼거린다. 별안간 꽃이 사고 싶은 것, 그것이 꽃 아니겠는가…… 시인은 그렇게 가난한 마음을 위로한다. 꽃은 언제고 피었다 지고 다시 피기 마련이기에, 이별이라고 다 슬프지 않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꽃밭에서 만날 것이기에.

아름다운 사람, 래군이 형

시가 천상의 예술이라면, 소설은 천민의 예술”(99)

이 세상에서 아들 다음으로 사랑하는 소설인터에 언강생심 비하나 폄하의 뜻일 리 없고,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고유의 속성을 나만의 애정 표현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99)

소설은 결코 아름답고 순결하고 고상하기만 할 수 없다. 고리끼의 말대로 인간학에 다름 아닌 그것의 풍미는 삶의 진창에 코를 박고 짓무른 상처에 뺨을 비빌 때에만 발현되기 때문이다. (99)

조세희 풍의 강강한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100)

꿈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욕망과, 책임이라고 불리는 식솔들의 안위와, 이른바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100)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르윈데이비스는 음악이라는 꿈을 위해 가난한 현실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근근이 산다는 표현을 existing 이라 부른다( 실제 그런 뜻이 있을 것이다 ) 산다는게 결국 존재하고 생존한다는 절박한 단어이다.

한 번이라도 이 놈의 문학병에 걸려 앓아본 사람이라면 이루지 못한 꿈이 어떻게 평생을 깔깔하게 뒤좇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101)

언젠가 그는 예의 싱검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101)

두 번 만났으나 두 번 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황황히 헤어졌다.(102)

소리, 그녀가 되다.

….타박에도속없이 헤벌쭉 웃어버렸다. (103)

대단히 예쁘거나 재바를 것 없는 평범한 아이 경순(104)

고만고만하게 닮은 목소리들을 흉내 내기보다 자신만의 소리와 노래를 찾고자 했던 그녀는 자본의 시스템이 장악한 업계에서 물정 모르는 미운 오리 새끼일 뿐이었다.(104)

끼와 낙천성을 물려준 아버지와 인생 최고의 친구이자 스승인 어머니의 성을 따고 흔들리지 말고 달려 나가자는 뜻의 이름을 붙여, 마침내 가수 강허달림이 되었다.(104)

그저 독특하다 생각했지 그녀의 이름이 이런 간결하면서도 진중한 의미를 가진지는 알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노래 봄날은 간다를 들었다. 여자 전인권이라 불려도 좋을만큼 허스키한 음색이 삶을 노래하는 듯, 왠지 모를 슬픔이 깃들여있는 듯 했다.

이따금 물색없이 대학강의에 불려 나가면 세상만사 심드렁한 표정의 젊은이들을 만난다.(105)

너무 일찍 서열화를 경험해 뼛속 깊이 패배감을 간직한 그들에게 야망 따윈 영어 격언에나 있는 것이다.(105)

젊은 친구들이 조로한 얼굴로 꿈만 먹고 살수는 없잖아요?”라고 되물어올 때 여전히 철없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105)

꿈은 망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깨어지고 부서지는 것에까지도 행복을 느낄 만큼 절실하고 절박해져야 이루어진다. 아니, 쟁취된다.(105)

시련과 상처와 고통과 이별 속에서도 삶은, 사람은, 음악은, 문학은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은 것이다. 아니, 죽도록 사랑해야 마땅한 것이다. (106)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지난밤에도 잠결에 하늘이 수런거리는 것을 낌새채고(107)

얼마 전까지 창신동에서 지역아동센터를 꾸리며 다사다망하게 지냈다. (108)

내 기억 속에 오롯한 그녀는 방화범도 장기수도 활동가도 아니고 필명처럼 청신한 향기가 번져 나는 곱고 다정한 언니였다. 그런데 아직 젊은 그녀의 몸에 수술로도 제거할 수 없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니, 격조한 끝에 받은 악보가 막막하고 먹먹할 뿐이다.(108)

남은 시간을 알 수 없는 촉박 지경에도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었지만, 언니는 용렬한 나를 욕하지 않았다.(108)

이즈음 나는 시시때때로 사는 게 참 되다며 엄부럭을 부리던 터였다.(109)

어떻게든 앙버티며 열심히 사는 것이 이 난경에 처한 우리의 의무라고.

순간순간이 꽃봉오리이며 걸음걸음이 꽃길임을 잊지 말고 조금만, 조금만 더 즐겁게 살아남읍시다.(110)

새로 이사간 집의 이슬을 보며, 개인적 친분의 김은숙 언니의 투병기를 그리다. 그럼에도 밝고 의지에 찬 그녀를 보며 삶의 의지를 다잡자고 이야기 한다.

그 길모퉁이 시인의                   마을

하지만 상상 속의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 현장(용산참사 현장)은 어디에도 없고,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었다.(113)

삶이란 그렇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고 죽어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에 따라 죽어간다. 어릴 적 들었던 죽은 놈만 원통하지…. 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난 게 반가워 연방 벙싯거렸다.(114)

시인이 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말들이 내 눈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떤 말들이 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떤 말들이 움켜쥔 주먹처럼 내 안에서 뼏어져 나왔다. 세계가 내 몸을 타자기로 삼아 제 이야기를 두드렸다. 더 이상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가 내 몸에 자신의 구조와 상처를 깊이 새겨두었다. 그 상처를 말함은 그래서 내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되었다. –송경동, <5월 어느 푸르던 날> 중에서 (115)

누군가는 그가 우리에게 너무 큰 부채 의식과 죄책감을 준다고 힐난하기도 하지만, 그를 노동운동가이기 이전에 시인으로 기억하는 나는 짠하고 섭섭할 뿐이다. 원망과 질책은 그가 서정시를 쓸 수 없는, 느긋하게 음유하며 살 수 없는 세상에게 돌려야 마땅하다. 그는 다만 온몸으로 시를 쓴다. 그는 천생 시인이다.(116)

