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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4일 11시 55분 등록

No 40

2014.02.04

Oh! 미경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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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판 2006년 8월 5일

 

 

                                                                       인간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동안이 아니라,

계획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장 많은 일을 한다.

 

가르침과 배움에는 끝이 없다.

어느 만큼 배우고,

 어느 만큼 가르쳐야 하는지는

저마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무엇을 어느 만큼 배우고

 어디에서 그쳐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갈림길,

 거기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받아쓰기’와

혼자만의 ‘창작’ 이 분기점을 만난다.

 

 

1. 저자에 대하여 : 안정효 (1941년 12월 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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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번역문학가이다. 중학생 때부터 그려온 만화를 포기하고 영문학과로 진학한 1961년 이후 적극적인 책 읽기와 영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세계 명작을 닥치는 대로 읽는 사이에 문학에 도취되었고, 저자도 그런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졌다.

저자가 스물이었을 때 서강대학교 영문과 학생이었다.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일상적인 작은 경험도 위대하고 숭고한 지적 모험이었다.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얘기마다 ‘문학’이요 ‘작품’이었다. 스스로 습작을 하면서 창작을 가르치는 책들을 구해 읽으며 글을 쓰고, 또 글을 쓰고, 그리고 또 썼다.

1964년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코리아타임스>,<주간여성> 기자,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 편집부장, 코리아타임스 문화체육부장을 지냈다. 1975년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번역을 비롯, 150여권의 책을 번역하였다.

1983년 <실천문학>에 장편 반전(反戰)소설 <하얀전쟁> 으로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가을바다 사람들>, <학포장터의 두 거지>, <은마는 오지 않는다>, <동생의 연구> 등을 썼다. <악부전>으로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은 쓸수록 어려워졌고, 마흔을 넘은 다음 둘러보니, 지혜로운 명상이라고 믿었던 생각은 헛된 언어의 희롱이었고 저자가 하려던 말은 이미 오래전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해버렸고 저자가 누리거나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미 거친 다음 오래전에 내버렸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환갑 무렵에야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어느 날 그는 깨달았다. 어쩌먼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은 이미 썼는지도 모르겠다고.

 

 

2. 마음을 무찔르는 글귀

 

/첫째마당/ 단어에서 단락가지

 

[14] 수영과 글쓰기

나는 누구에게나 수영의 기본 동작을 처음에 이틀 정도만 가르친다. 물에 뜨는 방법을 반 시간 가량, 고개를 돌려 머리 들고 숨쉬기를 다시 반 시간 가량, 그리고 다시 손과 발을 놀리는 동작을 반 시간 정도 더 가르치면 ‘맥주병’ 들이 2미터 정도는 떠서 앞으로 나아간다.

 

===> 수영은 이렇게 배우는 군. 수영을 배울 기회가 된다면 기본기만 배우고 연습을 하면 되는군요.

 

그렇게 기초 동작만 가르쳐준 다음에는 같은 동작을 자꾸 반복하며 연습하도록 내버려둔다.

수영에서는 동작과 자세에 관한 공식을 많이 이론적으로 배우고 외운다고 해서 저절로 헤엄쳐 강을 건너가게 되지는 않는다. 마포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이에 이미 그런 진리를 터득했다. 물을 먹고 허우적거리며 물과 친해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힘과 요령은 몸이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글쓰기는 헤엄치기와 똑같다.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공부가 수영을 배우는 과정과 똑같다.

 

===> 기본기를 배우고 반복하면서 터득한다. 삶의 배우는 과정이 모두 이와 같다.

 

[17]김성동의 원고지와 접영

가르침과 배움에는 끝이 없다. 어느 만큼 배우고, 어느 만큼 가르쳐야 하는지는 저마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무엇을 어느 만큼 배우고 어디에서 그쳐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갈림길, 거기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받아쓰기’와 혼자만의 ‘창작’ 이 분기점을 만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배울수는 없다.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는 자신의 몸에 맞게 기질에 맞게 강점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 선택해서 집중과 몰입이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게 한다. 욕심을 내려놓는 일. 자신을 먼저 아는 일에서부터 출발이다. 남이 한다고 해서 나도 따라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자.

 

[18]이문열의 안맞춤 글쓰기

작품은 스스로 끝나야 한다. 지정된 매수로 끝내는 작품은 타살이다.

하고 싶은 얘기가 끝났는데도 억지로 지면을 채우기 위해 덧붙이는 글은 비만성 지방질이다. 그것은 잘 지어놓은 새 집의 마당 한쪽에 쌓아놓은 쓰레기 더미이다.

1960년대 대학에 다니며 처음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루돌프 플레시(Rudolf Flesch)는 이런 충고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면, 끝내라.”

 

이 원칙은 문장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나의 문장을 다 썼으면, 주저하지 말고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것이 어디에서 끝내야 하는지를 아는 훌륭한 감각이다. 멋을 부리려고 쓸데없이 문장을 잡아 늘이고 미사여구를 더덕더덕 붙이지 말라는 뜻이다.

이 원칙은 하나의 단락을 구성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승전결을 갖춘 단락이 이루어지면, 주저하지 말고 줄을 바꿔야 한다.

이 원칙은 하나의 작품을 마무리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쓰고 싶은 얘기를 다 썼으면,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 자꾸만 살을 붙이면 그 작품은 너덜너덜해진다.

나는 루돌프 플레시의 이 가르침을 하나의 지혜로 받아들였다.

 

[19] 동굴에서 하던 글쓰기

그림은 생각을 기호화한 것이다. 그림을 더욱 기호화하면 글씨가 된다. 그러니까 원시인들은 그들의 사상과 철학을 기록하는 글쓰기를 한 셈이다.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 이것이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이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설득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20]글쓰기 준비운동

글쓰기 공책을 한 권 따로 마련하기 바란다. 내일 저녁에 일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이 아니고 내일이다.

컴퓨터로 글을 쓰지 말고 공책을 따로 마련하라고 하는 까닭은 글쓰기를, 적어도 습작 과정에서는, 손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동안이 아니라, 계획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장 많은 일을 한다.

 

===> 이성복 시인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이야기조차 못한 고통으로 인해 사람은 죽어간다.

