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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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 되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것도 아니다.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내게 다가오고 일어나고 쓰러지는 온갖 생각들을 책을 통해 또 밀어내고 쓰러뜨리고 일으켰다.절망과 좌절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으며, 나는 때로 절망으로부터 도망갔고, 정면으로 대들었다.
- 김용택 시인 "내 인생의 글쓰기" 중에서
시인의 세계를 훔쳐 보았습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 그 분이 어떻게 시인이 되셨는지를 스스로 말씀하시듯 쓴 글을 지난 주 읽었습니다. 글의 향기에 푹 취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글을 사랑한다면 언젠가 제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싶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임실에서 태어나 순창농림고등학교를 나오셨습니다. 책이라고는 구경하기 힘든 깡촌에서 지내시다 스물한 살에 자기가 졸업한 덕치 초등학교 선생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줄곧 고향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계십니다. 물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십니다.
'헌책을 사서 읽기를 몇 년, 내 생각은 푸른 나무처럼 자라났고, 산처럼 솟았다.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지고 머리속이 복잡하니, 자연히 그 복잡한 것들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나의 글쓰기 시작이었다.' (내 인생의 글쓰기 중에서)
시인은 우연히 깡촌마을 조그만 학교에까지 책을 팔러 온 책장수에게 비싼 값을 주고 산 도스프예프스키 전집을 시작으로 책에 맛들이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에 맛들이자 박봉에 어울리지 않는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하십니다. 먼 후일 아내분께서 외상책값을 모두 지불하셨다는 말에 감격했다는 이야기도 하십니다.
선생께선 책세상에 빠져 있다 다시 현실을 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방학이 끝나고 집을 나서서 학교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내게 놀라웠다. 이상한 일도 다 있었다. 늘 보아왔던 강물이며, 빈 들판이며,앞산이며, 느티나무며, 강물 속의 바위들이며, 마을의 가난한 집들이며,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새로 보였던 것이다. 고개를 들거나 휘둘러보면 늘 내 눈에 들어선 어제의 것들이 오늘 다 새로 보였던 것이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나는 발걸음이 힘찼으며, 온 몸에 힘이 느껴졌다. 산과 강이, 모든 것들이 다 내 속으로 들어와 나는 자꾸 심호흡해야 했다. 아! 저기 서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오늘 새로 보이면 그게 사랑이 아니던가. 나는 나도 몰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얻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세상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삶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그리고 손이 잡히지 않는 기쁨이 고개를 쳐들었던 것이다.' (책 중에서)
시인은 서른을 몇 해 지난 1981년 어느 날 밤, 드디어 학교에서 숙직을 하며 <섬진강>을 쓰십니다. 이 시가 계기가 되어 문단에 시인으로 등단하십니다.
'글을 써놓고 누구에게 보여줄 사람이 없는 나는 내 스스로에게 늘 묻고 또 대답해야 했다.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의 외로움이었으나, 그 외로움이 나를 단련시키고 나를 키웠다. 나는 나에게 감동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 감동이 사회적 객관화가 되기까지 나 혼자여야 했다. 몇 편의 시를 써 놓고 나는 나에게 감동했다. 이것이 시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책 중에서)
지난 1년 저는 연구원 커리큘럼의 인문학 책을 매주 끌어안고 홀로 웃고 홀로 울었습니다. 인문학 커리큘럼을 따라가면서 옛친구를 다시 찾았습니다. 8살 코흘리게 시절 처음 글을 배운 이후 한 삼십년 제 인생을 스쳐간 모든 책들이 되살아나 저에게 달려드는 기묘한 세상에 묻혀 살았습니다. '우리들 여기 항상 있었어! 함께 놀자 친구야!'라며 웃으며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책은 저의 첫 우정이었습니다. 친구와 손잡고 거니는 세상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같은 등교길, 같은 교실, 같은 운동장이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참 달리 보입니다. 책이라는 친구가 곁에 있을 때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제 매일 똑같은 출근길, 사무실에 친구와 함께 다니는 삶에 다시 익숙해졌습니다. 기쁩니다.
책이라는 저의 소중한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써 보고 싶습니다. 때론 마주대하기 싫은 현실 속에서도 제 손을 잡고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준 그 친구들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를 받아 적으면서 제 앞에 펼쳐진 현실이 새로운 현실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섬진강 시인의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저 역시 이런 글을 고백할 그 날을 꿈꿉니다.