살아라, 살아 있으라 친구 성철에게

겨드랑이에 살짝 땀이 차고 호흡이 더워질 때까지 홀로 씨근대며 걷노라면,(117)

가열한 싸움에도 불구하고(119)

사람의 일에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는 오직 자신이 스승이자 벗이지.(119)

꽃 지는 날, 낮술을 마시다

꽃들마저 사람의 마을에 더부살이해 살기가 겸연쩍은 듯 순서도 없이 제멋대로 피었다. 진다. 혼란스런 봄이다. 어수선한 시절이다. (122)

T.S.엘리엇은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폐허의 황무지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불렀다.(124)

스스로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걸 잊어버린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세상도, 누가 더 뻔뻔스럽고 표독한가를 경쟁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도, 경조부박한 세대도 세태도 탓할 것 없다. 싸움은 언제나 자기로부터 시작되고 끝난다. 그리하여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나 자신에게 돌이켜 물어본다.(125)

악비의 묘 앞에서                      중얼거리다

괴테는 말했다. “여행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 돌아오지만 않는다면.”(127)

이 부박한 생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일을 겪는 것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믿는 나는,(128)

지금도 삐걱거리는 채로 굴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10년은, 아니 100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찰나일 뿐이다. 풍진 속에 분분히 떠도는 티끌에 불과하다.(128)

지켜볼 것이다.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무한한 역사 앞에 유한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일는지도 모른다.(129)

그러하기에 역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두려움을 모르는 무뢰배를 심판하기 위해, 그 탁류의 시간을 거듭하지 않기 위해(130)

그래, 나는                   386이다?!

나는 ‘30,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을 가리키는 ‘386세대라는 명칭이 처음부터 껄끄러웠다. 경계와 절연을 강조하는 세대론에 찬동할 수 없을뿐더러 학생운동으로 민주화를 이끈 공을 인정한다해도 10명 중 3명만이 대학생이던 시대에 학번이 세대의 표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32)

세월은, 무섭고도 우습다. 일상은, 무섭고도 우습다. 욕망은, 무섭고도 우습다.(134)

늦봄에 늦봄을                         추억하다

별꽃처럼 피어 난분분하다.(136)

첨단 방법 시스템을 자랑하는 경비 업체 직원들이 나름의 젊은 전문가라면 청소 업체 직원들은 날삯을 받고 일하는 늙숙한 품팔이꾼이다. (138)

역사의 평가와 세상의 평판에 상관없이 추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138)

생살에 바늘을 찔러 물감을넣어 새길 만큼 간절한 추억을 가진 이는 진정으로 복되다. 늦봄에 늦봄을 추억하며, 내 헐벗은 팔뚝을 가만히 쓸어본다.(139)

떠난 후에도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면, 더 많이 살지어다. 남기고 가져갈 것은 오직 추억뿐이다.(139)

삶을, 들어 올리다

왜 삶의 고달픔은 넓이나 높이나 부피가 아닌 무게로 표현되는 걸까? 좁고 작기보다는 무거운 삶, 그것은 아마도 삶을 짐으로 여기는 데에 뒤따르는 표현일 테다.(140)

가벼울 때도 있어요. 충분한 훈련과 감정 조절로 몸과 맘의 상태가 좋을 때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기도 합니다.”(141)

역도는 성실과 인내로 오로지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해야만 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들여다본 사람은 깊고 넉넉하다. 역도 선수들이 대부분 내성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성격을 지닌 것 또한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인 듯싶다. (142)

3년쯤 지나면 선수의 몸은 자연스레 운동에 적합하도록 길들여진다. 그 다음부터 자기 관리라는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매일 들어도 바벨은 무겁다. 하지만 들면 들수록 무게를 견딜 만큼 근육이 만들어지고 관절이 강화된다. 단에 오르면 봉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리하여 천근만근의 쇳덩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때까지, 그들은 버틴다. 침묵과 집중 속에서 자신을 벼린다. 어쩌면 역도는 삶과 많이 닮은 운동 경기일지도 모른다.(142)

바벨의 무게를 조금씩 늘여 목표를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데 익숙하기에, 꿈은 오직 그의 발치에 놓여 있다고. 그는 다시 씩 웃고는, , 눈앞의 삶을 번쩍 들어 올렸다.(143)

어떤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라도, 아무러한 미미하고 하잘 것 없는 것이라도, 궁극으로 치닫노라면 마침내 빛나는 한 지점에 닿는다. 그것이 바로 삶, 그 자체!(143)

노래 가사에서 삶의 무게란 표현을 뜯어본다. 그리고 매일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리는 역도인의 삶에서 삶의 무게를 되새겨본다. 결국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 꽃이,                     꽃이로구나

초여름의 태백산은 우글우글한 나무와 도글도글한 꽃 천지다. (145)

이름 모를것들은 있을지언정 이름 없는것들은 없다.(145)

종전에 내가 가졌던 꽃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면, 때아닌 꽃타령이 열없긴 하다.(146)

외로울 것이었다. 분노, 억울함, 슬픔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지독한 외로움뿐일 것이다.(147)

이진영,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148)

선생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영정 속의 선생(소설가 박완서)은 생전처럼 조쌀하고 숫접은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150)

글쟁이의 삶은 고단하다. 운이 좋아 살아생전에 재능과 노고를 인정받은 이나 불운하여 보상도 받지 못한 이나, ‘필승을 외치며 폭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는 문학을, 예술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가난하다.(150)

재수없으면 100이라는 저주 어린 축복의 말이 유행하는 고령화 사회에서도 소설가들의 평균 수명은 64, 시인들은 한술 더 떠서 62세란다.(151)

왜 작가가 살아 있을 때는 읽지 않던 책이 죽었다니까 갑자기 궁금해지는가? 박완서 선생이 그 천박하디천박한 생난리를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151)

100만 를 파는 한 명의 작가보다 1만부를 파는 100명의 작가가 더 필요한 것은 작가의 수만큼 다양한 세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151)

좋다. 나의 궁극적 첫 목표는 1만부이다…… , .