 

[21]요령으로 글쓰기

능력 대신 요령을 익히면, 그만큼 손해를 본다. 손해를 보는 듯싶지만 남의 일까지 대신 다 하는 사람은 능력 또한 남의 몫까지 얻는다. 그러니까 손해를 봐야 손해를 안 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미련하게 힘든 글쓰기가 요령 좋은 글쓰기를 이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읽기에 쉬운 글이 가장 쓰기가 어렵다고 했다. 쉽게 쓴 글은 막 쓴 글이다. 그러니 읽기에 쉬울 턱이 없다. 아무렇게나 쓴다면 글쓰기가 쉽다. 하지만 그런 글은 사람들이 읽어주려고 하지를 않는다.

글씨도 또박또박 시간 걸려 써야 읽기에 쉽다. 휙휙 갈겨쓰면 쓰는 사람은 편하고 즐거울지 모르지만, 받아 보는 사람은 읽기 힘들어서 편지가 그만큼 덜 반가워진다.

음식도 정성껏 차려놓아야 맛이 좋다. 그래서 눈으로도 음식을 먹는다고 얘기한다. 작품도 눈으로 보고 머리로 흡수한 다음이라야 마음이 따라 움직인다. 마음을 감동을 시키기 전에 눈을 즐겁게 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거기에서 찾는다.

[23] 충동적 영감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태어난다고 에디슨이 말했지만, 작품 또한 영감은 1퍼센트에 지나지 않고 99퍼센트가 땀이어야 하는데, 그의 소설에서는 땀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 땀과 땀냄새는 다르다. 땀은 본질이고 땀냄새는 흉내만 내는 것이다.

 

요즈음 나는 하루에 A4 용지 한 장 가량의 글을 쓴다. 어휘 수로 계산하면 4백 단어쯤 된다. ‘충동적인 영감’이 작용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원고를 쓰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초과한 부분을 거으 틀림없이 이튿날 다시 손질해야 한다. 충동적인 영감은 정신적인 설사와 같다. 아무리 언어의 설사라고 해도, 모든 설사는 멈추도록 치료해야 한다.

 

===> 글을 쓸 때 상황에 따라 토하기만 할뿐, 통하지 않을때가 있다. 토하지 말고 통하도록 할려면? 재우고 숙성시키고 소화시키고 다듬고 또 다듬고.

[24] 스스로 하는 숙제

한 줄 한 줄 천천히 글을 써나가면서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정성과 공을 들이도록 한다. 무슨 정성과 어떤 공을 들여야 하는지도 아직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어떤 글쓰기가 좋은 글쓰기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나에게 원칙이 없으면 선택의 여지도 없고, 그래서 타인들의 원칙을 노예처럼 따르기만 할 따름이다.

먼저 나에게 원칙이 있어야 타인의 원칙을 만날 때 비판하고 취사선택할 능력이 생겨난다.

===>

남이 가는 길을 따라만 가다가, 자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인생의 모방만 하다가. 어쩌면 자기 인생을 낭비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실험해보고 참여해봐야 한다. 내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시도해보고 아니면 버리고 다시 다른 것으로 시도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는게 삶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24] 있을 수 있는 것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앤다.”라는 원칙 또한 번역에서나 마찬가지로 창작에서도 유효하다.

번역을 가르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처음 몇 잘 동안 그들이 써놓은 글에서 ‘있었다’와 ‘것’과 ‘수’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있을 수 있는 것” 단 세 가지 단어를 모조리 제거하기만 하더라도 글이 얼마나 윤기가 나는지 스스로 놀라게 된다.

이것은 똑같은 표현을 다른 여러 방법으로 다양화하는 첫걸음이다.

===> 내 경우에 첨가하면 “그가 있을 수 있는 것 같다”를 없애보자.

 

[26-27] ‘진행한다’와 ‘진행하고 있다’

짧은 밑천이 탄로날까봐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서 나도 나도 ‘있다’와 ‘것’으로 자꾸 문장을 잡아 늘일 때는 오히려 혼자서 솎아내고 줄여야 눈에 잘 뛴다. 혁명아와 반역자가 영웅처럼 보이는 까닭이 그런 현상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하는 짓을 따라 하지 말고 아무도 안 하는 짓을 혼자서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평범한 다수가 짧은 단어를 꺼리면, ‘작가’라고 분류되는 별난 소수는 일부러 그런 단어를 찾아서 쓴다. 그래야 창조적인 독특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는 이런 개성을 문체라고 한다.

[29-31] 그랬던 것이었던 것

‘것’ 또한 ‘있다’나 마찬가지로 자신감의 부족 때문에 남용되는 단어이다. 최대한 절제해야 좋겠다. 남들의 입에 너무 자주 오르고 손을 타는 사이에 때가 끼고 낡아버린 헌 단어이기 때문이다.

 

정원을 가꾸려면 때로는 나무를 통째로 뽑아버리고 새 나무를 심기도 한다. 문장의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수북하게 매달린 단어 잎사귀들 가운데 시들고 말라죽은 잎이 많으면, 아예 그 나무를 바꿔 심어야 한다. 그러니까 “집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에서 ‘있다’와 ‘것’이라는 두 단어 잎사귀만 다른 단어로 바꿔 넣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아예 문장을 새로 쓰라는 얘기다.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라고 말이다.

 

어색한 문장은 자연스러운 새 문장으로 써야 한다. 그러면 단어 바꾸기라는 단순한 작업에서 다양한 문장을 만드는 과정으로의 진화가 시작된다.

 

[32] 외래종 표현

있다’와 ‘것’과 더불어 단어 ‘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쓰기에서 ‘3적’으로 꼽힌다.

 

이중 부정이나 피동태 문장, “무관하지 않다”는 식의 직역 용법, 소유격의 남용 따위 영어 중독으로 인해서 생겨난 갖가지 글쓰기 습성은 이렇게 우리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폐단을 낳는다.

 

[33] 일기 지어내기

억지로 쓴 글은 좀처럼 좋은 글이 되지 않는다

[33-34] 글짓기 집짓기

작품 쓰기는 책을 짓는 작업이다. 글쓰기는 집짓기이고, 번역은 집을 옮겨 짓기와 같다. 한 권의 소설은 한 채의 집이고, 작가는 그 집을 짓는 대목大木이다.