'어느 해였던가 모르겠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인생이 신나게 되었을 무렵 아침 일찍 교실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며 아침인사를 했다.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인사하는 아이들의 붉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 아이들이 하나하나로 보였던 것이다. 그 전에는 아이들 30명이 모두 하나로 보였는데, 그날 아침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따로따로 보였던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비로소 선생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기되었다. 즐거웠으며 행복했다. 나는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책 중에서)
201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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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택 시인 "내 인생의 글쓰기" 중에서
시인의 세계를 훔쳐 보았습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 그 분이 어떻게 시인이 되셨는지를 스스로 말씀하시듯 쓴 글을 지난 주 읽었습니다. 글의 향기에 푹 취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글을 사랑한다면 언젠가 제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싶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임실에서 태어나 순창농림고등학교를 나오셨습니다. 책이라고는 구경하기 힘든 깡촌에서 지내시다 스물한 살에 자기가 졸업한 덕치 초등학교 선생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줄곧 고향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계십니다. 물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십니다.
'헌책을 사서 읽기를 몇 년, 내 생각은 푸른 나무처럼 자라났고, 산처럼 솟았다.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지고 머리속이 복잡하니, 자연히 그 복잡한 것들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나의 글쓰기 시작이었다.' (내 인생의 글쓰기 중에서)
시인은 우연히 깡촌마을 조그만 학교에까지 책을 팔러 온 책장수에게 비싼 값을 주고 산 도스프예프스키 전집을 시작으로 책에 맛들이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에 맛들이자 박봉에 어울리지 않는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하십니다. 먼 후일 아내분께서 외상책값을 모두 지불하셨다는 말에 감격했다는 이야기도 하십니다.
선생께선 책세상에 빠져 있다 다시 현실을 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방학이 끝나고 집을 나서서 학교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내게 놀라웠다. 이상한 일도 다 있었다. 늘 보아왔던 강물이며, 빈 들판이며,앞산이며, 느티나무며, 강물 속의 바위들이며, 마을의 가난한 집들이며,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새로 보였던 것이다. 고개를 들거나 휘둘러보면 늘 내 눈에 들어선 어제의 것들이 오늘 다 새로 보였던 것이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나는 발걸음이 힘찼으며, 온 몸에 힘이 느껴졌다. 산과 강이, 모든 것들이 다 내 속으로 들어와 나는 자꾸 심호흡해야 했다. 아! 저기 서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오늘 새로 보이면 그게 사랑이 아니던가. 나는 나도 몰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얻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세상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삶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그리고 손이 잡히지 않는 기쁨이 고개를 쳐들었던 것이다.' (책 중에서)
시인은 서른을 몇 해 지난 1981년 어느 날 밤, 드디어 학교에서 숙직을 하며 <섬진강>을 쓰십니다. 이 시가 계기가 되어 문단에 시인으로 등단하십니다.
'글을 써놓고 누구에게 보여줄 사람이 없는 나는 내 스스로에게 늘 묻고 또 대답해야 했다.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의 외로움이었으나, 그 외로움이 나를 단련시키고 나를 키웠다. 나는 나에게 감동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 감동이 사회적 객관화가 되기까지 나 혼자여야 했다. 몇 편의 시를 써 놓고 나는 나에게 감동했다. 이것이 시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책 중에서)
지난 1년 저는 연구원 커리큘럼의 인문학 책을 매주 끌어안고 홀로 웃고 홀로 울었습니다. 인문학 커리큘럼을 따라가면서 옛친구를 다시 찾았습니다. 8살 코흘리게 시절 처음 글을 배운 이후 한 삼십년 제 인생을 스쳐간 모든 책들이 되살아나 저에게 달려드는 기묘한 세상에 묻혀 살았습니다. '우리들 여기 항상 있었어! 함께 놀자 친구야!'라며 웃으며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책은 저의 첫 우정이었습니다. 친구와 손잡고 거니는 세상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같은 등교길, 같은 교실, 같은 운동장이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참 달리 보입니다. 책이라는 친구가 곁에 있을 때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제 매일 똑같은 출근길, 사무실에 친구와 함께 다니는 삶에 다시 익숙해졌습니다. 기쁩니다.
책이라는 저의 소중한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써 보고 싶습니다. 때론 마주대하기 싫은 현실 속에서도 제 손을 잡고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준 그 친구들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를 받아 적으면서 제 앞에 펼쳐진 현실이 새로운 현실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섬진강 시인의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저 역시 이런 글을 고백할 그 날을 꿈꿉니다.
'어느 해였던가 모르겠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인생이 신나게 되었을 무렵 아침 일찍 교실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며 아침인사를 했다.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인사하는 아이들의 붉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 아이들이 하나하나로 보였던 것이다. 그 전에는 아이들 30명이 모두 하나로 보였는데, 그날 아침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따로따로 보였던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비로소 선생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기되었다. 즐거웠으며 행복했다. 나는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책 중에서)
201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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