 

3부 사랑은 맛있다

꿈은 승리보다는 패배 속에서 더욱 선연하다. 내가 여태껏 젊은 날의 꿈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고,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고, 절망과 패배 속에 지독하게 아팠기 때문이다. 젊은 날엔 아픔도 슬픔도 꿈을 일구는 거름이 된다. 아픔이 두렵고 슬픔이 꺼려져 더 이상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비겁한 불모의 시기가 오기 전에 모쪼록 더 많인 패배하고 마음껏 절망하길!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곧이어, 떼쟁이, 욕쟁이, 심술쟁이, 악동, 울보, 응석꾸러기, 눈치꾸러기…….(157)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당근과 채찍의 방법을 총동원해도 막무가내인 말썽꾼들(158)

나는 아이로 인해 내가 얼마나 모성애가 강하고 희생적이며 헌신적인가……를 확인했다기보다, 아이를 통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158)

아이는 시시때때로 나를 시험에 들게 했고, 나는 지면서 배웠다. 그것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 기꺼이 지기 위해 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158)

엄마라는 이름은 아름답고도 무겁다. (159)

엄마의 불안이 아이의 불안이다. 엄마의 공포가 아이의 공포다. 엄마의 고통이 아이의 고통이다. 아픈 아이들이 점점 더 늘어간다. 그것은 아픈 엄마들이 점점 많이진다는 증거와 다름이 없다.(160)

아이들의 병을 고치기에 앞서, 욕망에, 경쟁에, 갈등과 소외감에 아픈 엄마들의 치유가 필요하다. ‘엄마라는 이름이 굴레나 족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엄마이기 이전에 그녀들이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엄마가 세상을 인식하는 첫 번째 말로서 오롯이 이름다워 질 수 있다.(160)

무적초딩의 현주소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선연한데, 벌써 열네 살이란다. 더 이상 엄마의 손을 놓칠세라 종종걸음 치던 어린애가 아니란다. 아이가 주먹을 옥쥐고 눈을 부릅뜨고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몇 마디 잔소리에 식탁에 컵을 탕탕 내려놓고,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린다. 몸의 성장 속도를 따라 좇지 못하는 마음, 치기와 혼동되는 미숙한 열정, 시시때때로 회오리바람처럼 그를 휘젓는 불균형한 욕망까지…… 바야흐로 질풍노도, 주변인 이유 없는 방향의 사춘기가 왔다. 전국의 사춘기 아들딸을 둔 엄마들과 함께 이 고통의 축제를 만끽하리라!(161)

이보다 더 황당할 수 없는 까탈에 붉으락푸르락하는 부모의 얼굴은 동병상련의 심정 때문에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162)

그것은 다름 아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다시 한 번 이들의 나이를 상기한다. 아이들은 열네 살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스물네 살도, 인생의 몽근짐을 추스르는 마흔네 살도 아닌, 열네 살. 그들이 도망치려도 도망칠 수 없고 피하려도 피할 수 없는, 끝내 어금니를 질끈 물고 즐기는 체라고 해야 하는 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그처럼 힘들고 재미없는 일이라면, 아직은 어디로든 도망치고 때로는 피해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아닌가?(163)

그럼에도 부모들은 정체 모를 불안에 아이들을 꾸역꾸역 학원으로 몰아대고, 학교와 교육청은 애꿏은 운동부원들을 시험에서 제외하고 성적을 조작해서라도 그놈의 수준을 높이려고 한다. 거짓의 모범을 보이고, 기만을 가르친다. (163)

이 무섭고 잔인한 서열화의 광풍을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할까?(163)

축하의 말은 공허하고, 무적초딩들은 슬프도록 비장하기만 하다.(163)

이제 막 부모와 소통 꽤나 하게 된 아이를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쉬이 넘어가지 못하겠다.

시끄럽다고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던 아이의 노래가 시상 내역이 되었다. 도무지 즐길 수 없기에 기어코 피하길, 참 잘했다.(164)

성선설을 믿어볼까?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라! 그 진실만은 가르치고 싶었기에, 아이를 이끌고 낯선 동네로 이사했다.(165)

자식 자랑은 불출이라면서도 누구라 할 것 없이 슬금슬금 제 자식 자랑을 입 밖에 흘리기 마련이지만, 나는 의외로 공평무사해서 그런게 잘 되지 않는다. (166)

유토피아는 애당초 없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갈등과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다만 조금 덜 다치고 조금 더 사랑하길 바랐을 뿐이다.(166)

현실의 분노와 고통 속에서, 그래도 아이들이 희망이다.(167)

오늘 괜한 삽질을 하면 내일 아이들이 메워야 하고, 오늘 물러서면 내일 아이들의 행군이 길어진다.(167)

이제부터 생각을 바꾸어 성선설을 믿어볼까 한다. 우리의 미래와 그 알알한 희망이란 이름을.(167)

플라톤은 과감히 가족을 해체하고 아이들을 공동으로 양육할 것을 주장하면서, 아이들을 오로지 축제와 놀이와 노래와 장난 속에서 키우고자 한다. 플라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바, 교육의 이상은 아이들 스스로 즐기는 법을 충분히 배우는 것이었다.(168) 

잘 놀아야 잘 큰다. 잘 놀아야 잘 배운다. 잘 놀아야 잘 산다.(168)

지각을 하는 아이들에겐 벌로 비타민 C를 먹여 주신다. 선생님보다 더 큰 덩치들이 덜 여문 마음을 다쳐 쩔쩔 맬 때 양팔을 벌려 그들을 안아주신다. 뜻 밖의 스킨십에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 밀쳐내던 아이들도 학기말 즈음엔 슬그머니 그 어깨를 감싸 안는다니, 사랑은 그토록 강하다.(172)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키팅 선생님처럼…….  뭉클 ㅜ ㅜ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랑과 관심뿐일진대, 고립과 굶주림에 대한 강요보다 더 큰 폭력은 없다.(173)

‘X슬픈 습관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소슬하다. 아무러한 시절에도 이렇게 계절은 바뀌고 아이들은 자란다.(174)

우리 때는 ‘X을 주로 썼는데 요즘은 ‘X가 대세인 것이 다를 뿐이다.(175)

일종의 부사. ‘너무’, ‘굉장히’, ‘대우(강릉 사투리)’와 같은? 나도 고딩시절 한참을 썼다. 요즘도 욱하면 가끔 쓴다. , .