 

하얀 한복에 김칫국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김칫국물 한 방울이 더럽다 하지 않고 한복이 지저분하다고 말한다. 그까짓 얼룩 그냥 못 본 체하면 안 되느냐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한복을 보지 않고 얼룩만 보기가 쉽기 때문이다.

어딘가 허술한 결점이 생기더라도 독자들이 안 보고 넘어가 줬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의 눈에는 얼룩부터 보이고, 그래서 독자는 흠집만 골라서 보는 듯하다. 그까짓 작은 결함들 쯤은 소홀히 하는 사람을 옛날에는 대범하다고 존경했다. 하지만 정밀한 과학이 지배하는 요즈음 세상에서는 빈틈없고 꼼꼼한 작은 구석들이 승부를 결정짓는다.

시인들의 글이 왜 우리들이 쓰는 일기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나사못 하나를 잘못 헐겁게 박으면 문짝이 비뚤어지고, 문짝이 떨어져나가면 그 집은 부실공사의 표본이 된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은 하나하나의 단어를 무서워해야 한다.

글을 쓰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필시 집을 지으면서 나사못 따위를 고르는 데 신경을 쓰지 않는 목수와 비슷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다.

[35] 너무 딱딱딱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체로 쓴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면 정말로 술술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사람의 얘기처럼 부담 없이 읽힌다. 하지만 그렇게 술술 읽히게 하기 위해서 작가 J.D.샐린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하나하나의 단어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다듬었을지를 생각해보라.

많은 남자들의 말투는 이런 식이다. “방에 딱 들어갔더니 딱 그 친구가 눈에 띄어 딱 붙잡고 딱 물어봤디. ” 또 많은 여자들은, 우승한 배구단의 어느 선수처럼, 딱~딱~딱~ 대신 너무나무를 너무 많이 입에 올린다. 이렇게 말이다. “너무 감사드리고요. 너무 열심히 해서 너무 감동적입니다. ”

‘너무’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 어딘가 너무 천박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휘력은 지적인 속성이어서, 풍부한 어휘력이 지성과 교양의 증면서 노릇을 하는 한편, 한 뼘 밖에 안 되는 어휘력으로 “까이꺼” 대충 꿰맞추며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초라하고 가없어 보이기 때문일까? 그러니 말과 글에서 “너무 고맙다”는 표현을 열 번 쓰는 대신 “정말 고맙다”와 “굉장히 고맙다”와 “대단히 고맙다”와 “엄청나게 고맙다”와 “진심으로 고맙다”와 “억세게 고맙다”와 “무지무지하게 고맙다”와 “흐믓할 정도로 고맙다”와 “눈물겹게 고맙다”라는 표현도 골고루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39] 힘이 빠지는 표현

‘같아요’ 어족은 참으로 정신이 나가고 없는 것 같아서, 맥이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기운도 빠지는 것 같은 것 같기도 하다.

말과 달리 글은 한 사람이 다수를 설득하는 형태를 취한다. 말은 일회성 현상이지만, 글은 수준과 차원이 다르다. 글은 목소리만 낮추었을 뿐, 절제된 웅변의 성격을 지닌다. 웅변에서는 설득할 결곤이 힘을 얻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유부단한 ‘같아요’를 잘라 없애야 한다.

 

[41] 던져진 주사위

언어가 이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의사 전달을 방해하는 장애물 노릇을 한다.

할 말이 있으면, 분명하고 자신만만하게 해야 한다.

 

[46-47] 이론과 실제

대박사상은 인생살이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제 원칙이다.

내가 두 달 만에 성공을 거둘 만한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두 달 만에 성공하게 마련이고, 그런 사회에서는 두 달 만에 세대 교체가 저절로 계속해서 반복된다.

나이를 먹으면 활동이 중단되는 운동선수보다도 가수의 활동 수명이 평균적으로 훨씬 짧은 이유를 생각해보자. 운동선수는 기초 훈련에 워낙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기초를 준비한 기간이 활동 기간과 정비례한다. 그리고 일단 습득한 기본적인 지식과 능력은 스스로 활동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더라도, 이른바 ‘지도자’의 기능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52] 젊고 정력적인 문장

늙은 여자가 짙은 화장을 하면 더욱 추해 보이고, 젊음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싱싱함이 아름답다. 젊음은 아름다움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선 명사와 동사를 눈에 잘 띄게 전진 배치한다. 동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임은 정력의 증거이다.

무리가 가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부사는 형용사로 바꾸고, 형용사는 가능하면 동사로 바꿔본다. “그는 태만하게 근무한다”보다 “그는 일솜씨가 게으르다”가 조금쯤은 힘이 있어 보이고, “휘청거리며 걷는다”보다는 “휘청거린다”가 강하다. “빠르게 말한다”보다는 “말이 빠르다”가 의미의 전달 속도가 빠르고, “많은 눈이 내렸다”보다는 “눈이 쏟아졌다” 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는 표현이 훨씬 생동한다.

가장 약졸인 접속성 품사의 어휘는 흐름을 토막 내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도록 한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 효과적이다.

 

[54] 간결함과 단순함

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존 스타인백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50~60년대의 미국에서는 단순함simplicity과 간결함brevity이 글쓰기의 기본 원칙이었다.

세익스피어는 ‘햄릿’에서 “간결함이 재치의 정수 brevity is the soul of wit"라고 했다.

튼튼한 힘은 또한 논리성에서도 나온다.

진리와 진실은 그 자체가 힘이기 때문이다.

 

[54-56] 관점(point of view)

전체적인 흐름을 견지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갈팡질팡하지 않도록 스스로 견주고 통제하는 능력도 필요해진다. 그 통제력은 관점에서 비롯한다.

 

[56-57] 비둘기를 죽이는 이유

무엇인가를 주장하려면 논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 근거는 논리적인 상상의 훈련을 통해서 얻어진다.

 

[60] 집단적인 상상

거짓말에는 이자가 붙고, 그것도 복리 이자여서, 첫 단추가 진실이 아니면 점점 더 많은 거짓말을 이어 붙여야 한다.