다만 문제는 우리 때의 욕이 비 올 때 떨어지는 낙숫물 정도였다면 지금은 마르나 궃으나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다는 것이다.(175)

지금 아이들의 욕설 문화 역시 또래 집단 내에서 우월 성을 확보하려는 경쟁적인 과시의 측면이 있다. 실은 강해 보이고 싶다는 것 자체가 턱없이 약하다는 증거다.(176)

정작 그 욕의 망측한 뜻을 아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더 많은 아이들이 욕으로나마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그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철저히 서열화한 학교와 무자비한 학원 사이를 뺑뺑이 돌며 아직도 맞을만한 짓을 하기에 때려야겠다는 어른들의 으름장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자해적인 무기인 욕이라도 없다면 무엇으로 불안과 맞선단 말인가?(176)

값싼 꿈, 아름다운 착각

….. 같은 난해한 이름에 무람없이 열광한다.(179)

그마저 뽑혀 가지 못해 울며 엎어지는 아이들이 수다하다.(179)

아이들은 언젠가, 반드시 어른이 된다. 값싼 꿈과 아름다운 착각을 부끄러워하거나 시시하게 여기데 되는 때가 오고야 만다. 그때 추억할 어리석고 어설프지만 순진하고도 앙큼했던 격정마저 없다면, 대체 삶이 무슨 재미란 말인가?(181)

그런데 반드시 요새 젊은것들의 곁에는 그 꼴을 혀를 끌끌 차며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어른(이라고 쓰고 꼰대라고 읽는다)들이 존재한다.(182)

어른이 비판에 앞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한다면, 꼰대는 다짜고짜 비난하며 훈계하려 든다. 그리하여 어른과 꼰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억력 언젠가 싸가지 없고 경망스럽고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요새 젊은것들중 하나였던 자신을 까마득히 잊은 것뿐일지도 모른다.(182)

마음을 잃은                 아이들

때로 가해자의 등 뒤에서 잔인한 쾌감을 즐기다가 돌아서 불의를 외면하고 폭력에 복종했다는 굴욕감에 괴로워하며, 아이들은 점차 마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과, 비겁을 떨치고 용기를 내어 그것을 표현하는 마음의 힘을.(185)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면 그녀는 시르죽은 얼굴로 도망치듯 산에 왔다. (185)

아이들이 아프다. 세상이 아프다. 아이들이 마음을 잃었다. 세상이 텅 비었다. (185)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새삼스럽다.(185)

아이들이 잔인하고 가혹해질수록 어른들이 만든 이 잘난 세상의 편견과 냉담과 이기심이 명징해질 뿐이다. 눈시울이 화끈하고 뒤통수가 뜨끔하다.(185)

어떤 학문에 대한 책이건 일종의 추리소설, 즉 어떤 종류의 성배를 찾는 탐구 보고서처럼 써야 한다.”(움베르토 에코)(186)

최초의 양육자에게서 정서적 따뜻함을 경험하지 못한채 자신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철저히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한다.(186)

진정한 가해자는 폭주하는 이 세상, 그리고 이곳에서 함께살고 있는 우리 모두이다.(187)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가 결국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겪게 된다.

엄마를 강요 마

어머니라니, 일개 잠재고객에 불과한 내게는 지나치게 과잉한 이름이다.(189)

울고 싶은데 얼뺨 맞는 격으로(189)

이토록 모지락스런 욕망의 전쟁터 속에서도 학처럼 선녀처럼살아야 한다는 부담에 짓눌린 여성들은 아예 어머니가 되기를 포기하고 있다.(190)

나는 아이가 어머니인 나를 생각하며 부채의식을 느끼지 않길 바란다. 어머니 이기 이전에 여자이고 인간인 나를 이해하길 바란다.(190)

사랑이, 모성애가 의무가 될 때 그 양면성은 더욱 무거워진다.(191)

꿈을 찾는 꿈을 꾸는                  젊은 벗들에게

비정규직에 불안정한 삶을 사는 청년 노동자들의 미래상이 ‘88만원 세대란 이름으로 제시되었을 때, 나는 마음속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193)

헬리콥터 부모들이 수강 신청부터 학점까지 일일이 챙겨도 높디높은 부의 세습의 벽은 넘을 수가 없단다. 일찍부터 서열화를 경험한 젊은 벗들의 얼굴에는 깊은 패배감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취업이 안 되면 언제까지 빌붙어야 할지 모르니 부모에게 함부로 저항할 수도 없고, 부자가 아닌 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하다.(193)

누가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 고려대 김예슬 학생 자퇴 대자보 마지막 문구(194)

그렇다. 내가 고통스럽지만 황홀했던 젊음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오기와 믿음 덕분이었다. (194)

싸움은 언제나 깨달은 그 자리에서 시작이다. (194)

꿈은 구속에 대한 저항 속에서 생긴다. 저항 속에서 자신의 진짜 욕망과 실체를 발견하면서 생긴다. (194)

그러하기에 젊음은 싸움이다. 그것도 달걀로 바위를 치고 맨땅에 헤딩을 하고 맨발로 바위를치는, 승부가 뻔한 깨지고 터지는 싸움이다. (195)