 

[61] 비판 없는 수용

기본 조건이 빤한 거짓말이라면, 그런 글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전제 조건의 진실성을 믿기 어려운 글이라면, 거기 담긴 어떤 내용도 사람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논술시험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사 작성과 소설 쓰기에까지 모두 적용되는 원칙이다.

 

[61] 정답 만들기

암기식 교육의 폐단은 해답이 하나밖에 없는 사지선다형 훈련을 통해 창의력을 말살하고 관점을 형성하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점이다. 창조적이고 논리적인 글쓰기에서는 답을 외우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낸다.

 

[75-77] 스웨터 구멍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해도 타인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비판적이어서, 나에게 구멍이 뚫리면 잘 안 보이고 남의 구멍만 더 크게 훨씬 더 잘 보인다.

 

기억은 결코 확인을 이기지 못한다.

 

[77] 동일시

수많은 사람들이 대를 이어 <데미안>을 읽으며 심취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공감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 –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것을 ‘동일시’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동일시의 경험을 위해 소설을 읽고 연극(영화)를 보러 간다고 프로이트는 믿었다.

[80]헤밍웨이의 빙산이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체험을 빙산에 비유하면서, 작가는 물 위로 보이는 부분처럼 전체 경험에서 획일하게 드러나는 지극히 작은 일부만 작품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 속에 잠긴 90퍼센트의 빙산은 아낌없이 밑거름으로 남겨두라는 뜻이다.

하지만 체험의 10퍼센트를 활용하는 대신, 스스로 경험조차 하지 않고 남에게서 젼해 들은 얘기를 열 배로 불려서 작품을 만들려고 하면 당연히 무리가 간다. 한 가지 거짓을 믿게 만들려면 아홉 가지는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아홉 가지 거짓말로 한 가지 진실을 믿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81] 단락은 전개한다.

단락의 단위는 길이가 아니라 상황과 행위의 종결을 기초로 삼는다. 기승전결은 인과의 흐름이다. 단락은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며, 생각이 갈라지는 곳에서 단락도 갈라진다.

[106] 독창성은 반항에서 시작된다.

 

[107] 독후감 쓰기

세상의 어떤 경쟁에서도 조금이나마 성공과 승리를 거두려면, 학력이 아니라 실력을 쌓아야 한다. 실력實力은 ‘진짜 힘’이라는 뜻이다. 실력을 쌓으려면 스스로 자꾸만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그리고 글쓰기 훈련을 할 때는, 어떤 다른 훈련을 거칠 때나 마찬가지로,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목적을 알면서 임해야 한다.

 

109. 수많은 단어를 계속해서 머리에 담아 놓고, 샘물을 퍼내서 마시듯 계속 퍼내야 한다. 샘물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고, 오히려 자꾸 퍼내야 물이 썩지 않고 맑아진다.

 

[117] 겨냥하며 읽기

숙제나 학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어떤 목표를 겨냥하며 읽으면, 같은 작품이라고 해도 훨씬 더 재미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겨워하는 공부를 즐겁다고 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스스로 글을 쓰고 싶어서 남들의 글을 읽으면, 깨침과 배움의 폭도 커지고, 그만큼 얻는 바 또한 크다.

 

/둘째마당/ 이름 짓기에서 인물 만들기까지

 

[129] 짧은 소설 긴 제목

작품의 무게나 부피는 제목의 길이와 반비례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29] 율동하는 제목

글을 읽히기 위해서 분투하고, 제목은 눈길을 끌기 위해 분투한다.

 

[130] 낡은 웅변의 수사학

긴 제목은 그 길이만큼 수사학적 사치를 부릴 여유가 남아돌지만, 상상력이 활동할 빈 공간을 남겨놓지 않는다. 반면에, 예를 들어 달랑 한 단어로 붙인 제목은, ;토지‘의 경우처럼 상상의 여지를 무한으로 남기기 때문에 아직 하지 않은 말의 무한한 위력을 보여준다.

짧아서 여백을 남기는 제목은 끝없는 잠재력을 담은 침묵의 힘을 발휘한다.

 

[132-133]

어려운 글이 왜 좋은 글이 되기 힘든지 그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추상적인 표현은 비논리가 심하고, 영화나 문학에서는 신선한 독특함을 말초적인 겉멋에서만 찾으려고 해서는 짧은 첫인상의 차원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말재주와 말장난도 분명히 문학적 재능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경박한 기발함의 대중화가 철학이나 감동을 낳기는 무척 힘들고 어렵다.

간단히 얘기하면, 요령으로는 뚝심을 당하지 못한다.

 

[135] 이유 있는 작명

혼자서 쓰고 읽어보는 습작 시절에는 사실 남의 글을 베껴보는 훈련이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모방은 혼자 하면 훈련이지만, 베낀 작품을 나눠주며 돈을 받고 팔아먹으면 도둑질이 된다는 뜻이다.

 

[140-141] 영어 이름의 뜻 알기

 

[170]

독자는 자신이 기쁨을 얻기 위해 책을 읽지, 남의 넋두리와 하소연을 듣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기 위해 돈을 내고 책을 사지는 않는다.

 

[176]

자신이 쓰는 글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문체를 스스로 개발하면 그만이다. 문학적 글쓰기만이 모든 글쓰기는 아니고, 대중적 글쓰기도 분야는 무진하다. 자신의 글쓰기 습성을 바꾸기 어렵다면 자신에 맞는 글쓰기 분야를 찾아야 한다.

 

[186]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Don't tell, show!) 이것은 글쓰기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아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가르침이다.

184센티미터이다. 라고 써 놓은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보라. 막연히 “키가 크다”라고 한 경우보다 구체적인숫자를 밝혀 “키가 174센티미터”라고 하면, 나중 문장이 훨씬 눈에 잘 보인다. 184 센티미터라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정마로 키가 크기 때문이다.

 

[192]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짤막한 첫 대화에서 우리는, 비록 작가가 앞에 나서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두 주인공의 성격뿐 아니라 가정과 종교, 교육과 성장 배경,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

작가가 여러 말로 장황하게 대결 심리를 설명하는 대신, 등장인물 두 사람이 서로 작용하는 싱싱한 대화를 통해서 훨씬 핍진하게 부각된다.

바로 이것이 대화의 힘이다.

[196]

아무리 자신의 관찰과 판단이 옳더라고 다수의 오류를 따르는 이런 본능이 ‘패거리 쫓아가기(follow the pack)' 군중심리다.