삶과 상처의                 후배들에게

나는 그곳에서 이른바 명문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스스로 자부하는 명문이 아닌 남이 부여한 명문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 우리는 청소년기를 온통 저당 잡혀야 했다. (197)

끝없는 시험과 교실 앞 복도에 게시된 1등부터 꼴등까지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두루마리, 몽둥이찜질과 단체 기합과 수치심을 자극하는 욕설, 평균 점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흙바닥에 한 시간 동안 꿇어앉았다 일어났을 때 벌목된 나무처럼 쿵쿵 쓰러지던 친구들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197)

곱씹어보건대 열아홉 살의 내가 저지른 돌발적인 사건들은 오직 경쟁과 억압 속에 잃어버린 나를 알고, 나를 찾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리이었다.(198)

진짜 공부 세상 공부, 사람 공부, 인생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용되어 마땅한 지적 허영과 권장되어 마땅한 체험에 대한 탐욕으로 한껏 들썽들썽 걸신스럽게 공부해야 한다.(198)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빛나 보이는 것들로 치장을 한다. 명문 학교 졸업장은 종내 훌륭한 실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199)

난폭한 운전버릇을 가진 이에게 고급차는 흉물스런 무기이며, 다정하게 웃지 못하는 여자를 명품 가방과 명품 옷이 아름답게 해줄 리 만무하다.(199)

그럼에도 세상은 보석에게 빛나는 법을 가르치려 나번득이니, 그놈의 명문타이틀을 지키려는 일부 동문들이 비평준화가 될 모교의 교명을 변경하라는 요구를 한다는 소문이 스멀스멀 들려온다. 성적이 나쁜 후배는 절대 후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셈이다. (199)

막말로, 쪽팔리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물들은 정작 동문회에 나가지 않으니, 조야할지라도 짝퉁들이 더욱 빛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199)

사육장 앞에서

당위와 설교로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일은 깜냥도 되지 않거니와 질색이었다.(200
하지만 괴발개발 그린 보고서를 내던지고 신나서 달려 나간 사내아이들(201)

황희 정승은 미욱한 일소 앞에서도 흉보는 일을 경계했거늘, 교사는 아이들이 듣고 보는 가운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201)

농인지 진인지 빙글거리며(202)

그들에게 학교는 여전히 중요하다. 인간관계를 맺고, 갈등을 조정하고, 성취와 좌절을 경험하고, 질서와 부조리를 동시에 체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202)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 없이 학교는 없다. 그곳은 다만 잘 지어진 사육장일 뿐이다.(202)

사육장에 갇힌 채로는 아무것도 스스로 꿈꿀 수 없다.(203)

현재의 아이들이 가여운 만큼, 미래의 우리가 두렵다.(203)

 

4부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토굴을 찾는다. 아무러한 땡볕 속에서도 상하고, 물크러지지않을 서늘한 토굴, 아무러한 추위 속에서도 칼바람과 눈보라는 피할 따뜻한 토굴. 기왕이면 조금 넉넉해서 누군가를 초대해 따뜻한 밥 한 끼 나눠 먹을수 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혹렬한 더위와 추위가 물러날 때까지 그것에서 버텨내서 좋은 새날을 보았으면 좋겠다.

목표는 생존이다.

이러구러 지극히 평범한 오후였다.(207)

첫번째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며 식전꼭두부터 걸어온 어머니의 전화(208)

그리고 시적시적 발걸음을 옮기며 마지막 세 번째 난데없이 던져진 방향 없는 분노를 생각했다.(208)

아무리 농간을 부려도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낙관이 있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있고, 그 끝이 보이는 것들은 두렵지 않다.(209)

인간의 가치를 애완용 시베리아허스키의 그것만큼도 여기지 않는 분노와 증오와 환멸의 허리케인은 언제든 사회 곳곳에서 휘불 수밖에 없으리니.(209)

생존을 목표로 하는삶은 우그러지고 졸아든다.(210)

그리하여 생존을 목표로 하는 삶은 어수룩하고도 거세진다.(210)

나는 좌빨이라 부르는               당신에게

문학에 매혹된다는 것은 언어에 매혹된다는 뜻이기도 하다.(211)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강렬한 감각, 학습되기보다는 유전되기에 더 적합한 감성이 모국어 안에 있다.(212)

독해력 결핍이 판치는 세상에 작가로 살면서 그정도 오독이야 흥야항야할 일도 아니다.(213)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경험 이상의 교훈을 얻는 것이다.(213)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덧붙여 한 가지 밝혀두자면,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파 自派 . 자파인 작가다 그러니 경제할 것도, 안심할 것도 없다.

징검다리가 사라진                   

대수롭잖아 뵈는 징검다리에게 얼마나 신세를 지고 살았는가는 비가 와 개천의 수위가 높아지는 날에 여실히 느낀다.(215)

하루가 멀다 하고 경천동지할 사건 사고들이 빵빵 터져주는 지경에 웬만한 근심은 사소한 투정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216)

누구도 그 절절한 사랑을 알알하게 읽어줄 경황이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칠실지우 하고 앉았다.(216)

울부짖으며 흩어지는 그들이 바로 작고 약하여 사소하고 시시하게 취급 받는 불어난 흙탕물 속의 굄돌들이다. 사나운 빗속에 사라져 묻혀버린 징검다리다. (217)

연민이되 그 고통만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고통이 있다는 걸 아는데서 오는 연민이다. 다시, 징검다리를 기다린다.(218)

지옥에서 보낸 한 철

하지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어마뜨거라 자리를 피한 뒤에도,(219)

장사를 하기엔 변죽과 패기가 부족하고 구걸을 하기엔 수치심과 자존심을 버릴 수 없는 사내는 길바닥 한가운데서 생떼 부리는 어린애처럼 바버둥질했다.(220)