[199]

작가 지망생들이 흔히 생각하듯, 갑자기 무슨 대단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다음 책상 앞에 앉으면 밤낮으로 손끝에서 글이 줄줄 흘러나오는 그런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긴 글쓰기란, 집을 지을 때처럼 설계도를 만들고 기초를 닦은 다음, 땅을 밑으로 파고 들어가 지하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

 

/셋째 마당/ 줄거리 짜기에서 초벌 끝내기까지

 

[212]

영감(inspiration)'은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 한 순간에 반짝 떠오르는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오랜 시간이나 세월에 걸쳐 공을 들여 조금씩 쌓아 올리는 무형의 집 한 채와 같다.

 

[232]

“훌륭한 글쓰기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라면 섣불리 그리고 감히 동원하지 않는 정밀함을 보여주지만, 그러면서도 얘기를 하는 듯한 말투의 뒷맛을 남긴다. 그런 문체를 제대로 터득하려면 평생이 걸린다.“ - 노먼 메밀러-

 

대화체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제로 말하는 그대로 쓰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사람들은 말을 더듬고, 중복하고, 쓸데없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지만, 그런 모든 ‘자연스러운’ 요소를 제거하며 열심히 다듬어야 오히려 ‘자연스러운’ 대화체가 된다.

 

[237]

일반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지한 작가라면, 배움은 항상 어디에서나 끊임없이 계속된다.

 

[245]

어째서 우리는 한 가지보다 두 가지를 더 쉽게 기억할까?

그것은 아마도 상승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래의 가락 역할을 글쓰기에서는 대화가 맡는다. 대화는 서술과 묘사를 입체화한다. 그래서 무기력한 서술체를 활성화하면서 대화 자체도 더욱 힘을 얻는다. 서술적인 묘사보다 짤막짤막한 대화를 쓰기가 더 어려운 까닭을 아마도 그렇게 설명해도 되리라는 생각이다.

 

[251]

글쓰기에서는 힘들고 중요하지 않은 과정이 없지만, 끝내기 또한 어떤 힘든 하나의 계획에서 마무리를 짓는다는 의미가 만만치 않다. 끝내기는 바둑에서만 중요한 일이 아니고, 사실상 세상만사에서는 시작보다도 훨씬 더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로서 작용한다.

 

/넷째마당/ 시작에서 퇴고까지

[296]

나는 소설 한 작품이나 번역따위에 관한 책 한 권을 탈고하면, 바로 그 날이나 적어도 이튿날 당장, 미리 준비해 두었던 다른 계획에 착수한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게으른 자의 핑계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어떤 영감이 떠오른다고 해서 냉큼 그 순간 당장 글을 쓰기 시작하는 대신, 그 착상을 키우고 가꾸며 상당한 기간에 걸쳐 작품으로 만들려는 준비를 착실하게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둘째 마당 ‘인물 박람회’ 항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언제 어디에서 떠오를지 모르는 멋진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항상 호주머니와 자동차와 내가 생활하는 모든 곳에 준비해놓은 쪽지에 얼른 적어놓는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자료함에다 모든 쪽지를 정리해 놓는다.

[299]

읽기와 일기 쓰기-남들이 쓴 글을 읽고, 스스로 날마다 조금씩 글쓰기- 이것은 습작 시대의 필수 과목이다. 그것은 남의 책을 읽고 따라 하거나 표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단계이다.

 

[301]

번역에 대해서도 그런 얘기를 했었지만, 글쓰기는 개인기업이다. 기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부기학도 이해하고, 제품 관리와 배급과 수송, 반품의 관리, 그리고 함께 일할 인력을 선발하고 다루는 용병술까지 알아야 한다. 거기에다 다른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한 상품의 다양화도 필수적이다.

 

[302]

글쓰기 전쟁을 위해 군대를 양성한다는 비유를 했지만 동시에 여러 구상을 함께 진행하는 방식은 따지고 보면 전쟁뿐 아니라 낚시질과도 비슷하다. 낚시대를 여럿 펼쳐놓으면 이쪽저쪽에서 입질을 하기 마련이고, 가장 입질이 많은 낚싯대가 고기를 낚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어떤 한 작품에 관한 관심이 점점 많아져서, 오랜 기간에 걸쳐 모인 자료가 서류철로 하나 가득 또는 두 개가 블룩해진다. 임산부의 배가 불룩해지듯 말이다.

 

그리고 작품을 임신하면 입덧이 시작된다. 거듭되는 입덧과 함께 자료수집에는 가속도가 붙고, 아직 다른 작품을 끝내지 않았는데도 다시 만삭에 이르면, 해산을 준배해야 한다. 해산의 준비는, 문학용어로 표현하자면, 구상plot이다.

 

[307]소탐대실의 교훈

푼돈을 아끼다가 큰 재산을 날린다거나, 바둑에서 소탐대실을 한다는 현상은 글쓰기에도 적용되어서, 단어와 쪽지를 묵혀 발효시키지 않고 너무 빨리 꺼내 양념으로 썼다가 낭패를 당하고 나면, 옛 사람들의 말이 정말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교훈을 절감하게 된다.

나중에 ‘글쓰기 인생을 위한 에필로그’항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어느 정도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콩트나 수필 같은 조가글을 써달라는 청탁서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오는데, 바로 이런 때가 성공한 다음의 몸가짐과 작품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다. 성공의 단맛에 도취되고 흥분하여 아까운 정보를 부스러기로 낭비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308]

수없이 후회했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는 한 작품만 만들겠다는 순수의 시대에 나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어겼으며, 하고 싶은 얘기를 다했으면 끝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에 스스로 느껴야 했던 실망감은 나 역시 성공한 다음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가 덜 되어 있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만들었다.

그 깨달음은 나 자신을 통제하는 힘으로 훗날 작용했다.

[314-316] 글쓰기의 하루

나는 아침 여섯 시쯤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고, 이도 닦지 않고, 신문도 보지 않고, 글쓰기부터 시작한다. 가장 머리와 마음이 맑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간혹, 좀 창피한 얘기지만, 깜박 잊고 오후에 세수를 하지 않은 채로 외출을 하는 지저분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자신의 글을 쓰는 창작은 그보다 덜 기계적이어서, 아침에 눈을 뜨면 한 시간 가량 일을 하고, 세수를 한 다음 신문을 읽고, 아침 식사는 다시 일을 시작한 둘째 시간에 간단히 커피 한 잔과 빵이나 떡 한 조각으로 해결한다.