마음 약한 사람은 무력감에 스스로를 죽이고, 그 살의가 영혼을 뚫고 나간 사람은 칼을 신문지에 말아 들고 거리로 나선다.(221)

그래서 창졸간에 목격한 봉변보다 더 오랫동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냉담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도 노인과 사내에게 눈길을 지 않았고 심지어 한결같이 무표정했다.(221)

빈곤층과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원초적인 본능으로 피가 솟구친다.(222)

그들이 삶의 벼랑으로 떠밀릴 때 추락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그들을 짐짓 외면하고 멸시했던 우리 모두가 함께 추락한다. 우리 모두는 이미 보이지 않는 끈으로 친친 감긴 한 덩어리다. 그 추락에는 날개조차 없다.(223)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

기실 나는 노래방에서나 겨우 꿈적꿈적 가무의 본능을 충족하는 촌스러운 세대인지라,(225)

하지만 진짜 싸움꾼은 당장의 승부에서 졌다고 해서 포기하고 주저앉지 않는다. 산을 넘고 물을건너 먼 동네까지 가서라도 잃어버린 연을 찾아오는 깡다구가 마지막 승패를 결정지을지니(228)

천 일 동안

3년에서 95일이 빠지는 1000일 동안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229)

술탄의 독주와 전횡을 막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끊이지 않는 이야기의 피륙을 펼쳤던 시간이 하루를 더한 1000, 하루살이가 너덧 시간에서 하루 남짓을 살기 위해 애벌레로 꿇어야 하는 나날도 대략 1000일이다. (229)

절대 군주 헨리 8세를 가톨릭교회와 결별하게 하면서까지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앤 불린이 비극적으로 끝난 결혼을 유지했던 날이 약 1000, 가수 이승환이 가슴을 에는 목소리로 추억한 사랑의 시간도 1000일이다. (229)

하지만 동정은 없었다. 상식조차 통하지 않았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침묵했고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약빠른 사람들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 대세라고 말했다.(230)

…… 일부 동의 일부 반대.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나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대세이기는 하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고용주에게 있는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우유부단하고 모순적인 면 여기서도 나온다. ㅡㅡ

삶은 발밑에서 그렇게 허물어져갔다.(231)

삶의 자리를 안다는 것은 짠맛과 단맛만이 아닌 한 방울 참기름의 풍미를 아는 것이다.(231)

그러하기에 아무러한 고통과 시련도 시고 떫고 맵짜지만은 않다.(232)

봄밤의 스크린

나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 그와 별개로 문자 언어에 길들여진 내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노골적으로 펼쳐 보여주는 영상은 지나치게 위압적이다.(232)

동의한다. 그럼에도, 상상할 수 없음에도 잘 만들어진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희노애락을 느끼게 하는 것은 책과 다를 바 없다. 예술작품은 그런 면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살아있게 하는 면에서 다 똑같은건 아닐지……

꽃샘잎샘이 한참인 봄.(233)

어쩌면 영상 이미지보다 더 위압적이고 혹렬한 것은, 현실 그 자체이다. (235)

봄밤에 홀로 나선 영화 구경은 그래서 참 즐겁고, 슬프고, 아찔하였다.(235)

용산참사를 그린 두개의 문을 본 저자.

분노를 넘어선 공포와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하던 그 대목을 어떻게 논리 정연하고 기치선명하게 쓸 수 있을까? 어차피 예술은 인간을, 언어는 삶을 대신하지 못한다.(236)

진실은 본디 그토록 작고, 단단한 것이다.(236)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

추레한 외양에 괴팍한 성품을 가진 신채호(237)

홍명희는 이광수를 친일분자이자 반혁명분자로 보기 이전에 재승박덕한 친구로 생각했던 것이다.(238)

그런데 70년 후에 쓰이고 있는 이 소극의 대본은 촌스럽기가 어느 고릿적 감각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손발이 절로 오그라든다.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239)

일상의 힘

나는 졸지에 그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깜냥에 버거운 감투를 들쓴 것에 불과하지만, (242)

어느 교육학자의 말대로 체험을 넘어서는 지식은 없다. (242)

인간이 느끼는 육체적인 통증 중에 가장 큰 것이 불로 인해 팔다리의 말단부가 타는 작열통이라고 한다.(242)

그런 극심한 고통을 번연히 알면서도 위험 속으로 뛰어들 수박에 없는 이들이기에 죽음만큼이나 삶의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다.(243)

에세이 공모전               입선비결

무선 공모전에 출품하는 작품을 쓸 때는 첫 문장이 중요하다. 심사위원들과의 첫 대면에서 인상적이고 강렬하며 전체의 내용을 통괄할 수 있는 문장을 선보여야 한다.(247)

예심에서 가장 먼저 걸러지는 작품은 인권이란혹은 인권의 정의는따위로 시작되는 글이다. (…) 중요한 것은 인권이 과연 내 삶과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실현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248)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나의 문제를 깨닫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248)

작더라도 직접 겪고 느낀 것,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외부로 확장되는 인권 감수성이 절실히다. 용례는 내 눈길이 닿는 곳, 반경 50미터 안에서 찾으라는 것이 에세이 공모전 입선 비결의 핵심이다.(248)

선수의 눈에는 선수가 보인다. 경험하지도 않고 경험한 척, 생각조차 없는 주제에 대단히 고심한 척하는 꼼수에는 넘어갈 리 없다.(248)

쓴 글보다는 좋은 글이 오랜 감동으로 남듯 (248)

 

너무합니다

(너무 라는 단어에) 한 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일상이 괴로워지기에 이르렀다. 방송에서는 시민들의 인터뷰나 연예인들의 대사에 등장하는 너무를 순화된 말로 바꾸어 자막을 내보내는 수고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는 마구 쏟아지는 너무를 막아내기에 너무; 버거워 보인다. ‘너무를 대신할 말로는 정말로(거짓이 없이 말 그대로)’, ‘진짜로(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으로)’, ‘매우(보통 정도보다 훨씬 더)’, ‘아주(보통 정도보다 훨씬 더 넘어선 상태로)’, ‘많이(수효나 분량, 정도 따위가 일정한 기준보다 넘게)’ 등의 부사들이 있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그 정도의 수식으로는 도저히 차고 넘치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게 되어버렸나보다. (251)