 

이때부터는 정시에 일을 시작하여 30분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며 다음 시간에 쓴 글을 구상하면서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처리한다. 골목에 잡상인들이 차를 끌고 와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전까지 이렇게 네 시간쯤 집중적으로 글을 쓰고 나면, 머리가 탁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머리가 탁해지는 시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빨리 온다. 글쓰기처럼 극심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을 네 시간이나 하고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은 “돌대가리”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글쓰기를 중단한다. 빈둥빈둥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고 계속해서 글을 써봤자, 피곤한 아이가 아무리 공부를 계속해도 머릿속에 들어가는 지식이 별로 없듯이, 그런 상태에서 쓴 글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써야 한다. 그래서 웬만한 날이면 이 시간에 나는 산으로 낚시를 간다.

 

한 시간 가량 숲 속을 돌아다니다 내려와 목욕을 한 다음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나면 오후 두 시가 되고, 이때부터 오후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러고는 오후에 다시 머리가 탁해지면 잔디밭에 나가 풀을 뽑는다든가 낚시방을 다녀오는 등, 어쨌든 작업실을 벗어난다.

 

능률이 굉장히 왕성한 날에는 저녁에도 일을 계속하지만, 오후 내내 좀처럼 머리가 맑아지지 않으면 그날의 글쓰기는 거기에서 끝난다.

 

때로는 하루 종일 쉬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낮잠을 워낙 많이 자다 보면 새벽 한 시나 두 시에 잠이 깬다. 그러면 억지로 잠을 계속 자려고 애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쓴다. 피곤하지도 않고 머리가 맑으면 그런 시간을 절대로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나에게는 잠을 자는 시간이 자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자신이 자거나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하는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바로 그것이 글쓰기 인생의 즐거움이다.

 

나는 평생 단 한번도, 150권의 책을 번역하는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겨본 적이 없고, 시간 약속도 천재지변이 없는 한 어기지 않는다. 그것은 30년 동안 직장도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나 자신에게 내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성실성이다.

 

나는 자유롭고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시간표를 따라야 하는 이런 생활을 무척 행복하다고 믿는다. 출퇴근을 하느라고 답답한 길바닥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근무시간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는 상사도 없고, 어느 누구의 눈치도 살펴야 할 필요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만큼만 해도 되는 작업이면서, 거기다가 조금쯤은 사라들로부터 존경까지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을 엄격히 통제하는 간단한 의무마저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318]

쪽지는 좋거나 멋진 어떤 생각이 날 때마다, 길을 가다 걸음을 멈추고라도, 즉시 적어두는 습관이 좋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하면 자칫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일단 입 안에 들어간 밥을 삼켜야 다시 한 숟가락 더 퍼 넣을 자리가 생겨나듯, 머릿속에 담아둔 내용이 자꾸 뱅뱅 돌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면, 한두 가지 먼저 떠오른 생각들이 자꾸만 발에 걸려 더 이상 새로운 구상이 전진하거나 발전하지 못한다. 그것은 실제로 종이에 담지 않고 머릿속에 문장을 계속 써나가려고 하는 헛수고와 같다.

 

[323]

너무나 기발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튀기 때문에,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경우이다. 잘못 튀면 떨어질 때 다리가 부러진다.

 

[349]

윌리엄 포크너와 출판사 편집자의 대결에 관한 일화는 유명하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구사한 포크너의 “숨이 길고 난삽한” 원고를 보고 편집자가 간결하고 잘 읽히는 헤밍웨이식 문장으로 고쳐보자는 제안을 했더니, 단단히 화가 난 포크너가 “너 도대체 뭐냐?(What the hell are you?)”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440]

우화계의 독보적 존재인 아이소포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의 노예 출신으로서, 뛰어난 재치와 지혜를 주인으로부터 인정받아 자유인이 되었지만,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폭군의 미움을 받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처형을 당했다. 아테네의 팔레레우스가 아이소포스 우화를 처음 수집한 때는 기원전 300년경으로, 이 우화집은 그리스 국경을 넘어 여러 세기를 거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삽화로는 프랑스 고전파 시인 라 퐁뗀의 <우화집>에 실린 그랑빌의 목판화가 유명하다.

 

[468]

의식의 흐름 기법의 또 다른 선구자는 영국의 여성 작가 도로티 리처드슨으로서 <뾰족한 지붕>으로 시작하여 12권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연작소설 <인생행로>는 여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오가는 생각과, 감각적 인상과, 기억과, 느낌을 엮어서 줄거리를 서술한다.

 

[487]

위대한 작가는 독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이다. 독자나 시청자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는 작가의 야합은 창작의 차원에 이르지 못하고, 그래서 삼가야 마땅한 짓이다.

그리고 독자나 편집자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내 마음대로 글을 쓰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 위대한 작가가 아닌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고집은 위대한 작가가 된 다음에 부려도 늦지 않다.

 

좀 미안한 얘기이지만, 지금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직 위대한 작가가 아니다. 위대한 작가는 이런 책을 잃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한 사람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의무감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무감은 물론 야합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아니다.

앞에서 여러 차례 나는 글쓰기를 집짓기와 마찬가지라고 비유했었는데 그 비유는 작품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도 적용된다. 집을 다 지으면 남이 들어가 살 듯이, 작품도 다 쓰고 나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작품은 완성되기 전까지만 나의 소유이고,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면 독자들의 소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동안 작가는 나중에 소유권을 넘겨 받게 될 고객으로서의 독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니까 세상이 나를 위대하다고 인정해 주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아직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가 위대한 작가로 성공한다면, 그때는 ‘무식한 군중’의 정신적인 스승 노릇을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다.

 

[496]

고쳐 쓰기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영감을 받아서 쓴 즉흥적인 글을 냉정한 마음을 다듬고 잘라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고쳐 쓰기를 여러 번 하면 영감의 총기는 점점 더 사라지고, 다분히 합리적이고 장식적인 면으로 흐르기가 쉽다. 생동하던 문장도 직유, 은유, 풍유 ,환유, 제유, 성유, 반어법 따위의 기술과 기교과 사후에 동원됨에 따라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감을 논리로 갈고 닦으면, 마모되어 사라지는 대신 보석이 되어 빛난다.

 

[498]

글쓰기는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배열하여 벽돌처럼 쌓아올리는 수공업이다. 그것은 오랫동나 고생스럽게 땀을 흘려야 하는 노동이다. 번역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십중팔구는 번역을 잘 못한다. 엉터리로 하니까 번역이 쉽다고 오해할 따름이지, 문학 작품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 도대체 쉬울 까닭이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500]

그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작품의 관리에 대해서도 퍽 유익한 얘기를 한다. 작가 지망생들은 흔히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남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습성을 보인다. 하지만 글로쓰기 전에 입으로 자꾸 설명하다 보면, 마치 글로 써버린 듯한 착각에 빠져 그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작가 자신이 조금씩 잃어버리게 된다. 더구나 정성을 들여 글로 써놓지 않고 대충 말로만 설명하다 보면 작품의 진가를 누구에게도 증명해 보여주기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별로 감동하거나 감격하지 않은 사대방의 반응이 신통치 못할 때는 공연히 실망하여 좌절감까지 생겨난다.

 

[502]

“작가로서 활동하다 보면 언젠가 쓰고 싶은 위대한 작품을 위해 무엇인가 남겨두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타자기 앞에 앉을 때마다 자신이 지닌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여 모든 노력과 생각을 아낌없이 소진해야 한다.”

 

[506]

나는 걸작을 썼는데 너는 왜 졸작이라고 하느냐며 따지는 일도 위대한 작가가 될 때까지는 삼가는 편이 좋겠다. 작품의 수준은 쓰기를 하는 작가가 아니라 읽기를 하는 독자가 결정한다.

 

[508]

<글쓰기 만보>를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독자는 글쓰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리라.

노력을 계속하려는 용기를 얻기 위해 신념과 독려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작품이 걸작이라고 믿되, 남에게는 그런 말을 섣불리 하지 말아야 한다. 경험이 많은 타인이라면 나만의 걸작을 보고 그것이 결코 걸작은 아니라는 진실을 알며, 그래서 도로(徒勞)를 만류한다.

경험을 얻고 지식과 지혜를 쌓으려면 엄청난 정보의 경험이 필요하다. 연습과 훈련은 많을수록 좋다.

남의 작품을 많이 읽는 경험도 훈련이어서, 문학과 잡문의 차이를 터득하도록 도와준다. 모든 고전은 시대를 이겨낼 만한 가치를 지닌다.

 

[513]

다작은 진지한 작가의 미덕이 아니다. 작품을 많이 안 쓴다고 해서 야단을 치는 사람은 없다. 한 권의 작품을 써서 10년 동안 팔 능력을 갖춘 작가라면 1년에 한 권씩 열 권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보리스 빠르쩨르나끄의 <의사 지바고>를 읽으며, 그리고 다시 읽으며,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작가는 많은 작품을 쓸 능력이 없으면, 많이 쓰지 않은 참을성이 지혜임을 깨달았다. 평생을 칼로 갈고 닦아 연마하여 거두어들이는 문학의 분량은 책 한 권이 전부더라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또 한 가지 삼가야 할 일이라면, 글쓰기를 집단활동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글쓰기는 동업가들을 많이 알면 손해가 나기 쉽다. 계보와 관록을 개성이나 창조적인 사고 방식보다 중요시하는 집단은 반문학적이고, 반문화적이다.

글쓰기의 승부는 언제나 혼자 하고, 혼자 해야 옳고, 비평도 스스로 해야 한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기에 자유롭고, 즐겁고, 창조적이다.

 

[515]

 한 작품을 오래 쓰면, 거기에는 젊은 시절의 총기와 감각 그리고 싱싱한 영감이 그대로 살아남은 채로, 경험과 지혜가 나중에 곁들어 함께한다. 모든 세대는 젊었을 때 힘차게 발달하고, 나이를 먹으면 경험을 되새겨 보다 높은 차원으로 성숙시킨다. 아직 젊어 알찬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의 글쓰기에는 줏대가 보이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은 젊어서 시를 쓰고, 장년에 소설을 쓰고, 늙어서 수필을 쓰라고 하는 모양이다.

 

[519]

 여태까지의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최고의 작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걸작을 써야 한다는 오만과 자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스스로 얻게 되는 홀가분한 자유, 그것은 나이가 터득한 비겁하도고 현실적인 지혜였는지도 모르겠다.

 

3-1. 제목에 대하여

 

‘글쓰기 만보’라 이름 지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조금씩 독자의 시야를 넓혀주고, 차원도 높여주며, 심도 또한 깊어지는 단계적인 학습을 도모하는 한편, 이 책에서는 어디선가 언급할 참고자료를 일부러 군데군데 미리 심어놓기도 했다.

“늴리리 맘보”라는 경쾌한 노랫가락에 맞춰 붙인 이 제목에서 ‘만보(漫步)’는 ‘한가하게 돌아다니기’라는 뜻이고, 책의 구성도 오락가락 돌아다니는 형태를 취했다.

 

‘글쓰기 만보’는 앞에서 이미 나온 얘기를 끊임없이 언급하여 반복에 의한 길들이기를 계속하는가 하면, 아직 나오지 않은 내용도 슬그머니 언급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한다. ‘글쓰기 만보’는 그렇게 하나의 망을 이루며 모든 부분이 직물처럼 서로 얽혀 들어간다.

바로 그런 ‘만보’가 등장인물을 조금씩 보여주는 기법이다.

 

3-2. 목차를 써보면

 

사실 목차가 길었다. 목차를 써보면서 한꼭지 글을 어떻게 세심하게 준비하고 쓰는지 저자 개인마다의 글쓰는 성격들을 엿본다

.