야릇한 것은 이토록 긍정을 부정으로 치환하는 세상에 도무지 긍정적으로 봐줄 수 없는 긍정이 범람하는 일이다.(251)

씀풍씀풍 : 짐승의 산란이나 사람의 출산을 나타내는 의성어 (개그맨 신xx이 어느 오락프로그램에서 말한후 현재 널리쓰임.) 신동엽 대단함!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조그만 생선을 삶는 일과 같다고 했다. 생선살을 바스러뜨리거나 태워 먹지 않기 위해서는 조용하게 천천히 요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252)

과잉의 시대가 과잉의 언어를 낳는다.(253)

또한 폭력의 시대는 폭력의 언어를 낳는다.(253)

뒷다리로 걷는 강아지들의 역사

시간의 리더 격인 김금원은 열네 살에 남장을 하고 홀로 금강산을 구경할 정도로 호방했고(255)

나는 작가다. 그리고 여성이다.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의무다.(257)

토굴을 찾아서

해 가기 전에 얼굴이나 보자는 말치레가 씨가 되어 연일 분주하다.(258)

자본을 거부하는 저항적 자세나 금전을 비천하게 여기는 군자연한 태도와 상관없이, 돈은 욕망 혹은 마음과 함께 움직이는 기묘한 물건이다. 아리딸딸한 술꾼에게 조차 지급 개봉의 심리는 심오할지니, 행여 따돌리고 싶은 거머리꾼이 있다면 급전 좀돌려달라고 해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이해됨직하다. (259)

그들은 연신 함박웃음으로 동전이 가득 든 작은 저금통과 그것을 내미는 따뜻한 손들을 마주잡았다.(260)

문득 부자가 아닌 것이 속상한 날이 있다. 형을 글감으로 삼은 고료라도 내놓고 먹었으니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돌아오는 밤, 버스 차창 너머로 정처를 모르는 수많은 마음들이 배회하고 있다.(260)

토굴을 찾는다. 아무러한 땡볕 속에서도 상하고 물크러지지 않을 서늘한 토굴, 아무러한 추위 속에서도 칼바람과 눈보라는 피할 따뜻한 토굴.(261)

527일 날씨 맑음

최첨단의 빌딩들이 으리으리하게 늘어선 도심 한복판에서 별관 건물은 초라하고 왜소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개발주의와 실용주의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스러운 낡은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는지도 모른다.(263)

한편에서는 역사를 강자들의 기록이라고 냉소하지만, 나는 역사란 기억하는자들의 것이라고 믿는다. 잊지 않고 마음껏 슬퍼하리라. 의롭게 죽은 자들을 기억하며 슬퍼하는 일이야말로 인류의 일원으로서의 본능이자 살아남은 자로서의 의무일 테니. (265)

판판 놀리자니 도심 한복판 금싸라기 땅이 아깝고, 싸그리 철거하자니 역사의식 없다는 지청구를 솔찮게 듣겠으니……(265)

할머니는 집에                없다

노후대책을 어떻게 마련하였는가에 따라 노년 생활의 모습은 현저히 달라진다.(267)

노후대책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봉사활동이든 소일거리든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굳은 일이든……. 그런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노년도 살만하다. 평생을 배우고 평생을 일하고 살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이기에 노년이 그리 두렵지는 않다. 물론 지금처럼 구시렁구시렁 거리며 일을 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차치하고도 노년의 삶의 질을 규정하는 요소는 또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노년기의 가장 큰 특성을 융통성의 저하라고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정신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노인들은 자칫하면 퇴물 취급을 받게 된다. (268)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며 나의 노년을 상상한다. “미래에 우리가 어떤 인간일 것인가를 모른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인가도 알지 못한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을 상기한다. 미래에 나는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269)

죽음보다 삶이 더 큰 공포로 느껴지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행운과 재앙, 축복과 저주의 틈새에서 우리 모두가 꾸역꾸역 나이를 먹는다.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시간의 그물에 갇힌 채로, 오늘의 나를 알기 위해서라도 미래의 우리를 고민할 때이다.(271_

<빨간 책>을 보다

그 시절은 내개 상처도 훈장도 아니다. 오직 서툰 만큼 용감하고 어리석은 만큼 아름다웠던 청춘, 봄싹처럼 파란 한창때였다. 세상의 질서에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뜨겁게 삶을 껴안고 싶었기에 역사에 아프고 정의에 목말랐다.(271)

누군가는 사회 모순에 분노하지 않고 패기도 없는 젊은 세대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질타하지만, 그들이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에 내몰린 채 1년에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목숨까지 잃는 몹쓸 세상을 만든 것은 바로 나를 포함한 기성세다. (272)

마땅히 그들에게 미안해야 할 뿐더러 나잇값을 하려면 설교보다는 자기성찰이 우선이다.(272)

그럴 깜냥이 안되는걸 진작에 깨달아서이기도 하지만, 나의 책은 이래야 할 것이다. 설교보다는 자기성찰이 우선이다.