차례

/첫째마당/ 단어에서 단락가지

 

수영과 글쓰기

김성동의 원고지와 접영

이문열의 안맞춤 글쓰기

동굴에서 하던 글쓰기

글쓰기 준비운동

요령으로 글쓰기

충동적 영감

스스로 하는 숙제

있을 수 있는 것

‘진행한다’와 ‘진행하고 있다’

있어도 된다는 가능성

그랬던 것이었던 것

외래종 표현

일기 지어내기

글짓기 집짓기

너무 딱딱딱

힘이 빠지는 표현

던져진 주사위

글더듬이 접속사

고쳐 쓰는 일기

이론과 실제

눈에 보이는 웃음소리

장식적인 글쓰기

젊고 정력적인 문장

간결함과 단순함

관점(point of view)

비둘기를 죽이는 이유

집단적인 상상

비판 없는 수용

정답 만들기

비둘기들과의 산책

사살적인 거짓말

거짓말을 위한 진실

제목의 선택

여객선에서 맺은 사랑

스웨터 구멍

동일시(identification)

'나쁜 자식‘ 죽이기

단락은 전개한다

전개되는 생각

단락 짓기의 요령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분위기

계산된 혼란

간접화법이 필요한 이유

원인과 결과를 잇는 흐름

노루 꼬리의 복선

접충하는 전개

절벽에다 사람 매달기

두 개의 단락

뒤통수 치기

틀린 모범답안

독후감 쓰기

겨냥하며 읽기

 

/둘째마당/ 이름 짓기에서 인물 만들기까지

이발사와 장군

제목을 만들기 위하여

짧은 소설 긴 제목

율동하는 제목

낡은 웅변의 수사학

제목이라는 이름의 이름

이유 있는 작명

병학이와 병석이의 차이

메리와 쫑과 스미스와

이름이 없는 주인공

복수를 꿈꾸는 이발사

출력하는 관점

인물 만들기

보이지 않는 작가

몰락하는 우상

오만과 편견의 충돌

판지와 박지

치네치타의 뻣뻣한 엑스트라

벌전하는 악마 이야기

충돌하는 남자와 여자

인물 만드는 방법

인물의 재구성

등장인물 보충대

야금야금 보여주기

안으로 엮어 들어가는 밧줄

연속성의 그물질

인물 박람회

그림으로 글쓰기

전투적인 유혹의 매력

도시형과 농촌형의 차이

푼수들의 행진

튀지 않고 걷는 사람

변두리 사람들

글쓰기 전투

구구리와 뚝배기

토막과 켜의 활용법

인물의 해석과 발췌

 

/셋째 마당/ 줄거리 짜기에서 초벌 끝내기까지

줄거리 짜기

영감의 정체

작업시간표

반죽을 해놓은 다음

열어주기

길게 열어주기

움직이는 열어주기

도치법과 둘러싸기

열어주는 몇 가지 방법

전개의 양 날개

인물을 구성하는 말투

쓰는 말과 안 쓰는 말

귀로 쓰는 대화

확인하기 위한 낭독

소리로 쓰는 글

소리로 보여주기

따옴표의 힘

인물의 등장

극적인 사족

반응하는 인물

초벌 끝내기

긴장한 지능의 대결

집사가 하는 일

먼저 뒤집기

단편적인 끝내기

공중에 띄워놓는 끝내기

은광의 입구에서

첫 번째 경우의 두 가지 종결

두 번째 경우의 두 가지 종결

짧은 끝내기

끝없는 끝내기

해결되지 않은 위기, 그래도 평화

마지막 과제

두 쪽짜리 인생

 

/넷째마당/ 시작에서 퇴고까지

무작정 만드는 쪽지

‘글쓰기 만보’를 위한 준비

보물상자

붓다와 그리스도가 만난 걸레 스님

뒤늦은 정보의 처리

소참대실의 교훈

산으로 가는 낚시

물러서는 시간

글쓰기의 하루

비낭만적인 일과

개성 없는 정답

기발한 진부함

박절기 머리

현상의 빈도수와 해적질

묘기와 말장난

자유로운 상상의 한계

스티븐 킹의 독보

거대한 신

모든 복선이 집결하는 초점

왕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어스킨 콜드웰을 위한 변론

짧은 소설과 긴 단편의 사이

중편의 늘이기와 줄이기

밀고 두드리기

3단계 고치기

 

이후 차례는 건너뜁니다.

 

3-3. 나의 감상

 

영문과를 졸업하고 번역을 150여권을 하고 소설을 쓴 작가 안정효.

 

나에게는 잠을 자는 시간이 자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자신이 자거나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하는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바로 그것이 글쓰기 인생의 즐거움이다.

 

나는 평생 단 한번도, 150권의 책을 번역하는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겨본 적이 없고, 시간 약속도 천재지변이 없는 한 어기지 않는다. 그것은 30년 동안 직장도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나 자신에게 내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성실성이다.

 

성실성이 결여된 작가는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한다. 150여권의 책을 번역하면서도 마감시간을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안정효는 자신에게 엄격한 작가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진정한 자신의 자유를 누리며 산다.

 

나는 자유롭고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시간표를 따라야 하는 이런 생활을 무척 행복하다고 믿는다. 출퇴근을 하느라고 답답한 길바닥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근무시간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는 상사도 없고, 어느 누구의 눈치도 살펴야 할 필요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만큼만 해도 되는 작업이면서, 거기다가 조금쯤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까지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을 엄격히 통제하는 간단한 의무마저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로 자신을 엄격히 통제하지 못하면 일은 완성될 수 없다. 좋은 글을 쓰려면 책속에서 찾지 말고 삶에서 찾아야 한다. 즉 좋은 삶을 살면 좋은 책을 쓸 수 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을 하던 중에, “인생의 길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라 자기가 만드는 길이다”라는 구절이 눈에 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갔던 길을 “아! 이 길이구나” 라고 무작정 따라가고 싶지 않다. 나의 길을 가고 싶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삶에서 실험하고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나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간다. 그것이 바로 나의 삶이고 좋은 삶이다. 삶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가 만드는 길을 간다. 그게 바로 좋은 삶이고 좋은 책을 쓰는 밑거름이다.

IP *.205.13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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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4 21:47:30 *.72.147.40

저도 글을 쓸때, 이 책이 참 도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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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12:36:41 *.185.21.47

요즘 잘 지내시는지요.?

이 책 재밌고 책쓰기는 완전 전신운동, 노동이라는 말에 동감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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