물론 그들은 서툴고 거칠다. 모쪼록 피하길 바랐던 구세대의 전철을 밟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좌충우돌하며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조차 젊음의 권한이자 의무일지니,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뿐이다. 미래는 어쨌거나 그들의 몫이다.(272)

기억한다는 것, 잊는다는 것

장바구니까지 챙겨 들고 나섰다가 뭘 사겠다는 작정이었는지를 까먹고 털레털레 되돌아오는 일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해프닝이다.(275)

20대에는 시속 40킬로미터, 50대에는 시속 100킬로미터, 70대에는 시속 140킬로미터로 세월이 지나간다는 속설이있거니와, (276)

윌리엄제임스에 의하면 기억이 시간 감각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바로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276)

흑백필름처럼 단조로운 기억을 가진 사람에게는 회상도 지극히 단순할 수밖에 없다. 매일이 쳇바퀴를 돌리듯 평범하다면 역설적으로 한 달과 한 해는 무섭도록 빨리 지나는 것처럼 느껴진다.(276)

여행지에서는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다. 낯설기에 불안하고 두렵기는 하지만 기억은 시시각각 빼곡하게 들어찬다. (277)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여행이 쉽지 않다면 가장 간단하고 값싸게 기억을 사는 방법이 바로 독서다. 한 권의 책은 구태의연한 생각과 무뎌진 감각을 뒤흔들고 읽는 이를 순식간에 낯선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277)

그가 남긴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가 오늘따라 더욱 무겁고, 무섭다.(277)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제각각 고단하고 고독했던 사람들의 넋두리와 하소연을 듣노라면 현진건의 소설 한 구절이 입안에서 알알하게 멤돈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280)

어쩌겠는가? 바닥까지 몰겠다면 바닥까지 몰리는 수밖에. …… 하지만 유구한 역사의 가르침에 의하면 바닥이라는 곳이 끝은 아니다. 헛된 기대와 섣부른 낙관은 할 수 없을지라도 역사는 언제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일상에 단단히 뿌리내린 채 견디고 버티는 사이, 사문이 사바대중을 깨우치기 위해 치는 목탁처럼 삶의 육탁은 펄떡거리며 되살아날 테니. (280)

 

 

3. 내가 저자라면

<목차>

작가의 말 어섯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기록들

1달려라 앨리스
삶은 홀수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먹고살기의 괴로움, 혹은 즐거움
생애전환기 검사
그건 다름 아닌 슬픔잉었다
내가 만든 산을 넘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달려라 앨리스

에피메테우스의 변명
원 플러스 원 플러스알파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

2부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살아라, 살아 있으라 친구 성철에게
악비의 묘 앞에서 중얼거리다
늦봄에 늦봄을 추억하다
삶을, 들어 올리다
, 꽃이, 꽃이로구나

3부 사랑은 맛있다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무적초딩으 ㅣ현주소
성선설을 믿어볼까?
사랑은 맛있다

값싼 꿈, 아름다운 착각
마음을 잃은 아이들
엄마를 강요 마
꿈을 찾는 꿈을 꾸는 젊은 벗들에게
삶과 상처의 후배들에게

4부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목표는 생존이다
나는 좌빨이라 부르는 당신에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
일상의 힘
에세이 공모전 입선 비결
<
빨간 책>을 보다
기억한다는 것, 잊는다는 것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 목차는 내용이나 제목이 끌리는 일부만 적어 놓았습니다.

 

이 책을 접한 것은 한참 전이다. 책 구매한 날짜를 살펴보니 9기 연구원에 합격하고, 첫 수업인 나의 장례식준비를 하며 구입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처음 이 책을 접한 것은, 그리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런 짧은 호흡의 산문들이 끈기부족의 나에게는 잘 읽히기도 했고, 사극 또는 시대극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한 김별아 특유의 어려운(적어도 나에게는……) 어휘들의 향연에 눈이 휘둥그래해 졌기 때문일 것이다.

2014 1월 오프수업을 앞두고 이 책이 글쓰기 추천 목록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웠다. 하지만 문법이나 어휘 등 글쓰기의 기본기가 많이 부족한 나였기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선배님의 추천사유 중에 눈에 띄는 선정 이유가 있었다. ‘글의 밀도와 메시지가 고민인 분^^’ 이 선정 이유로 인해 난 이 책을 택해보기로 했다. 물론 민족대명절 설이라는 기나긴 게으름과 느슨함의 시간 또한 이 책 선정도 많은 도움(?!) 주었다.

오랜 시간 전통적인 또는 오랜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써온 그녀 답게 현란한 어휘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녀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현란한 어휘들 못지 않게 전달하는 진중하고도 묵직한 메시지일 것이다. 운동권 출신(?!) 답게 자신의 삶에서 사회의식과 시민의식을 놓지 않고 그에 맞는 실천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사랑하는 지인의 죽음 앞에 삶의 희망을 보는 것, 강허달림이라는 아티스트와 대규모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 겉은 화려한 스펙으로 포장했지만 속은 텅빈 현대의 청()년들의 모습에서 찾는 진정한 의 의미 등 그녀는 자신의 주관을 또렷하고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전달한다.

한명석 선배님의 추천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고 전달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한 일간신문에 정기적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두었기 때문에 저자의 정치적 성향은 부득불 젖어있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4년여기간 동안 한겨레신문이라는 신문매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개재한 글들이기에 글들은 독립적이다. 중요한 것은 글의 메시지이다. 타칭 좌빨이 아닌 자칭 자파 自派 인 저자는 가깝게는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아는 지인들의 모습에서 멀게는 지하철 에서 만난 잡상인이나 할아버지 때로는 산행….이러한 일상적인 관계와 행위와 현상들 속에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과 이를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종일관 끈덕지게 말이다.

책은 약 50개의 칼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의 성격이나 메시지에 따라 분류하여 4부로 나뉘어졌다. 특징이 있다면 저자 자신의 성찰과 사회에 대한 생각이 다소 뒤섞여 있는 듯한 1/4부와 달이 2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에서는 사회와 현실(현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글들이 주를 이루고, 3부는 어머니로서의 다양한 입장, 교육에 대한 생각과 아이들에 대한 우려와 희망을 담은 글들로 묶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기승전결식의 구성이 아니라, 책의 처음부터 끝을 관통하는 일관된 진보적인 메시지이다. 그렇지에 정치색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읽을 가치가 없는 책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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